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볼 곳은 다 본 것 같다.
탐색 결과 이곳은 그저 스산하기만 한, 심령현상 등의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장소였다.
이상한 일이 생기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으니, 나한테는 잘 된 일이지.
"꺄악!"
무언가가 터지는 작은 소리와 작은 물소리에 겹치며 우리가 서 있는 좁은 장소에 란코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누군가 던진 물풍선에 맞은 것처럼 칸자키가 흠뻑 젖은 상태로 서 있었다.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은, 방금 그녀가 뒤집어쓴 차가운 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란코에게 명! 중!"
이어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패닉에 빠진 칸자키가 혼자서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란코!"
"칸자키!"
말할 것도 없이, 나와 아스카 또한 칸자키를 뒤쫓는다.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거지?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그녀를 쫒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떨면서 연신 싫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일단 진정시킨 다음 데리고 나가야겠다.
이곳에 오자고 할 때 말렸어야 했어.
"진정해, 란코."
"누가 장난쳤을 뿐이야. 괜찮아. 괜찮으니까-"
덜컹거리는 소리도 물풍선을 던진 사람이 낸 소리일까.
이건 심하잖아.
이런 질 나쁜 장난을 한 사람, 어딘가에 숨어 소리죽여 웃고 있을 그 사람의 낯짝이 보고 싶은걸.
혹시라도 주변에 숨어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나의 눈 앞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주위에 놓인 먼지 쌓이고 낡은 물건들이 일제히 덜컹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가벼워 보이는 물건들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우리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뭐지?!"
"이제 그만! 싫어어어어어!!"
"나, 나가자!"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도망치자.
누가 장난치고 있건 말건 상관없어.
도망가자.
이제 이런 곳에는 단 일 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아.
빨리 도망쳐야 해.
"헥... 헥..."
"흐으..."
"후우우... 무... 무용담이... 늘어났군.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질의 무용담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그, 그런 소리가... 나와...?"
"이, 이, 이 몸은 정말로 심연 속을 들여다보았단 말이다! 그런 허언이... 나, 나오는가!"
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 칸자키.
"여기, 다시는 오지 말자."
"우리들의 호기심이 빚어낸 비극의 편린에 비춰본다면, 합당한 말이군."
"...이제부터 저곳은 금단의 영역이니라."
이제 슬슬 레슨을 받으러 프로덕션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다.
방금같은 일을 잊어버리는 데는, 다른 데 열중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현재, 아스카와 나, 그리고 니나는 니나의 제안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다.
마침 시간대도 숨바꼭질을 하기 좋은 오후였기에 니나의 제안을 즉각 승낙했었지.
이 숨바꼭질에는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
니나와 내가 같은 곳에 숨어 있다는, 약간 불리한 숨바꼭질이라는 특이점이.
이렇게 된 이유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듣자 니나가 우리 둘이 숨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혹은 니나가 우리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으로, 니나를 숨게 하는 게 좋을지 술래를 시키는 것이 좋을지, 어느 쪽이 덜 위험할지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안심이 되지 않았기에 내가 니나와 같은 곳에 숨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걸로 걱정은 없어.
아스카가 술래라서 다행이야.
"미안, 니나. 같이 숨는 건 별로 안 좋아할 텐데..."
"무슨 소리를 쳐 하시는건가요? 헤헷."
숨바꼭질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는 '혼자서 숨는다'는 룰을, 그것도 세 명이서 하는 숨바꼭질에서 어겼기에 우리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아스카에게 들키면 바로 숨바꼭질이 끝나게 되는 재미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어딘가 즐거워보였다.
"원래 숨바꼭질을 할 때는 혼자서 숨는 게 보통이잖아?"
"그래서 니나는 지금이 좋은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다니.
이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신입 언니의 말대로, 숨바꼭질을 할 때는 맨날 어디 구석에 가서 혼자 외롭게 쳐박혀있는 겁니다. 니나, 외로운 거 졸라 싫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입 언니와 함께 숨고 있으니 외롭지 않아서 좋은겁니다!"
외롭지 않으니까 함께 숨는 것이 좋다.
