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연습생들도 경악하며 일어서 바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대체 이런 대기업의 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뭐하러 연습생들을 보러 오는 거야?!
'아니...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여기서 사장의 눈에 띄면, 지금보다 더 빨리 아이돌로서 데뷔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트레이너. 여기 있는 연습생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건 누구지?"
"저기 있는 아마가세 토우마입니다"
내가 지명되었다. 사장이 나를 바라보자 조금 긴장하기는 했지만, 애써 당당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슴을 쫙 펴고 사장을 응시했다. 그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어이, 아마가세 토우마라고 했던가. 한 번 자신있는 노래나 댄스를 보여봐라. 이 내가 직접 평가해주지"
"......당신이?"
트레이너라거나, 전직 아이돌이라면 모를까, 그저 회사를 경영하기만 할 뿐인 사람이 나를 평가한다니...내 실력을 제대로 알아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아, 아마가세 군...! 상대는 사장님이야, 그런 언행은...!"
"아니,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더 마음에 드는군. 그런 말을 할 실력은 있겠지?"
"흥. 당연한 소리를. 내가, 최고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떠한 이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뒷받쳐주고 있는 내 실력을 있는 힘껏 자랑했다. 방금 전의 레슨으로 지쳤던 것은 이미 다 잊었다. 내 실력을 보여주는데, 체력을 조금 사용한 것 따위, 핸디캡조차 되지 않는다
사방이 유리거울과 문으로 막힌 레슨실 안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맞춰서 격렬하게 움직인다. 그동안 줄곧 연습해 온 스텝이나,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다른 연습생들은 경악한 듯, 그리고 경이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흥, 나처럼 노력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서, 자기가 재능이 없다고 자학하는 녀석들은 짜증이 난다
짝짝짝, 박수를 치는 사장.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실력이라면, 아이돌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경영인이라도 감탄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합격점이다"
"...잠깐, 지금, 그냥 듣고 넘어가기는 힘든 말을 한 것 같은데?"
부족한 점? 부족한 점이라니? 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지? 외모, 노래, 댄스 그 무엇도 부족한 것이 없을텐데?!
"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야. 납득이 가게 설명해봐"
"호오...나에게 질문을 한 건가? 당돌한 놈이로군. 보통 같았으면 바로 혼을 냈겠지만, 좋아. 오늘의 나는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말해주도록 하지. 네녀석은 단순히 인형처럼 춤추고 노래하면─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
노래하고 춤추는 인형이면 충분하냐고?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런게 되자고 여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아이돌은──
"오늘의 경우에는 단순히 내가 네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없겠지만, 진짜 무대 위에서는 다르다.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줄 마음이 담기지 않은 노래와 댄스는 결국 인형놀이에 불과하지. 대중은 그렇게 쓸데없으리만큼 미세한 부분에서 예민하다"
마지막에 은근히 감정이 실린 듯한 어조로 쿠로이 사장은 말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던 듯 하지만, 일일히 캐물을 생각은 없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사연 한두 개 정도는 있을 테니까
"...팬들을 즐겁게 하지 못 하는 아이돌은, 아이돌 실격이겠지. 고마워, 아저씨. 한 수 배웠어"
"아, 아마가세 군...?! 사장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면 안 돼!"
"막지 말도록, 트레이너. 아저씨든 뭐든 좋다. 난 왕자(王者)가 될 수 있는 아이돌이라면 어떤 녀석이든 좋으니까"
사장, 쿠로이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아마가세 토우마, 라고 했었지? 나는 너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너를 톱 아이돌로 만들기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너는 내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있나? 아이돌들의 정점. 왕자(王者)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당연한 말을. 한 번 시작한 이상, 정점을 노린다. 한 번 결정한 것은 반드시 실현하고,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 간들거리며 사이 좋은 척 하는 녀석들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아. 모두에게 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겠어! 그리고 납득시킨다! 이 내가, 톱 아이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것을!"
"야심이 넘치는군. 배짱있는게 마음에 들어. 그렇다면 샤워실에서 씻고 따라와라. 지금 바로 CD 앨범을 준비할 테니까"
지금 바로?! ...아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얼마나 빠르든 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이돌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라고 하더라도, 그에 응해줄테니까
그 소녀는, 일단 키가 작았다. 긴 남색의 포니테일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어쩐지 이국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짧은 반바지와 반팔티에서 드러나는 몸매는 꽤나 괘씸...크흠, 흠!
자세히 보니, 그녀는 961 프로가 자랑하는 아이돌 유닛. 프로젝트 페어리의 한 명, 가나하 히비키였다
"......우와"
남성 아이돌과 여성 아이돌. 댄스의 형식도, 노래도, 팬층도 다른 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걷기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녀의 댄스를 본 나는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노래도, 댄스도 완벽하다. 특히 댄스의 경우에는 여성 아이돌답지 않게 꽤나 동작이 크다. 그만큼 체력의 소비도 클텐데, 그러면서도 음정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목표로 하는 아이돌. 그 자체가, 성별은 다르지만, 눈 앞에 서 있었다
시선을 느낀 탓이었을까. 그녀는 자율레슨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응? 너는 누구?"
"어, 나...? 나는, 아마가세 토우마...야"
"아마가세 토우마...? 들어본 적 없는 이름과 얼굴인데...너도 여기의 아이돌?"
그녀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961 프로에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되었고, 연습생이었다가 오늘 갑자기 쿠로이 사장에게 발탁되어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냥 연습생이라고 밝히는 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제부터 아이돌로 데뷔할 몸이야. 두고 보라고, 한달 후, 데뷔해서 3개월 안에 너희, 프로젝트 페어리를 넘어설 테니까!"
