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의 묘한 표정, 모르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무언가에 화나 있는 듯한 모습에 말조차 걸기 어려워지는 그 표정,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덕일까, 그런 표정 하나 하나에도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치하야 짱은... 슬퍼 하는 걸까?
치하야 "조금 일찍 와서 자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했어"
치하야 "혹시 내가 깨운건 아니야?"
하루카 "으응, 원래 깨 있을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괜찮아"
걱정, 슬픔, 그리고... 또 하나의 묘한 느낌, 이건 잘 모르겠는걸...
치하야 "? 하루카?"
하루카 "으, 응?!"
치하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거야?"
하루카 "아, 아니야!" //
그 묘한 느낌의 정체를 찾다보니 그만 너무 뚫어지도록 쳐다봐 버렸나... 눈을 피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치하야 짱은 병문안 용으로 들고 온 듯한 사과를 하나 꺼낸다.
치하야 "아직 아침은 안먹었겠지만... 괜찮겠어?"
하루카 "응? 사과 깎아주는 거야?"
치하야 "그럼 그대로 주겠니"
하루카 "치하야 짱이 깎아주는 사과라니, 그런 귀한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걸"
치하야 "호들갑은, 그럼 기다려봐"
그대로 세면대로 사과를 들고 가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닦고는 들고 와 의자를 곁에 두고, 칼을 꺼내 사과를 깎기 시작한다.
하루카 "...치하야 짱, 의외로 잘 깎네"
치하야 "연습했거든"
하루카 "응?"
치하야 "환자한테 사과를 던져주고 깎으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겠어?"
하루카 "...아하하..."
그렇게 동글동글하게 깎인 사과를 다시 심만 남기고 팔등분, 포크를 꺼내 하나를 건낸다.
치하야 "자, 여기 있어"
하루카 "..."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이럴 때는, 역시 먹여 주는게 좋은거라고 생각해"
치하야 '..."
하루카 "그러니까, 아앙"
치하야 "정말이지... 한번만이야"
그렇게 적당히 투정을 부리고, 못이기는 척 받아주고,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슬픈 진실에는 손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은채 그저 흘러간다.
치하야 "...병원 생활은 어때?"
하루카 "늘 그대로지, 병원밥은 싱겁고, 할 일이라고는 테레비를 보는 정도 밖에 없을텐데 그것마저 떼어가버렸는걸"
치하야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인거지"
치하야 "...그 아이"
하루카 "응?"
치하야 "네가 구해줬던 그 아이"
치하야 "감사하다면서 혼자서 사무소에 찾아왔었어"
하루카 "..."
하루카 "어디 다친덴 없대?"
치하야 "네 덕분에 전혀"
치하야 "그때는 너도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돌려 보냈었는데"
치하야 "네가 괜찮다면-"
하루카 "...아니, 괜찮아"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일일히 감사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줘"
하루카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줘"
하루카 "정말로 괜찮으니까"
치하야 "...응"
...치하야 짱이 찾아와줘서 들떴던 기분이 그대로 처음으로 돌아가버리는 기분이 든다.
치하야 짱이 나쁜게 아닌데, 그 아이가 나쁜게 아닌데, 그저 지금 그 아이를 봐버린다면 추악한 자신의 속마음까지 들키는게 아닐까, 참지 못하고 소리라도 질러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차마 그 아이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아침 식사가 올쯤 해서 집에서 돌아온 하루카의 어머니와 만나 인사를 나눈 후, 하루카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 이후 돌아 나선다.
신경이 손상된건지, 다리를 쓰는건 둘째치고서, 아이돌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거라는 그 소견에 사무소의 전원이 혼란에 빠진지 일주일 째. 다들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병문안을 가면서도 그 주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의 자신도 마찬가지, 얼마전 미키와 함께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다리의 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못했다.
그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다리의 감각, 그럼에도 그녀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겠지만... 그 사고의 순간 이후로 하루카의 미소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얼마 전 다녀왔다는 그 아이에 대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런 밝고 화창한 이야기 따위 있을까 보냐.
나름 대형 사무소의 신인 아이돌인지, 이런 큰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전후관계 따위는 싹다 묻혀버린 채 단순히 방송국 기자재의 노쇠화로 인한 사고라는 걸로 마무리된지 오래. 그 날 이후로 그 빌어먹을 면상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머리가, 그 끔찍했을 사고를 대신 당해준 은인을 단 한번 보러오지 않을 수가 있는거지?
그래도 하루카가 원해 줬다면, 머리라도 쥐어잡고 병실로 끌고 들어가 사과건 감사건 읊조리게 할 생각이었으나, 그녀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에 붕 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직 뛰거나 격한 운동을 하기에는 벅차지만 적어도 계단을 올라가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 이전에는 귀찮음을 무릎쓰고 어쩔 수 없이 계단을 통해 왕복했어야 했지만... 이제는 재활치료를 겸해서 한걸음씩 힘을 내딛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 3층까지 올라가고 나서는 다리에 전해지는 미약한 고통에 얼굴 찌푸리면서도 그 달성감에 다시 미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무소의 문을 열어-
철컥, 덜컹덜컹
어라...?
이런 시간에 문이 잠겨 있을 리가 없을텐데...
코토리 "...하루카 짱?"
당황하는 와중에, 마찬가지로 계단을 통해 올라오던 코토리 씨와 마주합니다.
하루카 "코토리 씨?"
하루카 "아, 잠깐 외출하셨던 건가요?"
코토리 "...돌아온거구나"
코토리 "...잠시만, 문 열께"
문에서 살짝 떨어져 코토리씨에게 자리를 넘기고, 코토리 씨가 지니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을 바라봅니다.
끼익-
그리고...
하루카 "!"
하루카 "코토리 씨, 이건??"
코토리 "..."
바로 보이는 프로듀서 씨의 책상과 그 위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서류철, 조금 눈을 돌리면 칸막이로 나눠놓은 응접실의 살짝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 언제나 빼곡하게 차 있던 동료들의 일정표 목록, 리츠코 씨에게 사용법을 배우느라 반나절이 금세 지나가곤 하던 데스크톱 컴퓨터, 외근이 잦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은 와중에 아미와 마미가 자기 방처럼 드나들고는 그럴때마다 리츠코 씨에게 혼나곤 했던 사장실, 차를 좋아하는 유키호와 방문객들을 위해 구비된 다기 세트와 차상자를 넣어놓은 찬장, 연식이 오래 됐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심해서 다루곤 했던 냉장고, 모두 모여 그자리에 없는 동료들이 방송에서 활약하는걸 다함께 보고는 했던 휴게실의 소파와 테레비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마치 버려진지 오래 된 폐허를 연상케 하는 사무실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코토리 "이야기를 듣지 못한거였니?"
하루카 "...전혀 몰랐어요..."
코토리 "...『그 날』 이후로는 전부 사라져버렸어"
하루카 "...윽"
『그 날』이후로 구심점을 완전히 잃은 사무소는 내외적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해,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은퇴, 몇몇은 사무소를 변경해 재기를 노려봤지만 『그』 사무소 출신이라는 딱지에 넉아웃, 지금 시점에서 아이돌 활동을 하는 지난 날의 동료는 전무... 하다는게 코토리 씨의 설명이었습니다.
하루카 "...어째서 그런..."
코토리 "...하루카 짱?"
코토리 "왜 돌아온 거야?"
하루카 "...네?"
코토리 "너희들이 아이돌로써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게, 아이돌로써 실패했던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꿈이었는데"
7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하루카 "안녕"
치하야 "..."
