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는 대체로 5번의 기회가 있었다. 곡을 받는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곡을 받는건 다른 아이돌과 접점이 눈에 특히 띌 때 이루어진다 - 는 사실 개소리고 운영 마음대로다. 원래는 다섯 명을 무작위로 뽑아 컨셉을 부여해준 후 곡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주는 방식으로 곡을 주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 무작위의 다섯명이 지나치게 안 어우러진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래도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미시로의 아이돌들은 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어느 다섯명이 나오든 그것은 접점을 만들고 매력을 더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그게 잘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디렉터의 문제지 아이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런 랜덤의 아이돌에게서 다양한 컨셉을 볼 수 있는게 좋았다. 뮤직 비디오의 퀄리티도 나날이 발전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였을까, 이 방식을 운영이 그만두기 시작했다.
나도 프로듀서였지만 이 대기업에서 난 한 마리의 작은 새우젓이었다.
나보다 높은 프로듀서가 결정하는걸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불만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으로 안키라 등 팬들에게 원래 인기가 있었던 아이돌들이 유닛으로 나오며 더 좋은 퀄리티의 뮤비와 리얼리티를 찍었기 때문이다.
찝찝하긴 했지만 나는 우즈키의 담당도 아니었고 다른 원곡자 아이돌의 담당도 아니었다. 팬들의 보이콧도 슬슬 잊혀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동의했지만, 나는 그저 대기업의 한 마리 새우젓일 뿐이었다. 나는 내 위의 프로듀서가 얼마나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고, 높은 직책의 프로듀서 위에 뭐가 더 있는지도 몰랐다.
확실한건 내가 새우젓이라면 그들은 고래라는 것 정도.
내가 어느날 사라져도 고래는 다른 바다생물을 먹으며 어떻게든 삶을 살리란 것을 동료들은 알았고 팬들도 알았고 심지어 아이돌들도 알았다.
아사리 나나미는 그럴 때마다 낚시를 하러 갔다. 나는 그녀와 종종 동행했다. 그럴 때의 낚시는 항상 조용했다. 나나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낚시를 하지 않아서 물만 바라봤다.
나나미의 첫 데뷔곡이 발표되는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아이돌들이 데뷔를 할 시점에는 다들 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회와 희망을 보여주지만, 시기는 늘 미정이다.
권내에 든다고 곡을 받는건 아니다. 총선거 타입별의 상위 4위에 들어도 3위가 아니면 곡을 받지 못한다. 미시로는 자선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룰을 정해놓는게 필요하긴 하다만...
문제의 리얼리티에도 불구하고 같이 나온 곡 '사랑이 꽃피는 계절'은 퀄리티 좋은 뮤직비디오로 사랑을 받았다.
사랑이 꽃피는 계절과 같은 시기에 나온 팬송 "Always"의 투어 이벤트 또한 상위 5명이 아닌 다른 아이돌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억지로 드라마에 끼워맞추지 않았고, 부른 아이돌도 이번 총선거 상위권에서 처음 데뷔하게 된 아이돌들이라 그런지 반발은 덜했다.
내가 프로듀서로 입사하기 전의 팬송 꽃봉오리는 상위 5인이 그대로 불렀었는데...
어디서부터 변한걸까?
그래도 총선거는 내 머리 속에서 금방 잊혀졌다. 어차피 나는 총선거 최상위권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층의 아이돌들을 담당하고 있지 않았다. 총선거는 나에게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비교적 경쟁이 적은 패션타입의 총선거에서는 누가 처음으로 곡을 받게될지
신데렐라 걸의 화보는 어떻게 나올지... 그 정도가 다다.
사실 신데렐라 걸도 별로 안 궁금하다. 어느순간부터 매년 2위가 다음해 1위가 되는 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돌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래, 이번만큼은 해라!'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무료표를 넣곤 했다.
내 담당들? 내 담당들은 최상위권은 아니라도 늘 권내에 들고, 이벤트에도 얼굴을 비추었다. 담당이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아이돌들은 늘 상위권으로 거기서 거기인 순위를 맴돌기 때문에 앨범권에 들든 들지 않든 운영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
어느 아이돌이 나오지 않아도 또 다른 아이돌이 이벤트에 출연하니 괜찮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회사 내에서 히나코는 그렇게 불렸다. 아이돌끼리도 종종 '망상녀'란 별명을 언급했다. 페이크 다큐로 아이돌만큼이나 유명해진 망상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 (765프로덕션)와 엮일 정도로 강력한 컨셉이었으니 이름보다도 망상녀란 별명이 친숙했다.
왠지 얼굴이 붉어져있고 눈꼬리가 내려가있으면 망상중인거다.
프로듀서들끼리도 좋은 농담거리였다.
담당 프로듀서는 내가 속한 지부 때문인지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지부에는 있을지도 몰랐지만, 내 지부의 팬 커뮤니티를 전부 돌아도 히나코의 담당은 없었다.
그럼에도 히나코는 특유의 컨셉만큼은 친숙한 그런 아이돌이었다.
오래 기다렸는지 스케치북 한장 가득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왕자님이 백마에서 내려와 백마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가도 못알아볼 정도로 집중상태였다.
"히나코..?"
"앗. 아, 안녕하세요~."
히나코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오늘부로 프로듀서 님의 담당이 된 키타 히나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담당이 되었다..
아, 그럼 그 무지개 종이가 히나코의 것이었구나.
아이돌들은 이력서와 함께 또 다른 종이를 쓴다. 정해진 장수는 없는 것 같았는데, 아무 때나 쓸 수 있는건 아닌 것 같았다.
이것은 무지개색의 종이다.
회사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것치곤 근본없어보이지만, 미시로는 꼭 그런 방식을 고수했다.
아무튼 이 무지개색의 종이에는 각 아이돌의 싸인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아이돌이 직접, 소원수리 종이마냥 희망하는 스케줄과 컨셉 등을 적어둔다. 원하는 프로듀서를 직접 적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이건 새우젓이 알 수 없는 사항이다.
새우젓에게 공개된 정보로 의하면 이 무지개색의 종이는 크게 두가지를 의미한다.
하나, 이 아이돌의 전용의상을 아무때나 쓸 수 있다는 것.
원래 라이브는 단체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회사에 의상을 대여한다고 미리 신청을 해야한다.
그러나 단체복이 그렇듯 어디 한군데가 터져있거나 불량인 부분도 있고, 계속 보면 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전용의상은 중요했다. 한명만 있어도 센터로 몰아주기 좋았고, 퀄리티가 대체로 좋은 편이라 프로듀서로서도 보람이 있다.
둘, 이 아이돌의 '담당'이 된다는 것.
원하는 스케줄에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프로듀서 연차가 쌓일수록 무지개종이도 많아지기 때문에 이 담당이란게 아주 대단한 건 아니다.
진짜 "담당"이 아니라면 무지개종이에 감흥도 별로 없다.
그냥, 단순히 스케줄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용 의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스케줄이 가능하다 - 즉 개나소나 무지개 종이를 가져가면 그 아이돌이 갈려나가고 블랙기업으로 신고당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무지개종이를 가져가는건 아니다.
언젠가는 무지개종이가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아이돌이 곡을 받는 시기만큼이나 랜덤이라, 이런 프로듀서들을 위해 미시로는 무지개종이를 확정적으로 주기도 한다.
물론 프로듀서의 실적을 받아서 말이다.
이 실적은 '스타샤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로 측정되곤 한다. 특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숫자.
이 숫자가 300을 넘으면 원하는 무지개 종이를 가져갈 수 있다.
