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으쓱여보이는 바카네에게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짓고 있는 저 고양이같은 표정은 참으로 이야기하는 내내 변함없이 한결같았지만, 저 확신에 찬 시선이. 화가 날 정도로 이질 적이게 차분하고 어른스러움을 풍기는 그것이 나를 더욱 동요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녀석의 이야기를 잠자코 곱씹어보게 되었고. 저 녀석이 제시해 놓은 이야기의 안에서라도 재고해봐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
아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게 있다.
"...바카네."
"응."
"...일단 하나만 먼저 물어보자."
"얼마든지!"
...또 천연덕스럽게 하이 톤인 것이, 내가 지금 하려는 질문이 참으로 바보같이 느껴지게 만들지만.
"...네가 전학을 갑작스레 올 계획이 없다고 하고, 그 뒤에. '다른 두 사람이 키타카미 레이카와 이리 간단하고 빠르게 결탁하게 되었다'라고 했지?"
"어... 그렇지?"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만... 그 두 사람이란게 대체 누구냐?"
...설마하니 예상이 가지만. 아니, 날 놀리려고 하는 소리라면 분명 그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겠지.
"푸우 쨩. 아까 레이카 쨩이 뭐라고 했더라~?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를 찾아내서 같이 논다고 그랬지?"
...대답은 따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카네는 그 침묵도 충분한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푸우 쨩. 푸우 쨩이 우주인이거나, 미래에서 온 사람은 아니지? 아니, 뭐. 스스로 자각도 못하고 뭔가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거나 그런건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아카네 쨩은 초능력이 생겼을 때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실히 스스로 알 수 있었고... 아카네 쨩의 다른 유쾌한 동료들도 다들 똑같았어."
"......"
"그리고... 아까는 다 말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아카네 쨩과 동료들 모두. 이 힘이 '키타카미 레이카'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누가 알려준게 아니라, 생겨난 순간부터 그냥 그렇게. 느낀것도 아냐. 그냥 힘이 생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알 수 있었어."
"......"
"그래서 아카네 쨩은 확신할 수 있어. 레이카 쨩이 바라서 우주인도, 미래에서 온 사람도 지금 RED단에 있어. 왜냐하면 초능력자인 아카네 쨩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까."
사실일지, 아닐지 모를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에 내가 꺼낼수 있던 질문은...
"...그럼-"
>>+3까지 투표. 도착 전에 할 마지막 질문입니다.
1. ...RED단원들이 다들 뭔가 있다면 나는 뭐야?
2. 누가 우주인이고 누가 미래인이야..?
"...RED 단원들이 다들 뭔가 있다면, 나는 뭐야."
"응? 푸우 쨩?"
"그래. 네 말대로 다들 뭐 신이라던지, 우주인이라던지, 미래에서 왔다던지, 초능력자라던지..."
...정말 진짜로 그렇다면.
"나는 뭔데."
대체 나는 왜 있는거냐?
이렇게 내가 물어본다면 넌 뭐라고 대답할거냐. 자아, 대답해라. 자칭 초능력자 소녀.
지금까지보다도 더 강하게 녀석을 쏘아보며 압박해보았지만,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시선을 운전석 쪽으로 돌렸다. 아니, 정확히는 룸미러일까.
"다 왔습니다."
"...아, 다 왔구나. 기사 아저씨! 아마 아카네 쨩들, 한 30분 정도 뒤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지. 잠깐만 주변좀 돌아다니면서 쉬어줄 수 있을까?"
...도착했나. 택시 기사는 흔쾌히 승낙하였고, 바카네는 차 문을 열고 보도로 내려섰다.
"자, 일단 내리자구 푸우 쨩.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말야."
녀석의 뒤를 따라 택시에서 내리니 번화가 한가운데였다. 높은 빌딩들 사이사이에 작은 건물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상점가. 그 곳에서 노노하라 아카네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 번잡한 곳으로 골라 들어가고 있었는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잘 밀쳐지지 않고 용케도 인파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길게 얘기는 못하지만 말이지?"
어떻게, 인파를 헤치고 나와서 시내 한가운데... 보통은 이렇게 전철역과 제일 높은 빌딩이 있는 교차로 즈음을 시내라 하겠지. 내가 사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시내 한가운데의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게 되어서야, 노노하라 아카네는 내가 차 안에서 던진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 중간에 대답할 틈이 없긴 했지만.
"푸우 쨩은 정진정명한 일반인이야. '기관'에서 조사해본 결과로는, 분명 그러니까, 걱정할거 없어."
"...그러니까 그런 일반인이 왜 이런 집단 한가운데에 있냐는 거다."
"음... 그건 아카네 쨩들도 잘 모르는 거라서 대답을 못하겠어. 사실 푸우 쨩이 가장 미스테리하다면 미스테리할 수도 있단 말이지?"
내가?
"...뭐, 이해 안된다는건 이해는 가지만 말야. 자아, 아무튼 지금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어깨를 으쓱여보이던 바카네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일단 여기까지 데려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뭐하긴 한데. 지금이라면 아직 되돌릴 수 있어."
"...이제와서 뭘."
퉁명스럽게 대답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때마침 바뀌는 신호등의 신호.
"...자, 그럼 가볼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간다.
"어이, 뭐하는거야 갑자기."
"자, 일-단...음...됐다."
떨떠름해하는 내 반응 같은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를 질질 끌고가던 바카네는 갑자기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멈춰섰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눈 좀 감아줄래? 금방 끝날거야. 몇 초면 된다구."
"...여기서? 무슨 비틀즈 앨범 재킷이야?"
녀석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주변엔 온통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신호등의 파란 신호는 점멸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알았어.
순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소리에 예민해진다. 점점 빨라지는 발소리들, 횡단보도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 웅성거리는 목소리들, 신호등의 점멸음, 시내에서 흔히 들릴법한 옥외 광고의 소리. 그 속에서, 바카네는 내 손을 붙잡고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시야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 눈이 잘못되어서 그런가, 싶어 눈을 다시 양손으로 세차게 부벼보고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잿빛으로 물든 세계는 변함이 없었다.
단순히 잿빛으로만 물든거라면 내가 안과를 가봐야겠다고만 생각했겠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분명, 늦은 시간이라 어둡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내 번화가라서 사방에 켜진 간판과 가로등, 신호등... 온갖 곳에서 뿜어지는 빛으로 인해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온통 환했었는데. 구름도 많지 않은 날이라 어둡지 않았을 터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암회색 구름으로 온통 뒤덮여있었다.
...아니, 구름이 맞긴 한걸까. 구름이라면 분명 저 사이에 구름의 윤곽선이 보여야 할 터인데. 그 윤곽을 보여주는 끊긴 선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 암회색으로 된 천장이 씌워진 느낌. 저 회색하늘에서 비추는 흐릿하고 약한 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이런 변화에 아연해져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 횡단보도를 건나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바카네와 나, 우리를 제외한 그 어떠한 사람의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횡단보도의 신호만 계속 껌벅이다 이내 빨간 신호로 바뀌었고, 그와 동시에 차도의 신호도 파란 신호로 바뀌었다. 하지만 출발하는 차조차도 단 한 대도 없었다. 이질적인 광경. 무언가, 강하게 압박해오는 것만 같은 압도적인 정적.
"차원 단층의 틈이란 곳이야."
명랑하게,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노노하라 아카네의 목소리.
"아카네 쨩이랑 푸우 쨩이 사는 세계랑은 다른, 그 세계하고는 단절되어있는 '폐쇄 공간'이라고나 할까?"
녀석은 다시 돌아서며 손을 뻗어보였다. 허공에 팬터마임이라도 하는 양 무언가를 만지는 제스처.
"자, 지금 아카네 쨩이 만지고 있는 여기. 이 횡단보도 한가운데 지점이 이 폐쇄 공간의 '벽'이야. 한번 만져봐."
멍하니 녀석을 따라 손을 뻗어보니, 확실히 허공에서 무언가 차갑고 거대한 젤리 같은게 앞에 있는 느낌이다. 탄력이 있어서 살짝 들어가지긴 했지만, 수 센치정도 들어가자 손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반경은... 조금 오차가 있지만 대략 5km정도일까? 뭔가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해. 아카네 쨩이 가진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공간에 침입하는 거야."
방금까지의 광경에서 사람만 사라진 느낌의 이질적인 공간.
"...여긴 어디야, 도대체."
아니, 뭐냐고 물어야하나. 뭐라고 물어야하지?
"자, 좀 더 가야하니까 걸어가면서 설명할까?"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바카네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카네 쨩들이 사는 세계랑은 아주 조금 틀어져 있는 곳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라고 해야할까? 아까 전의 그 횡단보도에서 차원 단층이 발생해서 그 틈으로 들어온 거야. 지금 이 시간에도 저 바깥에서는 무엇 하나 변한 거 없이 똑같은 일상이 흘러가고 있을거야."
다시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가며, 아까 인파를 헤쳐나갈때와 전혀 다를바 없이 흔들림없이 걸어가며.
"일반인이 여기에 들어오게 되는 일은...음. 거의 없지."
노노하라 아카네는 언제나처럼 평이한 어조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양은... 돔. 돔 형태라고 봐. 적당히, 밥그릇을 뒤집어놓은 듯한 모양. 여기는 그 안쪽이야."
사무실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바카네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 안도 인기척은 커녕 먼지조차 없다.
"폐쇄 공간은 정말 완벽하게 불규칙적으로 발생해. 하루 걸러 나타날 때도, 몇 달이나 아무 기미가 없을 때도 있고. 아, 한 가지 확실한게 있긴해."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복도에서부터 계단까지 불빛이 거의 없어, 바카네의 붉은 머리카락만 보고 간신히 쫓아가고 있다.
"레이카 쨩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이 공간이 생기더라구."
그렇게 4층...을 넘어 옥상까지. 올라간 끝에,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갔다.
"아카네 쨩은 이런 폐쇄 공간의 출현을 탐지할 수 있어. 아카네 쨩의 동료들도. 어떻게 그걸 아는가?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이유고 뭐고 몰라도, 출몰하는 장소랑 시간을 알게 돼.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는 방법까지도. 설명하라해도, 더 자세하게 말로 설명은 못하겠고."
이 회색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바람조차도 불지 않나.
"...그래서 이걸 보여주려고 날 일부러 여기로 데리고 온거야? 아무도 없잖아."
"아니. 핵심은 이제부터랄까. 곧 시작될 거야."
...이젠 좀 그만 빼고 어서 말해봐. 하지만 이 녀석은 내 표정을 못본척할 모양이다.
"아카네 쨩의 능력은, 폐쇄 공간을 탐지하고 들어오는게 전부는 아냐. 그래... 말하자면, 레이카 쨩의 이성을 반영한 능력이 있다고나 할까? 이 세계가 레이카 쨩의 정신에 생겨난 여드름 같은거라서. 아카네 쨩은 그 여드름에 바르는 치료약인거구."
"...그러니까 그놈의 비유좀 그만하고 알기 쉽게 말하라고."
슬슬 알아먹기 힘들어.
"뭐, 그런 소리 자주 들어. 그치만 어쩌겠어, 아카네 쨩이 워낙 똑똑하고 퍼펙트한 미소녀라서 그런걸."
그렇게 너스레를 떨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살짝 몸을 떨며 다시 헛기침을 한다.
"...그나저나, 푸우 쨩도 참 굉장한걸? 엄청난 담력이야. 이런 광경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니."
>>+3까지 다이스 체크.
가장 낮은값으로 진행합니다.
100 : ...?????????
60 ~ 99 : 뭐 딱히.
20 ~ 59 : ...놀라고 경악할 여지도 안주고 끌고 다녔잖아.
4 ~ 19 : 정말 내가 안 떠는걸로 보여...?
1 ~ 3 :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가족들에게든, 치햐나 아리든 늘상 들어왔던 말이 바로 뭐 숨기는 걸 전혀 못한다, 표정에 바로 드러난다...였는데.
어두워서 그런걸까, 아니면 바카네가 둔감한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니구나. 오히려, 너무 놀라서 어떻게 정리가 안되는 모양이네."
어느 샌가 다가온 바카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두운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 조금 의외였지만, 지금은 의외다 어떻다 말할 상태가 아니었다.
"뭐어, 금방 끝날거니까, 조금만 참으라구. 슬슬 시작 할거거든?"
뭘?
"저 뒤쪽이야."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멀리 서 있는 고층 건물들 사이로 파랗게 빛나는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무..."
무슨, 이라는 간단한 단어조차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형체가 사람의 모습이라 일단 거인이라 하긴 했지만, 사이즈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마도 30층 정도일 빌딩보다 머리 하나정도, 물론 그 거인 기준으로, 그정도는 더 높아보이는 크기. 그 거대한 몸뚱이 전체가 뭔가 발광물질로 덮인거마냥...아니. 내부에서부터 빛을 발하는 느낌이니 발광물질은 아닌가. 어쨌든 사람의 형체인 것, 빛을 발하는 것. 이외에는 선명한 느낌이 아니었다. 윤곽도 흐릿했고, 얼굴이 있으리라 추측되는 부분에는 눈, 코, 입...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저런걸 보고 몽달귀신이라고 하던가.
"...저게 뭐야...?!"
가까스로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대답해준 건 바카네가 아닌, 저 거인 스스로였다.
아니, 이게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인은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 팔을 천천히 들더니, 거리낌없이 휘둘러버렸다. 그 결과, 옆에 있던 건물은 옥상에서부터 반 정도 높이까지 박살나기 시작했다. 단 한방에. 물론 거인은 그 한 방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아연하게 보며, 바카네의 해설이 이어졌다.
"레이카 쨩이 뭔가 짜증이 나면 저런게 구체화되서 나타나는 모양이양.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저렇게 주위를 부수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려나...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 세계에서 난동을 부리고 했다간 안되겠지? 그랬다간... 어마어마한 대형참사가 날테니 말야. 그래서 이렇게 폐쇄 공간을 만들어서 파괴 행동을 하는거야. 어때, 정말 이성적이지 않아?"
바카네... 노노하라 아카네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인지 아까 학교에서 커피를 마실 때 마냥 평온한 어조였다.
파란 빛의 거인이 쉼없이 팔을 휘둘러가며 건물들을 붕괴시켜갔고, 붕괴한 건물의 잔해를 짓밟으며 거인이 발을 내디뎠는데... 신기하게도 건물이 짓밟히는 둔탁한 소리는 들려도, 저 거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 정도로 거대한 사이즈가 되면 말이지. 물리적으로는 자기 무게에 눌려서 서지도 못한다구? 푸우 쨩도 알지? 괴수물은 죄다 거짓말인거."
몰라. 관심없어.
"야박하네에... 아무튼. 저 거인은 지금 중력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 양 마음껏 돌아다니고... 건물을 부수는걸 보면 질량이 있어야 운동량이 생겨서 충격을 주고 부수고 할 거 아냐? 그런데 그 어떠한 물리적인 이치로는 저거한테 통용되지 않는다? 설령 군대가 오더라도 저건 못막을거라구."
"...그럼 저건 계속 난동만 부리는거야? 그렇게 냅둬도 되는거고?"
"아니아니. 이 아카네 쨩이 있는건 바로 그거 때문이라구! 잠깐만 보고 있어?"
바카네가 손가락 하나를 뻗어 거인에게 향했는데, 그 손끝을 따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만해도 없었던 빨간 점 같은게 몇 개. 거인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고층 건물만한 크기의 푸른 거인과 비교하면 정말 깨알만한 크기. 하나, 둘... 정확히는 몰라도 서너개? 거리도 거리고,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정확한 갯수를 셀 수가 없었다. 저 빨간 점들은 거인의 주위를 행성을 도는 위성처럼 빙빙 돌면서...
"저 점들... 저 거인을 막고 있는거야?"
"정답! 아카네 쨩의 동료들이야! 아카네 쨩이랑 마찬가지로, 레이카 쨩한테서 힘을 받아 거인을 사냥하는거지."
빨간 점들이 묵묵히 거리를 파괴하는 파란 거인이 휘두르는 두 팔을 피해가며 궤도를 틀어 거인의 몸에 돌격했다. 거인의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빨간 구체들. 하지만 저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뚫고 지나가도 그대로 무시하고 거인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저기, 사냥한다는데... 저게 효과가 있는거야?"
"으음. 역시 아카네 쨩도 나서야겠네. 여기 얌전히 있으라구?"
그 말과 함께 바카네의 몸에서 붉은 빛이 스며나왔다. 노노하라 아카네를 광원으로 하듯 서서히 스며나오던 붉은 빛은, 이내 바카네를 전부 집어 삼키고는... 저 멀리 보이는 붉은 빛의 덩어리처럼 커다란 빛의 구슬만을 남겼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있어...?!
이윽고 둥실, 하고 공중으로 떠오른 빨간 구체는 내게 인사라도 하듯 두세번 좌우로 흔들리더니 잔상조차 남지 않을 빠른 속도로 거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변신한 바카네까지 포함된 빨간 빛의 무리는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인에게 몸통박치기를 연신 시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냥 통과할 뿐 아무런 효과도 없어보였다. 도저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광경에 그냥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빨간 구슬 가운데 하나가 거인의 파란 팔꿈치 부군에 달라붙어 그대로 팔을 따라 한바퀴를 돌았다.
"...어!"
천천히 거인의 한쪽 팔이 팔꿈치에서 절단되더니, 주인을 잃은 거대한 팔이 지면으로 낙하하는가 싶더니만... 그 팔에서 뿜어지던 파란 빛은 이내 두께를 잃으며 햇살을 받은 눈결정처럼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팔이 잘린? 사라진 부위에서 천천히 흘러내리는 듯한 푸른 연기는... 저 거인의 피라고 할 수 있을까. 환상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법한 광경이군.
빨간 구슬들은 그걸 계기로 돌진 공격에서 베기 공격으로 방향을 선회한듯, 일제히 거인의 몸에 달라붙으며 푸른색으로 빛나는 몸뚱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얼굴에, 어깨에, 복부-로 추측되는 부분별로 붉은 선들이 차례차례 그어지면서 잘린 부분들이 스르륵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상체가 점차 기괴한 조각으로 바뀌어갔다. 절단된 부위들은 아까의 팔처럼 소멸되었고.
몸의 반 이상을 잃은 것과 동시에, 푸른 빛의 거인은 붕괴해서 푸른 빛무리만 남긴채 사라져버렸고 그 뒤에 남은 것은 거인이 부숴놓은 빌딩의 폐허더미 뿐이었다.
그 상공에서 선회하던 빨간 점들은 이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거의 전부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지만 그중 하나가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와 건물 옥상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바카네...?"
빛이 점차 약해지더니, 아까의 역과정처럼 다시 뿅, 하고 튀어나온 노노하라 아카네는 아까 낮에 처음 봤을 때 마냥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오래 기다렸엉?"
숨도 헐떡이지 않는구만.
"다 끝났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거양~"
그러면서 손을 쭉 뻗어 위를... 그러니까 하늘을 가리킨다. 여기에 또 뭐가 있는거냐. 조금 질린다는 느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암회색으로 물든 천장과도 같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초에 거인을 발견했던 지점의 부근. 그 상공에 균열이 가있었다. 아주 작은 실금 같던 균열은 차례로 거미집 모양으로 성장해가면서-
"저 파란 괴물이 소멸되면 그와 동시에 폐쇄 공간도 소멸하게 된다구. 좀 스펙터클하지?"
바카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균열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꼭 거대한 금속 체를 뒤집어쓴 느낌으로. 망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균열로 온통 새까만 포물선으로 바뀐후,
쩌억.
