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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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경고: 이 글은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작성 과정에서 레닌그라드 공방전 생존자들의 증언을 참조했습니다.
위 링크의 동영상은 음악입니다.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로마는 함락되었다. 하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
'총통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구에서 지우기로 결정했다. 소련의 패배 이후, 이 대도시의 존속 문제에는 (우리는) 관심이 없다.
...(중략)...
만일, (소련군이) 도시의 상황으로 인해 항복할 시, 도시의 인구와 음식 공급 문제가 우리에 의해 결정될 수 없으며 결정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항복은) 거부될 것이다.'
-1941년 9월 22일, 1601호 지시령, 아돌프 히틀러-
1941년 12월 28일 아침 12시 30분에 언니 제냐가 죽었다
1942년 1월 25일 낮 3시에 할머니가 죽었다
1942년 3월 17일 아침 5시 오빠 레카가 죽었다
1942년 4월 13일 밤 2시 삼촌 바샤가 죽었다
1942년 5월 10일 낮 4시 삼촌 레샤가 죽었다
1942년 5월 13일 7시 30분에 엄마가...
사비체바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죽었다.
타냐 혼자 남았다.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 中-
1941년 9월 8일 ~ 1944년 1월 27일.
지속 기간, 871일.
피해 규모:
독일군, 579985명 사망 또는 부상.
소련군, 1017881명 사망, 포로 또는 실종, 2418185명 부상, 총 인적 손실 3436006명.
소련 민간인, 약 1050000명 사망.
총 사상자, 최대 450만명으로 추정.
레닌그라드는 2년 3개월의 포위전 동안, 총 인구의 98.18%가 손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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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941년 6월 22일.
'Внимание, внимание.'
'주목, 주목.'
'Говорит Москва.'
'모스크바에서 알려드립니다.'
'Передаём важное правитель ственное сообщение.'
'중요한 정부의 메시지를 전해 드립니다.'
'Граждане и гражданки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소련의 인민들이여.'
'Сегодня в 4 часа утра
'오늘, 6월 22일 새벽 4시,
без всякого объявления войны
선전포고도 없이
Германские вооруженные силы атаковали границы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독일의 군대가 소련의 국경을 넘어 공격해왔습니다.'
'Началась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совет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тив немецко-фашистских захватчиков.'
'파시스트 침략자들에 대한 소련 인민의 대조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Наше дело правое,'
'우리의 대의는 옳으며,'
'враг будет разбит,'
'적은 패배할 것이며,'
'Победа будет за нам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외무장관 -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다.
"그래서......파파는 가는 거에요?"
"그렇단다, 아냐.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실 거야."
"하지만 옆집 아저씨도, 저기 설탕 가게 아저씨도 가는데..."
"아냐, 그 분들은 그 분들의 가족을 지키시러 떠나시는 거란다. 아빠도, 우릴 항상 바라보고 지켜 주실 거야."
아나스타샤의 아버지는 붉은 군대에 징집되었다.
"더러운 파시스트 놈들, 우리 땅은 한 발짝도 내 줄 수 없다!"
7월 3일, 민스크가 함락되었다.
"독일 놈들, 우릴 살려둘 생각이 하나도 없어! 항복하면 모조리 죽여버릴 거라고!"
7월 31일, 스몰렌스크가 함락되었다.
"내릴 때는 질서를 유지해 주세요!"
"아아앙아아아아악!"
"질서를! 질서를 유지해 주세요! 모든 사람은 두 줄, 두 줄을 이루어서 배에서 내립니다! 여기 바다에 사람이 빠졌어요! 구조대!"
6~7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프스코프와 노브고로드의 민간인 약 300000명 이상이 레닌그라드로 대피했다.
"한 사람당 배급 카드는 한 개입니다!"
"질서를 유지해 주세요!"
"한 줄로! 한 트럭 앞에는 한 줄로 서 주세요!"