300이 쉬운 숫자는 절대 아니라 아무리 새로 나온 전용의상이 탐이 나도 가져가지 않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한달에 출시되는 전용의상은 약 5~7개다. 그 중 두 개는 기간 한정이다. 무지개 종이를 특정 날짜까지만 작성하고 그 뒤로는 프로듀서들이 받을 수 없다.
팬들도 전용의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한정 의상의 존재에 대해서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야광봉과도 연관이 되었는데, 오버로드, 포커스, 스킬 부스트 등의 야광봉은 오직 기간한정의 의상에만 딸려왔다.
일반적인 야광봉은 '스코어'라고 불렸다. 이 종류의 야광봉은 초기, 그러니까 내가 입사하기 전을 제외하곤 기간한정 의상에 딸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간한정 의상에 열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운영 측은 이에 올라운드라는, 통상 의상 치곤 배터리가 오래 가는 야광봉을 출시하며 통상에도 신경을 써줄 것임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적어도 나와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스코어보다 덜한 효과를 가진 야광봉이지만, 배터리가 오래 간다면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다. 그러니 팬들의 반응도 그대로거나 그 이상일거다.
나는 처음으로 '컨센트레이션'의 아이돌들 스케줄에 기용했다. 한창 라이브를 하던 중에 대참사가 일어났다. 음향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그러면서 야광봉의 색도 중구난방이 되었고, 팬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 컨센트레이션, 아직 많이 불안정한지 계속 프로듀서가 맡아서 컨트롤해줘야하나봐. 야광봉 관리 화면 안 보고 있었지?"
"네?"
"그게 오버로드만큼 화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신 좀 자주 끊기더라고."
"그럼...."
"그래.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프로듀서가 관리해줘야돼. 그나마 배터리는 멀쩡하니까 다행이려나."
배터리가 멀쩡한데 그렇게 야광봉이 말썽인데다가, 음향 시스템까지 간섭을 하는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
나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컨센트레이션의 아이돌도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아야했다. 그게 무지개 종이를 받아 담당이 된 자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몇번이라고 할당량을 정했다.
몇 프로듀서들은 무지개 종이를 받아도 그냥 사탕이나 머핀 등 간식만 주고 교류를 끊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라이브파였다.
컨센트레이션도 실험을 할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아....."
예상도 틀리고 생각도 틀렸다.
내가 맡은 스케줄들의 호응이 떨어지고 있었다.
프로듀서 커뮤니티에서 내 평판은 PERFECT 등급에서 GREAT로 떨어졌다. 괜찮아보이지만 아니다. 내가 이때까지 맡은 스케줄이 얼만데, 저렇게 한등급이 떨어졌다는건 최근의 스케줄이 다 혹평을 들었다는거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땐 뭔가 많이 생겨있었다.
운영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다 싶을 정도로 좋은, 첫 9인 라이브회장. 총선거곡은 당연하게도 상위 5인이 불렀으며, 심지어는 단체의상도 스케줄만 완주하면 허가권을 내주었다. 단체의상을 놓친건 좀 아까웠다.
또 뭐가 생겼으려나. 기대가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어?"
"안녕하심니과! 츠지노 아카리라고 합니과!"
"....과? 어... 다른 사무소에서 왔어?"
"아니, 쟤 신인 아이돌이야."
"...........신인?!"
이 시점에?
이미 너무 많은 아이돌이 있는데?
"다녀왔슴ㄷ.... 아, 안녕하심까. 스나즈카 아키라임다."
"아. 그, 그래. 너도 신인 아이돌이야?"
".....#신인아이돌 #상어이빨 #인플루엔서"
"애가 좀 특이하지?"
"어... 그러네...."
조금은 떨떠름했지만, 뭐.
9인 라이브회장도 생겼는데 새 아이돌도 생길 수 있잖아?
아키라가 설명했다. 7명의 아이돌을 새로 채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중 두명이 츠지노 아카리와 스나즈카 아키라라고.. 이 둘은 곡도 없고 팬들과 소통할 수단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저렇게 열성적으로 캐릭터 어필을 하는거겠지..
어떻게 잘 하면 총선거에서 첫 데뷔를 할 수도 있겠는걸. 어차피 쿨타입과 큐트타입은 콘크리트니까 신예가 나와서 상위권을 차지하면 오랜만에 이 두 타입에서도 첫 곡을 받는 아이돌들을 볼 수 있겠다.
그 두명이 들어오고 익숙한 나의 담당아이돌들도 하나 둘 사무실에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자 집에 들어온 것처럼 기분이 뭉클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데 새로운 이벤트 이야기가 나왔다. 카린, 타마미, 아야메가 주축이 되는 이벤트였다.
'너의 곁에서 계속'의 악몽이 떠올랐으나 나는 그 사건 이후 몇몇 스케줄을 거치며 카린 또한 담당하게 되었다. 카린의 무지개종이 - 전용의상의 허가권 또한 나에게 있었다.
그래. 이 이벤트에서 라이브 계획을 잘 세워서, 카린을 더 알리자.
의욕이 불타올랐다.
'너의 곁에서 계속'의 재림은 없다. 그 사건의 중심인물이었던 이 셋을 따로 분류해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만해도 운영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젠 정말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구나. 내가 휴가에서 복귀했듯이....
미시로의 운영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기분이 고양되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말단이라 회사의 리소스에 접근할 수 없었을 때. 그 때는 프로듀서가 직접 트레이너를 고용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예산이 모자랐다.
그래서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레슨이 끝나고 나서는.. 프로듀서 님이 아이돌 분을 데리고 나가셨어요. 스케줄이 있어서 급하게 하고, 그리고 또 다시 레슨하러 온다고 하셔서... 그래서 기다렸어요."
"......."
"그러다 다른 연습생 분들은 백업 일 한다고 가셨는데... 저는 담당 프로듀서님이 없어서 계속 레슨실에서 기다렸어요.."
"......."
"그런데, 나중에 프로듀서님이 들어오셔서.."
.....기억이 났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사실은 레슨을 안 해도 된다고... 트레이너 분을 섭외했다고.. 빨리 연습실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히나코한테, 혹시 도와줄게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히나코는 그냥 연습생이니까... 그렇게 물어봐주신 분은 처음이었어요... 조금은 기다렸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울 것 같았어요.. 꼭.. 비었던 하트가 채워지는 것처럼.. 그렇게 되었어요.."
"......."
"그래서 연습실에서,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했었는데.. 바로 스킵하고 트레이너분께 전화를 거셔서..."
기간마다 리셋되는 실적에는 스타샤인만 있는게 아니다.
이벤트 기간마다 새로 시작하는 실적의 포인트가 있다.
25000을 찍으면 티켓을 받을 수 있는데, 이 티켓은 과거에 했던 라이브 이벤트의 회장과 의상을 대여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그를 또 새로운 스케줄에 쓰는 것이다.
나는 이 티켓을 히나코의 예전 이벤트로 교환했다.
놀이공원에 퍼레이드라는 정석적인 스케줄이다.
같은 스케줄을 다시 하면서 히나코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또 지금은 아이돌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실적이 별로 안 나와도 좋았다.
히나코는 경쟁이 낮다는 패션타입에서도 3위를 해서 첫 곡을 받았다. 곡을 받고도 다음해에 다시 상위권에 랭크인할만큼의 팬덤은 크지 않다.
그래도 히나코가 곡을 받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히나코가 립싱크가 아니라 본래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상위권에 들어야했다.
...그러나 역시 총선은 권외로 마무리지었다.
히나코는 Trust me 이후 단 한곡도 받지 못했다.
