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하나 없는 이 복도엔 미키의 발소리만 통, 통 울리고 있었어. 조금 짜증섞인 미키의 목소리는 조금 묻혔을려나. 그건 크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미키는 기분이 매우 복잡미묘한거야.
"..."
분명 방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거야. 아스타리스크의 리이나라는 애가 미키에게 말했던, 'love냐, like냐' 는 이야기. 분명 본인에게 큰 뜻은 없었겠지만... 미키는 신경쓰이는거야. 미키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라도 그런 질문이 나온다는 건, 미키랑 리츠코는 뭔가 좀 더 특별한 관계로 보이는 걸까나?
"므으음..." 저벅저벅
미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거든. ...그런 건. 그냥 미키는 리츠코를 좋아하는구나, 정도 생각밖에 안 했으니까. 남들 눈에 보이는 미키와 리츠코는, 어떤 느낌일까? 새삼 궁금해졌지만...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거야.
"..."
그래서... 먼저 생각한 건, love와 like의 차이. 일단 미키적으로 어떤 느낌이냐, 를 먼저 생각해봤어.
"love, 는..."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려니 어려운 거야. '사랑' 이라는 것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만을 따지면... 남자와 여자, 가? 만나서, 서로를 좋아한다는 거? 므음, 뭔가 아닌 거야. ...일단 이 쯤에서 넘어가도록 할까나.
"like, 는..."
그... 잘 해주고 싶은 감정일까나? 사무소의 동료들이라던가, 리츠코 같은.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고,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걸까나? 하지만 그건 love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거야. ...생각해보니 서로 안 겹치는 걸 찾아보는 게 더 빠른 거 아냐? 으으. ...확실한 건, 지금 이건 미키의 의문에 해답이 안 될 거라는 것. 정도? 의 결론이 나왔다는 거야.
"끄응..."
다시 원점인거야. 이번에는, 가까이를 볼 수 없다면 멀리를 보는 거야! 작전. 리츠코의 주변을 미키의 눈으로 판단 해보는거야.
"일단... 아즈사?"
일단 아즈사는 미키보단 오래 있었던 것 같아. 므으, 리츠코랑 먼저 알고 지내다니 부러운 거야. 올해 초에 같이 리츠코의 옷도 골라줬었는데. 정말 예쁘고 귀여웠던 거야! ...아, 아니, 이게 아니고... 아즈사는 분명 리츠코에게 호감이 있는건 확실한거야. 전에 안겼을 때도 그렇고... 므으, 괜히 화 나는 거야!
"그리고... 하루카."
하루카는 정말 오래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아즈사보다도 일찍 리츠코랑 있었을 거야. 리츠코도 하루카는 잘 아는 눈치고... 부러운 거야. 므으, 왜 미키는 일찍 이 곳에 오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두 사람 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네. 하루카도 리츠코와 입을 맞출 수 있을 만큼은 호감이 있는 것 같고. ...아까부터 뺑뺑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 멈칫
어느덧 건너와 도착한 반대편 대기실 앞에서 미키는 잠시 생각을 멈췄어. 아까부터 핵심을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그 이상 한다고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어.
"..." 끼익
대기실 문은 열려있었어. 하긴, 딱히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이 잠겨있을 이유는 없었지. 주위를 좀 둘러보니, 리츠코가 다녀갔던 것 같네. 누구 때문에 이런 머리아픈 생각을 하고있는데. 괜히 야속한거야.
"..."
미키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리츠코의 정장 재킷. 언제나 입고 다니는 녀석인거야. 이 날씨에 여기다가 벗어놓고 다니다니, 리츠코는 추위에 강한 걸지도. ...보고 있자니, 어느 샌가 미키의 코 앞에 있었던 거야. 자석 같은 느낌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다니, 역시 그 주인에 그 옷이네, 라는 느낌.
"..."
만져본 옷깃은 굉장히 익숙한 부드러움이 느껴졌어. 언제나 미키가 안길 때 입고 있는 옷이라서 그런가, 이 익숙한 푸근함에 무심코 하품이 나왔어. ...아후.
"..."
익숙하다, 고 하면... 지금 미키의 코를 찌르는 이 향수 냄새도, 리츠코의 것. 거의 일 년 내내 쓰고 다니는 향수. 언제나 리츠코에게 안기면 나는 좋은 냄새. 미키가 안기기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미키를 푸근하게 만들어 준, 두 번째 추억.
"..."
거기까지 생각하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리츠코를 껴안듯 옷걸이에서 옷을 빼서, 꽈악. 덮쳐오는 익숙한 감각에 얼굴을 묻고... 므읏, 이 이상은 말 못하는 거야! 상상에 맡길 거니까?!
"하아... 하아..."
잠시 가려졌던 시야에는, 밝게 빛나는 형광등 빛이 다시금 눈을 찔러들어왔어. 얼마 안 됐을텐데도, 눈이 살짝 부셨던 거야. 제 발이 저렸는지 두리번거리던 미키의 눈에, 거울이 들어온 것도 그 때가 처음.
"거울..."
거울 속의 미키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 남의 옷을 꽉 껴안은 채,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마치...
"으, 으우..."
생각했더니 더 빨개졌어. 지금 미키는 112에 신고하면 치녀로 잡혀갈 모습을 하고 있는거야. 만약 잡혀가면, 왜 그러고 있었냐는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겠는걸. 절대 말 못하는 거야. 이런 거.
"..."
후끈 달아오른 몸, 두근대는 심장. 가슴에 손을 얹으니 흘러들어오는 온갖 상상들. 조금 부끄러운 몰골이었지만, 슬슬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든 거야.
"리츠, 코..."
내려놓지도 않은 미키의 짐에서, 미키도 모르게 꺼낸 물건은 리츠코가 준 선물. 우리가 다시 시작한 기념으로, 리츠코가 미키에게 사 준것. 좀 많이 특이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미키와 리츠코의, 시작 같은 것. 그렇다면, 끝도.
"...가자."
두리뭉실했던 의문의 답은 조금씩 뚜렷해졌어. 가자, 미키는 지금 미키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미키는 아주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세차게 바닥을 밟고 지나가기 시작했어.
...아핫, 뭔가 굉장히 소리쳐버린거야. 미안해요, 리츠코랑... 거기 있는 사람. 하지만, 누구라도 미키같은 마음이었다면, 무심코 소릴 질렀을 거라고 생각하는걸.
"미, 미키...?" 뻘쭘
"..."
아핫, 곤란해 하는 리츠코도 귀여운 거야. ...미키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리츠코에게 가까이 있는 거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촉감에 좀 더 꽉, 하고 팔에 힘을 넣었어. 이 때 부터려나? 몸이 조금씩 더 뜨거워지기 시작한 게.
"흐으, 으으..."
"저, 저기... 일단 좀 떨어져 줄래...?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허둥지둥
원래 같았으면, 이 쯤 해서 떨어졌을텐데. 오늘의 미키는 조금 이상해. 옆에 있던 그 프로듀서의 시선을 느끼고는 미키도 모르게 그만 리츠코에게 심술을 부리고 만 거야.
"...싫어." 꼬옥
"에...?" 당황
"..." 째릿
분명 리츠코의 계산 속에도 없었겠지? 리츠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동요하고 있던 거야. 당연히 제일 가까이 있던 미키에게 먼저 전해져 온 거야. 하지만 미키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저 죄 없는 그 프로듀서를 쏘아볼 뿐이었던 거야. 그 시선을 느꼈을까,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어.
"...저는 잠시 가 보겠습니다."
"..."
"네? 자, 잠깐만요!"
아무래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나봐. 리츠코의 반응을 보면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됐던 것 같네. 왠지 입 밖으론 낼 수 없었지만... 미안해요, 인 거야. 아스타리스크의 프로듀서 씨. 하지만 미키가 이러는 건 아스타리스크의 탓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해 해 달라는 거야.
"...하아, 갑자기 왜 그러니?" 한숨
"..." 꼬옥
결국 리츠코는 뭐라고 말하려는 듯 하다가, 이내 한숨으로 덮어버렸어. 미안해요, 인 거야. 미키가 고집을 부려서. 이상한 이유로 괜히 리츠코를 곤란하게 해서.
"무슨 일 있었어?" 쓰담쓰담
"하아우우..."
...기분 좋은거야. 리츠코의 체온이 미키의 머리를 타고 내려와. 꼭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걸... 아니, 이런 느낌은 미키 혼자 알고 있는 편이 더 기분 좋으려나. 미키만 알고 있는 감각, 뭔가 사장님적으로 팅, 하고 온다는 느낌!
"...말 해줄 때 까지 기다려 줄게." 쓰담
"하아, 아, 아..."
...머리가 뜨거운거야. 아마도 리츠코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을 때 부터 그랬던 것 같아. 정신이 멍, 하고 흐려지는 기분이야. 흐물흐물하다는 단어는 이런 기분에서 유래한 단어일지도. 이건, 미키의 가슴 속에 품은 감각과, 뭔가 닮았어. 역시 대답은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확신이 들자, 드디어 말문을 좀 열 수 있었어.
"...리츠, 코... 씨."
"왜?" 싱긋
안 돼, 그 미소는 반칙인거야. 이런 뜨거운 몸으로는 그런 뜨거운 공격을 견뎌 낼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야 제대로 말 할 수가 없잖아. 하지만, 좀 더 뜨거워져야 대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미안해요, 인 거야."
"...뭐가?"
"그, 프로듀서랑... 이야기, 하고 있었지? 미키가... 방해를, 해서..."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마." 쓰담
두근.
슬슬 심장이 고장나기 시작한거야. 이미 몸은 열로 포화 상태. 거의 모든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수준이고, 슬슬 머리 쪽도 위기인거야. ...머리가 고장나면 어떻게 되려나?
"...혹시 감기 때문에 그러니? 몸이 슬슬 뜨거운데..." 힐끗
"!...아, 아니, 그런 것 때문이 아닌 거야." 도리도리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었어, 지금의 미키를. 그리고, 지금의 이 기분도. 미키의 두 눈에, 리츠코의 두 눈이 딱, 하고 들어왔을 때에.
"..." 지그시
"...?" 갸우뚱
동그란 두 눈. 말랑말랑할 것 같은 볼. 아직 때가 덜 탄 새 안경. 묶어 올린 뒷 머리에, 정수리 부근에 좌우로 삐친 머리 두 가닥. 그리고... 밝은 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아아, 그런 거였을까나.
"..."
"...미키?"
음미하듯 힐끗거리며 리츠코를 눈에 새겼을 때, 느꼈던 기분. 그 기분을 알고 나서야, 미키는 드디어 대답을 얻었어. 아핫,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던거야.
"...아핫."
그 끝에 있던 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끝없이 가득한 욕심.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으면 해. 부드럽고 상냥한 그 목소리로 미키의 이름을 불러줬으면 해.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을 껴 안게 해 줬으면 해. 미키가 두려워 할 땐, 손을 잡고 웃어줬으면 해. 언제나 미키가 원할 땐, 미키만을 향해주었으면 해. 리츠코가 가진 모든 것이, 미키를 향해주었으면 해. 그리고...
"...?"
리츠코의 모든 것으로, 미키를 원해줬으면 해.
"리츠코, 씨..."
...그런가, 그랬구나.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던 거야. 이제껏 미키가 느껴온 모든 감정에 따른 미키의 행동이, 의지가. ...좋아한다, 는 것. 이제껏 미키가 느껴온 모든 감정에 따른... 이 뜨거운, 바램이.
결국 좀 늦게 돌아간 뒤로도 리츠코랑은 제대로 대화하지도 못했어. 붓기를 몰래 가라앉히느라 시간 좀 걸렸던 거야. 결국 리츠코랑은 평소처럼 느긋히는 있을 수 없었네.
"..."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는데, 리츠코도 모를 리가 없는거야.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이나 할까? 오히려 리츠코라면 지금 미키가 왜 그랬는지 모르기 위해서 뺑 돌고 있을수도. 하지만, 결국 눈 돌릴 수 없게 되겠지? 그렇게되면... 이 관계도 끝, 이라는 걸까. 그런 건 싫은데.
"..."
"..."
하지만 늦었어. 그런 일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했어. 아주 당연한 걸, 바보같이 미키는 놓치고 있었어. 미키가 남자였다면 이런 걸 사고쳤다고 하는 거겠지. 근데 지금은 차라리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지간히 중증이라는 뜻이려나.
"..." 힐끗
"..."
"읏..." 홱
...잠시 리츠코를 살피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가슴이 두근거려서 미키도 모르게 다시 원위치. 이젠 옆모습만으로도 이런 상태가 되는 거야? 알아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고생 좀 하겠는 거야... 정말, 다 리츠코 때문인거야. 여자를 홀리는 여자라니 들어본 적 없는 거야!
"저기... 미키?"
"...! 왜, 왜?!" 허둥지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생각만으로 미키에게 오다니 이 무슨 독심술인거야?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아무것도 아냐..."
"...알겠는 거야."
휴우, 앞으로는 너무 미키를 놀래켜주지 않았으면 하는거야. 슬슬 시간이라구? 미키의 프로듀서로서 눈치가 너무 없는 거야.
"...무대, 힘 내."
"!..."
미키의 생각보다도, 더욱. ...정말, 그런 말은 지금의 미키에겐 반칙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거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을 떨어뜨릴 정도로.
"...리츠코, 씨."
"...?! 왜, 왜 그러니?!" 허둥지둥
그 위력은 리츠코도 몰랐는지, 방금 전 미키처럼 허둥대고 있네. 귀여운 거야, 리츠코.
"...푸핫!"
"우, 웃지 마! 갑자기 말을 걸길래 놀라서..." 허둥지둥
"아핫, 미안한 거야. 그래도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는걸."
"...긴장하고 있어서 그랬어? 드문 일이네..."
그렇게 말하며 머릴 긁적이는 리츠코를 보니 정말로 몸이 좀 가벼워졌어. 방금 전 까지 무거운 생각만 해서 그런 걸까나. 하지만, 아쉽게도 미키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미키는, 각오했으니까.
좀 아쉬운거야. 아스타리스크에게 무대로 지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승부에서 진 건 꽤 분한거야. 아무래도 심사 점수랑 현장 투표를 잡아내지 못한 게 컸겠지? 미키의 무대가 예상보다 별로였다는 걸로. 으으... 리츠코에게 면목이 없는거야.
"..." 끼익
무대에서 대기실까지는 얼마 안 걸리니까 금방 도착한거야. 오는 길에 리츠코를 보지 못했으니, 분명 여기 있겠지? 염치 불구하고 조금은 리츠코에게 위안을 받고 싶은데... 끄응.
"...어라?" 어리둥절
대기실에 리츠코가 없는거야. 조금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짐도 없는거야. 미키를 먼저 두고 가 버린거야?
"어째서...?"
언제나 미키랑 함께 있어주었으면서. 언제나 무대 뒤에서 지켜봐주었으면서.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안 좋은 생각밖에 나지 않는걸.
"혹시..."
미키가 말이야, 이 무대가 끝나면,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혹시 그걸 이미 눈치채고, 듣지 않으려고? 미키의 진심을, 이미 혐오하고 있어서? 그래서 미키 따윈 보고 싶지 않아진거야?
"아니야..." 후들
아니지? 아닌 거지? 그럴 리가 없는거야. 분명 리츠코니까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래, 분명 그런 일일 거야. ...미키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테니까, 한 번만 들어달라는 거야... 부탁이야.
"으윽..." 휘청
"...! 괜찮으십니까?!" 탁
누, 누구...?
"다, 당신은..."
"34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 괜찮으십니까?! 몸이 좋아보이지 않습니다만..."
"무슨 일로... 대기실에?"
"아키즈키 씨에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먼저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으니 호시이 씨를 부탁한다고."
"리츠코가...?"
이 사람에게 미키를 맡겨놓고 떠난 거야? 언제나 남자는 조심하라고 했으면서. 걱정된다고 언제나 같이 가 줬으면서! 이제는... 미키가 정말 싫어진거구나. ...아핫, 알았어.
"택시를 불러 드리겠ㅅ..." 폿파ㅍ
"...아니, 된 거야. 미키 혼자 갈 수 있는걸." 벌떡
"네?"
"미키 혼자 갈 수 있다는거야."
"이 밤길에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합니ㄷ..."
"됐다니까!!" 버럭
"...그렇, 습니까. 알겠습니다. 아키즈키 씨에겐 그렇게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
"..." 저벅저벅
"..."
저벅저벅
"...윽." 글썽
미안해요. 이런 기분 나쁜 미키라서, 미안해요.
"흐으, 으..." 주륵주륵
그래도, 정말 좋아했어요. 아마, 지금도.
"아아, 아, 아아아..."
미키는, 리츠코를 사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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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
...엄청 울어버려서 이 상태로는 집에 갈 수 없게 된 거야. 눈이 팅팅 부은 미키를 수상하게 봐 주지 않을 사람은, 미키가 아는 한 카모 선생님 밖에 없는거야.
"꽤액-" 안녕
"...안녕인거야." 흔들흔들
역시. 얼굴이 왜 그러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사람은 카모 선생님밖에 없는 거야! 미키가 제일 마음놓고 얘기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최근에 한 사람을 잃어버렸지만.
"...므으,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팡팡
"꽥-" 왜 그래
여기까지 와서 슬픈 생각은 금지인 거야! ...라곤 하지만 금지라는 생각을 하면 바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거야. ...잘 생각해보니, 장소를 틀렸을지도? 미키는 정말 바보인거야.
"..."
"...꽤-액" 무슨 일 있냐
여기는, 미키가 다시 한 번, 그 사람과 약속했던 장소.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느껴본 곳도, 이 근처. 그리고... 미키의 결의를, 그 사람이 들어준 곳.
"...윽." 글썽
"꽥-" 야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들인데. 그토록 행복한 기억인데... 가슴이 아파. 너무나도 따뜻한 기억이라서, 더욱 아파와...
"으우..." 추욱
"...꽤액" 울지 마
이거 봐,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 거야. 미키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미키가 제일 괴로운 장소가 되다니. 정말 리츠코는 죄가 많은 여자인거야. ...죄질로는 미키가 더 나쁠지도.
"~~!" 벨소리
"므으... 응?"
...이 시간에 전화? 올 데가 없는데. ...미키 목소리, 티 안 나겠지? 미키가 실컷 울어버린 티가 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만 하다가 미키는 발신자가 누군지도 보지 않고 전화를 받아버렸어.
"흠, 흠..." 헛기침
딸칵
"...여보세요?"
페스 편 - 미키 Sid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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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가 채택됐으므로 아쉽게도 페스 편의 리츠코 Side는 없습니다!
슬슬 이 창댓에 끝이 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몇 번 째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엔 리얼입니다. 제 아무리 작가가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는 빠가사리라지만, 그 이상 이어갈 껀덕지도 없습니다! 작가적으론 꽤나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든 될 겁니다! 이번 앵커도 길어질 거에요! 이번엔 작가 휴식 목적으로 소소한 앵커가 가끔 있을수도 있지만요?
그 인간... 아니, 인간 같지도 않은 그 개자식은 떠났다. 끝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채로.
"..." 까득
저항... 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승산은 0%. 모든 걸 짓밟히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그 딴걸 계산하고 있었다. 그 자식... 쿠로이 사장은 100%가 아니면 승부를 걸어오지 않는다. 이토록 늦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런 철저한 점은 본받을 만도 하나... 일단 인간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스윽
그런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에서도, 그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게 만든 건, 그 아이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하다못해 자존심을 버리려 들진 않았을 테지. 나는 짓밟히지만, 그 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근데 그 개만도 못한 자식이, 내 스스로 적당히 짓이겨놓으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다.