7월 17일,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배급카드를 발급받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도시를 지켜낼 것이다! 어머니 러시아를 위하여!"
"우라아아아아!!!"
7월 말, 레닌그라드 주위의 병력은 예비 병력과 도시의 자원자를 합쳐 2백만명을 넘어갔다.
그 자리에 아나스타샤의 아버지는 없었다.
그리고, 1941년 8월 20일.
저 멀리, 어디선가 휘파람 비스무리한 소리가 들려온다.
귀가 찢어지는 폭음과 함께, 건물 하나의 옆구리가 터지고,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레닌그라드가 공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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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프롤로그였습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승리를 향하여!
트로이도,로마도 함락됬다지만 레닌그라드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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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 Bombardment
재앙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갑작스레, 그리고 은밀하게 찾아온다.
레닌그라드.
아름다운 네바 강을 끼고 있는 3천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
한 때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러시아 문화의 총본산이었던 '발트 해의 베네치아'.
지금은 10월 혁명과 사회주의의 고향, 모든 소련인들의 성지.
아나스타샤의 부모님들은 항상 이 도시의 이름을 헷갈려하셨다. 지금도 하루에 한 두번 쯤은 이 곳을 페트로그라드라고 부르셨다. 가끔 밥상에 앉아서 부모님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부모님이 어렸을 때는 이 곳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볼 수 있었다. 물론 아냐는 그런 적은 없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 곳은 레닌그라드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가끔 레닌그라드의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변할지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맑고 푸른 물살이 흐르는 네바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유럽풍의 건물들 사이로 제국 시절의 휘황찬란한 궁전들과 종교 박물관, 미술관, 요새들이 늘어서있었다.
해안에 가까운 곳에 간간히 보이는 큰 도개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에르미타지와 마르스 광장, 대리석 궁전을 지나 리테이니 다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꺾어서 다리를 건넌 후 세 블럭 정도를 걸어들어가면,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과 함께 거대한 광장이 나온다.
레닌 광장은 이제 명실상부한 레닌그라드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10월 혁명이 일어난 이후, 이 곳은 이제 소비에트 연합의 발상지이자 성지였다.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가난한 음악가들의 길거리 공연과, 간간히 보이는 비둘기 떼들, 주위에 펼쳐진 상가들. 그 정중앙에 서 있는 레닌의 동상은, 전세계를 바라보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아나스타샤의 부모님에 따르면 상황은 딱히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위협할 것이라면서 서기장 동지가 중공업화......였나? 를 말하면서 공장만 지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요지는, 그것 때문에 음식이 부족한 점은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는 것. 사실 아나스타샤 자신은 최근에 혼자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실감하기 시작했다. 음식 값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항상 부모님이 장을 보러 다니셔서 나름 배불리 먹었지만, 그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요즘엔 딱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7월 중순부터 한 사람마다 배급카드를 발급받았고, 그 카드를 군인 아저씨들에게 보여주면 배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급은 주로 기차역 쪽에서 진행되었다. 7월 말에는 이미 내륙으로 가는 육로는 완전히 끊긴 상태였고, 식량은 배를 통해 라도가 호수를 건넜다가 철도로 수송되고 있었다고 한다.
저 멀리, 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총과 배낭을 매고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대포들이 트럭에 실려 옳겨지고 있었다.
그 기묘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서있을 때.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아나스타샤 옆의 사람들 몇 명이, 신기하고 놀랍다는 눈초리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확실히.
하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를 크게 치켜뜨고, 소리의 근원을 찾는다.
점점 가까워져온다.
저건 무슨 소리지?
서서히 더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인가?
아니, 새 떼 소리일리가 없잖아.
서서히, 등골을 타고 차가운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묘한 직감이 대뇌를 관통한다.
소리가 너무 크다!
서서히 커지던 그 소리는, 이제 손으로 귀를 막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고, 그 음도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 순간, 휘파람 소리가 멎었다.