2위를 했던 히카루도 사실상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곡 한곡한곡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히나코보다 총선 순위가 높은 아이돌도 이런데, 이렇게 되면 정말로 잊혀질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에서 발표한 신 아이돌이 이제는 전부 공개되었다. 4명은 나오자마자 총선도 거치지 않고 곡을 받았다. 무지개 종이도 이미 작성한걸로 보였다.
두명은 이미 배부되었고, 다른 두명의 것이 있을건 너무 당연했다.
'너의 곁에서 계속'이 떠올랐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운영이니까 어쩔수 없지-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 떠올랐다. CD 데뷔를 못한 아이돌은 정식 유닛이라도 무시하던 운영의 행각이.
5인 유닛이 줄어들던 것도 떠올랐다.
인기 있는 2-3인 이내의 오리지널 유닛만이 이벤트로 나올 수 있다는건.. 억지 로테이션이라도 5인에게 컨셉을 주고 곡을 주고 리얼리티를 주던 단비같은 이벤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땐 운영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패션 타입의 아이돌은 해마다 새로운 아이돌이 데뷔곡을 받아가고, 큐트나 쿨 쪽도 특채로 곡을 받곤 한다. 그리고 총선 상위권의 아이돌은 꾸준히 이벤트에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초대 신데렐라 걸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5인의 오리지널 유닛에도, 계절곡의 이벤트에도, 어떤 신곡에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이돌이 있었다.
반대로 새로이 등장하자마자 혜성처럼 세곡씩을 쓸어가는 아이돌이 있었다.
그래서 히나코가 페스 아이돌이 되는 순간을 계속 망상해왔다.
공주님의 왕관을 쓰고 있겠지.
동경하던 순간이 왔다면서 환하게 웃고 있겠지..
라이브 시작 전에는 어떤 말을 할까?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그 의상의 므흐흐도는 어느정도일까?
야광봉은 어떤 느낌일까.
어울리는 무대는 뭘까.
백댄서는 어떤 느낌일까..
뭐가 어떻게 되든 좋은 의미로 주목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꼭 무지개 종이를 받아서 전용의상을 따내야했다.
계속 같이 있어주기로 했으니까, 스케줄도 새 의상을 입고 계속 할 수 있도록.
"네 담당은 나잖아. 운영에서 무지개 종이 받았단말야. 솔직히 난 다른 무지개 종이 받고 싶었는데 높으신분들께서 담당으로 맡아줬으니 어쩔수 없지. 야광봉도 새로 출시된 종류고. 그건 좋은데 새로 출시된거니까 실험이 우선이야. 뭐 됐으면 빨리 가자고. 왕자님 어쩌고하는 헛소리할거면 안 듣는다."
"......"
"아니, 그러니까 뭐냐고? 빨리 가야된다니까. 애니버서리 이벤트도 시작했단 말이야."
"........왕자님이에요.."
"....."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런 얘기는 팬들 앞에서 어필용으로 하자?"
".........."
"얼른 안 가면 랭크업 늦어질텐데...."
"죄송해요... 딱 5분만...."
".....알았어."
대화소리가 잘 안 들렸다.
무슨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히나코는 결국 등을 돌려 다른 프로듀서를 따라갔다.
나는 가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시로 카페 안에서 통유리 벽 너머로 약속 장소를 보기만 하고 있었다.
실적 포인트를 제때 쌓아뒀어야하는데.
히나코를 믿고 페스를 위해 기다렸어야하는데 잠깐의 흔들림에 참지 못했다.
히나코의 위로를 받은 그 날부터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망상은 하지 못하지만, 스테이지에서 바라본 세계는 정말로 반짝반짝거려서...'
'현실에서도 멋진 건 있구나, 해서... 프로듀서님처럼 멋진 사람도 있고 말이에요....♪'
'속죄'를 하던 중 히나코가 말했던게 기억났다.
현실에서도 멋진건 있다...
즉, 그동안 멋진 것은 망상 속에서만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런 멋진 스테이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젠 사라졌다.
결국 그 사진은 전해주지 못했구나.
대기실에서 찾은 그 사진.
돌려주면서, 히나코가 얼마나 멋진 아이돌인지 얘기하고, 금색의 별을 붙여서 돌려주려고 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언젠간 줄 수 있으려나. 대강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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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46프로덕션의 전통적인 이벤트 '신데렐라 페스티벌' 즉 신데페스의 기간이다.
이 기간동안 두명 또는 한명의 아이돌은 '페스 아이돌'로 선택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영광은 곧 주목이다.
아이돌에게 주목보다 더한 기회는 없다.
나는 히나코의 담당을 맡게 된 이후부터 히나코가 페스 아이돌로 선택되는 모습을 꿈꿔왔다.
히나코가 계속 동경해왔던 축제의 공주님.
아름다운 성에 갇혀만 있는게 아니라, 바깥으로 당당하게 나와 뛰놀고, 기쁨을 주는 그런 공주님 히나코의 모습을
어느순간부터 나도 동경하게 되었다.
히나코의 망상이 바로 나의, 프로듀서로서의 꿈이 되었다.
그래서 히나코의 꿈이 단순 컨셉충 취급이 아니라 스토리로 다가오는 계기는 페스밖에 없었다.
이름뿐인 페스 아이돌이란 타이틀이라도 괜찮았다. 원래 내가 아끼는 것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는 그런 장식 따위에 집착하게 되는 법이다.
한달에는 대체로 5번의 기회가 있었다. 곡을 받는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곡을 받는건 다른 아이돌과 접점이 눈에 특히 띌 때 이루어진다 - 는 사실 개소리고 운영 마음대로다. 원래는 다섯 명을 무작위로 뽑아 컨셉을 부여해준 후 곡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주는 방식으로 곡을 주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 무작위의 다섯명이 지나치게 안 어우러진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래도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미시로의 아이돌들은 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어느 다섯명이 나오든 그것은 접점을 만들고 매력을 더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그게 잘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디렉터의 문제지 아이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런 랜덤의 아이돌에게서 다양한 컨셉을 볼 수 있는게 좋았다. 뮤직 비디오의 퀄리티도 나날이 발전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였을까, 이 방식을 운영이 그만두기 시작했다.
나도 프로듀서였지만 이 대기업에서 난 한 마리의 작은 새우젓이었다.
나보다 높은 프로듀서가 결정하는걸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불만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으로 안키라 등 팬들에게 원래 인기가 있었던 아이돌들이 유닛으로 나오며 더 좋은 퀄리티의 뮤비와 리얼리티를 찍었기 때문이다.
미시로 프로덕션의 운영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대다수 프로듀서의 생각이었다. 나도 동의했다.
'너의 곁에서 계속'
총선거 상위권의 다섯명이 부른 곡이다.
일을 하던 중 느닷없이 동료 프로듀서가 놀란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시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어째서 다른 아이돌들이 총선거 상위 5인의 곡을 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의라고 불리던 통보에서 우리는 그것이 드라마 촬영의 일환이란 것을 들었다.
그래도 이상했다.
총선거 상위 5인은 항상 팬송을 불렀다. 그야 당연히 총선거는 팬들이 만들어준 결과니까. 팬들이 열심히 돈을 붓고 오프를 뛰며 만들어낸 표의 결과니까.
근데 뜬금없이 아이돌끼리 찍는 웹드라마급도 안 되는 사극 단편에서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팬송을 넣는다고?
아니나다를까 반발은 심했다.
하지만 미시로는 건재했다.
...ㅂㄷㅂㄷ
확실한건 내가 새우젓이라면 그들은 고래라는 것 정도.
내가 어느날 사라져도 고래는 다른 바다생물을 먹으며 어떻게든 삶을 살리란 것을 동료들은 알았고 팬들도 알았고 심지어 아이돌들도 알았다.