"..."
이런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분명 나에게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 줄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나는 저항 할 수 없었다. 원래 같으면 이 시간에 갑자기 전화로 일방적 통보를 하진 않을 테니까. 그래야 할 정도로 나는 절박했으니까.
"..." 저벅저벅
그래, 나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던거다. 그런 건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내 생각은 너무나도 안일했다. 내 행동을 조심한다고 꼬투리가 안 잡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다만 이런 쓸 데 없는 생각들은 당장 닥쳐올 미래의 두려움 앞에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큭." 글썽
나는, 내 스스로. 그 아이를 위해서도.
"..." 까드득
그 아이를, 부숴버려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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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랜만] 이에요, 여러분. 어제 갱신을 못 했네요! 게을러 터져서 큰 일입니다. 쓸 게 많은데, 할 것도 많네요. 하하하.
오랜만에 노래방 갔다 왔습니다. 추가된 곡들과 함께 열심히 소릴 질렀죠. 목 아파요. 음 올라가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만... 목이 좀 비실해서 그 상태가 오래 가진 않습니다. 체력 저-질...
잡담이 본문보다 긴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근데 작가 본인이 원래 잡담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자제는 하고 있습니다만, 이해해 주십쇼.
그렇게 혼란스러운 발걸음으로 닿은 곳은, 언제나의 그 공원이었다. 이름도 모른단 말인가, 의외의 사실에 절로 실소가 지어질 만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에 웃을 기분이 아니다.
"..."
정신이 없다. 그냥 멍- 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꿈 같은 감각이다. 현실 감각이 안 느껴져,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래, 나는 도피를 하고 있는 거구나. 그 생각에 먹은 것도 없는데 토가 쏠려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지금 잘못 찾아온 거다.
"..."
몸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어쩜 그 어디보다 그 아이가 있을 것만 같은 장소를 골라 향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나는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러 왔을지도 모른다. 너는 할 만큼 했어, 같은 말이라도 들으러 왔단 말인가. 결국 나도 사람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인지.
"..."
조금 으슬한 밤 공원을 걷는다. 이미 햇빛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의 달빛을 감추려는 듯 구름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꽤나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달이 숨어든 것인가, 구름이 감추려 드는 것인가. 피식, 하고 실소가 나오는 걸 보면 나는 그 답을 아는 것 같다. 아직은 가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늦가을도 이런 늦가을이 없구나. 그런 생각에, 다시 한 번 피식, 하고.
"..."
나는 정말 비겁한 여자구나, 리츠코. 쓸 데 없는 생각마저도 지금은 이토록 소중히 여기다니. 내 혼잣말에 대답까지 벌써 생각해버렸다. 난 비겁한 여자라기보단, 나약한 여자였던거야. ...리츠코. 너만은 나를 좀 용서해주지 않을래? 네 몫의 증오까지도, 전부.
예상치 못한 만남에 솔직히 좀 당황했지만... 오히려 더 당황하고 있는 쪽은 미키 쪽인 것 같다. 그렇다면, 티를 내지 않으면 그만.
"저, 저기... 전화, 받은 거야. 코토리에게..."
"..."
"사, 사실인거야?" 글썽
...일단 당황. 대화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겠네. 대화에 주도권을 잡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감스럽게도 매우 잘 알고 있다. 다만 적당히 해야 한다는 내 개인적인 주문이 붙으니까 조금 약하게 나갈 생각이다. ...생각보다 머리는 차가운 편이구나, 나.
"어, 맞아. 사실인데."
"...어째서? 무슨 이유로?!" 글썽
"무슨 이유냐니... 글쎄다, 나도 생각은 안 해 봤는데."
"거짓말, 거짓말인거야! 내가 아는 리츠코는 생각 없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음... 이런 걸 본인 앞에서 말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그만. 너 날 의외로 잘 아는구나? 바보 주제에."
"...미키는 바보가 아니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주륵주륵
벌써부터 심장이 저린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니 나 부터 위기가 온다. 머리가 차가우면 뭐 해. 결국 행동에 옮기는 건 몸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잊어버린 것 같다. 빨리 끝내야 한다. 욱신거리는 고동 소리를 죽이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제대로 말 해줄 테니까 알아서 귀 파고 잘 들어. 말하기 그렇지만... 네가 모른다고 하면 나도 별 수 없지. 어쩌겠니." 하아
"리츠코, 씨..." 털썩 주륵주륵
"..." 주춤
안 돼, 깨질 것만 같다. 나는 말 할 수 있을까? 거짓된 험담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괴롭게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가지는 파괴력을 온 몸으로 기억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힘든 임무였던가? 결정적일 때 흔들리는 건 변하지 않았구나, 리츠코. 하지만... 지금 흔들리면, 미키는... 내 선에서 끝내야 해. 설령...
그게 아무리, 더러운 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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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네가 짜증나서 얼굴도 보기 싫어. 굳이 이런 걸 구질구질하게 내 입으로 말해야겠니?
2. 잘 들어, 나는 네 프로듀서 따위 하기 싫어. 친한 척 좀 해 주니까 기분 좋디? 하, 바보같기는...
3. 잘 들어, 난 옛날부터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내가 어디 절에 불상도 아니고, 난 네가 그 때 했던 같잖은 말들로 경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네가 싫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른 채, 어떻게든 힘겹게 입을 떼려던 찰나, 다시금 입을 다물게 만든 건 미키였다.
"으흑, 흑... 으아아앙..."
"..." 주춤
뭔가 이상했다. 벌써부터 주저앉아버리고는 세상이 다 끝나기라도 한 듯 그 아이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 우는 얼굴도 마찬가지라는듯 나는 잠시 비틀거렸다. 이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완전히 뒷전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그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기 전 까지 나는 무언가 생각했다.
"...미안, 해요... 이런 이상한 아이라서..." 주륵주륵
"윽..."
이 무슨 일인가. 이 아이는 무언가 확신한 듯 분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이 아이는 무언가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 머린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지? 내가 프로듀서를 그만두는 이유였지. ...그렇다면 이 아이는 뭔가 그 이유를 확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다만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 앞에 사고가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동안... 감사했습, 니다... 흣, 미키를... 프로듀스, 해 줘서..." 주륵주륵
"..." 윽
그 아이의 말이 글자단위로 내 귀를 찔러들어왔다. 순간 순간에 다가오는, 그 특유의 솔직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견뎌내기 힘든 순간이었다. 마치 저항하려는 듯 내 몸이 되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잘 들어! 나는 너를 프로듀스하게 된 그 순간부터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네가 지껄이던 그 같잖은 말들이 얼마나 내 속을 긁어댔는지 알아?! 너나 잘 하세요, 하려는 걸 몇 번이나 억눌렀는지!"
"히끅..." 주륵주륵
"하, 그래도 놀라울 정도야... 네가 나에게 감사라는 걸 할 줄도 알고. 이거 괜히 뿌듯해지네. 물론 그런다고 네가 맘에 들 리는 없으니 괜히 좋아하진 말고. 알았지?"
"..."
"이야... 그래도 이렇게 그만두게 되니까 속이 후련하다, 야! 이젠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네 얼굴 따위 안 봐도 되니까 말이야!" 푸하하하
...거의 처음으로 내가 역겹다고 생각했다. 칭찬 한 마디 해 주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하던 주제에, 마음에도 없는 악담을 하는 건 이렇게나 쉽게 한단 말인가? 처음이 어려웠을 뿐이었나, 아직도 입이 멈추지 않았다.
"..." 주륵주륵
"뭐, 다음에 올 사람이랑 잘 해보렴! 어차피 너도 나 같은 꼰대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아니야."
"후우, 할 말도 다 했고... 그럼 난 이만." 홱
무언가 말하려는 그 아이에게서 나는 벗어나야했다. 이 이상 오래 있다가는 내가 견딜 수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 나약한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이 여자는 그렇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도 무시한 채, 그렇게 걸었다.
일단 시간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니까 까먹을 뻔했네. 지금이 몇 신지는 알아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지금 시간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원이 켜진다. 그러고보니 충전기 안 갖고 왔는데, 아껴 써야겠네. 일단 현재 시각, 1시 27분임을 이 녀석은 나에게 알려드렸다. 이런, 나 치곤 더럽게도 오래 잤네. 끌끌...
"문자랑, 부재중 전화?"
부재중 전화만 몇 십 통에, 문자는 그것보다 더 왔다. 아마도, 대부분은 내가 아는 번호들이겠지. 지금 보려면 위장이 아파질 것 같으니 그만둬야겠다.
"일단 좀 씻고 생각할까..."
일단 시간은 많으니까. 백수가 됐으니까 말이지. 뭔가 해방감이 들지 않는 것은, 죄책감이 전력으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런 것을 언제나 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이거 눈 앞에 정신병원이 보이는 것 같다. ...시시콜콜한 생각을 할 수는 있을 만큼은 회복했다, 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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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요즘 호텔들은 시설이 좋네. 화장품 같은 것도 기본적인 거라면 구비되어 있는 걸 보니 꽤나 쓸만해보인다. 기초 화장품 정도는 들고 다니니까 문제가 없겠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내 짐 회사에 다 두고 나왔다. 당장 하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 할 거래서 전화로 통보를 해 대는 바람에... 젠장!
"하아..." 지끈
내가 거기 짐을 뭐 두고 왔더라? 일단 노트북에... 일하던 서류들은 중요하지 않고... 화장품들도 거기 있고... 그리고... 딱히 걸릴 만한 물건은 없지? 오케이, 일단 노트북이 거기 있는 것 빼면 당장엔 괜찮겠지. 물론, 내 숙주인 지갑이 곧 있으면 저체중에 시달리겠지만... 아, 몰라. 일단 그런 건 머리아프니까 생각하지 말자.
"좋아, 일단 뭐라도 먹도록 할까."
옷을 챙겨입는 이유는 그거였다. 아쉽게도 호텔은 냉장고에 냉동식품 한 개도 넣어주지 않았으니까. 문자도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한 것 보면 그 아이들도 자기 스케쥴 때문에 바쁘겠지? 좋아.
그리하여 오게 된 곳은 시내의 레스토랑이었다. 백수가 된 주제에, 오늘은 뭔가 맛있는게 먹고 싶었다고 말해두도록 할까. 죄인의 입장이라지만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은 거니까. ...내 지갑의 무게도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비프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후후, 이왕 사치를 부리기로 한거 한 번 아키즈키 스케일 내에서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이 가게에서 꽤 비싼 편에 든다. 피자 같은 거 빼면 1인분으로는 아주 비싸지. 아키즈키 스케일 안에서는 아주 파격적인 1인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주문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시간이 매우 비게 된다. 이제 뭘 해야하나, 생각하게 되는 건 누구라도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한다. 하필 혼자 와서 더욱 허전한 감이 드는데.
"...!"
그러고보니 오늘은 마왕 엔젤과 신칸소녀의 페스 날 아닌가. 세간에서 굉장히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지. 저번 전야제 무대에서 마왕 엔젤이 굉장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과연 치열한 싸움일지는 의문. 두 팬덤의 규모는 거의 비슷한 레벨이고... 무대만 생각했을 땐 신칸소녀의 승리를 점쳐본다. 전야제에서 꽤 좋은 무대를 보여준 그녀들이니까.
"..."
역시 이 소재로는 오래 가지 않는구나, 새삼 느꼈다. 꿰고 있는 것은 생각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건가? 결국 남는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일 뿐. 그런 고로 한 번 고개를 두리번거려본다.
'사람이 많네...' 두리번두리번
분명 점심 시간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시간대이지만... 그 때를 노려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아도 시끌시끌할 만큼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거야 원, 여기서 765 애들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은 되려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주문하신 비프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 길었던 시간이 끝을 고하는 건 점점 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게 되던 때였다. 좋아, 일단 왔으니 먹어보도록 할까. 그렇게 두툼한 고기를 먼저 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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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팠을까. 맛은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내 지갑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까? 좀 더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후우우우..."
배가 꽤 든든하게 찼다. 조금 소화도 시킬 겸 느긋한 휴식 타임. 꽤나 달콤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주위를 보면 꽤나 조용해졌다. 내가 원래 먹는 게 좀 느리긴 하지만... 많이도 빠져나갔구나.
"..."
잠시 눈을 감고 이 시간을 즐긴다. 쩔그럭거리는 식기 소리에 마음이 안정되는 시간. 이 식당도 슬슬 소강상태겠지. 자아, 그럼 슬슬 가 볼까...
밥도 다 먹었다. 딱히 더 할 게 남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다. 다만 아무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던 지라 집에 그냥 들어가긴 솔직히 좀 그렇다. 사실 집에 당연히 765 프로덕션에서 어떤 형태로든 내 소식을 알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녀왔습니다." 라고 제대로 말 할 자신이 없었기에 체크아웃도 안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호텔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거다. 부재중 전화나 메일의 일부는 분명 그 쪽에서도 분명 도착을 했겠지? 일단 돌아가서 생각하자, 고 어린애같이 뒤로 미뤄버리고 말았다. 내심 두려운 건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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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서도 딱히 무언가를 확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게 그저 폰을 만지작거리는 정도에서 내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솔직히 막막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은 이런 건가. 분명 그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나를 채찍질했을것이다. 근데 지금의 나는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져버렸다. 그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다. 그저 나는 나의 행동으로 무언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면, 행동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적어도 나의 상상은 그런 정적이고 따분하고도 비참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
그 때였다. 휴대폰의 벨 소리가 내 귀를 찔러온건. 보지 않겠다면, 보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가. 일단 먼저 확인한 것은 당연히 발신자의 이름. 시원치 못한 벨소리에 미간을 찌푸려버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건가. 아니면 또 누가 나를 협박해오려고 하는 것인가? 오히려 발신자명을 알 수가 없으니 더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시간은 많이 없었다. 나는 아무거나 해야 했다.
"...여보세요?"
결국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했던 건 지금 나의 처지였다. 누가 전화를 해 오던 딱히 나은 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아는 사람의 전화였다면 꽤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 아는 사람에게 괴롭게 시선을 피하게 되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위, 어제는 잘 되었나?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데도 받질 않더군. 또 칠칠맞은 짓거리라도 하고 다녔던 거냐?"
"...술을 좀 마셨던 것 같더라고요."
"흥... 단번에 폐인이 된 건가? 정말 바보같은 년이 따로 없다, 고 말하고 싶지만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니니까 이 쯤 하도록 하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던 겁니까..."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질문에 대답하도록. 호시이 미키랑은 만났나?"
"...예,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꽤나 건방진 말투로군... 나머지는 지켜보면 된다, 는 건가?"
"..."
"좋다. 전화는 이 쯤 하도록 하지. 혹여나 네 녀석이 쓸 데 없는 짓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되겠군. 역시 삼류는 뭘 하든 삼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크후후훗..."
"..."
뚜- 뚜-
할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은 건가... 정말 짜증나는 작자라니까. 텅 빈 머릿속에 조금씩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저렇게나 짜증나는 녀석이지만, 지금만큼은 조금 고마울 정도로 반가운 분노였다.
"시비 걸러 온 거 맞잖아, 이 개새끼야..." 빠직
"그래도... 일단 감사하다고 해 둘까요."
"덕분에..."
그래, 나에겐 지켜야 할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 나에겐...
그렇게 발악한 것 치고는 발이 꽤 빨리 움직였다. 막상 하고 보니까 그렇게 싫지 않았다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나쁜 것은 아니겠지. 실없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거의 다 왔네."
멀리 가진 않았다. 애초에 호텔에 들어간 것 부터가 굉장히 충동적인 일이었으니까. 혹시나 다른 애들이 집에 찾아오진 않았을까... 싶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는 않아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으, 음..."
현관 문 앞에 서자 굉장한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다는 것과 다니던 회사에서 왔을 연락이 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제길, 차라리 연락이라도 안 왔으면 조금 나았을텐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도망가진 않는다. 아키즈키의 이름을 걸 일 까지는 아니지만, 내 이름 정도는 걸어도 좋으려나. 나름대로 해 온 말들이 있으므로 체면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현관 번호키를 천천히 눌렀고, 문이 열렸다. 소리가 들렸을까. 문 너머에 엄마가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무 말도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을까. 어제부터의 죄악감에 조금 몸이 떨린다. 그런 나를...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눕는다.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 게 문제. 나는 최대한 답변이 빨리 오길 바랬다. 만약 그 쪽에서 답변을 무시한다면 나에겐 답이 없다. 어서 새 직장을 구하는 수밖엔.
"..."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능성의 저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는 쿠로이 사장을 잡을 수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나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흘려들을 그 가능성이라도 잡아야 할 만큼 나는 절실했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 동아줄이나 잡은 것은 아니라는 합리화가 지금 필요한 것이다.
"..." 버둥
일단 그 사람은 척 보기에 나쁜 사람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면 분명 도와줄 사람인 것 같았다는 말이지. 실제로도 쿠로이 사장의 도발을 대신 막아준 전례가 있으니까 분명 아무 답변이나 줄 것 같다. 아무 답변이라도 와야 내가 안심할 수 있겠지. 쓸 데 없는 불안감에 몸을 뒤척이던 그 때였다.
"~!" 띠링
"!" 홱 탁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연락처는 내가 문자를 보냈던 그 연락처. 드디어 답변이 왔구나! 말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꽤나 흥분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메세지를 열었다. 메세지의 내용은 이랬다.
'바빠서 답신이 늦었습니다. 아키즈키 프로듀서, 도와달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좀 더 자세히 썼어야 했나?"
아무래도 너무 뭉뚱그려서 말했던 것 같다. 글로 쓰면 길어질 것 같으니까...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우선 말로 하고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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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4 신작 봤어요? 릿쨩이 저렇게 예쁩니다. 아 살아있길 매우 잘했습니다. 사진 참 잘도 찍었어요. 아 예뻐라 귀여워라 히이잏 히잏 하루룽도 예쁘고 귀엽습니다 이런 반다이남코 게임즈같으니라고 앞으로 반 년간은 더 싸울 수 있겠어요 어휴 예쁘다 귀엽다 감사합니다아아 역시 살아 숨쉬며 예쁜 애들 보는게 최곱니다 삶은 그런거야 히이이이이잏 오랜만에 좀치였네요 최고야아아 하루룽 리얼 리본 릿쨩 리얼 안경 아아 플4신작 최고야아아아
다만 역시 3D 로는 각선미의 그 위대함을 살릴 순 없네요. 예쁘고 귀여운걸로 충분히 만족하지만요. 후우...
일단은 그렇다? 그런 확실하지 않은 대답은 반갑지 않았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는 아니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와준다는 사람을 괜히 같이 휘말리게 할까봐 겁나기도 하고... 이기적이게도 내가 여기서 더 잘못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안 들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결국 더 파고드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은 그렇다고요? 확실히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자세한 건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명탐정 코난도 아니고 밀당은 별로 환영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걸 따질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답답해도, 일단은 이 배를 타고 봐야한다는 것. 나는 내 분수를 알아야 했다. 그것이 어떻게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테니까.
"오늘 있을 신칸 소녀와 마왕 엔젤의 페스... 누가 이길 것으로 보십니까?"
"...그건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ㅇ..."
"그럼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장소는 따로 메세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잠깐ㅁ..."
거기서 전화는 끊겼다. 안심되기는 커녕 되려 궁금해져서 몸이 근질거린다. 그 사람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그 말대로 하는 수 밖에 없나, 짜증을 섞어 중얼거렸다.