호기롭게 외쳤지만, 가나하 히비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쟁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우리들, 팬층이 다르니까, 애초에 승부 자체가 안 되는 거 아닌가?"
"......"
보기좋게 반격을 당해버렸다. 아니, 그보다 당연한 말이었다. 삿대질까지 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건만.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허공에 고정된 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치만, 재미있다는 듯이, 가나하는 밝게 웃었다
"그래도 기대되네! 내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한달 후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건, 쿠로이 사장이 직접 발탁했다는 뜻이지? 그 사장님, 성격이 안 좋기는 해도, 안목만큼은 진짜니까, 분명 실력도 대단할거야, 그렇지?"
"다, 당연하지! 나는 내 실력만으로 톱 아이돌이 될 남자니까!"
"유감이지만, 그건 무리. 나도 목표는 톱 아이돌이니까. 이제 막 데뷔하려는 신참에게 질 생각은 없다고? 그도 그럴게, 자신, 완벽하니까!"
자신만만한 목소리. 의심을 할 필요 따위는 없다는 듯 흔들림 하나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뭐야, 이쪽의 호승심을 상당히 자극하는걸? 끓어오르게 해주잖아?
"흥, 나중에 추월당하고 질질 짜지나 마시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자신감이 샘솟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로서의 관록과 위엄을 보여줄테니, 그쪽이야말로 각오하는게 좋을걸!"
성별이 달라도, 팬층이 달라도 상관없다. 가나하 히비키는, 내가 꿈꾸던 톱 아이돌에 가까운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뛰어넘어주마. 내 실력만으로, 남성팬들도, 여성팬들도 전부 휘어잡아서, 남녀 가리지 않고 아이돌 업계 전체를 평정할 톱 아이돌이──그런 왕자(王者)가 되어주겠어
개별레슨을 하자. 경쟁심이 생긴다고 해도, 댄스도, 노래도 다른 가나하와 같이 레슨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다만, 트레이너도 현재 가사가 정해지기 전까지, 다른 습관이 들지 않도록 특별히 다른 레슨을 할 수 없다며 체력단련을 권했다. 961프로 내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길 일주일. 아저씨가 불렀다
"작사가를 긁어모았다. 네가 넣고 싶다거나, 생각하는 가사가 있다면 한 번 참가해보도록. 물론 너는 어디까지나 의견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건 작사가들의 일이다. 본분을 착각하는 일은 하지 말도록"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 후로, 3일간 집에도 가지 않은 채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사와 안무 제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결과 드디어 끝을 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녹음을 하고, 레슨을 받으며 20일 후에 있을 데뷔를 앞두고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보다 20일이라니...너무 촉박한 시간은 아니려나..."
트레이너가 앓는 소리를 낸다. 솔직히 어지간한 아이돌들도 신곡을 준비하려면, 아무리 적아도 반 년이다. 20일 동안 준비한다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금 꺼려지는 일이었다. 트레이너도 그 이야기를 아저씨에게 말해본 것 같지만,
──앨범을 낸다고 해도, 대중의 앞에서 선보일 무대는 오로지 타이틀곡인 『BANG×BANG』 뿐이다. 대중에게 휘둘리지 마라. 그들이 우리를 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끌고 가는 거다, 라고 한 모양이다
아이돌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오만한 발언. 그치만, 끌려가는게 아닌, 적극적으로 주도해서 이끌어 나아간다고 하는 건 꽤나 마음에 든다. 그 아저씨, 제법 나하고 잘 맞는 모양인데?
"확실히 아마가세 군의 실력을 생각해보면 타이틀곡 하나만을 연습할 때, 20일이면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대중의 눈치를 완전히 보지 않는 건 좀 무리수가 아닌가 싶은데....."
"트레이너. 그 아저씨가 말했잖아. 자기가 바라는 건 왕자(王者)라고. 내 팬이 될 사람들을 가볍게 취급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어. 이것저것 제약이 붙어버리면 곤란하다고."
"뭐...아마가세 군까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어쩔 수 없겠네. 좋아, 까짓거 해보자. 사장님의 결단력이야, 뭐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실패한 적도 없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아저씨는 상당히 팬을, 그리고 대중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끌려가지 않는다라던가, 왕자(王者)라던가. 보는 안목도 제법이고, 나이도 꽤 있어 보이는 사람이니, 그보다 훨씬 더 젊은 시절부터 이 바닥에서 일했을 테니, 961 프로를 이 정도의 대기업으로 세우기 전에도 아이돌 여러 명을 프로듀스 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 무슨 안 좋은 일을 겪었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데뷔만으로도 바쁘고, 그 아저씨도 빨리 날 데뷔시킬 생각인지 일을 서두르고 있으니까. 우선 데뷔를 한 뒤, 조금 안정되기 시작하면, 그때가서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휴게실에서 가나하 히비키와 만났다.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시던 때에 그녀는 근처의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딱히 레슨을 받다가 온 것 같지도 않고, 어디 라이브장에 가는 것도 아닌, 평범한 사복차림이였다
'그보다, 이 녀석...사복 차림이면 이렇게 되는 건가...'
짧은 반바치에 헐렁한 셔츠. 셔츠가 이전에 레슨했을 때 봤었던 큰 가슴을 가려 꽤나 빈약해보이는 몸매로 보이게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의외로 가슴골이 꽤 보이는──아니아니,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얼굴이 낯뜨거워져 시선을 돌렸다. 빨리 음료수를 마시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저기 말야, 토우마. 너는...친구라던가 있어?"
