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이자, 라는 먹을거리가 있지요.
… 오야? 어쩐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이로군요, 히비키. 저의 일인 만큼 또 먹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실례이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되돌릴까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저는, 허기가 져 있었는데다 그날따라 서양의 음식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떠오른 것이 피자였습니다. 귀가하는 길의 도중에 있는 피자 전문점에 들어가, 피자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 곳의 점원은 젊은 남성 분입니다만, 제가 가끔 들리곤 할 때마다 묘한 시선을 보내오곤 한답니다. 어쩌면 저의 팬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피자 가게가 제 귀갓길에 위치해 있는 것은 그 분에게 있어선 행운인 것일까요.
피자를 들고 집에 도착한 저는 불을 켜고 테이블 위에 피자를 내려놓았습니다. 간단히 세면을 마치고 테이블 앞에 앉아 피자 상자를 열자 실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기더군요. 자그마한 접시 위에 피자를 한 조각 옮겨 담은 후, 먹기 전에 함께 구입한 핫 소스를 집어들었습니다. 그 때 작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핫 소스의 포장지가, 어쩐지 묘하게 미끌거렸던 것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져, 저는 핫 소스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포장지의 겉면에 붉은 색의 미끌대는 액체가 묻어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풍기는 매콤한 향기, 의심의 여지가 없이 핫 소스였지요. 아무래도 포장지의 어딘가에 흠이 나 내용물이 삐져나온 모양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운이 없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군요.
결국 핫 소스를 뿌리는 일은 포기하고 저는 피자를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잠에 들고자 했을 때, 무언가의 기척을 느꼈습니다. 전등을 켜고 침실 밖으로 나오자 그 근원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현관문 밖에서였습니다. 인기척, 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무언가가 찰칵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문 앞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간단한 답이었습니다.
문 앞까지 다가간 저는 나지막히 말소리를 냈습니다.
「누군가 계십니까?」
그와 동시에 소리가 멎었습니다.
「…… 어째서」
그렇게 말헀습니다. 잠긴 문 너머였기에 확연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저희 집 문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이는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뒤이어 복도를 황급하게 달리는 발소리가 울렸습니다. 저는 문고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안쪽에서 돌려 잠그는 방식의 잠금장치가, 절반 정도 돌아간 상태이더군요.
저는 테이블 옆의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안에 버려 두었던 핫소스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포장지를 깨끗하게 닦은 후 강하게 꾹, 눌러 보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비키?
예상하던 대로 핫소스가 새어나왔습니다.
그것이 새어나온 곳은, 무언가 매우 가늘고 날카로운 것으로 난 구멍이더군요.
… 문 너머에 있었던 이가 누구였는지, 말씀이십니까?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최근에 뉴우스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주사기라는 것을 이용해, 마실 것 따위에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범죄가 더러 있다고 하더군요.
응, 분명히 드라마 촬영 일을 마치고 혼자서 사무소에 돌아갔을 때였어. 사무소에 있었던 프로듀서한테 부탁을 받아서 말야. 그러니까, 치하야가 말도 없이 사무소에 출근하지 않았는데 연락도 받지 않는다더라고. 지금 시간이 비는 아이는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대신 치하야네 집에 찾아가 줄 수 있느냐는 거였어. 뭐, 자신도 치하야가 걱정됐으니까 기꺼이 받아들였고. 프로듀서에게 치하야네 집 위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즉시 사무소를 나섰어.
치하야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 앞까지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었어. 무슨 일인 걸까, 혹시 정말로 사고 같은 게 일어난 건 아니겠지.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 누군가와 마주쳤어. 맞은 편, 그러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입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과 말이야. 그 사람은,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이오리였어.
「엇, 이오리잖아. 왜 이런 곳에서 나오는 거야?」
「…? 히비키? 그러는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자신은…」
사정을 설명했더니 이오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치하야한테 말이지…. 사실은 나도 치하야에게 다녀오는 길이거든」
「이오리도? 뭐야, 프로듀서한테 부탁받은 거야?」
「아니. 난 개인적인 용무. 그 녀석 지금 집 안에 있으니까, 찾아가 보도록 해」
「그런가, 제대로 집 안에… 근데 그러면 왜 연락을 받지 않은 걸까」
「글쎄. 직접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난 먼저 갈게」
이오리는 그대로 떠나갔어. 글쎄,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 때 이오리는 조금 웃고 있었던 것 같아. 씨익- 하는 느낌으로.
어쨌든 자신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탔지. 치하야의 집 앞까지 가서 벨을 눌렀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이오리가 집 안에 있다고 했었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 혹시나 싶어서 문고리를 잡고 돌려 봤는데, 잠겨 있지 않더라구.
조금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열린 문 안의 방은,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 완전히 깜깜했어. 커튼 따위로 창문도 전부 가려 놓은 것 같았지.
치하야를 찾아야 했으니까, 자신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어.
「치하야─. 어디에 있어? 프로듀서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치하야를 발견했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말야. 어땠느냐고? 으음, 그러니까… 솔직히 지나치게 놀랐던 터라 자신도 전혀 정신이 없었거든.
치하야는 의자에 묶인 채로 거실에 쓰러져 있었어. 입은 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당황한 자신이 치하야가 묶인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냈지만 치하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자고 있는 것도, 기절해 있는 것도 아니었어. 눈을 뜨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의식은 있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어.
「치하야! 어떻게 된 거야, 치하야! 이게…!」
그러던 도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어. 치하야의 귀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지. 빼서 확인해 보니 그냥 평범한 이어폰이었어. 치하야의 주머니에 든 MP3 플레이어에 꽂혀 있는 것 같았지. 어쩌면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이어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신은 다시 한 번 치하야의 몸을 흔들면서 힘껏 치하야를 불렀어.
「치하야, 치하야! 괜찮은 거야? 정신 차려 보라고!」
「………… 베」
「… 치하야?」
전혀 초점이 없는 눈을 흐리멍텅하게 뜬 채로, 그렇지만 분명하게 치하야가 입을 달싹여서 소리를 냈어.