거대한 공기의 파도가 온 몸을 덮친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아나스타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몇 초 후 먼지와 돌가루들이 그녀의 온 몸을 덮쳤다.
윙윙대는 귀 속의 감각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얼굴과 상의를 손으로 털며 일어나 눈을 뜬다.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집 한 채가,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한 쪽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군중들은 혼비백산하며 최대한 빨리 거리에서 벗어나려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쇳내.
그리고 쓰러진 사람들 주변, 바닥에 뿌려져 있는 붉은 점성을 띤 액체.
눈동자와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정신이 아찔해지며, 자신이 본 광경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두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아버지가 가족을 두고 왜 가야만 했는 건지, 무엇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 한 건지, 그제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레닌그라드.
아름다운 네바 강을 끼고 있는 3천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
한 때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러시아 문화의 총본산이었던 '발트 해의 베네치아'.
10월 혁명과 사회주의의 고향, 모든 소련인들의 성지.
그리고 지금은, 그 흉측한 이빨을 드러낸 나치 독일에 맞서, 최후까지 맞서싸울 요새였다.
묘사력 좋네요오... 아냐는... 화이팅...
심장이 쿵쾅대며 온 신경이 곤두세워진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뭔가 소리치고 있다.
귀가 먹어버린 걸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왜 여기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꿈틀댄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본다.
천천히, 삐걱대며 도시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뭐라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있다.
아직도 귀가 멍한 것인걸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원래보다 작아진 것 같았다.
누군가가 귀마개를 씌워준 것 같은 느낌.
귀를 양 손으로 세게 두드려본다.
통각이 온 몸을 타고 내려온다.
하지만 귀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몸뚱아리를 힘겹게 일으켜,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돌아본다.
무너진 건물은 그대로였다.
그래, 이건 진짜구나.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저 무너진 건물은 그대로였다.
막혀있는 귀의 고막에 선명하게 각인된 휘파람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그리고 이번엔, 멍하게 서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할 겨를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안전해보이는 왼쪽 건물의 입구를 향해 달린다.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이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며, 크고 높아진다.
벽돌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오른쪽 벽에 온몸을 기댄 채로, 바닥에 앞으로 눕는다.
부동 자세 유지.
귀를 두 손으로 막아 보호한다.
바닥에 찰싹 붙은 상태로, 이제 운이 그녀와 함께 하길 기다린다.
두 손과 고막을 뚫고, 그 지독한 소리가 머릿속으로 침투한다.
비슷한 휘파람 소리들이 하나 둘 사방에서 다가오기 시작한다.
대체 몇 발이 날아오는 걸까?
셋?
일곱?
세 봤자 의미도 없어지는 숫자들이다.
보이는 것은 칠흑.
들리는 것은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들과 아냐가 내쉬는 거친 숨소리.
그만.
그만.
제발 그만.
하늘에 빌고 또 빈다.
저 소리가, 제발 멈춰달라고.
쾅 하는 충격음이, 아냐의 머릿속을 지워나갔다.
번개가 내리친 뒤엔, 천둥이 그 자리를 뒤흔든다.
대지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그 등에 박힌 포탄을 떼어내려 한다.
천둥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아냐를 오른쪽에서 후려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너울대는 지상의 파도.
말로만 듣던 해일이 온 몸을 덮쳐오는 듯 했다.
뼈 한 조각 한 조각이 떨려온다.
벽돌 몇 개가 천장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온 몸을 웅크리고, 급소를 보호하려 한다.
서서히 가빠져 가는 호흡.
언제라도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질 벽돌이 생각나며, 온 몸이 굳어간다.
저 멀리에서 아직도 멀어져가는 충격음이 들린다.
고막을 때리는 북 소리가 이내 저 멀리로 사라진다.
건물이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며 일어난다.
오른손으로 벽을 짚고 온 몸을 끌어올리자, 코에 돌가루들이 섞여 들어간다.
