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별명은 좀 친해지면 누구한테든 불러주는 거라서... 딱히 의미 부여할거 없어요."
그래, 딱 그런 거다. 아이스 브레이킹, 그 이상의 의미 같은 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고 친절해지는거 같은거, 잘 못하니까. 부르는 호칭도, 쨩이나, 뭐 이런거 낯 부끄러워서 못 부르겠고. 그러니까 하다못해 별명 같은 걸로라도. 그냥 딱 그런 의미란 말이지.
"...그렇...군요. 알겠사와요-"
"-저기, 잠시만요."
"응?"
뭔가 좀 침울한 반응의 치즈 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마카베...?
"혹시... 저는, 별명 같은거...없는건가요?"
"...에?"
저 반응은 내가 아니라, 치즈 언니가 한거야. 물론 나라도 저렇게 허를 찔린 반응을 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반응하기 전에 먼저 반응해버려서 뭐라 말하기도 그랬고.
"...어... 치즈언니, 같은 식의 호칭. 말하는거야?"
말없이 살짝 고개만 끄덕여보이는 마카베. 그 건너편에 앉아있던 치즈 언니는...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하고 도저히,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고.
...물론 나도 아까부터, 마찬가지였지만.
아니, 이봐요, 무표정 문예부원씨... 네 캐릭터, 엄청 쿨해야하는거 아니었냐...? 키타카미가 분명 그걸 노리고 널 얼렁뚱땅 이 정체 불명의 단체에 끌어들인거 같은데...
하기사 구하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아니 애초에, 키타카미는 왜, 어째서 컴퓨터를 어디다 써서 뭘 하려고 그러는 건지. 무슨 꿍꿍이인거냐.
...당연히, 그 이유야 다음 날에 바로 밝혀졌다.
"...RED단의 웹사이트?"
"응!"
"...뭐, 만들면 재밌긴 하겠네."
...물론 저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아니 무슨 얘기를 꺼내든 간에 나한테 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불길한 예감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긴 했지만.
"푸우 쨩이 만드는거야!"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슬슬 원패턴이지 않냐, 하는 볼멘 소리를 덧붙여보지만 역시나 이 녀석이 들을리가 없지.
"어차피 푸우 쨩은 한가하잖아?"
"단언하냐."
"난 남은 부원들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노트북은 푸우 쨩이 가져온거잖아?"
...그 노트북을 지금 열심히 만지작 거리고 있는건 넙니다만. 그리고 마우스 없으니 불편하다고 마우스 가져와달라고 궁시렁거리지마. 정 필요하면 네가 가져와라.
"이틀 안에 만들어줘! 사이트가 없으면 활동할 길이 없으니까?"
...활동을 할 예정이었냐? 무슨 활동을?
같은 질문을 던져봤자 대꾸도 안할테니 넘어가자. 고개를 슥 돌려보니, 책상 구석에 앉아 키타카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치즈 언니와, 키타카미가 뭐라고 하든 말든 별 관심도 없이 치즈 언니의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미즈. 정확히는, 미즈가 원래 앉던 자리 옆 구석에 치즈 언니가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아있는 거지만.
...결국 누구에게 떠넘기거나 할 수도 없고, 사이트를 만드는 건 온전히 내 몫이 되는건가.
"...시킨다고 다 될거같냐."
"응!"
"...어이어이..."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저렇게 대답해버리니 원.
어쨌든, 웹 사이트 제작이라...
...컴퓨터 연구부에서 이것저것 프로그램 같은걸 지원해주기로 했으니,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정 모르겠는게 있으면 가서 물어보...
대충 주워온 접속 카운터... 프리 CGI니까 상관 없을거고. 적당히 페이지에 넣어두고, 연락받을 메일주소를 기재해두고.
게시판은... 학교 어드레스로 기생할생각이니 아직 좀더 눈치를 봐야할거고... 애초에, 게시판을 만들어두려해도 뭐에 쓸 게시판일지도 정해두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런 고로, 접속 카운터와 메일 주소만 덩그러니 있는 무성의한 홈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이걸... 학교 어드레스를 써서, 그래. 하위 페이지로...
"...이정도면 되겠지."
페이지를 게시하고, 인터넷 상에서 제대로 표시되고 있는지를 확인 하고서 프로그램을 차례로 종료했다.
덤으로, 타나카의 추궁 같은건...
...저질러놓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덤으로, 시킨건 어디까지나 키타카미 녀석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북을 덮는데,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카...아니, 미즈?!"
...정신 차리고 호칭 바꿔부른 나, 굿잡. 뒤를 돌아보니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카베 미즈키는,
...점심시간 이후로 뭔가 꼼수를 써서 조퇴를 하는 방법 같은건 마땅치 않았고, 그리고 다음날부터의 후폭풍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결국 별수 없이 동아리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뭘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혹을 느끼면서도 몸은 왜 자연스레 동아리 방으로 향하고 있는걸까.
어찌되었던 간에 문예부 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치즈 언니와 미즈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여어, 안녕."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하는 치즈 언니. 하긴, 미즈랑 단 둘이 밀실에 있으면 피곤하기도 하겠지.
...그나저나, 어제 그런 꼴을 겪었으면서도 용케 여길 다시 찾아왔네. 굉장한 멘탈, 이라고 해야할까.
그 굉장한 멘탈의 치즈 언니는 마침 생각 났다는 듯 갑자기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뭔가를 찾는 듯 했는데...
"그, 혹시, 키타카미 씨는...?"
...역시 그 녀석을 찾...아니, 혹시나 있나, 하고 경계하고 있다는게 올바른 표현이겠지.
"글쎄, 6교시부터 안 보이던데... 그냥 이대로 조퇴한 거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물론, 그런 바람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박살나버렸지만.
"야~호!"
라는 인사와 함께 등장한 키타카미는, 양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종이 봉투를 적당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얍."
철컥, 하고 잠기는 문예부의 문.
...느낌이 안좋아...
"...이번에는 또 뭘 하려는거냐, 키타카미. 말해두겠는데, 강도 같은 짓이나, 협박은 하지마라."
"응?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는데."
"...언제는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냐...?"
"뭐, 대체재가 있었으니까 됐잖아? 자, 그건 됐고. 이거 좀 봐!"
종이 봉투 안에서 키타카미가 꺼내든건, 뭔가 손으로 쓴 글자가 인쇄된 A4지 크기의 갱지...
"RED단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전단지야! 인쇄실에 몰래 들어가 200장 정도 복사해왔어!"
"그래서 6교시 이후로 안보였던거냐?!"
용케도 안들켰다, 싶다. 하기사 생각해보니, 수업 도중이면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에 들어가있으니...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키타카미가 들이미는 전단지를 읽어보니... 대충, 뭔가 신비한 일이 있으면 해결해줄테니 의뢰해오라는 내용을 장황하게 길게 늘여쓴 글.
키타카미 이 녀석, SF나 판타지, 호러... 뭐 아무튼 이런 이야기의 세계를 동경한다 이런건가.
"잘 썼지?"
"...뭐..."
딱히 긍정도 부정도 아니게 애매하게. 부정하면 나한테 써보라고 할거고. 긍정하면 뭔가 또 추가로 시킬것 같아서. 적당히 황색지대에 있는게 회피하는 방법이다-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그냥 동의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자, 그럼 나눠주러 가볼까?"
"뭐? 어디로?"
"교문이지. 이 시간이면 아직 하교 안한 학생들도 많을거아냐?"
"...네, 네. 그러시겠죠..."
대충 나눠주면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 봉투를 들려고 했는데.
"잠깐. 그거 전에 먼저 정할게 있어."
"어?"
"다들, 이거! 하나 씩 뽑아!"
...그러면서 키타카미가 건낸건... 뭐야, 제비 뽑기냐?
"2명이 당첨이야! 자, 먼저들 뽑아! 난 마지막 남은걸로 할게!"
...무슨 꿍꿍이냐...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불안으로 눈빛이 떨리고 있는 치즈 언니와,
"자, 미즈키 쨩! 하나 뽑아!"
"...네."
키타카미가 제비 통을 슥 들이미니 아무 거부감 없이 하나를 뽑아드는 미즈.
"으, 그, 그럼..."
"...하아, 알았어."
아무도 안 뽑았으면 어떻게 확인부터 가능했을텐데. 결국 얼렁뚱땅 차레대로 제비를 다 뽑고야 말았다.
"헛헛해..."
"정말, 푸우 쨩. 여자아이 답게 조신한 단어를 써야지."
"네가 할 소리냐..."
머리에 뭔가 꽂고 다니거나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걸을때마다 흔들리는 이놈의 토끼귀가 거슬린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바람이 소름돋게 기분나쁘다. 등도 서늘한게 계속 소름이 돋을것만 같다. 그리고 이놈의 망사 타이츠는 왜 이렇게 조이는거야. 그리고 이 깃은 대체 왜 필요한거야. 최소한의 양심이냐? 뭔 챠밍포인트는 뭔놈의 챠밍포인트인데.
"어때? 치즈루 쨩?"
"...자, 잘 어울리어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치즈 언니를 노려보았지만, 그냥 그 말만 하고 시선을 피해버리고 만다. 뭐... 어쩔수 없다는건 이해하지만. 내가 어제 보호해주지 못한것도 있으니까 어쩔수 없지만. 이해는 하지만...!!
"이걸로 완벽하게 주목을 끌 수 있을거야!"
...그래, 너는 확실하게 주목을 끌겠지.
키타카미는 그 압도적인 몸매로, 이 파괴적인 옷을 입으니 확실히 남자들이 이 옷에 왜 열광하는지 알것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 모습이라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전단지를 받아들거야. 그치?"
"...그야 이런 코스튬을 걸친 녀석이 두명이나 어슬렁거린다면 원치 않아도 눈에 띄겠지...!!"
"뭐, 돈값을 하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풀세트라서 꽤 비쌌어."
"...대체 어디서 이런걸 샀는데."
"인터넷!"
"뭐...그렇겠지..."
...참 오묘한 기분이네. 저녀석이랑 같이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랑,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구경거리가 되기 싫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키타카미랑 같이 나가는건 또...
"...난 도저히 못가겠어."
버티기다. 테이블이든 뭐든, 추해보여도 어쩔수 없다. 뭐든 붙잡고, 다 하교할때까지 버틸거야...!!
"에에, 가자구 푸우 쨩."
"아 싫어! 안 가! 못 가!"
에휴,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쉰 키타카미는...
"으아아!! 이거 놔!!!"
"가자~♬"
별다른 힘을 안들이고 나를 테이블에서 가볍게 떼어내고는, 옆구리에 들쳐메고 문예부실 밖으로 나섰다.
