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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히키코모리 프로듀서, 재활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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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2, 2013 16:22에 작성됨.
제목 :
히키코모리 프로듀서 재활 분투기
분류 :
765&876
할말 :
스토리 진행 중에 아이마스 게임처럼 선택지를 받을 겁니다
(글 진행은 반드시 댓글로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히키코모리 프로듀서 재활 분투기
분류 :
765&876
할말 :
스토리 진행 중에 아이마스 게임처럼 선택지를 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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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2시를 훌쩍 넘어가 있다. 해가 문자 그대로 중천에 떠서 이글거리는 경멸의 눈초리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다. 하하하, 그렇게 정열적으로 추파를 던지면 아무리 어둠의 자식인 나라도 흔들리게 마련인데. 침대에서 그대로 발가락을 주욱 뻗어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머리의 두통은 뭐 이제는 만성적인 것이어서 개의치 않았다. 사람이 매일 아침 해뜨는 것을 보고서야 잠들고 대여섯 시간 후에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하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뭐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다 그로 인해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흡연자들도 폐암에 걸릴 위험같은 건 알지만 잠깐의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것 아냐.
어여쁜 소녀가 상당히 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은 옷차림으로 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바탕화면에서 웹 브라우저의 아이콘을 찾아 실행한다. 곧바로 익숙한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늘도 영상 올라왔을까. ELLIE쨩. 그녀는 이른바 〈춤춰보았다〉 영상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이른바 넷 아이돌이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단연 톱이다. 조회수는 기본이 만 단위이고, 영상 편집 기술이나 비주얼 어필의 센스는 가히 현역 프로 아이돌이라도 한 수 접어야 할 것이다. 하루 일과를 ELLIE 의 영상을 보면서 시작해서 종일토록 아이들이 출연하는 방송은 보며 허송하는 내가 하는 말이니 신뢰해도 좋다.
다만 어째서인지 ELLIE는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음치인 것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따금 올라오는 그녀의 자작곡과 가사를 보면 그녀의 음감이 좋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건 망상이지만 혹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닐까? 이 얼마나 가련한 공주님인가! 그 순간 컴퓨터와 형광등이 꺼져버렸다.
"뭐지, 정전?"
하필이면 ELLIE쨩의 새 영상을 보려는 차에, 타이밍이 안 좋구먼. 나는 컴퓨터를 뒤로 하고 부엌으로 나왔다. 배고프니까 뭐라도 먹어야지.그러나 거기서 나를 반기는 건 곰팡이 핀 식빵과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설거지감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귀찮아서 접시 안 닦은지도 제법 오래된 것 같다. 안 쓴 접시가 없네.
냉장고를 열었더니 텅텅 비었다. 신경을 안 썼더니 어느새 다 먹었나, 온라인으로 주문해야겠구만. 찬장을 열었더니 컵라면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나마 굶지는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물을 끓이려는데...
"어?"
물이 안 나온다. 이게 무슨 일이람. 정전에 단수? 어제 받아둔 녹차가 보여서 이거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냄비에 부었다. 그리고 렌지에 올렸는데... 불도 안 켜진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뭐지? 잠자는 사이에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났나? 커튼을 걷고 밖을 보았더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어안이 벙벙한 채로 현관을 나서 정원으로 나왔다. 아니, 정원 '이었던 곳'으로 나왔다. 한동안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더니 잔디가 무릎까지 오고 온갖 잡풀들이 가득한 곳을 정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어폐가 있으니까. 대문 옆의 빨간 우편함이 가득 차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편지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쓸어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캐릭터가 봉투에 그려진 연하장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확인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마트의 할인 전단지나, 엉뚱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편지가 몇 통, 그리고... 설마 아니겠지 하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독촉장>
너님 관리비가 연체되고 있음. 빨리 돈을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oh..."
분명히 내야 할 돈들은 과거의 연봉계좌에 넣어서 자동으로 이체되고 있을 터이다. 은행에서 착오를 일으켰거나, 그렇지 않다면 설마...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폰뱅킹 번호를 눌렀다.
"고갱님의 계좌는 잔액이 마이너스 만엔 정도지렁~ 지급정지됐지렁~ 유선이랑 우편으로 경고했지렁~"
보다시피 편지는 몇 년 동안 확인하지 않았고 이 집에는 전화가 없다. 알 수 있었을리가 없잖아 젠장?
관리비가 체납되어서 전기 수도가 끊어질 정도라면 이미 신용등급도 조정되었을 것이다. 고작 만 엔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엄청나게. 당장 이번 달 생활비조차 빌리기 힘들지도 모른다.
절체절명.
뭐 그런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멤돈다.
지갑에는 현금이 오천 엔. 이걸로 내 남은 인생을 전부 지탱해야 된다.
"장난하냐..."
수도는 공원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지
가스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각하자
다만 전기는... 인터넷은 어떡한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인터넷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을 느끼는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낀다. ELLIE가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훌륭한 인터넷 중독자라고 자부해도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배가 꼬르륵 울었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었지만 엄청 배고프다. 그러고 보면 매일 컴퓨터만 하느라고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것이 사흘 전이었다. 그걸 깨달아버리니 배가 미친듯이 꼬르륵꼬르륵 노래를 한다.
그럼, 일단 뭔가 먹을 거라도 구하러 가야지. 인터넷이 안 되니까 배달시킬 수가 없다. 잠깐, 나간다고? 밖에? 깨닫고 보니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가 띵하다. 나가야 돼? 저 바깥 세상으로? 지난 십 년 동안 이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완전 폐인 아저씨인 내가요?
현기증이 난다. 굶어서 그런 건지 나가기가 싫어서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아마 양쪽 모두 원인이겠지.
"...어차피 나가야 된다면 나가야지."