"...칫."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라고 누가 그랬던가. 불안감은 되려 오기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변했다. 그래도 불안에 몸을 떠는 것 보다는 낫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먹은 밥은 언제나 똑같은 맛이었다. 하긴 하루 안 먹은건데 당장에 맛이 변하거나 할 리가 없지. 아빠도 돌아오셔서 인사드렸다. 내 딸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정도의 태평한 반응을 보이셔서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진짜로 편하고 말고는 양심 차원의 문제지만, 내 마음이 진짜로 편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이 문제와 제대로 맞닥뜨려야 한다. 슬슬 페스는 진행중이려나? 인터넷 TV로 일단은 나도 지켜보고 있었다.
"..."
페스의 유형은 두 가지다. 두 무대에서 동시에 공연을 하든가, 한 무대에서 순차적으로 나오던가. 보통 무대를 빌리는 일 자체가 매우 비싸므로 대부분은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만약 두 무대를 빌린다면, 그건 정말 그 만큼의 수익성이 보장되는 무대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지금 서로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이 두 유닛이라던가.
"흐-음..."
이 두 팬덤은 서로 극성팬들로 악명이 높다. 각자 기행을 겨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위로 피 터지게 싸우고는 한다. 분명 이번 페스의 세일즈 포인트는 그 부분이겠지... 랄까 그 두 팬클럽이 한 무대 관중석에 앉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나에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말했었지, 누가 이길 것 같냐고. 포인트는 그건가... 그러니까 사실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진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
생각해본다. 쿠로이 사장과 이 페스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런 답변이 나오는 일 자체가 꽤나 뜬금없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뒤가 구린 놈은 뒤를 봐야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또 미묘하다. 일단 앞은 꽤나 청결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규모의 프로덕션 사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괜히 짜증난다.
"으음..."
아마 일단은 그렇다고 한 것은, 이 페스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결국 이 승패 여부에 가능성이 걸린 것인데...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이겨야 되는 거지...?"
분명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긴다. 그것에 모든 것이 걸려있을 것이다. 누가 이겨야하고, 누가 이기면 안 되는가.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보통 승패를 예측할 때, 가능성을 재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능성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 없는 가능성은 그저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히 업계 종사자의 시선으로 생각해 보자. 이길 가능성이 높은 쪽은 어디인가?
"신칸소녀..."
이번 전야제에서,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이며 안 그래도 치솟아있던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신칸 소녀. 세간의 인식에도 꽤 변화가 있었겠지. 대중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페스의 특성상 신칸소녀에게 유리할 것은 당연한 일. 가능성의 천칭이 조금 기울었다.
"마왕 엔젤은..."
반면 상대인 마왕 엔젤은 이번 전야제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여태껏 잘 해온 만큼 비난의 강도는 조금 더 강하기까지 했다. 9번 잘 하다가도 1번 못하면 욕을 먹는 세상이라고들 하던가, 일단은 그런 꼴이다. ...최근에 미묘하게 하락세였기는 했기에 요즘은 꽤 미묘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
이런 상황이라면 답은 뻔하다. 나는 신칸소녀의 승리를 점쳤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다소 귀납법적인 추리이기는 하지만. 비유하자면 이제껏 아침엔 태양이 떴으니 내일 아침에도 태양이 뜰 것이다, 라는 미묘한 논리다. 애매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꽤 쓸만한 논법이기도.
"..."
조금 이야기가 샜다. 일단 신칸소녀가 이길 확률이 조금 더 높아보인다. 직접 무대를 보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약간 주춤한 마왕 엔젤,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칸소녀... 일단 답이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원 주제로 돌아가보자. 누가 이겨야 나에게 득이 될까?
"끙..."
이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신칸 소녀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게 나에게 호재일 수는 없다. 누가 이겨야 하는가? 여기서 다시 쿠로이 사장 이야기로 넘어가보기로 했다.
"..." 긁적
...일단 쿠로이 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볼까. 일단 내가 협박을 당한 이유는 유력한 라이벌을 제거하겠다는 명분과 개인적인 적대심. 개인 감정으로 이렇게까지 해 왔다는 말이다. 그럼 그가 그렇게까지 해 가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쥬피터의 대상 쟁취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누가 이기는게 이득인가?
"아...!"
상승세인 신칸소녀가 져야 이득이다. 그녀들이 승승장구하며 쥬피터 앞에 나타나면, 절대 100프로가 아니다. 그는 확실한 승리를 원하고, 신칸소녀는 확실한 승리를 방해할 확실한 장애물이다. 하락세인 마왕 엔젤을 밀어줘야 쿠로이 사장 입장에선 이득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페스는, 마왕 엔젤이 이겨야 한다. 그래야 내 생각에 맞아 떨어진다. 그 사람이 한 말은 이런 말이었나. 그렇다면 나는 지켜볼 뿐이다.
결국 나는 일단 한 숨 덜었다. 내 예상대로 신칸소녀는 졌다. 덕분에 인터넷이 아주 뜨겁다.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지만 딱히 건질만한 건 없다. 건질 게 있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석연찮은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지금의 이 사실을 믿어야 했다. 신칸소녀는 졌고, 마왕 엔젤은 이겼다. 이것만이 사실일 뿐.
실제로도 안 왔다. 덕분에 오후까지 퍼질러 잤지만, 상관 없으려나. 애초에 약속 시간은 저녁 즈음에 비워두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여유는 있었다. 다만 뭐라고 해야하나, 평소 해오던 대로 하지 않으면 조금 갑갑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메세지가 오지 않았었다. 이 사람은 정말 바쁜 사람인가보다. 하긴 신데렐라 걸즈 총괄이라고 들었다. 아마도 치프? 정도 위치에 있겠지. 당연히 바쁠 것이다.
"..."
뒤늦게 일어나서 씨리얼을 그릇에 털어넣는다. 막 일어난 뒤엔 먹을 게 잘 안넘어간다. 간단히 먹는것에 훌륭히 길들여져 버린 거다. 내 위장은 언제나 내가 일어나고 몇 시간 뒤 즈음에나 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주 팔자도 좋구만, 조금 부럽다.
"..." 우물우물
이제 생각해보니 딱히 할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일찍 일어난 편인 거다. 언제 약속이 잡힐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한참 뒤라는 것 만큼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시침이 둔해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숟가락의 움직임도 같이 둔해져버릴 것 같다.
"딸~ 혹시 어디 나가니~?"
"아... 지금 당장은 딱히 안 나가요." 우물
"나중에는 나가니?"
"아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우물
"그럼 그거 먹고 심부름 좀 시켜도 되겠니~?"
심부름인가. 생각해보면 입사하고 나서는 일이 너무 많았어서 집안일은 거들어드린 적이 없다.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저녁 즈음이 되서야 문자가 왔었다. 아무래도 저녁은 무리였댄다. 결국 그리하야 약속 시간은 오후 11시를 넘겼다. 결국 야밤에 만나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 동안의 시간을 보내느라 애 좀 먹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 잠시 소름이 돋는다. 다신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시간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꾸벅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만난 건 어딘가의 공원이었다. 아마도 이 근처에 346 프로덕션 본사가 있겠지. 이 사람도 일단은 야근인걸까. 조금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이 바닥 하는 짓은 거의 다 똑같구나, 하고.
"...안내하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대화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일단은 따라가는 수 밖에 없겠지. 346 프로덕션에 가볼 기회가 이런 식으로 생길 줄은 솔직히 몰랐다. 별로 기분 좋은 이유는 아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다신 이렇게 대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
"그래서 말이지, 미키는 지금 아-주 기뻐. 얼굴을 맞대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정말 기쁜거야."
"...어제 부재중 전화가 몇십통이나 왔었는데, 미키 네 건 없더라. 전화하고 싶었으면 전화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물어봤지만 정말 뻔뻔한 질문이었다. 미키를 그토록 떨쳐냈던 건 누구인가. 자의는 아니었을지라도 고의로 그랬음은 분명했는데. 난 도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고 있는 걸까. 수화기 너머로 미키는 대답해주었다.
"으응... 그저 리츠코, 씨가 미키를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그랬을 뿐이야. 싫어할 짓은 하지 말라고 배웠으니까. 미키는 리츠코, 씨를... 어라?"
"..."
"리츠코, 씨... 우는 거야?"
"미안... 미,안... 해... 큽, 흐윽, 크흡..." 주륵주륵
이런 기특한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얼마나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또 뻔뻔히 말을 섞고 있단 말인가. 터질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배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미키는 말이지, 리츠코 씨를 정-말 좋아하는 거야. 이제는 너무 커져서, 싫다는 소릴 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리츠코 씨가 싫다고 하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로 미키는 리츠코 씨에게 좋은 기억만 주고 싶은 거야."
"..."
"그러니까, 울지 말아달라는 거야."
"리츠코 씨가 울면... 미키는 마음이 아파..."
"미, 키..."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자면... 너무 기특해서 오히려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도 오히려 더 눈물샘을 자극당한 것 같아, 감정이 더 격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보이지는 않지만...
"미안... 오히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므우...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바보야, 기뻐서 흐르는 눈물은 원래 멈출 수 없는 거라고..."
"...아핫, 뭐야 그게."
...미키는 웃어주고 있을 것 같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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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우느라 급기야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 미키에게 꽤나 걱정을 시킨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좀 진정하셨습니까?"
"네에..." 추욱
내가 너무 주변을 보지 못했다. 이 사람 앞에서 굉장히 열심히도 울었으니 당황스럽기도 한 반면 통화 내용이 뭐였는지 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절대 비밀이지만.
"그러면... 이제 동료 분들과 이야기를?"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야죠."
저들이 안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프로듀서로 복귀할 수 있으려면 쿠로이 사장 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여자 아이돌로 활동 중인 사촌 동생이 사실 남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날엔 그 아이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거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므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
일단 알게된 건, 녹음의 존재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수확이지만... 쿠로이 사장이 녹음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적어도 녹음이 날조된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뒀을수도 있다. 언론에 제보하기엔 협박당했다는 사실보다도 여장 아이돌에 대한 진위 여부에 관심이 더 쏠릴 것이다. 그럼 이유들로 이걸 사용하는 건 조금 힘들지 싶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쿠로이 사장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게 필요한데..."
"...제 생각입니다만, 쥬피터를 이용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쥬피터요?"
"961 프로덕션에서 노미네이트 된 대상 후보잖습니까. 그들이 기권을 선언하면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지 않겠습니까?"
제법 그럴싸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쿠로이 사장의 목표가 IA 대상 쟁취라는 걸 생각하면 꽤 일리 있는 생각이다. 다만 우리의 말을 들어줄지 어떨지는 오히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증거만 있다면... 분명 기꺼이 도와주겠지. 머릿속에서 결론이 나자 먼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럼 쥬피터랑은 어떻게 접촉을 해야..."
"...저도 스케쥴은 잘 모릅니다. 한 번 사장님에게 여쭤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장님이라고 아실 리는 없다. 다만 우리 둘 다 모른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 봐야 할 일이었기에 일단은 사장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오, 아키즈키 양인가. 무슨 일로 전화를?"
"사장님, 혹시 쥬피터랑 연락을 해 볼순 없을까요?"
"쥬피터 말인가? 무슨 일로 그들을..."
나는 사장님에게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다 알려드렸다. 조금 힘든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녹음을 활용하는 방법보다는 조금 더 확실하다는 것. 사장님은 어느 정도 수긍해주셨다.
"과연, 쿠로이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는 겐가."
"가능할까요? 저로서는 방법이..."
"으으음..."
사장님은 조금 생각하는 듯 하시더니, 대답하셨다.
"...알겠네, 한 번 알아보지."
"엣, 가능하세요?"
"어떨지는 모르네만... 일단 가능한 한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꺼이 협력하는 수밖에."
"...감사합니다!"
놀랐다. 솔직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타 프로덕션 아이돌과의 접촉이라니,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 결국 이젠 사장님을 믿어볼 뿐이다.
그로부터 조금 지난 뒤에,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쥬피터랑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과 함께, 미키를 비롯한 765 프로덕션 전원이 힘을 써 주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나 복 받은 사람이었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하야 쥬피터를 직접 만나는 건 내가 되었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내가 하는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사장님에게 메일로 녹음 파일도 전송받았으니, 그들에게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 어디인데..." 두리번
약속을 먼저 제안해 온 건, 765 프로덕션과 먼저 접촉했을 쥬피터 쪽이었다. 토우마가 대표로 온다는 말과 함께 그들이 제안한 장소는 조금 한적한 카페였다. 하기야, 유명인인 그들이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소를 꺼리는 건 필연이겠지.
"...여기다, 아키즈키."
"아, 안녕하세요, 아마가세 씨."
"토우마로 됐어.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생각이야."
"뭐 어때요."
카페의 바깥 자리에 앉는다. 조금씩 날씨는 추워져가지만, 가끔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으니까 말이지.
"그 녀석에게 들었다, 짤렸다면서."
"어쩌다보니 말이죠."
"...서로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나로서도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토우마는 바쁜 몸이고... 나는 급한 몸이니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이렇게나 맞아 떨어지기도 힘들거다.
"보여줘 봐... 그 증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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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자식. 뒤에서 이딴 짓거릴..." 쾅
"..." 질끈
다시 들어도 굉장히 거북하다. 되도록이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걸. 그런 내 기분과는 별개로 토우마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 했다.
"이거... 사실이냐?"
"..."
"...네 표정을 봐서는 사실인 것 같군. 대신 사과하고 싶어. 미안하게 됐다."
"아뇨,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 괜찮아요."
내 말에 토우마는 아니라고 단박에 부정했다. 그는 아무래도 짐작가는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난 어느정도 낌새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내 잘못이 없는 건 아냐." 지끈
"..."
"나도 시간이 없으니까 오래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 말할게."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토우마는 말했다.
"개인 연락처를 줄게. 당신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협력하겠어. 그 아저씨에게 한 방 먹여주라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역시 내가 봤던 그대로의 사람이었네요." 싱긋
"...착각하지 말라고. 난 별로 선량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저... 아저씨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이야."
"네, 네. 그런 걸로 해 둘게요."
잠깐 올려다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빛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상쾌해지는 기분. 순간이나마 지금의 기분은 그랬다. 일단은 순풍을 타고 있다는 게 맞겠지? 조금은 웃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난 슬슬 가 봐야겠다. 다음 스케쥴이 있으니까 말이지. 네 번호 불러. 문자 보내줄테니."
"네, 제 번호는..."
그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연락처에 번호를 기입해 넣는다. 의외로 연락처가 깔끔한 걸 보아 꽤나 철저히 개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요."
"그래. ...먼저 간다, 수고해라."
"네, 수고하세요."
"아, 그리고..."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등을 돌린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절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대사를 속삭였다.
역시 미키는 이 곳이 아닐까. 미키를 데리고 찾아온 곳은 언제나 가던 주먹밥집이었다. 미키야 언제나 주먹밥을 사랑하는 것 같고. 큰 문제는 없는 듯 했다.
"뭔가 오랜만인거야!"
"뭐... 최근 바쁠 것도 같았고."
"그건 그런거야. 실제로 아-주 바쁘니까 올 일이 없었던거야!"
"흐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오프를 만들기 위해서, 765의 모두가 얼마나 수고해주었을까. 프로듀서도, 코토리 씨도, 사장님도. 나를 위해서. 정말로 이렇게 운 좋은 여자는 드물지 않을까. 괜시리 몇 번이고 느끼는, 감사하다는 감정.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미안하다는 감정. 미묘한 두 감정이 교차한다.
"리츠코, 씨는 뭐 먹을거야?"
"아... 음, 무난하게 불고기 같은걸로 할까나?"
"알겠는거야."
미키는 이미 정한 모양이다. 뭐, 여긴 거의 저 아이의 홈 그라운드 같은 곳이니까. 정하는 것도, 먹는 것도 매우 빠르다. 사실 먹는 건 주먹밥이니까 느리기도 쉽진 않지만.
"므음...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한 표정인거야."
"? 나?"
"당연히 리츠코, 씨인거야. 여기 그 외엔 아무도 없잖아?"
"고민이라니... 내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나?"
"..." 부우
미키의 시선이 따갑다. 아무래도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걸까나.
"리츠코, 씨. 거짓말은 하지 않는 거야." 째릿
"엣...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지..." 긁적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로도 좋은 거야."
무슨 생각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미키가 의심할 정도로 표정 관리가 안 됐던 화제가 딱히 있던가?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슨 생각을 했을 지는 한 가지 뿐이었다.
"그냥... 지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거."
"무슨 의미인거야?"
"당연히 알겠지만... 너 엄청 바쁘잖아."
일단 IA 대상에 노미네이트 된 미키다. 그런 아이돌인 미키가 쥬피터, 마왕 엔젤, 신칸소녀처럼 바쁠 것은 당연하겠지. 이 잠시의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말 안해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네가... 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케쥴을 열심히 고쳤을 거 아냐?"
"그랬던거야. 프로듀서가 꽤 수고해줬는데."
"그래서 말이지...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그럼 왜 표정이 그렇게 복잡미묘한거야?"
복잡미묘하다니, 표현이 굉장히 미키다워서 잠시 웃었다. 그렇게 진지한 고민도 아닌데 걱정해주는 미키가 귀엽다는 건, 역시 어린 애를 구경하는 편이 더 즐거운 걸까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
"그럼 된 거잖아?"
"그 말이 맞는데... 한편으로는,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거잖아? 마냥 감사하기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뭐야? 내가 그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하고."
"..."
"뭐, 별 거 아닌 이야기지? 별로 고민 같은 건 하고 있지 않..."
"저기, 리츠코... 씨."
돌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키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미키는 금방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프로듀서 뿐만 아니라... 모두들 리츠코, 씨를 걱정했었던 거야."
"..."
"딱히 따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저, 그랬다는 거야. 하루카라던가, 아즈사라던가. 굳이 그 둘이 아니어도 모두가 리츠코, 씨를 걱정했다고 생각해."
"...미안."
"므으, 딱히 따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니깐...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그러면 왜 모두가 리츠코, 씨를 걱정하고 도우려 했다고 생각해? 잘은 모르겠지만... 리츠코, 씨의 생각대로라면 리츠코 씨는 마음대로 하게 두고 하던 일을 하는 게 더 나은 것 아냐?"
"...그렇네."
조금은 너무한 말인 것 같지만... 일단 내가 하던 말 대로라면 그러는 쪽이 나에게도 더 편안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나 아닌가. 누군가가 걱정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꽤나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로서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나에겐 너무 어려운 문젠걸."
머릴 좀 긁적이자, 미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근질거리는 입으로 말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답은 간단한 거야. 애초에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 따위는 없는걸."
"...너무 넌센스 아냐? 무슨 근거로."
"리츠코, 씨가 그만둔다고 했을땐, 아무도 말리려고 하지 않았어. 미키조차도. 왜 그랬냐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저 리츠코, 씨가 그만둔다고 하면 갈 길을 막고 싶진 않았을 테니까. 문자 메시지라던가, 봤어? 아마 모두들 다른 건 몰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해."
실제로도 그랬다. 몇십통이나 온 메일들을 나중에라도 하나하나 읽어봤을 땐, 거의 대부분이 미키의 말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 미키가 그걸 입수하고 나서, 모두가 이유를 알게 됐어. 그러자, 모두가 리츠코, 씨를 돕겠다고 나섰던 거야. 이유가 뭘까... 그걸 물어본거야. 하지만 미키가 말한 대로 모두들 리츠코 씨를 이유가 있어서 돕는 건 아니야. 오히려 리츠코, 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안 해도 될 수고를 하고 있잖아? 적어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상 할 이유는 없는걸."
"그렇겠지. 그럼 어째서..."
"모두가, 리츠코, 씨를 좋아하기 때문인거야." 싱긋
...저기, 그렇게 웃어도 말이지. 이건 너무 과도한 넌센스 아니야? 나는 되물었다.