...반쯤은, 아니 확실하게 키타카미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교문으로 가는 동안, 점점 하교 하는 학생 무리가 주변에 많아지는 걸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뿌리치고 도망쳐버리고 싶었지만.
"자, 도착!"
"...하아..."
"푸우쨩! 뭐하고 있어! 빨리 할 일을 해!!"
"...악마 같은 녀석..."
얼굴에 피가 몰려있는걸 나 스스로도 알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얼굴이 시뻘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어쨌든 여전히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나와 달리, 키타카미는 당당하게 온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RED 단입니다! 뭔가 신비한 일을 겪어보셨거나, 혹은 겪고 계신분이 있다면 저희한테 문의해주세요!!"
물론, 지나가던 남학생들은 키타카미가 뭐라고 하는지 같은건 별 관심 없이, 키타카미의 몸매나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고. 키타카미는 그렇게 넋을 놓아버린 남학생들의 손에 전단지를 하나씩 반 강제로 쥐어주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고있는거야. 완전히 구경거리잖아, 이거!!
"그치만 이래야 이목을 끌수 있잖아? 봐, 다들 전단지를 받아가려고 몰려들고 있는데-"
"전단지가 아니라 널 보려고 오는거겠지!!!"
"아무튼 아무튼! 푸우쨩도 빨리 나눠줘! 이건 단장 명령이야!"
"명령이고 나발이고..."
"RED단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내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이 끔찍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겠지? 다 집어던져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키타카미가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기에...
"...으..."
...쭈뼛쭈뼛, 키타카미의 옆에서 전단지를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있는 당신. 나더러 의지가 약하느니, 그런 소리 하지마. 지금 이 정신나간 녀석 덕분에 온통 인파로 둘러싸여서 도망칠 길조차도 남지 않았단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이 녀석이라면 분명 자기가 내뱉은 말은 철저하게 지킬테니, 아주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이 망할 전단지를 하나라도 더 돌려서 저 녀석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으으으..."
"신비한 일을 겪게되면 저희에게 문의해주세요!!"
제발 부탁인데 문의고 나발이고, 이 망할 종이를 받아들었으면 좀 그대로 돌아가주길 바란다.
내가 들고 있던 봉투의 절반 정도를 비웠을 때...
"우효오오오오!!"
찰칵! 찰칵!!
"...어이."
굉장히 불길한 환호소리와,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셔터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어느 한쪽으로 확 분출되기 시작하는 걸 깨달았다.
"...야! 아리!!!!"
얼굴에 온통 일던 불이 한순간 눈으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땅바닥만 쳐다보던 시선이 순식간에 올라간다. 그리고 이 주변에 분명 존재할 오래 묵은 악우를 뒤쫓았는데...
"치, 치하..."
"...하아."
한심함, 동정... 뭔가 이것저것이 뒤섞인 시선을 던지고 있던, 마츠다 아리사와 나란히 서있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발견한 순간. 분노는 다시 민망함으로 돌변했다.
"...오해야."
치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마츠다 아리사는 본인이 그렇게 아껴 마지않던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넌 나중에 죽었어.
그리고 이 지옥과도 같은 순간은.
"...저기, 두 사람?"
어마무시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타나카 코토하의 손으로 마침내 끝을 맺게 되었다.
"잠깐, 같이 교무실 좀 갈까? 바바 선생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당장.
냉엄하게 덧붙이는 타나카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껴야할까, 아니면 민망함을 느끼고 도망을 쳐야하는걸까.
키타카미 레이카는 매우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음. 푸우 쨩! 난 전단지 다 나누어줬으니까 잠깐 화장실 갔다올게!"
뭐?
"뭐, 뭐? 야, 키타카미!! 얌마!!!"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키타카미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게 전혀 믿어지지 않는 어마무시한 균형감각과 속도로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황망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푸우쨩? 일단 같이 가줄래?"
"...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치하와, 으귝, 하고 누군가에게 쥐어박힌-보나마나 치하겠지-아리를 뒤로 하고.
나는 타나카 코토하에게 이끌려 교문에 모인 인파를 헤치고 다시 학교 건물 쪽으로 돌아가게 됐다.
"아참, 내 교복 재킷은 내 자리 위에 올려놔줘. 여분은 어차피 집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 너 무슨..."
무슨, 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타나카가 교무실을 나서기 전에 어느 샌가 자기 겉옷을 벗어 나한테 걸쳐놓아서 그나마 시선을 덜 받고 있었다.
도움 받은 쪽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이 녀석은 착실히 어떻게 정리할지를 다 생각하고 까먹지 않도록 일러주기까지 하고 있다.
쿨하게 짐을 챙기러 교실로 돌아가는 타나카의 뒷모습이...
...거, 이래저래 배려해줘서 고맙다...
심신이 완전히 지친 채로 문예부 실로 들어가니, 불안해보이던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던 치즈 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푸우 쨩?!"
-엄청나게 기겁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마중을 나왔다. 거,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없이 터덜터덜 책상쪽으로 다가가니, 치즈 언니가 황급히 의자를 꺼내 갖다주었다.
"...하아..."
이래저래 얼굴에 열이 오르기도 하고 해서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성격이 딱히 이럴때 울고불고 하는 편은 아니라 눈물이 나거나 하진 않았는데, 차가운데에 얼굴을 식히고 싶기도 하고 똑바로 앉아있을 기운도 없어 그냥 그러고 싶길래.
"...괜찮은 거여요...?"
괜찮겠습니까. 물론 지금 뭐라 대꾸하든 간에 쏘아붙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대답은 따로 하지 않았다. 문득, 아까 키타카미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옷을 갈아입혀질때 부실 바닥에 널부러졌던 옷가지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흘끔 살펴보았는데...
다행히도, 치즈 언니가 잘 모아서 어딘가에 정리해뒀는지 지금 눈에 띄지는 않았다.
어, 저기...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치즈 언니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 관심 없다는 듯 여전히 책을 읽고 있는 미즈. 그리고 완전히 지쳐서 뭐라 말할 기운도 없는 나.
보낸 사람이... 마츠다 아리사, 타나카 코토하... 아리는 말하나마나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고... 타나카는 반장이라고, 전달사항 때문에라도 메일주소 달라고 해서 줬었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내가 치즈 언니랑 키타카미한테 내 메일 주소를 알려줬었나...?"
...일단 RED단에서 보낸 메일은 좀 나중에 읽는 걸로 할까.
아리가 보낸 메일부터 차례대로 열어보니,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
[푸우 쨩...? 왜 갑자기 연락도 없는건가요...?]
...뭐, 죄라도 지었냐...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이 녀석, 어제 사진 신명나게 찍어댔지? 죄를 짓긴 했다. 하기사, 평소 같으면 그렇게 막 도촬해댔을 때 내가 전화를 하든 뭘하든 간에 당장 다 지워버리라고 갈구는데. 아무 말 없이 잘 시간이 되니 걱정되서 저렇게 보냈나...
[저기, 무슨 일 있는건 아니죠...?]
아침 조례가 끝난뒤 보낸 메일도 역시 걱정하는 내용. 뭐, 하루 아파서 쉬는 정도는 딱히 연락하고 뭐하고 할 필요도 없는거니까 그냥 조용히 쉬려고 했더니만...
[...아리사가 잘못했어요... 사진은 푸우 쨩이 원한다면 다 지울게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주세요... 보고싶어요, 푸우 쨩...]
...점심시간에 보낸 메일은 이제 애원조로 바뀌어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으로 확대 해석하는거야, 이 바보는.
"...아니, 단순한 감기거든?"
어제 찬바람 급작스레 쐬고 스트레스까지 받아서 컨디션이 좀 망가지는 바람에 살짝 몸살기 돌아서 쉬는거 뿐이니까...
...아무래도, 수업이 끝나면 이녀석한테는 전화를 해줘야할 듯 싶다. 아리한테 전화를 하면, 치하한테도 자연히 연락이 갈테니 겸사겸사가 되려나.
자, 그래서 아리의 메일은 다 봤고...
"타나카는..."
[푸우 쨩. 오늘 푸우 쨩이 학교에 안 나온거 보고, 바바 선생님이 너 부끄러워서 꾀병인척 하고 안나오는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연락을 하고 쉬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을 하셨어서. 혹시 메일 보거든 선생님께 연락 줘.]
...아니 뭐 아프긴 했습니다만... 저거 설마 애들 앞에서 다 얘기하셨을리는 없...겠지? 보긴 했으니, 연락은 해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담임 교사에게 알리는게 맞긴 하니까...
어쨌든 간에, 타나카나 아리가 보낸건 지극히 일상적인, 정상적인 내용들인데...
"...그냥 아파서 못 본척하는게 좋지 않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말이지, 내가 키타카미나 치즈 언니한테 주소를 알려줬던 기억이 없단 말이다...! 치즈 언니는 메일 주소를 교환할 여유가 마땅치 않았고, 키타카미하고는... 내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메일 주소를 교환했겠냐고. 시달리는건 학교에서 만으로 충분하다.
>>둘 다 통과. 다이스는 RED단의 방문 여부, 컴마는 미라이의 귀가 여부였는데... 둘 다 통과했으니 만나겠군요.
"...하아아아아아..."
감기 기운이 좀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머리가 깨질 거 같다. 키타카미라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스로 한 말을 지킬거다. 지가 찾아오면 더 악영향이 올 지 어떨지 같은걸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결정 했으면 그대로 실행하겠지.
"...아, 그냥 휴대폰이라도 안봤으면 좀 나았을까."
차라리 모르고 당하면, 당하는 순간까지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좋았을까. 아니지, 그럼 대책을 세울 수 없으니까 그건 아닌가. 하...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평정심을 찾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또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뭐야."
다시 화면을 켜보니, 동생녀석이다. 뭐라고 보냈냐...
[푸우 쨩! 오늘은 일찍 갈게! 엄마가 푸우 쨩 돌봐주라고도 했고. 푸우딩 사갈거니까!]
...어... 오늘은 굳이 일찍 올 필요가 없는데... 키타카미랑 이 녀석을 마주치게 하는건,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고 미라이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늦게 오겠느냐, 라고 또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안 나와서. 그렇다고 동생한테 '밖에서 싸돌아다니다 늦게 들어와!' 라고 하겠냐고...
"...됐다 됐어..."
...일단 연락 왔던것들 하나하나 해결 좀 할까? 슬슬 종례가 끝났을테니, 차례로 연락을 해보자고.