"니나는, 외로운 게 정말로 싫은가보구나."
"정말로 싫습니다. 니나는 같이 노는 게 좋은겁니다."
"니나는... 아스카같은 멋진 아이돌이 나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니나처럼 귀여운 옷을 입고 귀여운 행동을 하며 귀여운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이 나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그걸 왜 니나한테 쳐 묻는 겁니까?"
"그냥,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사실은 아직 망설임이 존재하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페스티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상무에게로 가, 다른 노선을 택할 수 있다. 아스카나 프로듀서가 아쉬워하겠지만, 그들도 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그래서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나의 심정 정도야 이해해 줄 것이다.
아니, 정말로 이해해 줄지는 모른다.
그저 내 이기심에서 나온 생각을 믿고 싶을 뿐일지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나간다고 했던 페스티벌에 나가지 않는다면 뒷수습이 필요할테지만, 아마 상무의 입장에서도 귀여운 쪽으로 나가다가 급선회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내가 상무가 원하는 대로 데뷔한다면 더 좋을 테니 내가 페스티벌을 포기하게 된다면 나중에 결점이 되지 않도록 뒷수습을 깔끔하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상무 쪽이 더 성공하기 쉬워보이고.
역시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포기하는 것이 나아.
하지만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잖아.
나는 옳은 거야?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냐고.
니나를 바라다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한다.
그것이, 한심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내가, 꼭 나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만 같아서 한심하게 보인다.
또,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을 했으면서 아직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 자신이 우습게만 여겨진다.
어라?
프로듀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타치바나의 뺨에 미묘한 홍조가 감돌기 시작한다.
내 프로듀서는 어린 아이까지 홀리는 죄 많은 남자인 것 같다.
"타치바나는 프로듀서를 좋아하나 보네?"
"저에게 프로듀서는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 또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이름을 허락한 거야?"
"네."
프로듀서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나를 살짝 꺼리는 듯 하던 타치바나의 태도가 조금씩 풀어져갔다.
프로듀서는 대체 어떻게 이 아이의 마음을 녹여내어 타치바나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친밀함의 증표로 사용하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경계를 풀어나가게 만든 것일까.
궁금증이 낳은 궁금증에 휩싸여간다.
이런 상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물어보자.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친해졌는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어?"
"별다른 감정은 없었어요. 저와 프로듀서는 그저 아이돌과 프로듀서라는 공적인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접점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일과 관련해서는 믿음직해 보여서 첫인상은 좋았던 것 같네요."
확실히, 그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과 안경이 엘리트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하지.
"그런데 어떻게 이름을 허락하게 된 거야?"
"그건..."
"예전에 제가 어떤 일을 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어요."
"실수?"
꼼꼼해 보여서 실수할 것 같지 않은 타치바나가 실수라니.
"그 일에 대한 연구와 예습은 미리 끝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실수할 일은 없었어야 했지만 감독의 변덕 때문에 일의 내용이 약간 바뀌었고, 그 때는 경험도 얼마 없었던지라 갑자기 바뀐 일의 내용에 당황해서 실수를 하고 말았죠."
"그래서?"
"예상하셨겠지만, 프로듀서가 제 실수를 메꿔주셨어요. 그 때 제가 해결할 수 없던 일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봤던 때부터 신뢰하게 되었던 것 같네요."
타치바나의 말대로, 이미 예상했던 이야기다.
조금 뻔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
"아무튼, 저희는 다른 아이돌들도 겪을 만한 일들을 겪어왔어요. 제가 실수를 하고 프로듀서가 뒤처리를 하게 되거나 서로 간의 의견 차로 싸우는, 그런 일들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친해지고 서로를 믿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거야?"
"...네."
"타치바나는 프로듀서를 얼마나 좋아해?"
"그거야 당연히..."
무어라 답하려던 타치바나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잡담이 길었네요."
그리고 싸늘한 태도로 말을 잘라냈다.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풀어져가던 태도는, 어딜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3 이제 무엇을, 혹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뭔가 전개가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기억하는 타치바나 양은 이것보다 쿨했는데 말이죠.