"넌 내가 외톨이로 보이는 거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그냥...토우마는 언제나 홀로 열심이니까"
"흥...나 이외의 녀석들이 건성건성인 거라고...나는 진지한게 아니면 싫으니까"
학교에도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최근에는 데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연락은 해도 만나서 놀 시간이 없기는 하다. 그래도,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 데뷔를 하고 싶다는 떨림에 계속 흥분되는 상태다
"자신...사장에게 들었는데, 톱은 항상 고독해야 한다고 해...오롯히 홀로 서 있으니까, 톱 아이돌인거라고...그치만, 최근에 만난 어떤 여자애는, 나와 달랐다? 평범하고 재능도 없고 보여줄 수 있는 건 미소 뿐인...그런 약소 아이돌이라고 생각했어...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게 눈에 보여와. 게다가, 그 아이들은 항상 모두의 중심에 있어...분명 더 반짝반짝 빛이나는 건 자신일텐데...어째서인지, 자신보다 훨씬 더 따뜻해 보이는 건 그 녀석인거야"
"......"
톱은 고독한게 당연하다. 아무리 단결을 외치며 다 같이 톱 아이돌을 노린다고 해도, 결국 정점에 서는 것은 단 한 명.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가나하 히비키는 자신과 정반대의 아이돌과 만나, 흔들리고 있는 듯 했다
싫다......내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이 이런 식으로 흔들려, 약한 여자애로 보이는 것은 싫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가나하. 이런 아이돌도 있고, 그런 아이돌도 있는 거야. 중요한 건 누가 왕자(王者)가 되는 거다. 그 녀석의 존재가 불안하고 초조해지면, 실력으로, 확실히 찍어 눌러버리라고. 그게 이 바닥의 룰이잖아"
그래도, 조금은 호기심이 생긴다. 대체 어떤 아이돌이기에, 961 프로 내에서 가장 톱 아이돌에 근접하다고 알려져 있는 가나하 히비키를 이만큼이나 흔들 수 있는 걸까?
"데뷔 무대의 형식은 일종의 대결이다. 평소와 다른 방식이지만, 다른 프로덕션의 아이돌과의 경쟁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매력을 뽐내보도록. 그게 짧은 시간에 인지도를 잔뜩 끌어모으기에는 최적의 방식이니까."
어느날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불러 데뷔의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벌써 그렇게 정해진 건가. 그래서, 상대는?"
"765 프로덕션이다. 3류 프로듀서와 겁쟁이 사장 그리고 사무원 하나가 뭉쳐서 만든 프로덕션이라고 할까."
".......765 프로."
가나하 히비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아이돌들이라고.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그 녀석들이 키운 아이돌은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 2류. 그 중에서도 노래는 1류일지 몰라도 아이돌로서는 3류 이하인 녀석도 끼어 있다.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다나고 해도, 그게 어울릴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너 혼자서 가뿐히 박살낼 수 있을 거다."
아저씨의 말에는 동감한다. 그렇지만, 다르게 보면,
"그야말로 왕도(王道)적인 조합이로구만. 보통 만화에서는 그런 녀석들이 우정 파워로 똘똘 뭉쳐 잠재력을 뻥! 하고 터뜨려 파죽지세로 위를 향해 올라가지."
"......토우마?"
그런 녀석들이 주인공이라면 홀로 왕자(王者)가 되기를 추구하는 나는 경쟁자. 게다가 이제 막 데뷔하는 입장이니 중간보스조차 되지 못 할 거다.
"──아아, 마음에 안 드는구만."
반발심이 든다. 경쟁심이 불타오른다. 호승심을 자극받았다.
"아저씨. 나 혼자서 그 놈들 전부하고 부딪히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네 경쟁 상대가 될 터이다. 아니, 되게 만들거다."
"그쪽에 썩 좋지 못 한 감정이라도 있는 모양이야?"
"흥...네가 신경쓸 바 아니다. 과거에 악연이 조금 있는 정도니까."
가나하 히비키도, 그리고 쿠로이 아저씨도 765 프로덕션에 얽매여 있다.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 하더라도, 사실상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정면에서 화려하게 부딪혀 박살내주는 수 밖에 없겠군."
".......훗,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녀석이 자신감 하나만큼은 아주 하늘을 찌르는군. 세레브한 이 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자만하다가 한 방에 훅 가버리는 수가 있다."
자만이라니, 아저씨는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만.
"착각하지 말라고, 아저씨. 이건 자만이 아니라 여유라고 하는 거야."
"...흥, 뭐 좋다. 쫄아서 겁 먹은 것보다는 낫겠지. 트레이너에게 미리 지시는 해두었다. 너는 데뷔 무대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생각보다 굵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꽤 길게 내릴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조건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경쟁 상대는 765 프로의 후타미 아미라는 꼬마다. 본래는 쌍둥이 자매인 후타미 마미와 함께 무대에 서는 일이 많지만, 이번에는 홀로 나섰다는군. 즉, 네가 이제 막 데뷔하는 햇병아리라고 해도 둘이 아닌 혼자인 꼬마 상대로는 나쁘지 않다."
다만 문제는 외부적인 요인에 있다.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면 보통 공연이 취소되고는 하지. 게다가 스피커는 고장난 상태. 이 상황에서 열창을 한다고 해도 들을 수 있는 관객의 절반 정도일까."
빗소리에 노래가 묻혀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덤으로 비에 젖은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만한 추태가 또 없지. 시작부터 무슨 악재가 이리도 겹치는지...칫. 데뷔 일정을 뒤로 미룰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아저씨. 여기서 물러난다면, 겁 먹은 개가 먼저 꼬리를 내리고 뒤로 내빼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럼에도 내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호승심을 자극당한다.