...반장님이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겠냐. 아니 사실, 타나카가 메일을 보내든 아니든 간에 연락은 해서 내일은 정상적으로 나간다고 알리긴 해야하니까...
"...후..."
친절하게도 타나카는 아까 보낸 메일에 바바 선생의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착실하게 적어서 보내놓았고... 덕분에 이래저래 찾아봐야할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어머, 」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는 바바 선생이었지만, 이윽고 그 반가움은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바로 잔소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왜 오늘 무단으로 결석했느냐. 감기 기운 때문에 쉬었다니까 그러면 왜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느냐. 병결이랑 무단 결석이 과연 똑같을 거라 생각하는건 아니지 않느냐. 아무리 고등학교 1학년이 입학한지 얼마 안되서 별 비중이 없을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신이라는 건 원래 그 비중 없는게 쌓여서 나중에 대학이든 취직할 때 다 돌아오게 되는 법이다-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길게 이야기하던 바바 선생은, 어느 순간 하던 말을 멈추고 크게 헛기침을 몇 번하고서.
「...그래서 오늘, 단순히 감기로 쉬는게 맞는거지?」
조금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봐왔다.
"네... 뭐 그렇죠."
「지금 몸은 괜찮고?」
뭐 이정도면 밤에 푹 자면 내일 멀쩡해지지 않을까. 나름 밝게 대답한거 같은데, 어째선지 좀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어제 그... 하교 시간 때 그 사건 때문에 학교 나오기 싫어서 그러거나 한 건 아니지...?」
"하교 시...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어떻게 하루만에 잊겠느냐마는. 그렇다고 이렇게 잔혹하리만치 떠올려주시는 것도 잔인하십니다, 선생님.
「그럼 찬바람 쐬서 몸 상태가 나빠진 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니?」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그래 그럼... 푹 쉬고, 내일은 학교 나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혹시라도 또 안좋아져서 쉬게되면 미리미리 연락해주렴. 일단 오늘 결석은 혹시나해서 아직 기록 안해뒀으니까, 병결로 처리해줄게. 가능하면 병원가서 진료받아서 기록 끊어오고.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또 바니걸이나 뭔가 이상한 복장은 교내에서 입거나 하-」
뚝-.
...반사적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음, 어른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말을 하는 와중에 아무말도 없이 뚝 끊어버린다라...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한소리 들어도 할말이 없는 행동이네. 그래. 이런 쪽으로, 불량한 쪽으로 노선을 틀어서 어떻게든 그 바니걸을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
49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부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마카베야, 뭐 언제든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이지만...
...지금 꽤나 상처를 받았을 치즈 언니를 먼저 신경써주는게 우선이겠지.
"...저기, 치즈 언니...?"
부실에 돌아오고선 의자에 앉아 쭉 침울한 표정으로 있는 모습이, 굉장히 안쓰럽다.
키타카미 같은 녀석한테 굳이 휘둘릴 필요가 없어보이는 사람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걸까.
"...저는, 앞으로... 방금과 같은 일을 또 해야만 하는 걸까요...?"
"...걱정말라구요. 다음에 억지로 또 그런 짓을 하려고 들면, 내가 전심전력으로 막을거니까. 정 그러고 싶으면 자기 몸으로 하면 되잖아..."
"...고마워요."
...마치 비운의 히로인과도 같이, 치즈 언니... 니카이도 치즈루 선배는 처연하게 웃어보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부탁드릴게요."
"...뭐 부탁까지 할 필요야..."
...굉장히 낯간지럽다. 아니, 딱히 그렇게 의지받을만한 녀석이 아닌데, 나는...
"...그리고, 치즈 언니라고 친근하게 불러주는 것도... 고마워요."
"...어..."
...아니 이렇게 멋쩍게 만들어서 어쩌자는건데요.
>>에에잇, 다음 연재시 까지 다이스!!
가장 많이 나온 쪽으로 진행합니다.
1 ~ 33 : 갑자기 전화가 걸려옵니다. ...번호를 알려준 기억은 없는데...
34 ~ 66 : ...어찌저찌 머리를 짜내서 이 근질근질한 분위기를 벗어납니다.
67 ~ 99 : ......이예이
100 : 응 뭐 안나오죠. 기대도 안함ㅋ
"아니 뭐, 별명은 좀 친해지면 누구한테든 불러주는 거라서... 딱히 의미 부여할거 없어요."
그래, 딱 그런 거다. 아이스 브레이킹, 그 이상의 의미 같은 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고 친절해지는거 같은거, 잘 못하니까. 부르는 호칭도, 쨩이나, 뭐 이런거 낯 부끄러워서 못 부르겠고. 그러니까 하다못해 별명 같은 걸로라도. 그냥 딱 그런 의미란 말이지.
"...그렇...군요. 알겠사와요-"
"-저기, 잠시만요."
"응?"
뭔가 좀 침울한 반응의 치즈 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마카베...?
"혹시... 저는, 별명 같은거...없는건가요?"
"...에?"
저 반응은 내가 아니라, 치즈 언니가 한거야. 물론 나라도 저렇게 허를 찔린 반응을 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반응하기 전에 먼저 반응해버려서 뭐라 말하기도 그랬고.
"...어... 치즈언니, 같은 식의 호칭. 말하는거야?"
말없이 살짝 고개만 끄덕여보이는 마카베. 그 건너편에 앉아있던 치즈 언니는...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하고 도저히,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고.
...물론 나도 아까부터, 마찬가지였지만.
아니, 이봐요, 무표정 문예부원씨... 네 캐릭터, 엄청 쿨해야하는거 아니었냐...? 키타카미가 분명 그걸 노리고 널 얼렁뚱땅 이 정체 불명의 단체에 끌어들인거 같은데...
어찌되었든, 저렇게 기대하는 눈빛을 계속 보내오는데, 아무 말도 안하는 건 또 그렇다.
"...마카베. 혹시 너도 뭔가, 내가 부르는 호칭을 바꿔줬으면 하는거야?"
...그렇게 물어보니 또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쩌지. 뭐라고 불러주면 되냐...
>>다이스타임. 2표 먼저 나오는 쪽으로.
호칭을 어떻게 바꿀까요?
1 ~ 20 : 마카베 (어림도 없다! 암!)
21 ~ 80 : 미즈
81 ~ 100 : 미즈키
"...미즈, 는 어때?"
그래. 그냥, 다들 똑같은 방식으로 불러주고 있으니까. 어찌보면, 여기 있는 세 명은 모두 키타카미의 피해자들...이잖아? 피해자라고 하면 좀 어감이 너무 센거같으니, 저 녀석한테 함께 휘말렸다, 정도로 하자.
"미즈, 라..."
가만히 그 말을 되뇌이는 마카베, 아니, 미즈.
...생각보다 더 부드러운 어감이라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네. 그럼, 그걸로."
미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려 언제나처럼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까 전의 대화는 없었다는 듯이.
"...정말이지..."
뭔가 참, 오늘 하루,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싶다.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컴퓨터 연구부에 쳐들어가서 협박을 하려하지 않나...
...아, 그래서 결국 노트북은 내가 가져와야 하는 건가? 근데 애초에 요즘 시대에 노트북이 필요하긴 해...? 어지간하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다 되는데.
...골치아픈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서 아무튼, 키타카미를 말려놓으니 키타카미는 부실에 있지도 않고 멋대로 돌아가버리고, 마카베... 아니, 미즈는 호칭을 바꿔달라고 하질 않나.
뭔가 단계가 더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런 식으로 중간에 징검다리 다 빼먹은 식으로 휙휙 건너 뛰어도 되는거야?
...라고 궁시렁거리기엔 이미 내가 치즈 언니한테 호칭을 편하게 놓아버렸으니. 따질 입장은 아니지 않나, 하고 자각은 하고 있다.
...아 젠장, 모르겠다 모르겠어. 왜 내가 이런 골치 아픈 곳에 말려들어서 할 필요도 없던 고민을 이렇게 하고 있는걸까...
"...저기, 푸우 쨩...? 푸우 쨩...?"
"...아."
치즈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니, 내 쪽으로 뻗어오다가 허공에 머뭇거리며 멈춰있는 치즈 언니의 손.
...그나저나 아주 자연스럽게 정착되어버렸네. 푸우 쨩...
"저기, 괜찮은거여요...?"
"아아, 괜찮아요... 별 다르게 하실 일이 없으면, 먼저 돌아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에?"
"지금 키타카미도 없고 말이죠. 괜히 여기서 시간 끌 필요 없잖아요."
미즈는 뭐, 어차피 매일 똑같이 책을 읽고 있었으니, 스스로 읽을만큼 읽으면 집으로 돌아갈테지.
...그러니까, 괜히 여기서 시간 날리지 말고 집에 돌아가는게 정답, 일거다.
"...저도 이젠 갈거니까요."
"에..."
"뭐 아무튼. 내일 보자고, 미즈. 내일 봐요, 치즈 언니."
...괜히 먼저 갔다고 부담 느끼지 않게, 총대는 내가 먼저 메도록 하자.
>>+3까지 다이스 체크.
체크 값은 85입니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적당히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문예부실을 나섰다.
...그나저나 그럼 이제 당면한 골치아픈 문제는... 노트북인가. 그거 어디서 구해서 가져오냐...
하기사 구하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아니 애초에, 키타카미는 왜, 어째서 컴퓨터를 어디다 써서 뭘 하려고 그러는 건지. 무슨 꿍꿍이인거냐.
...당연히, 그 이유야 다음 날에 바로 밝혀졌다.
"...RED단의 웹사이트?"
"응!"
"...뭐, 만들면 재밌긴 하겠네."
...물론 저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아니 무슨 얘기를 꺼내든 간에 나한테 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불길한 예감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긴 했지만.
"푸우 쨩이 만드는거야!"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슬슬 원패턴이지 않냐, 하는 볼멘 소리를 덧붙여보지만 역시나 이 녀석이 들을리가 없지.
"어차피 푸우 쨩은 한가하잖아?"
"단언하냐."
"난 남은 부원들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노트북은 푸우 쨩이 가져온거잖아?"
...그 노트북을 지금 열심히 만지작 거리고 있는건 넙니다만. 그리고 마우스 없으니 불편하다고 마우스 가져와달라고 궁시렁거리지마. 정 필요하면 네가 가져와라.
"이틀 안에 만들어줘! 사이트가 없으면 활동할 길이 없으니까?"
...활동을 할 예정이었냐? 무슨 활동을?