치하야 "꿈인걸까"
하루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치하야 짱?"
치하야 "그도 그렇잖아?"
하루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치하야 "내가 아는 하루카는"
치하야 "+4"
2년 전에 죽었을 텐데, 같은 게 기묘해서 좋을 것 같은
하루카 " "
하루카 "치하ㅇ"
치하야 "농담이야"
하루카 "..."
하루카 "너무해 정말..."
하루카 "안그래도 히비키 짱이 가끔 햄조 울음 소리를 듣고는 날 찾는다고 해서 신경 쓰고 있었단 말이야..."
치하야 "그럴려나,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하루카 "으음, 말 뿐이야?"
치하야 "..."
하루카 "...정말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지 말아줘"
치하야 "역시 그런 농담은 좀 그랬나..."
하루카 "나 이제 괜찮으니까, 응?"
치하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치하야 "그나저나 웬 일이야 하루카?"
하루카 "응?"
치하야 "사무소에 온걸 얘기하는거야"
하루카 "무슨 말을 하는거야"
하루카 "내가 사무소에 오는게 신기한 일인 마냥.."
치하야 "..."
치하야 "그때 이후로는..."
하루카 "응?"
치하야 "+2"
하루카 "응?"
치하야 "그 무대에서 있었던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그날 이후로는..."
하루카 "글쎄..."
하루카 "치하야 짱"
하루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치하야 "..."
치하야 "그렇겠지?"
치하야 "허튼 소리라고 생각해줘"
하루카 "애초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겠어?"
치하야 "그렇네"
치하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거지"
하루카 "오늘 치하야 짱은 조금 이상한걸"
치하야 "그렇게 보여?"
하루카 "평소에는 안하는 농담이라던가"
하루카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한다던가..."
치하야 "...졸려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는걸"
하루카 "치하야 짱이?"
치하야 "근래에는 잠을 잘 못잤으니까"
하루카 "자기관리의 화신같은 치하야 짱이 그렇다니,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잠을 못자셨는걸까요~"
치하야 "그건 또 무슨 흉내인거야"
하루카 "설마 프로듀서 생각이라던가..."
치하야 "그런 농담은 조금 그런걸"
하루카 "힝.."
하루카 "지금은 뭘 하고 있는거야?"
치하야 "언제나처럼의 신곡 연습?"
하루카 "...대단한걸"
치하야 "뭐가?"
하루카 "늘 언제나 노력하는걸"
치하야 "...습관이니까"
치하야 "쉬는 틈틈이 해두면 나중에 실전에 들어갔을 때 편하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잖아"
하루카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안따라주는걸..."
하루카 "난 치하야 짱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치하야 "..."
치하야 "난, 하루카의 노래가 좋은걸?"
하루카 "치하야 짱..?"
치하야 "하루카의 첫번째 팬의 자리는, 프로듀서에게 빼앗겼지만"
치하야 "두번째만큼은 양보 못하는걸"
하루카 "..."
하루카 "부,부끄럽게..."
치하야 "하루카는 어때?"
치하야 "내가 너의 두번째 팬이라는게 마음에 안들어?"
하루카 "아우아우..." ///
하루카 "그거야 당연히 좋은걸!"
치하야 "그런가, 다행이야"
하루카 "정말... 얼굴색 하나도 안변하면서 그런 말 하는건 치사해..."
치하야 "원래 그런 성격인걸"
치하야 "어찌됐건, 오랜만에 즐거웠어"
하루카 "..."
치하야 "하루카, 조만간 보러 갈께"
하루카 "그런 말을 해도 지금-"
치하야 "그건 『이쪽』이 아니잖아?"
하루카 "..."
하루카 "아마도, 원래의 나는 더이상 널 보고 싶지 않을거야"
치하야 "그래도 보러 가고 싶어"
하루카 "..."
치하야 "미안해, 그럼 그쪽에서 보자"
...
치하야 "..."
치하야 "아침.."
치하야 "아니길 바랬는데..."
치하야 "어쩔 수 없는거겠지만..."
치하야 "그럼, 가볼까"
+3 상태
---
...
프로듀서 아침드라마에요. 질척질척한 아침드라마!
+1 하루카의 상태
또다시 시작된 하루
병원의 침대에서 떠진 눈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다리
하루카 "오늘도인가..."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리라는 직감과 함께 시작된 잿빛 일상
이제 와서는 그저 과거만을 곱씹으며 서서히 무너져간다.
하루카 "..."
방송을 마무리지으며 무대에 선 십수명의 아이돌
그리고 그들의 위로 떨어져내린 무대조명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 자신은 다치지 않았겠지
허나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던 걸까
비명과 고함 속에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눈앞의 아이를 밀어버린 후
자신의 위로 느껴지는 섬뜩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카 "...왜 그랬을까"
하루카 "...!"
하루카 "...윽..."
한순간이나마,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고서,
그리고서 또다시 자기혐오에 빠진다.
상념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감정을 애써 죽이고 의문을 표한다.
하루카 "...누구세요?"
"나야 하루카"
하루카 "...!"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하루카 "...치하야 짱?"
"응, 들어가도 될까?"
하루카 "어, 어서 들어와"
딸깍
언제나처럼의 묘한 표정, 모르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무언가에 화나 있는 듯한 모습에 말조차 걸기 어려워지는 그 표정,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덕일까, 그런 표정 하나 하나에도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치하야 짱은... 슬퍼 하는 걸까?
치하야 "조금 일찍 와서 자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했어"
치하야 "혹시 내가 깨운건 아니야?"
하루카 "으응, 원래 깨 있을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괜찮아"
걱정, 슬픔, 그리고... 또 하나의 묘한 느낌, 이건 잘 모르겠는걸...
치하야 "? 하루카?"
하루카 "으, 응?!"
치하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거야?"
하루카 "아, 아니야!" //
그 묘한 느낌의 정체를 찾다보니 그만 너무 뚫어지도록 쳐다봐 버렸나... 눈을 피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치하야 짱은 병문안 용으로 들고 온 듯한 사과를 하나 꺼낸다.
치하야 "아직 아침은 안먹었겠지만... 괜찮겠어?"
하루카 "응? 사과 깎아주는 거야?"
치하야 "그럼 그대로 주겠니"
하루카 "치하야 짱이 깎아주는 사과라니, 그런 귀한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걸"
치하야 "호들갑은, 그럼 기다려봐"
그대로 세면대로 사과를 들고 가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닦고는 들고 와 의자를 곁에 두고, 칼을 꺼내 사과를 깎기 시작한다.
하루카 "...치하야 짱, 의외로 잘 깎네"
치하야 "연습했거든"
하루카 "응?"
치하야 "환자한테 사과를 던져주고 깎으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겠어?"
하루카 "...아하하..."
그렇게 동글동글하게 깎인 사과를 다시 심만 남기고 팔등분, 포크를 꺼내 하나를 건낸다.
치하야 "자, 여기 있어"
하루카 "..."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이럴 때는, 역시 먹여 주는게 좋은거라고 생각해"
치하야 '..."
하루카 "그러니까, 아앙"
치하야 "정말이지... 한번만이야"
그렇게 적당히 투정을 부리고, 못이기는 척 받아주고,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슬픈 진실에는 손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은채 그저 흘러간다.
치하야 "...병원 생활은 어때?"
하루카 "늘 그대로지, 병원밥은 싱겁고, 할 일이라고는 테레비를 보는 정도 밖에 없을텐데 그것마저 떼어가버렸는걸"
치하야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인거지"
치하야 "...그 아이"
하루카 "응?"