잘 알아듣지 못했던 자신은 귀를 가까이 가져갔지.
「이, 베……」
「…………」
「베이베」
「… 뭐, 라구?」
솔직히─ 무서워졌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치하야에게서 뒷걸음질치며 물러서던 자신의 발에, 아까 치하야의 귀에서 뺐던 이어폰이 밟혔어. 흠칫하며 발을 들자 이어폰에서 아직까지도 흘러나오고 있었던 소리가 들려왔지. 음악이었어. 굉장히 낯선, 그렇지만, 그런데도, 어쩐지─
응? 아아, 그런 의미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달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지금부터 설명할게. 차분하게 들어줘.
사람들은 말이야,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들 잊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 잊고 싶어서 잊는 게 아니라, 잊어야만 하기 때문에 잊는 것들. 떠올려내지 못하도록 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제동을 걸고 있는 것들. 분명히 다들 한 번쯤은 보고 느낀 적이 있을 텐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것처럼 깊숙한 곳에 묻어 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청객이려나. 기껏 묻어 놓은 곳에, 구멍을 파고 마니까.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을.
예를 들어서, 말이야?
마코토는 우리들의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응. 나도, 마코토도 아이돌이지. 모두에게 떠받들어진다고 하면 조금 과장이려나. 모두에게 웃음을, 행복을 전해다 주는 우상. 동경의 대상. 아마 아이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들 이런 식으로 대답할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마코토.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어?
누군가의 마음에 '구멍'을 판다는 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
… 조금 이야기가 샜으려나. 미안, 마코토.
나 말이야, 삽으로 구멍을 파고서 그 안에 틀어박혀 있다 보면 자주 생각하게 돼. 여긴 나 혼자밖에 없구나. 주위엔, 아무도 없어. 정말로 압도적인 단 혼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그런 공간.
있지, 마코토.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아이돌로서 있을 수 있는 걸까?
신은 자신을 숭배해 주는 사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 우상은 자신을 동경해 주는 사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 아이돌도, 아마 그런 것들과 마찬가지겠지. 마코토. 우리들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만, 그건 사실은 우리들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는 거야.
이상하지. 타인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한없이 나약한 것이, 우리들이 살아하는 의의라니.
굉장히─ 모독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
아마 우리들의 팬 분들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거야.
우린 팬 분들과 연인이 될 수도, 결혼할 수도, 함께 살 수도 없어. 팬 분들도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어째서 그렇게나 열광하고, 추종하고, 숭배하는 걸까. 그들에게 있어 우리들은 마치 만화 속의 캐릭터 같은 존재인데도.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좋아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다들 속이고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을 말이야, 마코토.
그건 스스로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을 거야, 이런 것들은. 하지만 다들 의식하고 있지 않아. 애써, 아니, 애조차 쓰지 않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하며 살아가.
왜냐면, 그래야 하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치만 나는 '구멍'을 파고 있으니까.
판 구멍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무척이나 기분 나쁜 것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어…
아마 유키호는 들으면 놀랄 거야. 아니, 놀라는 정도가 아니려나. 나를 경멸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이야기라도 한다면 이 정도밖엔 없을 테니까.
그건 언제였을까.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CD 홍보를 겸한 팬사인회 때였을 거야. 상당히 팬 분들이 많이 모여서 말야. 꽤나 정신없이 사인을 하고 있었는데, 한 여자아이가 CD를 내밀었어.
여자아이, 라.
솔직히 처음 보고서 여자라는 걸 곧바로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굉장히 남자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
짧은 머리에 수수하고 장식이 없는 옷차림. 악세서리도 하고 있지 않았고 화장도 안 한 것 같았어. 뭣보다도 외모 자체가, 뭐랄까, 정말로 여자라는 사실을 쉽사리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남성적이었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손톱, 약간의 굴곡이 있는 체형, 그리고 여리여리한 소년에 가깝게 들리는 목소리 덕이었어.
모자를 덮어쓴 채 고개를 푹 숙인 그 아이가 말했어.
「… 사인, 부탁드릴게요. 마코토 양」
… 응. 조금 놀랐지. 그도 그럴 게, 마코토 '양' 이었으니까.
보통은 '씨' 라던가 '군', '님' 같은 말이 붙곤 하잖아. 그런데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어. 거기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인지 그 땐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어.
「아아, 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 이름은」
어쨌든 사인은 해 줘야 했으니까. 이름을 물어 CD 케이스에 사인을 한 다음 다시 그 아이에게 건네줬어. 기구하다면 기구하다고 할지, 이름조차도 그리 여성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던 게 기억에 남네.
「네, 여기 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 고마워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한 그 아이는 곧바로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어. 뒤에서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CD를 필사적이랄만치 꼬옥 껴안고 있었지.
뭐랄까, 아주 조금이지만, 기분이 가라앉았지.
봐, 유키호도 알고 있잖아. 난 남성 팬보단 여성 팬 쪽이 훨씬 많으니까. 그 이유라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절대로 달가운 이유는 아니고. … 응? 유키호, 너까지 그런 소릴 하면… 하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사인회가 마무리되고, 자리를 정리하던 도중 프로듀서가 말을 걸어 왔어.
「마코토는 좋겠네」
「네? 무슨 말씀이세요, 프로듀서?」
「방금 그 애. 너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렇지 않았어?」
아마 프로듀서도 보고 계셨던 거겠지. 격렬하다고 할 만한 반응은 없었지만,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어. 가뜩이나 팬 사인회 같은 걸 한 후에는 약간 우울해지는 편이거든. 어느 쪽의 팬이 더 많느냐는 게… 그대로 드러나니까.
그렇다고 해서 큰 감정은 없었어. 그냥 가슴으로부터 올라온 가벼운 실망감을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내었을 뿐이야.