"방금 전에는 이유가 없댔잖아. 그건 이유 아냐?"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닌거야. 리츠코, 씨는 그런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납득하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그럴지도."
그러니까,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 라는 건가? 뭔가 따라가기가 힘들다. 원래부터 미키는 따라가기 힘든 애였지만, 오늘 따라 더 힘들다.
"그러면... 이제 리츠코, 씨의 고민을 풀어 줄 차례인거야."
"고민이라니... 그런 건 아니라니깐."
"글쎄? 적어도 자기가 그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는 건 고민 아냐?"
"글쎄..."
"그러니까, 잘 듣는 거야, 리츠코 씨."
무슨 얘기를 하려고. 미키가 입을 열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내가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 지가 문제일까. 조금이지만 미키가 얼굴을 가까이 해 왔다.
"사랑받는다는 건... 딱히 자격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닌거야. 왜냐면..."
"..."
"좋아한다는 감정에, 이유는 없으니까."
"철저히 혼자만의 감정이야. 좋아하는 건 자유, 멋대로 단정짓는 것도 자유지만, 스스로 깨부수는 것도, 깨부숴지는 것도 자유야."
"..."
"굳이 리츠코, 씨가 책임을 져야 할 만큼 존중받아야 하는 감정은 아니라는거야. 그런 제멋대로인 것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적어도 리츠코, 씨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거야."
"...너치곤 꽤나 차가운 말이네."
"글쎄, 사실이 그런걸. 미키는 딱히 차가운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거야."
미키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는 건 말이야, 마치 꿈 같은 거야.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몰랐다가, 뒤돌아보면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돼.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좋아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 들게 되는 거야."
"..."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지. 뭐, 찾아본다고 해도 그럴싸한 이유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좋아한다는 감정에 이유는 없어. 정확히는 이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닐 뿐이지만."
조금 딴 길로 샌 듯 잠시 멈칫, 하더니 미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딴 이야기로 새버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모두들, 리츠코... 씨를 엄-청 좋아하는 거야. 그저 그런 것 뿐인 일이니까 리츠코 씨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리츠코, 씨는 그저... 받아들여주면 되는 거야. 감사하다고 했었지? 그거면 되는 거야. 보답을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닌걸. 앗, 우리 꺼 나온거야! 미키가 가지러 갔다올게~"
"..."
뭐라고 해야하나... 마음에 걸린다. 미키는 아직 나에게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키가 하는 말로 '이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마치.
27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미키 "..." 저벅저벅
미키 "...므으." 골똘
소리 하나 없는 이 복도엔 미키의 발소리만 통, 통 울리고 있었어. 조금 짜증섞인 미키의 목소리는 조금 묻혔을려나. 그건 크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미키는 기분이 매우 복잡미묘한거야.
"..."
분명 방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거야. 아스타리스크의 리이나라는 애가 미키에게 말했던, 'love냐, like냐' 는 이야기. 분명 본인에게 큰 뜻은 없었겠지만... 미키는 신경쓰이는거야. 미키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라도 그런 질문이 나온다는 건, 미키랑 리츠코는 뭔가 좀 더 특별한 관계로 보이는 걸까나?
"므으음..." 저벅저벅
미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거든. ...그런 건. 그냥 미키는 리츠코를 좋아하는구나, 정도 생각밖에 안 했으니까. 남들 눈에 보이는 미키와 리츠코는, 어떤 느낌일까? 새삼 궁금해졌지만...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거야.
"..."
그래서... 먼저 생각한 건, love와 like의 차이. 일단 미키적으로 어떤 느낌이냐, 를 먼저 생각해봤어.
"love, 는..."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려니 어려운 거야. '사랑' 이라는 것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만을 따지면... 남자와 여자, 가? 만나서, 서로를 좋아한다는 거? 므음, 뭔가 아닌 거야. ...일단 이 쯤에서 넘어가도록 할까나.
"like, 는..."
그... 잘 해주고 싶은 감정일까나? 사무소의 동료들이라던가, 리츠코 같은.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고,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걸까나? 하지만 그건 love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거야. ...생각해보니 서로 안 겹치는 걸 찾아보는 게 더 빠른 거 아냐? 으으. ...확실한 건, 지금 이건 미키의 의문에 해답이 안 될 거라는 것. 정도? 의 결론이 나왔다는 거야.
"끄응..."
다시 원점인거야. 이번에는, 가까이를 볼 수 없다면 멀리를 보는 거야! 작전. 리츠코의 주변을 미키의 눈으로 판단 해보는거야.
"일단... 아즈사?"
일단 아즈사는 미키보단 오래 있었던 것 같아. 므으, 리츠코랑 먼저 알고 지내다니 부러운 거야. 올해 초에 같이 리츠코의 옷도 골라줬었는데. 정말 예쁘고 귀여웠던 거야! ...아, 아니, 이게 아니고... 아즈사는 분명 리츠코에게 호감이 있는건 확실한거야. 전에 안겼을 때도 그렇고... 므으, 괜히 화 나는 거야!
"그리고... 하루카."
하루카는 정말 오래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아즈사보다도 일찍 리츠코랑 있었을 거야. 리츠코도 하루카는 잘 아는 눈치고... 부러운 거야. 므으, 왜 미키는 일찍 이 곳에 오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두 사람 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네. 하루카도 리츠코와 입을 맞출 수 있을 만큼은 호감이 있는 것 같고. ...아까부터 뺑뺑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 멈칫
어느덧 건너와 도착한 반대편 대기실 앞에서 미키는 잠시 생각을 멈췄어. 아까부터 핵심을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그 이상 한다고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어.
"..." 끼익
대기실 문은 열려있었어. 하긴, 딱히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이 잠겨있을 이유는 없었지. 주위를 좀 둘러보니, 리츠코가 다녀갔던 것 같네. 누구 때문에 이런 머리아픈 생각을 하고있는데. 괜히 야속한거야.
"..."
미키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리츠코의 정장 재킷. 언제나 입고 다니는 녀석인거야. 이 날씨에 여기다가 벗어놓고 다니다니, 리츠코는 추위에 강한 걸지도. ...보고 있자니, 어느 샌가 미키의 코 앞에 있었던 거야. 자석 같은 느낌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다니, 역시 그 주인에 그 옷이네, 라는 느낌.
"..."
만져본 옷깃은 굉장히 익숙한 부드러움이 느껴졌어. 언제나 미키가 안길 때 입고 있는 옷이라서 그런가, 이 익숙한 푸근함에 무심코 하품이 나왔어. ...아후.
"..."
익숙하다, 고 하면... 지금 미키의 코를 찌르는 이 향수 냄새도, 리츠코의 것. 거의 일 년 내내 쓰고 다니는 향수. 언제나 리츠코에게 안기면 나는 좋은 냄새. 미키가 안기기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미키를 푸근하게 만들어 준, 두 번째 추억.
"..."
거기까지 생각하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리츠코를 껴안듯 옷걸이에서 옷을 빼서, 꽈악. 덮쳐오는 익숙한 감각에 얼굴을 묻고... 므읏, 이 이상은 말 못하는 거야! 상상에 맡길 거니까?!
"하아... 하아..."
잠시 가려졌던 시야에는, 밝게 빛나는 형광등 빛이 다시금 눈을 찔러들어왔어. 얼마 안 됐을텐데도, 눈이 살짝 부셨던 거야. 제 발이 저렸는지 두리번거리던 미키의 눈에, 거울이 들어온 것도 그 때가 처음.
"거울..."
거울 속의 미키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 남의 옷을 꽉 껴안은 채,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마치...
"으, 으우..."
생각했더니 더 빨개졌어. 지금 미키는 112에 신고하면 치녀로 잡혀갈 모습을 하고 있는거야. 만약 잡혀가면, 왜 그러고 있었냐는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겠는걸. 절대 말 못하는 거야. 이런 거.
"..."
후끈 달아오른 몸, 두근대는 심장. 가슴에 손을 얹으니 흘러들어오는 온갖 상상들. 조금 부끄러운 몰골이었지만, 슬슬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든 거야.
"리츠, 코..."
내려놓지도 않은 미키의 짐에서, 미키도 모르게 꺼낸 물건은 리츠코가 준 선물. 우리가 다시 시작한 기념으로, 리츠코가 미키에게 사 준것. 좀 많이 특이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미키와 리츠코의, 시작 같은 것. 그렇다면, 끝도.
"...가자."
두리뭉실했던 의문의 답은 조금씩 뚜렷해졌어. 가자, 미키는 지금 미키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미키는 아주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세차게 바닥을 밟고 지나가기 시작했어.
달리고, 달렸어. 그리 먼 거리가 아닐 텐데도 이상하게도 숨이 차 올랐어. 체력이 부족해서, 라기보단... 고장난 듯 쿵쾅대는 미키의 심장 때문이겠지. 아는 거야.
"리츠코, 는..."
있지, 지금 미키는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야. 가슴 속에 뭔가 낯선 손님이 들어와있는 기분. 어쩌면, 그저 미키가 몰랐을 뿐일 수도 있는, 그런 손님이.
"후우, 후우..."
그런 기분이니까, 당연히 몸이 먼저 행동하고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거야. 마치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과 마주친 사람처럼, 미키는 나아가.
"..."
이상한 건 숨이 차오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유난히 목적지가 멀어보이기까지 한다는 거야. ...정말, 한 줄기 빛을 향해 달려간다는 기분.
"분명..."
...지금 유난히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분명 서로 닮아있기 때문인 거 아닐까 생각해. 낯설고, 솔직히 말하면 두려워. 왠지 모르게 괴롭기까지 한 감각.
"...!"
그래도, 한 켠에선 이유 모를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으려나? 조금 더듬어보면, 굉장히 소중히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 낯선 느낌에 두려워하는 미키의 손을, 꼬옥 잡고 웃어주는. 그런.
"...저기요." 턱
"...?"
"리츠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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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시점이 다른 분량 삭제, 유심 재장착후 부팅으로 인한 날라감으로 순조롭게 2패를 적립했습니다. 이제 바보가 아닌 이상 세 번은 안 되겠죠. 위기입니다. 하 하 하...
"?!"
...아핫, 뭔가 굉장히 소리쳐버린거야. 미안해요, 리츠코랑... 거기 있는 사람. 하지만, 누구라도 미키같은 마음이었다면, 무심코 소릴 질렀을 거라고 생각하는걸.
"미, 미키...?" 뻘쭘
"..."
아핫, 곤란해 하는 리츠코도 귀여운 거야. ...미키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리츠코에게 가까이 있는 거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촉감에 좀 더 꽉, 하고 팔에 힘을 넣었어. 이 때 부터려나? 몸이 조금씩 더 뜨거워지기 시작한 게.
"흐으, 으으..."
"저, 저기... 일단 좀 떨어져 줄래...?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허둥지둥
원래 같았으면, 이 쯤 해서 떨어졌을텐데. 오늘의 미키는 조금 이상해. 옆에 있던 그 프로듀서의 시선을 느끼고는 미키도 모르게 그만 리츠코에게 심술을 부리고 만 거야.
"...싫어." 꼬옥
"에...?" 당황
"..." 째릿
분명 리츠코의 계산 속에도 없었겠지? 리츠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동요하고 있던 거야. 당연히 제일 가까이 있던 미키에게 먼저 전해져 온 거야. 하지만 미키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저 죄 없는 그 프로듀서를 쏘아볼 뿐이었던 거야. 그 시선을 느꼈을까,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어.
"...저는 잠시 가 보겠습니다."
"..."
"네? 자, 잠깐만요!"
아무래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나봐. 리츠코의 반응을 보면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됐던 것 같네. 왠지 입 밖으론 낼 수 없었지만... 미안해요, 인 거야. 아스타리스크의 프로듀서 씨. 하지만 미키가 이러는 건 아스타리스크의 탓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해 해 달라는 거야.
"...하아, 갑자기 왜 그러니?" 한숨
"..." 꼬옥
결국 리츠코는 뭐라고 말하려는 듯 하다가, 이내 한숨으로 덮어버렸어. 미안해요, 인 거야. 미키가 고집을 부려서. 이상한 이유로 괜히 리츠코를 곤란하게 해서.
"무슨 일 있었어?" 쓰담쓰담
"하아우우..."
...기분 좋은거야. 리츠코의 체온이 미키의 머리를 타고 내려와. 꼭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걸... 아니, 이런 느낌은 미키 혼자 알고 있는 편이 더 기분 좋으려나. 미키만 알고 있는 감각, 뭔가 사장님적으로 팅, 하고 온다는 느낌!
"...말 해줄 때 까지 기다려 줄게." 쓰담
"하아, 아, 아..."
...머리가 뜨거운거야. 아마도 리츠코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을 때 부터 그랬던 것 같아. 정신이 멍, 하고 흐려지는 기분이야. 흐물흐물하다는 단어는 이런 기분에서 유래한 단어일지도. 이건, 미키의 가슴 속에 품은 감각과, 뭔가 닮았어. 역시 대답은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확신이 들자, 드디어 말문을 좀 열 수 있었어.
"...리츠, 코... 씨."
"왜?" 싱긋
안 돼, 그 미소는 반칙인거야. 이런 뜨거운 몸으로는 그런 뜨거운 공격을 견뎌 낼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야 제대로 말 할 수가 없잖아. 하지만, 좀 더 뜨거워져야 대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미안해요, 인 거야."
"...뭐가?"
"그, 프로듀서랑... 이야기, 하고 있었지? 미키가... 방해를, 해서..."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마." 쓰담
두근.
슬슬 심장이 고장나기 시작한거야. 이미 몸은 열로 포화 상태. 거의 모든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수준이고, 슬슬 머리 쪽도 위기인거야. ...머리가 고장나면 어떻게 되려나?
"...혹시 감기 때문에 그러니? 몸이 슬슬 뜨거운데..." 힐끗
"!...아, 아니, 그런 것 때문이 아닌 거야." 도리도리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었어, 지금의 미키를. 그리고, 지금의 이 기분도. 미키의 두 눈에, 리츠코의 두 눈이 딱, 하고 들어왔을 때에.
"..." 지그시
"...?" 갸우뚱
동그란 두 눈. 말랑말랑할 것 같은 볼. 아직 때가 덜 탄 새 안경. 묶어 올린 뒷 머리에, 정수리 부근에 좌우로 삐친 머리 두 가닥. 그리고... 밝은 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아아, 그런 거였을까나.
"..."
"...미키?"
음미하듯 힐끗거리며 리츠코를 눈에 새겼을 때, 느꼈던 기분. 그 기분을 알고 나서야, 미키는 드디어 대답을 얻었어. 아핫,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던거야.
"...아핫."
그 끝에 있던 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끝없이 가득한 욕심.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으면 해. 부드럽고 상냥한 그 목소리로 미키의 이름을 불러줬으면 해.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을 껴 안게 해 줬으면 해. 미키가 두려워 할 땐, 손을 잡고 웃어줬으면 해. 언제나 미키가 원할 땐, 미키만을 향해주었으면 해. 리츠코가 가진 모든 것이, 미키를 향해주었으면 해. 그리고...
"...?"
리츠코의 모든 것으로, 미키를 원해줬으면 해.
"리츠코, 씨..."
...그런가, 그랬구나.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던 거야. 이제껏 미키가 느껴온 모든 감정에 따른 미키의 행동이, 의지가. ...좋아한다, 는 것. 이제껏 미키가 느껴온 모든 감정에 따른... 이 뜨거운, 바램이.
"미키...? 가, 가까ㅇ..."
"..."
사랑이었구나.
"..." 꼬옥
유레카, 라는 건 이런 기분이었을까나? 알았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져서, 결국 미키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어. 더욱 꽈악, 리츠코를 안았어. 여전히, 미키의 몸은 뜨거워.
"느읍, 윽, 읍..." 버둥
더욱. 더욱 더, 리츠코를 원한다는 그 감정이 더욱 커져. 알아버린 감정은, 멈출 수 없었던 거야. 더 깊이, 미키는 리츠코의 입 안을 파고 들어가. 리츠코의 버둥거림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채.
"흐읍... 윽!" 타악
"! 허읍..."
달아올라있던 사고가 그제서야 가라앉은거야. 엉덩이의 아찔한 통증 때문이라는 건 조금 말하기 그런 사실이지만 말이야. 올려다 본 그 앞에서, 미키가 더럽힌 입을 슬쩍 고쳐닦으며 리츠코가 말했어. ...이 순간까지도, 미키는 모르고 있었네.
"미, 키..." 후아
"..."
"...설명해."
"...?"
"설명하라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지."
그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어. 좋게 말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려나. 이런 리츠코의 목소리를, 미키는 들어본 적이 있는 거야. 이제는 좀 옛날이 된 미키의 기억 속에 있는 그런 목소리. 최근에는 들어본 적 없었는데.
"읏..." 주춤
"똑바로 설명해. 방금 그거." 성큼
"그, 그... 게..." 주춤
어째서일까, 알고 있음에도 설명할 수가 없었어. 리츠코가 화를 내고 있는데도. 마치, 마음 속에 미키가 모르는 자물쇠가 있는 것 처럼. 덜컹거릴 뿐이었어. 어째서? 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는 거야? 점점, 리츠코는 미키에게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데.
"...후우, 미키?"
"윽, 으, 으으..."
다른 의미로 머리가 새하얗게 됐어. 방금 전의 것과는, 180도 다른 감정. 달아오른 기쁨 따위가 아니라, 궁지에 몰렸다는 공포. 결국 미키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거야.
"일단 뭐라도 말을..."
"미, 미..."
"미?"
"...미안해요!!!"
그건, 리츠코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어. 그저 도둑이 제 발을 저렸을 뿐인 반사적인 외침. 멀리서 리츠코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던거야. 발이 부숴져라 달리고 있던 그 땐 알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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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달렸으려나. 일단 굳이 밖으로 벗어나진 않았으니 회장 내부겠지. 밖으로 나가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몰라. 아핫, 그래도 밖에 나가면 폐가 된다는 정도는 몸으로도 알고 있었나봐. 리츠코에겐 그렇지 못했지만.
"후우..."
결국 미키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어. 비겁한 도망자 치곤 꽤나 아늑한 낙원인걸, 여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미키 자신이 조금 싫기까지 한 거야.
"..."
실컷 뛰었더니 머리가 식을 대로 식은거야. 기분이 좋진 않지만, 머리가 그래도 침착히 굴러간다는 건 좋은 거야. 그... 뭐라고 해야 하려나? 실컷 싸우고 난 뒤에는 항상 머리가 영리해지잖아? 그런 거야, 아마도.
"..."
미키는 어째서 도망쳤는가.이미 미키는 매우 잘 알고 있는 이 마음에 대해서, 끝까지 대답하지 못했는가.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째서였는지 매우 잘 알 수 있는 거야. 미키가 처음 고민했던 것보다 너무 쉬워서 말이야. 다만 이건 별로 기쁜 이야기는 아니네.
"...윽." 욱신
사랑이라는 건, 너무 까다로운 거야. 미키 혼자의 기분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냐. 혼자의 감정으로 태어나지만, 결국 서로가 아니면 완성될 수 없는, 아주 고통스러운 감정이야. 그렇게나 심장이 뛰는데. 이렇게 아픈데. 멈추진 않는걸.
"..." 글썽
그것만이라면 좋겠지만... 미키의 경우엔 그것 뿐만은 아냐. 미키의 감정으로서도, 이건 있어선 안 되는 감정이야. 있을 리 없는 허상.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신기루. 미키로서도 사실 혼란스러운, 그런.
"리츠코, 씨..." 주륵
...어째서, 미키는.