치하야 "네가 구해줬던 그 아이"
치하야 "감사하다면서 혼자서 사무소에 찾아왔었어"
하루카 "..."
하루카 "어디 다친덴 없대?"
치하야 "네 덕분에 전혀"
치하야 "그때는 너도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돌려 보냈었는데"
치하야 "네가 괜찮다면-"
하루카 "...아니, 괜찮아"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일일히 감사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줘"
하루카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줘"
하루카 "정말로 괜찮으니까"
치하야 "...응"
...치하야 짱이 찾아와줘서 들떴던 기분이 그대로 처음으로 돌아가버리는 기분이 든다.
치하야 짱이 나쁜게 아닌데, 그 아이가 나쁜게 아닌데, 그저 지금 그 아이를 봐버린다면 추악한 자신의 속마음까지 들키는게 아닐까, 참지 못하고 소리라도 질러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차마 그 아이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다른 누구보다도 치하야 짱에게만큼은.
치하야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다고 해?"
하루카 "...잘 모르겠어"
치하야 "...그런가"
치하야 짱은 알고 있을까
더이상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다시는 함께 걷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함께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를 돌아봐 줄까
걷지 못하는 나를
춤추지 못하는 나를
아이돌이 아닌 나를
신경이 손상된건지, 다리를 쓰는건 둘째치고서, 아이돌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거라는 그 소견에 사무소의 전원이 혼란에 빠진지 일주일 째. 다들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병문안을 가면서도 그 주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의 자신도 마찬가지, 얼마전 미키와 함께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다리의 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못했다.
그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다리의 감각, 그럼에도 그녀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겠지만... 그 사고의 순간 이후로 하루카의 미소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얼마 전 다녀왔다는 그 아이에 대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런 밝고 화창한 이야기 따위 있을까 보냐.
나름 대형 사무소의 신인 아이돌인지, 이런 큰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전후관계 따위는 싹다 묻혀버린 채 단순히 방송국 기자재의 노쇠화로 인한 사고라는 걸로 마무리된지 오래. 그 날 이후로 그 빌어먹을 면상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머리가, 그 끔찍했을 사고를 대신 당해준 은인을 단 한번 보러오지 않을 수가 있는거지?
그래도 하루카가 원해 줬다면, 머리라도 쥐어잡고 병실로 끌고 들어가 사과건 감사건 읊조리게 할 생각이었으나, 그녀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에 붕 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치하야 "...어째서 이렇게 돼버린 걸까"
갈 곳을 잃은 분노가 몸 속을 빙글빙글 돈다.
치하야 "...왜 하루카였던 걸까"
차오르는 슬픔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쌓여간다.
+3
---
제가 지금 뭘 쓰고 있는거죠(혼란)
잘한다 더해라
소녀는 눈을 뜬다
소녀 "...어라... 여긴..."
치하야 "안녕"
소녀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건지 묘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치하야 "날 알아보겠어?"
소녀 "..."
소녀 "키사라기... 씨?"
치하야 "응, 적어도 얼굴 정도는 알아보는 모양이네"
이 상황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해보는 기색을 보인다.
뭐, 찔리는게 있다면 금방 알아채겠지.
소녀 "...아마미 씨... 때문인가요?"
치하야 "어머, 전혀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더니, 그 조막만한 머릿 속에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구나"
소녀 "아마미 씨한테 찾아가 보지 못한건 죄송하지만..."
소녀 "...제..제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잖아요!"
치하야 "..."
소녀 "게다가 사무소에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그런거지..."
소녀 "저라고 해서 미안하다던가 감사하다던가 그런걸 모르는건 아니었다구요!"
치하야 "..."
소녀 "그...그러니까..."
소녀 "흑..."
치하야 "..."
치하야 "뭘 잘했다고... 울고 있는거야..."
소녀 "..으흑..."
치하야 "..." 뿌득
치하야 "하루카는!!"
소녀 "히끅!?"
치하야 "...하루카는"
치하야 "그 사고 이후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버티고 있어"
치하야 "네 덕분이야"
치하야 "최소한 네가 찾아와서 한마디라도 해줬더라면"
치하야 "이렇게 빌어먹을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는데"
소녀 "윽...흑..."
치하야 "너도 언론이 떠드는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겠지?"
치하야 "그 사고로 하루카는 이제..."
소녀 "...죄송해요...죄송해요..."
치하야 "...그래?"
치하야 "난 네 사과같은 걸 듣자고 여기까지 널 데려온게 아닌데 말이지"
치하야 "저기, 이런 납치같은 번거로운 짓을 하면서"
치하야 "얼굴 하나 가리지 않은 이유를 아직 모르는 거야?"
소녀는 그제서야 깨닫고서는 사색이 된다.
이 자리는 그저 자신한테 사과나 감사를 받기 위해 마련한 허울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걸.
그 냉담한 표정과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평소에도 접근하기 어려울 냉공주의 이미지를 가진 키사라기 치하야, 그런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분노와 적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건 납치가 아니라...
치하야 "하루카만 그렇게 되는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치하야 "그래서 말인데... 너도"
치하야 『그 다리를 뽑아버릴까 하는데, 어때?』
소녀 "히...히익..."
소녀 "사...살려주세요..."
치하야 "..."
치하야 "정말 그렇게 해버리고 싶었는데"
치하야 "하루카로부터의 전언이야"
치하야 " '감사해 하지 않아도 돼' "
소녀 "...네?"
치하야 "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돼' "
치하야 " '정말로 괜찮으니까' "
소녀 "..."
치하야 "그 말대로야"
치하야 "다시는 하루카의 눈 앞에 보이지 말아줬으면 해"
치하야 "넌 이미 늦었으니까"
치하야 "나가는 길은 저쪽이야"
치하야 "다시는 서로 이런 일로 보지 않길 바랄께"
소녀 "으..."
치하야 "그리고"
치하야 "이번 일이 어디서든 퍼지는 순간"
치하야 『진짜로 해버릴 테니까』
소녀 "히이익!?"
그리고는 그대로 달아나버린다.
그리고 정적이 잠시 감도는 와중에, 다시금 인기척이 들려온다.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단발머리 소녀, 정 반대로 한 성격 할 것만 같은 긴 머리의 소녀
치하야 "..."
이오리 "정말 그정도로 괜찮은 거야?"
치하야 "...도와줘서 고마워 두사람"
치하야 "그리고 정말 미안해"
유키호 "...치하야 짱"
치하야 "여기서 더 나가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어버렸지만"
치하야 "그랬다간 하루카가 정말로 슬퍼할 거니까"
이오리 "...저 꼴을 봐서는 재기하는 것도 고생이겠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건 해둘께"
이오리 "저 녀석도 그렇지만, 괘씸해 빠진 그 사무소도 살짝 가지고 놀아둘까"
유키호 "...혹시라도 경찰이라던가 시끄러워질지도 모르니까"
치하야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도 같지만"
유키호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이오리 "저 녀석을 끝장내 버리는 것이 하루카를 슬프게 한다면, 네가 이런 시덥잖은 걸로 붙잡혀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루카를 괴롭게 할걸"
치하야 "..."
+3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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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화풀이가 되어버렸지만 진짜로 해버렸다간 하루카가 슬퍼할테니 이정도로
진짜로 원인이 그쪽에 있었으면, 이런 뜨뜻미지근한 면담이 아니라 진짜로 콘크리트 신발을 신겨드렸겠지만-
신고의 문제는... 만능의 미나세&하기와라 버프를 받아 혹시나 앵커에서 이쪽 문제가 불거지면 재앵커로 넘깁니다(?)