아사리 나나미는 그럴 때마다 낚시를 하러 갔다. 나는 그녀와 종종 동행했다. 그럴 때의 낚시는 항상 조용했다. 나나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낚시를 하지 않아서 물만 바라봤다.
나나미의 첫 데뷔곡이 발표되는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아이돌들이 데뷔를 할 시점에는 다들 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회와 희망을 보여주지만, 시기는 늘 미정이다.
권내에 든다고 곡을 받는건 아니다. 총선거 타입별의 상위 4위에 들어도 3위가 아니면 곡을 받지 못한다. 미시로는 자선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룰을 정해놓는게 필요하긴 하다만...
"야이 운영 이 빡대가리 개싸패새끼들아."
아무리 윗사람이 없는 사무실을 쓰고있다지만 좀 격했다. 이번만은 심하다고 생각했다.
"야, 무슨 말이 그래. 뭔 일인데?"
"얘네가 유닛 활동이 처음이란다."
블루 나폴레옹.
카미죠 하루나, 아라키 히나, 사사키 치에, 카와시마 미즈키, 마츠다 사리나의 유닛으로
미시로에서 자체제작한 페이크다큐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도 나왔던 유닛이다.
그런데... 유닛활동이 처음? 이게 뭔 말인가?
이번에도 총선거곡이었다. 그놈의 총선거. 운영 얘네는 대놓고 팬들 돈 빨아먹는 이벤트에 팬들 생각을 전혀 고려 안 하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도 대본이 있다. 안다. 아는데.... 괜히 그 아이돌이 원망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본을 쓴 사람을 얼른 잘라내라는 내용의 보이콧이었다.
그 보이콧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바다의 더 깊은 곳에서 진행되는 일은, 우리가 알 리가 없다.
어쨌든 미시로는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 안심하고 이 IP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꽃피는 계절과 같은 시기에 나온 팬송 "Always"의 투어 이벤트 또한 상위 5명이 아닌 다른 아이돌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억지로 드라마에 끼워맞추지 않았고, 부른 아이돌도 이번 총선거 상위권에서 처음 데뷔하게 된 아이돌들이라 그런지 반발은 덜했다.
내가 프로듀서로 입사하기 전의 팬송 꽃봉오리는 상위 5인이 그대로 불렀었는데...
어디서부터 변한걸까?
그래도 총선거는 내 머리 속에서 금방 잊혀졌다. 어차피 나는 총선거 최상위권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층의 아이돌들을 담당하고 있지 않았다. 총선거는 나에게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비교적 경쟁이 적은 패션타입의 총선거에서는 누가 처음으로 곡을 받게될지
신데렐라 걸의 화보는 어떻게 나올지... 그 정도가 다다.
사실 신데렐라 걸도 별로 안 궁금하다. 어느순간부터 매년 2위가 다음해 1위가 되는 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돌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래, 이번만큼은 해라!'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무료표를 넣곤 했다.
내 담당들? 내 담당들은 최상위권은 아니라도 늘 권내에 들고, 이벤트에도 얼굴을 비추었다. 담당이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아이돌들은 늘 상위권으로 거기서 거기인 순위를 맴돌기 때문에 앨범권에 들든 들지 않든 운영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
어느 아이돌이 나오지 않아도 또 다른 아이돌이 이벤트에 출연하니 괜찮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얘가 이런 표정도 지었었나..."
키타 히나코란 아이돌이 아직 첫 곡을 받기 전의 이야기다.
난 이 아이돌을 알고 있었다.
간단하다. 망상녀다.
회사 내에서 히나코는 그렇게 불렸다. 아이돌끼리도 종종 '망상녀'란 별명을 언급했다. 페이크 다큐로 아이돌만큼이나 유명해진 망상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 (765프로덕션)와 엮일 정도로 강력한 컨셉이었으니 이름보다도 망상녀란 별명이 친숙했다.
왠지 얼굴이 붉어져있고 눈꼬리가 내려가있으면 망상중인거다.
프로듀서들끼리도 좋은 농담거리였다.
담당 프로듀서는 내가 속한 지부 때문인지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지부에는 있을지도 몰랐지만, 내 지부의 팬 커뮤니티를 전부 돌아도 히나코의 담당은 없었다.
그럼에도 히나코는 특유의 컨셉만큼은 친숙한 그런 아이돌이었다.
신기하다 정도였다.
히나코의 첫번째 전용의상이 나온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첫 곡을 받지 못한 아이돌 중 전용의상이 나온건 히나코가 유일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전용의상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연초록, 연분홍, 연노랑, 연하늘, 하늘빛 도는 흰색이 섞인 드레스.
미안하지만 드레스의 치마 부분은 사토 신이 만든 코스프레 의상만큼이나 조잡해보였다.
연초록이 너무 형광빛을 띄어서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양배추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내가 입사 전에 나온 의상이라 히나코의 심경을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아마 많이 복잡했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했다.내가 아이돌이라도 저 의상은 좀 그런걸, 당사자라면 어떨까...
오래 기다렸는지 스케치북 한장 가득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왕자님이 백마에서 내려와 백마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가도 못알아볼 정도로 집중상태였다.
"히나코..?"
"앗. 아, 안녕하세요~."
히나코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오늘부로 프로듀서 님의 담당이 된 키타 히나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담당이 되었다..
아, 그럼 그 무지개 종이가 히나코의 것이었구나.
아이돌들은 이력서와 함께 또 다른 종이를 쓴다. 정해진 장수는 없는 것 같았는데, 아무 때나 쓸 수 있는건 아닌 것 같았다.
이것은 무지개색의 종이다.
회사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것치곤 근본없어보이지만, 미시로는 꼭 그런 방식을 고수했다.
아무튼 이 무지개색의 종이에는 각 아이돌의 싸인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아이돌이 직접, 소원수리 종이마냥 희망하는 스케줄과 컨셉 등을 적어둔다. 원하는 프로듀서를 직접 적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이건 새우젓이 알 수 없는 사항이다.
새우젓에게 공개된 정보로 의하면 이 무지개색의 종이는 크게 두가지를 의미한다.
하나, 이 아이돌의 전용의상을 아무때나 쓸 수 있다는 것.
원래 라이브는 단체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회사에 의상을 대여한다고 미리 신청을 해야한다.
그러나 단체복이 그렇듯 어디 한군데가 터져있거나 불량인 부분도 있고, 계속 보면 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전용의상은 중요했다. 한명만 있어도 센터로 몰아주기 좋았고, 퀄리티가 대체로 좋은 편이라 프로듀서로서도 보람이 있다.
둘, 이 아이돌의 '담당'이 된다는 것.
원하는 스케줄에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프로듀서 연차가 쌓일수록 무지개종이도 많아지기 때문에 이 담당이란게 아주 대단한 건 아니다.
진짜 "담당"이 아니라면 무지개종이에 감흥도 별로 없다.
그냥, 단순히 스케줄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용 의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스케줄이 가능하다 - 즉 개나소나 무지개 종이를 가져가면 그 아이돌이 갈려나가고 블랙기업으로 신고당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무지개종이를 가져가는건 아니다.
언젠가는 무지개종이가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아이돌이 곡을 받는 시기만큼이나 랜덤이라, 이런 프로듀서들을 위해 미시로는 무지개종이를 확정적으로 주기도 한다.
물론 프로듀서의 실적을 받아서 말이다.
이 실적은 '스타샤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로 측정되곤 한다. 특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숫자.
이 숫자가 300을 넘으면 원하는 무지개 종이를 가져갈 수 있다.