결국 좀 늦게 돌아간 뒤로도 리츠코랑은 제대로 대화하지도 못했어. 붓기를 몰래 가라앉히느라 시간 좀 걸렸던 거야. 결국 리츠코랑은 평소처럼 느긋히는 있을 수 없었네.
"..."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는데, 리츠코도 모를 리가 없는거야.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이나 할까? 오히려 리츠코라면 지금 미키가 왜 그랬는지 모르기 위해서 뺑 돌고 있을수도. 하지만, 결국 눈 돌릴 수 없게 되겠지? 그렇게되면... 이 관계도 끝, 이라는 걸까. 그런 건 싫은데.
"..."
"..."
하지만 늦었어. 그런 일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했어. 아주 당연한 걸, 바보같이 미키는 놓치고 있었어. 미키가 남자였다면 이런 걸 사고쳤다고 하는 거겠지. 근데 지금은 차라리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지간히 중증이라는 뜻이려나.
"..." 힐끗
"..."
"읏..." 홱
...잠시 리츠코를 살피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가슴이 두근거려서 미키도 모르게 다시 원위치. 이젠 옆모습만으로도 이런 상태가 되는 거야? 알아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고생 좀 하겠는 거야... 정말, 다 리츠코 때문인거야. 여자를 홀리는 여자라니 들어본 적 없는 거야!
"저기... 미키?"
"...! 왜, 왜?!" 허둥지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생각만으로 미키에게 오다니 이 무슨 독심술인거야?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아무것도 아냐..."
"...알겠는 거야."
휴우, 앞으로는 너무 미키를 놀래켜주지 않았으면 하는거야. 슬슬 시간이라구? 미키의 프로듀서로서 눈치가 너무 없는 거야.
"...무대, 힘 내."
"!..."
미키의 생각보다도, 더욱. ...정말, 그런 말은 지금의 미키에겐 반칙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거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을 떨어뜨릴 정도로.
"...리츠코, 씨."
"...?! 왜, 왜 그러니?!" 허둥지둥
그 위력은 리츠코도 몰랐는지, 방금 전 미키처럼 허둥대고 있네. 귀여운 거야, 리츠코.
"...푸핫!"
"우, 웃지 마! 갑자기 말을 걸길래 놀라서..." 허둥지둥
"아핫, 미안한 거야. 그래도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는걸."
"...긴장하고 있어서 그랬어? 드문 일이네..."
그렇게 말하며 머릴 긁적이는 리츠코를 보니 정말로 몸이 좀 가벼워졌어. 방금 전 까지 무거운 생각만 해서 그런 걸까나. 하지만, 아쉽게도 미키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미키는, 각오했으니까.
"리츠코, 씨."
"왜?"
"...나중에 말 할 거니까."
"뭐라고? 안 들려..."
"이 무대가 끝나면... 리츠코, 씨 에게 말 할 게 있어."
"...그래?"
할 말은 다 했고... 그러면, 이제부턴 평소에 하던 대로.
"다녀오겠습니다, 인 거야!"
"...그래, 잘 갔다 오렴."
"..."
"..."
"점수 합계 결과... 이번 페스의 승자는..."
""...""
"아스타리스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빠밤
"! 해냈다!" "해냈다냥!" 와락
"..." 짝짝
와아아아아아-!
"역시 투표 점수가 좀 컸을까요? 아쉽습니다, 미키 양."
"..." 싱긋 짝짝짝
"좋은 무대를 보여준 호시이 미키 양에게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짝
"여러분, 응원 해 줘서 고마운 거야!" 꾸벅
와아아아아아-!
"이상으로, 아이돌 아카데미 아이돌 어워드 대상 페스 제 1 막을, 마치겠습니다!"
---------------------------
줄여서 IAIA. 익숙한 이름이네요, 우후후. 컴 킨 김에 간단히 파트 한 부분을.
좀 아쉬운거야. 아스타리스크에게 무대로 지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승부에서 진 건 꽤 분한거야. 아무래도 심사 점수랑 현장 투표를 잡아내지 못한 게 컸겠지? 미키의 무대가 예상보다 별로였다는 걸로. 으으... 리츠코에게 면목이 없는거야.
"..." 끼익
무대에서 대기실까지는 얼마 안 걸리니까 금방 도착한거야. 오는 길에 리츠코를 보지 못했으니, 분명 여기 있겠지? 염치 불구하고 조금은 리츠코에게 위안을 받고 싶은데... 끄응.
"...어라?" 어리둥절
대기실에 리츠코가 없는거야. 조금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짐도 없는거야. 미키를 먼저 두고 가 버린거야?
"어째서...?"
언제나 미키랑 함께 있어주었으면서. 언제나 무대 뒤에서 지켜봐주었으면서.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안 좋은 생각밖에 나지 않는걸.
"혹시..."
미키가 말이야, 이 무대가 끝나면,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혹시 그걸 이미 눈치채고, 듣지 않으려고? 미키의 진심을, 이미 혐오하고 있어서? 그래서 미키 따윈 보고 싶지 않아진거야?
"아니야..." 후들
아니지? 아닌 거지? 그럴 리가 없는거야. 분명 리츠코니까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래, 분명 그런 일일 거야. ...미키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테니까, 한 번만 들어달라는 거야... 부탁이야.
"으윽..." 휘청
"...! 괜찮으십니까?!" 탁
누, 누구...?
"다, 당신은..."
"34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 괜찮으십니까?! 몸이 좋아보이지 않습니다만..."
"무슨 일로... 대기실에?"
"아키즈키 씨에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먼저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으니 호시이 씨를 부탁한다고."
"리츠코가...?"
이 사람에게 미키를 맡겨놓고 떠난 거야? 언제나 남자는 조심하라고 했으면서. 걱정된다고 언제나 같이 가 줬으면서! 이제는... 미키가 정말 싫어진거구나. ...아핫, 알았어.
"택시를 불러 드리겠ㅅ..." 폿파ㅍ
"...아니, 된 거야. 미키 혼자 갈 수 있는걸." 벌떡
"네?"
"미키 혼자 갈 수 있다는거야."
"이 밤길에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합니ㄷ..."
"됐다니까!!" 버럭
"...그렇, 습니까. 알겠습니다. 아키즈키 씨에겐 그렇게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
"..." 저벅저벅
"..."
저벅저벅
"...윽." 글썽
미안해요. 이런 기분 나쁜 미키라서, 미안해요.
"흐으, 으..." 주륵주륵
그래도, 정말 좋아했어요. 아마, 지금도.
"아아, 아, 아아아..."
미키는, 리츠코를 사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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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
...엄청 울어버려서 이 상태로는 집에 갈 수 없게 된 거야. 눈이 팅팅 부은 미키를 수상하게 봐 주지 않을 사람은, 미키가 아는 한 카모 선생님 밖에 없는거야.
"꽤액-" 안녕
"...안녕인거야." 흔들흔들
역시. 얼굴이 왜 그러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사람은 카모 선생님밖에 없는 거야! 미키가 제일 마음놓고 얘기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최근에 한 사람을 잃어버렸지만.
"...므으,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팡팡
"꽥-" 왜 그래
여기까지 와서 슬픈 생각은 금지인 거야! ...라곤 하지만 금지라는 생각을 하면 바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거야. ...잘 생각해보니, 장소를 틀렸을지도? 미키는 정말 바보인거야.
"..."
"...꽤-액" 무슨 일 있냐
여기는, 미키가 다시 한 번, 그 사람과 약속했던 장소.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느껴본 곳도, 이 근처. 그리고... 미키의 결의를, 그 사람이 들어준 곳.
"...윽." 글썽
"꽥-" 야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들인데. 그토록 행복한 기억인데... 가슴이 아파. 너무나도 따뜻한 기억이라서, 더욱 아파와...
"으우..." 추욱
"...꽤액" 울지 마
이거 봐,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 거야. 미키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미키가 제일 괴로운 장소가 되다니. 정말 리츠코는 죄가 많은 여자인거야. ...죄질로는 미키가 더 나쁠지도.
"~~!" 벨소리
"므으... 응?"
...이 시간에 전화? 올 데가 없는데. ...미키 목소리, 티 안 나겠지? 미키가 실컷 울어버린 티가 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만 하다가 미키는 발신자가 누군지도 보지 않고 전화를 받아버렸어.
"흠, 흠..." 헛기침
딸칵
"...여보세요?"
페스 편 - 미키 Sid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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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가 채택됐으므로 아쉽게도 페스 편의 리츠코 Side는 없습니다!
슬슬 이 창댓에 끝이 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몇 번 째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엔 리얼입니다. 제 아무리 작가가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는 빠가사리라지만, 그 이상 이어갈 껀덕지도 없습니다! 작가적으론 꽤나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든 될 겁니다! 이번 앵커도 길어질 거에요! 이번엔 작가 휴식 목적으로 소소한 앵커가 가끔 있을수도 있지만요?
마지막 에피소드, 시점 선택
1. 미키
2. 리츠코
이번엔, +5까지, 다수결로. (+7은 좀 아닌 것 같아 하향됐다는 후문이.)
수화기 너머로 코토리 씨의 목소리가 세차게 귀를 때려댄다. ...귀가 좀 따가울 정도지만, 아무래도 이해 할 수 밖에 없겠지.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오늘부로..."
"프로듀서, 그만두겠습니다."
내가 한 말을 생각하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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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어딘가 폐공장
리츠코 "이러면... 된, 건가요?" 까드득
쿠로이 사장 "뭐, 오토나시 녀석 목소리가 시끄러운 것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더군." 짝짝
쿠로이 사장 "그나저나 네 년도 참 독한 년이군. 어쩜 그렇게 싸가지 없는 연기가 가능한지 궁금..."
리츠코 "닥쳐요, 그 입." 부들부들
쿠로이 사장 "어이쿠. 한 대 치겠는데, 아키즈키." 히죽히죽
쿠로이 사장 "때릴 수 있다면 한 번 때려보시지? 푸후후훗..."
리츠코 "..." 까득까득
쿠로이 사장 "네 년의 그렇게나 험악한 표정을 보는 건 또 색다른 즐거움이 있군. 정말 사람 하나 죽일 표정이야... 크하핫!" 폭소
리츠코 "...약속은, 지키시는 겁니다." 부들부들
쿠로이 사장 "물론이지. 네 년이 약속을 지켜준다면 말이야. 전부 끝나면, 새 일자리 정도는 알아봐주지."
리츠코 "필요없습니다, 그딴 거. 제발 그 아이를 직접 건드리진 않겠다고만 해 주시죠..." 부들부들
쿠로이 사장 "글쎄... 유감스럽지만, 그건 확답을 줄 수 없을 것 같군. 그 녀석이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방해가 된다면... 그 땐 또 어떨지..." 골똘
리츠코 "...뭐라고?" 까드득
쿠로이 사장 "뭐라고 했나? 잘 못들었다만."
리츠코 "그 애는 건드리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탓
퍼억
"...!" 움찔
리츠코 "컥...!" 털썩
경호원 리더 "...자기 분수를 조금 아는 게 어떠십니까?" 스윽
리츠코 "윽..." 움찔
쿠로이 사장 "어허, 거기까지. 충분히 잘 따라준 편이니 주먹은 좀 자제하도록 하게."
경호원 리더 "...알겠습니다."
쿠로이 사장 "그 이상 하면... 저 여자가 너무 불쌍하니까 말이네. 생각해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단 말이야..." 크흡
리츠코 "하아, 하아..." 까득
쿠로이 사장 "...좀 일으켜 세워 주게. 할 얘기도 있고."
경호원 리더 "알겠습니다. ...거기 둘, 들었지?" 스윽
경호원 1, 2 "넵!"
타다다다
1 "아키즈키 씨,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 스윽
리츠코 "..."
2 "...부축 해 드리겠습니다." 스윽
리츠코 "..." 째릿
쿠로이 사장 "오케이, 그 쯤 하면 됐고... 나도 사람이니까 말이야... 되도록이면 약속을 지켜주고 싶군, 아키즈키. 그러니까... 알고 있겠지?"
리츠코 "..."
쿠로이 사장 "네 년이, 잘 해 줘야 한다고."
리츠코 "...윽."
쿠로이 사장 "...혹시, 질문 있나?"
리츠코 "질문은 없고... 부탁이라면, 있습니다."
쿠로이 사장 "흐음, 뭐지? 가능한 한 답변정도는 해 주지."
리츠코 "제발, 이 일이 끝나면... 제발, 다시는 그 아이에게 접근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쿠로이 사장 "...말했을 거다. 네 년이 하는 것에 달렸을 거라고."
리츠코 "그러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버럭
경호원 리더 "!..." 움찔
1, 2 움찔
털썩
쿠로이 사장 "호오... 이건 뭐 하자는 거지?"
리츠코 "..."
쿠로이 "우리 아키즈키 씨께서 무릎까지 다 꿇으시고 말이지. 무슨 바람이 불었나?" 히죽
리츠코 "...부탁, 드립니다. 제발... 그 아이는 건드리지 마..." 큭
리츠코 "씨발, 나로 됐잖아! 당신이 원하는 건 거의 다 내 선에서 끝날 거라고!"
리츠코 "그래놓고 하는 말이, 차후 어떤지에 따라서 결정하겠다고? 제발 그걸 하지 말라고!"
리츠코 "내가 다 해 줬으니까... 그 아이는 뭘 하든 간섭하지 말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글썽
쿠로이 사장 "..."
리츠코 "당신들의 눈엣가시 중 하나가 순순히 사라져 주겠다잖아... 제발 그 아이는 건드리지 마..." 털썩
쿠로이 사장 "...그러니까, 그 부분을 네 년이 잘 해달라 이거다만. 왜 자꾸 사람을 나쁜 사람 만드는지 모르겠군." 절레절레
쿠로이 사장 "그 녀석을 직접 적당히 부숴버려달라고. 되도록이면,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줬으면 좋을 것 같군.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 키 즈 키 양?" 푸훕
리츠코 "...제, 발..." 부들부들
쿠로이 사장 "...이만 가지, 제군들." 스윽
경호원 리더 "네. ...전원, 돌아간다."
일동 "네!!"
쿠로이 사장 "부디 힘 내도록. 가족의 명예를 지켜 줘야지?" 히죽
리츠코 "..."
끼이익 덜컹
리츠코 "...크흑, 윽...." 주륵주륵
리츠코 "으아, 으, 윽..."
리츠코 "으아아아... 아, 아아아..." 주륵주륵
"..."
그 인간... 아니, 인간 같지도 않은 그 개자식은 떠났다. 끝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채로.
"..." 까득
저항... 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승산은 0%. 모든 걸 짓밟히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그 딴걸 계산하고 있었다. 그 자식... 쿠로이 사장은 100%가 아니면 승부를 걸어오지 않는다. 이토록 늦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런 철저한 점은 본받을 만도 하나... 일단 인간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스윽
그런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에서도, 그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게 만든 건, 그 아이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하다못해 자존심을 버리려 들진 않았을 테지. 나는 짓밟히지만, 그 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근데 그 개만도 못한 자식이, 내 스스로 적당히 짓이겨놓으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다.
"..."
이런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분명 나에게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 줄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나는 저항 할 수 없었다. 원래 같으면 이 시간에 갑자기 전화로 일방적 통보를 하진 않을 테니까. 그래야 할 정도로 나는 절박했으니까.
"..." 저벅저벅
그래, 나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던거다. 그런 건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내 생각은 너무나도 안일했다. 내 행동을 조심한다고 꼬투리가 안 잡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다만 이런 쓸 데 없는 생각들은 당장 닥쳐올 미래의 두려움 앞에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큭." 글썽
나는, 내 스스로. 그 아이를 위해서도.
"..." 까드득
그 아이를, 부숴버려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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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랜만] 이에요, 여러분. 어제 갱신을 못 했네요! 게을러 터져서 큰 일입니다. 쓸 게 많은데, 할 것도 많네요. 하하하.
오랜만에 노래방 갔다 왔습니다. 추가된 곡들과 함께 열심히 소릴 질렀죠. 목 아파요. 음 올라가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만... 목이 좀 비실해서 그 상태가 오래 가진 않습니다. 체력 저-질...
잡담이 본문보다 긴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근데 작가 본인이 원래 잡담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자제는 하고 있습니다만, 이해해 주십쇼.
열심히 갱신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혼란스러운 발걸음으로 닿은 곳은, 언제나의 그 공원이었다. 이름도 모른단 말인가, 의외의 사실에 절로 실소가 지어질 만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에 웃을 기분이 아니다.
"..."
정신이 없다. 그냥 멍- 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꿈 같은 감각이다. 현실 감각이 안 느껴져,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래, 나는 도피를 하고 있는 거구나. 그 생각에 먹은 것도 없는데 토가 쏠려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지금 잘못 찾아온 거다.
"..."
몸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어쩜 그 어디보다 그 아이가 있을 것만 같은 장소를 골라 향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나는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러 왔을지도 모른다. 너는 할 만큼 했어, 같은 말이라도 들으러 왔단 말인가. 결국 나도 사람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인지.
"..."
조금 으슬한 밤 공원을 걷는다. 이미 햇빛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의 달빛을 감추려는 듯 구름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꽤나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달이 숨어든 것인가, 구름이 감추려 드는 것인가. 피식, 하고 실소가 나오는 걸 보면 나는 그 답을 아는 것 같다. 아직은 가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늦가을도 이런 늦가을이 없구나. 그런 생각에, 다시 한 번 피식, 하고.
"..."
나는 정말 비겁한 여자구나, 리츠코. 쓸 데 없는 생각마저도 지금은 이토록 소중히 여기다니. 내 혼잣말에 대답까지 벌써 생각해버렸다. 난 비겁한 여자라기보단, 나약한 여자였던거야. ...리츠코. 너만은 나를 좀 용서해주지 않을래? 네 몫의 증오까지도, 전부.
"..."
"리, 리츠코... 씨?" 글썽
...그 아이에게서 가지고 와 볼 테니까 말이야.
"..."
예상치 못한 만남에 솔직히 좀 당황했지만... 오히려 더 당황하고 있는 쪽은 미키 쪽인 것 같다. 그렇다면, 티를 내지 않으면 그만.
"저, 저기... 전화, 받은 거야. 코토리에게..."
"..."
"사, 사실인거야?" 글썽
...일단 당황. 대화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겠네. 대화에 주도권을 잡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감스럽게도 매우 잘 알고 있다. 다만 적당히 해야 한다는 내 개인적인 주문이 붙으니까 조금 약하게 나갈 생각이다. ...생각보다 머리는 차가운 편이구나, 나.
"어, 맞아. 사실인데."
"...어째서? 무슨 이유로?!" 글썽
"무슨 이유냐니... 글쎄다, 나도 생각은 안 해 봤는데."
"거짓말, 거짓말인거야! 내가 아는 리츠코는 생각 없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음... 이런 걸 본인 앞에서 말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그만. 너 날 의외로 잘 아는구나? 바보 주제에."
"...미키는 바보가 아니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주륵주륵
벌써부터 심장이 저린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니 나 부터 위기가 온다. 머리가 차가우면 뭐 해. 결국 행동에 옮기는 건 몸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잊어버린 것 같다. 빨리 끝내야 한다. 욱신거리는 고동 소리를 죽이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제대로 말 해줄 테니까 알아서 귀 파고 잘 들어. 말하기 그렇지만... 네가 모른다고 하면 나도 별 수 없지. 어쩌겠니." 하아
"리츠코, 씨..." 털썩 주륵주륵
"..." 주춤
안 돼, 깨질 것만 같다. 나는 말 할 수 있을까? 거짓된 험담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괴롭게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가지는 파괴력을 온 몸으로 기억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힘든 임무였던가? 결정적일 때 흔들리는 건 변하지 않았구나, 리츠코. 하지만... 지금 흔들리면, 미키는... 내 선에서 끝내야 해. 설령...