"온갖 악재를 이겨내고, 덤으로 승리도 차지해 낸다면, 이보다 더 한 화제거리도 없겠지?"
"......훗. 그토록 바란다면 굳이 멈출 이유도 없지."
쿠로이 아저씨도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좋다. 하고 싶다면 어디 한 번 마음껏 날뛰어 보고 와라. 그렇지만,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무대가 좋지 않았다, 악재가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 같은 건 듣지 않는다. 이건 네가 선택한 것이니까. 일부러 몸을 던진 이상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와라."
"흥,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아저씨."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을 올라가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간다. 찰박찰박 하고, 무대의 위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발로 밟으며, 몸을 적시는 빗줄기를 받아낸다.
미간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 눈에라도 들어간다면 곤란하겠지.
"961 프로의 아마가세 토우마다."
들어올린 마이크의 음성은 평소보다 낮다.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양이라니.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
"비가 내려서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비를 쓴다고 해도, 이제 막 데뷔를 시작한 신참 아이돌의 무대 따위, 흥미도 없겠지. 여기서는 그냥 돌아가는 게 속 편할 거다.
"그래도 미리 말해두지. 공연은 그대로 진행한다. 이 상태에서도 계속이다. 잘 보고 있으라고. 돌아가는 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매료시켜 줄 테니까."
햇병아리 답지 않은 패기에 관객들은 조금이나마 부응해 준다.
눈은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고 했던가. 그 시선 너머로 보이는 것들은 호기심이나 짜증 등. 아마가세 토우마가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시험을 해보겠다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수많은 시선들을 인식하자, 손과 다리가 떨려오는 걸 느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라도 했다간 웃음거리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란 듯이 도발까지 해 보인 이상 실패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떨림은 줄어간다. 적당한 긴장감은 스릴이 되어 즐기게 된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토우마도 자세를 취한다.
"곡의 이름은『BANG x BANG』. 끝까지 어울려 달라고!"
이어지는 노래에 맞춰 가사를 읊어간다.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도 그 댄스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 무대 하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를 가린다고 해도 상관없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움직이면, 무대는 그대로 진행된다.
'믿는 거다. 그동안 내가 땀을 흘려올 시간을, 그동안 해 온 노력들을,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고 있어!'
기대에 부응한다기 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 해 펼친 무대는, 이윽고, 노래가 끝났을 때 들려온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승리라는 이름의 보답을 돌려주었다.
*
아이마스 2에서 홀로 류구코마치를 패배시킨 토우마가 아미 한 명 못 이기는 건 말이 안 되지!
2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간 콘서트장. 내가 앉은 자리는 맨 뒤의 자리였다. 대형 스크린의 화면을 통해서 아이돌이 춤추는 건 보였다. 노래는 앰프를 통해서 크게 잘 들려왔다. 귀가 아파올 정도로
그렇지만, 그런 것들 모두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그 광경에 매료되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며, 물결처럼 흔들리는 사인라이트의 불빛들.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 반짝반짝 거리는 무대 위에서,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
그 후, 잠깐의 여유 시간, 한 아이돌이 마이크를 통해서 외쳤다
『모두~! 맨 뒤에까지 잘 보이고 있으니까~!』
"...?!"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눈에 반했냐고? 아니 그런게 아니다. 흥분으로, 떨림으로 변한 것이다
나도 저 무대에 서 보고 싶다. 저 무대에 서서, 저 아이돌과 똑같은 말을 해보고 싶다. 정말로 저 위치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가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아이돌은 2년 후 은퇴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나의 아이돌(우상)로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생긴, 톱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과 함께 연예사무소 중 하나인 961 프로덕션에 입사했다
*
솔직히 말해서, 조금 얕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2, 3, 4. 1, 2, 3, 4"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받는 레슨. 당연히 곧바로 아이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연습생으로서 레슨은 받아야겠지. 그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하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 잠깐 휴식"
"허억...! 허억...!"
입에서 단내가 난다. 뻘뻘 흘린 땀으로 인해, 등과 허리 그리고 가슴팍까지 전부 젖었다. 끈적거리는 땀의 감촉과 여기저기서 근육통을 호소하는 듯한 몸까지. 괴로웠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폐가 쪼그라들다 다시 펴지는 듯 하다
여기에 있는 다른 연습생들은 모두 내 경쟁자들. 하지만, 이 녀석들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이 녀석들처럼 나약하지는 않으니까
동료니, 뭐니 그런 핑계를 대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 자기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생각도 없이, 비슷한 녀석들끼리 뭉쳐서 레슨이 너무 빡세다느니, 뭐라느니 불평만 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전부 제대로 된 라이벌이라, 경쟁심리를 느껴,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레슨에 참여한다면 또 모를까, 그것조차 아니다. 학원에 공부를 하러 가는게 아니라, 친구들과 놀러 가려는 듯한─그런 조합이었다
대체 961 프로덕션은 왜 저런 녀석들을 연습생으로 받아들인 거지? 저런 녀석들 수십명보다 나 같은 사람 2, 3명을 받아들이는게 훨씬 더 효율적일텐데
그때,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트레이너가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격한 트레이너의 성격 상 저런 말을 하는 걸로 보아, 우리들과 같은 연습생은 아니다
누구일까. 트레이너의 친구? 아니면 이미 데뷔한 아이돌? 그도 아니면 회사의 간부?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인물지침 +2
1. 쿠로이 사장
2. 프로젝트 페어리
"흠. 수고하고 있군"
쿠로이 사장? 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질 정도면, 이 961 프로에서 가장 높은 사람?!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연습생들도 경악하며 일어서 바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대체 이런 대기업의 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뭐하러 연습생들을 보러 오는 거야?!