같은 질문을 던져봤자 대꾸도 안할테니 넘어가자. 고개를 슥 돌려보니, 책상 구석에 앉아 키타카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치즈 언니와, 키타카미가 뭐라고 하든 말든 별 관심도 없이 치즈 언니의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미즈. 정확히는, 미즈가 원래 앉던 자리 옆 구석에 치즈 언니가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아있는 거지만.
...결국 누구에게 떠넘기거나 할 수도 없고, 사이트를 만드는 건 온전히 내 몫이 되는건가.
"...시킨다고 다 될거같냐."
"응!"
"...어이어이..."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저렇게 대답해버리니 원.
어쨌든, 웹 사이트 제작이라...
...컴퓨터 연구부에서 이것저것 프로그램 같은걸 지원해주기로 했으니,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정 모르겠는게 있으면 가서 물어보...
...아니, 그거까진 차마 양심에 걸리니 그러진 말자.
응? 왜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가냐고?
...딱히, 의외로 재밌을거 같아서 의욕이 샘솟거나 한건 아니니까.
...컴퓨터 연구부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전부 깔아주었고. 또, 깔아주면서 사용법이나 작성 요령을 간략하게나마 알려준 덕분에 만드는 것 자체는 방학숙제로 만들던 자작 신문보다도 더 쉽고 수월하게 진행되어갔다.
문제는 이 사이트에 대체 뭘 써놓느냐, 겠지.
"...대체 이 RED단인지 뭔지 하는 단체가 뭘 하려는지부터 나부터 모르겠는데 뭘 써넣냐..."
...활동이념, 이라고 하나? 그것도 없고, 그동안 해온 활동 기록이랄것도 없고. 했던 활동이래봐야 상급생 교실에서 사람 납치하고, 다른 부실로 가서 협박...
...역시 안되겠다.
그런 고로, 그냥 페이지 하나에 'RED단의 사이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임시로 적어놓은 문구 말고 더 추가할래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단장이라는 키타카미 이 녀석은 '빨리 만들어줘!'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말이지...
아니- 도대체가 뭘 만들지를 알려달라고!!
...하아.
...하다못해, 조언이라도 좀 받아볼까.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와 함께 푸우 쨩(...)이 이 상황에 대해 조언을 구하러 갈 사람을 적어주세요.
지금까지 창댓에 등장한 인물로 한정합니다.
"...뭘... 만든다고...? 다시 한번만 말해줄래, 푸우 쨩?"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되물어보는걸 보니, 확실히, 이상한 질문인 모양이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시선을 피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혈하게 쏘아지는 타나카의 시선을 이겨내지는 못하겠으니...
"...그러니까, 키타카미의 동아리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채울 내용이 마땅치 않아서."
"...키타카미 씨가,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뭘 하는 동아리인데?"
...그래, 거기서부터 물어볼거라 생각은 했는데...
"...나도 모르니까 이러겠지?"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어."
그러게나 말이다. 애초에 이 부탁 자체가 전혀 어처구니 없고 무책임한 부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걸 지시받아서 하고 있는 내 심정을 좀 생각해주면 안될까?
대답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내 뜨뜻미지근한 시선에서 타나카도 얼추 무슨 의미인지는 유추해냈는지 따갑게 쏘아보내던 시선을 슬며시 거두어주었다.
"...뭔가 채울게 있긴 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역시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고 키타카미에게 추궁해보라는 원론적이지만 불가능한 소리를 안하는 시점에서 타나카, 너는 훌륭한 반장이다.
"...잠깐. 사이트, 온라인에 개설하는거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설마 학교 동아리랍시고 학교 어드레스로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
...아 미안 타나카. 지금 생각난게 있어서 먼저 가본다.
"잠깐! 푸우 쨩!! 설마-"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정식 인가도 받지 못한, 동아리도 아닌 수상한 단체를 학교 어드레스로 만들어도 되냐? 라고 물어보면 나라도 그건 아니지 않냐-라고 할 거 같은데.
아무튼 일단 기다 아니다 대답하기 뭐하니 일단 피한다.
"...아니 그건 나도 알지만..."
딱히 너한테 면박을 주려고 물어보는게 아니라, 그냥 너무 갑갑해서 질문을 하는거야, 치하.
내가 덧붙인 말에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의 치하는-
"사이트에 내용같은거 채울 필요가 있는 거야?"
"...어?"
본질적인걸 이야기했다.
"키타카미 씨가 뭔가 채우길 바라는 내용같은게 있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어쨌든 이야기는 해줬을거 아냐?"
"아니 거 정론이긴 한데..."
"사이트를 개설해놨다고 나중에 수정이 불가능하거나... 어? 그런거야? 올리면 영구불변인가?"
...그렇게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은 짓지 말자... 이 녀석. 생각해보니, 스마트폰도 안쓰고, 중학교 때 숙제 같은 것도 프린트 같은거 없이 죄다 손으로 써왔지... 가능하면 누가 날 잡고 이 녀석에게 컴퓨터를 좀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애초에 온라인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단어 중의 하나가 '업데이트'인데."
...다시 한 번 치하의 눈빛이 싸늘해졌었지만, 그래도 역시 착한 심성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다면 딱히 걸리는건 없는거 아냐? 일단 만들어만 놓으라는 부탁이니까 만들어놓고 나중에 고치든가 하면 되지."
"...그런가?"
"괜히 뭐라도 써놨다가 키타카미 씨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다시 고쳐야하잖아."
...역시 그냥 적당히 아무 사이트나 있을법한 탬플릿으로 채워두고 배째라하는게 맞겠구만.
"아무튼 고마워. 도움이 됐어."
"어어... 그런데, 저기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타나카 씨는-"
...아, 일단 먼저 간다.
"...묻지마."
아니, 애초에 소문에 빠삭한 너라면 대충은 알지 않냐.
내 퉁명스러운 말에, 아리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예에... 뭐, 타나카 씨가 푸우 쨩을 쫓고 있는거 같은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걸 캐물어서 아리사한테까지 굳이 불똥이 튀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말이죠!"
"영악하구만."
"뭐 그래서, 치하야 쨩한테도 뭔가 물어보고 하시던데. 대체 뭘 하고 다니시는건가요?"
문득,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사진 찍기나, 컴퓨터, 온라인... 이런 쪽에는 상당히 빠삭했지. 진즉 아리한테나 물어봤으면 타나카의 관심을 끌거나 해서 피곤해 지진 않았을텐데.
"...아리, 너. 사이트 개설에 대해 좀 아냐?"
"네에, 어느 정도는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아리 녀석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뭐 사이트를 만드는 거까지는 그렇다쳐도 말이죠? 개설을 어떻게 할 생각인건가요?"
"...학교 동아리니까 그냥 학교 어드레스에 슬쩍하지 뭐."
이건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타나카가 먼저 꺼낸거라고. 난 아이디어를 차용했을 뿐, 이런 악의 적인 발상은 어디까지나 타나카가 먼저 한거다.
"...뭐, 아리사가 뭐라 할 부분은 아니지만... 푸우 쨩이 원래 이렇게 막 나가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조금 굴욕적이다. 아니, 내가 알기론 내 주변에서 가장 막나가는 녀석이었던 마츠다 아리사한테. 저런 말을, 어처구니 없다는 태도로 하고 있는 걸 들어야하나...?
"아무튼, 아리사는 푸우 쨩과의 정을 특별히 생각해서, 못 들은걸로 해줄게요! 잘해보라구요, 푸우 쨩!"
"...아아. 거참, 눈물나게 고맙다."
대충 주워온 접속 카운터... 프리 CGI니까 상관 없을거고. 적당히 페이지에 넣어두고, 연락받을 메일주소를 기재해두고.
게시판은... 학교 어드레스로 기생할생각이니 아직 좀더 눈치를 봐야할거고... 애초에, 게시판을 만들어두려해도 뭐에 쓸 게시판일지도 정해두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런 고로, 접속 카운터와 메일 주소만 덩그러니 있는 무성의한 홈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이걸... 학교 어드레스를 써서, 그래. 하위 페이지로...
"...이정도면 되겠지."
페이지를 게시하고, 인터넷 상에서 제대로 표시되고 있는지를 확인 하고서 프로그램을 차례로 종료했다.
덤으로, 타나카의 추궁 같은건...
...저질러놓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덤으로, 시킨건 어디까지나 키타카미 녀석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북을 덮는데,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카...아니, 미즈?!"
...정신 차리고 호칭 바꿔부른 나, 굿잡. 뒤를 돌아보니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카베 미즈키는,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1 ~ 80 : 두툼한 양장본 책.
81 ~ 100 : 저기...
"이거."
...두툼하네. 미즈가 건네는 책을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겉보기에 걸맞게 묵직한 무게. 표지는... 며칠인가 전에 미즈가 읽고 있던 해외 SF물...인가.
"빌려드릴게요."
"어?"
미즈는 짧게 말한 뒤, 내가 뭐라 말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방을 나가버렸다.
...키타카미든, 미즈든... RED단 멤버라는 인간들, 내 의견은 별로 들을 생각이 없는건가.
별 수없이 양장본을 들고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푸우 쨩! 사이트는? 다 됐어??"
...아주 타나카가 다 들으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구나, 키타카미.
다행히도, 때마침이라고 해야하나. 타나카는 아직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되기는 됐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이트라서. 메일 주소랑 방문자 카운터 뿐인데."
"응, 그 정도로도 충분해! 메일 주소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그럼 그냥 휴대전화 메일 주소를 알려주는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안-돼! 메일이 쇄도하면 곤란하잖아."
"갓 등록한 메일 주소에 메일이 쇄도하겠냐...?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데."
"그건 비밀!"
...아. 저 해맑은 미소. 이젠 보기만 해도 불길해. 또 뭘 하려는 생각이야.
"방과 후가 되면 알게 될거야. 물론, 그 때까지는 극비사항이야!"
...별로 방과후에도 알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조퇴라도 노려볼까.
...점심시간 이후로 뭔가 꼼수를 써서 조퇴를 하는 방법 같은건 마땅치 않았고, 그리고 다음날부터의 후폭풍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결국 별수 없이 동아리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뭘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혹을 느끼면서도 몸은 왜 자연스레 동아리 방으로 향하고 있는걸까.
어찌되었던 간에 문예부 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치즈 언니와 미즈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여어, 안녕."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하는 치즈 언니. 하긴, 미즈랑 단 둘이 밀실에 있으면 피곤하기도 하겠지.
...그나저나, 어제 그런 꼴을 겪었으면서도 용케 여길 다시 찾아왔네. 굉장한 멘탈, 이라고 해야할까.
그 굉장한 멘탈의 치즈 언니는 마침 생각 났다는 듯 갑자기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뭔가를 찾는 듯 했는데...