그게 아무리, 더러운 말일지라도.
+2 선택
1. 그냥 네가 짜증나서 얼굴도 보기 싫어. 굳이 이런 걸 구질구질하게 내 입으로 말해야겠니?
2. 잘 들어, 나는 네 프로듀서 따위 하기 싫어. 친한 척 좀 해 주니까 기분 좋디? 하, 바보같기는...
3. 잘 들어, 난 옛날부터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내가 어디 절에 불상도 아니고, 난 네가 그 때 했던 같잖은 말들로 경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네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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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시점에서 생각해보세요!
"으흑, 흑... 으아아앙..."
"..." 주춤
뭔가 이상했다. 벌써부터 주저앉아버리고는 세상이 다 끝나기라도 한 듯 그 아이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 우는 얼굴도 마찬가지라는듯 나는 잠시 비틀거렸다. 이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완전히 뒷전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그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기 전 까지 나는 무언가 생각했다.
"...미안, 해요... 이런 이상한 아이라서..." 주륵주륵
"윽..."
이 무슨 일인가. 이 아이는 무언가 확신한 듯 분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이 아이는 무언가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 머린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지? 내가 프로듀서를 그만두는 이유였지. ...그렇다면 이 아이는 뭔가 그 이유를 확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다만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 앞에 사고가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동안... 감사했습, 니다... 흣, 미키를... 프로듀스, 해 줘서..." 주륵주륵
"..." 윽
그 아이의 말이 글자단위로 내 귀를 찔러들어왔다. 순간 순간에 다가오는, 그 특유의 솔직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견뎌내기 힘든 순간이었다. 마치 저항하려는 듯 내 몸이 되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잘 들어! 나는 너를 프로듀스하게 된 그 순간부터 네가 맘에 안 들었어! 네가 지껄이던 그 같잖은 말들이 얼마나 내 속을 긁어댔는지 알아?! 너나 잘 하세요, 하려는 걸 몇 번이나 억눌렀는지!"
"히끅..." 주륵주륵
"하, 그래도 놀라울 정도야... 네가 나에게 감사라는 걸 할 줄도 알고. 이거 괜히 뿌듯해지네. 물론 그런다고 네가 맘에 들 리는 없으니 괜히 좋아하진 말고. 알았지?"
"..."
"이야... 그래도 이렇게 그만두게 되니까 속이 후련하다, 야! 이젠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네 얼굴 따위 안 봐도 되니까 말이야!" 푸하하하
...거의 처음으로 내가 역겹다고 생각했다. 칭찬 한 마디 해 주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하던 주제에, 마음에도 없는 악담을 하는 건 이렇게나 쉽게 한단 말인가? 처음이 어려웠을 뿐이었나, 아직도 입이 멈추지 않았다.
"..." 주륵주륵
"뭐, 다음에 올 사람이랑 잘 해보렴! 어차피 너도 나 같은 꼰대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아니야."
"후우, 할 말도 다 했고... 그럼 난 이만." 홱
무언가 말하려는 그 아이에게서 나는 벗어나야했다. 이 이상 오래 있다가는 내가 견딜 수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 나약한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이 여자는 그렇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도 무시한 채, 그렇게 걸었다.
"아닌, 거야..." 주륵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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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이 또... 게임을 접든가 해야 하려나요. 이런 겜벌레 같으니라고.
"..." 멈칫
"저는 인정할 수 없어요! 도대체 왜..."
"...뭐야, 뭐가 인정할 수 없다는 건데?" 홱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요! 그 동안 잘 해 왔잖아요, 우리!"
"..."
"당신은 나를 격려하고 밀어주었고... 나는 어쩌다가 하게 된 이 일에 조금이지만 욕심을 갖게 됐어요! 정말 조금도 흥미가 없었지만... 당신 덕분에!"
"...그래?"
"그래요! 다 당신 덕분이라고요! 당신도 그런 나를 조금씩이지만 인정해주고..."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 좀 떨지 마라." 긁적
"...뭐라고요?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리츠코. 난 별로 재미 없었다고, 바보야."
"...네?"
"넌 임마,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사사건건 지가 뭐라고 내가 하는 일에 불나게 설교질이고... 그 나이대 애 치고는 귀염성이 조금도 없고... 난 조금 애교 있는 녀석이 타입이라고."
"...그건 알고 있어요. 그게 이유인가요...?"
"물론이지. 그리고 누가 그랬었지? 아... 맞아. 너는 솔직히 틀림없는 삼류야. 빈말로도 좋게 평가해주기가 힘든걸, 나는."
"..."
"솔직히 사무원 지망이었다는 아주 타당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근데, 욕심 갖지 마라? 넌 절대 위로 못 올라가. 귀염성이 없잖아."
"당신이, 어떻게 그런..."
"왜? 너도 맨날 그러잖아. 몸매도 별로고 솔직히 귀엽지도 않은 성격이라고. 난 말하면 안 되나? 만약 그냥 빈 말로 하고 있었다면 놀라운걸."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어째서..."
"참아왔을 뿐이지. 난 돈이 필요했거든. 거기 말곤 취업도 잘 안 됐는데 말이야. 기적적으로 어떻게든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으윽... 큭, 흐으윽..."
"야, 울지 마라. 안 그래도 보기 싫은 얼굴이 더 보기 싫게 구겨지잖아. 그런 얼굴 하면 솔직히 조금은 미안해진다고."
"어째서... 어째서...!"
"그리고... 솔직히 네가 할 말이냐? 그거."
"에...?"
"어째서, 인 거야...?"
"미, 미키...?"
"어째서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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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 벌떡
아직 몽롱한 감각 속에서 숨이 헐떡인다. 심장이 울리는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다행히 방금 전에 보였던 것들은, 아마도 꿈이었겠구나 싶은 결론에 도달했다. 낯선 풍경, 미친 듯이 찔러대는 강렬한 냄새에 정신을 차리는 속도는 좀 빨랐다.
"윽, 술냄새에... 호텔인가? 외박했네..."
어쩐지 떠올리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랄까 나 미성년자인데?! 술을 사는 덴 성공했단 말이야?! 진짜 늙어보이나보네, 나... 신분증 검사도 안 받다니 심각하네. 어째 어이없다기보단 기분이 상한다.
"..." 지끈
술은 성년이 되고나서, 라고 내심 정해뒀었는데. 이렇게 술을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거하게. 마셔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흥미가 생기진 않지만... 어제는 별 수 없었던 거지, 아마도.
"..."
결국 이젠 꿈에 미키까지 추가되어 버렸나. 실컷 욕해놓고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떠올렸더니 가슴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안경이라도 쓰도록 할까.
"어디다 둔 거야... 여깄네." 더듬
드디어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 아키즈키 리츠코의 하루는 이걸로 시작... 이랄까 딱히 할 게 지금은 정해져 있지 않다. 기억나는 거라곤, 내일 미키의 라이브 일정이 있다는 거였다. 지금은 알아도 큰 쓸모가 없겠지만.
"으, 머리아파... 뭐 하지?"
+2 선택
1. 배가 좀 고프다. 편의점에라도 좀 갈까.
2. 지금 몇 시야?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3. ...지금 당장은 좀 쉬고 싶다.
일단 시간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니까 까먹을 뻔했네. 지금이 몇 신지는 알아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지금 시간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원이 켜진다. 그러고보니 충전기 안 갖고 왔는데, 아껴 써야겠네. 일단 현재 시각, 1시 27분임을 이 녀석은 나에게 알려드렸다. 이런, 나 치곤 더럽게도 오래 잤네. 끌끌...
"문자랑, 부재중 전화?"
부재중 전화만 몇 십 통에, 문자는 그것보다 더 왔다. 아마도, 대부분은 내가 아는 번호들이겠지. 지금 보려면 위장이 아파질 것 같으니 그만둬야겠다.
"일단 좀 씻고 생각할까..."
일단 시간은 많으니까. 백수가 됐으니까 말이지. 뭔가 해방감이 들지 않는 것은, 죄책감이 전력으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런 것을 언제나 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이거 눈 앞에 정신병원이 보이는 것 같다. ...시시콜콜한 생각을 할 수는 있을 만큼은 회복했다, 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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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요즘 호텔들은 시설이 좋네. 화장품 같은 것도 기본적인 거라면 구비되어 있는 걸 보니 꽤나 쓸만해보인다. 기초 화장품 정도는 들고 다니니까 문제가 없겠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내 짐 회사에 다 두고 나왔다. 당장 하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 할 거래서 전화로 통보를 해 대는 바람에... 젠장!
"하아..." 지끈
내가 거기 짐을 뭐 두고 왔더라? 일단 노트북에... 일하던 서류들은 중요하지 않고... 화장품들도 거기 있고... 그리고... 딱히 걸릴 만한 물건은 없지? 오케이, 일단 노트북이 거기 있는 것 빼면 당장엔 괜찮겠지. 물론, 내 숙주인 지갑이 곧 있으면 저체중에 시달리겠지만... 아, 몰라. 일단 그런 건 머리아프니까 생각하지 말자.
"좋아, 일단 뭐라도 먹도록 할까."
옷을 챙겨입는 이유는 그거였다. 아쉽게도 호텔은 냉장고에 냉동식품 한 개도 넣어주지 않았으니까. 문자도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한 것 보면 그 아이들도 자기 스케쥴 때문에 바쁘겠지? 좋아.
"가볼까..." 스윽
+2 뭘 먹을까? 선택.
1. 편의-점. 내 숙주에 대한 매너.
2. 라멘 가게. 배가 좀 고파요. 미안합니다, 숙주.
3. 패밀리 레스토랑. 내 숙주를 혹사시킨다.
"...비프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후후, 이왕 사치를 부리기로 한거 한 번 아키즈키 스케일 내에서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이 가게에서 꽤 비싼 편에 든다. 피자 같은 거 빼면 1인분으로는 아주 비싸지. 아키즈키 스케일 안에서는 아주 파격적인 1인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주문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시간이 매우 비게 된다. 이제 뭘 해야하나, 생각하게 되는 건 누구라도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한다. 하필 혼자 와서 더욱 허전한 감이 드는데.
"...!"
그러고보니 오늘은 마왕 엔젤과 신칸소녀의 페스 날 아닌가. 세간에서 굉장히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지. 저번 전야제 무대에서 마왕 엔젤이 굉장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과연 치열한 싸움일지는 의문. 두 팬덤의 규모는 거의 비슷한 레벨이고... 무대만 생각했을 땐 신칸소녀의 승리를 점쳐본다. 전야제에서 꽤 좋은 무대를 보여준 그녀들이니까.
"..."
역시 이 소재로는 오래 가지 않는구나, 새삼 느꼈다. 꿰고 있는 것은 생각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건가? 결국 남는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일 뿐. 그런 고로 한 번 고개를 두리번거려본다.
'사람이 많네...' 두리번두리번
분명 점심 시간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시간대이지만... 그 때를 노려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아도 시끌시끌할 만큼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거야 원, 여기서 765 애들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은 되려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주문하신 비프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 길었던 시간이 끝을 고하는 건 점점 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게 되던 때였다. 좋아, 일단 왔으니 먹어보도록 할까. 그렇게 두툼한 고기를 먼저 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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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팠을까. 맛은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내 지갑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까? 좀 더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후우우우..."
배가 꽤 든든하게 찼다. 조금 소화도 시킬 겸 느긋한 휴식 타임. 꽤나 달콤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주위를 보면 꽤나 조용해졌다. 내가 원래 먹는 게 좀 느리긴 하지만... 많이도 빠져나갔구나.
"..."
잠시 눈을 감고 이 시간을 즐긴다. 쩔그럭거리는 식기 소리에 마음이 안정되는 시간. 이 식당도 슬슬 소강상태겠지. 자아, 그럼 슬슬 가 볼까...
"읏차..." 스윽
+2 컴마 두 번째 자릿 수가 홀수일 경우 이벤트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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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 새로 확장된 만렙 찍었습니다, 쩝. 무기도 12강화 붙였어요(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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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서도 딱히 무언가를 확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게 그저 폰을 만지작거리는 정도에서 내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솔직히 막막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은 이런 건가. 분명 그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나를 채찍질했을것이다. 근데 지금의 나는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져버렸다. 그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다. 그저 나는 나의 행동으로 무언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면, 행동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적어도 나의 상상은 그런 정적이고 따분하고도 비참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
그 때였다. 휴대폰의 벨 소리가 내 귀를 찔러온건. 보지 않겠다면, 보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가. 일단 먼저 확인한 것은 당연히 발신자의 이름. 시원치 못한 벨소리에 미간을 찌푸려버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건가. 아니면 또 누가 나를 협박해오려고 하는 것인가? 오히려 발신자명을 알 수가 없으니 더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시간은 많이 없었다. 나는 아무거나 해야 했다.
"...여보세요?"
결국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했던 건 지금 나의 처지였다. 누가 전화를 해 오던 딱히 나은 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아는 사람의 전화였다면 꽤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 아는 사람에게 괴롭게 시선을 피하게 되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위, 어제는 잘 되었나?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데도 받질 않더군. 또 칠칠맞은 짓거리라도 하고 다녔던 거냐?"
"...술을 좀 마셨던 것 같더라고요."
"흥... 단번에 폐인이 된 건가? 정말 바보같은 년이 따로 없다, 고 말하고 싶지만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니니까 이 쯤 하도록 하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던 겁니까..."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질문에 대답하도록. 호시이 미키랑은 만났나?"
"...예,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꽤나 건방진 말투로군... 나머지는 지켜보면 된다, 는 건가?"
"..."
"좋다. 전화는 이 쯤 하도록 하지. 혹여나 네 녀석이 쓸 데 없는 짓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되겠군. 역시 삼류는 뭘 하든 삼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크후후훗..."
"..."
뚜- 뚜-
할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은 건가... 정말 짜증나는 작자라니까. 텅 빈 머릿속에 조금씩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저렇게나 짜증나는 녀석이지만, 지금만큼은 조금 고마울 정도로 반가운 분노였다.
"시비 걸러 온 거 맞잖아, 이 개새끼야..." 빠직
"그래도... 일단 감사하다고 해 둘까요."
"덕분에..."
그래, 나에겐 지켜야 할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 나에겐...
"동기 부여가 좀 됐거든요..." 까드드득
'지키고 싶은 것' 이 있었다는 걸.
"문자랑... 부재중 전화인가?"
어디를 먼저 볼까...?
+2 선택
1. 부재중 전화
2. 문자 메세지
3. 이게 뭔가 될 것 같진 않은데... 다른 걸 찾아본다.
안 본 사이 더 불어난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한 번 쓸만한 것들을 추려볼까. 열심히 페이지를 넘겼다.
"..."
대부분 보이는 것들은 사무소 애들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갑자기 당황스럽다 등등. 사실 이것저것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미키의 것은 없었다는 것을 내심 섭섭하게 생각하는 나도 참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
그 다음에 있는 것들은 가족들에게서 온 연락.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에 당황한 기색이 더 강했지만. 아무래도 외박 건 보단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쪽이 더 신경쓰이시는 것 같다. 역시 도망다녀서 좋을 건 없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
그런 문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 이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지만... 문자의 내용을 보면 바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346 프로덕션..."
그 내용인 즉슨... 미키가 그들의 마중을 거절하고 나왔다는 것 같다. 아아, 그래서 미키가 그 공원에 있었던 건가? 굉장히 별 거 아닌 메세지였지만, 나는 뭔가 짐작했다. 왜냐하면 그 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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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메인 홀
리츠코 "후우, 슬슬 무대 장비는 거의 다 된 건가요?"
346P "예, 방금 음향 점검까지 끝났습니다."
리츠코 "그런가요? 조금 숨 돌릴 수 있겠네요."
346P "스탭 분들에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츠코 "네, 부탁드릴게요."
리츠코 "...휴우." 털썩
리츠코 "무대 장비 점검을 해 보는 것도 엄청 오랜만이네..." 뻐근
리츠코 "...그 때도 그랬었지. 후후... 무대 장비 점검을 내가 했었는데."
리츠코 "정말이지... 그 사람도."
리츠코 "..."
리츠코 "...이런 걸 생각해서 어따 쓴담." 쩝
저벅저벅
346P "마실 걸 좀 가져왔습니다." 스윽
리츠코 "아, 감사합니다. 돈은..."
346P "얼마 안 하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리츠코 "...이거 비싼건데요?" 힐끗
346P "그 정도면 별로 상관 없지 않습니까?"
리츠코 "아, 네... 그럼 감사히."
리츠코 '나였으면 안 사올 가격이다, 이 음료...' 힐끗
346P "..." 홀짝
리츠코 '...월급을 많이 받나보지? 역시 거대 기업 346프로...' 부럽
리츠코 '아무래도 회사 규모가 다르니까, 내가 받는 월급 따위랑은 급이 다르겠지...' 흑
리츠코 '아, 신데렐라 걸즈의 프로듀서니까 그런 것도 있겠구나. 하여튼 부럽네...' 홀짝
리츠코 "..."
346P "..." 조용
리츠코 "..." 홀짝
346P "...저기."
리츠코 "네?"
346P "괜찮으십니까?"
리츠코 "...뭐가요?"
346P "요전번 회식 때... 쿠로이 사장님이 해코지하던 것 말입니다. 꽤나 미움을 사신 것 같더군요."
리츠코 "뭐... 일단은 이렇게 잘 살아 있습니다만."
346P "961프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소문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말이 꽤 있습니다."
리츠코 "...실제로도, 라고요?"
346P "의혹이 있다, 는 정도입니다만..." 긁적
리츠코 "...그런가요?"
346P "네."
리츠코 "...조금 궁금해지는데요."
346P "무엇이 말인가요?"
리츠코 "실제로도 그렇다는 말이 꽤 있다면서요. 주변 분들은 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나 봐요?"
346P "...예, 그렇습니다. 주변 동료분들께서 많이 주시하고 계시더군요."
리츠코 '...금시초문인데. 나는 이 업계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리츠코 '동료, 라고 했으니... 34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들이겠지, 아마?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거려나.'
리츠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들이 나왔으려나. 조금 궁금한데...'
리츠코 "...저기요." 턱
346P "...?"
"리츠코!!!"
리츠코 "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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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어쩌다가 미키가 끼어들어서 까먹었었지만, 그 사람은 말했다. '주변 동료들이 주시하고 있다' 고.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쿠로이 사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에는. 그렇다면...
"음..."
혹시 그걸 터트릴 순 없는 걸까? 어쩌면 내가 지금 처한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다.
"..." 폿파피푸페
나에게 문자를 보낸 그 연락처를 이용해보는 것 뿐.
당연히 전화는 안 받을 것 같아서 문자를 보냈다. 뭔가 이것저것 썼지만 굉장히 SOS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오히려 이렇게 쓰는 편이 거짓말같진 않을 테니 더 낫겠지, 아마.
"..."
이제 할 일은 한 가지 뿐이다. 영원히 이 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혹시나 싶어 체크아웃 시간을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이 호텔은 상관 없는 모양. 댈 핑계가 없다면 출발하는 수 밖에 없었다.
"..." 꿀꺽
짐을 많이 가지고 온 것도 아닌데, 이토록 굼뜬 것은 내가 당당히 할 말이 많이도 없다는 것이겠지. 다만 갑작스러운 숙박이었으므로 아무리 손이 느려도 늦을 수가 없었기에 무의미한 발악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럼 출발해볼까.
"..." 끼익
오늘은 집 밥이 먹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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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요즘 많이 굼뜨네요. 으아아 난 바보야아
"...거의 다 왔네."