공원 수도를 이용하는 것도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도 어차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어차피 돈은 다 떨어졌고 집에 틀어박혀 있어봐야 돈이 나올 구석은 없다. 가족은 있지만 십 년 동안 폐인으로 지내면서 의절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알고는 있지만 역시 빨갛게 녹슨 대문 앞에서는 망설여진다. 세상이 무서워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나온 비겁한 낙오자인 내가, 다시 세상에 나서야 되는 것이다.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십년 전에나 유행했던 것이고, 지금 나간다면 동물원 원숭이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에잇!"
눈을 질끈 감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게 영화였다면 감동적인 BGM이 흘러나오고 감개에 젖어들어가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십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게 아니다.
처음 보는 건물들이 가득하다.
설령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더라도 십년만에 나오는 길에서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럽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나는 마치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은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타임 한정 세일! xx:00시부터 선착순! 모야시 3kg 반값!>
모야시. 자취생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야채값이 요동쳐도 항상 안정적인 공급을 자랑하는 식물.
일본에서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식용작물.
그게 3킬로에 반값이다. 5천엔이면 충분히 사고도 남지.
반찬으로 먹겠다는 게 아니다! 어차피 밥을 할 만큼의 여유도 없다. 휴대용 가스렌지로는 가스값 감당이 안 되겠지
모야시를 사서 한번에 데친다. 냉장고가 없으니 그대로 밥 대신 먹는다!
그리고 나서 다음에 또 다시 타임세일에서 모야시를 산다!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이 정도는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트 내에 설치되어 있던 노란 접근금지선 바로 앞에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네! 오늘의 타임 세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1인당 1봉지만 구입하실 수 있는 모야시 3킬로 100봉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십초 후에 시작합니다!"
다만 나는 한가지를 간과했다.
아줌마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다.
그냥 얼핏 봐도 150명은 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야시는 보존기한도 그리 짧지 않고 여러 요리에 잘 어울리는데 그걸 반값에 판다고 했을 떄 예상했어야 했다. 안 그래도 10년만에 집 밖으로 나와서 자극이 심한데, 사람까지 많은 곳에 오니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럴 수가...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저 모야시는 적어도 내 이틀치 식사를 전부 책임져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다!
"10! 9! 8! 7!"
"10! 9! 8! 7!"
마이크를 들고 신난 마트 점원이 선창하자 아줌마들이 떼창으로 받는다. 아이고, 귀 아파라. 시간이 다가올 수록 뒤에서 아줌마들이 미는 힘이 강해진다. 머릿속에 신문의 표제기사가 떠오른다 '10년만에 바깥으로 나온 히키코모리 남성 OOO씨(3X세, 무직), 타임세일에서 압사' 같은 이름으로.
안돼, 그렇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남자다! 아줌마들한테 힘으로는 밀리지 않을 터!
"시작합니다!"
... 밀렸다. 엄청나게 밀렸다. 아줌마들 너무 세다.
그야 10년동안 변변찮은 운동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흘 동안 굶었고.
쓰나미처럼 모야시를 향해 밀려가는 아줌마들의 파도 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달렸다. 다행히 맨 앞줄에 있었던 덕분인지 아직 모야시는 남아 있다!
"내 거야아아아!!"
"나다!"
"비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온 몸에 남은 모든 기력을 쏟아부어 소리지르면서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래뵈도 10년 전에는 보컬 트레이닝도 했던 몸이다. 주변에 있던 아줌마들이 귀를 감싸쥐며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안해요 아줌마들. 이게 내 생명줄이야.
그리고 나는 팔을 뻗어 마지막 남은 모야시 한 봉지를 손에 잡았... 다?
손에 잡아서 내 쪽으로 끌어오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조그마한 손이 봉지를 잡았다.
갈색 머리칼을 양갈래로 묶은 어린애였다. 내가 20대에 자식을 낳았다면 틀림없이 이 정도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 보게. 내가 이미 잡았다는 것은 틀림없이 봤을 텐데. 매너 위반이다.
여자애도 자기가 한 짓에 깜짝 놀랐는지 어쩔 줄을 모르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뭔가 결의를 다진 듯, 내 눈을 보면서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상당히 주저하는 게 보인다.
"저, 저어……"
"?"
"그, 모야시, 양보해주실 수 없을까요……? 오늘 저희 동생들하고 모야시 축제를 하기로 했는데……"
뭐지, 그 모야시 축제라는 건.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 아가씨는 동생들과 뭔가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 모야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로써도 이건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없을까가 달린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이거, 엄연히 내가 먼저 잡았으니까 나에게 우선권이 있고. 안타깝지만 거절해야지.
……그런데, 10년만에 대화를 하려다 보니, 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억양이라던지 장단이라던지 틀림없이 이상할 테고……. 이럴 때 어떻게 말하면 되는 거지?
1. 이건 내 거야! 불만이면 먼저 잡던지!
2. …………………….
3. 몸값을 내놓지 않는다면 모야시의 생명은 없다.
(+1부터 +4까지, 다수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는데 반응이 가능할리가 없잖아
2. ……………………. <- 선택
3. 몸값을 내놓지 않는다면 모야시의 생명은 없다. <- 모야시 축제 게스트 초대!
"………………………."
그런데,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너무 강하게 말하면 상처받을지도 모르고……. 거절에도 기술이란 게 필요하다. 상대를 기분나쁘지 않게 하면서도 납득시켜야 하니까. 일단 나는 꼬마애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키는 140은 넘을 것 같고, 150은 안 되겠군. 양갈래로 닿은 머리는 곱슬거리며 아래로 뻗어 있다. 미용실에서 한 머리는 아닌 것 같은데, 타고난 머릿결이라면 제법 훌륭한 편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상당히 미인의 싹이 보인다. 코도 동양인치고는 제법 오똑하고, 무엇보다 똘망똘망한 눈이 큼지막한 게…… 윽, 눈물이 맺혀 있다?!
"여, 역시 안되나요오……."