겨우 왼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로 기침을 하며 최대한 돌가루를 빼 본다.
두 눈 앞에는 자욱한 회색 가루만이 가득하다.
왼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건물을 나선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돌가루들을 털어내고, 이내 따가운 눈을 옷소매로 비비며 눈물을 닦아낸다.
돌가루들이 이내 흩어지며, 거리의 광경을 아냐에게 드러낸다.
건물의 오른쪽에 자신이 원래 서 있던 장소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하나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숨어있던 건물 옆으로, 집 세 채가 나란히 무너져있다.
유리들은 이미 산산조각났고, 앞에 서있던 가게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이 나온다.
돌더미들 사이로, 다리가 하나 튀어나와있다.
피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하게 코를 찌르는 녹슨 쇠 냄새는 아냐에게 이것이 현실이라 고하고 있었다.
길바닥에 엎드려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다시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풀려있는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일어서서 움직이는 사람들, 일어서지 못한 사람들.
이미 몇 군데는 피와 듣도보도 못한 기괴한 살덩어리들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져있었다.
하지만, 그걸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냐도 그저 자신이 그런 꼴을 맞이하지 않기를, 자신의 가족을 그런 모습으로 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내 사람들이 피해다니고, 밟고 지나가던 어떤 시체에서 눈을 떼고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로 집으로 발걸음을 바삐 옳긴다.
하.
도대체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위험하단 말인가.
이 곳의 어딜 지킨다는 건지, 어디로 대피한다는 건지.
누구를 위한 대의인건가.
자신의 아버지는, 이런 광경을 매일같이 보고 살아야 했단 말인가.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난다.
Lesnoy Prospekt.
저 쪽이다.
집으로, 그저 집으로.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냐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
그저,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고, 이 광경을 모두 잊어버리고,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닌걸.
오늘만큼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아냐를 위로해 주지 못할 것 같았다.
1941년 8월 20일.
옛날 중국에선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100번 듣는 것보다 1번 보는 것이 낫고, 100번 보는 것보다 1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
너무나도 틀린 말인 것 같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몇 만번, 몇 억번을 들어도, 이것보다 끔찍할 순 없을 거다.
6월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일들이었다.
아버지가 떠날 때, 무엇을 위해 떠나는지.
우리 도시에 무슨 일이 닥쳐올지.
옆집 표트르 아저씨가 말하던 저 '가증스런 독일 놈들'이 언젠가는 이 곳에 들이닥칠 거라는 것을.
지금 또 다시 폭음이 들린다.
아빠.
아빠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빠, 잘 살아있지?
같은 땅에서, 같은 별을 보고 있는 거지?
별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너무 밝다.
그 아래 앉아있는 우리 집은, 너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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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8월 21일.
앞집 클리멘트 아저씨네가 무너졌다.
다행히도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
클리멘트 아저씨네는 당분간 표트르 아저씨 집의 빈 2층에서 지내기로 한 것 같다.
포격은 하루종일 끊이지 않았다.
어제는 정말 밤하늘이 밝았다.
별들은 밤하늘을 비추지 않았다.
그저 불타는 건물들만이 자기의 위치를 알리는 듯이 저 위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일은 같이 배식을 받으러 가 보자고 하셨다.
저 밖으로 나가긴 싫다.
하지만, 이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싫다.
너무 피곤하다.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오늘은 좀 일찍 자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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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3일치 엔트리하고 씬 하나가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창댓 재가동.
오후에 돌아오겠습니다.
레닌 광장에서 리테이니가를 따라 대여섯블럭 정도 걸으면 종합병원 뒤로 도시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네프스키 거리가 보인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이름.
네바 강을 따라가면 있다는 스타라야라도가라는 곳에서 침략하는 스웨덴과 독일 군대를 막아낸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영웅이다.