[촬영 현장에 있었는데, 원래는 하루카 짱이 다른 애를 구해주고 자기가 다친거였다구]
[근데 왜 신문이나 뉴스에선 그런 말은 없는거야?]
[그 다른 애 소속사가 ***프로덕션이라던대?]
[거기 나름 잘나가는 데던데.. 설마 입막음한거?]
[그렇게 안봤는데 진짜 그딴 짓도 하는거구나 거기]
[765도 딱하네, 규모가 작다고 항의도 못한거 아냐]
[그래놓고는 언론서는 그냥 가십거리라고 은퇴설만 줄창 뿌린거네?]
[팬들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시X]
살짝 의도적으로 정보를 뿌린 감도 있었지만, 어느새 진짜 목격자들까지 나서서 현 언론의 사태 본질에 대한 침묵과 단순히 주목도를 올리기 위해 은퇴설 등의 자극적인 기사를 남발하는 점을 성토하기 시작.
결국에는 상대 프로덕션에게 공식적인 감사까지 받아내고 이를 공론화시키게 된다.
하루카의 미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사무소를 통해 물밀듯이 들어오는 하루카의 쾌유를 비는 선물들은 오토나시 씨나 리츠코, 프로듀서에 이어 시간이 남는 아이돌들까지 합세해 정리해도 모자랄 정도로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의 하루카에게 그것이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일말의 불안을 뒤로 한 채 선물 몇가지를 추려 다시금 하루카의 병문안을 자처한다.
...
이 문앞에 서는 것도 오늘로 세번째. 올 때마다 긴장이 등줄기를 달린다.
꿈 속에서의 그녀가 한 말처럼, 사실은 더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는게 아닐까. 더이상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하는건 아닐까.
시간은 흐른다. 우두커니 병실 앞 복도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알아보고 소근거리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결국 노크를 한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치하야 "..."
딸깍
+3
이런 몸이 된 나라도 여전히 친구라고 생각해주는 걸까.
그건 조금 기쁜걸.
똑똑똑
왔다!
하루카 "들어오세요"
딸깍
하루카 "치하야 짱, 늦었다구"
치하야 "미안, 하루카"
치하야 "잘 지내고 있었어?"
하루카 "조금 외로웠을지도"
치하여 "후훗, 응석쟁이구나"
그러고 보니, 조금 두툼한 짐에 눈이 간다.
하루카 "치하야 짱? 그건...?"
치하야 "응, 네 선물이야"
치하야 "팬들로부터 보내진 것들 중 몇개를 추려서 가져왔어"
하루카 "아..."
치하야 "네 소식이 전해져서, 다들 널 응원해주고 있어"
하루카 "그런가..."
하루카 "에헤헷, 그건 조금 부끄러운걸..."
하루카 "지금 뜯어봐도 될까?"
치하야 "아무렴, 네 것들인걸"
즉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뜯어봤더니...
하루카 "와아~ 귀여운 인형이네"
치하야 "하루카를 닮았네"
하루카 "엩"
치하야 "이목구비하며, 머리 위의 리본에, 이렇게 귀여운 모습은 아주 빼다박았는걸"
하루카 "우으.. 그런건 본인 앞에서 말하지 말아줘..."//
치하야 "사실이잖아"
하루카 "정말 치사해..."
치하야 "이런 성격이니까"
치하야 짱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지는 기분이 드는걸.
지금이라면...
하루카 "...저기 치하야 짱?"
치하야 "응"
하루카 "...나 말이야..."
하루카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치하야 "..."
하루카 "파편이 신경에 박혀서, 빼내기도 힘들고, 빼낸다 하더라도 돌아올 가능성이 적대..."
치하야 "그런가..."
하루카 "..."
하루카 "아이돌, 은퇴해야 한대..."
치하야 "..."
하루카 "미안, 미안해..."
치하야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털어놓는다.
치하야 짱이라면 이해해 줄거야.
치하야 짱이라면 이런 나라도-
와락-
하루카 "!? 치, 치하야 짱?!"
치하야 "..."
마침 엄마도 잠깐 나간 터라 볼 사람은 나랑 치하야 짱밖에는 없다는건 다행이지만...
아니아니, 그런걸 떠나서라도 엄청 부끄러운데요?!?!
하루카 "저,저기??"
치하야 "...하루카"
치하야 "나는"
치하야 "아이돌이 아닌 네가-"
하루카 "...뭐?"
치하야 "다시 한번 말해주길 원하는구나"
치하야 『아이돌이 아닌 너에게 무슨 가치가 있어?』
하루카 "그..그런..."
치하야 "이 인형을 다시 봐주지 않겠어?"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인형을 치하야 짱이 들고는 말을 이어간다.
치하야 "정말 닮았지 않아?"
치하야 『특히 이 다리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야』
하루카 "아..."
그제서야 그 인형의 위화감을 눈치챈다.
정말로 나를 닮은 그 인형은, 다리가 없이 상반신만 남아 치하야 짱의 손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다.
하루카 "왜 그런 말을..."
치하야 "겁쟁이"
치하야 "패배자"
치하야 『위선자』
치하야 " 솔직히 말해보렴"
치하야 "분하지?"
하루카 "아..."
정곡을 찌른다.
치하야 "그 아이를 보고 나면 화내고 욕하고, 이유없이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는게 무서워서, 마지막까지 착한 아이로 남고 싶다는 가증을 떨고 있다는걸"
치하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하루카 "아...으..."
치하야 "솔직해지렴 하루카"
치하야 『넌 원래 그런 아이야』
하루카 "아..아아아..."
하루카 "치하야 짱... 어째서 그러는 거야..."
치하야 "글쎄"
치하야 "처음에도 말했다시피"
치하야 "이런 사소한 사고에도 엎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너는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 뿐"
치하야 "그럼 작별이야"
하루카 "아... 가지마... 가지마 치하야 짱..."
치하야 "안녕"
하루카 "가지 마!!!"
살짝 늦어진 일출 덕에 지금 상황에 대한 파악도 빨리 된다.
하루카 "아...으....윽..."
아마미 부인 "하루카 ?!"
옆에서 자고 있던 하루카의 어머니가 눈을 뜨고는 하루카의 상태를 보며 당황한다.
하루카 "엄마...으...흑..."
하루카 "이제 무리야..."
아마미 부인 "하루카?? 정신 차려!"
하루카 "아아"
하루카 "으아아아아아!!"
...
치하야 "..."
아마미 부인 "..."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단지 몇일만에 찾은 하루카는 한낮임에도 눈을 감은 채 깨어나지 않고...
그 얼굴은 붕대 투성이가 되어 있다.
치하야 "저기... 아주머니? 하루카는 대체..."
아마미 부인 "...진정제를 맞고 지금은 자고 있어"
치하야 "..."
아마미 부인 "흉터는 지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치하야 "...직접 한건가요"
아마미 부인 "..."
뭔가 악몽을 꾼 듯이 아침에 일어나서는 발작, 자해까지 해가면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급하게 간호사들이 진정제를 투여한 이후에야 쓰러져서 잠든게 오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치하야 "..."
하루카 "..."
잠든 모습조차 위태롭게 느껴진다. 이래서는 눈을 돌릴 수조차 없다.
아마미 부인 "...그건 하루카에게 줄 선물이니?"
치하야 "...팬들이 보내준 것들이에요"
아마미 "맡아놨다가 진정되면 줄테니, 오늘은 돌아가지 않겠니?"
치하야 "...네"
이대로 돌아가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또다른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발길을 돌린다.