소리는 나지않았지만, 그렇게 유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을 뇌리에서 느꼈다. 저 천장의 한 부분을 통해 들어온 밝은 빛이 순식간에 원 모양으로 퍼져갔다.
점차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리듯 퍼져나가는 밝은 빛과 함께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이 고막을 때려서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으음, 돌아왔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그런 느낌으로 중얼거리는 바카네를 보니... 이 소음이 원래 일상의 소음이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아까까지 있던 세계가 무음의 세계였기에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찬찬히 귀에서 손을 떼고 주변을 확인하니,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세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아까까지 있던 무너진 고층빌딩의 잔해도, 잿빛 하늘도, 하늘을 나는 빨간 빛도. 그런 이질적인 것이 전부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차와 사람들로 가득찬 도로와, 밝게 빛나는 달과 건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까지.
"음. 그래서, 이젠 이해가 돼?"
아니, 전혀. 진심으로 대답했다.
건물에서 내려와 도로로 나오니 거짓말처럼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저 파란 괴물을 보고 아카네 쨩의 동료들은 '신인(神人)'이라고 불러. 아무튼 저 신인은 아까 말한대로 레이카 쨩의 정신적인 상태랑 연동하고 있어. 그리고 아카네 쨩들도 마찬가지야. 저 폐쇄 공간이 생기고 '신인'이 태어날 때에만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거야. 오로지 딱, 저 폐쇄공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힘. 지금의 아카네 쨩에겐 아무런 힘도 없다니까."
등받이에 기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왜 아카네 쨩한테, 다른 동료들한테 이런 힘이 주어진건지는 알 수 없지만... 뭐어, 아마 어느 누구라도 상관 없었을거야. 복권 당첨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걸? 지극히 낮은 확률이라도 누군가는 당첨이 되는 거처럼. 우연히 아카네 쨩에게 화살이 날아온 거뿐이라구~"
너무 퍼펙트한 미소녀라서 그런걸까~ 업보겠지? 그런 흰소리를 덧붙이며 웃어보이는 바카네였지만,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신인'의 활동을 방치해둘 수는 없어. 저 녀석의 파괴활동이 계속되면 폐쇄 공간이 점점 더 커지거든. 방금 본 그 공간은 아주 작은 규모인거라구? 내버려두면 일본 전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덮어버릴거고... 그렇게 되면 그 회색 공간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랑 뒤바뀌어버릴거야. 그럼 그걸로 끝."
...마침내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런건 어떻게 알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그냥 알게 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 '기관'에 소속된 사람은 모두 그렇다구.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키타카미 레이카와 그녀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식과 기묘한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야. 그 폐쇄 공간을 방치하면 어찌될지도. 알게 된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카네 쨩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분명히 세계가 붕괴해버릴테니까."
정말 곤란하다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바카네와 나는 창 밖에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집 앞에 도착해서 내가 내릴 때가 되어서,
"...레이카 쨩한테 항상 주의해줘. 그... 레이카 쨩의 정신이 한동안 안정되어있었는데, 가끔씩 활성화를 띠면 이렇게 되는거야. 사실 오늘의 그것도 정말 오랜만에 있던 일이라서."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신기하게도 부모님께 왜 늦었는지에 대해 추궁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내가 되물어보니 바카네가 전화를 걸었고 언제쯤 돌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예의바르게 다 했었다고 그러시더라. 목소리는 미라이 또래마냥 귀여운 애가 똑부러지게 말 잘했다고 그런 기특한 애랑 언제 친구가 되었니...
솔직한 심정으로 어머니의 그 칭찬 들을 듣고있는 내 입장에서는 노노하라 아카네가 가진 그 놈의 초능력이라는게 사실 저 화술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스멀스멀 올라올 지경이었으니 말은 다했지.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딱히 뭐라 반박할 것도 없었고, 방금 전까지 겪은 일로 인해 상당히 피곤했기에 적당히 티가 나지 않도록 맞장구를 쳐드리고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양말만 대충 벗어던지고 침대에 푹 엎어졌다. 옷을 갈아입고 자시고, 그런 거 따위...
"...초능력자..."
스스로를 초능력자라고 소개하는, 그리고 도저히 내가 아는 물리적, 과학적인 것으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게 해준 노노하라 아카네.
...머리가 아프다.
키타카미가 고등학교 첫 날 자기소개 때부터 했던 그 말.
'평범한 사람에겐 관심 없어요!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그 말이 설마하니 진짜로 이뤄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진짜로 초능력자가 키타카미를 찾아왔다. 뭔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류의 초능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초능력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녀석이, 진짜로.
그리고 노노하라 아카네는, 키타카미 레이카, 마카베 미즈키, 니카이도 치즈루... 이 셋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랬다.
...그냥 내가 아파서 헛것을 보고 온거고, 바카네 녀석이 나한테 무언가 사기를 치고 사이비 종교 같은 곳에 권유를 하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면. 그런 거라면 그래도 내가 알던 상식 선에서 어떻게 이해라도 될 것만 같은데.
"...아니, 다른 사람은 다 때려치고..."
...아까까지 내가 느꼈던 그 모든게. 내가 정말 미쳐서 이 방에서 단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서야, 노노하라 아카네가 그놈의 초능력자니 뭐니 그런 것의 관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대로 가면 내가 이렇게 맛이 가있는 상황의 당사자가 될거라고. 애초에, 고교생활조차도 적당히 방관자로서 지내고 싶었던 나였는데 왜 이런 상황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건데?
한 때는 물론 나도 초능력자 같은게 나오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아니, 있었겠지? 아무튼 그런 생각은 누구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정말로 정작 그런 캐릭터가 된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곤란하네 진짜..."
왜 이런 일에 휘말려야만 하는 것일까. 방금 겪은 일은 차라리 키타카미가 성희롱을 하고, 바니걸을 입히는 게 나았을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여전히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았지만...
"...잠깐, 이건 아닌거 같긴한데."
그래. 저건 저거대로 아웃이다. 관계 없잖아.
그렇게 확 깨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던 분위기가 조금 트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도, 나는 내일 학교를 가야만 했다. 바바 선생과 약속도 했고 말이지.
"...그만하고 자자."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이었을 수도 있고. 뭐 설령 그렇지 않다한들, 내일 일어났을 때부터 뭔가 달라지거나 할 건 없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기사 내가 뭔가 변한건 아니잖아?
그렇게 잠이 들고 다음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다고 정말 오래간만에 아침부터 동생의 바디블로를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상당히 언짢은 상태로 잠이 깼지만, 그걸 제외하면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론 미라이는 내 반응이 심상치않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바로 쌩하니 학교로 달려가버려서 바로 보복을 가할 수는 없었다. 비겁한 녀석, 어떻게 무방비한 상대에게 온 체중을 실어서 공격을 해올수가 있는거냐. 아무 생각이 없었든, 거리낌이 없었든 간에 저 고약한 녀석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해봐야겠지.
하지만 그건 일단 늦었으니 학교 가는 길에 잠깐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아침을 먹을 시간도 녹록치 않았기에 그냥 하루 정도 거르기로 하고 그대로 집에서 나오니-
"푸우 쨔아아앙!!!"
퍼-억!
"크헉..."
"아, 아리사!!"
...사람 사이즈의 빨간 바퀴벌레에게 습격을 당해버렸다.
"사람 사이즈의 빨간 바퀴벌레라뇨?! 너무하잖아요 푸우 쨩-!!!!"
...상태가 메롱하니 그대로 입 밖으로 낸 모양이로군.
"그, 그건 내가 할..."
"괜찮은 거야?!"
...치하도 있었구나.
"좋은 아침, 치하. 넌 아냐, 아리."
"너, 너무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파서 쉬었던 사람한테 보자마자 바디블로를 날려버린 네가 더 너무해.
어찌되었든 둘의 부축을 받고 다시 일어나서, 함께 학교로 가게 되었다. 시간이야 부족해지지 않도록 밥도 거르고 나왔으니 아직은 여유롭다.
...지금 치하가 날리는 냉기에서, 아까까지 아리한테 주던 압박은 얼마나 손속을 두고 있던 건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리도 그 사실을 충분히 느낀 모양인지, 바로 말을 멈추고 뒤로 빠져 바카네와 치하의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키사라기 치하야야."
"응! 반가워!"
...나든, 아리든 치하랑 정말 꽤 오랫동안 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녀석, 기분 나쁠 때는 꽤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아리나 나도 도저히 말을 걸기 어려운. 정말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라서 우리도 얌전히 뒤로 빠져서 스스로 자연스레 기분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아, 그래서 아리가 치하의 눈치를 보는건가, 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언하겠다. 아리가 치하한테 뭔가 목줄? 같은게 잡힌 느낌이라서. 지금 이 정도로 냉기를 뿜어대는 키사라기 치하야는 굳이 따진다면 자연재해에 가까운 상태라 카운트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무튼 평상시의 치하에게도 눈치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 슬슬 기어오르는게 느껴지는 아리의 통제를 위해서라도 꼭 좀 캐내고 싶은 심정이다.
...어쨌든, 절친이라 자부는 어려울지라도 자칭할 수 있는 우리 둘도 주눅들게 만드는 치하에게,
"푸우 쨩이라고 불렀지?"
"응? 응. 푸우 쨩은 푸우 쨩이잖아?"
...노노하라 아카네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자약한 모습이다.
"푸우 쨩은 어제 학교도 안 나왔고... 내가 알기로, 그쪽이 우리랑 서로 안면 틀 일이 전혀 없는데."
왜 친한척이야, 라는 직접적인 시비만 고상하게 제외시켜주는 치하다. 물론 '안면튼다'라는 단어를 고른 시점에서 뭔진 몰라도 화가 단단히 나있는 건 명백했다.
"으음. 그게 말이지-"
점점 가늘어지는 치하의 시선을 받아내던 바카네의 대답은-
>>+3까지 다이스. 가장 높은 값으로 판정합니다.
1 ~ 80 : "어제 푸우 쨩이 산책하던 와중에 우연히 마주쳐서!" ...이상한 대답을 하는건가.
81 ~ 100 : "사실 같은 RED단 멤버라서!" ...이상한 곳의 동지라고 대답을 하는군.
교실로 들어섰을 때, HR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인지 내 뒷자리에 있어야 했을 키타카미가 아직 자리에 없었다. 뭐, 어찌되든 제 시간에 오긴 하는 녀석이니 따로 걱정할 건 없겠지. 애초에 내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있나?
치하와 아리도 각자 자기 자리로 가서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고...
생각해보니 어제 수업 빠진 것에 대해서 물어는 봐야할텐데. 역시 아리랑 치하한테 물어보는게 나을라나-하고 생각에 잠기려던 차에.
"푸우 쨩."
"아, 타나카."
분명 누가 보아도 타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반의 반장님이 언제 날 봤는지 다가와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
"...누가 키타카미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더 괜찮았을 것 같다만."
"괜찮아보이니 다행이네."
...이런. 반장님마저도 키타카미의 RED단처럼 굴기 시작한 모양인가. 이런이런, 하고 고개를 절로 가로저을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야? RED단처럼 굴다니."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고 드는거."
"...아하."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단번에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맞다.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하지만, 키타카미 양이 먼저 나한테 물어본거라서. 가능하면 내가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대신 가준다고 해서 말이지."
...그건 조금 의외인데.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봤어."
"...아니, 뭐..."
뭔가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지 좀 않아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치하나 아리한테 물어보지 않고 타나카한테 갔다니... 어째서?
"아, 좋은 아침~!"
"어서와, 키타카미 양."
...아주 칼같은 타이밍에 오시는구만.
"안녕, 푸우 쨩! 오늘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네이네이. 덕분에 말이죠."
쉰거든 뭐든, 다 네 지분이 심히 높으니.
이 칼같은 타이밍이라는 건, HR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기도 하다. 성실함으로 따지면 학교에서 아마 한손에 꼽힐 우리 담임, 바바 선생은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들어오거든. 그것 때문에 타나카는 '그럼 이만' 이라며 자리로 바로 돌아갔고. 키타카미도 뭐라 더 왈가왈부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이걸로 일상이 돌아왔다... 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자."
"...저기, 치하."
"아침도 못 먹었잖아? 반 먹어."
"아니..."
1교시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찾아와서 자기 몫의 칼로리 발란스를 절반을 뚝 떼어서 내주는 치하...에게 고맙기는 한데 말이지.
"포기하세요, 푸우 쨩. 치하야 쨩이 절대 양보 안하는 건 푸우 쨩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옆에서 말린답시고 저런 말을 입에 담는 마츠다 아리사가 더욱 약오르게 느껴지는건, 그냥 내가 심보가 나빠서 그런건가.
"자. 빨리 먹고, 설명해."
아니,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하는건데. 애초에 내가 왜 설명을 해야하는 거고?!
그리고 행여나 내가 어제 겪은 그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설명해봤자 믿기나 하겠냐고!
칼로리 발란스의 나머지 반쪽을 천천히 오물거리면서 시선은 절대 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치하가 무섭다. 아니, 이런 녀석인건 알지만, 오늘 따라 왜 이러는거야?!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1 ~ 80 : 어째선지 레이카가 난입합니다.
81 ~ 100 : 구원의 손길. 그런 건 없다.
아니...당연한 결과인가. 내 바로 뒷자리가 키타카미인 만큼, 내 자리에서 뭔가 이래저래 떠들고 있으면 바로 뒤에 있는 저 녀석이 관심을 가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전혀 생각을 하지 않던 내 잘못인 게 분명하다. 진즉 치하가 찾아올 걸 생각했으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전학생이라면 아카네 쨩 이야기야?"
칼같이 벽을 쳐버리는 치하는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키타카미였다.
뭐 그야 당연히 바카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니, 그런데 애초에 키타카미 녀석, 평소에는 내 자리에 누가 와서 떠들던 말던 별 관심 없더만,오늘은 왜 이러는 거지?
"아니..."
"RED단에 관련된 일이면 단장인 내가 나서야지. 그치?"
키타카미의 너스레에서 제대로 건수를 잡았다는 듯, 치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물론, 이 녀석을 잘 아는 나니까 겨우 알아볼 정도였지 주변에서 보면 여전히 무표정한 그대로.
"그러고보니 아까 타나카 씨 말도 그렇고. 어제 키타카미 씨가 찾아갔다면서?"
"응? 뭐, 그랬지."
시원스레, 혹은 시큰둥하게. 거리낌없이 대답하는 키타카미에게 치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말했다.
"노노하라 씨는 언제부터 RED단 단원이었어?"
"어라?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글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닌거 같은데?"
"...이번 주 중에 전학온 전학생이 대체 언제 그 정체도 모를 단체에 들어간걸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니, 이번엔 다르지. 그저께까지만 해도 그 RED단인가 하는 곳에 분명히 없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왜 푸우 쨩은 저 노노하라 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궁금해지네, 키타카미 씨."
"아카네 쨩을 아는게 왜? 무슨 문제라도 되는거야?"
...이쯤에서 서로 질문에 질문으로만 대답하는건 굉장히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대체 언제쯤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지. 푸우 쨩은 어제 아파서 학교도 쉬었는데, 그런 아픈 사람 찾아가서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키고 하는게 예의일까? 굉장히 민폐라고 생각되지 않아?"
"저기-"
이쯤되자 발끈한 키타카미가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차에-
"두 사람 다 이제 그만해."
"...반장."
-마침내 반으로 돌아온 타나카 코토하가 둘의 언쟁을 끝내주었다.
"어제 아파서 쉬었던 사람 앞에서 지금 둘 다 뭐하는 거야. 그리고 이제 곧 수업도 시작하는데, 계속할 거야?"
계속하고 싶으면 따로 나가던가, 라는 의도로 고개짓을 하는 타나카에게 치하와 키타카미는 뭐라 더 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키타카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치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는 걸로 상황 종료.
"...고마워요 코토하 쨩. 두 사람을 어떻게 말려야하나 싶었는데..."
"딱히 말린건 아냐. 다른 사람한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 뿐이지."
타나카도 그 말만 짦막히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아리와 나 사이에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딩-동-댕-동...
"...아. 그럼 아리사도 이만 가볼게요."
"어, 어어..."
수업 종소리 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나...
뭔가 내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이 귀찮게 꼬여만 가는 느낌이 들어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키타카미도, 치하도 그 충돌 이후 뭔가 특이사항을 보이진 않았다. 키타카미의 경우에는 뚱하니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종례까지 왔으며, 치하는 아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있었지만 굳이 추가적으로 키타카미와 더 충돌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내 자리 근처로는 오지 않았다. 반장인 타나카의 경고도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둘을 보러 가기도 그랬고... 뭔가 눈치가 보인단 말이지.
이렇게 갑갑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보니 공기만 들이마셔도 얹힐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어쨌든 하루가 끝난 것에 대해 내심 쾌재를 부를 수 밖에.
하지만 너무 속단하기엔 이른 모양이다.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휙 집어들고 성큼성큼 교실을 뛰쳐나가는 키타카미... 제일 뒷자리에서 뒷문으로 바로 나가다보니 항상 문을 나서는 뒷모습만 보게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소라면 '빨리 부실로 와!'라고 한마디 정도 던져놓고 갔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라...
...젠장.
평소라면 키타카미 녀석이 뭘 어쩌든지 말든지 별 신경도 안썼을텐데. 어제의 그... 바카네와 겪은 그 초자연적인 일 때문인지 굉장히, 굉장히 거슬린다고.
"저기, 푸우 쨩."
"...응?"
가방을 멍하니 챙기면서 빠진 상념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준건 바로 아리. 이 녀석도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구만...
어쨌든 답지않게 눈치를 봐가며, 마츠다 아리사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면 같이 노래방 갈래요...? 치하야 쨩도 같이 갈건데."
"...노래방..."
...별일이네. 치하가 노래방을 다 가고...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항상 갈 때마다 영 내켜하지 않아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가서 뭔가 소리라도 지르면 좀 기분이 나아질 지도 모르지. 또, 용케도 치하를 설득해낸 아리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론 같이간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미안."
'레이카 쨩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이 공간이 생기더라구.'
'...레이카 쨩한테 항상 주의해줘. 그... 레이카 쨩의 정신이 한동안 안정되어있었는데, 가끔씩 활성화를 띠면 이렇게 되는거야. 사실 오늘의 그것도 정말 오랜만에 있던 일이라서.'
어제 겪었던 그 쇼킹한 일들 때문에, 키타카미를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울 거 같다."
"...그런가요... 뭐, 알았어요. 아리사가 어떻게든 힘써볼테니까, 푸우 쨩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구요."
이런 와중에 나까지 배려해주려하는 아리의 착한 마음씨에 감사해야겠지. 치하는 어느샌가 자기 자리에 없었다. 귀가 밝은 녀석이니까, 내 반응을 듣고 바로 교실 밖으로 나간건지도 모른다.
"그럼, 컨디션 생각해서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돼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리는 손을 흔들어보이며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치하를 따라잡으려 하는 거겠지. 미안하다, 좀 부탁할게.
문예부 부실로 가는 동안, 사실 치하와 아리를 따라갔어야 하는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문득문득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서 따라간다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어쨌든 키타카미의 건을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놔야했다. 바카네 녀석과 그런 일을 겪고, 또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걸 다 듣고 느껴버린 이상 마냥 방관할 수는 없었으니까.
늘 그렇듯이 부실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미즈, 문예부원 마카베 미즈키가 있었고... 미즈와는 정 반대로 부실 가운데의 책상에, 하지만 끝자락 모서리 부근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상태로 앉아있어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해지게 만드는 자세의 치즈 언니.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원래는 다도부원이었을 니카이도 치즈루 선배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학교를 쉬기 전까지 보았던 RED단의 모습이었지만...
"오! 푸우 쨩, 어서와!"