캐릭터 붕괴인가... 다시 써야 하나...
타치바나와의 이야기가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약간 어색해진 나와 타치바나의 사이에 아스카가 끼어들어 나를 친구 사이의 대화라는 분위기 속으로 초대해, 어색한 기류로부터 단절시켰다.
"슬슬, 네가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그곳, 너의 둥지이자 요람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같은데."
"정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느새, 시간이 나를 따라잡은 모양이다.
아스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오늘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말없이 다가온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은, 같이 가지 않겠어?"
그런 나에게, 아스카가 먼저 같이 돌아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온다.
평소에는 일이나 레슨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고, 시간이 나도 서로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가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오늘 이런 제안을 해 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내 아쉬움을 알아차려서일까, 단순한 변덕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그럴까?"
뭐, 이유야 어찌됐건 상관없나.
아스카와 조금 더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스카와 함께 걷는, 노을이 깔린 익숙한 귀갓길.
혼자 걷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다. 그래서 그 길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은 아깝다.
하지만 둘이서 걷는 이 길이 나에게 선사하는 시간은, 너무나 귀중하고 또 소중하다. 이상하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 또한 아까워진다.
+3 전혀 같을 수 없는, 소중함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아쉬움의 마법 속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그저 이 시간을 즐기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이 시간을 추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행동한다면, 어떤 행동을?
140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2 노는 도중에 어떤 일이 생길까?
+3 생긴다면, 어떤 일이?
어째서야.
"...얘들아?"
노는 것은 좋다.
좋지, 좋아.
그런데, 다음으로 향한 장소가 심령 스폿이라면, 전혀 좋지 않다고.
"이곳이 바로 부정한 기운이 집결하는 장소인가...!"
"보기만 해도..."
"저, 정말 들어갈 거야?"
무서운 장소로 향해서 좋았던 분위기를 다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나.
덜컹.
"으으으으..."
"지, 진정해, 란코. 우연, 우연일 뿐이니까."
이럴 줄 알았지.
우리가 이곳에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들려오기 시작한 저 덜컹거리는 소리가,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어간다.
"여,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특히 칸자키를.
+1~3 여기서 나가는 게 좋을까, 칸자키를 진정시키는 게 좋을까?
"일단 진정해. 이런 곳이라면 고양이같은 작은 동물들이 추위를 피해서 들어와 있다가 움직이면서 소리를 냈을 수도 있잖아?"
"카나하의 말도 일리있어. 그러니 그깟 허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어서 본래의 너로 돌아와."
내가 보기에는 저 모습이 본래의 칸자키 같은데.
"그, 그것도 그렇군. 알겠다! 마왕이 사이한 기운에 사로잡혀 본래의 힘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
"잘 생각했어. 그럼, 이곳의 심층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속해볼까."
"그럴까..."
아스카도 살짝 불안해 보이지만, 나간다는 선택지는 생각한 적 없는 듯 하다.
+2~3 이제 어떤 일이 생길까.
"란코에게 명 중!"
탐색 결과 이곳은 그저 스산하기만 한, 심령현상 등의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장소였다.
이상한 일이 생기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으니, 나한테는 잘 된 일이지.
"꺄악!"
무언가가 터지는 작은 소리와 작은 물소리에 겹치며 우리가 서 있는 좁은 장소에 란코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누군가 던진 물풍선에 맞은 것처럼 칸자키가 흠뻑 젖은 상태로 서 있었다.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은, 방금 그녀가 뒤집어쓴 차가운 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란코에게 명! 중!"
이어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패닉에 빠진 칸자키가 혼자서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란코!"
"칸자키!"
말할 것도 없이, 나와 아스카 또한 칸자키를 뒤쫓는다.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거지?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그녀를 쫒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떨면서 연신 싫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일단 진정시킨 다음 데리고 나가야겠다.
이곳에 오자고 할 때 말렸어야 했어.
"진정해, 란코."
"누가 장난쳤을 뿐이야. 괜찮아. 괜찮으니까-"
덜컹거리는 소리도 물풍선을 던진 사람이 낸 소리일까.
