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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INGR@D

댓글: 11 / 조회: 306 / 추천: 0



본문 - 04-27, 2018 23:13에 작성됨.

경고: 이 글은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작성 과정에서 레닌그라드 공방전 생존자들의 증언을 참조했습니다.


위 링크의 동영상은 음악입니다.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로마는 함락되었다. 하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


'총통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구에서 지우기로 결정했다. 소련의 패배 이후, 이 대도시의 존속 문제에는 (우리는) 관심이 없다.

...(중략)...
만일, (소련군이) 도시의 상황으로 인해 항복할 시, 도시의 인구와 음식 공급 문제가 우리에 의해 결정될 수 없으며 결정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항복은) 거부될 것이다.'

-1941년 9월 22일, 1601호 지시령, 아돌프 히틀러-



1941년 12월 28일 아침 12시 30분에 언니 제냐가 죽었다
1942년 1월 25일 낮 3시에 할머니가 죽었다
1942년 3월 17일 아침 5시 오빠 레카가 죽었다
1942년 4월 13일 밤 2시 삼촌 바샤가 죽었다
1942년 5월 10일 낮 4시 삼촌 레샤가 죽었다
1942년 5월 13일 7시 30분에 엄마가...
사비체바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죽었다.

타냐 혼자 남았다.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 中-



1941년 9월 8일 ~ 1944년 1월 27일.

지속 기간, 871일.

피해 규모:

  독일군, 579985명 사망 또는 부상.

  소련군, 1017881명 사망, 포로 또는 실종, 2418185명 부상, 총 인적 손실 3436006명.

  소련 민간인, 약 1050000명 사망.

  총 사상자, 최대 450만명으로 추정.

레닌그라드는 2년 3개월의 포위전 동안, 총 인구의 98.18%가 손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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