하루카, 대체 넌 무슨 꿈을 꾼거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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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
로 하고 싶지만 발판이잖아 안될거야 아마
...
몇일 후 다시 방문한 치하야 짱을 보며 마음이 쓰라려옵니다. 저 표정은... 역시 그 날의 일을 모두 들은거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 그 꿈속의 치하야 짱과 지금 눈 앞의 치하야 짱은 다른 인물, 그런 말, 그런 고통을 또다시 줄 리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마음에도 없을 말을 꺼내버리는 겁니다.
하루카 "왜 온거야"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
하루카 "어째서 온거야"
치하야 "...널 보러 왔어"
하루카 "반신불수에 착한 아이를 흉내내는 나를?"
치하야 "그게 무슨..."
하루카 "돌아가 줘"
하루카 "더이상 나같은 반푼이는 너에게도 모두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애물단지일 뿐이야"
치하야 "...아니, 안돌아갈거야"
하루카 "...어째서?"
치하야 "그 이유를 나한테 묻는거야?"
하루카 "윽..."
치하야 "언제까지건 기다릴께"
하루카 "..."
그리고는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가지 몇벌을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옆의 의자에 앉습니다.
하루카 "..."
치하야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그저 천천히 흘러갑니다.
하루카 "..."
치하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하루카 "...아니야"
오만가지 말이 소용돌이가 되어 머릿속을 휘저으나, 정작 목구멍까지 와서는 힘을 잃고 도로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어째서 나를 봐주는 거야?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내 더러움을 보고도 질색하지 않을 거야?
잠깐 나갔다 오는가 싶으면 그새 깨끗이 세탁된 옷을 다시 들고 와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자면... 혼자만의 계획은 아닌 듯 싶지만, 굳이 물어볼 이유도 없기에 그저 그것 또한 일상이 되어갑니다.
하루카 "...치하야 짱"
치하야 "응"
하루카 "대체 언제까지 있을 셈이야?"
치하야 "네가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있을 수 있는데"
하루카 "..."
하루카 "그럼 이제 됐으니까 돌아가라고 한다면-"
치하야 "네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듣겠지만"
치하야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까 듣지 않을래"
하루카 "...그게 뭐야.. 순 제멋대로잖아..."
은근히 고집이 센 치하야 짱을 보면서 허탈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것 만으로도 입가가 잠깐 허물어 지는 것을 느끼고는 이내 긴장합니다.
치하야 짱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이 감정을 감추기 위해 짐짓 심술궂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루카 "...그렇다면 말이지 치하야 짱"
치하야 "..."
하루카 "서로가 죽는 날까지 함께 있어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말을 꺼내면서도 이게 뭐야! 싶은 말이었지만, 이런 자그마한 기싸움마저 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오기를 부려 봅니다.
...하지만 불안감이 또다시 엄습합니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리는 건 아닐까
...시덥잖은 농담 하지 말라면서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아예 대답조차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잠시간의 침묵마저 불안해지려던 찰나 치하야 짱이 입을 엽니다.
치하야 "그렇네"
치하야 "하루카 네가 원한다면"
치하야 "죽는 그날까지 함께 있을께"
하루카 " "
머릿속에 돌아온 그 말을 되새기면서,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이해해버립니다.
하루카 "노,농담인게 당연하잖아!!" ///
치하야 "그런 거였어?"
하루카 "정말 치하야 짱도 그런거에 일일히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치하야 "하루카 네 반응을 보고 싶었으니까"
하루카 "되잖... 아??"
치하야 "예상대로의 반응이라 기쁜걸"
하루카 "..."
하루카 "치하야 짜아아아아앙?!!"
조금은 어색하던 밤도 어느새 일주일이 되어가자 조금은 편해집니다.
아니, 그 악몽을 꾼 이후로는, 혼자 누워 있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어 목을 죄여오는 느낌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은 반갑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역시 치하야 짱의 존재는 조금 신경 쓰이기에 오늘은 잠이 조금 오지 않는 느낌으로...
히루카 "...치하야 짱...?"
넌지시 말을 건내봅니다.
치하야 "..."
밤귀가 밝은 편인 치하야 짱이었기에 이정도만 불러도 평소에는 깨있다면 바로 대답이 들려왔을 터, 그러나 이번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자고 있는걸까, 역시 피곤하겠지...
자신보다 일찍 잠드는 법이 없던 치하야 짱이었으나 일주일이나 계속된 이 상황은 몸도 마음도 피곤해지는 모양인지 오늘은 미동도 없이 자고 있습니다.
하루카 "..."
하루카 "치하야 짱"
듣는 사람이 자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그녀가 깨지 않도록 나지막한 소리로 혼자만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하루카 "사실은 무서웠어"
하루카 "다시는 내 다리로 걷지 못하는게 아닌가, 물론 그런 이유도 날 괴롭게 하고 있지만...
하루카 "..더이상 내 존재가 너에게 필요 없는것 아닐까, 다시는 네가 나를 보러 와주지 않는게 아닐까, 혼자 덩그라니 남겨져서 주저앉아 있게 되는 걸까"
하루카 "그날 꾼 꿈에서 너는 나를 뿌리치고 매정하게 떠나갔었어... 꿈이라는 걸 깨고 나서 알아 챘는데도 너무 서럽고 무서워서 뭘 붙잡아야 할지도 몰랐어"
하루카 "그래서 진짜 너를 만나고 나서는..."
하루카 "..."
하루카 "미안, 미안해... 나를 위해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데...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 망정 돌아가라는 둥 필요없다는 둥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었어..."
하루카 "..."
하루카 "내일이 되면, 물어볼 수 있을까?"
하루카 "정말 날 떠나지 않을 거냐고"
하루카 "...그럼 잘 자, 치하야 짱"
"대체 무슨-"
1인실인 병실, 면회객도 없을 아침부터 일어난 소란에 이내 눈을 뜹니다.
하루카 "...이게 무슨...?"
간호사 둘과 의사가 병실의 환자인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둘러싼 채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루카 "...대체 누굴..."
간호사 "아마미 씨? 보호자 분이 지금-"
하루카 "...아..."
의사의 몸에 가로막혀 있지만, 그 사이에 보이는 저 검은빛 긴 생머리는...
하루카 "...치하야... 짱? 어째서...?"
어째서라니, 이유는 차고도 넘칩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의 몸상태를 알면서도 나는...
하루카 "안돼... 나... 나때문에..."
간호사 "아마미 씨??"
하루카 "치하야 짱... 눈을 떠줘..."
아아... 나는 결국 끝까지 그녀에게 피해를 주고 마는 걸까요...
+3 인물앵커(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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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뭐야...
미키미키를 발판 설치합니다
치하야 "...윽"
팔뚝의 이물감이 느껴진다
치하야 "...주사?"
...어째서?
눈 앞에 들어오는 상황을 다급히 확인한다.
자신의 옷이 어느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져 있는데다 팔뚝에는 링거까지 꽂혀있다.
"치하야 씨, 정신이 들어?"
치하야 "아..."
765의 자타공인의 천재, 언제나 자신에게 살갑게 굴면서 치하야 씨라고 존칭을 붙여주는 아이
치하야 "...미키?"
미키 "응"
반짝이는 금발을 아무렇게나 놔둔 채, 마치 혼자서 반짝이는 별과 같은 그 아이는...
묘하게 화가 난 기색을 보인다.
치하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
미키 "그건 미키가 듣고 싶은건데"
대화가 헛돈다.
그러나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미키가 다시 말을 꺼낸다.