"그, 혹시, 키타카미 씨는...?"
...역시 그 녀석을 찾...아니, 혹시나 있나, 하고 경계하고 있다는게 올바른 표현이겠지.
"글쎄, 6교시부터 안 보이던데... 그냥 이대로 조퇴한 거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물론, 그런 바람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박살나버렸지만.
"야~호!"
라는 인사와 함께 등장한 키타카미는, 양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종이 봉투를 적당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얍."
철컥, 하고 잠기는 문예부의 문.
...느낌이 안좋아...
"...이번에는 또 뭘 하려는거냐, 키타카미. 말해두겠는데, 강도 같은 짓이나, 협박은 하지마라."
"응?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는데."
"...언제는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냐...?"
"뭐, 대체재가 있었으니까 됐잖아? 자, 그건 됐고. 이거 좀 봐!"
종이 봉투 안에서 키타카미가 꺼내든건, 뭔가 손으로 쓴 글자가 인쇄된 A4지 크기의 갱지...
"RED단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전단지야! 인쇄실에 몰래 들어가 200장 정도 복사해왔어!"
"그래서 6교시 이후로 안보였던거냐?!"
용케도 안들켰다, 싶다. 하기사 생각해보니, 수업 도중이면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에 들어가있으니...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키타카미가 들이미는 전단지를 읽어보니... 대충, 뭔가 신비한 일이 있으면 해결해줄테니 의뢰해오라는 내용을 장황하게 길게 늘여쓴 글.
키타카미 이 녀석, SF나 판타지, 호러... 뭐 아무튼 이런 이야기의 세계를 동경한다 이런건가.
"잘 썼지?"
"...뭐..."
딱히 긍정도 부정도 아니게 애매하게. 부정하면 나한테 써보라고 할거고. 긍정하면 뭔가 또 추가로 시킬것 같아서. 적당히 황색지대에 있는게 회피하는 방법이다-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그냥 동의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자, 그럼 나눠주러 가볼까?"
"뭐? 어디로?"
"교문이지. 이 시간이면 아직 하교 안한 학생들도 많을거아냐?"
"...네, 네. 그러시겠죠..."
대충 나눠주면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 봉투를 들려고 했는데.
"잠깐. 그거 전에 먼저 정할게 있어."
"어?"
"다들, 이거! 하나 씩 뽑아!"
...그러면서 키타카미가 건낸건... 뭐야, 제비 뽑기냐?
"2명이 당첨이야! 자, 먼저들 뽑아! 난 마지막 남은걸로 할게!"
...무슨 꿍꿍이냐...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불안으로 눈빛이 떨리고 있는 치즈 언니와,
"자, 미즈키 쨩! 하나 뽑아!"
"...네."
키타카미가 제비 통을 슥 들이미니 아무 거부감 없이 하나를 뽑아드는 미즈.
"으, 그, 그럼..."
"...하아, 알았어."
아무도 안 뽑았으면 어떻게 확인부터 가능했을텐데. 결국 얼렁뚱땅 차레대로 제비를 다 뽑고야 말았다.
>>+4까지 다이스. 낮은 순서로 2명을 뽑습니다.
+1은 미즈키, +2는 치즈루, +3은 푸우 쨩, +4는 레이카입니다.
이리저리 대충 종이를 찢어서 꼬아놓은거같은 제비...
뽑아서 확인해보니까, 내가 뽑은 제비의 아래 쪽에는 빨간 볼펜으로 적당히 색칠이 되어있었다.
반면에, 치즈 언니와 미즈가 뽑은 제비는 아무런 색이 칠해져있지 않은 그냥 종이쪼가리.
"앗, 푸우 쨩, 빨간 제비야?"
"...뭐야, 색칠 된게 당첨이야?"
묘하게 들뜬 키타카미의 목소리가 불길해서 물어봤지만, 녀석은 역시나. 언제나처럼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음, 그럼 나랑 푸우 쨩이네. 뭐, 옷은 4명분 다 준비했지만, 굳이 4명이서 다 나간다고 해서 효율적이진 않을테니까 두명만 가기로 생각한건데, 마침 잘 됐어."
"...옷? 뭘 준비해?"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녀석이 주섬주섬 꺼내든 천 쪼가리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짠짜잔!"
도라x몽처럼 득의양양하게 키타카미가 꺼내든 그 천쪼가리는... 그 천쪼가리 하나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녀석이 연달아서 꺼내드는 아이템들은, 저절로 내 얼굴을 한껏 구겨놓기에 충분했다. 물론 내 기분도 함께.
딱 달라붙는 검정색 소재로 된 옷. 망사 타이츠에, 귀 머리띠, 나비 넥타이에 하얀색 깃, 커프스 및... 앙증맞은 꼬리.
"...왜 바니걸 의상이 나오는거냐."
"응? 입을거니까?"
"장난하냐?!"
"진지한데?"
키타카미가 하는 천연덕스러운 대답은 거의 대부분은 내 할말을 잃게 만들어서 더이상의 반론을 못하게 하는, 그런 효과가 있었는데...
...그거, 내가 직접 당하는게 아니어서 그랬던거구나. 미안합니다, 치즈 언니. 당사자가 되보니까 진짜 환장하겠네요.
"내가 그걸 입는거냐. 어이, 진심이냐고."
"걱정마! 치수는 다 맞춰왔어! 이게 분명 푸우 쨩의 옷, 맞다구! 안에 확실하게 푸우쨩이라고 흰색으로 적어놨-"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방금 저 말은, 내가 당첨되지 않았으면 미즈나 치즈 언니에게 입힐 바니걸 의상이 이미 준비되어있다는 소리인걸까. 아니, 뭔 미친 소리야 이게. 아니, 저걸 입고 진짜로, 아니! 아니!!!
"저걸 입고 교문에서 전단지를 돌리라는거냐?!"
"당연하지."
"싫어!"
"흐응~ 그치만 푸우 쨩은 이미 제비를 뽑았잖아?"
...큰일이다. 눈빛이 맹수의 그것으로 돌변한다. 막상 대상이 되니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키타카미의 기백에 눌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건, 굉장한 실책이 되었다.
"푸-우-쨩-!"
"오, 오지마!!"
"괜찮아! 오래 안걸리니까-"
"시, 싫다니까! 잠깐! 멈추라니까!!"
다급하게 치즈 언니와 미즈를 돌아봤지만, 미즈는 아까 제비가 끝났을때부터 다시 독서에 몰두할 뿐이었고. 치즈 언니는...
"...죄송하여요..."
"아니 죄송하지마시고 말려주시라니깐요오오오!!!"
...물론 키타카미 레이카의 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해서, 내가 어찌해볼 도리는 없었다.
"정말, 푸우 쨩. 여자아이 답게 조신한 단어를 써야지."
"네가 할 소리냐..."
머리에 뭔가 꽂고 다니거나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걸을때마다 흔들리는 이놈의 토끼귀가 거슬린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바람이 소름돋게 기분나쁘다. 등도 서늘한게 계속 소름이 돋을것만 같다. 그리고 이놈의 망사 타이츠는 왜 이렇게 조이는거야. 그리고 이 깃은 대체 왜 필요한거야. 최소한의 양심이냐? 뭔 챠밍포인트는 뭔놈의 챠밍포인트인데.
"어때? 치즈루 쨩?"
"...자, 잘 어울리어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치즈 언니를 노려보았지만, 그냥 그 말만 하고 시선을 피해버리고 만다. 뭐... 어쩔수 없다는건 이해하지만. 내가 어제 보호해주지 못한것도 있으니까 어쩔수 없지만. 이해는 하지만...!!
"이걸로 완벽하게 주목을 끌 수 있을거야!"
...그래, 너는 확실하게 주목을 끌겠지.
키타카미는 그 압도적인 몸매로, 이 파괴적인 옷을 입으니 확실히 남자들이 이 옷에 왜 열광하는지 알것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 모습이라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전단지를 받아들거야. 그치?"
"...그야 이런 코스튬을 걸친 녀석이 두명이나 어슬렁거린다면 원치 않아도 눈에 띄겠지...!!"
"뭐, 돈값을 하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풀세트라서 꽤 비쌌어."
"...대체 어디서 이런걸 샀는데."
"인터넷!"
"뭐...그렇겠지..."
...참 오묘한 기분이네. 저녀석이랑 같이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랑,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구경거리가 되기 싫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키타카미랑 같이 나가는건 또...
"...난 도저히 못가겠어."
버티기다. 테이블이든 뭐든, 추해보여도 어쩔수 없다. 뭐든 붙잡고, 다 하교할때까지 버틸거야...!!
"에에, 가자구 푸우 쨩."
"아 싫어! 안 가! 못 가!"
에휴,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쉰 키타카미는...
"으아아!! 이거 놔!!!"
"가자~♬"
별다른 힘을 안들이고 나를 테이블에서 가볍게 떼어내고는, 옆구리에 들쳐메고 문예부실 밖으로 나섰다.
"아 놓으라니까아아아-!!"
"푸우 쨩?"
"아 왜!!"
"계속 소리지르고 버둥거리면, 치즈루 쨩에게 푸우 쨩의 바니걸 화보를 찍도록 할거야?"
" "
"응, 옳지옳지. 얌전히 가서, 얌전히 전단지만 나눠주고 돌아올거니까?"
...그 전단지, 지금 네 손엔 없는데.
키타카미도 그걸 깨달은 모양이다.
"아 맞다! 치즈루 쨩, 전단지!!"
"네, 네에!"
...아니, 소리지른다고 바로 따라올 정도로 이미 조교는 끝난건가요, 치즈 언니...
......그렇게 전단지 봉투까지 살뜰하게 챙긴 두 마리의 토끼는, 교문을 향해 가볍게(?) 나아갔다.
>>다음 연재시까지... 전단지를 나누어주러 가서 일어날 일들을 가볍게 적어주세요.
지금까지 나온 등장 아이돌 이외에 아이돌의 추가 등장은 제한됩니다.
오, 오해야 오해...
우효오오오!
창피해.....
...반쯤은, 아니 확실하게 키타카미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교문으로 가는 동안, 점점 하교 하는 학생 무리가 주변에 많아지는 걸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뿌리치고 도망쳐버리고 싶었지만.
"자, 도착!"
"...하아..."
"푸우쨩! 뭐하고 있어! 빨리 할 일을 해!!"
"...악마 같은 녀석..."
얼굴에 피가 몰려있는걸 나 스스로도 알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얼굴이 시뻘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어쨌든 여전히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나와 달리, 키타카미는 당당하게 온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RED 단입니다! 뭔가 신비한 일을 겪어보셨거나, 혹은 겪고 계신분이 있다면 저희한테 문의해주세요!!"