「… 하아. 이왕이면 남성 팬 쪽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걸요」
「저, 남자애 같은 건 싫다고요. 더 여자다워지고 싶은데…」
응. 언제나 하곤 하는 말이라는 건 유키호도 잘 알고 있지? 프로듀서도 그저 쓴웃음을 지으셨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어. 그 때였어. 탁, 하고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 프로듀서는 듣지 못하신 것 같았지.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그 아이가 있었어.
사인을 받았던 CD를 바닥에 떨어트리고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것 같이 멍한 얼굴을 하고,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거구나. 앗차, 그러면 혹시 방금 한 말을 들은 걸까. 난감한걸, 악의는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했어.
「아… 저기」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아이는 달려나가 버리고 말았어. 떨어트린 CD도 줍지 않은 채로.
「아아… 가 버렸네」
「마코토? 무슨 일 있어?」
「아녜요, 프로듀서. 그냥… 조금」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었어.
그 때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응? 정말로 그냥 그걸로 끝이냐고? 하하, 뭐 확실히 이래서는 전혀 특별한 이야기 같은 게 아니니까. 약간 기이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 일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 후에 들은 소식이야.
한 여자아이가 자살했다는 모양이야.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서.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해자의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어.
당연하겠지.
내가 직접 사인을 해 준 사람의 이름이니까, 기억하고 있지 않은 쪽이 이상해.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기에 물어물어 장례식에 찾아갔어. 그 때 알게 된 거지만, 그 여자아이는 상당히 심각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는 모양이야. 자신이 여자답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될 정도까지 스스로를 몰아넣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게 나였던 거지.
저 아이도 여자라기보단 남자애 같구나. 그런데도 모두의 앞에서 저렇게나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 여자애 같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거야.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
… 아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격렬하게 흐느끼면서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어.
왜 그 아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 내 잘못이 아니라구?
글쎄, 어떨까. 그럴지도 몰라. 나라고 해서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 어쩔 수도 없었던, 불행한 아이의 불행한 사고라고 치부해도 괜찮을지도 모르지.
네, 아즈사 씨. 아무래도 인간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세계라는 모양이예요.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즈사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예에, 그렇네요. 제 경우에는, 한 때 상당히 흥미를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사후세계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그 호기심의 이유는 아마 아즈사 씨라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이미 사무소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저도 어느 정도 극복해 냈으니까.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영혼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영혼이 존재한다면, 아마 귀신이라는 것도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그 누구도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물론 목격담이나 그를 뒷받침할 증거는 넘쳐날 정도로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니까요.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죽은 후가 존재하는지. 인간은, 한 번 죽음을 맞이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지.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제가 한창 사후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을 무렵, 어떤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후세계와 연결되는 방법, 이라고 했었던 것 같네요. 그 시절의 아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돌아다닐 법한, 무척이나 시시한 괴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예요. 그 방법에 대해 주워들은 저는, 며칠 후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기억이 흐릿합니다만, 저는 그 때부터 이미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아무런 불빛도 없는 방 가운데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물이 담긴 그릇을 한 쪽에 두고 한 손을 담근다. 그대로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계속해서 얕고 고른 호흡을 유지한다.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숨소리와 물에 잠긴 손의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다만 잠들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숨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섞여들기 시작한다는.
그런, 유치한 미신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어느 날 밤, 저는 방의 불을 끄고 커튼을 친 후 가운데에 누웠습니다. 물이 담긴 작은 대야도 준비했습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 후, 저는 심호흡을 한 다음 조용히 숨을 골랐습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제 자신의 규칙적인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을까요.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의식을 애써 붙잡고 있던 제 귓가에, 처음으로 어떤 '소리'가 끼어들었습니다.
─ ……
후우, 하아.
─ …………
후우, 하아.
─ …………… 누
후우, 하아.
─ … 누나 ……
… 예. 맥이 풀릴 정도로 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들었습니다. 저를 누나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저는 오직 한 명밖에는 알고 있지 않았어요.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긴장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강하게 쥔 오른손이 땀으로 미끌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연결되었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킬 뻔 했습니다. 절대로 자세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간신히 억눌렀습니다만.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신 건가요.
그것은 액체였습니다.
바닥에 닿아 있던 제 등이, 무언가로 인해 서서히 젖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야에 담가 놓은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 대야가 넘어졌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바닥에서 퍼지며 제 등을 적시고 있는 액체는 무엇인 걸까요. 그 때 저는 또다른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하나는, 그 애의─ 유우의 목소리가 바닥에 누워 있는 제 귓가에서 들렸다는 것. 또 하나는, 등에 닿는 느낌으로 봤을 때 액체는 유우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부터 퍼져 오고 있다는 것.
「…………」
유우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알 수 있었어요.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저 외에는 아무도 없을 터인 이 방 안에, 분명히 누군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었던 저는, 대야에 담갔던 손을 빼냈습니다. 그리고 손에 묻은 물을 제 얼굴을 향해 힘껏 털어냈습니다.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과 함께, 저는 눈을 떴습니다.
깜깜한, 암흑.
몸을 반쯤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역시 방 안에는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네? 아아, 그렇네요.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않았으니 궁금하신 게 많겠죠. 그러면 제가 물을 뿌린 이유부터 설명해 드리면 될까요. 그게 바로 사후세계와의 연결을 푸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예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이제 그만하고 싶을 때에는 그렇게 하라고 하더군요. 아, 그 부분은 이해하셨나요. 그렇다면 역시 궁금하신 부분은 그 쪽이겠네요.
어째서 저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사후세계와의 연결을 끊었는가.
간단한 이유였어요, 아즈사 씨.
깨달아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유우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바닥을 타고 번지는 액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서 도출되는 결론이 무엇인지.