300이 쉬운 숫자는 절대 아니라 아무리 새로 나온 전용의상이 탐이 나도 가져가지 않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히나코의 무지개 종이는 종류가 단 하나였다. 그 조잡한 양배추 의상, 단 하나.
그래도 데뷔곡도 못 받은 아이돌이 무지개 종이가 어디냐. 팬층에서 조금은 인기가 있다는 뜻인가.
담당이 된 기념으로 스케줄에도 몇번 데려갔었다. 실물로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가 괜찮은 무지개 종이를 갖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에 콩깍지가 낀건지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당당하게 사진을 찍어 프로듀서 커뮤니티에 올리진 못했다.
그럴만큼의 애정은 없었다.
뮤직 비디오를 돌려보지도 않고 분석도 않는다. 팬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괜히 화도 났다.
이젠 팬들도 이 전용의상의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의상이 희귀하고 좋고, 어떤 의상이 스케줄에 많이 보이는지 정리해둔 글도 있었다. 운영은 이런 반응이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오버로드' '포커스' 따위의 명칭으로 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야광봉을 대량으로 제작해 환호성을 더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이 야광봉은 콘서트나 라이브에서 팬들에게 나눠주고, 라이브 음악이 나오는 중에 중앙에서 컨트롤을 하여 야광봉의 색과 무늬 등을 결정한다.
가사에 '무지개'가 나오면 무지개색으로 야광봉이 물들기도 하는 신기한 기능이었다. 그러나 그 기능은 명칭마다 달랐다.
가령 '오버로드'는 무지개 가사와 같은 화려한 색이 많이 나오고 광명도 뛰어났는데, 배터리가 구린걸로 유명했다.
이걸 화려하다고 선호하는 층도 배터리가 닳는다며 별로라는 층도 있었다.
'스킬 부스트'는 이런 화려한 효과는 없지만 무대 조명에 적절한 색을 쏘아주며 무대와 야광봉이 잘 어우러졌고,
'포커스'는 가장 안정적인 배터리 수명과 적당한 효과를 갖고 있었다.
재밌었다.
전용의상이 여럿이면 야광봉도 여럿이었고, 팬들은 그 시너지를 보며 더욱 즐거워했다.
그런데 이 야광봉 시대에 운영이 보라색 손잡이의 야광봉을 출시했다.
'컨센트레이션'
이라고 불리는 야광봉이었다.
+1~2 일단 벌려둔 스토리 좀 더 이어갈텐데, 더 다루면 재밌겠다 싶은 내용 받습니다. 없어도 쓰기는 할 것
팬들도 전용의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한정 의상의 존재에 대해서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야광봉과도 연관이 되었는데, 오버로드, 포커스, 스킬 부스트 등의 야광봉은 오직 기간한정의 의상에만 딸려왔다.
일반적인 야광봉은 '스코어'라고 불렸다. 이 종류의 야광봉은 초기, 그러니까 내가 입사하기 전을 제외하곤 기간한정 의상에 딸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간한정 의상에 열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운영 측은 이에 올라운드라는, 통상 의상 치곤 배터리가 오래 가는 야광봉을 출시하며 통상에도 신경을 써줄 것임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적어도 나와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스코어보다 덜한 효과를 가진 야광봉이지만, 배터리가 오래 간다면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다. 그러니 팬들의 반응도 그대로거나 그 이상일거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컨센트레이션은 프로듀서의 스케줄 평판을 파괴하러 온 악마였다.
나는 처음으로 '컨센트레이션'의 아이돌들 스케줄에 기용했다. 한창 라이브를 하던 중에 대참사가 일어났다. 음향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그러면서 야광봉의 색도 중구난방이 되었고, 팬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 컨센트레이션, 아직 많이 불안정한지 계속 프로듀서가 맡아서 컨트롤해줘야하나봐. 야광봉 관리 화면 안 보고 있었지?"
"네?"
"그게 오버로드만큼 화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신 좀 자주 끊기더라고."
"그럼...."
"그래.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프로듀서가 관리해줘야돼. 그나마 배터리는 멀쩡하니까 다행이려나."
배터리가 멀쩡한데 그렇게 야광봉이 말썽인데다가, 음향 시스템까지 간섭을 하는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
나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컨센트레이션의 아이돌도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아야했다. 그게 무지개 종이를 받아 담당이 된 자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몇번이라고 할당량을 정했다.
몇 프로듀서들은 무지개 종이를 받아도 그냥 사탕이나 머핀 등 간식만 주고 교류를 끊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라이브파였다.
컨센트레이션도 실험을 할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아....."
예상도 틀리고 생각도 틀렸다.
내가 맡은 스케줄들의 호응이 떨어지고 있었다.
프로듀서 커뮤니티에서 내 평판은 PERFECT 등급에서 GREAT로 떨어졌다. 괜찮아보이지만 아니다. 내가 이때까지 맡은 스케줄이 얼만데, 저렇게 한등급이 떨어졌다는건 최근의 스케줄이 다 혹평을 들었다는거다.
적어도 라이브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나는 점점 라이브 스케줄에 흥미를 잃어갔다.
새로운 무지개 종이가 나오면 실적을 쌓아서라도 확정적으로 전용 의상을 가져와서 입혀야했다.
적어도 내 프로듀서 인생동안 동고동락하며 여러 스케줄을 함께 해왔던 그 아이에게는 꼭 모든 전용의상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실적은 곧 라이브였고 나는 컨센트레이션을 포기했다.
일에 미친듯이 몰두했다. 무지개 종이를 더 가져오는 것도 포기했다.
정말 전용의상 하나만 바라보고 이 일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의 여정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실적 쌓는 일을 그만두었다. 무지개 종이도 조금 더 생겼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점 전용의상도 눈에 익고 질려갔다.
스케줄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내 무지개종이들을 본다.
아이돌 한명한명의 얼굴을 본다.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를 모니터링하고 싶지도 않다.
총선거도 관심이 없다.
왜 그렇게 실적 쌓기에만 몰두했을까...
라이브에 이젠 재미를 느끼지도 않으면서...
나는 조금 긴 휴가를 냈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땐 뭔가 많이 생겨있었다.
운영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다 싶을 정도로 좋은, 첫 9인 라이브회장. 총선거곡은 당연하게도 상위 5인이 불렀으며, 심지어는 단체의상도 스케줄만 완주하면 허가권을 내주었다. 단체의상을 놓친건 좀 아까웠다.
또 뭐가 생겼으려나. 기대가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어?"
"안녕하심니과! 츠지노 아카리라고 합니과!"
"....과? 어... 다른 사무소에서 왔어?"
"아니, 쟤 신인 아이돌이야."
"...........신인?!"
이 시점에?
이미 너무 많은 아이돌이 있는데?
"다녀왔슴ㄷ.... 아, 안녕하심까. 스나즈카 아키라임다."
"아. 그, 그래. 너도 신인 아이돌이야?"
".....#신인아이돌 #상어이빨 #인플루엔서"
"애가 좀 특이하지?"
"어... 그러네...."
조금은 떨떠름했지만, 뭐.
9인 라이브회장도 생겼는데 새 아이돌도 생길 수 있잖아?
아키라가 설명했다. 7명의 아이돌을 새로 채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중 두명이 츠지노 아카리와 스나즈카 아키라라고.. 이 둘은 곡도 없고 팬들과 소통할 수단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저렇게 열성적으로 캐릭터 어필을 하는거겠지..
어떻게 잘 하면 총선거에서 첫 데뷔를 할 수도 있겠는걸. 어차피 쿨타입과 큐트타입은 콘크리트니까 신예가 나와서 상위권을 차지하면 오랜만에 이 두 타입에서도 첫 곡을 받는 아이돌들을 볼 수 있겠다.