부실 장식장의 물건들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던 고양이 같은 인상의 작은 소녀. 바카네... 노노하라 아카네가 부실로 들어서는 나를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팔을 붕붕 흔들어보이며 반겨주었다. 그 반응에 미즈와 치즈 언니도 각자 본인들 나름대로 나를 반겨주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눈을 마주친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자신의 본분인 독서 삼매경으로 돌아가는 미즈.
고개를 문쪽으로 휙 돌리고 눈에 띄게 밝아지는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치즈 언니. 물론, 그런 모습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저런 사람이 왜 여기에서 키타카미의 억지에 휘둘려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도 안가고,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지만...
...그렇지. 키타카미 녀석.
아마도 먼저 왔다면 부실 가운데에 있는 책상의 상석, 비어있는 자리에 놓여진 'RED단 단장석'이라 되어있는 저 명패 뒤에 앉아 도저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 방식으로 뭔가 사건을 터뜨릴 준비 만반이었을 이 정체불명의 단체 RED단의 단장인 키타카미 레이카는 지금 자리에 없었다.
...뭐지. 이 녀석, 항상 참석하라고 강요해놓더니만 정작 자기 자신은 말도 없이 빠지나. 대체 어디까지 제멋대로일 생각일까...하고 눈살을 찌푸리니-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바카네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항상 보이는 태도처럼 자신만만, 여유로워보이는 모습.
"아까 부실에 오는 길에 레이카 쨩이랑 마주쳤는데, 오늘은 활동 따로 안할거니까 다들 집에 일찍 돌아가도 좋다고 하고 갔어."
"ㄴ, 네에?!"
바카네의 말보다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라는 치즈 언니의 반응 쪽이 더 놀라웠다. 저 모습 자체도 엄청난 갭? 이 느껴져서 놀라웠지만...
...뭐지. 내가 오기 전까지 서로 말 한마디도 안 나눴던거야, 설마...?
그리고.
"...뭔가 묘하게 기뻐보이시네요."
그야 키타카미가 치즈 언니한테 했던 짓들을 생각한다면야, 안보이면 기뻐할만도 하겠지만... 아니, 그걸 생각하면 저 분은 당장 여기서 나와야 하는거 아냐...?
그런데 내가 한 지적에 뭔가 켕기는 것이라도 있었는지, 심히 부자연스럽게 우뚝 멈춰서는 치즈 언니...
"그, 아,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게... 원래라면 키타카미 씨가 어제 교사 분들께 안 잡혔으니까 오늘도 한번 더 홍보하러 나갈거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셔서, 오시기 전에 슬슬 갈아입어야 하나 걱정...아아아...!!"
...음.
내가 살다살다, 아리 녀석보다 더 화려하게 자폭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직은 그 비교 대상 보다야 더 기품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으시라고 나중에 슬쩍 전하도록 하자.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위안이 될지는 잘 모르겠군.
"음음. 치즈루 쨩은 도짓코구나?"
"아, 아니어요...!"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바카네에게 살짝 발끈한 듯 반응했지만, 그래도 다시 의기소침해지는 치즈 언니다.
...내가 자폭 스위치를 눌러버린 셈이 되었으니, 일단 화제를 돌려보도록 하자.
"그럼 뭐... 일단 다들 귀가하면 되겠네."
"뭐, 그렇지! 아카네 쨩은 아까 아르바이트 전화가 와서 슬슬 가봐야 하기도 했고 말야!"
늦지 않게 푸우 쨩이 와줘서 다행이었달까! 그렇게 덧붙이는 바카네 녀석...
"급한 일이었으면 적당히 미즈나 치즈 언니한테 전해두고 가도 되지 않았냐..."
"아, 사실은 전화가 꽤 길어져서, 중간에 따로 말할 여유가 없었엉!"
미안! 하고 반 장난으로 양손을 모아 합장하며 사과하는 바카네였지만, 뭐... 딱히 뭐라 할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런고로! 아카네 쨩은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늦지않게 돌아가라구~!"
안뇽~! 하고 인사를 툭 던지고 부실을 빠져나가는 바카네 녀석한테서... 묘하게 키타카미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는 건, 내 억측인가. 하지만 부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여유로워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복도에 울리는 발소리는 꽤나 템포가 빨라 보였는데... 어쩌면 저 녀석이 키가 작아서 보폭이 좁아서 그런 걸지도.
"...저어, 그럼... 저도 오늘은 먼저 가보겠사와요..."
뭔가...도저히 뭐라고 더 묘사하기가 미안해질 것 같은 상태의 치즈 언니는,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는 그대로 부실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생각해보니 후배들 사이에서 저렇게 이미지를... 아니다. 그만하자. 그게 치즈 언니에게 대한 배려일 거다.
"...크흠."
나 스스로도 조금 환기할 필요를 느껴서, 다른 두 사람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가는 와중에도 전혀 미동도 없이 책에 집중하고 있는 미즈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무슨 책이야?"
가벼운 질문에 책을 들어올려 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미즈. 양장본 책이라 뭔가 소설 같은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마술 관련 책인 모양이다.
"그렇구만..."
...새삼스럽게 내 대화스킬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저렇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을 해버리니 말문이 턱 막히고 만다.
"...음..."
>>다이스 타임. 다음 상황은?
1 ~ 33 : 푸우 쨩이 미즈가 언제쯤 책을 그만읽고 집에 돌아가나 궁금해져서 한번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34 ~ 66 : 푸우 쨩이 미즈에게 집에 안가냐고 물어봅니다.
67 ~ 99 : 미즈가 푸우 쨩에게 질문을...?
100 : "...도짓코, 해버렸다..."
갑자기 나온 이야기에 좀 얼빠지게 대꾸하고 말았다. 녀석의 차분하고 평이한 어조는 그대로였지만, 아니 그래서일까. 뭔가 저런 권유를 나... 아니, 누구한테도 할 것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분위기를 풍겨서 말이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미즈와 단 둘이 문예부실에 있던 적도...없었지?
어쨌든 계속 이 쪽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뭐라도 말은 해야했다.
"어...저기, 뭐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니, 할 이야기가 있으면 여기서 해도 되지 않나...? 때마침 치즈 언니도, 바카네도, 키타카미도 죄다 돌아가고 말이지.
하지만 이런 너스레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이는 미즈에게 당연하게도 부정당했다.
"...여기서는 못할 이야기라는 거야?"
끄덕.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덮는 미즈. 그리고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있다.
어제도 분명... 바카네가 이런 식으로 날 불러냈었지...?
"...그래, 좋아. 까짓거 가자고. 뭐, 오래 걸리진 않는거지?"
끄덕.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하고 갈 준비를 하는 미즈... 뭐, 난 애초에 여기 와서 뭔가 펼쳐놓거나 하진 않았으니 따로 준비할 건 없었다.
그렇게 문예부실을 정리하고, 미즈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지켜본 뒤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냥 쭉 미즈의 뒤를 따라갔다. 저 녀석이 애초에 말수가 극도로 적고... 시간 내달라고 했던거에 대해 오케이를 한 이상 내 맘대로 파토 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잖아. 딱히 그리 친절하다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누구처럼 그리 무례하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도저히 못할 짓이다.
전철도 타고, 쭉 미즈의 뒤를 따라간 끝에 우리는 전철 역에서 얼마 안 떨어진 분양 아파트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아파트 1층의 현관 입구에 있는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는 미즈. 녀석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미즈가 7층을 눌러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철 역에서 내릴때까지는 언제나처럼 등하교 하던 길과 동일했으니 따로 별 말은 안했는데, 여기까지 오자 도저히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어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어제는 어제 처음 본 전학생한테 끌려가서 택시를 타고 멀리 갔다오질 않나, 오늘은 자기말고 아무도 없다는 동급생의 집에 방문하질 않나...
...이거, 무슨 상황인건데, 대체...
어쨌든 내가 들어오길 계속 기다리고 있는 미즈였기에 별 수 없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앞으로 나서자, 당연하게도 뒤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그 소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어딘가에 와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내가 좀 예민한 거겠지...?
그렇게 치부하기엔 어제의 그 초현실적인 경험이 있었기에, 대충 스스로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자."
그렇게 말하고는 언제 신발을 벗었는지 먼저 앞장서서 들어가는 미즈. 조금이라도 찜찜한 기분을 털어보려 그제야 이 집을 좀 둘러보게 되었다. 저 안쪽 거실까지 가는 복도의 길이나 문들을 보면... 아마 3LDK...? 아마 그정도이지 않을까. 그럼 이 집은 꽤 비싼 가격일지도.
내심 감탄하며 거실로 따라 들어가니... 처음 문예부실에서도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이 방은 도저히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집의 거실이라면 TV나 쇼파, 장식장... 이것저것 방문한 사람에게 보여줄 것들이 있는 법인데. 그런건 커녕 카펫이나 커튼조차도 없이 그냥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살풍경한...
...방금 이사를 와서 짐을 다 못풀어가지고 대충 방에 이삿짐들이 쌓여있는 상태라고 보기도 어려운 느낌이다. 혹시나, 이삿짐을 푸는 걸 도와달라고 부른 걸수도 있을까.
"앉으세요."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생각해보니 여기 방석도 없는거냐...? 나한테 앉으라고 말한 뒤 미즈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해봤지만 뭔가... 아니 진짜로 어떻게 뭔가 깔을 생각도 없었던건가...? 새삼스레 바닥의 마룻바닥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대체 뭐 때문에 불러온건가... 제발 어제 겪은 것같은 일은 없길 바라며 잠시 기다리니 미즈가 주방에서 뭔가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쟁반에 얹혀져 있던건...
...당연하게도 찻잔과 주전자였다. 그리고 여전히 교복을 입은 채로 내 맞은편에 앉는 미즈.
"......"
"......"
그리고 그걸 끝으로, 가만히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 아니... 저기요. 저기...
...지적하고 싶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미즈의 초대로 여기 온거니까, 주인이, 주최자가 뭔가 하길 기다리는게 예의일 터이니 기다려보았지만...
...결국 저려오기 시작한 무릎 덕분에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며 내가 먼저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살짝 자세를 편히 바꾸면서 좀 가벼운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저기...식구들은...?"
"없어요."
...그야 그건 보면 알지. 아니, 애초에 네가 부르면서 아무도 없다고 굳이 강조했잖아.
"뭐, 외출이라도 하신거야?"
"처음부터 저 뿐이었어요."
...아.
"자취하는거야?"
"네."
...이런 비싼 아파트에, 고등학생 1학년 여자애가 혼자 산다고...? 집안에 돈이 많은가. 그리고 뭔가... 부러운 느낌이네. 물론 저런 경우는 뭔가 사정이 있으니 부럽다고 말하거나 하면 안될 거라는 정도는 눈치 없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무튼 그렇다는 건, 미즈의 가족들과 갑작스레 마주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건데."
"...아."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미즈는 주전자에 든 것을 잔에 따르고 앞에 내어놓았다. 아니, 뭔가 깨닫는게 너무 늦지 않냐...? 굳이 상관 없었으면 안 챙겨와도 되는 거였던 것 같은데.
"드세요."
"어...그래."
...마시긴 하겠지만, 그렇게 빤히 관찰하듯이 바라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야. 그리고 너도 좀 마시라고.
"어떠신가요...?"
"뭐, 맛있네."
사실 차에 대한 소양 같은건 전혀 없어서, 저 이상으로 뭔가 향이 어떻네 저떻네 하고 품평을 할 자신은 없다. 내 기억으로 다도부라고 했던 치즈 언니라면 좀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쓰지 않고 잘은 몰라도 향기로우면 맛있는게 맞겠지. 그렇게 한 잔을 다 마시고 자리에 내려놓자, 그와 동시에 다시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차를 채우는 미즈.
아니... 그, 뭔 술잔 채우듯이 그리 즉각적으로 채워줄 필요 없는데...
그래도 성의를 생각하면... 마셔야지. 그렇게 다시 찻잔을 들어 마시고 다시 비운 뒤 내려놓으니 또 반사적으로 주전자를 들-
"잠깐잠깐!"
-어 잔을 채우려는 걸 막았다.
막지 않고 그냥 냅뒀다간 쓸데없이 내 방광의 용량이 어느 정도가 될 지 테스트해보는 그런 시간을 가지게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지나가서. 굳이 처음 방문한 집에서 화장실을 쓰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말도 없이 무슨 물고문 당하듯이 차만 마시려고 온 게 아니잖아?!
"...크흠. 저기, 뭔가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거 아니었어? 날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를 좀 가르쳐줘."
그 말에 주전자를 다시 내려놓는 미즈. 아니... 일부러 그러는 건가? 왜 이렇게 말을 안하려는 느낌이지? 물론 RED단이 모여있을 때도 거의 말수가 없던 건 잘 알지만.
"...학교에서 못할 이야기란 게 대체 뭔데?"
"...가르쳐 드릴 게 있어서요."
"...가르쳐 줄 거?"
"저에 대해서. 그리고...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 대해서요."
>>+3까지 다이스.
1 ~ 80 : 여기서 굳이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를 꺼내진 말자. 푸우 쨩이 잠자코 들어줍니다.
81 ~ 100 : "...아. 어제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거야?" "......?"
...뭔가 어제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럴 때는 잠자코 듣는게 맞을 것 같다.
"...키타카미랑 네가 뭐?"
그래도 바람직한 청자의 자세로서, 말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
...그리고 여기서 나는 미즈 녀석과 만난 이래로 정말 처음 보는 표정을 보게 되었다. 난처해하기도, 주저하기도 하는 것 같은 표정. 살짝 실룩이는 입꼬리와 미간,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하는 것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별명... 지어달라고 할 때 정도를 제외하고 정말 표정 변화를 볼 수가 없었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까.
"...말로는 표현이 잘 안될지도 몰라요. 정보 전달에 분명 문제가 발생할거라 사료됩니다... 그래도, 들어줬으면 해요."
그렇게 말을 꺼낸 미즈는.
"...키타카미 레이카 씨와 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아. 뭐, 평범하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
"아뇨... 그러니까...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성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와 달리... 말 그대로 순수한 의미에서, 에요. 순수한 의미에서 저와 키타카미 씨는 푸우 쨩과 같은 대다수의 인간과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 통합 사념체에 의해 만들어진 대 유기생명체 접촉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 그게 접니다."
...뭐냐, 저 타이틀은.
"제 일은 키타카미 레이카 씨를 관찰하고 입수한 정보를 통합 사념체에 보고하는 것."
"......"
"태어난 뒤로 3년간 줄곧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 3년 동안은 특별한 불확실 요소가 없이 평온했지만... 최근 들어 무시할 수 없는 변칙 인자가 키타카미 씨 주위에 나타났습니다."
"......"
"그게 바로 당신이죠."
정보 통합 사념체... 그것은 전 우주적으로 퍼져있는 정보계의 바다에서 발생한 육체가 없는 초고도의 지성을 지닌 '정보 생명체'라는 존재란다.
처음부터 정보로서 태어났고, 정보를 모아 의식을 만들어냈으며,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진화해왔다고... 물질적인 실체가 없고 정보로서만 존재하니까 당연히 광학적인 수단으로 관측 불가.
우주 개벽과 거의 동시에 존재한 그것은 우주의 팽창과 함께 확대되어왔고... 정보계를 넓혀나가 거대하게 발전해왔다.
유기 생명체가 발생하는 행성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존재해왔기에 태양계고 뭐고 그 어떤 행성이건 별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었는데... 태양계의 제 3행성. 그 행성에서 발생해 진화한 2족 보행 동물에게 지성이라 불릴 수 있는 사색 능력이 싹트게 되어 그 생명체가 거주중인 행성의 중요도가 올라가게 되었다고.
"...정보의 집적과 전달 속도에 절대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유기 생명체에게 지성이 발현한다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었으니까요."
마카베 미즈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통합 사념체는 지구에 발생한 인류라 분류되는 생명체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빠져있는 자율 진화의 정체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발생 단계부터 완전한 존재였던 정보 생명체와는 달리 인류는 불완전한 유기 생명체에서 출발했으면서도 급속도로 자율 진화를 이루어갔다. 보유하는 정보량을 증대시켰고, 또한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며 가공하고 축적했다.
우주에 편재하는 유기 생명체에 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아주 흔한 현상이었지만, 고도의 지능을 가지게 되기까지 진화한 예는 지구 인류가 유일했다. 정보 통합 사념체는 주의 깊게... 또한 면밀하게 인류의 관측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3년전... 행성 표면에서 다른 것들과는 다른 이상한 정보 플레어를 관측했습니다. 그 한 지역에서 분출한 정보 폭발은 순식간에 행성 전체를 뒤덮었고, 행성 외공간으로까지 확산되었죠.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키타카미 레이카였습니다."
원인도, 효과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정보 생명체인 그들도 그 정보를 분석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의미를 구성하지 않는 단순한 정크 정보로만 보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유기 생명의 제약상, 한정된 정보 밖에 다룰 수 없어야 하는 지구 인류의 한 개체에 불과한 키타카미 레이카에게서 정보의 격류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키타카미 레이카에게서 생겨난 정보의 격류는 그 뒤로도 간헐적으로 계속 되었고... 또한 완벽하게 불규칙한 흐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키타카미 레이카는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 3년간 모든 각도에서 저 개체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정체에 대해 명확히 내릴 수 있는 정의는 없었다. 하지만 정보 통합 사념체의 일부는 그녀야말로 인류, 나아가서는 정보 생명체인 자신들에게 자율 진화에 대한 단서를 줄 존재라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 생명체인 그들은 유기 생명체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언어가 없으니까요. 인간은 말을 제외하면 개념을 전달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죠. 그래서 정보 통합 사념체가 저와 같은 인간형 인터페이스를 만든 겁니다. 저를 통해 인간과 접촉하는 거죠."
...마침내 미즈 녀석이 자신의 찻잔에 입을 댔다. 저걸 다 말하고 나서야 마시는 것에서 경의를 표한다.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겐 자율 진화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녀에겐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주위의 환경 정보를 조작하는 힘이 있을거라 사료되니까요. 그게 제가 여기에 온 이유고... 푸우 쨩이 여기 있는 이유고요."
"...저기,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
"네."
"...지금 네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
"그냥 믿어주세요."
진지하네...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단순한 단말기, 대 인간용 유기 인터페이스에 불과합니다. 통합 사념체의 사고를 완전히 전달하는 건 제가 가진 처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해서요. 이해해달라구."
...아니, 뭐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이지.
"...왜 난데."
이거, 바카네한테도 했던 이야기다. 그러네. 전혀 뭔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 중에서도 어쨌든 나라는 공통분모는 있는 셈이다.
"네가 그 통합체? 인지 뭔지의 인터페이스라는 걸 믿는다쳐도... 나한테 왜 정체를 밝히는거야? 대체 왜?"
"푸우 쨩이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게 선택되어서 입니다. 키타카미 씨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의사를 절대적인 정보로 변환해서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푸우 쨩이 선택 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에요."
"없어."
"있습니다. 아마...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에게 있어 열쇠와 같은 존재일거에요. 두 사람이 모든 가능성을 쥐고 있는거죠."
...이쪽에서는 나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졌네.
"진심이냐..."
"네."
...잠시. 생각을 좀 해보자...
만약, 내가... 바카네한테 먼저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 미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뭔 이런 별종이 다 있지, 하고 치부하고 대충 자리를 박차 돌아갔을텐데.
이게 명백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차마 그렇게 막나갈 수가 없다. 정말 바보같고 웃기는데... 하. 정말.
"...저기. 그런 이야기라면... 키타카미한테 직접 말하는게 더 좋지 않겠냐. 그 녀석이라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보다야 훨씬 더 좋아할텐데. 그리고 난 이런 이야기는 도저히 못따라가겠고... 미안하다."
