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오리가 뭔가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미키는 저렇게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해줄 것 같지가 않고,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을 아는 한 이오리는 헛점을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에, 마, 마코토 군?"
"쉬이- 조용히 해."
결단을 내린 마코토는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병원용 침대라면 눈에 띄는 자리였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침대여서, 시트를 조금 내려 가리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주의깊게 보면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오리는 자신이 여기 온 것을 모르니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거대한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자 이오리가 들어섰다. 마코토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오리는 한쪽 손에 뭔가 기다란 것을 들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미키"
"응…… 이오리"
이오리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히 미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품에는 언제나처럼 토끼 인형이 안겨 있었다. 프릴이 달린 흑백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책 속의 공주님과 같은 우아함이 있었다.
"……. 눈이 빨갛네. 눈물이라도 흘린 거야?"
"……."
"대답하지 않네, 나 완전히 미움사버린 걸까나"
마코토의 위치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미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필시 밝은 표정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런 게"
"그래? 나는 상관없지만"
이오리는 고개를 들어 방 구석구석을 훑듯이 살펴보았다. 프로듀서의 옷가지가 걸린 옷장에 이르러서 눈을 잠시 찌푸렸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시선을 미키에게로 돌렸다.
"미키라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고압 챔버 속에서는 피곤하지 않은 모양이네."
"미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야."
"잊었어? 이 방은 바깥보다 산소 농도가 훨씬 높아. 산소가 충분하면 뇌는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같아"
이오리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미키의 병실에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오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명문가 아가씨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원래 이오리는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자신의 가면을 바꿀 수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다리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대. 미키."
"미키도 알고 있는 거야……"
"아니,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오리는 오른손으로 그녀 자신의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최고급 에센스와 빗으로 정리했을 머리칼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내가 가져온 게 뭔지 알아? 목발이야."
"…… 뭐라고? 그런 건 필요……"
이오리는 미키의 말을 잘랐다.
"미키, 넌 두번 다시는 자기 두 발로 달릴 수 없어."
"그런 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미키는 항변했다. 이오리는 오른주먹을 들어 자신의 양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해볼 필요도 없이 항상 잘 했던 주제에, 이제와서 그렇게 말하기야?"
이오리의 목소리는 마치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코토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부러워해본 적 없는 사람은 765프로에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미키와 동갑내기인 이오리는 얼마나 많이 부러웠을까.
이오리는 자신을 '미나세 가의 딸'으로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이돌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찬란히 빛나는 아이돌로써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코토는 이오리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레슨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나이의 게으른 사무소 동기에게 몸매도, 노래도, 춤도 이길 수 없었으니.
그러나 이오리는 금방 얼굴을 펴고 말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미나세 가의 최신 의료기술과 이 정도의 최첨단 치료시설을 갖추고도 고작 그 정도야. 목발 없이는 절뚝거리면서 걷을 뿐이라고."
"아냐…… 미키는…… 미키적으론……"
"하아, 정말. 지난 번에도 말했는데……. 이래선 전혀 이야기가 안 되잖아."
방 안에 적막이 흘렀다.
미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런 거야...?"
"그래."
"……."
미키가 조용해지자 이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난 번에 생각해보라고 한 것도, 전혀 안 했으려나? 아니, 그렇지는 않겠지.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으니 상의 정도는 했을 거 아냐"
"무슨 생각?"
"지금까지처럼 치료 과정에 드는 돈과 재활 과정은 모두 우리 가문에서 지원하겠어. 너희 부모님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야."
"…! 미키도 돈이라면 있는 거야."
"나도 알고 있어."
이오리에게는 분한 일이었겠지만, 아이돌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미키가 그녀보다 훨씬 많았다. 미키는 명실상부한 765프로의 에이스였으니까. 비록 미키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방송국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바람에 이오리와 같은 랭크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실질적인 활동과 대우는 사무소 제일인 치하야나 아즈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 글쎄?"