미키 "치하야 씨,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치하야 "...그게 무슨 소리야"
미키 "아침진료를 나온 의사가 발견했어"
미키 "병명은 피로누적으로 인한 탈진"
치하야 "..."
미키 "허니 말로는 분명, 하루카를 병문안 겸 간호해주러 왔다고 들었는데"
미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치하야 "...아"
그제서야 의식이 미친다
미키 "하루카를 생각하는 거라면 이미 늦은 거야"
미키 "그 꼴사나운 모습을 전부 봐 버렸다고"
치하야 "윽..."
미키 "도대체가 환자를 간호하러 갔다가 되려 환자가 되는건 무슨 상황극인거야?"
치하야 "..."
그 아이를 걱정해서 시작한 일이, 되려 걱정거리를 쥐여줘 버린건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치하야 "...하루카는 어때?"
미키 "...그 상황까지 돼서도 하루카 타령인거구나"
치하야 "그런..."
미키의 태도가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이 느껴진다.
미키 "지금의 하루카는 면회금지, 치하야 씨라고 해도 다시 들어가기는 힘들거 같은데"
치하야 "..."
결국 이렇게 돼버린 건가...
미키 "..."
미키 "다들 많이 걱정했어"
치하야 "..."
미키 "하루카가 그렇게 된 것으로 모자라서, 치하야 씨까지 이러면..."
치하야 "...미안해"
치하야 "..."
미안해 하루카
+2 인물앵커(765)
미키 "...무리하지 마"
치하야 "...그래도..."
미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여러모로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라 한동안은 면회 사절이라고 말한거야"
치하야 "..."
그 말대로, 병실 앞에 붙은 면회 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힘이 빠진다.
치하야 "...하루카"
"...치하야 씨?"
치하야 "...?"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한다.
치하야 "...타카츠키 양?"
미키 "야요이, 여기는 어떻게..."
야요이 "..."
야요이 "걱정했던 그대로의 일이네요"
야요이 "왜 또 여기까지 와 계신건가요"
치하야 "...미안해 타카츠키 양..."
정말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쳐버렸다. 더군다나 타카츠키 양에겐...
야요이 "역시 그런걸 도와드리는게 아니었어요..."
치하야 "..."
야요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야요이 "식사는 제대로 하신 건가요? 잠은요?"
치하야 "..."
야요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제가 들고 온 옷가지들만 받고는 계속 계셨던 건가요??"
치하야 "...하루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야요이 "하루카 씨도 하루카 씨죠!"
야요이 "하루카 씨가 걱정된다면서 자기 몸을 안챙기면 대체 뭐가 되는 건가요!"
치하야 "...정말 미안해"
야요이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돼버린 건가요..."
치하야 "..."
...
결국 양 팔을 미키와 타카츠키 양에게 붙들려 병실로 강제연행되어 버렸다...
미키 "...야요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야요이 "...네,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였을 줄은 몰랐지만요"
미키 "..."
야요이 "...미키 씨를 통해서도 얘기했겠지만요"
야요이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야요이 "안 그래도 하루카 씨도 저 상태인데"
야요이 "기껏 장기간 오프를 만들어 뒀더니 피로누적으로 쓰러졌다는건..."
치하야 "...미안해"
야요이 "..."
야요이 "미키 씨, 이제 일정은 어떠신가요?"
미키 "안그래도 내일까지 오프라서 감시 역으로 온거야"
치하야 "..."
야요이 "또다시 하루카 씨를 보겠다고 무리를 했다가는 정말로 화낼 거에요"
야요이 "오늘은 얌전히 여기서 쉬어 주세요"
치하야 "하지만..."
미키 "치하야 씨, 다시 하는 말이지만, 치하야 씨까지 쓰러지면 앞뒤가 꼬이는거야"
치하야 "..."
야요이 "치하야 씨, 프로듀서가 전해달라고 한 말이에요"
야요이 "최대한 양보해서, 이번 주까지라고 하셨어요"
치하야 "..."
야요이 "그 사이 하루카 씨와의 일이 제대로 풀리지 못하더라도"
야요이 "일정을 소화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돌아와 줬으면 한다고 했어요"
치하야 "...알았어"
야요이 "...그럼 가볼께요"
야요이 "미키 씨, 그럼 잘 부탁드릴께요"
미키 "응"
+3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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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거, 수습이 가능할려나...
...그나저나 미키, 정말로 여기 있을 생각이야?
미키 "그냥 놔두면 그대로 여기를 탈출해서 하루카를 보러 갈거 같은거야"
...쓸데 없는 걱정을 하기는
미키 "야요이로부터의 부탁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야"
...사실은 미키의 말대로, 지금 당장이라도 하루카를 보고 싶을 뿐이다.
그 날 강제로 잠들어진 붕대 투성이 얼굴 속에서 느꼈다.
이대로는 그대로 사라져, 내 앞에서 사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게 아닌가
지금도 하루카를 눈에 담아두지 않으면 되려 내쪽이 불안해져온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얼굴에 또 하나의 근심을 던져버린게 자신이다.
이제 와서 자신이 돌아가면 그녀를 더 괴롭히는게 아닐까...
그런 상반된 감정 속에서 더이상 어느 쪽으로도 발을 뻗지 못한다.
미키 "우응...zzz"
과연 미키인걸까... 하지만, 9시가 되기 무섭게 눕고 그대로 자버리는건 감시역으로는 어떨까 싶은데-
그런 미키를 뒤로 한 채 살짝 병실을 나선다.
타카네 "그렇습니까"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 이전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사무소에 들어오고 동료들의 몇가지 사항을 신경쓰다보니 마찬가지로 숙지하게 된 몇가지 일이 있다.
이를테면, 보름달이 뜨는 날은 시죠 씨를 생각하면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 정말로 있다던가-
타카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기분탓인 거겠죠.
타카네 "오랜만입니다"
확실히... 일주일은 넘었네요.
타카네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
타카네 "그리고 오늘은 결국 일을 치른 모양이시로군요"
...시죠 씨, 시죠 씨라면 하루카의 상태를-
타카네 "안타깝게도, 의학에 대한 지식은 일천한지라"
...
타카네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뇨, 당연한 일인데 쓸데 없는 소리를 했네요.
타카네 "치하야"
타카네 "하루카의 일은 분명 슬픈 일이옵니다만"
타카네 "물질적인 병만 전염되는게 아닙니다"
...뜻모를 이야기를 하시는건 여전하네요.
타카네 "그렇습니까"
타카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타카네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는가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타카네 "서로를 왕복하면서 더 커져가는 마음의 병은 언젠가 터지게 될 것이니, 지금 육체의 경고를 받아들여 조금은 생각을 해두시길"
...
타카네 "잊지 마십시오"
타카네 "바람이 차니, 일찍 들어가보시는건 어떻습니까"
그래야겠네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키가 깨서 제가 없는걸 알면 많이 놀랄 테니까요.
타카네 "과연, 기우란건 그런걸 두고 하는 얘기겠지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이긴 하지만, 시죠 씨
이 병원 옥상에는 왜 와 계신건가요?
타카네 "후훗,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타카네 "톱 시크릿이옵니다"
그렇겠죠.
"......카"
"하......"
"하루카!"
하루카 "우오아아악!?"
돈가라갓샹!
하루카 "아으으..."
리츠코 "대체 밤에 뭘 했길래 그렇게 졸고 있는거야?"
리츠코 "곧바로 시작한다고! 정신 차려!"
하루카 "에, 에?? 리츠코 씨?? 여긴 어떻게..."
리츠코 "얘가 아직도 꿈나라에 가 있네..."