물론, 지나가던 남학생들은 키타카미가 뭐라고 하는지 같은건 별 관심 없이, 키타카미의 몸매나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고. 키타카미는 그렇게 넋을 놓아버린 남학생들의 손에 전단지를 하나씩 반 강제로 쥐어주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고있는거야. 완전히 구경거리잖아, 이거!!
"그치만 이래야 이목을 끌수 있잖아? 봐, 다들 전단지를 받아가려고 몰려들고 있는데-"
"전단지가 아니라 널 보려고 오는거겠지!!!"
"아무튼 아무튼! 푸우쨩도 빨리 나눠줘! 이건 단장 명령이야!"
"명령이고 나발이고..."
"RED단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내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이 끔찍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겠지? 다 집어던져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키타카미가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기에...
"...으..."
...쭈뼛쭈뼛, 키타카미의 옆에서 전단지를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있는 당신. 나더러 의지가 약하느니, 그런 소리 하지마. 지금 이 정신나간 녀석 덕분에 온통 인파로 둘러싸여서 도망칠 길조차도 남지 않았단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이 녀석이라면 분명 자기가 내뱉은 말은 철저하게 지킬테니, 아주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이 망할 전단지를 하나라도 더 돌려서 저 녀석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으으으..."
"신비한 일을 겪게되면 저희에게 문의해주세요!!"
제발 부탁인데 문의고 나발이고, 이 망할 종이를 받아들었으면 좀 그대로 돌아가주길 바란다.
내가 들고 있던 봉투의 절반 정도를 비웠을 때...
"우효오오오오!!"
찰칵! 찰칵!!
"...어이."
굉장히 불길한 환호소리와,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셔터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어느 한쪽으로 확 분출되기 시작하는 걸 깨달았다.
"...야! 아리!!!!"
얼굴에 온통 일던 불이 한순간 눈으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땅바닥만 쳐다보던 시선이 순식간에 올라간다. 그리고 이 주변에 분명 존재할 오래 묵은 악우를 뒤쫓았는데...
"치, 치하..."
"...하아."
한심함, 동정... 뭔가 이것저것이 뒤섞인 시선을 던지고 있던, 마츠다 아리사와 나란히 서있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발견한 순간. 분노는 다시 민망함으로 돌변했다.
"...오해야."
치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마츠다 아리사는 본인이 그렇게 아껴 마지않던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넌 나중에 죽었어.
그리고 이 지옥과도 같은 순간은.
"...저기, 두 사람?"
어마무시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타나카 코토하의 손으로 마침내 끝을 맺게 되었다.
"잠깐, 같이 교무실 좀 갈까? 바바 선생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당장.
냉엄하게 덧붙이는 타나카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껴야할까, 아니면 민망함을 느끼고 도망을 쳐야하는걸까.
키타카미 레이카는 매우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음. 푸우 쨩! 난 전단지 다 나누어줬으니까 잠깐 화장실 갔다올게!"
뭐?
"뭐, 뭐? 야, 키타카미!! 얌마!!!"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키타카미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게 전혀 믿어지지 않는 어마무시한 균형감각과 속도로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황망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푸우쨩? 일단 같이 가줄래?"
"...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치하와, 으귝, 하고 누군가에게 쥐어박힌-보나마나 치하겠지-아리를 뒤로 하고.
나는 타나카 코토하에게 이끌려 교문에 모인 인파를 헤치고 다시 학교 건물 쪽으로 돌아가게 됐다.
>>+3까지. 교무실에서 나눌 대화.
일단 코토하와 코노미 센세는 있어요.
줄리아 "어어... 그게..."
코노미 "...잡아 와."
줄리아 : 이건 안 돼요!
코노미 : 토 달지 말고 쌤이 내놓으라 하면 빨리 내놔!
줄리아 : 지금 이거 탐내시는 거죠?
코노미 : 아, 아니거든?!
코토하 : 지금도 하이힐 신고 계시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코노미 선생님은 하이힐 신으나 안 신으시나 키에 별 차이가...
코노미 : 야!! 학생회장이나 되는 애가 이래도 되는거야?!
따로 등장인물 받는 앵커가 없는 경우엔 지금까지 나온 아이돌로만 한정합니다.
>>+1 사소한 오류 부분은 제가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으딜 감히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바니걸 차림을 하고 다니고! 하려면 적어도 나처럼 이정도 섹시는 돼야지!
타나카의 뒤를 따라간 끝에 도착한 교무실에는...
"...왔니?"
바바 선생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교무실에 내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를 사납게 쏘아보고 있었다.
...저기, 저는 억울합니다만...
한동안 나를 사납게 쏘아보던 바바 선생은 문득 생각났다는듯, 표정이 풀어지며 내 옆의 타나카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타나카 양? 키타카미 양은 어디간거니?"
"...도망갔어요."
그 대답에 으겍, 하고 자세가 풀어지는 바바 선생. 죄송합니다, 선생님.
"당장 잡아오...라고 하는건, 키타카미 양이 그동안 해온 기행들을 생각하면 불가능하겠지."
잘 아시네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담임교사의 혼잣말에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그건 그거고..."
말끝을 흐리던 선생님은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부르며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치기에 이르렀다.
...아, 이거 거참 더럽게 쪽팔리네...
"...교내에서 그 복장은 대체 뭐니?"
"어...키타카미가 입힌거라서요."
어떻게 제대로 저항해볼새도 없었다. 힘은 더럽게 세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지...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치즈 언니. 다음에는 꼭 험한 꼴 당하지 않게 도와줄테니까요.
마음 속으로 나 혼자 열심히 다짐하는 동안, 이런 기상천외한 일은 처음 겪어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어조로 바바 선생이 훈계를 다시 시작했다.
"...바니걸에 하이힐이라니... 학생한테 허가된 물품은 아니지."
"죄송합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히 나올 이야기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교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접근이고. 나 개인으로서는 처참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합당하게 흘러가는 상황자체에 불만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
좀 이상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이런 정상적인 상황에 위안이 되고 있던 찰나.
"...그러니까. 일단, 압수하는걸로."
"...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의상, 압수야. 제출하렴."
"...저기, 옷은...?"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는데, 내가 물어본 말도 말이지만, 바바 선생은 순간적으로 '아차'싶었는지 헛기침을 작게 하고는 다시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옷은 갈아입을 수 있게 해줄테니까, 일단 하이힐은 벗어놓고."
"...그, 죄송하지만 그건 안되겠는데요."
이 옷이 죄다 주인이 따로 있는지라.
설마하니 이걸 내가 직접 샀을거라 생각은 안하셨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는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그 뒤에 키타카미를 잡아오든 어쩌든 처벌은 키타카미와 함께 받아야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바바 선생은 뭔가 역린이라도 눌린 것 마냥 발끈했고...
"토 달지 말고, 선생님이 내놓으라고 하면 빨리 내놔! 갈아 신을 신발정도는 빌려줄테니!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압수하는 거니까 주인이 누구고 뭐고 따질 필요가 있니?!"
...정론인데...
"애초에 말이야! 어딜 감히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파렴치하게 바니걸 차림을 하고 다니니?! 하려면 적어도, 적어도 나처럼 성인의 섹시함을 풍길수 있을때-"
"...저기, 선생님."
한동안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타나카가 조용히 오른손을 들고 바바 선생에게 말을 건넸다.
"왜!"
여전히 열이 올라서 그런지 씩씩거리던 바바 선생.
"계속 그러시면 조용히 처리하고 싶으시다는 처음 생각이랑 엄청나게 멀어질거란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윽..."
그 말은 바바 선생에겐 꽤나 효과가 있었는지, 말문이 막히신 모양이다.
본인 책상에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던 담임교사는,
"...그래, 알았어. 나중에 다시, 키타카미랑 같이 부를거니까... 오늘은 옷 얌전히 갈아입고 돌아가렴. 가능하면 빨리 뭐라도 입어서 좀 가리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마를 짚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은 열심히 허공을 휘저어지고 있는걸로 봐선, 저 제스처는 빨리 돌아가라는 뜻으로 봐도 되겠지...
"...아...네..."
...내가 이 상황에서 뭔 말을 하겠냐. 빨리 문예부실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야지. 이 이상 구경거리가 되기 전에.
교무실 곳곳에서 늘어나는 시선들을 애써 못본척 무시하며, 나는 바바 선생에게 꾸벅 목례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3까지 다이스 체크.
체크 값은 90입니다.
교무실을 나서자, 타나카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나를 빤히 바라봤지만...
"...아니야."
크게 숨을 내쉬고는 그렇게 돌아서는 타나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바바 선생과 마찬가지로 꾹 참고 보내주려는 모양이다.
"아참, 내 교복 재킷은 내 자리 위에 올려놔줘. 여분은 어차피 집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 너 무슨..."
무슨, 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타나카가 교무실을 나서기 전에 어느 샌가 자기 겉옷을 벗어 나한테 걸쳐놓아서 그나마 시선을 덜 받고 있었다.
도움 받은 쪽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이 녀석은 착실히 어떻게 정리할지를 다 생각하고 까먹지 않도록 일러주기까지 하고 있다.
쿨하게 짐을 챙기러 교실로 돌아가는 타나카의 뒷모습이...
...거, 이래저래 배려해줘서 고맙다...
심신이 완전히 지친 채로 문예부 실로 들어가니, 불안해보이던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던 치즈 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푸우 쨩?!"
-엄청나게 기겁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마중을 나왔다. 거,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없이 터덜터덜 책상쪽으로 다가가니, 치즈 언니가 황급히 의자를 꺼내 갖다주었다.
"...하아..."
이래저래 얼굴에 열이 오르기도 하고 해서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성격이 딱히 이럴때 울고불고 하는 편은 아니라 눈물이 나거나 하진 않았는데, 차가운데에 얼굴을 식히고 싶기도 하고 똑바로 앉아있을 기운도 없어 그냥 그러고 싶길래.
"...괜찮은 거여요...?"
괜찮겠습니까. 물론 지금 뭐라 대꾸하든 간에 쏘아붙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대답은 따로 하지 않았다. 문득, 아까 키타카미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옷을 갈아입혀질때 부실 바닥에 널부러졌던 옷가지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흘끔 살펴보았는데...
다행히도, 치즈 언니가 잘 모아서 어딘가에 정리해뒀는지 지금 눈에 띄지는 않았다.
어, 저기...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치즈 언니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 관심 없다는 듯 여전히 책을 읽고 있는 미즈. 그리고 완전히 지쳐서 뭐라 말할 기운도 없는 나.