멀리 가진 않았다. 애초에 호텔에 들어간 것 부터가 굉장히 충동적인 일이었으니까. 혹시나 다른 애들이 집에 찾아오진 않았을까... 싶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는 않아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으, 음..."
현관 문 앞에 서자 굉장한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다는 것과 다니던 회사에서 왔을 연락이 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제길, 차라리 연락이라도 안 왔으면 조금 나았을텐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도망가진 않는다. 아키즈키의 이름을 걸 일 까지는 아니지만, 내 이름 정도는 걸어도 좋으려나. 나름대로 해 온 말들이 있으므로 체면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현관 번호키를 천천히 눌렀고, 문이 열렸다. 소리가 들렸을까. 문 너머에 엄마가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무 말도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을까. 어제부터의 죄악감에 조금 몸이 떨린다. 그런 나를...
"어서 오렴." 싱긋
엄마는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랬구나..."
"음, 뭐... 그랬, 어요..."
티가 나진 않았을까. 나는 꽤나 초조했다. 옛날부터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나는 성격이라고 자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기분이 영 찜찜했다.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엄마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래, 일이 힘들면 그만둘수도 있는 거지. 우리 딸이 그만둘 정도면 그 회사도 어지간한가보지?"
"아하하하..."
엄마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다며 나를 칭찬하며 기꺼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셨던 분. 그 믿음에 거짓말을 보탠 것이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어떻게든 이 건에 대해 해결을 봐야한다는 괴로운 집념이 나를 더욱 옥죄었다.
"피곤하겠다. 밖에서 밥은 먹었고?"
"네, 점심은 먹었는데..."
"그럼 방에서 좀 쉬렴, 과일이라도 깎아줄까?"
"아뇨, 간식은 괜찮아요."
"그래, 그럼 올라가서 좀 쉬고, 저녁 식사 때 부를게?"
저녁 식사라. 생각해보면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 생각하면 한 시간 반 정도 뒤에 부르시려나, 보통 그 쯤에 밥을 먹게 될 것 같은데. 그럼, 되도록이면.
"...네."
밥 먹기 전에 답변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능성의 저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는 쿠로이 사장을 잡을 수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나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흘려들을 그 가능성이라도 잡아야 할 만큼 나는 절실했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 동아줄이나 잡은 것은 아니라는 합리화가 지금 필요한 것이다.
"..." 버둥
일단 그 사람은 척 보기에 나쁜 사람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면 분명 도와줄 사람인 것 같았다는 말이지. 실제로도 쿠로이 사장의 도발을 대신 막아준 전례가 있으니까 분명 아무 답변이나 줄 것 같다. 아무 답변이라도 와야 내가 안심할 수 있겠지. 쓸 데 없는 불안감에 몸을 뒤척이던 그 때였다.
"~!" 띠링
"!" 홱 탁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연락처는 내가 문자를 보냈던 그 연락처. 드디어 답변이 왔구나! 말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꽤나 흥분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메세지를 열었다. 메세지의 내용은 이랬다.
'바빠서 답신이 늦었습니다. 아키즈키 프로듀서, 도와달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좀 더 자세히 썼어야 했나?"
아무래도 너무 뭉뚱그려서 말했던 것 같다. 글로 쓰면 길어질 것 같으니까...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우선 말로 하고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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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4 신작 봤어요? 릿쨩이 저렇게 예쁩니다. 아 살아있길 매우 잘했습니다. 사진 참 잘도 찍었어요. 아 예뻐라 귀여워라 히이잏 히잏 하루룽도 예쁘고 귀엽습니다 이런 반다이남코 게임즈같으니라고 앞으로 반 년간은 더 싸울 수 있겠어요 어휴 예쁘다 귀엽다 감사합니다아아 역시 살아 숨쉬며 예쁜 애들 보는게 최곱니다 삶은 그런거야 히이이이이잏 오랜만에 좀치였네요 최고야아아 하루룽 리얼 리본 릿쨩 리얼 안경 아아 플4신작 최고야아아아
다만 역시 3D 로는 각선미의 그 위대함을 살릴 순 없네요. 예쁘고 귀여운걸로 충분히 만족하지만요. 후우...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아키즈키 씨."
여전히 깍듯한 말투. 틀림없는 본인이었다. 있을 지도 모르는 도움을 받기 위해선 일단 사실대로 말해야겠지. 나는 준비해야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건 뭡니까? 시간이 많진 않습니다."
"걱정 마세요, 오래 안 걸릴 테니까."
통화를 오래 할 순 없나, 아무래도 자세한 대답을 듣지 못해도 좋다, 제발 뭐라도 걸리라는 심정으로 나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저, 쿠로이 사장에게 협박당했어요."
"...네?"
"말 그대로에요. 쿠로이 사장에게 협박당했다고요."
"혹시 어제 그 전화가..."
"생각하고 계시는 게 맞을 거에요. ...아마 그 때."
"그 말인 즉슨..."
"네,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무래도 당신밖에 생각나지 않더군요."
"...동료 분들에겐 말씀하실 수 없는 일입니까?"
"애초에 협박 조건이 회사 나가라는 거였으니까요. 지금 회사 그만두고 나온 상태라구요."
"어쩌려고 그렇게 빨리 수락하신겁니까?"
"...제 부탁을 수락해주신다면."
"과연, 그냥은 주지 않겠다는 겁니까..."
모든 내용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내용부터가 절대 남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이유니까. 알려준다고 하면... 이 사람이 그것을 수락했을 때 뿐이다.
"말못할 정도의 비밀입니까... 과연, 쿠로이 사장은 제 생각보다도 위험한 인물이었군요."
"...그 예기 하니 전에 어쩌다 들은 적이 있어요. 쿠로이 사장은 소문으로도, 실제로도 그렇다는 말이 꽤 있었다고 말이죠."
"그 말은..."
"바로 당신이 말이죠. 그러니까 당신 밖에 생각이 안 난 거에요."
"부탁이에요. 아무거나 알고 있는 걸 말씀해주세요. 제발..."
"..."
마지막엔 거의 호소하듯이 흐느꼈던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은 이런 심정인가. 잠깐의 침묵이 길게만 느껴졌다.
"...좋습니다."
"에...?"
"내일 저녁 즈음에, 시간을 비워 놓겠습니다. 시간은 많으실테고... 장소는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일단 성공했다. 잠깐이나마 기적적인 일이 이뤄졌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떨린다. 보이지도 않을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여대는 폼이 누가 보면 제법 웃겼을 테지. 그래도 상관 없을정도로 나는 감격했다.
"그럼 이만..."
"저, 저기... 잠깐만요."
"?...질문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아... 오래 안 걸릴 거에요."
내일까지 참을 수 없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내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쩌다보니 한 가지는 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러면...
뭘, 물어볼까...?
+2 선-택
1. 쿠로이 사장에 대해서
2. 걸리는 점에 관하여
3. 나를 도와주는 이유에 관하여
"...일단은 그렇다, 고 대답해두겠습니다."
일단은 그렇다? 그런 확실하지 않은 대답은 반갑지 않았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는 아니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와준다는 사람을 괜히 같이 휘말리게 할까봐 겁나기도 하고... 이기적이게도 내가 여기서 더 잘못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안 들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결국 더 파고드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은 그렇다고요? 확실히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자세한 건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명탐정 코난도 아니고 밀당은 별로 환영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걸 따질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답답해도, 일단은 이 배를 타고 봐야한다는 것. 나는 내 분수를 알아야 했다. 그것이 어떻게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테니까.
"오늘 있을 신칸 소녀와 마왕 엔젤의 페스... 누가 이길 것으로 보십니까?"
"...그건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ㅇ..."
"그럼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장소는 따로 메세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잠깐ㅁ..."
거기서 전화는 끊겼다. 안심되기는 커녕 되려 궁금해져서 몸이 근질거린다. 그 사람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그 말대로 하는 수 밖에 없나, 짜증을 섞어 중얼거렸다.
"...칫."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라고 누가 그랬던가. 불안감은 되려 오기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변했다. 그래도 불안에 몸을 떠는 것 보다는 낫다.
"일단 씻고 볼까..."
일단 움직일 마음이라도 생기니까 말이지.
"..."
페스의 유형은 두 가지다. 두 무대에서 동시에 공연을 하든가, 한 무대에서 순차적으로 나오던가. 보통 무대를 빌리는 일 자체가 매우 비싸므로 대부분은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만약 두 무대를 빌린다면, 그건 정말 그 만큼의 수익성이 보장되는 무대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지금 서로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이 두 유닛이라던가.
"흐-음..."
이 두 팬덤은 서로 극성팬들로 악명이 높다. 각자 기행을 겨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위로 피 터지게 싸우고는 한다. 분명 이번 페스의 세일즈 포인트는 그 부분이겠지... 랄까 그 두 팬클럽이 한 무대 관중석에 앉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나에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말했었지, 누가 이길 것 같냐고. 포인트는 그건가... 그러니까 사실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진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
생각해본다. 쿠로이 사장과 이 페스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런 답변이 나오는 일 자체가 꽤나 뜬금없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뒤가 구린 놈은 뒤를 봐야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또 미묘하다. 일단 앞은 꽤나 청결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규모의 프로덕션 사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괜히 짜증난다.
"으음..."
아마 일단은 그렇다고 한 것은, 이 페스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결국 이 승패 여부에 가능성이 걸린 것인데...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이겨야 되는 거지...?"
분명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긴다. 그것에 모든 것이 걸려있을 것이다. 누가 이겨야하고, 누가 이기면 안 되는가.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보통 승패를 예측할 때, 가능성을 재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능성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 없는 가능성은 그저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히 업계 종사자의 시선으로 생각해 보자. 이길 가능성이 높은 쪽은 어디인가?
"신칸소녀..."
이번 전야제에서,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이며 안 그래도 치솟아있던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신칸 소녀. 세간의 인식에도 꽤 변화가 있었겠지. 대중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페스의 특성상 신칸소녀에게 유리할 것은 당연한 일. 가능성의 천칭이 조금 기울었다.
"마왕 엔젤은..."
반면 상대인 마왕 엔젤은 이번 전야제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여태껏 잘 해온 만큼 비난의 강도는 조금 더 강하기까지 했다. 9번 잘 하다가도 1번 못하면 욕을 먹는 세상이라고들 하던가, 일단은 그런 꼴이다. ...최근에 미묘하게 하락세였기는 했기에 요즘은 꽤 미묘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
이런 상황이라면 답은 뻔하다. 나는 신칸소녀의 승리를 점쳤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다소 귀납법적인 추리이기는 하지만. 비유하자면 이제껏 아침엔 태양이 떴으니 내일 아침에도 태양이 뜰 것이다, 라는 미묘한 논리다. 애매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꽤 쓸만한 논법이기도.
"..."
조금 이야기가 샜다. 일단 신칸소녀가 이길 확률이 조금 더 높아보인다. 직접 무대를 보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약간 주춤한 마왕 엔젤,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칸소녀... 일단 답이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원 주제로 돌아가보자. 누가 이겨야 나에게 득이 될까?
"끙..."
이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신칸 소녀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게 나에게 호재일 수는 없다. 누가 이겨야 하는가? 여기서 다시 쿠로이 사장 이야기로 넘어가보기로 했다.
"..." 긁적
...일단 쿠로이 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볼까. 일단 내가 협박을 당한 이유는 유력한 라이벌을 제거하겠다는 명분과 개인적인 적대심. 개인 감정으로 이렇게까지 해 왔다는 말이다. 그럼 그가 그렇게까지 해 가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쥬피터의 대상 쟁취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누가 이기는게 이득인가?
"아...!"
상승세인 신칸소녀가 져야 이득이다. 그녀들이 승승장구하며 쥬피터 앞에 나타나면, 절대 100프로가 아니다. 그는 확실한 승리를 원하고, 신칸소녀는 확실한 승리를 방해할 확실한 장애물이다. 하락세인 마왕 엔젤을 밀어줘야 쿠로이 사장 입장에선 이득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페스는, 마왕 엔젤이 이겨야 한다. 그래야 내 생각에 맞아 떨어진다. 그 사람이 한 말은 이런 말이었나. 그렇다면 나는 지켜볼 뿐이다.
"..."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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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폰이 많이 맛갔습니다. 바꿀 때가 된 걸까요. 바꿀 수 있다면 역재5 때문에 아이폰이 사고 싶네요. 하하하. 비공식 한글화팀 사랑합니다. 근데 현 안드로이드는 눈물.
"..."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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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안 왔다. 덕분에 오후까지 퍼질러 잤지만, 상관 없으려나. 애초에 약속 시간은 저녁 즈음에 비워두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여유는 있었다. 다만 뭐라고 해야하나, 평소 해오던 대로 하지 않으면 조금 갑갑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메세지가 오지 않았었다. 이 사람은 정말 바쁜 사람인가보다. 하긴 신데렐라 걸즈 총괄이라고 들었다. 아마도 치프? 정도 위치에 있겠지. 당연히 바쁠 것이다.
"..."
뒤늦게 일어나서 씨리얼을 그릇에 털어넣는다. 막 일어난 뒤엔 먹을 게 잘 안넘어간다. 간단히 먹는것에 훌륭히 길들여져 버린 거다. 내 위장은 언제나 내가 일어나고 몇 시간 뒤 즈음에나 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주 팔자도 좋구만, 조금 부럽다.
"..." 우물우물
이제 생각해보니 딱히 할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일찍 일어난 편인 거다. 언제 약속이 잡힐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한참 뒤라는 것 만큼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시침이 둔해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숟가락의 움직임도 같이 둔해져버릴 것 같다.
"딸~ 혹시 어디 나가니~?"
"아... 지금 당장은 딱히 안 나가요." 우물
"나중에는 나가니?"
"아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우물
"그럼 그거 먹고 심부름 좀 시켜도 되겠니~?"
심부름인가. 생각해보면 입사하고 나서는 일이 너무 많았어서 집안일은 거들어드린 적이 없다.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알았어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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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즈음이 되서야 문자가 왔었다. 아무래도 저녁은 무리였댄다. 결국 그리하야 약속 시간은 오후 11시를 넘겼다. 결국 야밤에 만나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 동안의 시간을 보내느라 애 좀 먹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 잠시 소름이 돋는다. 다신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시간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꾸벅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만난 건 어딘가의 공원이었다. 아마도 이 근처에 346 프로덕션 본사가 있겠지. 이 사람도 일단은 야근인걸까. 조금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이 바닥 하는 짓은 거의 다 똑같구나, 하고.
"...안내하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대화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일단은 따라가는 수 밖에 없겠지. 346 프로덕션에 가볼 기회가 이런 식으로 생길 줄은 솔직히 몰랐다. 별로 기분 좋은 이유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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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적이 있다. 346 프로덕션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성에 대해서. 그 겉모습만큼이나 내부 인테리어부터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받을 보수에 생각의 무게가 더 쏠린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들어오세요."
그가 안내한 곳은 어느 집무실 같은 곳이었다. 규모로 봐서는 개인 집무실. 개인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건 이 사람의 직위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346 내부에서도 꽤 높은 사람일 테지. 그는 근처 소파에 앉으며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으시죠."
"...네." 스윽
"어제 페스는, 잘 보셨습니까?"
"네."
"...아키즈키 씨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일종의 시험 같은건가? 의아했지만 나쁠 건 없겠지. 나는 생각한 만큼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이고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거의 확실하겠죠. 쿠로이 사장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다만... 증거가 없어요. 증거가 없으면 발뺌하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그 다음 단계가 너무 막막하게 다가왔다. 허들이 너무 높다. 그 현장에 있던 것도 아닐 뿐더러, 현장에 증거가 남아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증거가 없다면, 찾아내는 수 밖에 없겠죠. 그 부분에 관해서는 힘들겠지만 제가 도움을 못 드리는 건 아닙니ㄷ..."
---------!~
"!" 깜짝
"이 밤중에 전화입니까... 아키즈키 씨 전화인 것 같습니다만."
전화...? 어디서 올 데가 있다고... 등록 된 번호는 아닌데... 일단 받고 볼까, 휴대폰을 잡았다.
"...여보세요?" 딸칵
"...아, 받은 거야!"
에, 이 목소리는...
"리츠코 씨!! 미키인거야!" 나놋
"리츠코 씨, 미키는... 아앗! 너무한ㄱ..."
"엣, 거기 무슨 일 있니?!" 깜짝
"...엣흠, 전화 바꿨네."
"...사장님?!"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간다. 미키가 나가고 사장님이 수화기를 대신 잡은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거지?
"저기... 스피커 폰으로 바꿔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곤
"아... 네." 삣
"아키즈키 양... 일단 사정은 다 들었네."
"뭐를요...?"
"자네가 협박당하고 있었다는 사실 말일세."
"에...?" 깜짝
"침착하세요." 소곤
"어디서 그런 걸 들으신거에요...?"
"호시이 양이 말했네. 녹음기를 들이밀면서 달려들더군."
"노, 녹음기요?!" 화들짝
녹음당하고 있었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녹음돼있더군. 고생이 많았겠더군, 아키즈키 양..."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가져온 거에요, 그 아이는?"
"잘은 모르겠네만... 오늘 저녁에 호시이 양의 라이브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겠지. 거기서 누군가를 만났던 것 같네."
"누구를요?"
"...나도 그건 모르지. 호시이 양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네."
"..."
"그래서, 협박의 내용 말이네만... 들어버렸다네. 미안하네..."
"아뇨... 저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거..."
"모두들 할 말이 많은 것 같네만... 일단 이 아이를 바꿔주도록 하지."
아이? 미키려나... 나 아직 무슨 말 할지 생각 못 했는데...
"리츠코 누나아아아아아!!!"
"왜냐니... 어쩌다보니 미키 씨가 와서... 다 알려져버렸다고..."
"아..." 측은
"료 언니가 사실은 남자였다니, 그런 생각 못 했어요!"
"갸오오오옹..." 추욱
뭐야, 수화기는 분명 료가 잡고 있었을텐데 방금 전 그 목소리는 뭐야? 굉장한 목청인걸...
"하여튼...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져서... 랄까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거야! 나 미행당하고 있던 거야?!" 덜덜
"글, 쎄..."
"걱정 마세요, 료 언니, 아니 오빠! 저희들만의 비밀인걸로 할 테니까!" 쩌렁쩌렁
"갸오오오..."
...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어 준 건가. 하지망 정말 잘 어울리고 말이지. 그 땐 어쩔 수 없었다고? 그나저나 몰래 사과할 게 있는데... 미안해.
"..." 놀람
한 명 더 알려져버렸거든.
"아, 네..."
"아무튼 이 곳엔 지금 우리 아이돌들은 물론 876 프로덕션의 아이들도 와 있다네. 혹시 할 이야기가 있는가?"
"음..." 힐끗
"..." 쉿
"아뇨, 딱히 없어요..."
"그런가? 그럼 일단 호시이 양을 바꿔주겠네."
"아, 네..." 삣
"?...왜 스피커폰을 끄시는 겁니까?"
"...이 정도는 상관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드디어 다시 미키랑 통화하는 거구나, 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내가 한 일들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다면 상관 없는 일 아닐까, 수화기 너머로 미키의 목소리가 건너온다.
"그렇... 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다신 이렇게 대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
"그래서 말이지, 미키는 지금 아-주 기뻐. 얼굴을 맞대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정말 기쁜거야."
"...어제 부재중 전화가 몇십통이나 왔었는데, 미키 네 건 없더라. 전화하고 싶었으면 전화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물어봤지만 정말 뻔뻔한 질문이었다. 미키를 그토록 떨쳐냈던 건 누구인가. 자의는 아니었을지라도 고의로 그랬음은 분명했는데. 난 도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고 있는 걸까. 수화기 너머로 미키는 대답해주었다.