네프스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야, 바로 한 블럭만 왼쪽으로 가면 모스크바 역이 나오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역 이름은 역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그 역에서 타는 기차의 종착역이 있는 도시의 이름을 따는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역을 지나는 철로의 종착점은 모스크바라는 것이다. 모스크바로 연결된 철도인만큼, 이 곳을 방어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보급품이나 군수물자는 전부 이 역으로 향한다. 소문에 의하면 공장의 쇠파이프나 발전기같은 기계들은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역으로 옳겨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나 같은 민간인을 위한 음식도 이 곳을 통해 보급된다.
레닌그라드에는 아직 식량 창고가 남아있지만, 독일군에 맞서싸울만큼 충분한 식량을 담을 수는 없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식량이 남아있다는 위안 때문일까, 아직 심각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차 몇 대 뒤로 줄을 서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동안은 나는 음식을 언제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옆에 서 있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기차 앞에 거의 다 왔을 때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장교 한 명이 음식을 나눠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사람 손이 너무 부족해서 내일부턴 민간인들도 어떤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한테는 에르미타지 쪽으로 나와달라 그랬다. 그러면서 아마 여자에 어린아이니 대피 시에는 최우선순위가 될 거라 그랬었나?
그냥 살아서 나갈 수 있기만 하면 좋겠다.
내일부터는 매일 오전에 에르미타지 박물관으로 향하게 될 것 같다.
'자유의 나무에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독재자들의 피를 주어야 한다'
-토마스 제퍼슨-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아나스타샤는 학교 과목들 중 근대사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더럽게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해에 뭘 했는지, 어떤 단체가 있었고 어떤 단체가 생기고 망했는지를 다 때려 외우는 것은 정말이지 지겹고 보드카를 마시는 것 보다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뭐, 그래도 왜 그랬는지 그 흐름 자체는 재밌었던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러한 내용들을 싫어한다 해도, 책에서 수없이 배워온 것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감격스러운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나스타샤에게 레닌그라드 도심을 걷는 것은 꽤 유쾌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레스노이 거리. 레닌광장에서 1시 방향으로 턴. 항상 걸어왔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리테이니 다리로 가는 길에는 오늘도 레닌의 동상이 어김없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고 인사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도심에는 항상 있는 새들이 동상의 주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쪼고 있었다.
레닌의 쭉 뻗은 오른손 위와 그 아래 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쪼아먹는 새들을 보고 있으면, 진지하고 근엄한 얼굴을 한 레닌이 그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 같이 보였다.
동상 발밑의 표지판에는 '새들에게 모이를 주지 마시오'라 적혀있다.
매일 봐 오지만, 그래도 꽤나 유쾌한 광경이다.
레닌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야, 일단 이 도시 이름부터 레닌그라드 아닌가.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를 몰아낸 후, 맨셰비키가 민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자 볼셰비키를 이끌고 권력을 장악했다. 소련은 그렇게 탄생했고, 레닌은 영원히 인민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진 않았다.
소련이 생기고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옳겨졌지만, 레닌그라드는 아직도 그 위용을 잃지 않았다. 대규모 공업단지,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아직도 이 곳에 남아있었으며, 간간히 왔다갔다 하는 기차를 이용해 이들을 모조리 우랄 산맥 건너편으로 뜯어 옳기고 있었다.
어느덧 오른편의 트로츠키 다리를 지나치고, 왼쪽엔 유럽풍의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쨌든, 참 아이러니한 점은 그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그 인민들이 그렇게나 타도하고 싶어했던 제정 러시아 시절들의 것이라는 거다. 빵에 금을 발라먹었다 전해지는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의 거처였던 곳은, 이제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에게 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에겐 그 실종되었다는 공주의 이름이 아나스타샤였다는 것 보다는, 그 박물관의 이름이 더 중요했다.
저기, 이제 아나스타샤가 걷는 도로의 왼쪽을 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크기의 거대한 왕궁이 독차지하고 있다.
허미타지.
그 본래 이름은, 겨울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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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졸려-
나머지 부분은 내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