"통합 사념체의 의식의 대부분은 키타카미 레이카가 자신의 존재 가치와 능력을 자각하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을 살펴야 할 때죠."
"...내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키타카미한테 전달한다면?"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냐고.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한테 말한다 한들, 그 정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그건 사실이겠구만.
"정보 통합체가 지구에 심어둔 인터페이스는 저 하나가 아닙니다. 통합 사념체의 의식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여 정보의 변동을 관측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하니까요.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에게 있어 열쇠로 인식 된 이상, 위기가 닥친다면 누구보다 먼저 푸우 쨩에게 닥칠겁니다."
...하.
"...시간이 늦었네. 그만 실례하마. 차는 맛있었어."
"...네."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미즈는 따로 붙잡지 않았다. 뭔가 그때 느껴진 분위기는 뭔가 쓸쓸해보였는데... 내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어딜 갔다왔길래 늦었냐는 어머니와 동생의 추궁에 적당히 건성으로 대답해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방금 전까지 들은 마카베 미즈키의 그 기나긴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마카베 미즈키... 미즈는, 인류가 아닌 지구 외 생명체...라는 말이 되겠네. 간단히 말하면 우주인.
"...초능력자에, 우주인..."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소거법으로 따진다면... 바카네의 말이 맞다면 치즈 언니가 미래인이 되는데...
"...젠장."
...아니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지금 미즈가 한 행동은, 그 바카네가 자기 말을 믿게 만들려고 연극을 시킨걸지도 모를 일이다. 미즈가 뭔가 증거를 내밀기라도 했나?
...지금 내가 겪어본 증거로 채택해 볼 수 있는건... 바카네와의 그 체험 뿐이니. 그 외의 사람들이 뭐라 말을 하던...내가 그걸 어떻게 믿겠어. 증거 없잖아!!
물론 치하나 아리랑 메일을 자주 주고받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치하가 기계 다루는 거에 심히 버거워하는 녀석이라는 것도 한몫하긴 했어도... 뭐, 그런 고로 메일이라는 매체는 별로 자주 활용하는 쪽이 아니긴 한데 말야. 어쨌든 왔으니 확인은 하도록 하자. 몰랐으면 몰라도, 온 걸 아는데 냅두는 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고.
"...뭐, 별 내용은 없네."
[푸우 쨩, 집에는 잘 들어갔엉?]
...제목도 없이 딸랑하니 저런 내용만 보낼거면 굳이 보낼 필요가 있나 싶긴하다. 하긴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의 메일이야 흔하긴 할테지.
'그래, 잘 들어갔다. 너도 잘 쉬어라.'
적당히 답장을 작성해 보내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냥 그렇게 몇 분간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다 다시 몸을 일으켰는데,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책상위에 얹어진 두툼한 소설책. 그 때 미즈가 빌려준 거였지, 저거?
"...하."
어쩌면 혼자뿐인 아파트에서 SF소설만 읽다가 엉뚱한 망상에 사로잡힌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걸로 퉁쳐버릴 수 없게 만든 인물의 메일을 방금 읽어버렸으니 원.
"...일단 책은 내일 돌려줄까..."
...아니, 돌려주기 전에... 잠깐 조금이라도 읽어보기라도 하자. 그게 빌려준 사람에 대한 성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소설 책의 표지를 넘기는데...
"......이런."
이 두꺼운 소설 책에 끼워져있던 책갈피. 그 책갈피에 쓰여있는 내용에 나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저녁 7시, 역 앞에서.'
...날짜가 없는 이 책갈피에 적힌 약속 시간은 도대체...뭐냐고. 아니, 뭔데 대체. 아니...
...마카베 미즈키라는 녀석은 설마, 나한테 이 소설 책을 빌려준 그 날부터... 내가 나타날 때까지 매일 저녁 7시에 역 앞에서 기다렸었던거냐...?!
...더럽게 심란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고 해야 뭔가 앞뒤가 맞지 않겠느냐, 라고 하겠지만. 정말 웃기게도 잠이 들기까지는 참 오래 걸린 것 같은데, 중간에 잠을 설치기는 커녕 아주 푹 잘만 잤다. 비웃어도 좋다. 별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체질상 숙면에 잘 드는 걸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런 거라는 거다.
하지만 아침에 그렇게 숙면 끝에 상쾌하게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온통 주변에 신경쓰이는 일들이 가득하니 그 상쾌함이 다시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학교... 가긴 가야지."
별 이유도 없이 결석하는 건 말이 안되니까. 오늘은 뭔가 기다릴 사람도 없을 테고, 약속해둔것도 없으니 그냥 일어난 김에 바로 일찍 출발하기로 생각하고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 학교로 향했다.
"...에, 푸우 쨩. 설마하니 되도 않는 다이어트 시작이야...?"
...겨우 하루 이틀 아침을 거른다고 악의 가득한 농담을 입에 담는 동생을 한대 살짝 쥐어 박아주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전철을 타고 내리고, 짜증스러운 언덕길을 올라가 반에 도착했을 때는 내 나름대로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반의 절반 정도는 이미 가방이 놓여져 있는 걸 보고, 아침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적당히 교과서를 들춰보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동아리에 간 애들은 돌아오고 시간에 맞게 느즈막히 오는 애들도 차차 들어오기 시작했고... 치하와 아리도 도착해서 간단히 손을 흔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
뭔가 전혀 말 없이 부루퉁해보이는 키타카미가, 항상 도착하던 HR 시작 5분 전에 당연하다는 듯 반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걸로 반의 모두가 제시간에 맞게 등교를 완료했다.
"여어."
"응, 안녕."
짧게 대꾸하는 걸로 책상에 엎드리고 창 밖을 내다보는 키타카미. 아니... 이 녀석 왜 더 저기압이냐...? 어제 그리 휙 나가버린 이후로 뭐 기분 전환 같은거 전혀 안한거냐고...?
찜찜한 기분에, 뭔가 말이라도 더 붙여보려 했지만 때마침 반에 들어온 바바 선생 덕분에 몸을 칠판 쪽으로 다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맞는거야...?
>>+1 다이스.
1 ~ 33 : 치하가 오전 쉬는시간에 말을 걸어옵니다.
34 ~ 66 : 치하가 점심시간 중에 말을 걸어옵니다.
67 ~ 99 : 치하가 종례가 끝나고 말을 걸어옵니다.
100 : @자유앵커
오늘은 내 고교생활 중 최초로, 점심시간에 교실이나 학생 식당을 이용하지 않게 된 날이 되고야 말았다. 어디냐고?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있겠는가.
"......"
점심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미즈가 있는... 문예부실이지.
"여어... 저기, 여기서 잠시 실례해도 되냐...?"
매점에서 사온 야키소바 빵 하나를 들고와서 멋쩍게 하는 소리였지만, 미즈는 늘상 그래왔듯 변함없는 표정으로 흔쾌히-사실 흔쾌히인지도 잘 모르겠다-허락했다.
...왜 교실이나 학생식당이 아닌 여길 선택했냐고...? 설명하자면 조금 길...진 않다.
"...하아..."
키타카미, 바카네, 미즈... 여기에 부루퉁해보이는 치하까지 해서 주변이 온통 신경쓰여서 계속 골머리를 싸매며 수업에도 집중 못하고 쉬는 시간에도 대체 뭐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여느때처럼 평온한 관계로 돌아갈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기, 푸우 쨩."
"으헤에엑?!"
...반 정도 멍을 때리면서 치하 녀석 기분이 좀 풀렸으려나, 아리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그래도 뭔가 말을 걸어서 달래야하나, 근데 그러기엔 바로 뒤에 있는 키타카미의 시선이 너무 냉엄하게 느껴진다...등등.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옆에 온지도 인지 못하고 있던 치하가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말이지.
"......"
말을 걸 때까지만 해도 치하의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아니, 장담하지만 엄청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의 온화함을 듬뿍 담은 그 차분한 목소리였던 것을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랬을텐데...
"...어, 저기..."
"그래. 미안해."
싸늘하게 그렇게 말하고 바로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걸 보면 내가 어떻게 되겠냐...
그래서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심도 교실을 벗어나 다른 곳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갈 곳은 RED단이 점거 중인 문예부실 뿐이었고 말이지.
"......"
그 결과 이렇게 점심을 잊은 듯 책에만 집중하고 있는 미즈와 마주 앉아 혼자서 빵을 먹고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어제 그렇게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 해놓고도 지금은 나한테 뭔가 먼저 말을 걸거나 하는 것도 없고. 내가 말을 걸어도 다 단답형으로 짧게 끊어 대답해버려서 도저히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아, 그렇지. 어이, 미즈."
"네."
마침 생각난 거나 물어봐야겠군.
"...너, 빌려준 책에 끼워둔 그 책갈피는... 무슨 의미냐?"
...설마하니 책 빌려준 순간부터 매일 그 시간마다 역에서 기다린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제는 별 의미 없는 거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너 그게 설마 제대로 된 대답이라 생각하냐."
그 이상의 대답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저 말에서, 어제 나랑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의미가 있었다는 소리가 되는 거란 추론이 가능했고... 그 말인 즉슨, 빌려준 날부터 쭉 기다렸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무슨 무식한 방식이냐고 대체.
아무튼...
>>다이스 타임
1 ~ 25 : 푸우 쨩이 분명 점심을 안먹은 게 분명해보이는 미즈에게 빵을 반으로 잘라 나누어줍니다.
26 ~ 50 : 치즈 언니가 문예부실로 찾아옵니다. 이 시간엔 어쩐 일로...?
51 ~ 75 : 키타카미가 뭔가 커다란 종이백을 들고 문예부실로 들어옵니다. 저건 또 뭐냐...
76 ~ 100 : 바카네가 언제나처럼 히죽히죽 웃으면서 문예부실로 들어옵니다. 넌 왜 지금 이 시간에 오냐...
다음 연재시까지 던져진 다이스 중, 위 보기의 범위 내에 들어가있는 앵커 내용은 전부 진행합니다.
방금 전과는 정 반대로, 부실 문과 부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완전히 갖다버린 듯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대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이해도 가지 않는 '백설탕'을 구호로 하며 문예부실로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단체 RED단의 단장, 키타카미 레이카가 오전 중에 봤던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상쾌하고 밝은 얼굴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응! 푸우 쨩, 미즈키 쨩, 치즈루 쨩. 전부 다 있었구나!"
"...바카네도 RED 단원이라고 네가 소개하지 않았냐."
"아, 맞다. 아카네 쨩도 있지 참!"
......아니, 네가 영입했으면 적어도 네가 기억해주라고.
"그, 안녕하시와요..."
"마침 잘됐어! 아카네 쨩이 없는건 살짝 아쉽지만,그래도 거의 다 모여있는 셈이니까. 지금 바로 보여줄게!"
"...뭘 보여줘...?"
...그러고보니... 저녀석, 뭔가 또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다. 저거, 아침에는 못봤는데...? 아니, 저런 사이즈의 쇼핑백, 들고왔으면 분명 눈에 뜨였다고. 내가 설령 눈이 옹이구멍이더라도 저정도 부피면 분명 못봤을리가 없다. 분명.
"...너 그건 어디서 가져왔냐?"
"잠깐 나갔다왔어!"
......아하.
그러니까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사라져버린건, 이 쇼핑백들을 어딘가에서 공수해오기 위함이었다, 이 말이냐?
"......아니 근데 점심시간 시작된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
...잠깐.
"...너 분명 4교시 중간에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양호실 가보겠다고 나갔던거-"
"자, 일단 이거 봐봐!"
어이, 말 끊지마.
물론 내 항의는 가볍게 묵살되고, 키타카미는 문예부실 한가운데의 책상에 쇼핑백 내부의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냐, 이 팔랑팔랑한건."
"메이드복이야."
"아니...그건 여기 있는 누가 봐도 다 아니까. 이게 무슨 복장인지 물어보는게 아니야."
"그럼?"
"......이걸 왜 가져왔냐고 물어보는거다."
"쓸거니까?"
아니,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지마!
"괜찮지, 치즈루 쨩?"
...? 어이, 잠깐. 왜 치즈 언니를 바라보면서 말하냐?
"확실히, 바니걸을 입혀보니까 치즈루 쨩한테는 잘 안 어울리는 거 같았거든! 그래서 치즈루 쨩한테 이렇게 정숙하고 이쁜 의상이 좋을거같아서 특별히 준비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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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여보이는 바카네에게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짓고 있는 저 고양이같은 표정은 참으로 이야기하는 내내 변함없이 한결같았지만, 저 확신에 찬 시선이. 화가 날 정도로 이질 적이게 차분하고 어른스러움을 풍기는 그것이 나를 더욱 동요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녀석의 이야기를 잠자코 곱씹어보게 되었고. 저 녀석이 제시해 놓은 이야기의 안에서라도 재고해봐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
아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게 있다.
"...바카네."
"응."
"...일단 하나만 먼저 물어보자."
"얼마든지!"
...또 천연덕스럽게 하이 톤인 것이, 내가 지금 하려는 질문이 참으로 바보같이 느껴지게 만들지만.
"...네가 전학을 갑작스레 올 계획이 없다고 하고, 그 뒤에. '다른 두 사람이 키타카미 레이카와 이리 간단하고 빠르게 결탁하게 되었다'라고 했지?"
"어... 그렇지?"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만... 그 두 사람이란게 대체 누구냐?"
...설마하니 예상이 가지만. 아니, 날 놀리려고 하는 소리라면 분명 그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겠지.
노노하라 아카네는-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1 ~ 50 : 그야 치즈루 쨩이랑 미즈키 쨩이겠지?
51 ~ 100 : 알면서 물어보는건 그렇지 않아?
"그야 당연히 치즈루 쨩이랑 미즈키 쨩이겠지?"
-어깨를 으쓱여보이며 당연하지 않냐는 투로 대답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봐서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은 했다만.
"...아니... 그 두 사람이?"
좀 소심해서 그렇지 기품이 넘치고 착한 선배하고, 말없이 책 좋아하는 평범한 문예부원이?
"푸우 쨩. 아까 레이카 쨩이 뭐라고 했더라~?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를 찾아내서 같이 논다고 그랬지?"
...대답은 따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카네는 그 침묵도 충분한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푸우 쨩. 푸우 쨩이 우주인이거나, 미래에서 온 사람은 아니지? 아니, 뭐. 스스로 자각도 못하고 뭔가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거나 그런건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아카네 쨩은 초능력이 생겼을 때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실히 스스로 알 수 있었고... 아카네 쨩의 다른 유쾌한 동료들도 다들 똑같았어."
"......"
"그리고... 아까는 다 말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아카네 쨩과 동료들 모두. 이 힘이 '키타카미 레이카'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누가 알려준게 아니라, 생겨난 순간부터 그냥 그렇게. 느낀것도 아냐. 그냥 힘이 생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알 수 있었어."
"......"
"그래서 아카네 쨩은 확신할 수 있어. 레이카 쨩이 바라서 우주인도, 미래에서 온 사람도 지금 RED단에 있어. 왜냐하면 초능력자인 아카네 쨩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까."
사실일지, 아닐지 모를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에 내가 꺼낼수 있던 질문은...
"...그럼-"
>>+3까지 투표. 도착 전에 할 마지막 질문입니다.
1. ...RED단원들이 다들 뭔가 있다면 나는 뭐야?
2. 누가 우주인이고 누가 미래인이야..?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응? 푸우 쨩?"
"그래. 네 말대로 다들 뭐 신이라던지, 우주인이라던지, 미래에서 왔다던지, 초능력자라던지..."
...정말 진짜로 그렇다면.
"나는 뭔데."
대체 나는 왜 있는거냐?
이렇게 내가 물어본다면 넌 뭐라고 대답할거냐. 자아, 대답해라. 자칭 초능력자 소녀.
지금까지보다도 더 강하게 녀석을 쏘아보며 압박해보았지만,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시선을 운전석 쪽으로 돌렸다. 아니, 정확히는 룸미러일까.
"다 왔습니다."
"...아, 다 왔구나. 기사 아저씨! 아마 아카네 쨩들, 한 30분 정도 뒤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지. 잠깐만 주변좀 돌아다니면서 쉬어줄 수 있을까?"
...도착했나. 택시 기사는 흔쾌히 승낙하였고, 바카네는 차 문을 열고 보도로 내려섰다.
"자, 일단 내리자구 푸우 쨩.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말야."
녀석의 뒤를 따라 택시에서 내리니 번화가 한가운데였다. 높은 빌딩들 사이사이에 작은 건물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상점가. 그 곳에서 노노하라 아카네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 번잡한 곳으로 골라 들어가고 있었는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잘 밀쳐지지 않고 용케도 인파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길게 얘기는 못하지만 말이지?"
어떻게, 인파를 헤치고 나와서 시내 한가운데... 보통은 이렇게 전철역과 제일 높은 빌딩이 있는 교차로 즈음을 시내라 하겠지. 내가 사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시내 한가운데의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게 되어서야, 노노하라 아카네는 내가 차 안에서 던진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 중간에 대답할 틈이 없긴 했지만.
"푸우 쨩은 정진정명한 일반인이야. '기관'에서 조사해본 결과로는, 분명 그러니까, 걱정할거 없어."
"...그러니까 그런 일반인이 왜 이런 집단 한가운데에 있냐는 거다."
"음... 그건 아카네 쨩들도 잘 모르는 거라서 대답을 못하겠어. 사실 푸우 쨩이 가장 미스테리하다면 미스테리할 수도 있단 말이지?"
내가?
"...뭐, 이해 안된다는건 이해는 가지만 말야. 자아, 아무튼 지금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어깨를 으쓱여보이던 바카네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일단 여기까지 데려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뭐하긴 한데. 지금이라면 아직 되돌릴 수 있어."
"...이제와서 뭘."
퉁명스럽게 대답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때마침 바뀌는 신호등의 신호.
"...자, 그럼 가볼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간다.
"어이, 뭐하는거야 갑자기."
"자, 일-단...음...됐다."
떨떠름해하는 내 반응 같은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를 질질 끌고가던 바카네는 갑자기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멈춰섰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눈 좀 감아줄래? 금방 끝날거야. 몇 초면 된다구."
"...여기서? 무슨 비틀즈 앨범 재킷이야?"
녀석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주변엔 온통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신호등의 파란 신호는 점멸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알았어.
순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소리에 예민해진다. 점점 빨라지는 발소리들, 횡단보도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 웅성거리는 목소리들, 신호등의 점멸음, 시내에서 흔히 들릴법한 옥외 광고의 소리. 그 속에서, 바카네는 내 손을 붙잡고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러고는 다시 멈춰섰다.
"자, 이제 됐어."
나는 눈을 떴다.
정확히는 '풍경의 형태'만.
"뭐...야?!"
시야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 눈이 잘못되어서 그런가, 싶어 눈을 다시 양손으로 세차게 부벼보고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잿빛으로 물든 세계는 변함이 없었다.
단순히 잿빛으로만 물든거라면 내가 안과를 가봐야겠다고만 생각했겠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분명, 늦은 시간이라 어둡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내 번화가라서 사방에 켜진 간판과 가로등, 신호등... 온갖 곳에서 뿜어지는 빛으로 인해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온통 환했었는데. 구름도 많지 않은 날이라 어둡지 않았을 터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암회색 구름으로 온통 뒤덮여있었다.