'아니...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여기서 사장의 눈에 띄면, 지금보다 더 빨리 아이돌로서 데뷔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트레이너. 여기 있는 연습생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건 누구지?"
"저기 있는 아마가세 토우마입니다"
내가 지명되었다. 사장이 나를 바라보자 조금 긴장하기는 했지만, 애써 당당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슴을 쫙 펴고 사장을 응시했다. 그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어이, 아마가세 토우마라고 했던가. 한 번 자신있는 노래나 댄스를 보여봐라. 이 내가 직접 평가해주지"
"......당신이?"
트레이너라거나, 전직 아이돌이라면 모를까, 그저 회사를 경영하기만 할 뿐인 사람이 나를 평가한다니...내 실력을 제대로 알아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아, 아마가세 군...! 상대는 사장님이야, 그런 언행은...!"
"아니,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더 마음에 드는군. 그런 말을 할 실력은 있겠지?"
"흥. 당연한 소리를. 내가, 최고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떠한 이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뒷받쳐주고 있는 내 실력을 있는 힘껏 자랑했다. 방금 전의 레슨으로 지쳤던 것은 이미 다 잊었다. 내 실력을 보여주는데, 체력을 조금 사용한 것 따위, 핸디캡조차 되지 않는다
사방이 유리거울과 문으로 막힌 레슨실 안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맞춰서 격렬하게 움직인다. 그동안 줄곧 연습해 온 스텝이나,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다른 연습생들은 경악한 듯, 그리고 경이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흥, 나처럼 노력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서, 자기가 재능이 없다고 자학하는 녀석들은 짜증이 난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끊긴 뒤, 나는 당당하게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끝내주지?"
쿠로이의 반응+2
1. 긍정적
2.. 부정적
짝짝짝, 박수를 치는 사장.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실력이라면, 아이돌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경영인이라도 감탄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합격점이다"
"...잠깐, 지금, 그냥 듣고 넘어가기는 힘든 말을 한 것 같은데?"
부족한 점? 부족한 점이라니? 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지? 외모, 노래, 댄스 그 무엇도 부족한 것이 없을텐데?!
"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야. 납득이 가게 설명해봐"
"호오...나에게 질문을 한 건가? 당돌한 놈이로군. 보통 같았으면 바로 혼을 냈겠지만, 좋아. 오늘의 나는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말해주도록 하지. 네녀석은 단순히 인형처럼 춤추고 노래하면─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
노래하고 춤추는 인형이면 충분하냐고?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런게 되자고 여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아이돌은──
"오늘의 경우에는 단순히 내가 네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없겠지만, 진짜 무대 위에서는 다르다.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줄 마음이 담기지 않은 노래와 댄스는 결국 인형놀이에 불과하지. 대중은 그렇게 쓸데없으리만큼 미세한 부분에서 예민하다"
마지막에 은근히 감정이 실린 듯한 어조로 쿠로이 사장은 말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던 듯 하지만, 일일히 캐물을 생각은 없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사연 한두 개 정도는 있을 테니까
"...팬들을 즐겁게 하지 못 하는 아이돌은, 아이돌 실격이겠지. 고마워, 아저씨. 한 수 배웠어"
"아, 아마가세 군...?! 사장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면 안 돼!"
"막지 말도록, 트레이너. 아저씨든 뭐든 좋다. 난 왕자(王者)가 될 수 있는 아이돌이라면 어떤 녀석이든 좋으니까"
사장, 쿠로이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아마가세 토우마, 라고 했었지? 나는 너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너를 톱 아이돌로 만들기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너는 내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있나? 아이돌들의 정점. 왕자(王者)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당연한 말을. 한 번 시작한 이상, 정점을 노린다. 한 번 결정한 것은 반드시 실현하고,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 간들거리며 사이 좋은 척 하는 녀석들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아. 모두에게 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겠어! 그리고 납득시킨다! 이 내가, 톱 아이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것을!"
"야심이 넘치는군. 배짱있는게 마음에 들어. 그렇다면 샤워실에서 씻고 따라와라. 지금 바로 CD 앨범을 준비할 테니까"
지금 바로?! ...아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얼마나 빠르든 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이돌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라고 하더라도, 그에 응해줄테니까
행동 +2
"이전부터 만들어둔 곡들이 여러 개 있긴 하다. 그 중에서, 네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봐"
수십 개의 음악파일들이 보였다. 토우마는 헤드셋을 끼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며 마음에 들면 음을 따라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쿠로이 사장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남은 노래는 5개 정도로 좁혀졌다
"좋아. 이것들 전부 하나의 앨범에 담아서 발표하도록 하지. 가사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 레슨을 받으며 기다려라"
사장이 현장에 찾아가 직접적으로 내리는 명령. 복잡한 중간과정을 거칠 것 없이 일이 바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경영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라고 의문이 들 정도다
"이봐, 아저씨...우리 만난지 1시간도 안 되었어...아낌없이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너무 과한 것 아니야?"
"나는 내 선택에 단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아니면 뭐냐, 이제와서 겁이라도 난 건가?"
아저씨의 말은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아니거든! 누가 겁을 먹어! 오히려 흥분과 기대로 떨려서 그런 거야!"
961 정도 되는 대기업, 대형 프로덕션의 사장이 직접 나를 선택하고, 앨범 제작도 엄청난 속도로 진행시킬 것을 명령했다. 이 정도의 특혜를 누리는 아이돌은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빨리...최대한 빨리 무대 위에 서고 싶어..."