으, 죄책감이 든다…….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잠시 울먹거리던 꼬마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터덜터덜 멀어져갔다. 미안해 꼬마야. 나도 설마 3일 동안 쫄쫄 굶고 모야시를 으적으적 씹어먹을 신세가 될 줄은 몰랐어.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양보했을 거야.
"쵸스케……, 카스미……. 쵸타로……. 미안……. 누나가 야무지지 못해서 미안……"
큭, 죄책감이…….
기분 탓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어쩐지 뜨겁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속닥속닥
"그깟 모야시 가지고 애한테……" 속닥속닥
어라, 기분 탓이 아닌가?!
대인기피 히키코모리인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져서 잽싸게 자리를 떴다. 목표물이었던 모야시는 획득했고, 이제 계산하고 빨리 나의 성으로 돌아가면……
그리고 계산대 앞에 선 나는 깨닫고 말았다.
없다.
5천엔이.
내 목숨줄인 그 5천엔이 없다.
지갑이 텅 비었다.
어째서-?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분명히 마트에 들어올 때는 있었다.
설마 타임세일 때에 아줌마들 사이를 뛰어가다가-?
다시 그 근처로 돌아가서 필사적으로 바닥을 찾아보았지만 역시 없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가판대 밑을 찾아보려다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에게 따귀를 맞았다.
이렇게 된다면 차라리 모야시만이라도 아까 그 아이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아이도 집에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모야시는 어떤 후덕한 아주머니가 배를 흔들며 집어갔다.
"아아..."
그리고 나는 파괴된 멘탈을 추스리려 애쓰면서,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마트 밖으로 걸어나왔다.
터덜터덜 걸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현재 돈은 한 푼도 없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집에는 전기도 물도 가스도 안 나온다.
먹을 것이 없다.
난 사흘째 굶었다.
……어라, 나 상당히 핀치 아닌가?
집에 돌아가도 별 수 없다면 굳이 빠르게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집에 가던 길에 있는 놀이터에 들어가서 벤치에 걸터앉았다. 걷고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심하니까 천천히 쉬어 가야겠다.
일단 자리에 앉으니 힘이 쭈욱 빠지면서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배는 꼬르륵거리지, 돈도 없지, 옛날 친구들하고는 연락 끊어진 지가 한참이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그렇게 잠깐 바닥의 모래알을 세고 있는데, 어디선가 꼬마애가 세상이 끝난 얼굴로 터덜터덜 들어온다. 내가 있는 쪽으로는 시선도 한번 주지 않고는 비척비척 그네 쪽으로 가 버리더니 그네에 걸터앉는다.
아까 만났던 꼬마보다는 살짝 키가 큰가... 얘도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다. 염색인지 천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수리 부분에서 하늘로 삐죽 솟은 한가닥 머리칼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가만히 보면 생긴 건 상당히 귀여운 상이다. 살짝 울상짓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주먹을 쥐어박아 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따, 딱히 나는 변태가 아니니까!
뭐어, 엄마한테라도 혼난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만,
"우와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앙~"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엄청 큰 목소리로 울고 있다!?
으아아, 이거 거리가 상당한데도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다.
어, 어떡하지?
1. 얌마, 시끄러워!
2.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3. 조용히 가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
이후 제가 확인하는 시점에서 다수인 의견으로 선택하겠습니다!
확인하는 시점에 댓글 남길게요. 그 댓글 이전에 달린 것들을 인정하겠습니다.
햄죠 어딨는거야 햄죠 내가 나빴어 돌아와줘 햄죠!!!
네요
3번을 보고 싶지만 끌리는건 2번이기에
저도 2번
그럼 이번에는 2번인가
나는 조용히 일어나 그녀가 앉아서 울고 있는 그네로 다가갔다. 울음소리도 점점 커져서 귀가 아프지만...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물었다.
"얘, 무슨 일이 있었니?"
"우와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앙!!"
......
"얘, 무슨 일이니??"
"으어어어어어으아아아으아아으아아으아앙!!!"
...... 웬지 열받는다.
그녀 자신의 울음소리에 묻혀서,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닿자 않는 모양이다.
그것보다도, 이러고 있다간 영락없이 내가 애를 울리고 있는 걸로 보일 텐데... 이거 곤란하다.
나는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말했다.
"야!!!!!!!!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아아아아아악!!!"
... 아니, 소리질렀다.
"꺄?!"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츠리며 귀여운 비명소리를 내더니, 그네에서 벌떡 일어난다.
"뭐, 뭐뭐뭐, 뭔가요. 아저씨는 누구에요?!"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다만... 네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어서 말야"
"핫?! 혹시 요즘 이 근처에 출몰한다던 유괴범!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던 도중에 저를 발견한 거군요!"
"아냐아아아아아앗!"
"에, 정말인가요?"
"그래, 그렇다니까..."
"......."
그녀는 잠시 눈을 굴리며 뭔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앗! 그런 식으로 방심을 유도한 다음 마음을 열게 해서 이런저런 일을 할 속셈이군요!"
투득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꼬맹이가 진짜.... 어른이 화나면 무섭다는 걸 보여주마!!!
그 순간이었다.
꼬르륵.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꼬르르르륵.
내 위장만 빼놓고....
"우걱우걱우걱..."
"에, 그러니까 유괴범 아저씨?"
"아이아니까... 우걱우걱"
나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맹이가 사 준 주먹밥을 마구잡이로 씹어삼키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요즘 애들이 많이 똑똑하죠? 유괴범도 불경기라 큰일이겠네요~"
더 이상의 태클은 무의미할 것 같으니 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는다.
"저 말예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벌써 몇 번씩이나 사무소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탈락한 건가... 우물우물"
말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가... 심사원은 뭐라고 하냐?"
"......"
말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상당히 심한 말을 들었나 본데...
"좋아, 내가 심사원이라고 생각하고, 내 앞에서 한번 춤추고 노래해봐."
"엣...? 여기서?"