몸을 일으킨 저는 손을 담그고 있던 대야를 끌어당겨 안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검었습니다. 어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불을 켜자 곧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붉었습니다. 대야 안은, 붉고 탁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러나 묘하게도 바닥은 깨끗했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액체가 번지는 느낌을 받았는데도 말이예요. 이상하게 생각하던 저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들고 등 쪽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대로 기절할 뻔했어요.
벗은 옷의 등 부위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으니까요.
묻은 지 한참은 된 것처럼 섬뜩한 색으로 말라붙어 있는, 커다란 핏자국이.
… 그 이후 단 한 번도 그걸 시도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 제가 들었던 것이 정말로 유우의 목소리였는지, 그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죠.
치하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난 길을 잘 헤메잖니?
응, 곧잘 미아가 되곤 하니까. 후후. 이 나이에 미아라고 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말야. 어머,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어머어머~. 고마워, 치하야.
으음, 내가 언제부터 길을 잘 잃게 되기 시작했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단다. 어렸을 때엔 지금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부터인가 길을 잃기 쉬운 타입의 사람이 되어 있었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솔직히 곤란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정해진 길이 아닌 나만의 길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것들도 느끼게 되곤 하거든. … 우후후, 이건 프로듀서 씨에게는 조금 죄송한 말인걸.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니, 치하야?
있잖니, 치하야. 미아가 된다는 건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든단다. 궤도를 이탈했다는 위기감.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한가득 차올라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리지.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길을 잃는 건 기본적으로 그런 거야. 그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나는 말야. 하루하루가 정말로, 정말로 무서웠어.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니? 벽이 멋대로 움직여서 사람을 가두거나, 숨겨진 통로가 드러나거나 하는 저택 이야기 같은 거. 무서운 이야기나 모험 이야기에는 자주 등장하곤 하는 장치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 그런데도 난 매일 그런 장치 안에 갇혀서 생활하는 기분이었단다.
분명히 맞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곳에 있어.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보려고 해도 분명히 한 번 지난 길인데 낯설게만 느껴져. 누군가가 날 핀셋으로 집어 완전히 다른 장소에 떨어트려 놓은 것 같은 기분. 무섭고 불안해서, 스스로가 미워서, 그 때의 난 많이 울었단다.
… 응. 물론 지금은 괜찮아. 하지만 그 '괜찮다'는 건, 치하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아니란다. 난 아직도 길을 잘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자주 미아가 되어 버리니까. 이 버릇은 분명히 언젠가 내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해. 그것도 굉장히 크고, 치명적으로. 그래서 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스스로를 고치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그러고 싶을' 뿐이야. 왜냐 하면, 알잖니?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스스로도 전혀 알 수 없으니까.
자신이라고 할까, 이런 불가항력에 대한 공포는 이젠 없어.
하지만, 응. 그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구나. 마음 한 켠 어딘가에 막연한 좌절감이 자리잡은 느낌이랄까. 어떻게도 할 수 없어. 나─ 미우라 아즈사는, 아마 앞으로도 줄곧 미아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렇지만 어쩔 수도 없는걸.
'길'을 찾아 다시 궤도로 들어서기엔, 미우라 아즈사는 분명히 늦어 버렸을 테니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다.
길에서는 미아가 되더라도 괜찮으니까 모쪼록,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4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타카네「예에, 이야기입니다」스륵, 스륵
히비키「어떤 이야기인데?」
타카네「… 후후. 그렇군요. 조금은 기이한 체험담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요」스륵, 스륵
타카네「그것은, >>+2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 사물이건, 인물이건, 단어 하나로 끝나는 거라면 무엇이든 OK
한 단어구나... 아.어어
과거
으앙
… 오야? 어쩐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이로군요, 히비키. 저의 일인 만큼 또 먹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실례이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되돌릴까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저는, 허기가 져 있었는데다 그날따라 서양의 음식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떠오른 것이 피자였습니다. 귀가하는 길의 도중에 있는 피자 전문점에 들어가, 피자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 곳의 점원은 젊은 남성 분입니다만, 제가 가끔 들리곤 할 때마다 묘한 시선을 보내오곤 한답니다. 어쩌면 저의 팬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피자 가게가 제 귀갓길에 위치해 있는 것은 그 분에게 있어선 행운인 것일까요.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져, 저는 핫 소스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포장지의 겉면에 붉은 색의 미끌대는 액체가 묻어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풍기는 매콤한 향기, 의심의 여지가 없이 핫 소스였지요. 아무래도 포장지의 어딘가에 흠이 나 내용물이 삐져나온 모양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운이 없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군요.
결국 핫 소스를 뿌리는 일은 포기하고 저는 피자를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잠에 들고자 했을 때, 무언가의 기척을 느꼈습니다. 전등을 켜고 침실 밖으로 나오자 그 근원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현관문 밖에서였습니다. 인기척, 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무언가가 찰칵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문 앞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간단한 답이었습니다.
문 앞까지 다가간 저는 나지막히 말소리를 냈습니다.
「누군가 계십니까?」
그와 동시에 소리가 멎었습니다.
「…… 어째서」
그렇게 말헀습니다. 잠긴 문 너머였기에 확연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저희 집 문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이는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뒤이어 복도를 황급하게 달리는 발소리가 울렸습니다. 저는 문고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안쪽에서 돌려 잠그는 방식의 잠금장치가, 절반 정도 돌아간 상태이더군요.
저는 테이블 옆의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안에 버려 두었던 핫소스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포장지를 깨끗하게 닦은 후 강하게 꾹, 눌러 보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비키?
예상하던 대로 핫소스가 새어나왔습니다.
그것이 새어나온 곳은, 무언가 매우 가늘고 날카로운 것으로 난 구멍이더군요.
… 문 너머에 있었던 이가 누구였는지, 말씀이십니까?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최근에 뉴우스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주사기라는 것을 이용해, 마실 것 따위에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범죄가 더러 있다고 하더군요.
그저 우연일 뿐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 그 핫소스를 뿌렸다면, 저는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
.