"동정 때문이라면 미키는 필요없는 거야"
이오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미나세 재단의 회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그런 고귀한 출신의 아가씨가 어떻게 보면 돈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는 아이돌을 하는 이유는, 바로 도움 없이 스스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 뭐라고? 잘 듣지 못했는데, 다시 한번 말해 주겠어?"
"불쌍한 아랫것을 위해 선심쓰는 척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이오리는 기분이 내켜서 선심 쓰듯 돈을 뿌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부잣집 영애는 그만큼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소비 뿐이라면, 애초에 그녀는 그리 사치스러운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상류층에게는, 이오리 정도 되는 위치라면, 사교계의 체면을 위한 소비라는 것이 있다. 다른 집안의 자제들과 돌아다니면서 써야만 할 돈이 있고, 그것은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오리는 쥐꼬리만한 봉급 이외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 네가 뭘 알아!"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녀의 프라이드였다. 비록 그 때문에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미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이오리는 그것을 스스로 굽혔다. 단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그토록 서늘하게 날이 선 미키의 말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모욕으로 다가왔을 수밖에.
이오리의 주먹이 미키의 복부에 꽂혔다. 그녀는 두 팔로 배를 감싸안으며 무너져내렸다. 중학교 여자아이의 주먹이니만큼 실제 위력은 대단치 않았다. 그러나 내장의 상당 부분을 잃고 배를 열어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키는 틀림없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야, 미키."
"끄으…"
이오리는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섰다. 침대 위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미키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이오리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역 앞에서 받은 팜플렛으로 부채질을 하며 사무소로 들어섰다. 평소라면 신도가 차를 끌고 사무소까지 데려다 주었겠지만, 그는 오랜만에 받은 휴가로 부재중이다. 안 그래도 후덥지근한데 꽉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전차로 출근하는 건, 아무래도 이오리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걸치고 있는 원피스가 땀에 흠뻑 젖어서 축 늘어지는 느낌이 더욱 기분나빴다. 거기에다 이오리 자신의 땀인지, 아니면 옆에 있던 사람의 땀인지 도무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안녕하세- 뭐야, 너 혼자 뿐이야?"
"이오리니? 좋은 아침이야"
"끈적끈적한 것만 빼면 말이지- 잠깐, 너.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
프로듀서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다. 이오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프로듀서에게 다가갔다. 프로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약간 피곤할 뿐이야."
"피곤하다니, 어제 뭘 했길래-"
프로듀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이오리의 눈이 목덜미에서 멈추었다.
"너, 어제 집에는 들어갔어?"
"……. 이런, 역시 이오리는 속일 수가 없네. 어떻게 알았어?"
프로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와이셔츠랑 넥타이가 어제랑 똑같으니 알 수밖에 없잖아? 당신 그저께도, 그 전날에도 야근하지 않았어?"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거든. 일주일째 집에 못 들어갔어."
"...뭐?"
이오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바보가! 이러다 쓰러지면 어쩔 생각이야? 서류라면 코토리나 리츠코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되잖아!"
"일과 관련된 서류는 단순히 도장만 찍으면 전부가 아니니까. 내가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두 사람도 자기 업무로 바쁜 사람들이고."
아직 연습생이나 다름없는 몇 명을 제외하더라도 류구코마치만 신경쓰면 되는 리츠코에 비해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류구는 함께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스케쥴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러나 나머지 인원은 각자 따로따로, 여기저기서 활동을 하니 그 모두를 챙겨줘야 하는 프로듀서의 부담이 큰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오리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머릿속으로 최근 사무소의 스케쥴을 헤아려 보았다.
"당신 말야. 최근 두 달 동안 하루라도 휴일이 있었어?"
"…… 없었지."
"바보 아냐? 그러다가 과로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765프로를 블랙 기업으로 만들 셈이야? 추가 수당은 받고 있어?"
"사장님은 모르시거든."
경이적으로 멍청한 녀석이다. 이오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물었다.
"뭐야 대체? 나라면 회사를 그만두고도 남겠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야?"
"........"
1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어? 이런 시간에 누가..."
미키네 부모님은 직장이 있어 늦게야 오시고, 미키 자신이 호출하지 않으면 간호사들이 오거나 할 일도 없었다.