그 두명이 들어오고 익숙한 나의 담당아이돌들도 하나 둘 사무실에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자 집에 들어온 것처럼 기분이 뭉클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데 새로운 이벤트 이야기가 나왔다. 카린, 타마미, 아야메가 주축이 되는 이벤트였다.
'너의 곁에서 계속'의 악몽이 떠올랐으나 나는 그 사건 이후 몇몇 스케줄을 거치며 카린 또한 담당하게 되었다. 카린의 무지개종이 - 전용의상의 허가권 또한 나에게 있었다.
그래. 이 이벤트에서 라이브 계획을 잘 세워서, 카린을 더 알리자.
의욕이 불타올랐다.
'너의 곁에서 계속'의 재림은 없다. 그 사건의 중심인물이었던 이 셋을 따로 분류해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만해도 운영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젠 정말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구나. 내가 휴가에서 복귀했듯이....
미시로의 운영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기분이 고양되었다.
야광봉과 전용의상을 적절하게 조합해서...
어디보자... 이렇게..
"...이 시간대에는 이런 BPM의 곡을 원하는구나... 그럼..."
'사랑이 꽃피는 계절'
그래, 역시 이거지.
시간이 지나며 운영의 무심함에 대한 기억이 사그라들었다.
사랑이 꽃피는 계절은 내게 발랄하고 귀여운 곡이란 이미지였다.
"그리고 이번 라이브의 센터는...."
무지개 종이를 뒤적거렸다.
사랑이 꽃피는 계절의 전용 라이브회장은 전체적으로 파스텔톤과 흰색이 섞여있다. 무대 효과도 파스텔톤에 반짝거리는 느낌으로..
".....찾았다."
조잡한 양배추 드레스.
그러나 그 색감은 사랑이 꽃피는 계절의 스테이지에는 완벽했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스테이지에 이 의상을 매치해보자 좋은 그림이 떠올랐다.
다음 센터는 히나코다.
무료 10연챠+1연금까지 약 10분이군요.. 아.. 참을 수 없다..
오토로 SSS작 하는동안 씁니다.
곧 완결날듯ㅎ
첫곡이 나오지 않은 아이돌은 늘 립싱크가 요구된다. 그래서 립싱크였지만, 그 목소리마저 수줍은 히로미의 목소리라 꽤 어울렸다.
라이브가 끝나자 히나코 전용의상의 야광봉 '스코어'들이 한가지 색으로 빛을 내뿜었다.
오랜만이었다.
함성이 울리고 나서 히나코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양배추 의상을 입고도 생글생글 웃으며 뛰어왔다.
센터가 아닌 다른 아이돌들은 이미 대기실로 간다. 그게 원래의 룰이니까.
"프로듀서님!"
어?
"프로듀서님, 최고의 무대였어요! 이거라면 왕자님도.... 무흐흐~"
"자, 잠깐 히나코."
"네?"
"너..방금 말을..."
히나코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다.
센터로 세울 때도 세우지 않을때도 무대가 끝나고 내려오면 입을 꾹 닫고 미소만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히나코. 최고의 무대였어."
히나코는 내가 없을동안 9인 라이브 회장에도 당당히 정식 멤버로서 올랐었다.
히나코의 첫 전용무대....
Trust me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걸즈 인더 프론티어'의 의상을 입고 진지하게 노래하는 히나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립싱크가 아니었다.
드디어 ㅠㅠ
공간이 좁아서 아이돌들은 5명밖에 들어오지 못하는데, 나는 항상 스케줄이 끝나면 히나코를 데려왔다.
스케줄 후에 바로 돌아가버리면 피곤하니까, 센터로 활약하는 히나코를 위한 배려였다.
히나코는 차를 끓여주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망상에 빠져있기도 했다.
"프로듀서 님~"
그러다가 동료 프로듀서가 없을 때는 나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주로 스케줄에 대한 얘기였다.
망상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딱히 물어보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후훗. 다음에는요, 물론 벽을 근사한 리본으로 장식한 작은 방 한켠에서 둘만의 시간이..."
다른 아이돌이랑은 저렇게 망상에 대한 얘기도 하는데 나한테는 왜 안하지?
프로듀서라 어려워서 그런가?
그래도 스케줄을 하면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궁금함이 커졌다.
그래서 좀 어색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건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히나코."
"므흐흐.... ...넵!"
"뭐하고 있었어?"
"어... 그게... 글쎄요오.."
"망상하고 있던거 아냐?"
"......."
"말해도 괜찮아. 어차피 스케줄 중도 아닌데 뭐."
"....프로듀서님은, 망상 얘기 싫어하실 것 같아서..."
"뭐?"
"...예전에, 히나코의 무지개 종이를 받으시기 전에...프로듀서님이랑 히나코, 만난 적 있었잖아요?"
그랬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복도에서 본 적은 있지만.. 만났었다고?
"히나코가 연습생일 때요. 레벨테스트에서 '은색'등급을 받고...."
은색....?
레벨테스트를 마치면 카드 목걸이를 받는다. 목걸이의 끈은 레벨에 따라 다른 색이다.
그리고 걸린 카드에는 이름 그리고 연습생들이 받는 고유 넘버가 적혀있다.
은색(회색)은 레벨 테스트에서 실력이 괜찮았다는 증거였다.
은색보다 낮은 등급인 단색은 타입별로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이었다.
"프로듀서 님이 입사한지 얼마 안 되셨을 때, 단체 레슨을 모집하고 있었어요."
아, 그건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무지개 종이를 받았을 때.
"그래서 저와 같은 은색 등급의 연습생들이 모였는데... 한분만 전용의상도 있는 정식 아이돌이셔서...."
"...응."
"트레이너 분들이 바빴는지, 트레이너 분들이 없으셨다고... 라이브 전이라 급하게 은색 등급의 연습생들을 모아서..."
그건 사실이 아니다.
말단이라 회사의 리소스에 접근할 수 없었을 때. 그 때는 프로듀서가 직접 트레이너를 고용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예산이 모자랐다.
그래서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레슨이 끝나고 나서는.. 프로듀서 님이 아이돌 분을 데리고 나가셨어요. 스케줄이 있어서 급하게 하고, 그리고 또 다시 레슨하러 온다고 하셔서... 그래서 기다렸어요."
"......."
"그러다 다른 연습생 분들은 백업 일 한다고 가셨는데... 저는 담당 프로듀서님이 없어서 계속 레슨실에서 기다렸어요.."
"......."
"그런데, 나중에 프로듀서님이 들어오셔서.."
.....기억이 났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사실은 레슨을 안 해도 된다고... 트레이너 분을 섭외했다고.. 빨리 연습실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히나코한테, 혹시 도와줄게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히나코는 그냥 연습생이니까... 그렇게 물어봐주신 분은 처음이었어요... 조금은 기다렸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울 것 같았어요.. 꼭.. 비었던 하트가 채워지는 것처럼.. 그렇게 되었어요.."
"......."
"그래서 연습실에서,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했었는데.. 바로 스킵하고 트레이너분께 전화를 거셔서..."
"....."
"망상같은건 싫어하시는구나... 하고."
히나코의 목걸이에 걸려있던 사진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 때로 추정되는 시점의 프로듀스 일지를 찾아보았다.
히나코의 이름을 찾는다.
.....찾았다.
"....이건 또 뭐지... 이적이라니..."
이런 기록이 있었나.
열람버튼을 누른다.