...그렇게, 한동안 불편하기 그지 없는 침묵이 이어지던 중-
쾅!
"다녀왔습니다-!!"
...키타카미가 돌아왔다.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와 함께 레이카가 부실에 돌아올 때까지 겪은 일을 적어주세요!
다이스값 체크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90입니다.
물론 큰 액수의 교내 지원금을 얻어왔다!
"...어라? 왜 그래 다들?"
들어올 때 반응이 하나도 없어서 뭔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미즈는 원래 말이 없으니 조용하고. 치즈 언니는 뭐 여기서 굳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할 것 같지도 않지만, 인사 정도는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내 눈치를 보는 거겠지. 그리고 나는...
"...하아."
"전단지, 전부 나눠줬어! 적어도 우리 RED단의 존재랑, 메일 주소는 싹 퍼질테니까 이제 신비한 일이 마구마구 들어올 거야!"
퍽이나 그렇겠다. 어쨌든 용케도 다 나눠...
"푸우 쨩이 두고 간 전단지도 내가 다 챙겨서 돌아다니면서 다 나눠줬지!"
...거참 대단하구만 그래. 정말 고맙다. 딱히 결혼할 생각은 없었는데 선택지를 하나 날려버려준것도 참 고마워.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해줘서 참 고맙다 그래.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내 말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군. 뭐,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다.
"새로운 부원을 물색했습니다! 내일, 여기로 데리고 올거야!"
"...하?"
"앗, 푸우 쨩도 새 부원은 관심 있구나?"
그야 피해자가 더 늘어난다는데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지. 이미 바바 선생한테도 찍힌 거 같은데, 이런 불법 단체가 얼마나 더 간다고 사람을 더 뽑겠다는건지...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이정도면 충분해! 음!"
...그래. 민폐는 그쯤이면 충분한거 같으니까. 듣던 중 참 반가운 소리이긴 한데 말야...
"...지금 뭐하려는 거냐."
"응? 그야 갈아입혀주려는거지?"
"필요 없어!!"
"그렇지만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등쪽의 후크, 안풀릴걸?"
"아니 네 도움같은건... 누가 좀 말려봐!!"
아와와와, 하고 당황하는 치즈 언니를 뒤로하고...
...아. 됐어.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자.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남자는 없으니까 세이프인걸로 하자. 그래.
>>+3까지 다이스. 2표 먼저 나온 쪽으로.
1 ~ 50 : 다음 날,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김에 학교를 쉬었다. 아니 그 난리를 피워놓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학교에 가냐.
51 ~ 100 : ...강철멘탈 푸우 쨩.
...어제 살갗을 많이 드러내고 돌아다니면서 찬바람을 많이 쐬서 그런가. 아니면 극도의 스트레스로 몸 컨디션이 나락으로 간건가.
어쨌든 감기기운이 돌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억지로야 일어날 수는 있는데, 굳이 가고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얌전히 학교를 쉬겠다고 부모님께 보고했고, 적당하게도 37.2~3도를 오가는 체온이 차마 강요할 수 없도록 해줘서 다행히도 무사히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하아..."
...그래, '무사히' 말이지...
솔직히 학교에 가면 무슨 이야기가 돌지,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 쓸데없이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애초에 조용히 묻혀지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게 무슨 꼴인데?!
울컥해서 벌떡 일어날 뻔했지만, 그래봤자 빨리 낫지 않는건 내 손해니까 참아 넘기고 얌전히 누워있기로 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쉬기라도 푹 쉬어서...
"푸우 쨩! 들어가도 돼?"
"...아니."
"에에~ 푸우 쨩, 쪼잔해!"
좀 가라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신님, 제발 방에 들어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도 부처도 없는 모양이다.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와 함께 '푸우 쨩의 동생'역할을 할 아이돌을 지정해주세요! 765 & 줄리아보다 연소조 한정입니다!
가장 높은 다이스 값으로 진행합니다!
아미마미쨩
두사람이 안되면 홀수는 아미, 짝수는 마미인걸로
"쥬스 들고 왔는데, 그럼 나 혼자 다 먹어버려야지~"
"...들어와."
뭐, 빈손으로 와서 훼방만 놓고 가는게 아니라면야.
"데헤헤... 차라리 쪼잔한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건 왤까, 푸우 쨩..."
"언니라고 해, 미라이."
"그치만 푸우 쨩은 푸우 쨩인걸."
"...됐다 됐어..."
베실베실 웃으면서 쥬스를 건네주는 이 녀석은 바로 내 동생이자, 이 '푸우 쨩'이라는 별명을 퍼뜨리기 시작한 원흉인 미라이.
별명 자체는 몇 년 전에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온거긴 한데, 이걸 굳이 친구들... 치하와 아리 앞에서 요 녀석이 불러주는 덕분에 퍼지기 시작했지...
"......"
"응? 왜 그래, 푸우 쨩? 후엣?!"
...딱히 원한같은거 오래 끌고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침 생각난김에 화풀이 좀 하자.
"호, 호히히마(꼬집지마)!! 엄마아!!"
"...학교나 가라."
뺨 좀 주물러 놓으니까 부루퉁해져서 나가는거 보소. 중학교 들어간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저런다 저래...
...잠깐.
"...내 쥬스."
분명 동생 녀석 골려주기 전에 머리 맡에 쥬스 팩을 내려놨던거 같은데. 어디갔지?
그 답은 방 문 쪽을 바라 봤을 때, 혀를 '베-' 하고 쭉 내밀고 있는 미라이가 가져온 그대로 손에서 쥬스 팩을 살랑 살랑 흔들어보이는 걸로 바로 나왔다.
"얌마!"
"메~롱이다!"
베개를 집어 확 방문 쪽으로 던지니, '이크'하고 베개를 피하고는 그대로 방문을 열어둔 채로 뛰쳐나가는 녀석.
"메에롱~! 푸우 쨩 바아보오~!"
"...너 저녁에 두고보자..."
쥬스를 마시긴 커녕 굳이 침대에서 또 일어나서 문 닫고 베개까지 주워오게 만들다니...
...베개는 내가 집어던진거니까 할 말 없다고?
...시끄러워.
간만에 가지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이 이렇게나 달콤할 줄은 몰랐다.
그야 뭐, 고교에 올라간 이래로 키타카미하고 얽히기 시작해서, 그 녀석한테 시달리지 않은 날이 없으니까. 어제만 해도...
"......"
...됐다. 쓸데없는 생각말고 잠이나 자자. 애초부터 생각 안할라고 어제부터 메일이고 전화고 뭐고 무음으로 돌려놔서 하나도 안받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굳이 내가 먼저 떠올려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겠냐...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감으니 감기 기운 때문인지 순식간에 잠이 들었고...
일어났을 때는 점심 때를 한참 지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집어들어 확인해보니 이미 오후 4시. 그리고...
"...메일이..."
...좀 와 있네.
>>푸우 쨩(...)이 받았을 메일들의 내용을 간략히 적어주세요!
....감기에 걸린 것 뿐인데, 뭔가 오해한 것 같다.
보낸 사람이... 마츠다 아리사, 타나카 코토하... 아리는 말하나마나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고... 타나카는 반장이라고, 전달사항 때문에라도 메일주소 달라고 해서 줬었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내가 치즈 언니랑 키타카미한테 내 메일 주소를 알려줬었나...?"
...일단 RED단에서 보낸 메일은 좀 나중에 읽는 걸로 할까.
아리가 보낸 메일부터 차례대로 열어보니,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
[푸우 쨩...? 왜 갑자기 연락도 없는건가요...?]
...뭐, 죄라도 지었냐...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이 녀석, 어제 사진 신명나게 찍어댔지? 죄를 짓긴 했다. 하기사, 평소 같으면 그렇게 막 도촬해댔을 때 내가 전화를 하든 뭘하든 간에 당장 다 지워버리라고 갈구는데. 아무 말 없이 잘 시간이 되니 걱정되서 저렇게 보냈나...
[저기, 무슨 일 있는건 아니죠...?]
아침 조례가 끝난뒤 보낸 메일도 역시 걱정하는 내용. 뭐, 하루 아파서 쉬는 정도는 딱히 연락하고 뭐하고 할 필요도 없는거니까 그냥 조용히 쉬려고 했더니만...
[...아리사가 잘못했어요... 사진은 푸우 쨩이 원한다면 다 지울게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주세요... 보고싶어요, 푸우 쨩...]
...점심시간에 보낸 메일은 이제 애원조로 바뀌어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으로 확대 해석하는거야, 이 바보는.
"...아니, 단순한 감기거든?"
어제 찬바람 급작스레 쐬고 스트레스까지 받아서 컨디션이 좀 망가지는 바람에 살짝 몸살기 돌아서 쉬는거 뿐이니까...
...아무래도, 수업이 끝나면 이녀석한테는 전화를 해줘야할 듯 싶다. 아리한테 전화를 하면, 치하한테도 자연히 연락이 갈테니 겸사겸사가 되려나.
자, 그래서 아리의 메일은 다 봤고...
"타나카는..."
[푸우 쨩. 오늘 푸우 쨩이 학교에 안 나온거 보고, 바바 선생님이 너 부끄러워서 꾀병인척 하고 안나오는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연락을 하고 쉬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을 하셨어서. 혹시 메일 보거든 선생님께 연락 줘.]
...아니 뭐 아프긴 했습니다만... 저거 설마 애들 앞에서 다 얘기하셨을리는 없...겠지? 보긴 했으니, 연락은 해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담임 교사에게 알리는게 맞긴 하니까...
어쨌든 간에, 타나카나 아리가 보낸건 지극히 일상적인, 정상적인 내용들인데...
"...그냥 아파서 못 본척하는게 좋지 않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말이지, 내가 키타카미나 치즈 언니한테 주소를 알려줬던 기억이 없단 말이다...! 치즈 언니는 메일 주소를 교환할 여유가 마땅치 않았고, 키타카미하고는... 내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메일 주소를 교환했겠냐고. 시달리는건 학교에서 만으로 충분하다.
"...일단 끈적거리니까 씻고와서 생각하자."
골치 아픈 거부터 보기보단, 일단 샤워부터다. 답장도, 샤워하고 와서 하면 되겠지.
...라고, 단순히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심하진 않지만 땀에 젖은 파자마를 갈아입고, 씻고 나오니 컨디션이든 기분이든 한결 나아진 것같다. 내일은 다시 학교에 가야하기도 하고, 아리나 바바 선생한테는 연락을 하는게 맞겠지. 아까는 몰라도 지금은 종례가 끝났을테니, 바로 전화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그런데 그 전에... 매우 찜찜하긴 하지만 어쨌든 온 RED단의 메일부터 읽어볼까.