"흥. 데뷔는 한달 후다. 작사에 대해선, 네가 참가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심해둬라. 나는 내 선택을 믿는다. 내 선택을, 내 믿음을 배신한다면──곱게 끝나지는 않을 거다"
서슬 퍼런 말을 하는 아저씨.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쫄까 보냐. 나는 이미 엄청나게 멀리 와버렸다고
"헹, 얕보지 마시지, 아저씨. 나는 이미 아저씨랑 한 배에 탔다고. 이제와서 도망칠까 보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전력으로 덤벼주지. 그리고 톱 아이돌이 되어주겠어! 앞을 막아서는 건 전부 내 실력으로 뛰어넘어 가볍게 톱 아이돌의 자리를 쟁취하겠다, 이거야!"
"배짱 한 번 두둑하군. 그 대담함, 마음에 든다.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녹음실에서 나왔다. 데뷔는 한달 후. 작사 과정에는 당연히 나도 참가할 거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름 속으로 생각해 둔 것이 있긴 하니까
'그럼 지금부터 레슨을 받을까? 아니면 오늘은 이만 집에 돌아가서 쉴까? 오늘의 이야기,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
+2
1. 레슨
2. 집
나는 립싱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격렬하게 춤추더라도, 제대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립싱크나 소속사 그리고 단지 외모만으로 아이돌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실력만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도 필요하다. 자신의 재능도 개화하지 못 한 채 떨어져 나간다면 자기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
레슨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미 다른 사람이 연습을 하고 있는 듯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로 보아선 아무래도 여성인 듯 했다
"누구지...?"
아이돌일까. 궁금함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2
1. 시죠 타카네
2. 호시이 미키
3. 가나하 히비키
자세히 보니, 그녀는 961 프로가 자랑하는 아이돌 유닛. 프로젝트 페어리의 한 명, 가나하 히비키였다
"......우와"
남성 아이돌과 여성 아이돌. 댄스의 형식도, 노래도, 팬층도 다른 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걷기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녀의 댄스를 본 나는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노래도, 댄스도 완벽하다. 특히 댄스의 경우에는 여성 아이돌답지 않게 꽤나 동작이 크다. 그만큼 체력의 소비도 클텐데, 그러면서도 음정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목표로 하는 아이돌. 그 자체가, 성별은 다르지만, 눈 앞에 서 있었다
시선을 느낀 탓이었을까. 그녀는 자율레슨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응? 너는 누구?"
"어, 나...? 나는, 아마가세 토우마...야"
"아마가세 토우마...? 들어본 적 없는 이름과 얼굴인데...너도 여기의 아이돌?"
그녀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961 프로에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되었고, 연습생이었다가 오늘 갑자기 쿠로이 사장에게 발탁되어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냥 연습생이라고 밝히는 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제부터 아이돌로 데뷔할 몸이야. 두고 보라고, 한달 후, 데뷔해서 3개월 안에 너희, 프로젝트 페어리를 넘어설 테니까!"
호기롭게 외쳤지만, 가나하 히비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쟁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우리들, 팬층이 다르니까, 애초에 승부 자체가 안 되는 거 아닌가?"
"......"
보기좋게 반격을 당해버렸다. 아니, 그보다 당연한 말이었다. 삿대질까지 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건만.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허공에 고정된 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치만, 재미있다는 듯이, 가나하는 밝게 웃었다
"그래도 기대되네! 내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한달 후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건, 쿠로이 사장이 직접 발탁했다는 뜻이지? 그 사장님, 성격이 안 좋기는 해도, 안목만큼은 진짜니까, 분명 실력도 대단할거야, 그렇지?"
"다, 당연하지! 나는 내 실력만으로 톱 아이돌이 될 남자니까!"
"유감이지만, 그건 무리. 나도 목표는 톱 아이돌이니까. 이제 막 데뷔하려는 신참에게 질 생각은 없다고? 그도 그럴게, 자신, 완벽하니까!"
자신만만한 목소리. 의심을 할 필요 따위는 없다는 듯 흔들림 하나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뭐야, 이쪽의 호승심을 상당히 자극하는걸? 끓어오르게 해주잖아?
"흥, 나중에 추월당하고 질질 짜지나 마시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자신감이 샘솟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로서의 관록과 위엄을 보여줄테니, 그쪽이야말로 각오하는게 좋을걸!"
성별이 달라도, 팬층이 달라도 상관없다. 가나하 히비키는, 내가 꿈꾸던 톱 아이돌에 가까운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뛰어넘어주마. 내 실력만으로, 남성팬들도, 여성팬들도 전부 휘어잡아서, 남녀 가리지 않고 아이돌 업계 전체를 평정할 톱 아이돌이──그런 왕자(王者)가 되어주겠어
+2
1. 공동 레슨
2. 개별 레슨
3. 집으로
지금은 개별 레슨입니다!
다만, 트레이너도 현재 가사가 정해지기 전까지, 다른 습관이 들지 않도록 특별히 다른 레슨을 할 수 없다며 체력단련을 권했다. 961프로 내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길 일주일. 아저씨가 불렀다
"작사가를 긁어모았다. 네가 넣고 싶다거나, 생각하는 가사가 있다면 한 번 참가해보도록. 물론 너는 어디까지나 의견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건 작사가들의 일이다. 본분을 착각하는 일은 하지 말도록"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 후로, 3일간 집에도 가지 않은 채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사와 안무 제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결과 드디어 끝을 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녹음을 하고, 레슨을 받으며 20일 후에 있을 데뷔를 앞두고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보다 20일이라니...너무 촉박한 시간은 아니려나..."