".... 마ㅃ... 이오리야"
미키가 빨리 리스타트를 해야할듯 ㅜㅠ
"에, 마, 마코토 군?"
"쉬이- 조용히 해."
결단을 내린 마코토는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병원용 침대라면 눈에 띄는 자리였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침대여서, 시트를 조금 내려 가리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주의깊게 보면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오리는 자신이 여기 온 것을 모르니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거대한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자 이오리가 들어섰다. 마코토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오리는 한쪽 손에 뭔가 기다란 것을 들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미키"
"응…… 이오리"
이오리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히 미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품에는 언제나처럼 토끼 인형이 안겨 있었다. 프릴이 달린 흑백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책 속의 공주님과 같은 우아함이 있었다.
"……. 눈이 빨갛네. 눈물이라도 흘린 거야?"
"……."
"대답하지 않네, 나 완전히 미움사버린 걸까나"
마코토의 위치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미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필시 밝은 표정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런 게"
"그래? 나는 상관없지만"
이오리는 고개를 들어 방 구석구석을 훑듯이 살펴보았다. 프로듀서의 옷가지가 걸린 옷장에 이르러서 눈을 잠시 찌푸렸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시선을 미키에게로 돌렸다.
"미키라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고압 챔버 속에서는 피곤하지 않은 모양이네."
"미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야."
"잊었어? 이 방은 바깥보다 산소 농도가 훨씬 높아. 산소가 충분하면 뇌는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같아"
이오리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미키의 병실에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오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명문가 아가씨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원래 이오리는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자신의 가면을 바꿀 수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다리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대. 미키."
"미키도 알고 있는 거야……"
"아니,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오리는 오른손으로 그녀 자신의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최고급 에센스와 빗으로 정리했을 머리칼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내가 가져온 게 뭔지 알아? 목발이야."
"…… 뭐라고? 그런 건 필요……"
이오리는 미키의 말을 잘랐다.
"미키, 넌 두번 다시는 자기 두 발로 달릴 수 없어."
"그런 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미키는 항변했다. 이오리는 오른주먹을 들어 자신의 양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해볼 필요도 없이 항상 잘 했던 주제에, 이제와서 그렇게 말하기야?"
이오리의 목소리는 마치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코토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부러워해본 적 없는 사람은 765프로에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미키와 동갑내기인 이오리는 얼마나 많이 부러웠을까.
이오리는 자신을 '미나세 가의 딸'으로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이돌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찬란히 빛나는 아이돌로써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코토는 이오리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레슨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나이의 게으른 사무소 동기에게 몸매도, 노래도, 춤도 이길 수 없었으니.
그러나 이오리는 금방 얼굴을 펴고 말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미나세 가의 최신 의료기술과 이 정도의 최첨단 치료시설을 갖추고도 고작 그 정도야. 목발 없이는 절뚝거리면서 걷을 뿐이라고."
"아냐…… 미키는…… 미키적으론……"
"하아, 정말. 지난 번에도 말했는데……. 이래선 전혀 이야기가 안 되잖아."
방 안에 적막이 흘렀다.
미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런 거야...?"
"그래."
"……."
미키가 조용해지자 이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난 번에 생각해보라고 한 것도, 전혀 안 했으려나? 아니, 그렇지는 않겠지.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으니 상의 정도는 했을 거 아냐"
"무슨 생각?"
"네 다리를 자르는 거 말야, 어때?"
이오리는 미소짓고 있었다.
흥미진진합니다ㅋㅋㅋ
미래인이신가
별다른 전개가 생각나지 않으면 원래 가려던 길로 갑니다
"……?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아니… 모르겠어"
이오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처럼 치료 과정에 드는 돈과 재활 과정은 모두 우리 가문에서 지원하겠어. 너희 부모님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야."
"…! 미키도 돈이라면 있는 거야."
"나도 알고 있어."