고개를 옆으로 갸웃한다. 이 아이, 누구에게서 배운 건지는 몰라도 이런 사소한 리액션 하나하나가 귀엽다. 이런 건 쉽사리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재능이다. 실제 프로 아이돌이라 해도 리액션이 부자연스럽거나 뻣뻣하거나 벽 같은 아이들도 많다. 그만큼 교정이 어려운 부분이라. 다만 아이돌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주 업무이니, 그런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심사원의 일이니까.
"그래. 내가 한번 보고 평가해주겠어."
"에, 하지만 이런 모래밭에서... "
"팬을 위해서라면 모래밭이 아니라 쓰레기장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이돌이다. 내가 네 1호 팬이 되어줄 테니까. 노래해봐"
꼬마는 어쩐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아저씨,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래봬도 전직 유명..."
1. 유괴범이다
2. 프로듀서다
3. 트레이너다
"………………무우-."
앗, 꼬마의 미심쩍다는 표정이 한층 강화됐다.
"는, 사실 거짓말이지롱! 아하하하하!!"
"무우---------------"
볼을 부풀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역시, 나쁜 짓 하려는 거죠!"
"노, 농담이라니까!"
"춤이나 노래를 가르쳐 준다는 구실로 친해져서는 방심하게 만들려는 거죠!"
으아아아,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그녀는 나를 향해 팔을 들어서…….
"게흡?!"
"나쁜 사람은, 혼내줄 거에요!" 퍽퍽퍽퍽퍽퍽퍽퍽
아파, 아파아아아앗!
으와, 체구가 작아서 대수롭잖게 생각했더니 무슨 손이 이렇게 매워?
"배 때리지 마아아악!!! 쿠억"
아, 위험했다. 방금 먹은 삼각김밥, 토해버릴 뻔했어.
"자,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인가요?"
찌릿, 하고 노려본다.
으…….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위축된다. 예전에 알았던 누군가하고 닮은 눈빛이다.
역시 이 애는, 아이돌 같은 것보다 형사 같은 걸 노려보는 건 어떨까.
"아아, 약속할게. 약속한다니까."
"흥, 거짓말로 속여넘기려는 속셈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다구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예이예이.
어차피 나는 유괴 같은 건 한 적이 없으니까 속여넘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뭐, 어쨌든 노래해봐. 오디션에서는 무슨 곡을 불렀어?"
"……. <GO MY WAY!!> 에요."
"아아, 그 노래. 마침 잘 아는 곡이네. 한번 봐줄 테니까 해봐"
"어쩐지 아저씨,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춤출 준비를 한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GO MY WAY!! 는 생각보다 실력이 필요한 곡이다. 곡 자체의 템포도 제법 빠른데다 가사에 맞춰서 안무를 따라가는 난이도는 제법 있다. 단순히 움직임만 따라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이 곡 특유의 활발함을 제대로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그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명곡이라고나 할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아이돌의 라이브 콘서트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아이돌 사무소에서 신인 오디션을 할 때 주어지는 제시곡으로도 인기가 있겠지.
……. 어째서 10년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던 내가 최근의 아이돌 추세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가 하면, 일단 하루종일 아이돌 영상을 보는 것으로 일과를 보내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는 유명 아이돌들의 라이브 영상은 모두 DVD나 블루레이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MR을 틀어 주었다.
<GO MY WAY!!>
GO MY WAY!! GO 앞으로!!
힘내서 가 볼까요!
정말로 좋아하는
자신이 되고 싶어요
...
모든 반짝임은
이 손가락에 모여라~
"하아……. 하아……. 어떻습니까?"
"음……. 어떻다고 할까. 일단 좀 앉아서 쉬도록 해. 여기 물."
페트병을 받아서 꿀꺽꿀꺽 호쾌하게 마셔버린다. 으, 사흘 정도 마시려고 했는데…….
뭐 어차피 얘가 사준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말해주세요! 어째서 떨어진 걸까요!"
"자아, 내가 심사원이라면 말야……"
"가사는 알아듣기도 힘들고,
호흡 관리도 안 되고,
춤은 흐느적거려서 뭔지도 모르겠고"
"쿠쿵-!"
"여긴 아이돌이 될 사람을 뽑으려는 거지 초등학교 학예회가 아니니까 말야?"
"어, 어째서 유괴범 아저씨가 심사원이 한 말을 알고 있는 건가요-!?"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나도 집안에 틀어박히기 전에는 꽤나 오랜 기간 업계에서 일한 사람이다. 심사원이 어떤 면을 참고로 할 것인가 정도 몰라서야 말이 안 된다. 틀어박혀서 한 것도 넷 아이돌의 평가 같은 거였고 말야. 처음엔 그냥 소질이 보이는 애들을 정리하려고 블로그에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 순간엔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는 대형 블로그가 되었다.
"그래서 너는 여기 공원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었던 거네."
"으……."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고 있는 게 귀여워서 가만히 놔뒀다.
"역시 나는……."
"엥?"
"운동도, 공부도 못 하고 노래도 잘 못 부르고……."
으음, 아무래도 안 좋은 부분을 건드린 건가?
"역시, 난 재능이 없는 걸까요?"
재능인가….
뭐어, 확실히 눈에 띄는 재능은 없기는 하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물었다.
"저기, 너는 어째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야?"
"…… 재능이 없다면, 꿈꾸는 것도 해서는 안 되나요?"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인다.
이런 이런, 눈물이 많은 아가씨로구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쓴웃음을 짓는 것 뿐이었다.
"노래도 춤도, 좋아했었을텐데……."
"지금은 아냐?"
"좋아, 하지만……."
그렇게 기세좋게 큰 소리로 떠들던 건 언제였냐는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말꼬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면 됐어. 너는 틀림없이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아아아앙……. 에?"
어이쿠. 조금만 늦었으면 또 이 아가씨 울음소리로 시끄러울 뻔 했네.