트레이너가 앓는 소리를 낸다. 솔직히 어지간한 아이돌들도 신곡을 준비하려면, 아무리 적아도 반 년이다. 20일 동안 준비한다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금 꺼려지는 일이었다. 트레이너도 그 이야기를 아저씨에게 말해본 것 같지만,
──앨범을 낸다고 해도, 대중의 앞에서 선보일 무대는 오로지 타이틀곡인 『BANG×BANG』 뿐이다. 대중에게 휘둘리지 마라. 그들이 우리를 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끌고 가는 거다, 라고 한 모양이다
아이돌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오만한 발언. 그치만, 끌려가는게 아닌, 적극적으로 주도해서 이끌어 나아간다고 하는 건 꽤나 마음에 든다. 그 아저씨, 제법 나하고 잘 맞는 모양인데?
"확실히 아마가세 군의 실력을 생각해보면 타이틀곡 하나만을 연습할 때, 20일이면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대중의 눈치를 완전히 보지 않는 건 좀 무리수가 아닌가 싶은데....."
"트레이너. 그 아저씨가 말했잖아. 자기가 바라는 건 왕자(王者)라고. 내 팬이 될 사람들을 가볍게 취급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어. 이것저것 제약이 붙어버리면 곤란하다고."
"뭐...아마가세 군까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면...어쩔 수 없겠네. 좋아, 까짓거 해보자. 사장님의 결단력이야, 뭐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실패한 적도 없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아저씨는 상당히 팬을, 그리고 대중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끌려가지 않는다라던가, 왕자(王者)라던가. 보는 안목도 제법이고, 나이도 꽤 있어 보이는 사람이니, 그보다 훨씬 더 젊은 시절부터 이 바닥에서 일했을 테니, 961 프로를 이 정도의 대기업으로 세우기 전에도 아이돌 여러 명을 프로듀스 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 무슨 안 좋은 일을 겪었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데뷔만으로도 바쁘고, 그 아저씨도 빨리 날 데뷔시킬 생각인지 일을 서두르고 있으니까. 우선 데뷔를 한 뒤, 조금 안정되기 시작하면, 그때가서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2
1. 시죠 타카네
2. 호시이 미키
3. 가나하 히비키
"응? 너는...?"
"아마가세 토우마다"
우연히, 휴게실에서 가나하 히비키와 만났다.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시던 때에 그녀는 근처의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딱히 레슨을 받다가 온 것 같지도 않고, 어디 라이브장에 가는 것도 아닌, 평범한 사복차림이였다
'그보다, 이 녀석...사복 차림이면 이렇게 되는 건가...'
짧은 반바치에 헐렁한 셔츠. 셔츠가 이전에 레슨했을 때 봤었던 큰 가슴을 가려 꽤나 빈약해보이는 몸매로 보이게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의외로 가슴골이 꽤 보이는──아니아니,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얼굴이 낯뜨거워져 시선을 돌렸다. 빨리 음료수를 마시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저기 말야, 토우마. 너는...친구라던가 있어?"
"넌 내가 외톨이로 보이는 거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그냥...토우마는 언제나 홀로 열심이니까"
"흥...나 이외의 녀석들이 건성건성인 거라고...나는 진지한게 아니면 싫으니까"
학교에도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최근에는 데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연락은 해도 만나서 놀 시간이 없기는 하다. 그래도,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 데뷔를 하고 싶다는 떨림에 계속 흥분되는 상태다
"자신...사장에게 들었는데, 톱은 항상 고독해야 한다고 해...오롯히 홀로 서 있으니까, 톱 아이돌인거라고...그치만, 최근에 만난 어떤 여자애는, 나와 달랐다? 평범하고 재능도 없고 보여줄 수 있는 건 미소 뿐인...그런 약소 아이돌이라고 생각했어...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게 눈에 보여와. 게다가, 그 아이들은 항상 모두의 중심에 있어...분명 더 반짝반짝 빛이나는 건 자신일텐데...어째서인지, 자신보다 훨씬 더 따뜻해 보이는 건 그 녀석인거야"
"......"
톱은 고독한게 당연하다. 아무리 단결을 외치며 다 같이 톱 아이돌을 노린다고 해도, 결국 정점에 서는 것은 단 한 명.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가나하 히비키는 자신과 정반대의 아이돌과 만나, 흔들리고 있는 듯 했다
싫다......내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이 이런 식으로 흔들려, 약한 여자애로 보이는 것은 싫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가나하. 이런 아이돌도 있고, 그런 아이돌도 있는 거야. 중요한 건 누가 왕자(王者)가 되는 거다. 그 녀석의 존재가 불안하고 초조해지면, 실력으로, 확실히 찍어 눌러버리라고. 그게 이 바닥의 룰이잖아"
그래도, 조금은 호기심이 생긴다. 대체 어떤 아이돌이기에, 961 프로 내에서 가장 톱 아이돌에 근접하다고 알려져 있는 가나하 히비키를 이만큼이나 흔들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그 녀석, 이름은 뭔데?"
"하루카. 아마미 하루카. 765 프로의 아이돌이라고 해"
765 프로의 아마미 하루카, 라...기억했다
데뷔 +2
1. vs 765
2. vs 876
어느날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불러 데뷔의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벌써 그렇게 정해진 건가. 그래서, 상대는?"
"765 프로덕션이다. 3류 프로듀서와 겁쟁이 사장 그리고 사무원 하나가 뭉쳐서 만든 프로덕션이라고 할까."
".......765 프로."
가나하 히비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아이돌들이라고.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그 녀석들이 키운 아이돌은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 2류. 그 중에서도 노래는 1류일지 몰라도 아이돌로서는 3류 이하인 녀석도 끼어 있다.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다나고 해도, 그게 어울릴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너 혼자서 가뿐히 박살낼 수 있을 거다."