이오리에게는 분한 일이었겠지만, 아이돌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미키가 그녀보다 훨씬 많았다. 미키는 명실상부한 765프로의 에이스였으니까. 비록 미키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방송국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바람에 이오리와 같은 랭크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실질적인 활동과 대우는 사무소 제일인 치하야나 아즈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 글쎄?"
"동정 때문이라면 미키는 필요없는 거야"
이오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미나세 재단의 회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그런 고귀한 출신의 아가씨가 어떻게 보면 돈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는 아이돌을 하는 이유는, 바로 도움 없이 스스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 뭐라고? 잘 듣지 못했는데, 다시 한번 말해 주겠어?"
"불쌍한 아랫것을 위해 선심쓰는 척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이오리는 기분이 내켜서 선심 쓰듯 돈을 뿌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부잣집 영애는 그만큼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소비 뿐이라면, 애초에 그녀는 그리 사치스러운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상류층에게는, 이오리 정도 되는 위치라면, 사교계의 체면을 위한 소비라는 것이 있다. 다른 집안의 자제들과 돌아다니면서 써야만 할 돈이 있고, 그것은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오리는 쥐꼬리만한 봉급 이외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 네가 뭘 알아!"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녀의 프라이드였다. 비록 그 때문에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미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이오리는 그것을 스스로 굽혔다. 단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그토록 서늘하게 날이 선 미키의 말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모욕으로 다가왔을 수밖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오리네 집이 부자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바로 그 한 마디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오리의 주먹이 미키의 복부에 꽂혔다. 그녀는 두 팔로 배를 감싸안으며 무너져내렸다. 중학교 여자아이의 주먹이니만큼 실제 위력은 대단치 않았다. 그러나 내장의 상당 부분을 잃고 배를 열어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키는 틀림없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야, 미키."
"끄으…"
이오리는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섰다. 침대 위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미키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까놓고 말하겠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지?"
"너…"
"그 녀석은 너 때문에 죽었어, 이 다리병신아!"
그 순간 미키의 눈이 크게 떨렸다.
"아, 아냐…"
"허... 프로듀서에게... 미키는... 나는..."
미키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날의 기억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사고 순간에 그녀의 정신에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미키는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그 날의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생각나지 않는 거야..."
이오리는 미키를 째릿하고 노려보더니, 텔레비전 옆으로 걸어갔다. 마코토는 숨을 죽인 채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아. 그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편한 변명이네"
"미키는 정말로...!"
"싫어도 생각나게 해 줄 테니까. 그보다 네가 한 짓을 알려주겠어."
이오리는 홱 손을 뻗어 선반 위의 정장을 끌어내려 미키에게로 던졌다. 미키는 팔을 뻗어 받을 기운도 없는지, 자신에게 날아오는 정장을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사고가 있었던 날, 무슨 날이었다고 생각해?"
"모, 모르겠어"
이오리는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아. 허니- 허니- 하면서 쫒아다니면서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몰랐잖아. 기가 막혀서 정말..."
"그 날, 그 녀석의 생일이었어. 그 양복은 야요이가 월급을 모아서 준비한 선물이야."
미키는 물론이고, 마코토마저도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뭐, 이젠 입을 사람이 없어져 버렸지만."
"그 녀석 말야. 처음에는 조금 못미더운 구석도 있었지만......"
이오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일단 일에 적응하고 나서는 제법 쓸만해졌잖아. 매일같이 열 세명의 인원을 스케쥴에 따라 실어 나르고, 레슨도 봐주고, 서류 작업도 하고."
"알고 있어? 방송국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날에도 그 녀석은 절대 우리 앞에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거나 한 적이 없었어. 그 녀석, 주말에도 사무소에 나오거나 거래처의 회식에 불려다녔다고. 거의 초인 같은 체력이네."
"......윽."
울상을 짓는 미키를 외면하며 이오리는 텔레비전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번은 물어봤어. 그다지 돈을 많이 주지도 않는 사무소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야."
"... 뭐였을 것 같아? 대답이."
"안녕하세- 뭐야, 너 혼자 뿐이야?"