리츠코 "네 솔로라이브가 코 앞인데 너무 여유만만인거 아니니?"
하루카 "...꿈? 라이브??"
하루카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전 지금..."
하루카 "어라?"
맵시있게 차려 입은 공연의상
장막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하루카 "내가... 서 있어...?"
...
P "하루카, 피곤한거야?"
하루카 "아, 아니에요"
리츠코 "프로듀서도 정말이지, 그렇게 일정을 타이트하게 맞추니까 애가 정신을 못차리잖아요"
P "그런가... 미안해 하루카, 지금부터라도 조정해 둘께"
하루카 "저,정말로 괜찮아요!"
P "하지만 피곤하더라도, 이 공연은 깔끔하게 마무리짓도록 하자"
리츠코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으니까 말이지"
P "할 수 있겠지?"
하루카 "물론이에요!"
...
공연은 최고의 호응을 받으며 무사히 마쳤다
묘하게 오랜만이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날아갈 것만 같은 몸
땅을 굳게 디딘 두 다리
정말이지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길고 긴 악몽 따위는 금새 잊혀질 정도로-
P "오늘 공연, 정말 훌륭했어"
리츠코 "이제 하루카도 여유만만이라는 느낌이네"
하루카 "에헤헷"
리츠코 "하지만 말이지, 너무 여유있게 굴다가는 언젠가 크게 데일 일이 생긴다고?"
하루카 "아우..."
P "하하, 그쯤 해두라고"
P "그럼 얼른 가볼까"
하루카 "?"
리츠코 "너의 솔로라이브 성공 축하파티...라고 아미들이 들떠 있어"
리츠코 "여전히 노는것만 관심있는 애들이라니깐"
하루카 "아..하하하..."
...
아미 "하루룽, 얘기는 들었다궁!"
마미 "오늘도 많은 우민들을 무릎꿇리는 전설같은 실화가 또 탄생..."
하루카 "아, 아니야!"
왁자지껄한 현장, 언제나처럼 배달음식을 쌓아놓고는 사무소에 옹기종기 모여서 파티가 열립니다.
유키호 "직접 가보지 못해서 미안해 하루카 짱"
하루카 "으응, 다들 바쁜걸 어떻게 하겠어"
마코토 "리츠코 말을 들어보니 공연 전에 졸았다고 하던데, 피곤한거 아니야?"
하루카 "어? 완전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와중에 눈을 이리저리 돌려 치하야 짱을 찾습니다.
말하고 싶은게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아 가슴이 벅찹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꿈을 꿨어
널 만나고, 울고, 웃고, 괴롭고, 기대고, 또...
그러나 치하야 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카 "...어라..."
히비키 "하루카, 뭘 하는거야?"
하루카 "...히비키 짱? 오늘 치하야 짱은 안 왔어?"
히비키 "...하루카?"
하루카 "치하야 짱의 꿈을 꿔서 말해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오프였었나..."
히비키 "...무슨 말을 하는거야"
히비키 『치하야는 죽었잖아』
...
---
하나
하늘도 추적추적 비를 흩뿌리는 그날
키사라기 치하야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하야의 어머니 치구사와 사무소의 동료들 정도만이 참여한 가운데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끼익-
그저 망연히 사진만을 바라보고 있던 치구사의 귀에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치구사 "...너는..."
하루카 "...안녕하세요"
치구사 "..."
복잡한 심경일 터이다.
허나 생전의 딸과 가장 친하게 지내주었던 그 소녀에 대해 결국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게 된다.
치구사 "...몸도 성치 않을텐데"
하루카 "...꼭 와봤어야 하니까요"
프로듀서의 부축을 받아 식장 안의 치하야의 영정 사진 앞에 도달한다.
하루카 "..."
이 모든 것은 자신의 탓, 자신이 치하야 짱을 조금 더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수십, 수백번을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동안 멍하니 사진을 향해 묵념, 그리고는 다시 프로듀서의 부축을 받아 식장을 떠난다.
...떠나려는 찰나
"네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거야?"
하루카 "!"
낯선 남자가 하루카의 앞에 선다.
"대답해! 이 살인자야!"
지독한 술냄새, 이미 취해서 앞뒤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보인다.
P "키사라기 씨, 아무리 그래도-"
프로듀서의 말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아... 이 사람은 치하야의...
키사라기 "너 때문에 치하야가 죽었는데 잘도 뻔뻔하게 여길 와?"
키사라기 "염치도 없는 X이!"
하루카 "아..."
키사라기 "죽을거면 너 혼자 죽어야지 왜 내 딸까지 데려간 거야!"
P "키사라기 씨!"
곧바로 실랑이가 벌어진다. 동료들과 치구사까지 나와 말려보지만 막무가내다.
그와중에 떠밀려서 휠체어 째로 쓰러져 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다
살인자, 뻔뻔하게, 염치도 없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뇌리에 박히는 단어들
『네가 치하야를 죽였어』
...
---
둘
타카네랑 얘기할 때 치하야 이름이랑 따옴표가 안 나온 것도 뭔가의 복선?
아직 뛰거나 격한 운동을 하기에는 벅차지만 적어도 계단을 올라가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 이전에는 귀찮음을 무릎쓰고 어쩔 수 없이 계단을 통해 왕복했어야 했지만... 이제는 재활치료를 겸해서 한걸음씩 힘을 내딛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 3층까지 올라가고 나서는 다리에 전해지는 미약한 고통에 얼굴 찌푸리면서도 그 달성감에 다시 미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무소의 문을 열어-
철컥, 덜컹덜컹
어라...?
이런 시간에 문이 잠겨 있을 리가 없을텐데...
코토리 "...하루카 짱?"
당황하는 와중에, 마찬가지로 계단을 통해 올라오던 코토리 씨와 마주합니다.
하루카 "코토리 씨?"
하루카 "아, 잠깐 외출하셨던 건가요?"
코토리 "...돌아온거구나"
코토리 "...잠시만, 문 열께"
문에서 살짝 떨어져 코토리씨에게 자리를 넘기고, 코토리 씨가 지니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을 바라봅니다.
끼익-
그리고...
하루카 "!"
하루카 "코토리 씨, 이건??"
코토리 "..."
바로 보이는 프로듀서 씨의 책상과 그 위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서류철, 조금 눈을 돌리면 칸막이로 나눠놓은 응접실의 살짝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 언제나 빼곡하게 차 있던 동료들의 일정표 목록, 리츠코 씨에게 사용법을 배우느라 반나절이 금세 지나가곤 하던 데스크톱 컴퓨터, 외근이 잦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은 와중에 아미와 마미가 자기 방처럼 드나들고는 그럴때마다 리츠코 씨에게 혼나곤 했던 사장실, 차를 좋아하는 유키호와 방문객들을 위해 구비된 다기 세트와 차상자를 넣어놓은 찬장, 연식이 오래 됐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심해서 다루곤 했던 냉장고, 모두 모여 그자리에 없는 동료들이 방송에서 활약하는걸 다함께 보고는 했던 휴게실의 소파와 테레비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마치 버려진지 오래 된 폐허를 연상케 하는 사무실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코토리 "이야기를 듣지 못한거였니?"
하루카 "...전혀 몰랐어요..."
코토리 "...『그 날』 이후로는 전부 사라져버렸어"
하루카 "...윽"
『그 날』이후로 구심점을 완전히 잃은 사무소는 내외적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해,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은퇴, 몇몇은 사무소를 변경해 재기를 노려봤지만 『그』 사무소 출신이라는 딱지에 넉아웃, 지금 시점에서 아이돌 활동을 하는 지난 날의 동료는 전무... 하다는게 코토리 씨의 설명이었습니다.