...궁금해서 어쩔수 없잖아.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치즈 언니의 메일을 열어보니.
[푸우 쨩? 집에서 잘 쉬고 계시와요?]
...아주 상식적이고 고상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거지. 이래야지.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이렇게 읽을 사람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글이어야지. 말이든 글이든, 자고로 그래야하는 법이라고.
물론 내가 이렇게 불평불만을 할 사람은 이런 걸 단 하나도 귀담아 들을리가 만무하니까 해봤자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으니, 포기하도록 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다음 문장을 읽어보니.
[푸우 쨩의 병문안을 가기로 해서, 특제 디저트를 사서 가기로 했사와요.]
역시 세레브다운 문장...
"...잠깐."
뭐를...간다고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확인해보지만, 내가 잘못 읽거나 한건 아니다.
저 문장...
"병문안을 가기로 해서...?"
...아니, 메일 주소도 안 알려줬었는데, 내가 집 주소를 알려줬을 리가 없잖아...? 어떻게 알고 찾아온다는 거야 대체...?
아니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기로 해서'...?"
...내가 문법 같은 걸 잘하는 건 아니지만. 저거, 능동 표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한 거에 따라간다는 느낌인데. 아니. 혹시 모르잖아. 그냥 스스로 결정하신 건데, 능동 표현보단 수동적인 쪽이 더 기품 있는 여성스러운 문장인 게 아닐까...?
[그럼, 학교 끝나고 찾아 뵙겠사와요.]
마지막 문장까지 보니 확정인...셈인데.
머리가 복잡해져서, 별 생각 없이 그냥 키타카미의 메일을 열었는데...
[오늘 병문안 갈 거야!]
...
"망했군."
답은 나왔으니 됐나.
>>+3까지 다이스. 다이스와 컴마를 체크합니다.
체크 값은 50, 하나만 통과할지, 컴마&다이스 다 통과하는 지를 판정합니다.
"...하아아아아아..."
감기 기운이 좀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머리가 깨질 거 같다. 키타카미라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스로 한 말을 지킬거다. 지가 찾아오면 더 악영향이 올 지 어떨지 같은걸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결정 했으면 그대로 실행하겠지.
"...아, 그냥 휴대폰이라도 안봤으면 좀 나았을까."
차라리 모르고 당하면, 당하는 순간까지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좋았을까. 아니지, 그럼 대책을 세울 수 없으니까 그건 아닌가. 하...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평정심을 찾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또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뭐야."
다시 화면을 켜보니, 동생녀석이다. 뭐라고 보냈냐...
[푸우 쨩! 오늘은 일찍 갈게! 엄마가 푸우 쨩 돌봐주라고도 했고. 푸우딩 사갈거니까!]
...어... 오늘은 굳이 일찍 올 필요가 없는데... 키타카미랑 이 녀석을 마주치게 하는건,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고 미라이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늦게 오겠느냐, 라고 또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안 나와서. 그렇다고 동생한테 '밖에서 싸돌아다니다 늦게 들어와!' 라고 하겠냐고...
"...됐다 됐어..."
...일단 연락 왔던것들 하나하나 해결 좀 할까? 슬슬 종례가 끝났을테니, 차례로 연락을 해보자고.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나온 쪽부터 진행합니다.
1 ~ 33 : 아리사에게 전화.
34 ~ 66 : 바바 선생에게 전화.
67 ~ 99 : 키타카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100 : @투표 및 특전 자유앵커.
"...타나카가 연락하라고 해놨으니까..."
...반장님이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겠냐. 아니 사실, 타나카가 메일을 보내든 아니든 간에 연락은 해서 내일은 정상적으로 나간다고 알리긴 해야하니까...
"...후..."
친절하게도 타나카는 아까 보낸 메일에 바바 선생의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착실하게 적어서 보내놓았고... 덕분에 이래저래 찾아봐야할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어머, 」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는 바바 선생이었지만, 이윽고 그 반가움은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바로 잔소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왜 오늘 무단으로 결석했느냐. 감기 기운 때문에 쉬었다니까 그러면 왜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느냐. 병결이랑 무단 결석이 과연 똑같을 거라 생각하는건 아니지 않느냐. 아무리 고등학교 1학년이 입학한지 얼마 안되서 별 비중이 없을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신이라는 건 원래 그 비중 없는게 쌓여서 나중에 대학이든 취직할 때 다 돌아오게 되는 법이다-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길게 이야기하던 바바 선생은, 어느 순간 하던 말을 멈추고 크게 헛기침을 몇 번하고서.
「...그래서 오늘, 단순히 감기로 쉬는게 맞는거지?」
조금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봐왔다.
"네... 뭐 그렇죠."
「지금 몸은 괜찮고?」
뭐 이정도면 밤에 푹 자면 내일 멀쩡해지지 않을까. 나름 밝게 대답한거 같은데, 어째선지 좀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어제 그... 하교 시간 때 그 사건 때문에 학교 나오기 싫어서 그러거나 한 건 아니지...?」
"하교 시...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어떻게 하루만에 잊겠느냐마는. 그렇다고 이렇게 잔혹하리만치 떠올려주시는 것도 잔인하십니다, 선생님.
「그럼 찬바람 쐬서 몸 상태가 나빠진 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니?」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그래 그럼... 푹 쉬고, 내일은 학교 나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혹시라도 또 안좋아져서 쉬게되면 미리미리 연락해주렴. 일단 오늘 결석은 혹시나해서 아직 기록 안해뒀으니까, 병결로 처리해줄게. 가능하면 병원가서 진료받아서 기록 끊어오고.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또 바니걸이나 뭔가 이상한 복장은 교내에서 입거나 하-」
뚝-.
...반사적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음, 어른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말을 하는 와중에 아무말도 없이 뚝 끊어버린다라...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한소리 들어도 할말이 없는 행동이네. 그래. 이런 쪽으로, 불량한 쪽으로 노선을 틀어서 어떻게든 그 바니걸을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되겠냐."
...전학갈까.
자문자답 끝에 나온 결론은, 역시 전학 가는 것 뿐인 듯 싶다.
1 ~ 33 : 아리에게 전화를.
34 ~ 66 : 치하에게서 전화가.
67 ~ 99 : 키타카미에게서 전화가.
100 : @특전. 전과 동일.
"...일단 아리 녀석, 쓸데없이 걱정하는거 같으니 전화해두는게-"
좋겠지, 라고 말을 채 끝내지도 못했는데 울리는 휴대폰. 혹시나 해서 번호를 확인해보니 연락처 저장이 안된 처음보는 번호가 떠있다.
...뭐야. 타이밍 좋게 전화를 거는 마츠다 아리사, 같은 전개가 아닌거야...?
무슨 전화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니, 저 생각 때문에 저 의문 말고 다른 쪽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전화를 반사적으로 받아버리고 말았고.
"얏호- 푸우 쨩-!!"
...어찌보면 지금 내 상태의 원흉이나 다름 없는 쾌활하디 쾌활한 저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다.
"몸은 좀 어때?"
...어떻겠냐, 고 따지기 이전에...
...이 녀석,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아낸거지...?
내가 휴대폰을 무방비하게 두고다닌 기억도,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연락처를 알리고 다니지도 않는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거야?"
"음, 목소리는 멀쩡해보이네! 그래도 병문안은 갈꺼니까! 단장으로서 단원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건 의무야!"
내 말에 제대로 대답할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들어야겠다.
"키타카미, 너 도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내고 전화한거냐고."
내 추궁을 듣고 에에-하고 대답을 피하...는거 같아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말을 끌던 키타카미는.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나오는 쪽으로.
1 ~ 33 : "아무튼 있다가 봐!" "...결국 대답 안해주는거냐."
34 ~ 66 : "그거, 타나카한테 물어봤어!" "...누구?"
67 ~ 99 : "미즈키 쨩이 알려줬어!" "...뭐?"
100 : @선택지로 전환
"그거, 타나카한테 물어봤어!"
...아, 그래. 역시 물어봤...
"...뭐? 누구?"
들려온 이름이 너무 뜻밖의 인물이라 다시 되물어봤는데, 키타카미는 그저 천연덕스럽게 다시금 타나카가 알려줬다고 말할뿐.
"아니, 그래, 타나카가 반장이니까 대충 연락처를 다 알고 있는거야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그걸 왜 너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알려주는건데...!"
하필 반, 아니 학교 최고의 요주의 인물에게 어떻게 당사자 동의도 없이 그렇게 휙휙 알려주는거야...! 이런 무책임한 처사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던 차에.
"그거, 푸우 쨩이 나한테 전달사항 전달해주기로 했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반대로 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말하니까 납득했어!"
"...하아..."
...할 말이 없다. 감기기운이 떨어지는가 싶더니만, 이 전화를 받고나니 또 두통이 느껴지는건 왤까.
"그런데 푸우 쨩! 왜 메일이 아직 한 통도 안오는거야?! 홈페이지에 메일 주소도 올려놓고, 어제 그렇게 열심히 전단지도 나눠줬는데!"
...저녀석... 장난하냐...? 고작 어제 전단지 몇장 나눠준거 가지고 바로 반응이 나오길 바란건가...?
...아니, 아니다. 여기서 괜히 바른 소리를 하는것보단, 좋게좋게 좋은 말만 해서 얌전히 돌려보내는게 내 정신건강에 좋을거다.
"고작해봐야, 하루 밖에 안 지났잖냐...? 원래 가게 같은게 새로 오픈하거나 하더라도 미리 오픈일자보다 앞서서 홍보하는 법이란 말이다... 홍보 한번 했다고 주문이나 문의가 밀어닥친다면 세상 사람들이 장사든 일이든 얼마나 하기 쉽겠냐."
거슬리지 않는 말로. 팩트만 딱 축약해서. 음, 이정도면 완벽하지 않을까. 이정도면 억지만 부려대는 키타카미도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잘 설명해준 것 같다. 그런데...
"...응! 역시 그렇지? 고작 하루 홍보만으로는 부족하지!"
...내 말에 동의해주는데, 텐션이 묘하게 더 높다. 뭐지, 이 불길함은?
"그래서! 오늘 푸우쨩이 없어서 아쉬운 김에 백업멤버로-"
"-하?"
듣고 있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딱히 몸살감기가 난다고 해서 청력에 심각한 수준으로 이상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 병원에 실려가야 하지 않을까.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2번째 희생자는?
홀수 : 미즈키.
짝수 : 치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