"정말인가요? 잘 보이려고 거짓말하는 거죠?"
"… 너한테 잘 보여서 뭐 어쩌게. 그런 거 아냐."
역시 의심 많은 아가씨다. 이 꼬맹이.
엄마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만.
"하지만 조금 전하고 얘기가 다르잖아요."
"무슨 소리야. 난 그저 노래도 댄스도 엉망진창이라고 했을 뿐이라고."
"은근슬쩍 너무해?!"
귀여운 녀석. 한번 찌를 때마다 용수철처럼 바로 츳코미가 튀어나오는 게 재밌다.
그야 평범한 심사원들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이 꼬마의 재능이란 건 단번에 눈에 띄는 성질이 아니니까.
이 나조차도 그냥 오디션의 심사원이라는 입장으로 이 아이를 만났더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알고 싶어? 네 재능?"
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
헤드뱅잉에 가까운 속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
"첫째, 앞으로 매일 나한테서 트레이닝을 받을 것"
"… 둘째는요?"
예의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방금 만났을 뿐인데 신뢰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매일 도시락 세 개"
"비싸! 내 용돈으로는 도저히…"
"뭐, 편의점에서 사온 게 아니라도 괜찮아. 하루치 밥이랑 약간의 반찬이면 돼."
"…… 응, 그거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엄마한테 들켜서 볼기짝 맞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만, 요령이 있는 녀석이라면 뭐 어떻게든 하겠지? 뭐 가난한 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지막 조건은 뭐에요?"
"나를 믿어"
"… 대체, 아저씨는 누군데요?"
그러는 너는 누구냐. 이 녀석아.
약간은 심술을 담아서 야유하는 느낌으로 대답해 주었다.
"납치 전에 대상의 몸값을 높이려는 유괴범이지"
전설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여성이 있었다.
충격적인 데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곡 「ALIVE」
남자들에게는 찬사를,
여자들에게는 동경을 한 몸에 받으며
파죽지세로 인기를 쌓아나갔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는 악몽과 트라우마를 동시에 안겨준 존재.
그녀의 이름은 히다카 마이.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지금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
"한동안…… 괜찮았었는데"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오랜만에 그녀의 꿈을 꿔 버렸다.
어째서일까.
"……추워"
난방대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오늘은 어떻게든 넘겼지만,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없이 겨울을 날 수는 없잖아.
시계를 보니 해가 슬슬 하늘 가운데 떠 있을 즈음이다. 집 안이 싸늘하니까 이 시간이 되어서야 움직일 만 하다. 어제 주먹밥 먹은 걸 빼면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쓸데없이 부지런할 필요가 없잖아.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이 몸으로 갑자기 공사판 같은 곳에 가는 것도 무리잖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알바 정도는 구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라서 당장은 꺼려진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10년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나로서는 사람 많이 드나드는 곳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역시 익숙한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등 떠밀리듯 그만둬버려서 뒤끝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건 다시말해 아이의 아빠라는 소리니까요
나는 10년도 더 이전에, 장래가 촉망받던 프로듀서였다.
여러 아이돌을 데리고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나에게 맡겨진 아이돌이…… 그녀.
그래, 나는 히다카 마이의 담당 프로듀서였다.
그녀의 끝을 알 수 없는 재능과 나의 프로듀스 능력.
우리 두 사람이 승승장구하며 「정점」에 오른 것은, 사실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
당시 사장이 언론계의 큰손과 막역한 사이였기에 세간에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인이라면 그녀의 임신 소식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고.
대체 어떤 놈팽이랑 눈이 맞아가지고 임신까지 한 건지 원.
나는 애 아빠가 아닌데 어째선지 업계에서는 내가 '아이돌을 건드린 자식'으로 찍혀버렸고, 우리 사무소는 망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물론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되어 있었기에, 다른 사무소를 전전하며 프로듀스 일을 계속할 수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들 나에게 제 2, 3의 히다카 마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나의 프로듀스가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톱 아이돌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재목이었다. 단지 나와 함께였기에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그녀가 사라진 후 서너 명의 아이돌을 추가로 프로듀스했고, 톱 아이돌이나 슈퍼 아이돌로 키워냈다. 그러나, 히다카 마이를 따라잡기란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은퇴해버린 전설을 무슨 수로 쫒는단 말인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실제보다도 더 거대해져 버렸는걸. 그렇게 업계는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고, 이뤄내지 못하자 나의 실력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저 히다카 마이의 재능에 기댈 뿐인, 사실은 무능력한 자가 아닌가?'
그리고 나는 거기에 질려버려서 집 안에 틀어박혔다.
"후……"
재미없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려 버리니 씁쓸하다. 10년도 전에 끊었던 담배가 땡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담배 한 갑 살 수 있는 정도의 돈도 없다.
그러려면 내가 굶어죽기 전에, 아이돌의 싹이 보이는 애들을 찾아야만 한다. 다행히 점찍어둔 후보가 둘이나 있다. 역시 하늘은 사람에게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어제의 그 꼬맹이. 뉘 집 앤지 모르지만, 좋은 목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목의 강함'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심사원들이 어느 정도의 실력일지는 몰라도, 단순히 실력이 없어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바위 속의 거대한 다이아 원석과 같은 존재.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바위처럼 보이니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그녀의 재능을 알고 있는 건 현재로써는 나밖에 없겠지.
이래봬도 나는 보컬과 댄스 트레이닝 자격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현재 그녀를 아이돌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나 뿐이라는 소리다.
나이도 어리니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겠다, 적절한 상대다.
다른 후보 한 명은 <ELLIE>지만,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이름은 뭔지 전혀 아는 바 없으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하다보면 1641이 될 수도 있고요
"나 혼자 사는데, 이렇게 큰 집은 필요가 없지"
정원도 하나 딸려 있지. 이제는 정원이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모양새긴 하지만……. 정원이라기보단 정글에 가깝구만. 쩝.