타카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히비키「타카네. 그거, 실제로 겪은 이야기야?」
타카네「후후, 그것은 어떨지요. 톱 시크릿입니다」
히비키「그런가아. 그런 쪽의 이야기라면, 자신도 일단은 알고 있는데」
타카네「그렇습니까. 괜찮다면, 히비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히비키「으-음, 그렇네. 자신이 알고 있는 건 >>+3에 관한 이야기야」
치하야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 앞까지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었어. 무슨 일인 걸까, 혹시 정말로 사고 같은 게 일어난 건 아니겠지.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 누군가와 마주쳤어. 맞은 편, 그러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입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과 말이야. 그 사람은,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이오리였어.
「엇, 이오리잖아. 왜 이런 곳에서 나오는 거야?」
「…? 히비키? 그러는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자신은…」
사정을 설명했더니 이오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치하야한테 말이지…. 사실은 나도 치하야에게 다녀오는 길이거든」
「이오리도? 뭐야, 프로듀서한테 부탁받은 거야?」
「아니. 난 개인적인 용무. 그 녀석 지금 집 안에 있으니까, 찾아가 보도록 해」
「그런가, 제대로 집 안에… 근데 그러면 왜 연락을 받지 않은 걸까」
「글쎄. 직접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난 먼저 갈게」
이오리는 그대로 떠나갔어. 글쎄,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 때 이오리는 조금 웃고 있었던 것 같아. 씨익- 하는 느낌으로.
어쨌든 자신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탔지. 치하야의 집 앞까지 가서 벨을 눌렀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이오리가 집 안에 있다고 했었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 혹시나 싶어서 문고리를 잡고 돌려 봤는데, 잠겨 있지 않더라구.
조금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열린 문 안의 방은,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 완전히 깜깜했어. 커튼 따위로 창문도 전부 가려 놓은 것 같았지.
치하야를 찾아야 했으니까, 자신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어.
「치하야─. 어디에 있어? 프로듀서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치하야를 발견했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말야. 어땠느냐고? 으음, 그러니까… 솔직히 지나치게 놀랐던 터라 자신도 전혀 정신이 없었거든.
치하야는 의자에 묶인 채로 거실에 쓰러져 있었어. 입은 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당황한 자신이 치하야가 묶인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냈지만 치하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자고 있는 것도, 기절해 있는 것도 아니었어. 눈을 뜨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의식은 있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어.
「치하야! 어떻게 된 거야, 치하야! 이게…!」
그러던 도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어. 치하야의 귀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지. 빼서 확인해 보니 그냥 평범한 이어폰이었어. 치하야의 주머니에 든 MP3 플레이어에 꽂혀 있는 것 같았지. 어쩌면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이어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신은 다시 한 번 치하야의 몸을 흔들면서 힘껏 치하야를 불렀어.
「치하야, 치하야! 괜찮은 거야? 정신 차려 보라고!」
「………… 베」
「… 치하야?」
전혀 초점이 없는 눈을 흐리멍텅하게 뜬 채로, 그렇지만 분명하게 치하야가 입을 달싹여서 소리를 냈어.
잘 알아듣지 못했던 자신은 귀를 가까이 가져갔지.
「이, 베……」
「…………」
「베이베」
「… 뭐, 라구?」
솔직히─ 무서워졌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치하야에게서 뒷걸음질치며 물러서던 자신의 발에, 아까 치하야의 귀에서 뺐던 이어폰이 밟혔어. 흠칫하며 발을 들자 이어폰에서 아직까지도 흘러나오고 있었던 소리가 들려왔지. 음악이었어. 굉장히 낯선, 그렇지만, 그런데도, 어쩐지─
「…… Baby, baby, baby oooh Like─……」
.
.
타카네「확실히… 묘한 이야기로군요」
히비키「응. 치하야는 다음 날부터 멀쩡해졌지만 말야, 솔직히 아직까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
타카네「그렇습니까」
히비키「아마 이오리는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물어 보려고 해도 좀처럼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말야. 치하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없으니깐」
타카네「그것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타카네「… 자아, 히비키. 머리를 전부 다 빗었답니다」
히비키「아아, 응. 고마워 타카네. 개운한 기분이야」
타카네「후후. 기쁘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히비키「그런데 말야, 타카네. 하나 물어봐도 괜찮아?」
타카네「무엇입니까? 히비키」
히비키「지금 말야, 밤이지」
타카네「그렇군요」
히비키「여긴 자신의 집이고」
타카네「예에, 그렇습니다」
히비키「자신, 분명히 씻고 나와서 침대에 걸터앉았을 뿐인데」
타카네「예에」
히비키「어째서 타카네가 머리를 빗겨 주고 있는 걸까?」
타카네「……」
히비키「그리고 말야, 타카네」
히비키「자신의 집에는 빗이 없어」
히비키「……」
히비키「타카네?」
뒤돌아본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 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달빛이, 이불 위에 덩그러니 놓인 보랏빛의 자그마한 빗을 비추고 있었다.
Mini End. 어느 달밤의
마코토「응, 유키호. 유키호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아」
유키호「……」
마코토「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유키호「마코토, 심심하지 않아?」
마코토「심심… 이라. 솔직히 그럴 만한 심적 여유는 없지만, 뭐어, 심심하다면 심심하려나」
유키호「나 말야. 마코토가 재미있어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어」
마코토「그래? 조금 기대되는걸. 어떤 이야기인데? 유키호」
유키호「… >>+4에 관한 이야기」
응? 아아, 그런 의미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달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지금부터 설명할게. 차분하게 들어줘.
사람들은 말이야,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들 잊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 잊고 싶어서 잊는 게 아니라, 잊어야만 하기 때문에 잊는 것들. 떠올려내지 못하도록 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제동을 걸고 있는 것들. 분명히 다들 한 번쯤은 보고 느낀 적이 있을 텐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것처럼 깊숙한 곳에 묻어 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청객이려나. 기껏 묻어 놓은 곳에, 구멍을 파고 마니까.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을.