[무지개 종이를 받았다. 그런데 명단에 있는 아이돌들이 다 차서 스케줄로는 데려갈 수 없다. 그러려면 명단에 있는 아이돌 중 한명을 이적시켜야한다. 연습생 등급이라면 이적시켜도 상관 없을 것이다. 레슨 상대로는 유용하지만 당장 전용의상을 쓰려면....]
......그럼, 히나코를 스케줄로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명단 이름: 라이브 (그루브 이벤트)
유닛 수: 18개, 각 5명
인수: 1
이적: 1]
1라는 숫자가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기억조차 하지 않을 이름이었던거다.
"...괜찮아, 다 찾았어."
"후우~ 다행이다..."
"히나코."
"네?"
"아이돌하는게 재밌어?"
"네! 특히 요즘은 더 재밌어요~ 라이브도 재밌고, 스케줄도 므흐흐도가 높아요~♪"
"므흐흐도가.... 그, 좋은 망상을 할 수 있는 점수, 뭐 그런거랬나?"
"네에. 기억하시네요."
"이제부턴 히나코의 망상용어들도 차근차근 알아가야지."
"하루만에 배우실거에요♪ 히나코의 망상세계는 그야말로 '므흐흐흐흐'니까요~"
"'므흐흐흐흐'면 므흐흐도가 높은건가..."
"네~ 꽤나 높은거에요! 그러니까, 그 높은 므흐흐도로... 프로듀서 님도 꿈을 꾸게 해드릴게요. 제가 열심히 해서, 그 망상을 현실로 바꾸어드릴테니까요.."
그 후로 히나코와 하는 대화는 망상 반에 평범한 대화 반이었다.
그동안 참고 있던만큼 히나코는 쉴새없이 '므흐흐~'를 외쳐댔다.
바로 히나코를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이었다.
기간마다 리셋되는 실적에는 스타샤인만 있는게 아니다.
이벤트 기간마다 새로 시작하는 실적의 포인트가 있다.
25000을 찍으면 티켓을 받을 수 있는데, 이 티켓은 과거에 했던 라이브 이벤트의 회장과 의상을 대여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그를 또 새로운 스케줄에 쓰는 것이다.
나는 이 티켓을 히나코의 예전 이벤트로 교환했다.
놀이공원에 퍼레이드라는 정석적인 스케줄이다.
같은 스케줄을 다시 하면서 히나코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또 지금은 아이돌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실적이 별로 안 나와도 좋았다.
"관람차라구요... 밀실에 단 둘뿐이라구요오!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죠오~!
무슨 일이냐니... 무슨 일일까요오...무흐흐...프로듀서 님은 뭘 망상하셨을까요오~?"
"히나코 공주의 피로 퍼레이드라구요~! 아이돌로서 모두에게 인기가 생겨 버려서, 프로듀서로서는 기쁜 비명인가요? 그래도 히나코의 백마 탄 왕자님은 단 한 사람이니까, 괜찮다구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내게는 아직도 속죄가 남아있었다.
내가 히나코를 이적시켰던 바로 그 이벤트가 다시 돌아와서 바로 계획을 세워두었다.
이 계획에 한가지 어려움은 히나코의 그 옛날 사진을 찾는것이었다.
무지개 종이도, 지난 이벤트로의 티켓도 있지만 히나코의 목걸이에 있었던 그 은색 테의 사진은 없다.
그래서 스케줄이 있기까지 수소문을 해가며 찾았다.
무지개 종이도 아닌데 정말 찾기 한번 어려웠다.
로컬 오디션장의 창고에서 열쇠를 받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플래티넘 오디션장은 연습생들만 있는 로컬 오디션장과는 다르게 관문이 좀 높았다. 아직은 내게 권한이 없었다.그것 하나 찾으러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다 그 사진을 찾았다. 라이브가 끝난 대기실의 바닥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어디서 떨어진거지..."
아마 이적을 계획하던 그 명단에서 떨어진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그 사진을 찾았다.
전용의상, 무지개 종이를 받기 전의 내가 히나코에게 못해준 것을 해주듯이...
"프로듀서 님! 오늘도 최고의 라이브였어요~"
무대가 끝나고 신이 나서 재잘재잘 얘기하는 히나코가 점차 익숙해졌다.
그때는 슬슬 총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히나코가 첫 곡을 받았던 총선거가...
총선거의 몇가지 법칙 중 하나였다.
히나코도 그럴것이었다.
히나코는 경쟁이 낮다는 패션타입에서도 3위를 해서 첫 곡을 받았다. 곡을 받고도 다음해에 다시 상위권에 랭크인할만큼의 팬덤은 크지 않다.
그래도 히나코가 곡을 받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히나코가 립싱크가 아니라 본래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상위권에 들어야했다.
...그러나 역시 총선은 권외로 마무리지었다.
히나코는 Trust me 이후 단 한곡도 받지 못했다.
2위를 했던 히카루도 사실상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곡 한곡한곡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히나코보다 총선 순위가 높은 아이돌도 이런데, 이렇게 되면 정말로 잊혀질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에서 발표한 신 아이돌이 이제는 전부 공개되었다. 4명은 나오자마자 총선도 거치지 않고 곡을 받았다. 무지개 종이도 이미 작성한걸로 보였다.
두명은 이미 배부되었고, 다른 두명의 것이 있을건 너무 당연했다.
'너의 곁에서 계속'이 떠올랐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운영이니까 어쩔수 없지-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 떠올랐다. CD 데뷔를 못한 아이돌은 정식 유닛이라도 무시하던 운영의 행각이.
5인 유닛이 줄어들던 것도 떠올랐다.
인기 있는 2-3인 이내의 오리지널 유닛만이 이벤트로 나올 수 있다는건.. 억지 로테이션이라도 5인에게 컨셉을 주고 곡을 주고 리얼리티를 주던 단비같은 이벤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땐 운영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패션 타입의 아이돌은 해마다 새로운 아이돌이 데뷔곡을 받아가고, 큐트나 쿨 쪽도 특채로 곡을 받곤 한다. 그리고 총선 상위권의 아이돌은 꾸준히 이벤트에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초대 신데렐라 걸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5인의 오리지널 유닛에도, 계절곡의 이벤트에도, 어떤 신곡에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이돌이 있었다.
반대로 새로이 등장하자마자 혜성처럼 세곡씩을 쓸어가는 아이돌이 있었다.
히나코는 총선거의 결과에도 그 뒤 운영의 행보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계속 꾸준히 공주님과 왕자님이라는, 꿈과 같은 망상 세계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히나코는 피곤했는지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히나코..."
대답이 없었다. 정말로 곤히 자고 있었다.
"......히나코.... 나 힘들어..."
"......."
"그냥 다 힘들어...."
소파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내 앞에 히나코의 손이 스륵 내려왔다. 뒤척이는건가, 하고 앞을 봤더니 히나코가 눈을 뜨고 있었다.
다 듣고 있던 거다.
그럼 이 손은...
".....프로듀서님..."
"...응.."
"저 계속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
"....왕자님은 조금 늦게 오는구나, 하고 계속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정말로 오셨어요."
히나코는 망상 속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었다.
"왕자님이 제 앞에 있는게, 현실이.... 지금이 된 거에요.."
"....."
"......그러니까, 혼자였을 때도 기다렸으니까.. 왕자님이 있는 지금은.. 더 힘내서 기다릴 수 있어요... 둘이서 즐겁게. 그렇게, 왕자님과 지내다 보면... 언젠가 멋진 공주님도 될 수 있겠죠? 므흐흐..."
히나코를 더 알리고 싶고 더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다. 프로듀서라고 불리고 있지만 운영에게 나는 고등어의 먹잇감조차 안 되는 하찮은 존재다.