...아니, 구름이 맞긴 한걸까. 구름이라면 분명 저 사이에 구름의 윤곽선이 보여야 할 터인데. 그 윤곽을 보여주는 끊긴 선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 암회색으로 된 천장이 씌워진 느낌. 저 회색하늘에서 비추는 흐릿하고 약한 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이런 변화에 아연해져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 횡단보도를 건나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바카네와 나, 우리를 제외한 그 어떠한 사람의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횡단보도의 신호만 계속 껌벅이다 이내 빨간 신호로 바뀌었고, 그와 동시에 차도의 신호도 파란 신호로 바뀌었다. 하지만 출발하는 차조차도 단 한 대도 없었다. 이질적인 광경. 무언가, 강하게 압박해오는 것만 같은 압도적인 정적.
"차원 단층의 틈이란 곳이야."
명랑하게,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노노하라 아카네의 목소리.
"아카네 쨩이랑 푸우 쨩이 사는 세계랑은 다른, 그 세계하고는 단절되어있는 '폐쇄 공간'이라고나 할까?"
녀석은 다시 돌아서며 손을 뻗어보였다. 허공에 팬터마임이라도 하는 양 무언가를 만지는 제스처.
"자, 지금 아카네 쨩이 만지고 있는 여기. 이 횡단보도 한가운데 지점이 이 폐쇄 공간의 '벽'이야. 한번 만져봐."
멍하니 녀석을 따라 손을 뻗어보니, 확실히 허공에서 무언가 차갑고 거대한 젤리 같은게 앞에 있는 느낌이다. 탄력이 있어서 살짝 들어가지긴 했지만, 수 센치정도 들어가자 손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반경은... 조금 오차가 있지만 대략 5km정도일까? 뭔가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해. 아카네 쨩이 가진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공간에 침입하는 거야."
방금까지의 광경에서 사람만 사라진 느낌의 이질적인 공간.
"...여긴 어디야, 도대체."
아니, 뭐냐고 물어야하나. 뭐라고 물어야하지?
"자, 좀 더 가야하니까 걸어가면서 설명할까?"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바카네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카네 쨩들이 사는 세계랑은 아주 조금 틀어져 있는 곳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라고 해야할까? 아까 전의 그 횡단보도에서 차원 단층이 발생해서 그 틈으로 들어온 거야. 지금 이 시간에도 저 바깥에서는 무엇 하나 변한 거 없이 똑같은 일상이 흘러가고 있을거야."
다시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가며, 아까 인파를 헤쳐나갈때와 전혀 다를바 없이 흔들림없이 걸어가며.
"일반인이 여기에 들어오게 되는 일은...음. 거의 없지."
노노하라 아카네는 언제나처럼 평이한 어조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양은... 돔. 돔 형태라고 봐. 적당히, 밥그릇을 뒤집어놓은 듯한 모양. 여기는 그 안쪽이야."
사무실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바카네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 안도 인기척은 커녕 먼지조차 없다.
"폐쇄 공간은 정말 완벽하게 불규칙적으로 발생해. 하루 걸러 나타날 때도, 몇 달이나 아무 기미가 없을 때도 있고. 아, 한 가지 확실한게 있긴해."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복도에서부터 계단까지 불빛이 거의 없어, 바카네의 붉은 머리카락만 보고 간신히 쫓아가고 있다.
"레이카 쨩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이 공간이 생기더라구."
그렇게 4층...을 넘어 옥상까지. 올라간 끝에,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갔다.
"아카네 쨩은 이런 폐쇄 공간의 출현을 탐지할 수 있어. 아카네 쨩의 동료들도. 어떻게 그걸 아는가?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이유고 뭐고 몰라도, 출몰하는 장소랑 시간을 알게 돼.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는 방법까지도. 설명하라해도, 더 자세하게 말로 설명은 못하겠고."
이 회색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바람조차도 불지 않나.
"...그래서 이걸 보여주려고 날 일부러 여기로 데리고 온거야? 아무도 없잖아."
"아니. 핵심은 이제부터랄까. 곧 시작될 거야."
...이젠 좀 그만 빼고 어서 말해봐. 하지만 이 녀석은 내 표정을 못본척할 모양이다.
"아카네 쨩의 능력은, 폐쇄 공간을 탐지하고 들어오는게 전부는 아냐. 그래... 말하자면, 레이카 쨩의 이성을 반영한 능력이 있다고나 할까? 이 세계가 레이카 쨩의 정신에 생겨난 여드름 같은거라서. 아카네 쨩은 그 여드름에 바르는 치료약인거구."
"...그러니까 그놈의 비유좀 그만하고 알기 쉽게 말하라고."
슬슬 알아먹기 힘들어.
"뭐, 그런 소리 자주 들어. 그치만 어쩌겠어, 아카네 쨩이 워낙 똑똑하고 퍼펙트한 미소녀라서 그런걸."
그렇게 너스레를 떨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살짝 몸을 떨며 다시 헛기침을 한다.
"...그나저나, 푸우 쨩도 참 굉장한걸? 엄청난 담력이야. 이런 광경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니."
>>+3까지 다이스 체크.
가장 낮은값으로 진행합니다.
100 : ...?????????
60 ~ 99 : 뭐 딱히.
20 ~ 59 : ...놀라고 경악할 여지도 안주고 끌고 다녔잖아.
4 ~ 19 : 정말 내가 안 떠는걸로 보여...?
1 ~ 3 :
너무 낮으면 패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내가 떨지 않는걸로 보여?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가족들에게든, 치햐나 아리든 늘상 들어왔던 말이 바로 뭐 숨기는 걸 전혀 못한다, 표정에 바로 드러난다...였는데.
어두워서 그런걸까, 아니면 바카네가 둔감한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니구나. 오히려, 너무 놀라서 어떻게 정리가 안되는 모양이네."
어느 샌가 다가온 바카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두운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 조금 의외였지만, 지금은 의외다 어떻다 말할 상태가 아니었다.
"뭐어, 금방 끝날거니까, 조금만 참으라구. 슬슬 시작 할거거든?"
뭘?
"저 뒤쪽이야."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멀리 서 있는 고층 건물들 사이로 파랗게 빛나는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무..."
무슨, 이라는 간단한 단어조차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형체가 사람의 모습이라 일단 거인이라 하긴 했지만, 사이즈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마도 30층 정도일 빌딩보다 머리 하나정도, 물론 그 거인 기준으로, 그정도는 더 높아보이는 크기. 그 거대한 몸뚱이 전체가 뭔가 발광물질로 덮인거마냥...아니. 내부에서부터 빛을 발하는 느낌이니 발광물질은 아닌가. 어쨌든 사람의 형체인 것, 빛을 발하는 것. 이외에는 선명한 느낌이 아니었다. 윤곽도 흐릿했고, 얼굴이 있으리라 추측되는 부분에는 눈, 코, 입...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저런걸 보고 몽달귀신이라고 하던가.
"...저게 뭐야...?!"
가까스로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대답해준 건 바카네가 아닌, 저 거인 스스로였다.
아니, 이게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인은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 팔을 천천히 들더니, 거리낌없이 휘둘러버렸다. 그 결과, 옆에 있던 건물은 옥상에서부터 반 정도 높이까지 박살나기 시작했다. 단 한방에. 물론 거인은 그 한 방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아연하게 보며, 바카네의 해설이 이어졌다.
"레이카 쨩이 뭔가 짜증이 나면 저런게 구체화되서 나타나는 모양이양.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저렇게 주위를 부수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려나...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 세계에서 난동을 부리고 했다간 안되겠지? 그랬다간... 어마어마한 대형참사가 날테니 말야. 그래서 이렇게 폐쇄 공간을 만들어서 파괴 행동을 하는거야. 어때, 정말 이성적이지 않아?"
바카네... 노노하라 아카네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인지 아까 학교에서 커피를 마실 때 마냥 평온한 어조였다.
파란 빛의 거인이 쉼없이 팔을 휘둘러가며 건물들을 붕괴시켜갔고, 붕괴한 건물의 잔해를 짓밟으며 거인이 발을 내디뎠는데... 신기하게도 건물이 짓밟히는 둔탁한 소리는 들려도, 저 거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 정도로 거대한 사이즈가 되면 말이지. 물리적으로는 자기 무게에 눌려서 서지도 못한다구? 푸우 쨩도 알지? 괴수물은 죄다 거짓말인거."
몰라. 관심없어.
"야박하네에... 아무튼. 저 거인은 지금 중력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 양 마음껏 돌아다니고... 건물을 부수는걸 보면 질량이 있어야 운동량이 생겨서 충격을 주고 부수고 할 거 아냐? 그런데 그 어떠한 물리적인 이치로는 저거한테 통용되지 않는다? 설령 군대가 오더라도 저건 못막을거라구."
"...그럼 저건 계속 난동만 부리는거야? 그렇게 냅둬도 되는거고?"
"아니아니. 이 아카네 쨩이 있는건 바로 그거 때문이라구! 잠깐만 보고 있어?"
바카네가 손가락 하나를 뻗어 거인에게 향했는데, 그 손끝을 따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만해도 없었던 빨간 점 같은게 몇 개. 거인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고층 건물만한 크기의 푸른 거인과 비교하면 정말 깨알만한 크기. 하나, 둘... 정확히는 몰라도 서너개? 거리도 거리고,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정확한 갯수를 셀 수가 없었다. 저 빨간 점들은 거인의 주위를 행성을 도는 위성처럼 빙빙 돌면서...
"저 점들... 저 거인을 막고 있는거야?"
"정답! 아카네 쨩의 동료들이야! 아카네 쨩이랑 마찬가지로, 레이카 쨩한테서 힘을 받아 거인을 사냥하는거지."
빨간 점들이 묵묵히 거리를 파괴하는 파란 거인이 휘두르는 두 팔을 피해가며 궤도를 틀어 거인의 몸에 돌격했다. 거인의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빨간 구체들. 하지만 저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뚫고 지나가도 그대로 무시하고 거인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저기, 사냥한다는데... 저게 효과가 있는거야?"
"으음. 역시 아카네 쨩도 나서야겠네. 여기 얌전히 있으라구?"
그 말과 함께 바카네의 몸에서 붉은 빛이 스며나왔다. 노노하라 아카네를 광원으로 하듯 서서히 스며나오던 붉은 빛은, 이내 바카네를 전부 집어 삼키고는... 저 멀리 보이는 붉은 빛의 덩어리처럼 커다란 빛의 구슬만을 남겼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있어...?!
이윽고 둥실, 하고 공중으로 떠오른 빨간 구체는 내게 인사라도 하듯 두세번 좌우로 흔들리더니 잔상조차 남지 않을 빠른 속도로 거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변신한 바카네까지 포함된 빨간 빛의 무리는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인에게 몸통박치기를 연신 시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냥 통과할 뿐 아무런 효과도 없어보였다. 도저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광경에 그냥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빨간 구슬 가운데 하나가 거인의 파란 팔꿈치 부군에 달라붙어 그대로 팔을 따라 한바퀴를 돌았다.
"...어!"
천천히 거인의 한쪽 팔이 팔꿈치에서 절단되더니, 주인을 잃은 거대한 팔이 지면으로 낙하하는가 싶더니만... 그 팔에서 뿜어지던 파란 빛은 이내 두께를 잃으며 햇살을 받은 눈결정처럼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팔이 잘린? 사라진 부위에서 천천히 흘러내리는 듯한 푸른 연기는... 저 거인의 피라고 할 수 있을까. 환상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법한 광경이군.
빨간 구슬들은 그걸 계기로 돌진 공격에서 베기 공격으로 방향을 선회한듯, 일제히 거인의 몸에 달라붙으며 푸른색으로 빛나는 몸뚱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얼굴에, 어깨에, 복부-로 추측되는 부분별로 붉은 선들이 차례차례 그어지면서 잘린 부분들이 스르륵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상체가 점차 기괴한 조각으로 바뀌어갔다. 절단된 부위들은 아까의 팔처럼 소멸되었고.
몸의 반 이상을 잃은 것과 동시에, 푸른 빛의 거인은 붕괴해서 푸른 빛무리만 남긴채 사라져버렸고 그 뒤에 남은 것은 거인이 부숴놓은 빌딩의 폐허더미 뿐이었다.
"바카네...?"
빛이 점차 약해지더니, 아까의 역과정처럼 다시 뿅, 하고 튀어나온 노노하라 아카네는 아까 낮에 처음 봤을 때 마냥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오래 기다렸엉?"
숨도 헐떡이지 않는구만.
"다 끝났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거양~"
그러면서 손을 쭉 뻗어 위를... 그러니까 하늘을 가리킨다. 여기에 또 뭐가 있는거냐. 조금 질린다는 느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암회색으로 물든 천장과도 같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초에 거인을 발견했던 지점의 부근. 그 상공에 균열이 가있었다. 아주 작은 실금 같던 균열은 차례로 거미집 모양으로 성장해가면서-
"저 파란 괴물이 소멸되면 그와 동시에 폐쇄 공간도 소멸하게 된다구. 좀 스펙터클하지?"
바카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균열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꼭 거대한 금속 체를 뒤집어쓴 느낌으로. 망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균열로 온통 새까만 포물선으로 바뀐후,
쩌억.
소리는 나지않았지만, 그렇게 유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을 뇌리에서 느꼈다. 저 천장의 한 부분을 통해 들어온 밝은 빛이 순식간에 원 모양으로 퍼져갔다.
점차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리듯 퍼져나가는 밝은 빛과 함께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이 고막을 때려서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으음, 돌아왔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그런 느낌으로 중얼거리는 바카네를 보니... 이 소음이 원래 일상의 소음이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아까까지 있던 세계가 무음의 세계였기에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찬찬히 귀에서 손을 떼고 주변을 확인하니,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세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아까까지 있던 무너진 고층빌딩의 잔해도, 잿빛 하늘도, 하늘을 나는 빨간 빛도. 그런 이질적인 것이 전부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차와 사람들로 가득찬 도로와, 밝게 빛나는 달과 건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까지.
"음. 그래서, 이젠 이해가 돼?"
아니, 전혀. 진심으로 대답했다.
건물에서 내려와 도로로 나오니 거짓말처럼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저 파란 괴물을 보고 아카네 쨩의 동료들은 '신인(神人)'이라고 불러. 아무튼 저 신인은 아까 말한대로 레이카 쨩의 정신적인 상태랑 연동하고 있어. 그리고 아카네 쨩들도 마찬가지야. 저 폐쇄 공간이 생기고 '신인'이 태어날 때에만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거야. 오로지 딱, 저 폐쇄공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힘. 지금의 아카네 쨩에겐 아무런 힘도 없다니까."
등받이에 기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왜 아카네 쨩한테, 다른 동료들한테 이런 힘이 주어진건지는 알 수 없지만... 뭐어, 아마 어느 누구라도 상관 없었을거야. 복권 당첨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걸? 지극히 낮은 확률이라도 누군가는 당첨이 되는 거처럼. 우연히 아카네 쨩에게 화살이 날아온 거뿐이라구~"
너무 퍼펙트한 미소녀라서 그런걸까~ 업보겠지? 그런 흰소리를 덧붙이며 웃어보이는 바카네였지만,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신인'의 활동을 방치해둘 수는 없어. 저 녀석의 파괴활동이 계속되면 폐쇄 공간이 점점 더 커지거든. 방금 본 그 공간은 아주 작은 규모인거라구? 내버려두면 일본 전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덮어버릴거고... 그렇게 되면 그 회색 공간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랑 뒤바뀌어버릴거야. 그럼 그걸로 끝."
...마침내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런건 어떻게 알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그냥 알게 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 '기관'에 소속된 사람은 모두 그렇다구.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키타카미 레이카와 그녀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식과 기묘한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야. 그 폐쇄 공간을 방치하면 어찌될지도. 알게 된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카네 쨩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분명히 세계가 붕괴해버릴테니까."
정말 곤란하다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바카네와 나는 창 밖에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집 앞에 도착해서 내가 내릴 때가 되어서,
"...레이카 쨩한테 항상 주의해줘. 그... 레이카 쨩의 정신이 한동안 안정되어있었는데, 가끔씩 활성화를 띠면 이렇게 되는거야. 사실 오늘의 그것도 정말 오랜만에 있던 일이라서."
>>+3까지 다이스 체크.
체크 값은 90입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신기하게도 부모님께 왜 늦었는지에 대해 추궁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내가 되물어보니 바카네가 전화를 걸었고 언제쯤 돌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예의바르게 다 했었다고 그러시더라. 목소리는 미라이 또래마냥 귀여운 애가 똑부러지게 말 잘했다고 그런 기특한 애랑 언제 친구가 되었니...
솔직한 심정으로 어머니의 그 칭찬 들을 듣고있는 내 입장에서는 노노하라 아카네가 가진 그 놈의 초능력이라는게 사실 저 화술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스멀스멀 올라올 지경이었으니 말은 다했지.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딱히 뭐라 반박할 것도 없었고, 방금 전까지 겪은 일로 인해 상당히 피곤했기에 적당히 티가 나지 않도록 맞장구를 쳐드리고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양말만 대충 벗어던지고 침대에 푹 엎어졌다. 옷을 갈아입고 자시고, 그런 거 따위...
"...초능력자..."
스스로를 초능력자라고 소개하는, 그리고 도저히 내가 아는 물리적, 과학적인 것으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게 해준 노노하라 아카네.
...머리가 아프다.
키타카미가 고등학교 첫 날 자기소개 때부터 했던 그 말.
'평범한 사람에겐 관심 없어요!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그 말이 설마하니 진짜로 이뤄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진짜로 초능력자가 키타카미를 찾아왔다. 뭔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류의 초능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초능력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녀석이, 진짜로.
그리고 노노하라 아카네는, 키타카미 레이카, 마카베 미즈키, 니카이도 치즈루... 이 셋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랬다.
...그냥 내가 아파서 헛것을 보고 온거고, 바카네 녀석이 나한테 무언가 사기를 치고 사이비 종교 같은 곳에 권유를 하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면. 그런 거라면 그래도 내가 알던 상식 선에서 어떻게 이해라도 될 것만 같은데.
"...아니, 다른 사람은 다 때려치고..."
...아까까지 내가 느꼈던 그 모든게. 내가 정말 미쳐서 이 방에서 단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서야, 노노하라 아카네가 그놈의 초능력자니 뭐니 그런 것의 관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대로 가면 내가 이렇게 맛이 가있는 상황의 당사자가 될거라고. 애초에, 고교생활조차도 적당히 방관자로서 지내고 싶었던 나였는데 왜 이런 상황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건데?
한 때는 물론 나도 초능력자 같은게 나오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아니, 있었겠지? 아무튼 그런 생각은 누구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정말로 정작 그런 캐릭터가 된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곤란하네 진짜..."
왜 이런 일에 휘말려야만 하는 것일까. 방금 겪은 일은 차라리 키타카미가 성희롱을 하고, 바니걸을 입히는 게 나았을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여전히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았지만...
"...잠깐, 이건 아닌거 같긴한데."
그래. 저건 저거대로 아웃이다. 관계 없잖아.
그렇게 확 깨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던 분위기가 조금 트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도, 나는 내일 학교를 가야만 했다. 바바 선생과 약속도 했고 말이지.
"...그만하고 자자."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이었을 수도 있고. 뭐 설령 그렇지 않다한들, 내일 일어났을 때부터 뭔가 달라지거나 할 건 없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기사 내가 뭔가 변한건 아니잖아?
물론 미라이는 내 반응이 심상치않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바로 쌩하니 학교로 달려가버려서 바로 보복을 가할 수는 없었다. 비겁한 녀석, 어떻게 무방비한 상대에게 온 체중을 실어서 공격을 해올수가 있는거냐. 아무 생각이 없었든, 거리낌이 없었든 간에 저 고약한 녀석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해봐야겠지.
하지만 그건 일단 늦었으니 학교 가는 길에 잠깐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아침을 먹을 시간도 녹록치 않았기에 그냥 하루 정도 거르기로 하고 그대로 집에서 나오니-
"푸우 쨔아아앙!!!"