"으응... 그저 리츠코, 씨가 미키를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그랬을 뿐이야. 싫어할 짓은 하지 말라고 배웠으니까. 미키는 리츠코, 씨를... 어라?"
"..."
"리츠코, 씨... 우는 거야?"
"미안... 미,안... 해... 큽, 흐윽, 크흡..." 주륵주륵
이런 기특한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얼마나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또 뻔뻔히 말을 섞고 있단 말인가. 터질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배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미키는 말이지, 리츠코 씨를 정-말 좋아하는 거야. 이제는 너무 커져서, 싫다는 소릴 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리츠코 씨가 싫다고 하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로 미키는 리츠코 씨에게 좋은 기억만 주고 싶은 거야."
"..."
"그러니까, 울지 말아달라는 거야."
"리츠코 씨가 울면... 미키는 마음이 아파..."
"미, 키..."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자면... 너무 기특해서 오히려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도 오히려 더 눈물샘을 자극당한 것 같아, 감정이 더 격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보이지는 않지만...
"미안... 오히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므우...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바보야, 기뻐서 흐르는 눈물은 원래 멈출 수 없는 거라고..."
"...아핫, 뭐야 그게."
...미키는 웃어주고 있을 것 같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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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우느라 급기야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 미키에게 꽤나 걱정을 시킨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좀 진정하셨습니까?"
"네에..." 추욱
내가 너무 주변을 보지 못했다. 이 사람 앞에서 굉장히 열심히도 울었으니 당황스럽기도 한 반면 통화 내용이 뭐였는지 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절대 비밀이지만.
"그러면... 이제 동료 분들과 이야기를?"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야죠."
저들이 안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프로듀서로 복귀할 수 있으려면 쿠로이 사장 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여자 아이돌로 활동 중인 사촌 동생이 사실 남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날엔 그 아이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거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므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
일단 알게된 건, 녹음의 존재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수확이지만... 쿠로이 사장이 녹음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적어도 녹음이 날조된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뒀을수도 있다. 언론에 제보하기엔 협박당했다는 사실보다도 여장 아이돌에 대한 진위 여부에 관심이 더 쏠릴 것이다. 그럼 이유들로 이걸 사용하는 건 조금 힘들지 싶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쿠로이 사장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게 필요한데..."
"...제 생각입니다만, 쥬피터를 이용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쥬피터요?"
"961 프로덕션에서 노미네이트 된 대상 후보잖습니까. 그들이 기권을 선언하면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지 않겠습니까?"
제법 그럴싸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쿠로이 사장의 목표가 IA 대상 쟁취라는 걸 생각하면 꽤 일리 있는 생각이다. 다만 우리의 말을 들어줄지 어떨지는 오히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증거만 있다면... 분명 기꺼이 도와주겠지. 머릿속에서 결론이 나자 먼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럼 쥬피터랑은 어떻게 접촉을 해야..."
"...저도 스케쥴은 잘 모릅니다. 한 번 사장님에게 여쭤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장님이라고 아실 리는 없다. 다만 우리 둘 다 모른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 봐야 할 일이었기에 일단은 사장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오, 아키즈키 양인가. 무슨 일로 전화를?"
"사장님, 혹시 쥬피터랑 연락을 해 볼순 없을까요?"
"쥬피터 말인가? 무슨 일로 그들을..."
나는 사장님에게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다 알려드렸다. 조금 힘든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녹음을 활용하는 방법보다는 조금 더 확실하다는 것. 사장님은 어느 정도 수긍해주셨다.
"과연, 쿠로이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는 겐가."
"가능할까요? 저로서는 방법이..."
"으으음..."
사장님은 조금 생각하는 듯 하시더니, 대답하셨다.
"...알겠네, 한 번 알아보지."
"엣, 가능하세요?"
"어떨지는 모르네만... 일단 가능한 한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꺼이 협력하는 수밖에."
"...감사합니다!"
놀랐다. 솔직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타 프로덕션 아이돌과의 접촉이라니,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 결국 이젠 사장님을 믿어볼 뿐이다.
"...잘 된 것 같군요."
"네, 아마도요. 잘 되길 빌어야죠..." 꽈악
"그럼, 시간이 많이 늦었고... 슬슬 돌아가봐야 할 시간이군요."
"아, 벌써 시간이..." 힐끔
"바래다 드릴까요?"
"아뇨, 혼자서 갈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는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감사했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 주십시오."
"아하하, 그렇게 할게요. 그럼..." 꾸벅
"..." 꾸벅
끼익 덜컹
"..."
"..." 삣삣삣
........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346P라고 합니다. 거기가..."
"765 프로덕션, 맞습니까?"
"여기 어디인데..." 두리번
약속을 먼저 제안해 온 건, 765 프로덕션과 먼저 접촉했을 쥬피터 쪽이었다. 토우마가 대표로 온다는 말과 함께 그들이 제안한 장소는 조금 한적한 카페였다. 하기야, 유명인인 그들이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소를 꺼리는 건 필연이겠지.
"...여기다, 아키즈키."
"아, 안녕하세요, 아마가세 씨."
"토우마로 됐어.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생각이야."
"뭐 어때요."
카페의 바깥 자리에 앉는다. 조금씩 날씨는 추워져가지만, 가끔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으니까 말이지.
"그 녀석에게 들었다, 짤렸다면서."
"어쩌다보니 말이죠."
"...서로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나로서도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토우마는 바쁜 몸이고... 나는 급한 몸이니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이렇게나 맞아 떨어지기도 힘들거다.
"보여줘 봐... 그 증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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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자식. 뒤에서 이딴 짓거릴..." 쾅
"..." 질끈
다시 들어도 굉장히 거북하다. 되도록이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걸. 그런 내 기분과는 별개로 토우마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 했다.
"이거... 사실이냐?"
"..."
"...네 표정을 봐서는 사실인 것 같군. 대신 사과하고 싶어. 미안하게 됐다."
"아뇨,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 괜찮아요."
내 말에 토우마는 아니라고 단박에 부정했다. 그는 아무래도 짐작가는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난 어느정도 낌새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내 잘못이 없는 건 아냐." 지끈
"..."
"나도 시간이 없으니까 오래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 말할게."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토우마는 말했다.
"개인 연락처를 줄게. 당신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협력하겠어. 그 아저씨에게 한 방 먹여주라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역시 내가 봤던 그대로의 사람이었네요." 싱긋
"...착각하지 말라고. 난 별로 선량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저... 아저씨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이야."
"네, 네. 그런 걸로 해 둘게요."
잠깐 올려다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빛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상쾌해지는 기분. 순간이나마 지금의 기분은 그랬다. 일단은 순풍을 타고 있다는 게 맞겠지? 조금은 웃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난 슬슬 가 봐야겠다. 다음 스케쥴이 있으니까 말이지. 네 번호 불러. 문자 보내줄테니."
"네, 제 번호는..."
그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연락처에 번호를 기입해 넣는다. 의외로 연락처가 깔끔한 걸 보아 꽤나 철저히 개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요."
"그래. ...먼저 간다, 수고해라."
"네, 수고하세요."
"아, 그리고..."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등을 돌린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절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대사를 속삭였다.
"좀 웃고 다녀라. 그 편이 훨씬 예쁘구만."
"..."
"그럼 난 간다, 수고해라." 저벅저벅
"...정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너무 급하게 행동하는 것 아닌가? 너무 서두를 것은 없지 않은가, 싶은데."
"...저에겐 시간이 없어요! 하루 빨리 결착을 지어야 한다구요!"
"너무 흥분하지 말게.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네만... 너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수도 있다네."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그 사람은..."
"아키즈키 양. 내가 아는 한 그는 지금 자네를 감시하거나 하고 있지 않을 걸세. 완벽히 처리했다고 생각하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남자지. 날 믿어주게."
...사장님은 다 알고있었던 걸까. 내 불안한 마음을. 빨리 결착을 지어야 한다고 조급하게 만드는 불안을. 나는 그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
"어쨌든, 좀 쉬어 주게. 호시이 양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그녀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네."
"...그런, 가요."
어느 순간부터 내 처지보다도 그 아이의 근황에 대해서 더 안도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 그 아이가 문제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말에 정말로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안녕보다도 그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된 걸까.
"쉬라고 하는 데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네."
"뭔가요?"
"엣흠, 그건 말이지..."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이시곤, 사장님은 말했다.
"호시이 양이 자네를 만나고 싶어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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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흔들
"아핫, 안녕인거야! 리츠코 씨!" 흔들흔들
"...너무 큰 소린 내지 마렴?"
결국 사장님의 전화에 이끌려 이렇게 그 때의 한적한 공원에서 미키랑 만나게 되었다. 만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치곤 나는 거의 평소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내가 원래 좀 표현이 서툰 편이라서 그런 거다.
"므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응이 차가운거야." 추욱
"미안."
"아핫, 농담인거야. 미키는 리츠코 씨라면 뭐-든 알 수 있으니까!" 와락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너, 이제 말 안 더듬네. 원래는 리츠코, 씨 였는데."
"아핫, 뭐라고 할까... 미키가 좋아하게 된 거니까, 라고나 할까..."
"...전화할 때는 몇 번 더듬었던 것 같은데."
"...그랬던가? 아무래도 좋은거야."
"너 말이지..."
"이렇게 만났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거야." 꼬옥
"...그럴지도." 토닥
역시 태연한 척을 해도 미키는 아직 어린 아이. 분명 불안해하고 있었겠지.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화했을때도 그랬다,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는 나를 생각해서 뭔가 참아왔던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저기, 말이지... 미키?"
"왜?"
"...솔직해져도 괜찮아."
"엣, 무슨 의미인거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뭔가 참고 있었다면, 솔직해져도 괜찮으니까."
"..."
"나는 그런 걸 잘 못하지만... 너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네가 참지 않길 바라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더더욱."
"..."
"...뭔가 너에게만 강요하는 것 처럼 됐네. 나부터 솔직해질 수 없는 주제에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 진 모르겠지만, 부탁할게."
"지금만이라도... 나에게 기대 줄 수 있을까?"
잘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한 말들을 되뇌어 보기도 전에 미키가 나를 꽈악 껴안았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뜨거움. 그것이 뭔지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보... 바보인거야..."
"..."
"그런 말 하면... 울 수밖에 없는거야..."
"...미안."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흣, 으아아앙..."
"..." 토닥
"울지, 않으려고... 했단 말야...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 는데... 왜..."
"...울어도 괜찮다는 뜻이야."
"으아아아앙..."
내 생각보다도 미키는 훨씬 많이 참아왔던 것일까. 미키의 울음은 그칠 새를 모르고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상처가 벌어진 것 처럼,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이 다 욱신거릴 정도로. 마치 구역질을 하듯 괴롭게, 아마도 서럽게. 비명을 지르듯 미키는 힘겹게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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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인 거야..." 눈 팅팅
"미안할 것도 없는데 왜 그래." 토닥
오랜 시간이 지나, 미키는 조금 기운을 차린 듯 했다. 눈은 부었고, 눈물로 아직은 얼굴이 빨갰지만, 미키는 싱긋 웃어주었다.
"...고마운 거야. 조금 시원해졌을지도."
"원래 한바탕 울고 나면 괜찮아지더라고. ...난 잘 멋하지만."
"그럼 미키 품에서 우는 거야! 미키가 잘 받아줄테니까!"
"..." 화끈
"아핫, 얼굴 빨개진 거야."
"...시끄러."
미키 품에서 우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일까.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상상에 금방 반응이 왔나보다. 절대 그런 이유로 얼굴이 빨개졌다는 건 말 못하겠지. 분명 누가 알기라도 하면...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저기... 리츠코, 씨!"
"다시 돌아왔구나, 말투."
"아핫, 아무래도 좋은 거야!"
"...뭐, 그러려나."
"그래서... 리츠코, 씨! 미키 배고픈 거야! 아무거나 먹었으면 하는데!"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므음... 리츠코, 씨가 정해줘! 둘이 가면 어딜 가도 맛있을 것 같다는 느낌!"
"으음..."
"+2... 어때?"
+2 오랜만이에요오, 선택.
1. 타루키정
2. 단골 주먹밥 집
3. 레스토랑
"뭔가 오랜만인거야!"
"뭐... 최근 바쁠 것도 같았고."
"그건 그런거야. 실제로 아-주 바쁘니까 올 일이 없었던거야!"
"흐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오프를 만들기 위해서, 765의 모두가 얼마나 수고해주었을까. 프로듀서도, 코토리 씨도, 사장님도. 나를 위해서. 정말로 이렇게 운 좋은 여자는 드물지 않을까. 괜시리 몇 번이고 느끼는, 감사하다는 감정.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미안하다는 감정. 미묘한 두 감정이 교차한다.
"리츠코, 씨는 뭐 먹을거야?"
"아... 음, 무난하게 불고기 같은걸로 할까나?"
"알겠는거야."
미키는 이미 정한 모양이다. 뭐, 여긴 거의 저 아이의 홈 그라운드 같은 곳이니까. 정하는 것도, 먹는 것도 매우 빠르다. 사실 먹는 건 주먹밥이니까 느리기도 쉽진 않지만.
"므음...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한 표정인거야."
"? 나?"
"당연히 리츠코, 씨인거야. 여기 그 외엔 아무도 없잖아?"
"고민이라니... 내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나?"
"..." 부우
미키의 시선이 따갑다. 아무래도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걸까나.
"리츠코, 씨. 거짓말은 하지 않는 거야." 째릿
"엣...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지..." 긁적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로도 좋은 거야."
무슨 생각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미키가 의심할 정도로 표정 관리가 안 됐던 화제가 딱히 있던가?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슨 생각을 했을 지는 한 가지 뿐이었다.
"그냥... 지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거."
"무슨 의미인거야?"
"당연히 알겠지만... 너 엄청 바쁘잖아."
일단 IA 대상에 노미네이트 된 미키다. 그런 아이돌인 미키가 쥬피터, 마왕 엔젤, 신칸소녀처럼 바쁠 것은 당연하겠지. 이 잠시의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말 안해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네가... 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케쥴을 열심히 고쳤을 거 아냐?"
"그랬던거야. 프로듀서가 꽤 수고해줬는데."
"그래서 말이지...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그럼 왜 표정이 그렇게 복잡미묘한거야?"
복잡미묘하다니, 표현이 굉장히 미키다워서 잠시 웃었다. 그렇게 진지한 고민도 아닌데 걱정해주는 미키가 귀엽다는 건, 역시 어린 애를 구경하는 편이 더 즐거운 걸까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
"그럼 된 거잖아?"
"그 말이 맞는데... 한편으로는,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거잖아? 마냥 감사하기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뭐야? 내가 그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하고."
"..."
"뭐, 별 거 아닌 이야기지? 별로 고민 같은 건 하고 있지 않..."
"저기, 리츠코... 씨."
돌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키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미키는 금방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프로듀서 뿐만 아니라... 모두들 리츠코, 씨를 걱정했었던 거야."
"..."
"딱히 따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저, 그랬다는 거야. 하루카라던가, 아즈사라던가. 굳이 그 둘이 아니어도 모두가 리츠코, 씨를 걱정했다고 생각해."
"...미안."
"므으, 딱히 따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니깐...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그러면 왜 모두가 리츠코, 씨를 걱정하고 도우려 했다고 생각해? 잘은 모르겠지만... 리츠코, 씨의 생각대로라면 리츠코 씨는 마음대로 하게 두고 하던 일을 하는 게 더 나은 것 아냐?"
"...그렇네."
조금은 너무한 말인 것 같지만... 일단 내가 하던 말 대로라면 그러는 쪽이 나에게도 더 편안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나 아닌가. 누군가가 걱정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꽤나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로서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나에겐 너무 어려운 문젠걸."
머릴 좀 긁적이자, 미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근질거리는 입으로 말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답은 간단한 거야. 애초에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 따위는 없는걸."
"...너무 넌센스 아냐? 무슨 근거로."
"리츠코, 씨가 그만둔다고 했을땐, 아무도 말리려고 하지 않았어. 미키조차도. 왜 그랬냐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저 리츠코, 씨가 그만둔다고 하면 갈 길을 막고 싶진 않았을 테니까. 문자 메시지라던가, 봤어? 아마 모두들 다른 건 몰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해."
실제로도 그랬다. 몇십통이나 온 메일들을 나중에라도 하나하나 읽어봤을 땐, 거의 대부분이 미키의 말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 미키가 그걸 입수하고 나서, 모두가 이유를 알게 됐어. 그러자, 모두가 리츠코, 씨를 돕겠다고 나섰던 거야. 이유가 뭘까... 그걸 물어본거야. 하지만 미키가 말한 대로 모두들 리츠코 씨를 이유가 있어서 돕는 건 아니야. 오히려 리츠코, 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안 해도 될 수고를 하고 있잖아? 적어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상 할 이유는 없는걸."
"그렇겠지. 그럼 어째서..."
"모두가, 리츠코, 씨를 좋아하기 때문인거야." 싱긋
...저기, 그렇게 웃어도 말이지. 이건 너무 과도한 넌센스 아니야? 나는 되물었다.
"방금 전에는 이유가 없댔잖아. 그건 이유 아냐?"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닌거야. 리츠코, 씨는 그런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이유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납득하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그럴지도."
그러니까,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 라는 건가? 뭔가 따라가기가 힘들다. 원래부터 미키는 따라가기 힘든 애였지만, 오늘 따라 더 힘들다.
"그러면... 이제 리츠코, 씨의 고민을 풀어 줄 차례인거야."
"고민이라니... 그런 건 아니라니깐."
"글쎄? 적어도 자기가 그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는 건 고민 아냐?"
"글쎄..."
"그러니까, 잘 듣는 거야, 리츠코 씨."
무슨 얘기를 하려고. 미키가 입을 열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내가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 지가 문제일까. 조금이지만 미키가 얼굴을 가까이 해 왔다.
"사랑받는다는 건... 딱히 자격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닌거야. 왜냐면..."
"..."
"좋아한다는 감정에, 이유는 없으니까."
"철저히 혼자만의 감정이야. 좋아하는 건 자유, 멋대로 단정짓는 것도 자유지만, 스스로 깨부수는 것도, 깨부숴지는 것도 자유야."
"..."
"굳이 리츠코, 씨가 책임을 져야 할 만큼 존중받아야 하는 감정은 아니라는거야. 그런 제멋대로인 것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적어도 리츠코, 씨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거야."
"...너치곤 꽤나 차가운 말이네."
"글쎄, 사실이 그런걸. 미키는 딱히 차가운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거야."
미키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는 건 말이야, 마치 꿈 같은 거야.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몰랐다가, 뒤돌아보면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돼.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좋아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 들게 되는 거야."
"..."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지. 뭐, 찾아본다고 해도 그럴싸한 이유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좋아한다는 감정에 이유는 없어. 정확히는 이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닐 뿐이지만."
조금 딴 길로 샌 듯 잠시 멈칫, 하더니 미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딴 이야기로 새버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모두들, 리츠코... 씨를 엄-청 좋아하는 거야. 그저 그런 것 뿐인 일이니까 리츠코 씨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리츠코, 씨는 그저... 받아들여주면 되는 거야. 감사하다고 했었지? 그거면 되는 거야. 보답을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닌걸. 앗, 우리 꺼 나온거야! 미키가 가지러 갔다올게~"
"..."
뭐라고 해야하나... 마음에 걸린다. 미키는 아직 나에게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키가 하는 말로 '이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마치.
"..." 홀짝
자기 얘기를 하는 것 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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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밥이 엄청 늦게 나오는 집이 된 것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