그래도, 히나코에게는 말해주고 싶었다.
히나코는 내게 정말 소중하고, 앞으로도 계속 있어줄 것이라는 것을.
다음 날도 라이브를 했다.
라이브는 싱겁게 끝이 났다.
늘 하던 곡에 립싱크니까 새삼 새로울것도 없었다.
"프로듀서님~"
라이브가 끝나고 히나코가 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 라이브도 좋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늘 하는 말이다.
"응, 잘했어."
잠시 라이브의 이야기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히나코는 여느때처럼 차를 끓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히나코. 할 말이 있어."
"네에~"
"내 담당 아이돌이 되어줘."
"........네?"
히나코가 들고있던 티백을 떨어뜨렸다.
히나코는 웃고 있었다.
동시에 울고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얼굴로 히나코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코의 망상이 곧 나의 꿈이었다.
히나코가 계속 동경해왔던 축제의 공주님.
아름다운 성에 갇혀만 있는게 아니라, 바깥으로 당당하게 나와 뛰놀고, 기쁨을 주는 그런 공주님 히나코의 모습을
어느순간부터 나도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 안에서는 그러려면 기다리고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성밖을 당당하게 뛰쳐나가는 공주님은 될 수 없었다.
모두에게 동경을 받으려면 우선 밖으로 나가야한다. 그리고 밖에 나갈 수 있는 권한은 이 공주님에게는 없었다.
중요한건 밖에 나가는거다.
그 주목이 바로 아이돌의 영광이다.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
공주님의 왕관을 쓰고 있겠지.
동경하던 순간이 왔다면서 환하게 웃고 있겠지..
라이브 시작 전에는 어떤 말을 할까?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그 의상의 므흐흐도는 어느정도일까?
야광봉은 어떤 느낌일까.
어울리는 무대는 뭘까.
백댄서는 어떤 느낌일까..
뭐가 어떻게 되든 좋은 의미로 주목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꼭 무지개 종이를 받아서 전용의상을 따내야했다.
계속 같이 있어주기로 했으니까, 스케줄도 새 의상을 입고 계속 할 수 있도록.
그러나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러던 어느날.
"운영 얘네는 대체 뭔 생각이냐?"
또 동료 프로듀서였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늘 그렇지 뭐."
"아니, 그게.. 카렌이 페스돌이야."
난 또 뭐라고.
"그게 왜?"
"린이 트라이어드 의상 받은지 꽤 됐잖아. 무지개 종이의 종류가 너무 많아지면 트라이어드의 유닛이..."
일단 지르고 보는건 운영의 특기다.
그건 별로 놀라울게 없었다.
"그리고 카렌은 지난 애니버서리에도 무지개종이가 나왔는데..."
그런걸 신경쓸 레벨이었으면 나온지 4개월된 신 아이돌 4명을 지난 1년을 축하하는 자리인 애니버서리 이벤트에 넣었겠냐.
나는 생각으로만 반박하며 적당히 얘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이번엔 컨셉 포토가 아니라 짧은 티저 동영상이 나왔어."
"그렇구나."
"머리카락도 움직인데. 무지개 종이 세장으로 교환해준다는데."
"그렇구나... 난 몇년 전쯤부터 내가 팬인지 프로듀선지 헷갈린다."
"둘 다 아니고 새우젓이지 뭐."
"그렇지... 그런데 페스돌이 한명이야?"
"아니, 두명."
"다른 한명은 누군데?"
"몰라?"
"모르지."
".....히나코야."
"뭐?!"
너무나도 불확실한 숫자다.
히나코에게 연락을 해봐야했다.
만약 내가 무지개 종이를 받지 못하면 히나코는...
다른 프로듀서의 스케줄에 계속 불려가겠지.
그건... 좋은건가?
히나코를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그래도 다른 프로듀서의 스케줄에서 히나코를 보고 싶진 않았다. 이기적이래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본능적으로 생각이 먼저 나왔고 일을 할 때도 자꾸만 튀어나왔다.
받고 만다.
그놈의 무지개종이 받고 만다.
그래서 히나코가 페스의 아이돌이 되고, 더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계속 옆에서...
정말 미친듯이 실적을 쌓았다. 하루만에 20이 쌓였다. 너무 급하게 쌓아올린 실적이라 더는 오르지 않는 구간에 진입한 것 같았다. 1 정도나 가끔 올라갔다. 다른 프로듀서들이 얘기했던 '폐광'이 된것이다.
연락이 잘 안 닿았고, 그보다도 내가 일을 하느라 히나코에게 연락을 할 틈이 없었다.
그걸 비로소 알았다.
나는 히나코 앞에서 담당 프로듀서로서 당당히 전용의상을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야광봉에 맞춰 무대와 세트리스트를 생각하며 라이브 스케줄을 짜고 싶었다.
그러려면 무지개 종이를 받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히나코. 무지개 종이를 들고 갈게. 00시에 페스에서 보자.'
히나코가 사무실에 들러줄 시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모에 그렇게 써서 남겼다.
문자로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없더라도 사무실에 들러주길 바랐다.
실적 포인트를 쌓으면서도 계속 생각을 했다.
무지개종이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히나코와 다른 프로듀서였다.
"바로 다음 라이브 가야되는데 여기는 왜 들러야된다는거야?"
"....담당 프로듀서 님이...."
"네 담당은 나잖아. 운영에서 무지개 종이 받았단말야. 솔직히 난 다른 무지개 종이 받고 싶었는데 높으신분들께서 담당으로 맡아줬으니 어쩔수 없지. 야광봉도 새로 출시된 종류고. 그건 좋은데 새로 출시된거니까 실험이 우선이야. 뭐 됐으면 빨리 가자고. 왕자님 어쩌고하는 헛소리할거면 안 듣는다."
"......"
"아니, 그러니까 뭐냐고? 빨리 가야된다니까. 애니버서리 이벤트도 시작했단 말이야."
"........왕자님이에요.."
"....."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런 얘기는 팬들 앞에서 어필용으로 하자?"
".........."
"얼른 안 가면 랭크업 늦어질텐데...."
"죄송해요... 딱 5분만...."
".....알았어."
대화소리가 잘 안 들렸다.
무슨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히나코는 결국 등을 돌려 다른 프로듀서를 따라갔다.
나는 가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시로 카페 안에서 통유리 벽 너머로 약속 장소를 보기만 하고 있었다.
실적 포인트를 제때 쌓아뒀어야하는데.
히나코를 믿고 페스를 위해 기다렸어야하는데 잠깐의 흔들림에 참지 못했다.
히나코의 위로를 받은 그 날부터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망상은 하지 못하지만, 스테이지에서 바라본 세계는 정말로 반짝반짝거려서...'
'현실에서도 멋진 건 있구나, 해서... 프로듀서님처럼 멋진 사람도 있고 말이에요....♪'
'속죄'를 하던 중 히나코가 말했던게 기억났다.
현실에서도 멋진건 있다...
즉, 그동안 멋진 것은 망상 속에서만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런 멋진 스테이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젠 사라졌다.
결국 그 사진은 전해주지 못했구나.
대기실에서 찾은 그 사진.
돌려주면서, 히나코가 얼마나 멋진 아이돌인지 얘기하고, 금색의 별을 붙여서 돌려주려고 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언젠간 줄 수 있으려나. 대강 생각하자.
히나코는 더 성장할테니까, 그만 미련을 놓아주자고.
이젠 눈뜰새없이 바쁠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믿어주자고.
히나코는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END
..
이 창댓의 마무리를 지으러 왔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응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히나코 프로듀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