이건 심하잖아.
이런 질 나쁜 장난을 한 사람, 어딘가에 숨어 소리죽여 웃고 있을 그 사람의 낯짝이 보고 싶은걸.
혹시라도 주변에 숨어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나의 눈 앞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주위에 놓인 먼지 쌓이고 낡은 물건들이 일제히 덜컹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가벼워 보이는 물건들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우리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뭐지?!"
"이제 그만! 싫어어어어어!!"
"나, 나가자!"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왔어!
도망치자.
누가 장난치고 있건 말건 상관없어.
도망가자.
이제 이런 곳에는 단 일 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아.
빨리 도망쳐야 해.
"헥... 헥..."
"흐으..."
"후우우... 무... 무용담이... 늘어났군.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질의 무용담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그, 그런 소리가... 나와...?"
"이, 이, 이 몸은 정말로 심연 속을 들여다보았단 말이다! 그런 허언이... 나, 나오는가!"
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 칸자키.
"여기, 다시는 오지 말자."
"우리들의 호기심이 빚어낸 비극의 편린에 비춰본다면, 합당한 말이군."
"...이제부터 저곳은 금단의 영역이니라."
이제 슬슬 레슨을 받으러 프로덕션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다.
방금같은 일을 잊어버리는 데는, 다른 데 열중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3 프로듀서는 내 바뀐 머리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녕, 카나하."
"신입 언니가 머리를 쳐 잘라버린 거예요!"
프로듀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니나도 있었나.
"응? 그렇네?"
"어, 어때요?"
혹시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까.
"잘 어울려. 좋네."
"감사해요. 저... 프로듀서?"
"왜 그래?"
"혹시 머리를 자른 것 때문에 지장이 생긴다던가 하는 일은..."
"그럴 일은 없어. 안심해."
없는 건가.
다행이다.
"다행이네요."
이제 레슨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슨 가려고?"
"니나랑 졸라 놀아주면 좋겠는겁니다!"
"...네. 지금 가려고요. 미안해, 니나."
나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니나와 같이 놀아줬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여유는 없다.
"조금 있다 놀아줄게."
"니나는 지금 심심한데..."
샐쭉, 니나의 입이 살짝 튀어나온다.
정말로 미안해.
+3 레슨이 끝나고 난 후, 어떤 일이 생길까. 아니면, 어떤 일을 할까.
좋은 전개가 생각나지 않아요...
아니 슈코가 가볍게 응원해준다던가(사심)
아스카와 니나 사이에서 갈등.
초 갈등 초 갈등 하다가 그럼 더블데이트 하면 되는거지!!! 라고 입밖으로 실수로 내놓는 카나하....
@ 를 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레슨 끝.
죽을 것만 같아.
레슨을 받을 때마다 생각나는 궁금증 하나.
프로듀서는 이번 페스에 쓸, 내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이 안무를 어떻게 빠른 시간 안에 준비할 수 있었던 걸까.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의상도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볼까.
"많이 나아졌네?"
"가... 감사합니다..."
실력이야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지만, 체력은 영 아닌 것 같다.
힘들어.
"카나하."
"신입 언니!"
레슨실을 나서자마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니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조금 의외인데.
"오늘의 시련은 끝이 났으니, 이제 회포를 푸는 것이 어때?"
"이제 니나랑 지쳐 자빠질 때까지 놀아주는 겁니다!"
아스카와 니나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똑같은 내용의 다른 말들.
이걸 어쩐다.
분명 선약은 니나와 되어 있었지만, 아스카와도 놀고 싶다.
그렇다고 아스카를 내버려두기는 조금 곤란한데.
어쩌지?
"카나하?"
"신입 언니?"
니나냐 아스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쩔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선택의 기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더블 데이트라도 하면 되겠네."
아차.
입밖으로 꺼내버렸다.
"아스카 언니랑 같이 노는 겁니까? 니나, 신나는겁니다!"
"그런데 카나하, 방금 전까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던 거지? 설마 니나와 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것은 아닐 테고..."
생각해보니, 니나한테서 아스카가 같이 놀아줬다는 말을 들었었지.