하루카 "...어째서 그런..."
코토리 "...하루카 짱?"
코토리 "왜 돌아온 거야?"
하루카 "...네?"
코토리 "너희들이 아이돌로써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게, 아이돌로써 실패했던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꿈이었는데"
코토리 "그 모든걸 한순간에 앗아가놓고는"
코토리 "이제야 돌아와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코토리 "그런 말을 하는거야?"
하루카 "코토리 씨...?"
코토리 "...모두 너 때문이야..."
코토리 "...네가 전부 잘못한 거야..."
코토리 "얌전히 병실에 틀어박혀서"
코토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코토리 "치하야 짱까지 우리에게서 앗아가놓고서"
코토리 "이제와서 뻔뻔하게 여기에 고개를 들이밀어!"
하루카 "아...아니야...아니에요......"
코토리 "돌려내! 치하야 짱을, 모두를, 내 꿈을!!!"
하루카 "아윽..."
어깨를 밀쳐져 중심을 잃고 쓰러집니다. 다리의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옵니다.
그런 나를 내려다 보는 코토리 씨의 눈에서는...
더이상 모두를 대하던 상냥하던 그 눈빛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코토리 "그런 너에게도 한때의 정이 남아있다면...
코토리 "마지막 부탁이야..."
코토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줘..."
코토리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버틸 수가 없어집니다.
이건...
코토리 『이 역신같으니』
...
---
셋
아즈사 "어머, 하루카 짱?"
하루카 "...아즈사 씨?"
인적이 드문 골목길, 분명 아즈사 씨의 집은 사무소를 기준으로 정 반대편에 있었을 텐데
아즈사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니?"
하루카 "...길을 잃으신 건가요?"
아즈사 "편의점에 살 물건이 있어서 잠깐 나왔는데 이렇게 돼버렸지 뭐니..."
하루카 "...이쪽은 아즈사 씨의 집에서 최소 30분은 떨어진 곳이에요"
아즈사 "어머..."
언제나처럼의 아즈사 씨인 듯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과연 어떨까
지독한 경험이 반복되면 익숙해져 버린다고 하던데, 지금이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말로 절 매도할지, 제 상처를 얼마나 후벼팔지, 저에게 얼마나 더 많은 반성을 요구할지
하루카 "...아즈사 씨는, 뭔가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아즈사 "음...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겠니?"
하루카 "..."
아즈사 "사무소까지라도 갈 수 있으면, 어떻게든 돌아갈 수도 있겠는데... 여기선 좀 어려워 보이네"
하루카 "...가도록 하죠"
땅을 뒤로 밀면서 걸어가는 모양새는 이제 조금 낯선 감각입니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걷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을 하고 있었는데, 꿈이란건 참 얄궂게도 이런 경험도 시켜 주는 건가요.
하루카 "...기왕 이럴거면, 조금이라도 더 상냥한 꿈으로 해주면 안될까요?"
아즈사 "어라? 뭔가 말했니?"
하루카 "...아니에요"
그렇게 아즈사 씨가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손을 잡고는 그 낯선 걸음을 옮깁니다.
터벅터벅, 두 개의 발소리가 폭을 맞춰 조용히 울립니다.
아즈사 "하루카 짱의 집은 전철을 타고 가는 곳이었지?"
하루카 "...네"
아즈사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하루카 "...그렇게 생겨먹은 꿈일 테니까요"
아즈사 "으음??"
하루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아즈사 씨에게, 되려 조바심을 느끼고 말에 가시가 돋칩니다.
하루카 "..."
아즈사 "요즘 휴대폰에는 지도도 있다고는 하던데, 역시 좀 쓰기가 어렵네..."
하루카 "...가지고 계신 건가요?"
아즈사 "응, 이전 폰이 너무 구형이라 고장 났을 때 수리가 안된대서 바꿔버렸단다"
아즈사 "번호는 그대로인데다 판매점에서 주소록까지 옮겨줘서 말은 안했지만 말이야"
하루카 "...저도 많이는 모르겠지만, 한번 봐 드릴께요"
그렇게 아즈사 씨의 스마트폰을 받아서 잠시 조작해봅니다.
바탕 화면에는 저희들이 저번 아레나 라이브를 마치고 찍은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꿈인 주제에 쓸데없이 디테일하네... 평소 같았으면 그럴 리 없을 묘한 반응을 남기고 사진을 살펴 봅니다.
아즈사 "그것도 저번 휴대폰에 받아둔 걸 같이 옮겨주셔서, 바탕화면으로까지 해놨단다"
하루카 "헤에..."
하루카 "..."
이번엔 이런 식인가요.
모두와 함께 찍은 사진, 프로듀서 씨, 리츠코 씨, 사장님, 코토리 씨, 백댄서로 와준 후배 여섯 명과, 그리고 아이돌들...
열한 명.
없습니다. 어디에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지독하고도 집요합니다.
하루카 "...아즈사 씨"
아즈사 "응?"
하루카 "키사라기 치하야, 라는 아이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아즈사 『글쎄?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루카의 친구니?』
...
---
넷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
그 한가운데에 단지 거울 하나만이 놓여있습니다.
그 너머에 드러난 얼굴이 저와 눈을 마주칩니다.
그리고는 말을 걸어옵니다.
"어때?"
"정말이지, 지독하고 끔찍하지"
"그렇지만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었어"
"알고 있지?"
"네 나약함이 일을 키운 거야"
"이번에는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고 했지"
"하지만 이대로는 시간문제"
"네 반편이 같은 몸으로는 더이상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발목만 잡다가 언젠가 함께 침몰해 버릴거야"
"이걸 명심해"
『네 어리광이 치하야 짱을 죽일 뻔 했어』
...
---
다섯
하지만, 어제의 그 사고를 일으키고 다시 그녀의 앞에 서려니 미안함과 불안감이 앞선다.
하루카의 상태는 어떨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 사과를 하자
쓸데 없이 고집을 부려서 되려 일을 키워버렸어
이젠 그런 일은 하지 않을테니까, 안심해줘
하지만 그 약속 또한 지킬테니, 불안해 하지 말아줘
이번엔 조금 현실적으로, 쉴건 쉬어가면서 하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언제까지건 곁에 있어줄께
똑똑똑
미키 "미키인거야"
"들어와"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 "..."
치하야 "어제 일은 정말 미안해"
하루카 "..."
하루카 "...저기"
하루카 『누구세요?』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는걸 느낀다.
미키 "치하야 씨?!"
하루카 "앗..."
치하야 "...뭐...라고"
미키 "...하루카, 치하야 씨를..."
하루카 "...죄송해요"
하루카 『당신은 누구신가요? 절 알고 계신가요?』
치하야 "하지만 하루카... 그런 식으로..."
하루카 "아, 아니에요!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당신한테 화가 났다거나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라..."
하루카 "미키, 정말 난 이 사람을 알고 있었던 거야??"
미키 "...윽... 하루카..."
미키 "...응, 절대 모를 수 없는 사람이었어"
하루카 "하지만... 난... 난 몰라...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구..."
치하야 "...미안..."
치하야 "돌아갈께"
치하야 "안녕"
미키 "자,잠깐, 치하야 씨!"
덜컹, 쾅!
하루카 "..."
하루카 "이걸로 된거야"
하루카 "안녕, 치하야 짱"
END
...꿈이랍시고 너무 굴렸나
이런 소재도 나름 괜찮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