아저씨의 말에는 동감한다. 그렇지만, 다르게 보면,
"그야말로 왕도(王道)적인 조합이로구만. 보통 만화에서는 그런 녀석들이 우정 파워로 똘똘 뭉쳐 잠재력을 뻥! 하고 터뜨려 파죽지세로 위를 향해 올라가지."
"......토우마?"
그런 녀석들이 주인공이라면 홀로 왕자(王者)가 되기를 추구하는 나는 경쟁자. 게다가 이제 막 데뷔하는 입장이니 중간보스조차 되지 못 할 거다.
"──아아, 마음에 안 드는구만."
반발심이 든다. 경쟁심이 불타오른다. 호승심을 자극받았다.
"아저씨. 나 혼자서 그 놈들 전부하고 부딪히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네 경쟁 상대가 될 터이다. 아니, 되게 만들거다."
"그쪽에 썩 좋지 못 한 감정이라도 있는 모양이야?"
"흥...네가 신경쓸 바 아니다. 과거에 악연이 조금 있는 정도니까."
가나하 히비키도, 그리고 쿠로이 아저씨도 765 프로덕션에 얽매여 있다.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 하더라도, 사실상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정면에서 화려하게 부딪혀 박살내주는 수 밖에 없겠군."
".......훗,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녀석이 자신감 하나만큼은 아주 하늘을 찌르는군. 세레브한 이 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자만하다가 한 방에 훅 가버리는 수가 있다."
자만이라니, 아저씨는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만.
"착각하지 말라고, 아저씨. 이건 자만이 아니라 여유라고 하는 거야."
"...흥, 뭐 좋다. 쫄아서 겁 먹은 것보다는 낫겠지. 트레이너에게 미리 지시는 해두었다. 너는 데뷔 무대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해야할 일은 알았다. 부딪혀야 할 경쟁자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뿐.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이 아마가세 토우마의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켜 주겠어.
*
+2 대전상대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생각보다 굵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꽤 길게 내릴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조건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경쟁 상대는 765 프로의 후타미 아미라는 꼬마다. 본래는 쌍둥이 자매인 후타미 마미와 함께 무대에 서는 일이 많지만, 이번에는 홀로 나섰다는군. 즉, 네가 이제 막 데뷔하는 햇병아리라고 해도 둘이 아닌 혼자인 꼬마 상대로는 나쁘지 않다."
다만 문제는 외부적인 요인에 있다.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면 보통 공연이 취소되고는 하지. 게다가 스피커는 고장난 상태. 이 상황에서 열창을 한다고 해도 들을 수 있는 관객의 절반 정도일까."
빗소리에 노래가 묻혀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덤으로 비에 젖은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만한 추태가 또 없지. 시작부터 무슨 악재가 이리도 겹치는지...칫. 데뷔 일정을 뒤로 미룰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아저씨. 여기서 물러난다면, 겁 먹은 개가 먼저 꼬리를 내리고 뒤로 내빼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럼에도 내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호승심을 자극당한다.
"온갖 악재를 이겨내고, 덤으로 승리도 차지해 낸다면, 이보다 더 한 화제거리도 없겠지?"
"......훗. 그토록 바란다면 굳이 멈출 이유도 없지."
쿠로이 아저씨도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좋다. 하고 싶다면 어디 한 번 마음껏 날뛰어 보고 와라. 그렇지만,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무대가 좋지 않았다, 악재가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 같은 건 듣지 않는다. 이건 네가 선택한 것이니까. 일부러 몸을 던진 이상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와라."
"흥,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아저씨."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을 올라가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간다. 찰박찰박 하고, 무대의 위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발로 밟으며, 몸을 적시는 빗줄기를 받아낸다.
미간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 눈에라도 들어간다면 곤란하겠지.
"961 프로의 아마가세 토우마다."
들어올린 마이크의 음성은 평소보다 낮다.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양이라니.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
"비가 내려서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비를 쓴다고 해도, 이제 막 데뷔를 시작한 신참 아이돌의 무대 따위, 흥미도 없겠지. 여기서는 그냥 돌아가는 게 속 편할 거다.
"그래도 미리 말해두지. 공연은 그대로 진행한다. 이 상태에서도 계속이다. 잘 보고 있으라고. 돌아가는 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매료시켜 줄 테니까."
햇병아리 답지 않은 패기에 관객들은 조금이나마 부응해 준다.
눈은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고 했던가. 그 시선 너머로 보이는 것들은 호기심이나 짜증 등. 아마가세 토우마가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시험을 해보겠다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수많은 시선들을 인식하자, 손과 다리가 떨려오는 걸 느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라도 했다간 웃음거리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란 듯이 도발까지 해 보인 이상 실패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떨림은 줄어간다. 적당한 긴장감은 스릴이 되어 즐기게 된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토우마도 자세를 취한다.
"곡의 이름은『BANG x BANG』. 끝까지 어울려 달라고!"
이어지는 노래에 맞춰 가사를 읊어간다.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도 그 댄스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 무대 하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를 가린다고 해도 상관없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움직이면, 무대는 그대로 진행된다.
'믿는 거다. 그동안 내가 땀을 흘려올 시간을, 그동안 해 온 노력들을,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고 있어!'
기대에 부응한다기 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 해 펼친 무대는, 이윽고, 노래가 끝났을 때 들려온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승리라는 이름의 보답을 돌려주었다.
*
아이마스 2에서 홀로 류구코마치를 패배시킨 토우마가 아미 한 명 못 이기는 건 말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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