예를 들어서, 말이야?
마코토는 우리들의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응. 나도, 마코토도 아이돌이지. 모두에게 떠받들어진다고 하면 조금 과장이려나. 모두에게 웃음을, 행복을 전해다 주는 우상. 동경의 대상. 아마 아이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들 이런 식으로 대답할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마코토.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어?
누군가의 마음에 '구멍'을 판다는 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
… 조금 이야기가 샜으려나. 미안, 마코토.
나 말이야, 삽으로 구멍을 파고서 그 안에 틀어박혀 있다 보면 자주 생각하게 돼. 여긴 나 혼자밖에 없구나. 주위엔, 아무도 없어. 정말로 압도적인 단 혼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그런 공간.
있지, 마코토.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아이돌로서 있을 수 있는 걸까?
신은 자신을 숭배해 주는 사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 우상은 자신을 동경해 주는 사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 아이돌도, 아마 그런 것들과 마찬가지겠지. 마코토. 우리들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만, 그건 사실은 우리들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는 거야.
이상하지. 타인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한없이 나약한 것이, 우리들이 살아하는 의의라니.
굉장히─ 모독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
아마 우리들의 팬 분들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거야.
우린 팬 분들과 연인이 될 수도, 결혼할 수도, 함께 살 수도 없어. 팬 분들도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어째서 그렇게나 열광하고, 추종하고, 숭배하는 걸까. 그들에게 있어 우리들은 마치 만화 속의 캐릭터 같은 존재인데도.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좋아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다들 속이고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을 말이야, 마코토.
그건 스스로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을 거야, 이런 것들은. 하지만 다들 의식하고 있지 않아. 애써, 아니, 애조차 쓰지 않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하며 살아가.
왜냐면, 그래야 하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치만 나는 '구멍'을 파고 있으니까.
판 구멍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무척이나 기분 나쁜 것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어…
.
.
유키호「미안, 마코토. 지루한 이야기였지…」
마코토「지루하다거나 하진 않았어. 그냥, 조금 놀랐어」
마코토「유키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싶어서」
유키호「… 응」
마코토「유키호가 모처럼 이야기를 들려줬으니까, 나도 보답해야겠지」
유키호「마코토도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거야?」
마코토「특별하다고까지 할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코토「>>+3에 대한 이야기라면, 알고 있어」
들으면서 썼더니 뭔지도 모를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같은 것을 생각해 버렸다...
***
아마 유키호는 들으면 놀랄 거야. 아니, 놀라는 정도가 아니려나. 나를 경멸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이야기라도 한다면 이 정도밖엔 없을 테니까.
그건 언제였을까.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CD 홍보를 겸한 팬사인회 때였을 거야. 상당히 팬 분들이 많이 모여서 말야. 꽤나 정신없이 사인을 하고 있었는데, 한 여자아이가 CD를 내밀었어.
여자아이, 라.
솔직히 처음 보고서 여자라는 걸 곧바로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굉장히 남자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
짧은 머리에 수수하고 장식이 없는 옷차림. 악세서리도 하고 있지 않았고 화장도 안 한 것 같았어. 뭣보다도 외모 자체가, 뭐랄까, 정말로 여자라는 사실을 쉽사리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남성적이었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손톱, 약간의 굴곡이 있는 체형, 그리고 여리여리한 소년에 가깝게 들리는 목소리 덕이었어.
모자를 덮어쓴 채 고개를 푹 숙인 그 아이가 말했어.
「… 사인, 부탁드릴게요. 마코토 양」
… 응. 조금 놀랐지. 그도 그럴 게, 마코토 '양' 이었으니까.
보통은 '씨' 라던가 '군', '님' 같은 말이 붙곤 하잖아. 그런데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어. 거기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인지 그 땐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어.
「아아, 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 이름은」
어쨌든 사인은 해 줘야 했으니까. 이름을 물어 CD 케이스에 사인을 한 다음 다시 그 아이에게 건네줬어. 기구하다면 기구하다고 할지, 이름조차도 그리 여성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던 게 기억에 남네.
「네, 여기 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 고마워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한 그 아이는 곧바로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어. 뒤에서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CD를 필사적이랄만치 꼬옥 껴안고 있었지.
뭐랄까, 아주 조금이지만, 기분이 가라앉았지.
봐, 유키호도 알고 있잖아. 난 남성 팬보단 여성 팬 쪽이 훨씬 많으니까. 그 이유라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절대로 달가운 이유는 아니고. … 응? 유키호, 너까지 그런 소릴 하면… 하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사인회가 마무리되고, 자리를 정리하던 도중 프로듀서가 말을 걸어 왔어.
「마코토는 좋겠네」
「네? 무슨 말씀이세요, 프로듀서?」
「방금 그 애. 너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렇지 않았어?」
아마 프로듀서도 보고 계셨던 거겠지. 격렬하다고 할 만한 반응은 없었지만,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어. 가뜩이나 팬 사인회 같은 걸 한 후에는 약간 우울해지는 편이거든. 어느 쪽의 팬이 더 많느냐는 게… 그대로 드러나니까.
그렇다고 해서 큰 감정은 없었어. 그냥 가슴으로부터 올라온 가벼운 실망감을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내었을 뿐이야.
「… 하아. 이왕이면 남성 팬 쪽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걸요」
「저, 남자애 같은 건 싫다고요. 더 여자다워지고 싶은데…」
응. 언제나 하곤 하는 말이라는 건 유키호도 잘 알고 있지? 프로듀서도 그저 쓴웃음을 지으셨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어. 그 때였어. 탁, 하고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 프로듀서는 듣지 못하신 것 같았지.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그 아이가 있었어.
사인을 받았던 CD를 바닥에 떨어트리고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것 같이 멍한 얼굴을 하고,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거구나. 앗차, 그러면 혹시 방금 한 말을 들은 걸까. 난감한걸, 악의는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했어.