퍼-억!
"크헉..."
"아, 아리사!!"
...사람 사이즈의 빨간 바퀴벌레에게 습격을 당해버렸다.
"사람 사이즈의 빨간 바퀴벌레라뇨?! 너무하잖아요 푸우 쨩-!!!!"
...상태가 메롱하니 그대로 입 밖으로 낸 모양이로군.
"그, 그건 내가 할..."
"괜찮은 거야?!"
...치하도 있었구나.
"좋은 아침, 치하. 넌 아냐, 아리."
"너, 너무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파서 쉬었던 사람한테 보자마자 바디블로를 날려버린 네가 더 너무해.
어찌되었든 둘의 부축을 받고 다시 일어나서, 함께 학교로 가게 되었다. 시간이야 부족해지지 않도록 밥도 거르고 나왔으니 아직은 여유롭다.
"...그래서, 아침부터 어쩐 일들이야...?"
>>+3까지 다이스.
1 ~ 50 : 아리사
51 ~ 100 : 치하야
그 말에 반응한 건 역시나 아리였다.
"푸우 쨔아아앙...! 미안해요! 멋대로 사진 찍어버리고...! 아리사는, 푸우 쨩이 얼마나 싫어할지 생각도 못했어요...!"
...뭐야. 별 거 아니네.
"...그거 때문에 아침부터 바디블로를 해온거냐."
"그거 때문이라뇨...! 어제부터 쭈욱 답장도 없는데, 아리사가 한 잘못이 있어서 전화도 못하겠어서...!"
그렇게 옆에 달라붙어서 울먹이는 아리가 난처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치하를 바라보니,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절히 응징해줘."
"치하야 쨩?! 아, 아뇨! 응징해주세요! 아리사는 혼나도 싼 아이에요!!"
"대체 언제부터 그런 취미가 생긴건데."
난 널 그런 아이로 키운적 없단 말이다, 개미.
"아니 잠시만요, 딱히 그런 쪽 취향같은 소리는 아리사가 한적이 없... 어라? 지금 은근슬쩍 뉘앙스가 바뀌었던거 같-"
"-아무튼, 됐으니까. 지금 분위기를 보면 치하가 다 확인해서 네가 찍은 파일은 싹다 날려버렸을테니, 더 추궁하지 않을게."
그렇게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리의 반응을 확인한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흠칫 놀라거나, 시선을 조금이라도 돌리거나 하면 치하의 손을 용케 빠져나가 남겨둔 그 저주스러운 사진이 있을게 분명하다.
"그럼요 물론이죠!! 치하야 쨩이 어제 밤 늦게까지 아리사한테 들러붙어서 몇백ㅂ-"
"거기까지."
치하의 말에 위협을 느낀 건지 싹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면, 대체 이 천방지축을 어떻게 길들여놓은건지가 참 궁금할 따름이다.
"...비법이 뭐야?"
"비밀."
...아리 녀석한테 물어보아도 당연히 답은 안나올테니, 얌전히 학교로 가도록 하자.
>>+3까지 다음상황을 제시해주세요. 단, 등장인물은 현재까지 이 창댓에 나온 인물들로만 제한합니다.
아리사는 이미 넘어갔다!
"왜 그래?"
아니 뭐... 고작 하루 쉬었다가 학교를 가는 것일 뿐인데, 뭔가 기운이 쫙쫙 빨려나가고 학교를 급격하게 가기 싫어지는 느낌, 이랄까.
"하하하... 푸우 쨩,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반응이라구요. 학생이라면 누구..."
"누구 뭐? 왜 말을 하다 마는거냐, 아리."
"그, 아, 아니에요! 아하하!"
...그러고보니 뭔가 난리를 피우면서 텐션을 올리던 녀석이 답지않게 눈치를 보고 있으니 더 가라앉는 느낌이었던건가.
"...그러니까 너무 눈치주지마, 치하."
"...뭐, 알았어."
치하의 마지못한 대답에 아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단순히 인간 상성 같은 걸 벗어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ㅁ, 뭔가요, 푸우 쨩. 그 뜨뜻미지근한 시선은..."
"대체 무슨 약점을 잡힌거야?"
"...아리사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어쨌든 입을 꾹 다물어서 냉기를 풀풀 풍기던 치하가 표정을 풀어준 덕분에 한결 가벼운 등교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가벼운건 내 뱃속이고, 교문으로 올라가는 짜증스러운 경사길을 걸어올라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기운이 부족해서 무거울 수 밖에 없었지만.
아침을 굶고 나온 만큼 편의점이라도 들렸다가 갔어야하나,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샘솟던 등산로 중간에서.
"야-호! 푸우 쨩!!"
"...낙석이군."
...이 심란한 상태를 만드는데에 크게 기여해준 녀석 중 하나가 나타났다.
"좋은 아침!"
"...저기, 푸우 쨩? 이 애는 또 누구야? 못보던 얼굴인데..."
등산이나 다를바 없는 등교길 중간에 끼어든 불청객이 불쾌했는지, 아니면 페이스 배분에 실패해서 그런지 찌푸린 얼굴의 치하가 말했고,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초능력자가 먼저 대답했다.
"만나서 반가워! 노노하라 아카네라고 해! 요번주에 전학왔어!"
"...아, 아아! 그러고보니, 국제반 쪽에 전학을 왔다는 그-!"
...뭔가 정보나 가십 같은걸 보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마츠다 아리사 답게, 바로 눈을 빛내며 바카네 녀석에게 다가갔고...
"......"
"저기, 치하?"
>>+1 다이스 판정.
1 ~ 50 : 바빠서 먼저 가보겠다며 치하가 먼저 학교로 들어가버립니다.
51 ~ 100 : 어제 학교도 안나왔는데 얘랑은 어떻게 친해졌냐며 치하가 추궁합니다.
"마츠다 아리사에요! 만나서 반ㄱ-"
"-잠깐만."
...지금 치하가 날리는 냉기에서, 아까까지 아리한테 주던 압박은 얼마나 손속을 두고 있던 건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리도 그 사실을 충분히 느낀 모양인지, 바로 말을 멈추고 뒤로 빠져 바카네와 치하의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키사라기 치하야야."
"응! 반가워!"
...나든, 아리든 치하랑 정말 꽤 오랫동안 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녀석, 기분 나쁠 때는 꽤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아리나 나도 도저히 말을 걸기 어려운. 정말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라서 우리도 얌전히 뒤로 빠져서 스스로 자연스레 기분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아, 그래서 아리가 치하의 눈치를 보는건가, 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언하겠다. 아리가 치하한테 뭔가 목줄? 같은게 잡힌 느낌이라서. 지금 이 정도로 냉기를 뿜어대는 키사라기 치하야는 굳이 따진다면 자연재해에 가까운 상태라 카운트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무튼 평상시의 치하에게도 눈치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 슬슬 기어오르는게 느껴지는 아리의 통제를 위해서라도 꼭 좀 캐내고 싶은 심정이다.
...어쨌든, 절친이라 자부는 어려울지라도 자칭할 수 있는 우리 둘도 주눅들게 만드는 치하에게,
"푸우 쨩이라고 불렀지?"
"응? 응. 푸우 쨩은 푸우 쨩이잖아?"
...노노하라 아카네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자약한 모습이다.
"푸우 쨩은 어제 학교도 안 나왔고... 내가 알기로, 그쪽이 우리랑 서로 안면 틀 일이 전혀 없는데."
왜 친한척이야, 라는 직접적인 시비만 고상하게 제외시켜주는 치하다. 물론 '안면튼다'라는 단어를 고른 시점에서 뭔진 몰라도 화가 단단히 나있는 건 명백했다.
"으음. 그게 말이지-"
점점 가늘어지는 치하의 시선을 받아내던 바카네의 대답은-
>>+3까지 다이스. 가장 높은 값으로 판정합니다.
1 ~ 80 : "어제 푸우 쨩이 산책하던 와중에 우연히 마주쳐서!" ...이상한 대답을 하는건가.
81 ~ 100 : "사실 같은 RED단 멤버라서!" ...이상한 곳의 동지라고 대답을 하는군.
하지
"사실은 말이지, 아카네 쨩도 RED단의 단원이라서 말이야!"
어제 레이카 쨩이 소개해줬어! 라고 덧붙이며 시선을 흘려내는 바카네.
"...그래?"
저 잠깐의 침묵에서 과연 키사라기 치하야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했는지는 당연히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하아."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이 이상으로 대치를 이어갈 생각은 없어진 모양이다.
"알았어. 괜히 초면에 날카롭게 굴어서 미안."
"에? 아니아니, 딱히 사과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저기, 아직 여유는 있지만 슬슬 시선이 몰리고 있으니 교실로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싶은 찰나, 아리가 확실하게 끝맺기 위해 그렇게 말을 꺼냈고.
"자, 그럼 슬슬 들어가자. 노노하라도 그만 들어가고."
"그랭! 그럼 방과후에 보자구, 푸우 쨩!"
그렇게 어떻게든 바카네를 먼저 보내고 나니...
"...키타카미 씨네 그거, 생각보다 사람이 잘 모이는구나?"
어이 없음, 살짝 지침, 아주 약간의 감탄이 섞인 뭔가 오묘한 어조로 말하는 치하.
"그러게."
"저기, 푸우 쨩도 그 중 하나인데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건 역시 좀 여러모로 이상하지 않을ㄲ-아팟!"
...시끄러. 나도 이해가 안간다고. 바카네 녀석... 이상한 단체의 동지라고 말해놓으면 뒷감당은 내가 어떻게 하라는 거냐.
...생각해보면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같진 않긴한데. 음.
"...아무튼, 설명은. 차근차근, 듣도록 해볼까?"
점심까지 시간은 많으니까, 라고 웃으며 덧붙이는 치하가 무섭다.
>>+3까지 다음전개 자유앵커. 등장인물은 지금까지 나온 인물들로 한정합니다.
치하와 아리도 각자 자기 자리로 가서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고...
생각해보니 어제 수업 빠진 것에 대해서 물어는 봐야할텐데. 역시 아리랑 치하한테 물어보는게 나을라나-하고 생각에 잠기려던 차에.
"푸우 쨩."
"아, 타나카."
분명 누가 보아도 타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반의 반장님이 언제 날 봤는지 다가와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
"...누가 키타카미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더 괜찮았을 것 같다만."
"괜찮아보이니 다행이네."
...이런. 반장님마저도 키타카미의 RED단처럼 굴기 시작한 모양인가. 이런이런, 하고 고개를 절로 가로저을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야? RED단처럼 굴다니."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고 드는거."
"...아하."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단번에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맞다.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하지만, 키타카미 양이 먼저 나한테 물어본거라서. 가능하면 내가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대신 가준다고 해서 말이지."
...그건 조금 의외인데.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봤어."
"...아니, 뭐..."
뭔가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지 좀 않아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치하나 아리한테 물어보지 않고 타나카한테 갔다니... 어째서?
"아, 좋은 아침~!"
"어서와, 키타카미 양."
...아주 칼같은 타이밍에 오시는구만.
"안녕, 푸우 쨩! 오늘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네이네이. 덕분에 말이죠."
쉰거든 뭐든, 다 네 지분이 심히 높으니.
이 칼같은 타이밍이라는 건, HR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기도 하다. 성실함으로 따지면 학교에서 아마 한손에 꼽힐 우리 담임, 바바 선생은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들어오거든. 그것 때문에 타나카는 '그럼 이만' 이라며 자리로 바로 돌아갔고. 키타카미도 뭐라 더 왈가왈부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이걸로 일상이 돌아왔다... 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자."
"...저기, 치하."
"아침도 못 먹었잖아? 반 먹어."
"아니..."
1교시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찾아와서 자기 몫의 칼로리 발란스를 절반을 뚝 떼어서 내주는 치하...에게 고맙기는 한데 말이지.
"포기하세요, 푸우 쨩. 치하야 쨩이 절대 양보 안하는 건 푸우 쨩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옆에서 말린답시고 저런 말을 입에 담는 마츠다 아리사가 더욱 약오르게 느껴지는건, 그냥 내가 심보가 나빠서 그런건가.
"자. 빨리 먹고, 설명해."
아니,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하는건데. 애초에 내가 왜 설명을 해야하는 거고?!
그리고 행여나 내가 어제 겪은 그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설명해봤자 믿기나 하겠냐고!
칼로리 발란스의 나머지 반쪽을 천천히 오물거리면서 시선은 절대 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치하가 무섭다. 아니, 이런 녀석인건 알지만, 오늘 따라 왜 이러는거야?!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1 ~ 80 : 어째선지 레이카가 난입합니다.
81 ~ 100 : 구원의 손길. 그런 건 없다.
쨩
~~~~
마냥 손에 들고만 있긴 그러니, 대충 한입 사이즈 정도인 그 도막을 한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손에 묻은 가루를 살살 털어내는데,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치하가 바로 치고 들어왔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처음 보는 전학생이 아침부터 아는 척을 한 거야?"
...좀 누가 분위기를 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뜩이나 퍽퍽한 칼로리 발란스를 입에 집어넣어서 그런가 입이 바짝바짝 말라들어간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좀 같이 마셨으면 좋을텐데.
생각보다 구원의 손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저기, 아침부터 무슨 일?"
"아, 키타카미 씨랑은 별 관계 없는 일이니까 신경 꺼도 좋아."
...정정한다. 구원은 아닌 것 같고, 산 넘어 산인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싱글벙글한 얼굴의 키타카미 레이카가 중간에 끼어들어왔다.
평소처럼 수업시간이 끝나자 마자 어딘가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적당히 졸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멀쩡해보이는 모습이다.
아니...당연한 결과인가. 내 바로 뒷자리가 키타카미인 만큼, 내 자리에서 뭔가 이래저래 떠들고 있으면 바로 뒤에 있는 저 녀석이 관심을 가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전혀 생각을 하지 않던 내 잘못인 게 분명하다. 진즉 치하가 찾아올 걸 생각했으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전학생이라면 아카네 쨩 이야기야?"
칼같이 벽을 쳐버리는 치하는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키타카미였다.
뭐 그야 당연히 바카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니, 그런데 애초에 키타카미 녀석, 평소에는 내 자리에 누가 와서 떠들던 말던 별 관심 없더만,오늘은 왜 이러는 거지?
"아니..."
"RED단에 관련된 일이면 단장인 내가 나서야지. 그치?"
키타카미의 너스레에서 제대로 건수를 잡았다는 듯, 치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물론, 이 녀석을 잘 아는 나니까 겨우 알아볼 정도였지 주변에서 보면 여전히 무표정한 그대로.
"그러고보니 아까 타나카 씨 말도 그렇고. 어제 키타카미 씨가 찾아갔다면서?"
"응? 뭐, 그랬지."
시원스레, 혹은 시큰둥하게. 거리낌없이 대답하는 키타카미에게 치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말했다.
"노노하라 씨는 언제부터 RED단 단원이었어?"
"어라?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글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닌거 같은데?"
......
"아리사. 혹시 노노하라 아카네 씨가 대충 언제쯤 전학왔는지 기억해?"
"에, 엣? 잠시만요...에, 그러니까... 이번주 중...일걸요...?"
...뭔가 느낌이 안좋은데.
"...이번 주 중에 전학온 전학생이 대체 언제 그 정체도 모를 단체에 들어간걸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니, 이번엔 다르지. 그저께까지만 해도 그 RED단인가 하는 곳에 분명히 없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왜 푸우 쨩은 저 노노하라 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궁금해지네, 키타카미 씨."
"아카네 쨩을 아는게 왜? 무슨 문제라도 되는거야?"
...이쯤에서 서로 질문에 질문으로만 대답하는건 굉장히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대체 언제쯤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지. 푸우 쨩은 어제 아파서 학교도 쉬었는데, 그런 아픈 사람 찾아가서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키고 하는게 예의일까? 굉장히 민폐라고 생각되지 않아?"
"저기-"
이쯤되자 발끈한 키타카미가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차에-
"두 사람 다 이제 그만해."
"...반장."
-마침내 반으로 돌아온 타나카 코토하가 둘의 언쟁을 끝내주었다.
"어제 아파서 쉬었던 사람 앞에서 지금 둘 다 뭐하는 거야. 그리고 이제 곧 수업도 시작하는데, 계속할 거야?"
계속하고 싶으면 따로 나가던가, 라는 의도로 고개짓을 하는 타나카에게 치하와 키타카미는 뭐라 더 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키타카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치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는 걸로 상황 종료.
"...고마워요 코토하 쨩. 두 사람을 어떻게 말려야하나 싶었는데..."
"딱히 말린건 아냐. 다른 사람한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 뿐이지."
타나카도 그 말만 짦막히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아리와 나 사이에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흘렀다.
딩-동-댕-동...
"...아. 그럼 아리사도 이만 가볼게요."
"어, 어어..."
수업 종소리 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나...
뭔가 내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이 귀찮게 꼬여만 가는 느낌이 들어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다음 연재시까지, 다음 전개 자유앵커.
단, 등장인물은 언제나 그랬듯 지금까지 나온 아이돌들로 한정합니다.
타나카의 구령과 함께 인사를 마치자 절로 다시 한숨이 가슴 깊숙히서부터 올라왔다.
"...하아...."
하루 왼종일 한숨만 쉰 것 같지만, 또 다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키타카미도, 치하도 그 충돌 이후 뭔가 특이사항을 보이진 않았다. 키타카미의 경우에는 뚱하니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종례까지 왔으며, 치하는 아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있었지만 굳이 추가적으로 키타카미와 더 충돌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내 자리 근처로는 오지 않았다. 반장인 타나카의 경고도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둘을 보러 가기도 그랬고... 뭔가 눈치가 보인단 말이지.
이렇게 갑갑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보니 공기만 들이마셔도 얹힐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어쨌든 하루가 끝난 것에 대해 내심 쾌재를 부를 수 밖에.
하지만 너무 속단하기엔 이른 모양이다.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휙 집어들고 성큼성큼 교실을 뛰쳐나가는 키타카미... 제일 뒷자리에서 뒷문으로 바로 나가다보니 항상 문을 나서는 뒷모습만 보게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소라면 '빨리 부실로 와!'라고 한마디 정도 던져놓고 갔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라...
...젠장.
평소라면 키타카미 녀석이 뭘 어쩌든지 말든지 별 신경도 안썼을텐데. 어제의 그... 바카네와 겪은 그 초자연적인 일 때문인지 굉장히, 굉장히 거슬린다고.
"저기, 푸우 쨩."
"...응?"
가방을 멍하니 챙기면서 빠진 상념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준건 바로 아리. 이 녀석도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구만...
어쨌든 답지않게 눈치를 봐가며, 마츠다 아리사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면 같이 노래방 갈래요...? 치하야 쨩도 같이 갈건데."
"...노래방..."
...별일이네. 치하가 노래방을 다 가고...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항상 갈 때마다 영 내켜하지 않아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가서 뭔가 소리라도 지르면 좀 기분이 나아질 지도 모르지. 또, 용케도 치하를 설득해낸 아리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론 같이간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미안."
'레이카 쨩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이 공간이 생기더라구.'
'...레이카 쨩한테 항상 주의해줘. 그... 레이카 쨩의 정신이 한동안 안정되어있었는데, 가끔씩 활성화를 띠면 이렇게 되는거야. 사실 오늘의 그것도 정말 오랜만에 있던 일이라서.'
어제 겪었던 그 쇼킹한 일들 때문에, 키타카미를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울 거 같다."
"...그런가요... 뭐, 알았어요. 아리사가 어떻게든 힘써볼테니까, 푸우 쨩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구요."