책상 서랍을 열어 낡은 수첩을 꺼냈다. 내가 이 집에 틀어박히기 전, 아직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절에 항상 들고 다니던 수첩이다. 수첩에 끼워진 만년필 뚜껑을 열어 보았다. 펜 끝을 만져보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뚜껑을 닫아 두었다 해도 10년이나 쓰지 않은 펜이 멀쩡할 리 없지. 만년필의 닙(Nib) 끝에 침을 묻혀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보았다.
"일단 차를 팔고……. 가능하다면 집도 팔고 작은 아파트 같은 곳으로 이사하는 게 좋겠지……. 일단 꼬마를 아이돌로 데뷔시키고……."
혼자 사는 동안에 혼잣말이 입에 붙었다.
뭐, 당장은 그 정도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자랑은 아니지만 이 집도 상당히 비싸게 줬고, 내 차도 해외에서 직수입한 차량이다. 밖에 나가질 않으니 별로 몰아보지도 못해서 새 차나 다름없다.
쾅쾅쾅.
어디선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쾅쾅쾅
거 참, 빈 집인가 본데, 그냥 갈 것이지 계속 두들기는 모양이다.
쾅쾅쾅쾅쾅쾅!!!!!
누구네 집이여. 대체. 문 부서질라.
"유괴범 아저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아, X밤. 내 집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제 그 꼬맹이다. 헤어지기 전에 집 주소를 알려주고 찾아오라고 했는데,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것 같다. 이마에 땀방울이 보인다.
"야야, 벨이 고장이니 전화를 하라니까. 그리고 유괴범이라니, 이웃이 듣고 신고라도 하면 어쩔 거야?"
"괜찮아요!!! 제가 잡혀가는 게 아니니까요!!"
"이 꼬맹이가……"
"그리고! 아저씨 전화 안 걸려요!"
아차, 그러고 보니 충전을 하질 못했군. 어쩔 수 없었나.
"그것보다! 마실 것 없나요?!"
"없다. 물도 안 나와."
"에에-!"
에에, 가 아니지.
일단 오늘은 예전에 신세졌던 분들께 인사도 드리러 갈 겸, 이 아이를 아이돌 사무소에 데리고 가 보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나와 이 아이를 받아달라는 부탁도 해야 하겠지.
그럼, 어디에 갈까?
1. 961프로
2. 876프로
3. 765프로
오랜만에 토우마가 보고싶네요
"……?"
눈을 땡그랗게 뜨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꼬마. 여러 번 말한 것 같지만 귀엽다. 마케팅 방향을 로리콘 쪽으로 잡아볼까…….
"지금부터 너와 나는 아이돌 사무소를 순회하며 얼굴을 알려 놓는다."
"어, 갑자기?! 약속 같은 건 잡지 않아도 되나요?"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잖아요! 괜히 나쁜 인상이라도 줬다가는 큰일인걸요!"
"에에이, 쫑알쫑알 시끄럽구만"
난 꼬맹이의 머리를 팔과 몸통 사이에 끼워 조이고 녀석을 질질 끌면서 차고로 향했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지만 내가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기 때문에 나오는 건 꽥꽥거리는 소음 뿐이다. 음하하.
"우와- 아저씨 차 엄청 크네요! 엄청 지저분하지만"
뭐 10년이나 안 타고 놔뒀으니까 먼지가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것도 당연하지.
"안쪽은 멀쩡할걸? 일단 타"
한창 버블의 끝자락에서, 히다카 마이의 전속 프로듀서로써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이 집과 함께 허세로 구입한 차량이다. 구입하고 1만 킬로도 달리지 않았으니 사실상 새 차나 다름없지. 비를 맞힌 것도 아니니까. 그 동안 운전은 하지 않았지만,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프로듀서 일을 하려면 자동차는 필수이다. 아이돌을 데려다 주는 픽업 서비스는 물론이고, 각종 협의를 위해 이 회사 저 회사를 오가야 할 경우에도 자동차가 없으면 곤란한 것이다.
"다 왔다"
"우, 우와아……. 엄청나게 큰 건물……"
"여기가 현재 일본에서 가장 큰 연예사무소인 961프로야. 쥬피터나 프로젝트 페어리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 쥬, 쥬피터라면 그 오니가시마 라세츠가 있는!"
대체 누구냐 그건.
정말 알고 있는 거냐 이 녀석.
"지, 지지 않겠습니다아앗--!"
주먹을 앞으로 쭉 뻗으면서 터무니없는 소리를 외치고 있다.
아직 후보생조차 되지 못한 녀석한테 지는 아이돌이 있기는 하겠냐?
"우……. 겉으로 보기에도 컸지만……."
확실히 안으로 들어오니 바닥이 번쩍번쩍한 검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솔직히 멋지다. 입구에는 호텔에나 있을 것 같은 안내 데스크가 하나 있고, 안에는 마치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게이트가 줄지어 서 있다. 건물 안과 밖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게이트에 찍고 드나들고 있다. 옆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혹여 이상한 짓을 하려는 녀석은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다.
그 순간이었다.
삐삐삐삐삐-
"뭐, 뭐야?! 나는 출입증을 받았다고!"
"실례하겠습니다. 손님. 잠시 소지품을 확인하겠습니다."
두 명의 장정이 끌고 안쪽으로 사라져버린다.
"왜 저런 거에요…?"
"961프로에서 사용하는 모든 종이들은 미세한 전자 칩이 숨겨져 있어. 외부 문서라면 상관이 없지만, 내부에서 인쇄된 문서를 들고 나가려면 별도의 허가증과 봉인이 필요하지. 저 안쪽에 장치가 보이냐?"
"네, 저게 뭐죠?"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X선으로 검사하는 거야. USB 드라이브나 CD 같은 걸 가지고 나가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거지."
"철저하네요……."
일단 오긴 했지만, 딱히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용무도 없이 무작정 들어가게 해줄 곳도 아니지.