처음부터 함께 논다는 선택을 하면 되는 거였는데, 뭘 고민한 걸까.
"벼, 별 거 아니야."
"고민이 있으면 알려주길 바래."
정말로 별 거 아닌데.
"그럼, 갈까."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카나하?"
가고 싶은 곳이라.
나는...
+2 내가 할 말.
1. 딱히 없는데?
2. 내가 가고 싶은 곳은...
+3 우리가 놀러가게 될 장소.
"근처 공원에 가보고 싶어."
"뭐 하세요? 빨리 쳐 따라오시라고요~"
어린 아이가 험한 말을 쓰면 놀랄 법도 하건만,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니나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니나 왔니?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오늘도 벤치에 쳐 자빠져 계시네요?"
"허허, 욘석."
익숙해진 걸까.
나는 아직도 놀라고는 하는데 말이지.
"자주 놀러온 것 같네, 니나."
"다른 놀아줄 사람이 딱히 없을 때마다 프로듀서와 함께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하더군."
꽤 자상하네, 프로듀서.
+3 무엇을 할까. 아니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욕이 없어어어어...
도망친다!
지금 의욕이 제로 상태라서 말이죠...
마침 시간대도 숨바꼭질을 하기 좋은 오후였기에 니나의 제안을 즉각 승낙했었지.
이 숨바꼭질에는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
니나와 내가 같은 곳에 숨어 있다는, 약간 불리한 숨바꼭질이라는 특이점이.
이렇게 된 이유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듣자 니나가 우리 둘이 숨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혹은 니나가 우리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으로, 니나를 숨게 하는 게 좋을지 술래를 시키는 것이 좋을지, 어느 쪽이 덜 위험할지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안심이 되지 않았기에 내가 니나와 같은 곳에 숨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걸로 걱정은 없어.
아스카가 술래라서 다행이야.
"미안, 니나. 같이 숨는 건 별로 안 좋아할 텐데..."
"무슨 소리를 쳐 하시는건가요? 헤헷."
숨바꼭질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는 '혼자서 숨는다'는 룰을, 그것도 세 명이서 하는 숨바꼭질에서 어겼기에 우리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아스카에게 들키면 바로 숨바꼭질이 끝나게 되는 재미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어딘가 즐거워보였다.
"원래 숨바꼭질을 할 때는 혼자서 숨는 게 보통이잖아?"
"그래서 니나는 지금이 좋은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다니.
이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신입 언니의 말대로, 숨바꼭질을 할 때는 맨날 어디 구석에 가서 혼자 외롭게 쳐박혀있는 겁니다. 니나, 외로운 거 졸라 싫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입 언니와 함께 숨고 있으니 외롭지 않아서 좋은겁니다!"
외롭지 않으니까 함께 숨는 것이 좋다.
"니나는, 외로운 게 정말로 싫은가보구나."
"정말로 싫습니다. 니나는 같이 노는 게 좋은겁니다."
앞으로는 이 아이와 더 자주 놀아줘야겠네.
마냥 숨어있는 것도 지루하니, 니나와 이야기를 해보자.
+3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 앵커가 됐군요. 그러면 음...좀 진지한 주제인 느낌이 있지만. 니나는 아이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니나는... 니나는 아이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짱 좋은 겁니다! 놀아주는 사람도 많이 생겼고,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놀아주는 사람이 많이 생겼기에 좋다, 라.
실로 어린아이 같은 이유.
그렇기에 웃음이 나는, 그런 이유.
"그러니까 신입 언니도 니나와 마구 놀아주셔야 합니다?"
"응, 그럴게."
니나의 말이, 거기에 담긴 순수함이 너무나도 귀여워 나도 모르게 니나를 끌어안는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차갑게 식어버린 옷의 겉표면을 안고 있어 차가워져야 할 내 품이, 어째서인지 포근하니 따뜻해지는 것만 같다.
"신입 언니?"
내 행동에 살짝 놀라는 니나.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미안. 싫었니?"
"싫었다기보단, 갑자기 그런 짓거리를 쳐 해대서 놀란 겁니다!"