이런 와중에 나까지 배려해주려하는 아리의 착한 마음씨에 감사해야겠지. 치하는 어느샌가 자기 자리에 없었다. 귀가 밝은 녀석이니까, 내 반응을 듣고 바로 교실 밖으로 나간건지도 모른다.
"그럼, 컨디션 생각해서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돼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리는 손을 흔들어보이며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치하를 따라잡으려 하는 거겠지. 미안하다, 좀 부탁할게.
"...그럼."
...일단 부실로 가볼까.
그렇게 도착한 문예부 부실에는...
>>+3까지 다이스&컴마 체크
각각 바카네와 치즈 언니의 위치를 체크합니다.
체크 값은 80입니다.
늘 그렇듯이 부실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미즈, 문예부원 마카베 미즈키가 있었고... 미즈와는 정 반대로 부실 가운데의 책상에, 하지만 끝자락 모서리 부근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상태로 앉아있어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해지게 만드는 자세의 치즈 언니.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원래는 다도부원이었을 니카이도 치즈루 선배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학교를 쉬기 전까지 보았던 RED단의 모습이었지만...
"오! 푸우 쨩, 어서와!"
부실 장식장의 물건들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던 고양이 같은 인상의 작은 소녀. 바카네... 노노하라 아카네가 부실로 들어서는 나를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팔을 붕붕 흔들어보이며 반겨주었다. 그 반응에 미즈와 치즈 언니도 각자 본인들 나름대로 나를 반겨주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눈을 마주친 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자신의 본분인 독서 삼매경으로 돌아가는 미즈.
고개를 문쪽으로 휙 돌리고 눈에 띄게 밝아지는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치즈 언니. 물론, 그런 모습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저런 사람이 왜 여기에서 키타카미의 억지에 휘둘려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도 안가고,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지만...
...그렇지. 키타카미 녀석.
아마도 먼저 왔다면 부실 가운데에 있는 책상의 상석, 비어있는 자리에 놓여진 'RED단 단장석'이라 되어있는 저 명패 뒤에 앉아 도저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 방식으로 뭔가 사건을 터뜨릴 준비 만반이었을 이 정체불명의 단체 RED단의 단장인 키타카미 레이카는 지금 자리에 없었다.
...뭐지. 이 녀석, 항상 참석하라고 강요해놓더니만 정작 자기 자신은 말도 없이 빠지나. 대체 어디까지 제멋대로일 생각일까...하고 눈살을 찌푸리니-
"저기, 푸우 쨩."
>>+1, 푸우 쨩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1. 치즈 언니
2. 바카네
"...왜?"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바카네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항상 보이는 태도처럼 자신만만, 여유로워보이는 모습.
"아까 부실에 오는 길에 레이카 쨩이랑 마주쳤는데, 오늘은 활동 따로 안할거니까 다들 집에 일찍 돌아가도 좋다고 하고 갔어."
"ㄴ, 네에?!"
바카네의 말보다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라는 치즈 언니의 반응 쪽이 더 놀라웠다. 저 모습 자체도 엄청난 갭? 이 느껴져서 놀라웠지만...
...뭐지. 내가 오기 전까지 서로 말 한마디도 안 나눴던거야, 설마...?
그리고.
"...뭔가 묘하게 기뻐보이시네요."
그야 키타카미가 치즈 언니한테 했던 짓들을 생각한다면야, 안보이면 기뻐할만도 하겠지만... 아니, 그걸 생각하면 저 분은 당장 여기서 나와야 하는거 아냐...?
그런데 내가 한 지적에 뭔가 켕기는 것이라도 있었는지, 심히 부자연스럽게 우뚝 멈춰서는 치즈 언니...
"그, 아,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게... 원래라면 키타카미 씨가 어제 교사 분들께 안 잡혔으니까 오늘도 한번 더 홍보하러 나갈거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셔서, 오시기 전에 슬슬 갈아입어야 하나 걱정...아아아...!!"
...음.
내가 살다살다, 아리 녀석보다 더 화려하게 자폭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직은 그 비교 대상 보다야 더 기품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으시라고 나중에 슬쩍 전하도록 하자.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위안이 될지는 잘 모르겠군.
"음음. 치즈루 쨩은 도짓코구나?"
"아, 아니어요...!"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바카네에게 살짝 발끈한 듯 반응했지만, 그래도 다시 의기소침해지는 치즈 언니다.
...내가 자폭 스위치를 눌러버린 셈이 되었으니, 일단 화제를 돌려보도록 하자.
"그럼 뭐... 일단 다들 귀가하면 되겠네."
"뭐, 그렇지! 아카네 쨩은 아까 아르바이트 전화가 와서 슬슬 가봐야 하기도 했고 말야!"
늦지 않게 푸우 쨩이 와줘서 다행이었달까! 그렇게 덧붙이는 바카네 녀석...
"급한 일이었으면 적당히 미즈나 치즈 언니한테 전해두고 가도 되지 않았냐..."
"아, 사실은 전화가 꽤 길어져서, 중간에 따로 말할 여유가 없었엉!"
미안! 하고 반 장난으로 양손을 모아 합장하며 사과하는 바카네였지만, 뭐... 딱히 뭐라 할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런고로! 아카네 쨩은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늦지않게 돌아가라구~!"
안뇽~! 하고 인사를 툭 던지고 부실을 빠져나가는 바카네 녀석한테서... 묘하게 키타카미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는 건, 내 억측인가. 하지만 부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여유로워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복도에 울리는 발소리는 꽤나 템포가 빨라 보였는데... 어쩌면 저 녀석이 키가 작아서 보폭이 좁아서 그런 걸지도.
"...저어, 그럼... 저도 오늘은 먼저 가보겠사와요..."
뭔가...도저히 뭐라고 더 묘사하기가 미안해질 것 같은 상태의 치즈 언니는,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는 그대로 부실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생각해보니 후배들 사이에서 저렇게 이미지를... 아니다. 그만하자. 그게 치즈 언니에게 대한 배려일 거다.
"...크흠."
나 스스로도 조금 환기할 필요를 느껴서, 다른 두 사람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가는 와중에도 전혀 미동도 없이 책에 집중하고 있는 미즈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무슨 책이야?"
가벼운 질문에 책을 들어올려 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미즈. 양장본 책이라 뭔가 소설 같은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마술 관련 책인 모양이다.
"그렇구만..."
...새삼스럽게 내 대화스킬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저렇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을 해버리니 말문이 턱 막히고 만다.
"...음..."
>>다이스 타임. 다음 상황은?
1 ~ 33 : 푸우 쨩이 미즈가 언제쯤 책을 그만읽고 집에 돌아가나 궁금해져서 한번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34 ~ 66 : 푸우 쨩이 미즈에게 집에 안가냐고 물어봅니다.
67 ~ 99 : 미즈가 푸우 쨩에게 질문을...?
100 : "...도짓코, 해버렸다..."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갑니다. 100은 1표로!
"저기...푸우 쨩."
바로 그 때.
"제가 빌려준 책은...읽어보셨나요."
정말 고맙게도 미즈가 말을 꺼내주었다. 아주 살짝이지만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시선도 나를 향한 채로. 원체 말이 없이 책만 읽고 있는 녀석이라 이렇게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건 꽤나 특별...
...잠깐. 책?
"어..."
책...이라면... 그 때 빌려준 그 책인가? 그 좀 두꺼웠던...
생각해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군.
"그... 아직, 이래저래 휘둘리다보니 읽지 못했는데..."
"...그런가요."
>>+3까지 다이스.
1 ~ 80 : "꼭, 읽어주세요." 그 말만 하고 다시 책을 읽는 미즈.
81 ~ 100 : "...그럼, 오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어?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진행합니다.
"...그럼, 오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어?"
갑자기 나온 이야기에 좀 얼빠지게 대꾸하고 말았다. 녀석의 차분하고 평이한 어조는 그대로였지만, 아니 그래서일까. 뭔가 저런 권유를 나... 아니, 누구한테도 할 것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분위기를 풍겨서 말이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미즈와 단 둘이 문예부실에 있던 적도...없었지?
어쨌든 계속 이 쪽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뭐라도 말은 해야했다.
"어...저기, 뭐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니, 할 이야기가 있으면 여기서 해도 되지 않나...? 때마침 치즈 언니도, 바카네도, 키타카미도 죄다 돌아가고 말이지.
하지만 이런 너스레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이는 미즈에게 당연하게도 부정당했다.
"...여기서는 못할 이야기라는 거야?"
끄덕.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덮는 미즈. 그리고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있다.
어제도 분명... 바카네가 이런 식으로 날 불러냈었지...?
"...그래, 좋아. 까짓거 가자고. 뭐, 오래 걸리진 않는거지?"
끄덕.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하고 갈 준비를 하는 미즈... 뭐, 난 애초에 여기 와서 뭔가 펼쳐놓거나 하진 않았으니 따로 준비할 건 없었다.
그렇게 문예부실을 정리하고, 미즈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지켜본 뒤 서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냥 쭉 미즈의 뒤를 따라갔다. 저 녀석이 애초에 말수가 극도로 적고... 시간 내달라고 했던거에 대해 오케이를 한 이상 내 맘대로 파토 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잖아. 딱히 그리 친절하다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누구처럼 그리 무례하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도저히 못할 짓이다.
전철도 타고, 쭉 미즈의 뒤를 따라간 끝에 우리는 전철 역에서 얼마 안 떨어진 분양 아파트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아파트 1층의 현관 입구에 있는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는 미즈. 녀석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미즈가 7층을 눌러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철 역에서 내릴때까지는 언제나처럼 등하교 하던 길과 동일했으니 따로 별 말은 안했는데, 여기까지 오자 도저히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어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어디를 가려는 건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미즈는 대답했다.
"제 집입니다."
"...하?"
...갑자기? 왜?
"아무도 없으니까요."
"...아니, 잠깐. 그거 혹여나 남자한테 했으면 상당히 위험했을 대사거든...?"
들은 건지 못 들은건지. 708호의 문을 열고 미즈는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들어오세요."
...진짜냐...?
어제는 어제 처음 본 전학생한테 끌려가서 택시를 타고 멀리 갔다오질 않나, 오늘은 자기말고 아무도 없다는 동급생의 집에 방문하질 않나...
...이거, 무슨 상황인건데, 대체...
어쨌든 내가 들어오길 계속 기다리고 있는 미즈였기에 별 수 없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앞으로 나서자, 당연하게도 뒤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그 소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어딘가에 와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내가 좀 예민한 거겠지...?
그렇게 치부하기엔 어제의 그 초현실적인 경험이 있었기에, 대충 스스로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자."
그렇게 말하고는 언제 신발을 벗었는지 먼저 앞장서서 들어가는 미즈. 조금이라도 찜찜한 기분을 털어보려 그제야 이 집을 좀 둘러보게 되었다. 저 안쪽 거실까지 가는 복도의 길이나 문들을 보면... 아마 3LDK...? 아마 그정도이지 않을까. 그럼 이 집은 꽤 비싼 가격일지도.
내심 감탄하며 거실로 따라 들어가니... 처음 문예부실에서도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이 방은 도저히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집의 거실이라면 TV나 쇼파, 장식장... 이것저것 방문한 사람에게 보여줄 것들이 있는 법인데. 그런건 커녕 카펫이나 커튼조차도 없이 그냥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살풍경한...
...방금 이사를 와서 짐을 다 못풀어가지고 대충 방에 이삿짐들이 쌓여있는 상태라고 보기도 어려운 느낌이다. 혹시나, 이삿짐을 푸는 걸 도와달라고 부른 걸수도 있을까.
"앉으세요."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생각해보니 여기 방석도 없는거냐...? 나한테 앉으라고 말한 뒤 미즈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해봤지만 뭔가... 아니 진짜로 어떻게 뭔가 깔을 생각도 없었던건가...? 새삼스레 바닥의 마룻바닥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대체 뭐 때문에 불러온건가... 제발 어제 겪은 것같은 일은 없길 바라며 잠시 기다리니 미즈가 주방에서 뭔가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쟁반에 얹혀져 있던건...
>>+1 다이스. 미즈가 들고 온 건?
1 ~ 50 : 찻잔과 주전자.
51 ~ 100 : 콜라 페트와 종이컵.
...당연하게도 찻잔과 주전자였다. 그리고 여전히 교복을 입은 채로 내 맞은편에 앉는 미즈.
"......"
"......"
그리고 그걸 끝으로, 가만히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 아니... 저기요. 저기...
...지적하고 싶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미즈의 초대로 여기 온거니까, 주인이, 주최자가 뭔가 하길 기다리는게 예의일 터이니 기다려보았지만...
...결국 저려오기 시작한 무릎 덕분에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며 내가 먼저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살짝 자세를 편히 바꾸면서 좀 가벼운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저기...식구들은...?"
"없어요."
...그야 그건 보면 알지. 아니, 애초에 네가 부르면서 아무도 없다고 굳이 강조했잖아.
"뭐, 외출이라도 하신거야?"
"처음부터 저 뿐이었어요."
...아.
"자취하는거야?"
"네."
...이런 비싼 아파트에, 고등학생 1학년 여자애가 혼자 산다고...? 집안에 돈이 많은가. 그리고 뭔가... 부러운 느낌이네. 물론 저런 경우는 뭔가 사정이 있으니 부럽다고 말하거나 하면 안될 거라는 정도는 눈치 없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무튼 그렇다는 건, 미즈의 가족들과 갑작스레 마주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건데."
"...아."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미즈는 주전자에 든 것을 잔에 따르고 앞에 내어놓았다. 아니, 뭔가 깨닫는게 너무 늦지 않냐...? 굳이 상관 없었으면 안 챙겨와도 되는 거였던 것 같은데.
"드세요."
"어...그래."
...마시긴 하겠지만, 그렇게 빤히 관찰하듯이 바라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야. 그리고 너도 좀 마시라고.
"어떠신가요...?"
"뭐, 맛있네."
사실 차에 대한 소양 같은건 전혀 없어서, 저 이상으로 뭔가 향이 어떻네 저떻네 하고 품평을 할 자신은 없다. 내 기억으로 다도부라고 했던 치즈 언니라면 좀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쓰지 않고 잘은 몰라도 향기로우면 맛있는게 맞겠지. 그렇게 한 잔을 다 마시고 자리에 내려놓자, 그와 동시에 다시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차를 채우는 미즈.
아니... 그, 뭔 술잔 채우듯이 그리 즉각적으로 채워줄 필요 없는데...
그래도 성의를 생각하면... 마셔야지. 그렇게 다시 찻잔을 들어 마시고 다시 비운 뒤 내려놓으니 또 반사적으로 주전자를 들-
"잠깐잠깐!"
-어 잔을 채우려는 걸 막았다.
막지 않고 그냥 냅뒀다간 쓸데없이 내 방광의 용량이 어느 정도가 될 지 테스트해보는 그런 시간을 가지게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지나가서. 굳이 처음 방문한 집에서 화장실을 쓰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말도 없이 무슨 물고문 당하듯이 차만 마시려고 온 게 아니잖아?!
"...크흠. 저기, 뭔가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거 아니었어? 날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를 좀 가르쳐줘."
그 말에 주전자를 다시 내려놓는 미즈. 아니... 일부러 그러는 건가? 왜 이렇게 말을 안하려는 느낌이지? 물론 RED단이 모여있을 때도 거의 말수가 없던 건 잘 알지만.
"...학교에서 못할 이야기란 게 대체 뭔데?"
"...가르쳐 드릴 게 있어서요."
"...가르쳐 줄 거?"
"저에 대해서. 그리고...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 대해서요."
>>+3까지 다이스.
1 ~ 80 : 여기서 굳이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를 꺼내진 말자. 푸우 쨩이 잠자코 들어줍니다.
81 ~ 100 : "...아. 어제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거야?" "......?"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진행합니다.
...뭔가 어제 바카네가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럴 때는 잠자코 듣는게 맞을 것 같다.
"...키타카미랑 네가 뭐?"
그래도 바람직한 청자의 자세로서, 말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
...그리고 여기서 나는 미즈 녀석과 만난 이래로 정말 처음 보는 표정을 보게 되었다. 난처해하기도, 주저하기도 하는 것 같은 표정. 살짝 실룩이는 입꼬리와 미간,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하는 것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별명... 지어달라고 할 때 정도를 제외하고 정말 표정 변화를 볼 수가 없었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까.
"...말로는 표현이 잘 안될지도 몰라요. 정보 전달에 분명 문제가 발생할거라 사료됩니다... 그래도, 들어줬으면 해요."
그렇게 말을 꺼낸 미즈는.
"...키타카미 레이카 씨와 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아. 뭐, 평범하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
"아뇨... 그러니까...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성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와 달리... 말 그대로 순수한 의미에서, 에요. 순수한 의미에서 저와 키타카미 씨는 푸우 쨩과 같은 대다수의 인간과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 통합 사념체에 의해 만들어진 대 유기생명체 접촉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 그게 접니다."
...뭐냐, 저 타이틀은.
"제 일은 키타카미 레이카 씨를 관찰하고 입수한 정보를 통합 사념체에 보고하는 것."
"......"
"태어난 뒤로 3년간 줄곧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 3년 동안은 특별한 불확실 요소가 없이 평온했지만... 최근 들어 무시할 수 없는 변칙 인자가 키타카미 씨 주위에 나타났습니다."
"......"
"그게 바로 당신이죠."
정보 통합 사념체... 그것은 전 우주적으로 퍼져있는 정보계의 바다에서 발생한 육체가 없는 초고도의 지성을 지닌 '정보 생명체'라는 존재란다.
처음부터 정보로서 태어났고, 정보를 모아 의식을 만들어냈으며,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진화해왔다고... 물질적인 실체가 없고 정보로서만 존재하니까 당연히 광학적인 수단으로 관측 불가.
우주 개벽과 거의 동시에 존재한 그것은 우주의 팽창과 함께 확대되어왔고... 정보계를 넓혀나가 거대하게 발전해왔다.
유기 생명체가 발생하는 행성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존재해왔기에 태양계고 뭐고 그 어떤 행성이건 별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었는데... 태양계의 제 3행성. 그 행성에서 발생해 진화한 2족 보행 동물에게 지성이라 불릴 수 있는 사색 능력이 싹트게 되어 그 생명체가 거주중인 행성의 중요도가 올라가게 되었다고.
"...정보의 집적과 전달 속도에 절대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유기 생명체에게 지성이 발현한다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었으니까요."
마카베 미즈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통합 사념체는 지구에 발생한 인류라 분류되는 생명체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빠져있는 자율 진화의 정체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발생 단계부터 완전한 존재였던 정보 생명체와는 달리 인류는 불완전한 유기 생명체에서 출발했으면서도 급속도로 자율 진화를 이루어갔다. 보유하는 정보량을 증대시켰고, 또한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며 가공하고 축적했다.
우주에 편재하는 유기 생명체에 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아주 흔한 현상이었지만, 고도의 지능을 가지게 되기까지 진화한 예는 지구 인류가 유일했다. 정보 통합 사념체는 주의 깊게... 또한 면밀하게 인류의 관측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3년전... 행성 표면에서 다른 것들과는 다른 이상한 정보 플레어를 관측했습니다. 그 한 지역에서 분출한 정보 폭발은 순식간에 행성 전체를 뒤덮었고, 행성 외공간으로까지 확산되었죠.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키타카미 레이카였습니다."