「아… 저기」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아이는 달려나가 버리고 말았어. 떨어트린 CD도 줍지 않은 채로.
「아아… 가 버렸네」
「마코토? 무슨 일 있어?」
「아녜요, 프로듀서. 그냥… 조금」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었어.
그 때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응? 정말로 그냥 그걸로 끝이냐고? 하하, 뭐 확실히 이래서는 전혀 특별한 이야기 같은 게 아니니까. 약간 기이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 일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 후에 들은 소식이야.
한 여자아이가 자살했다는 모양이야.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서.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해자의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어.
당연하겠지.
내가 직접 사인을 해 준 사람의 이름이니까, 기억하고 있지 않은 쪽이 이상해.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기에 물어물어 장례식에 찾아갔어. 그 때 알게 된 거지만, 그 여자아이는 상당히 심각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는 모양이야. 자신이 여자답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될 정도까지 스스로를 몰아넣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게 나였던 거지.
저 아이도 여자라기보단 남자애 같구나. 그런데도 모두의 앞에서 저렇게나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 여자애 같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거야.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
… 아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격렬하게 흐느끼면서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어.
왜 그 아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 내 잘못이 아니라구?
글쎄, 어떨까. 그럴지도 몰라. 나라고 해서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 어쩔 수도 없었던, 불행한 아이의 불행한 사고라고 치부해도 괜찮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난 잊을 수가 없었어.
누군가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난, 그때 살인을 한 게 되는 게 아닐까?
.
.
마코토「… 이런 이야기야」
유키호「……」
마코토「놀랐겠네, 유키호」
유키호「… 힘들었겠구나. 마코토도」
마코토「나라면 별로 상관없어」
유키호「있잖아, 마코토」
마코토「응? 유키호」
유키호「어두운 곳이 무서운 이유를 알고 있어?」
마코토「으음… 글쎄. 그렇게 들으면 어쩐지 어려운걸」
유키호「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댈 거라고 생각하지만…」
유키호「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자신의 생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유키호「나는 그렇게 생각해」
마코토「… 응. 듣고 보면 그렇구나」
유키호「그렇게 생각해 보면, 여긴…」
유키호「마치 구멍 속 같네」
파지직…
유키호「아, 전기가 들어왔어. 마코토」
마코토「후아-… 살았다. 갑자기 사무소에 정전이라니 말야. 그것도 저녁인데」
유키호「다른 아이들은 언제쯤 돌아오려나?」
마코토「……」
마코토「저기, 유키호. 방금 했었던 이야기 말인데」
유키호「응? 뭐가?」
마코토「… 어?」
유키호「이야기라니, 우리들 뭔가 이야기했었어?」생긋
마코토「……」
마코토「… 하하」
마코토「아니, 아무 것도 아냐. 잊어줘」
유키호「응, 마코토」
Mini End.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아즈사「정말 그런걸~. 좀 더 두껍게 입고 나와야 되겠어」
치하야「……」
아즈사「어머. 왜 그러니, 치하야?」
치하야「아뇨, 그냥 조금. 가로등을 보고 있었더니 다른 생각이 떠올랐기에」
아즈사「다른 생각…? 뭔가 떠오르는 거라도 있었던 거니?」
치하야「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치하야「>>+4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기에」
사후세계, 라는 말을 들어 보셨겠죠.
네, 아즈사 씨. 아무래도 인간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세계라는 모양이예요.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즈사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예에, 그렇네요. 제 경우에는, 한 때 상당히 흥미를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사후세계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그 호기심의 이유는 아마 아즈사 씨라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이미 사무소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저도 어느 정도 극복해 냈으니까.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영혼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영혼이 존재한다면, 아마 귀신이라는 것도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그 누구도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물론 목격담이나 그를 뒷받침할 증거는 넘쳐날 정도로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니까요.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죽은 후가 존재하는지. 인간은, 한 번 죽음을 맞이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지.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제가 한창 사후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을 무렵, 어떤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후세계와 연결되는 방법, 이라고 했었던 것 같네요. 그 시절의 아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돌아다닐 법한, 무척이나 시시한 괴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예요. 그 방법에 대해 주워들은 저는, 며칠 후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기억이 흐릿합니다만, 저는 그 때부터 이미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아무런 불빛도 없는 방 가운데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물이 담긴 그릇을 한 쪽에 두고 한 손을 담근다. 그대로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계속해서 얕고 고른 호흡을 유지한다.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숨소리와 물에 잠긴 손의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다만 잠들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숨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섞여들기 시작한다는.
그런, 유치한 미신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어느 날 밤, 저는 방의 불을 끄고 커튼을 친 후 가운데에 누웠습니다. 물이 담긴 작은 대야도 준비했습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 후, 저는 심호흡을 한 다음 조용히 숨을 골랐습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제 자신의 규칙적인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을까요.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의식을 애써 붙잡고 있던 제 귓가에, 처음으로 어떤 '소리'가 끼어들었습니다.
─ ……
후우, 하아.
─ …………
후우, 하아.
─ …………… 누
후우, 하아.
─ … 누나 ……
… 예. 맥이 풀릴 정도로 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들었습니다. 저를 누나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저는 오직 한 명밖에는 알고 있지 않았어요.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긴장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강하게 쥔 오른손이 땀으로 미끌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연결되었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킬 뻔 했습니다. 절대로 자세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간신히 억눌렀습니다만.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신 건가요.
그것은 액체였습니다.
바닥에 닿아 있던 제 등이, 무언가로 인해 서서히 젖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야에 담가 놓은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 대야가 넘어졌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바닥에서 퍼지며 제 등을 적시고 있는 액체는 무엇인 걸까요. 그 때 저는 또다른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하나는, 그 애의─ 유우의 목소리가 바닥에 누워 있는 제 귓가에서 들렸다는 것. 또 하나는, 등에 닿는 느낌으로 봤을 때 액체는 유우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부터 퍼져 오고 있다는 것.