어떡할까?
1. 쿠로이 사장을 호출한다.
2. 나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이 꼬맹이의 목숨은 없다!
3. 꼬마한테 로비에서 춤추며 노래하도록 시킨다.
그래서 동참한다! 2번
라거 말하고 싶은데 튀는 선택지가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선택지네요.
"녀석들은 큰 소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렇군요! 그래서요?"
"…………."
꼬마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노려본다. 아아, 정말이지 이 강렬한 눈빛. 정말 예전에 알던 누구랑 닮았는데.
"아저씨, 혹시 생각한 게 없다거나……"
아니, 뭐. 평범하게 내 이름을 대고 쿠로이 사장을 불러도 되기는 한다.
상당히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매정하게 버리고 갈 사람은 아니니까.
"야, 잠깐만 이리로 와 봐."
"???"
"지금부터 너의 아이돌로써의 버라이어티 적응력을 평가한다!"
"네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야 당연히 모르겠지.
난 꼬마의 머리를 오른팔로 감싸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질질 끌고 갔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라. 끌고 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아프지 않게, 신사적으로 걸어갔을 뿐이니까.
게이트 앞에 서 있던 경비원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선수를 쳤다.
"쉿, 조용히 해. 소란이 벌어지면 이 꼬맹이의 목을 따버릴 거야. 961프로 건물이 피바다! 틀림없이 뉴스 1면이겠지."
그러면서 나이프를 꺼내어 꼬마의 목에 가져간다. 물론, 사실은 베이거나 할 리 없는 그냥 금속제 열쇠고리일 뿐이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각도로 대고 있어서 녀석들은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겠지. 꼬마는 꼬마대로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새하얗게 질려서 떨고 있을 것이다. 그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장난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에, 유괴범 아저씨, 저 죽이실 거에요???!!!"
아놔. 이 녀석 바보였어.
하지만 위험하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장난이었습니다~ 하고 끝내기가 어렵다. 진짜 내일 신문 1면에 나와버릴지도 모른다.
"무슨 소란이냐?"
그때, 등 뒤에서 내가 만나려고 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열쇠고리를 냅다 주머니 속으로 숨기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기서 쿠로이 사장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대로 범죄자 직행이다. 여차하면 꼬맹이를 데리고 도망갈 준비를 하자.
"아, 오랜만입니다. 쿠로이 사장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네 놈은……. 아."
다행히도 사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장이 경비원에게 뭐라고 말하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출입구를 열어 주었다. 미안해요, 아저씨.
"와아~ 엄청 넓은 방이네요!"
확실히 거대 사무소의 사장실이다. 사장이 앉아서 업무를 보는 책상이나 의자, 손님용의 소파에 이르기까지 고급이 아닌 것이 없다.
"자네라면 기억하고 있지. 배짱도 실력도 제법이었지. 그땐 나도 아직 현역이었다만, 내심 대단한 녀석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과찬이십니다."
그가 손짓하자 비서가 티 세트를 들고 들어온다. 진한 원두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분명히 최고급 원두를 사용하고 있겠지.
"운둔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아쉬웠지. 요즘 프로듀서란 것들은 뭐 하나 시원찮지 않은 녀석이 없으니"
음, 나에 대한 사장의 인상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인걸. 잘하면 이야기가 수월하게 풀리겠어.
"여기에 나왔다는 건, 다시 연예계에 돌아올 생각인가."
"예. 그렇습니다. 저와 이 아이의 채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자네의 실력이라면야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이 아이는 누군가?"
"제가 발견한 후보생입니다."
"아, 안녕하세요오……"
음, 꼬마는 번쩍번쩍한 사무실의 분위기에 약간 주눅이 든 것 같다. 쿠로이 사장은 커피를 홀짝 들이키며 말했다.
"아이돌 채용을 위해서는 사내 오디션 기록을 남겨야 한다. 비디오 촬영도 해 두어야 하고. 내려가서 보도록 하지."
그리고 꼬마는 카메라와 쿠로이 사장 앞에서 GO MY WAY!!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쫒겨났다.
"여기가 유치원 재롱잔치인줄 아냐! 내가 네놈의 실력을 잘못 봤구만! 썩 꺼져버려!"
…… 하, 차라리 얘를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어.
인생이란.
"......."
무슨 할 말이 있으리. 먼 산만 바라봐야지. 나랑 꼬맹이는 961프로 바깥으로 내던더졌다.
"......"
"......"
음, 거북한 침묵이군.
"뭐, 지난번보단 나았어. 초등학생 운동회 정도는 됐을 거야"
"......흑" 왈칵
앗.
"야, 자, 잠깐-"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앙!"
아이고 이 녀석. 울보구만.
"...응?"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엄마 저기 봐. 저기 이상한 아저씨가 여자아이를 울렸어"
"쯧쯧쯔... 어른이 돼서는 애를..."
어째서 난 뭐만 하면 이렇게 되고야 마는 거지!?
나는 허겁지겁 손수건을 꺼내서 꼬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타에 태웠다. 진한 검은색으로 선팅된 내 차라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겠지.
"옳지 옳지. 착하다 착해."
"....훌쩍." 패앵!
"야 임마! 코를 풀라고는 안 했잖아!"
".........으애애애애"
"아냐 아냐. 코 풀어. 맘껏 풀어도 되니까 우는 것만은 참아주라."
계속 달래줬더니 이제 좀 진정이 되었다.
"...유괴범 아저씨."
"응, 왜?"
"저는, 역시 아이돌을 하기엔 글러먹은 걸까요..."
눈에 힘이 없다. 오늘 일로 받은 충격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야, 지난 번 오디션과 이번은 조금 사정이 다르지. 이 녀석도 눈이 있으니 쿠로이 사장이 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봐서 알겠고, 거의 채용이 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오디션 때문에 그런 나까지 쫒겨나 버렸다는 거니까.