원인도, 효과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정보 생명체인 그들도 그 정보를 분석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의미를 구성하지 않는 단순한 정크 정보로만 보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유기 생명의 제약상, 한정된 정보 밖에 다룰 수 없어야 하는 지구 인류의 한 개체에 불과한 키타카미 레이카에게서 정보의 격류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키타카미 레이카에게서 생겨난 정보의 격류는 그 뒤로도 간헐적으로 계속 되었고... 또한 완벽하게 불규칙한 흐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키타카미 레이카는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 3년간 모든 각도에서 저 개체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정체에 대해 명확히 내릴 수 있는 정의는 없었다. 하지만 정보 통합 사념체의 일부는 그녀야말로 인류, 나아가서는 정보 생명체인 자신들에게 자율 진화에 대한 단서를 줄 존재라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 생명체인 그들은 유기 생명체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언어가 없으니까요. 인간은 말을 제외하면 개념을 전달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죠. 그래서 정보 통합 사념체가 저와 같은 인간형 인터페이스를 만든 겁니다. 저를 통해 인간과 접촉하는 거죠."
...마침내 미즈 녀석이 자신의 찻잔에 입을 댔다. 저걸 다 말하고 나서야 마시는 것에서 경의를 표한다.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겐 자율 진화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녀에겐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주위의 환경 정보를 조작하는 힘이 있을거라 사료되니까요. 그게 제가 여기에 온 이유고... 푸우 쨩이 여기 있는 이유고요."
...아하, 그렇구나. 잘 알았어.
>>+3까지 다이스. ...정말 이해한거냐.
1 ~ 95 : "했겠냐?!"
96 ~ 100 : 미즈가 놀랍니다. 아니, 왜 놀라...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진행합니다.
...아니 이해했을리가 없잖냐!!!
"...저기,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
"네."
"...지금 네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
"그냥 믿어주세요."
진지하네...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단순한 단말기, 대 인간용 유기 인터페이스에 불과합니다. 통합 사념체의 사고를 완전히 전달하는 건 제가 가진 처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해서요. 이해해달라구."
...아니, 뭐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이지.
"...왜 난데."
이거, 바카네한테도 했던 이야기다. 그러네. 전혀 뭔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 중에서도 어쨌든 나라는 공통분모는 있는 셈이다.
"네가 그 통합체? 인지 뭔지의 인터페이스라는 걸 믿는다쳐도... 나한테 왜 정체를 밝히는거야? 대체 왜?"
"푸우 쨩이 키타카미 레이카 씨에게 선택되어서 입니다. 키타카미 씨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의사를 절대적인 정보로 변환해서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푸우 쨩이 선택 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에요."
"없어."
"있습니다. 아마...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에게 있어 열쇠와 같은 존재일거에요. 두 사람이 모든 가능성을 쥐고 있는거죠."
...이쪽에서는 나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졌네.
"진심이냐..."
"네."
...잠시. 생각을 좀 해보자...
만약, 내가... 바카네한테 먼저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 미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뭔 이런 별종이 다 있지, 하고 치부하고 대충 자리를 박차 돌아갔을텐데.
이게 명백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차마 그렇게 막나갈 수가 없다. 정말 바보같고 웃기는데... 하. 정말.
"...저기. 그런 이야기라면... 키타카미한테 직접 말하는게 더 좋지 않겠냐. 그 녀석이라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보다야 훨씬 더 좋아할텐데. 그리고 난 이런 이야기는 도저히 못따라가겠고... 미안하다."
"통합 사념체의 의식의 대부분은 키타카미 레이카가 자신의 존재 가치와 능력을 자각하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을 살펴야 할 때죠."
"...내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키타카미한테 전달한다면?"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냐고.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한테 말한다 한들, 그 정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그건 사실이겠구만.
"정보 통합체가 지구에 심어둔 인터페이스는 저 하나가 아닙니다. 통합 사념체의 의식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여 정보의 변동을 관측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하니까요. 푸우 쨩이 키타카미 씨에게 있어 열쇠로 인식 된 이상, 위기가 닥친다면 누구보다 먼저 푸우 쨩에게 닥칠겁니다."
...하.
"...시간이 늦었네. 그만 실례하마. 차는 맛있었어."
"...네."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미즈는 따로 붙잡지 않았다. 뭔가 그때 느껴진 분위기는 뭔가 쓸쓸해보였는데... 내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어딜 갔다왔길래 늦었냐는 어머니와 동생의 추궁에 적당히 건성으로 대답해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방금 전까지 들은 마카베 미즈키의 그 기나긴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마카베 미즈키... 미즈는, 인류가 아닌 지구 외 생명체...라는 말이 되겠네. 간단히 말하면 우주인.
"...초능력자에, 우주인..."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소거법으로 따진다면... 바카네의 말이 맞다면 치즈 언니가 미래인이 되는데...
"...젠장."
...아니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지금 미즈가 한 행동은, 그 바카네가 자기 말을 믿게 만들려고 연극을 시킨걸지도 모를 일이다. 미즈가 뭔가 증거를 내밀기라도 했나?
...지금 내가 겪어본 증거로 채택해 볼 수 있는건... 바카네와의 그 체험 뿐이니. 그 외의 사람들이 뭐라 말을 하던...내가 그걸 어떻게 믿겠어. 증거 없잖아!!
......머리가 아프다.
"...그러고보니. 뭔가 메일 같은거 왔었을라나..."
환기라도 시킬겸, 휴대폰을 켜보았다.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 타임. 푸우 쨩한테 메일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요?
1 ~ 20 : 아리사
21 ~ 40 : 치하야
41 ~ 60 : 코토하
61 ~ 80 : 아카네
81 ~ 100 : 치즈루
단, 앵커의 컴마값이 61 이상인 앵커만 통과됩니다.
"...바카네?"
뭐지, 왜 이 녀석이 메일을 보내온거야.
물론 치하나 아리랑 메일을 자주 주고받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치하가 기계 다루는 거에 심히 버거워하는 녀석이라는 것도 한몫하긴 했어도... 뭐, 그런 고로 메일이라는 매체는 별로 자주 활용하는 쪽이 아니긴 한데 말야. 어쨌든 왔으니 확인은 하도록 하자. 몰랐으면 몰라도, 온 걸 아는데 냅두는 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고.
"...뭐, 별 내용은 없네."
[푸우 쨩, 집에는 잘 들어갔엉?]
...제목도 없이 딸랑하니 저런 내용만 보낼거면 굳이 보낼 필요가 있나 싶긴하다. 하긴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의 메일이야 흔하긴 할테지.
'그래, 잘 들어갔다. 너도 잘 쉬어라.'
적당히 답장을 작성해 보내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냥 그렇게 몇 분간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다 다시 몸을 일으켰는데,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책상위에 얹어진 두툼한 소설책. 그 때 미즈가 빌려준 거였지, 저거?
"...하."
어쩌면 혼자뿐인 아파트에서 SF소설만 읽다가 엉뚱한 망상에 사로잡힌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걸로 퉁쳐버릴 수 없게 만든 인물의 메일을 방금 읽어버렸으니 원.
"...일단 책은 내일 돌려줄까..."
...아니, 돌려주기 전에... 잠깐 조금이라도 읽어보기라도 하자. 그게 빌려준 사람에 대한 성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소설 책의 표지를 넘기는데...
"......이런."
이 두꺼운 소설 책에 끼워져있던 책갈피. 그 책갈피에 쓰여있는 내용에 나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저녁 7시, 역 앞에서.'
...날짜가 없는 이 책갈피에 적힌 약속 시간은 도대체...뭐냐고. 아니, 뭔데 대체. 아니...
...마카베 미즈키라는 녀석은 설마, 나한테 이 소설 책을 빌려준 그 날부터... 내가 나타날 때까지 매일 저녁 7시에 역 앞에서 기다렸었던거냐...?!
...물론 그 만남이야 오늘 미즈가 먼저 말을 걸어서 가지긴 했다만. 아니...
"...하다못해 사람이 안 나타나면 말을 하라고...!"
...내일 가서 일단 물어보도록 하자. 대체 얼마나 기다렸던건지.
>>다음날. 방과후 전까지 상황 자유앵커.
그리고 전날에 대해 1도 말 안 꺼내는 미즈. ...말 걸어도 되는거 맞지?
뭐지?! 내가 뭐 잘못했나? 또 나야! 아니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게 맞나? 아 나도 몰라 이젠!!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나?
하지만 아침에 그렇게 숙면 끝에 상쾌하게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온통 주변에 신경쓰이는 일들이 가득하니 그 상쾌함이 다시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학교... 가긴 가야지."
별 이유도 없이 결석하는 건 말이 안되니까. 오늘은 뭔가 기다릴 사람도 없을 테고, 약속해둔것도 없으니 그냥 일어난 김에 바로 일찍 출발하기로 생각하고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 학교로 향했다.
"...에, 푸우 쨩. 설마하니 되도 않는 다이어트 시작이야...?"
...겨우 하루 이틀 아침을 거른다고 악의 가득한 농담을 입에 담는 동생을 한대 살짝 쥐어 박아주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전철을 타고 내리고, 짜증스러운 언덕길을 올라가 반에 도착했을 때는 내 나름대로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반의 절반 정도는 이미 가방이 놓여져 있는 걸 보고, 아침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적당히 교과서를 들춰보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동아리에 간 애들은 돌아오고 시간에 맞게 느즈막히 오는 애들도 차차 들어오기 시작했고... 치하와 아리도 도착해서 간단히 손을 흔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
뭔가 전혀 말 없이 부루퉁해보이는 키타카미가, 항상 도착하던 HR 시작 5분 전에 당연하다는 듯 반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걸로 반의 모두가 제시간에 맞게 등교를 완료했다.
"여어."
"응, 안녕."
짧게 대꾸하는 걸로 책상에 엎드리고 창 밖을 내다보는 키타카미. 아니... 이 녀석 왜 더 저기압이냐...? 어제 그리 휙 나가버린 이후로 뭐 기분 전환 같은거 전혀 안한거냐고...?
찜찜한 기분에, 뭔가 말이라도 더 붙여보려 했지만 때마침 반에 들어온 바바 선생 덕분에 몸을 칠판 쪽으로 다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맞는거야...?
>>+1 다이스.
1 ~ 33 : 치하가 오전 쉬는시간에 말을 걸어옵니다.
34 ~ 66 : 치하가 점심시간 중에 말을 걸어옵니다.
67 ~ 99 : 치하가 종례가 끝나고 말을 걸어옵니다.
100 : @자유앵커
"......"
오늘은 내 고교생활 중 최초로, 점심시간에 교실이나 학생 식당을 이용하지 않게 된 날이 되고야 말았다. 어디냐고?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있겠는가.
"......"
점심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미즈가 있는... 문예부실이지.
"여어... 저기, 여기서 잠시 실례해도 되냐...?"
매점에서 사온 야키소바 빵 하나를 들고와서 멋쩍게 하는 소리였지만, 미즈는 늘상 그래왔듯 변함없는 표정으로 흔쾌히-사실 흔쾌히인지도 잘 모르겠다-허락했다.
...왜 교실이나 학생식당이 아닌 여길 선택했냐고...? 설명하자면 조금 길...진 않다.
"...하아..."
키타카미, 바카네, 미즈... 여기에 부루퉁해보이는 치하까지 해서 주변이 온통 신경쓰여서 계속 골머리를 싸매며 수업에도 집중 못하고 쉬는 시간에도 대체 뭐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여느때처럼 평온한 관계로 돌아갈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기, 푸우 쨩."
"으헤에엑?!"
...반 정도 멍을 때리면서 치하 녀석 기분이 좀 풀렸으려나, 아리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그래도 뭔가 말을 걸어서 달래야하나, 근데 그러기엔 바로 뒤에 있는 키타카미의 시선이 너무 냉엄하게 느껴진다...등등.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옆에 온지도 인지 못하고 있던 치하가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말이지.
"......"
말을 걸 때까지만 해도 치하의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아니, 장담하지만 엄청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의 온화함을 듬뿍 담은 그 차분한 목소리였던 것을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랬을텐데...
"...어, 저기..."
"그래. 미안해."
싸늘하게 그렇게 말하고 바로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걸 보면 내가 어떻게 되겠냐...
그래서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심도 교실을 벗어나 다른 곳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갈 곳은 RED단이 점거 중인 문예부실 뿐이었고 말이지.
"......"
그 결과 이렇게 점심을 잊은 듯 책에만 집중하고 있는 미즈와 마주 앉아 혼자서 빵을 먹고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어제 그렇게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 해놓고도 지금은 나한테 뭔가 먼저 말을 걸거나 하는 것도 없고. 내가 말을 걸어도 다 단답형으로 짧게 끊어 대답해버려서 도저히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아, 그렇지. 어이, 미즈."
"네."
마침 생각난 거나 물어봐야겠군.
"...너, 빌려준 책에 끼워둔 그 책갈피는... 무슨 의미냐?"
...설마하니 책 빌려준 순간부터 매일 그 시간마다 역에서 기다린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제는 별 의미 없는 거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너 그게 설마 제대로 된 대답이라 생각하냐."
그 이상의 대답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저 말에서, 어제 나랑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의미가 있었다는 소리가 되는 거란 추론이 가능했고... 그 말인 즉슨, 빌려준 날부터 쭉 기다렸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무슨 무식한 방식이냐고 대체.
아무튼...
>>다이스 타임
1 ~ 25 : 푸우 쨩이 분명 점심을 안먹은 게 분명해보이는 미즈에게 빵을 반으로 잘라 나누어줍니다.
26 ~ 50 : 치즈 언니가 문예부실로 찾아옵니다. 이 시간엔 어쩐 일로...?
51 ~ 75 : 키타카미가 뭔가 커다란 종이백을 들고 문예부실로 들어옵니다. 저건 또 뭐냐...
76 ~ 100 : 바카네가 언제나처럼 히죽히죽 웃으면서 문예부실로 들어옵니다. 넌 왜 지금 이 시간에 오냐...
다음 연재시까지 던져진 다이스 중, 위 보기의 범위 내에 들어가있는 앵커 내용은 전부 진행합니다.
똑똑.
미즈와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두드려지는 부실의 문. 이 곳에 방문할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일단 들어오라고 말은 꺼냈다. 저렇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라면 이쪽에서도 예의를 차리는게 기본이니까.
"잠시, 실례하겠사와요..."
"아, 치즈 언니."
아하하, 하고 멋쩍게 웃으며 문예부실로 들어오는 ...RED 단원들 중 예의를 차리고 다닐 사람이라면 물론, 치즈 언니...뿐이겠지. 미즈도 딱히 예의없이 굴진 않겠지만, 바카네가 굳이 그리 예의를 차릴 거 같은 캐릭터는 아니고...
...그래도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이젠 저렇게 예의를 일일이 차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내가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나는 가끔씩이나마 왔지만, 치즈 언니가 굳이 점심시간에 문예부... RED단에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그게......"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진행합니다.
1 ~ 80 : 치즈 언니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쾅! 하고 열어젖혀지는 부실 문. 그리고 들어오는 RED단의 단장님.
81 ~ 100 : "푸우 쨩을 보러 왔사와요." ...저요? 왜요?
콰앙!
"와산~본!"
방금 전과는 정 반대로, 부실 문과 부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완전히 갖다버린 듯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대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이해도 가지 않는 '백설탕'을 구호로 하며 문예부실로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단체 RED단의 단장, 키타카미 레이카가 오전 중에 봤던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상쾌하고 밝은 얼굴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응! 푸우 쨩, 미즈키 쨩, 치즈루 쨩. 전부 다 있었구나!"
"...바카네도 RED 단원이라고 네가 소개하지 않았냐."
"아, 맞다. 아카네 쨩도 있지 참!"
......아니, 네가 영입했으면 적어도 네가 기억해주라고.
"그, 안녕하시와요..."
"마침 잘됐어! 아카네 쨩이 없는건 살짝 아쉽지만,그래도 거의 다 모여있는 셈이니까. 지금 바로 보여줄게!"
"...뭘 보여줘...?"
...그러고보니... 저녀석, 뭔가 또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다. 저거, 아침에는 못봤는데...? 아니, 저런 사이즈의 쇼핑백, 들고왔으면 분명 눈에 뜨였다고. 내가 설령 눈이 옹이구멍이더라도 저정도 부피면 분명 못봤을리가 없다. 분명.
"...너 그건 어디서 가져왔냐?"
"잠깐 나갔다왔어!"
......아하.
그러니까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사라져버린건, 이 쇼핑백들을 어딘가에서 공수해오기 위함이었다, 이 말이냐?
"......아니 근데 점심시간 시작된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
...잠깐.
"...너 분명 4교시 중간에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양호실 가보겠다고 나갔던거-"
"자, 일단 이거 봐봐!"
어이, 말 끊지마.
물론 내 항의는 가볍게 묵살되고, 키타카미는 문예부실 한가운데의 책상에 쇼핑백 내부의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냐, 이 팔랑팔랑한건."
"메이드복이야."
"아니...그건 여기 있는 누가 봐도 다 아니까. 이게 무슨 복장인지 물어보는게 아니야."
"그럼?"
"......이걸 왜 가져왔냐고 물어보는거다."
"쓸거니까?"
아니,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지마!
"괜찮지, 치즈루 쨩?"
...? 어이, 잠깐. 왜 치즈 언니를 바라보면서 말하냐?
"확실히, 바니걸을 입혀보니까 치즈루 쨩한테는 잘 안 어울리는 거 같았거든! 그래서 치즈루 쨩한테 이렇게 정숙하고 이쁜 의상이 좋을거같아서 특별히 준비해봤어!"
......
>>+3까지, 이 말을 들은 치즈 언니, 미즈, 푸우 쨩의 반응.
순서는 상관 없습니다.
"미즈 넌 벌써 갈아입고 앉았냐!?"
왜 긍정적인 건데요?!
가 아니라 왜 굳이 이런 코스튬이 필요한건데?! ...설마 나도 입어야하는 건 아니겠지.
...문득 뇌리에, 치즈 언니의 바니걸을 직접 보지 못한게 아쉽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건 영원토록 함구하도록 하자.
...아니 그나저나, 도대체 왜 굳이 이런 코스튬이 필요한건데?!
그렇게 따지려 들려던 차에-
"...뭐어, 확실히 바니걸 보다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치즈 언니가 있었습니다. 아니 나도 차라리 낫겠다 생각은 했지만?! 왜 본인이 긍정적인 겁니까?!
그리고 더욱이 머리를 아프게 하는건...
"아니 치즈언니 왜 괜찮다고 생각- 잠깐, 미즈, 넌 왜 벌써 갈아입으려는 건데?!"
여러벌이 나온게 뭔가 께름칙했건만, 그 중에 사이즈를 눈대중으로 스캔해보고 자기 사이즈에 맞는 옷을 집어들고 갈아입으려고 하는 문예부원 마카베 미즈키 양 되시겠다.
"응! 미즈키 쨩, 그런 적극적인 태도! 아주 좋아!!"
"대체 뭐가 좋은건데 뭐가?!"
갑자기 튀어나온 메이드 복에 놀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옷의 수량을 자세히 확인해봤는데...
...무려 5벌이나 있다...
...이거, 나도 입어야 하는거냐, 설마...?
말도 안되는 괴력으로 우악스럽게 갈아입혔던 이틀 전의 그 악몽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뭔가, 순서상... 오늘은 제 차례이지 않을까 해서."
...아니, 뭔가 그걸 당연하게 순번제로 하지 말아줘. 난 두 번 다시는 할 생각 없다. 없다고. 없어!!
"그럼 오늘 방과후에는 다같이 입고 홍보를 나가는거야!"
......날 죽여 그냥.
>>+3까지 다이스.
1 ~ 80 : 방과 후에 청소 당번을 마치고 뒤늦게 문예부 실로 가니 키타카미가 치즈 언니를...
81 ~ 100 : 미즈가 갈아입는걸 도와주고 있는 키타카미...?
2표 먼저 나온쪽으로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