「…………」
유우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알 수 있었어요.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저 외에는 아무도 없을 터인 이 방 안에, 분명히 누군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었던 저는, 대야에 담갔던 손을 빼냈습니다. 그리고 손에 묻은 물을 제 얼굴을 향해 힘껏 털어냈습니다.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과 함께, 저는 눈을 떴습니다.
깜깜한, 암흑.
몸을 반쯤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역시 방 안에는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네? 아아, 그렇네요.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않았으니 궁금하신 게 많겠죠. 그러면 제가 물을 뿌린 이유부터 설명해 드리면 될까요. 그게 바로 사후세계와의 연결을 푸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예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이제 그만하고 싶을 때에는 그렇게 하라고 하더군요. 아, 그 부분은 이해하셨나요. 그렇다면 역시 궁금하신 부분은 그 쪽이겠네요.
어째서 저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사후세계와의 연결을 끊었는가.
간단한 이유였어요, 아즈사 씨.
깨달아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유우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바닥을 타고 번지는 액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서 도출되는 결론이 무엇인지.
몸을 일으킨 저는 손을 담그고 있던 대야를 끌어당겨 안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검었습니다. 어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불을 켜자 곧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붉었습니다. 대야 안은, 붉고 탁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러나 묘하게도 바닥은 깨끗했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액체가 번지는 느낌을 받았는데도 말이예요. 이상하게 생각하던 저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들고 등 쪽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대로 기절할 뻔했어요.
벗은 옷의 등 부위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으니까요.
묻은 지 한참은 된 것처럼 섬뜩한 색으로 말라붙어 있는, 커다란 핏자국이.
… 그 이후 단 한 번도 그걸 시도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 제가 들었던 것이 정말로 유우의 목소리였는지, 그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죠.
하지만, 아즈사 씨.
저는 그 때 눈을 뜨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아즈사「… 치하야. 그건, 정말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니?」
치하야「아즈사 씨가 생각하시는 게, 아마 정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즈사「후후. 치하야는 잘 얼버무리는구나」
치하야「그런 것일까요」
아즈사「밤길을 걷던 도중에 듣기에는 조금 섬뜩한 이야기였네. 그러면 아직 갈 길도 남은 것 같고, 나도 이야기를 하나 들려 줄까?」
치하야「무료함을 달래는 데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부디」
아즈사「어머~.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 주렴」
아즈사「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음, 그렇지. >>+3에 관한 이야기인데」
응, 곧잘 미아가 되곤 하니까. 후후. 이 나이에 미아라고 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말야. 어머,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어머어머~. 고마워, 치하야.
으음, 내가 언제부터 길을 잘 잃게 되기 시작했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단다. 어렸을 때엔 지금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부터인가 길을 잃기 쉬운 타입의 사람이 되어 있었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솔직히 곤란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정해진 길이 아닌 나만의 길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것들도 느끼게 되곤 하거든. … 우후후, 이건 프로듀서 씨에게는 조금 죄송한 말인걸.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니, 치하야?
있잖니, 치하야. 미아가 된다는 건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든단다. 궤도를 이탈했다는 위기감.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한가득 차올라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리지.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길을 잃는 건 기본적으로 그런 거야. 그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나는 말야. 하루하루가 정말로, 정말로 무서웠어.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니? 벽이 멋대로 움직여서 사람을 가두거나, 숨겨진 통로가 드러나거나 하는 저택 이야기 같은 거. 무서운 이야기나 모험 이야기에는 자주 등장하곤 하는 장치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 그런데도 난 매일 그런 장치 안에 갇혀서 생활하는 기분이었단다.
분명히 맞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곳에 있어.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보려고 해도 분명히 한 번 지난 길인데 낯설게만 느껴져. 누군가가 날 핀셋으로 집어 완전히 다른 장소에 떨어트려 놓은 것 같은 기분. 무섭고 불안해서, 스스로가 미워서, 그 때의 난 많이 울었단다.
… 응. 물론 지금은 괜찮아. 하지만 그 '괜찮다'는 건, 치하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아니란다. 난 아직도 길을 잘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자주 미아가 되어 버리니까. 이 버릇은 분명히 언젠가 내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해. 그것도 굉장히 크고, 치명적으로. 그래서 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스스로를 고치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그러고 싶을' 뿐이야. 왜냐 하면, 알잖니?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스스로도 전혀 알 수 없으니까.
자신이라고 할까, 이런 불가항력에 대한 공포는 이젠 없어.
하지만, 응. 그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구나. 마음 한 켠 어딘가에 막연한 좌절감이 자리잡은 느낌이랄까. 어떻게도 할 수 없어. 나─ 미우라 아즈사는, 아마 앞으로도 줄곧 미아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렇지만 어쩔 수도 없는걸.
'길'을 찾아 다시 궤도로 들어서기엔, 미우라 아즈사는 분명히 늦어 버렸을 테니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다.
길에서는 미아가 되더라도 괜찮으니까 모쪼록,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앞으로의 삶'이라는 길에서는 부디 미아가 되지 않기를.
치하야「아뇨, 아즈사 씨. 경청할 만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치하야「… 아즈사 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거라곤, 아마 사무소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요」
아즈사「어머나.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치하야「저는 그럴 생각으로 말씀드렸지만요」
뚜벅, 뚜벅
아즈사「있지, 치하야」
치하야「네, 아즈사 씨」
뚜벅, 뚜벅
아즈사「우리들은 지금」
아즈사「'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치하야「… 그건, 어떨까요」
치하야「그걸 알 수 있을 때까지 전진하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아즈사「우후후. 정론이구나」
뚜벅, 뚜벅…
Mini End. 길 위에서
소녀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도 그와 함께 서서히 잠겨든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안에 모습을 감춘 그녀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다.
END. 대화의 끝에서
오늘이 복귀라 결국 어찌어찌 끝은 냈네요
시시한 글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