"이오리니? 좋은 아침이야"
"끈적끈적한 것만 빼면 말이지- 잠깐, 너.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
프로듀서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다. 이오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프로듀서에게 다가갔다. 프로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약간 피곤할 뿐이야."
"피곤하다니, 어제 뭘 했길래-"
프로듀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이오리의 눈이 목덜미에서 멈추었다.
"너, 어제 집에는 들어갔어?"
"……. 이런, 역시 이오리는 속일 수가 없네. 어떻게 알았어?"
프로듀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와이셔츠랑 넥타이가 어제랑 똑같으니 알 수밖에 없잖아? 당신 그저께도, 그 전날에도 야근하지 않았어?"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거든. 일주일째 집에 못 들어갔어."
"...뭐?"
이오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바보가! 이러다 쓰러지면 어쩔 생각이야? 서류라면 코토리나 리츠코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되잖아!"
"일과 관련된 서류는 단순히 도장만 찍으면 전부가 아니니까. 내가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두 사람도 자기 업무로 바쁜 사람들이고."
아직 연습생이나 다름없는 몇 명을 제외하더라도 류구코마치만 신경쓰면 되는 리츠코에 비해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류구는 함께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스케쥴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러나 나머지 인원은 각자 따로따로, 여기저기서 활동을 하니 그 모두를 챙겨줘야 하는 프로듀서의 부담이 큰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오리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머릿속으로 최근 사무소의 스케쥴을 헤아려 보았다.
"당신 말야. 최근 두 달 동안 하루라도 휴일이 있었어?"
"…… 없었지."
"바보 아냐? 그러다가 과로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765프로를 블랙 기업으로 만들 셈이야? 추가 수당은 받고 있어?"
"사장님은 모르시거든."
경이적으로 멍청한 녀석이다. 이오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물었다.
"뭐야 대체? 나라면 회사를 그만두고도 남겠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야?"
"........"
"뭐야, 이제와서 입 다물 셈이야? 말하지 않는다면 사장에게 말할 수밖에 없다구?"
"............를...좋아하니까"
"미키 때문이야..."
"..."
이오리는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오리와 프로듀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오리는 착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제서야 매끄럽게 혀가 돌았다.
"너, 너...! 프로듀서 주제에, 아이돌을 좋아해서 어쩌자는 거야!"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말야,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좋아하게 되어 버린 걸."
프로듀서는 서류를 처리하던 자세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자포자기인지 뭔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죄인처럼 단어가 지리멸렬하다.
"봐버렸어. 그 아이, 첫 오디션에서... 반짝반짝해서,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어, 심사원도, 다른 아이돌들도, 그 아이가 입을 열면 웃었고 노래하면 빠져들었어. 춤도, 잘은 모르지만, 나비처럼..."
그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달뜬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 애절하게 뭔가를 갈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모습을 보며 이오리의 머리에 스쳐간 것은, 첫째는 미키가 부럽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여줄 거야. 전 세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호시이 미키라는 이름을 연호하게 되면..."
프로듀서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고개를 의자에 기대며 누웠다.
"그 때는-, 난..."
그러고 보면, 미키가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그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미키의 첫 오디션이라면 사무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갔던 일거리였을 터다.
뭐야 대체. 댄스도 노래도 문외한이었을 터인데.
그런 사람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재능이란 건?
'미키, 대체 이 남자는 네 어떤 마법에 홀려버린 거지?'
댄스, 보컬, 비주얼. 어느 것도 미키에게 뒤지는 레벨은 아니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 이오리에게서는 그 같은 재능을 보지 못했으리라.
이오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꼬리를 살짝 내리렸다가, 다시 치켜 뜨고는.
"키잇! 여자애를 두고 다른 여자애 얘기나 하다니, 대체 뭐라는 거야 이 바보가!"
소리를 빽 질렀다.
후후 저대로 나가기 전에 야요이가 준 선물이라고 던지고 간게 원래 프로듀서에게 준 양복이랑 세트인 넥타이라서 미키가 두번멘붕하는걸 보고 싶어지네욧
그러니까 더 암울하게 써 주시죠!!
참고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