"뭐어, 솔직히 말하자면 너는 아직 반쪽짜리도 되지 못해"
"......!"
"하지만, 그건 재능이 없어서는 아니야. 네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던 거지"
나는 알 수 있다. 사실 나도 우연히 이 꼬맹이가 우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아는 거지만. 이 아이, 노래할 때는 상당히 답답한 소리를 내는데, 엉엉 울어제낄 때의 목소리를 보면 그야말로 타고난 목청이다. 아마 목의 사용법을 깨닫는다면 몇 시간이고 라이브로 노래해도 전혀 지치지 않겠지.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요?"
"그래. 처음 봤을 때도 얘기했잖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아까 쿠로이 사장 기억나? 나는 아이돌에게 필요한 게 뭔지 잘 알고 있어. 네 생각보다도 훨씬."
"......"
꼬맹이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지만,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뭐 앞으로 해결할 과제라고 봐야겠지.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돌을 체크해왔고, 개중에는 탈 아이돌 급의 성량을 지닌 아이돌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강력한 목을 지닌 사람은,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아이돌들 중에는 단 한 명 있었다.
히다카 마이.
그 이름을 떠올리자 다시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 배고파요"
시계를 보니 벌써 조금 이른 저녁시간이라, 거리에는 와이셔츠를 입고 회사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샐러리맨들이 하나둘 보이고 있었다.
"나도 배고프다. 욘석아....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도시락 가져 왔지? 그거나 먹자. 꺼내 봐"
"...네"
꼬맹이가 꺼낸 도시락통에 든 건 주먹밥 세 개였다.
김이 구깃구깃하고 모양이 어설픈 것이, 아무래도 편의점에서 산 건 아니겠고.
"직접 만든 거야?"
"....네에."
"잘 만들었네. 하나 줘."
우물우물.
꼬맹이와 나의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게 오늘 첫 끼니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부실한 식단이지만, 여하튼 이 녀석이 직접 만든 도시락이니까 불평할 수는 없다. 괜히 삐쳐서 아이돌 같은 거 그만둔다고 하면 상당히 곤란하기도 하잖아.
그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창 밖에서 차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실례합니다만,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네? 무슨 신고요?"
"수상한 사람이 차 안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신고입니다만.... 요즘 이 근처에 유괴가 자주 일어나서요."
"흐음, 다른 차 아닐까요?"
길가에 서 있는 차들은 이 차 말고도 많다.
"앗,"
그때 나에게 말을 걸던 사람 옆에 서 있던 경찰관이 탄성을 내뱉더니, 무전기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이 발견! 신고와 인상착의가 동일하다!"
그와 동시에 내게 말을 걸던 경찰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들어 내 머리에 가져갔다.
"손 들고 움직이지 마! 거기 어린애한테 손이라도 뻗는 순간 발포하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망연히 내 머리를 겨누고 있는 권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 보았다. 옆에서 꼬맹이도 함께 한숨을 내쉰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괴범이라는 오해는 나의 필사적인 해명과 꼬맹이의 (도움은 안 되는) 추임새로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차위반으로 딱지를 끊었다. 나쁜 놈들 같으니.
"우물우물... 어? 아저씨"
"뭐야, 뭔데."
"아저씨 말인데요. 유괴범으로 체포되면 유치장에서 밥이랑 잠자리는... 아야야야야야야"
"요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냥."
나는 왼팔로 꼬맹이에게 헤드락을 걸면서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
"......"
침묵이 흐른다. 가만히 곁눈질해보니 꼬마는 다소곳이 앉아 자기 다리 사이만 쳐다보고 있다. 뭐, 기껏 달래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방금 961프로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무난히 채용될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가 오디션 한 번에 내쫒겼으니 마음이 좋지는 않을 거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졌었다 하지만, 아마 이렇게 큰 프로덕션에는 지원해본 적이 없었을 테니 더 충격이 큰 걸지도 모르겠다.
"어디 보자... 밥도 먹었으니 다른 프로덕션으로 가 볼까"
"네?"
"말했잖아. 오늘은 네 얼굴을 알리러 돌아다닌다고"
"아, 하지만..."
표정이 어둡다. 또 방금 같은 식으로 거절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생각이라는 게 있을까 싶을 만큼 순진하고, 맘먹은 일은 팍팍 밀어붙이는데, 그런가 하면 금방 침울해져 버린다. 이거야 원, 힘든 타입이구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옛날에도 이런 애를 담당했던 적이...
"윽..."
나의 가장 성공적인 실패작인 한 아이돌을 떠올리자, 순간 가슴이 아파 신음을 내뱉는다. 꼬맹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게.그녀야말로 나의 트라우마이자 성역이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그 때의 아픔을 떨쳐내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 꼬마에게서 그 아이를 떠올리는 것일까?
"걱정 말고 가자고. 가끔은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지만, 거기서 주저앉지 않는다면 레이스는 끝나지 않아. 아이돌로써의 너는 아직 레이스를 시작하지도 않은 셈이고. 그리고 이건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같은 거니까."
"...네!"
그래. 이번에는 100미터 달리기를 시키지는 않겠어. 히다카 마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이번 목적지는 765프로다.
"어... 여기 맞아요?"
"글쎄... 웹 페이지의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나는 수도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낡은, 허름한... 이런 형용사보다는 '다 쓰러져간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저 위 유리창에 박스테이프를 붙여 쓴 '765'라는 글씨를 보면 여기가 765프로의 사무실인 건 맞는 것 같다.
"연예사무소 치고는 상당히 허름한데요..."
"뭐, 뭐어. 그래도 내 옛 지인이 하는 회사니까. 겉보기에는 허름해보여도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는 고장나 있었다. 나와 꼬마는 잠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잠시 불안감과 의혹을 나누고는 계단을 터덜터덜 올랐다. 문 틈으로 인기척이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노크를 두 번 하고, 문으로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그러자 안쪽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답한 사람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