"그래?"
싫지 않다면, 잠깐 동안은 이러고 있을까.
+2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까.
+3 니나는 어떤 대답을 해줄까.
귀여움과 건방짐이 함께 느껴지는ㅋㅋㅋㅋ
"나는 니나처럼 좋은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신입 언니야는 쳐 멋진 겁니다! 그러니까 좋은 아이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질문에 니나가 눈을 반짝이며 답해온다.
이 아이는, 나를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니나, 신입 언니가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신입 언니를 졸라 좋아하는 겁니다!"
"...고마워."
쓰담쓰담.
+1 이제 무엇을 하지?
+2 (주사위. 45 이하일 경우 니노미야 양이 둘을 찾아냄.)
니나가 생각하기엔 아스카같은 멋진 아이돌(쿨)과 니나같이 귀여운 옷을 입는 아이돌(큐트) 중 어떤게 주인공에게 더 어울릴거라 생각하는지 묻는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서요.
<상무를 선택하는 게 좋느냐 vs 지금 프로듀서를 믿는 게 좋느냐>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보는 것이 좋았을 질문.
"니나는... 아스카같은 멋진 아이돌이 나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니나처럼 귀여운 옷을 입고 귀여운 행동을 하며 귀여운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이 나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그걸 왜 니나한테 쳐 묻는 겁니까?"
"그냥,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사실은 아직 망설임이 존재하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페스티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상무에게로 가, 다른 노선을 택할 수 있다. 아스카나 프로듀서가 아쉬워하겠지만, 그들도 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그래서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나의 심정 정도야 이해해 줄 것이다.
아니, 정말로 이해해 줄지는 모른다.
그저 내 이기심에서 나온 생각을 믿고 싶을 뿐일지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나간다고 했던 페스티벌에 나가지 않는다면 뒷수습이 필요할테지만, 아마 상무의 입장에서도 귀여운 쪽으로 나가다가 급선회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내가 상무가 원하는 대로 데뷔한다면 더 좋을 테니 내가 페스티벌을 포기하게 된다면 나중에 결점이 되지 않도록 뒷수습을 깔끔하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상무 쪽이 더 성공하기 쉬워보이고.
역시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포기하는 것이 나아.
하지만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잖아.
나는 옳은 거야?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냐고.
니나를 바라다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한다.
그것이, 한심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내가, 꼭 나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만 같아서 한심하게 보인다.
또,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을 했으면서 아직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 자신이 우습게만 여겨진다.
+3 너는 이런 한심한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줄거니, 니나.
나의 기분?
"그러니 어느 게 어울릴지 대갈통 빠개지도록 고민하면서 시간낭비할 필요 따위 없는 겁니다!"
그런가.
바꾸지 않아도 되는 건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답을 들어버린 것 같다.
"그럼-"
"찾았다."
내 말을 자르고,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들켜버렸네.
+3 자,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도 좀 끼워주는 것이 인생의 섭리라고 생각되는데.
카나하 : ... 그건....
니나 : 아스카 언니도 니나랑 쳐 놀아주는 겁니다! 숨어있는 동안 무지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다.
아스카와 함께하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고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녀가 알게 된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알리고 싶지 않다.
"그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아스카 언니도 니나랑 쳐 놀아주는 겁니다! 숨어있는 동안 무지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
"아스카 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신입 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겁니다! 이런 숨바꼭질은 처음이라 즐거워 뒤질 것 같았습니다!"
니나의 두루뭉술한 답에 아스카는 만족한 듯, 더 묻지 않았다.
하긴,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캐물어야겠다는 생각은 나지 않겠지.
+2 이제 무엇을 할까.
더 놀고 싶으면 사무실에서 놀아도 되니까.
"그만 갈까?"
사무실에 도착하니, 타치바나가 혼자 소파에 앉아 타블렛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나머지는 일을 간 모양이다.
+3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빠른 발판!
있을 경우엔 뭐... 일하러 가야지...
p.s 너무 노래방 자주 가는 기분이 들지만 넘어가죠~~ 보드게임 하는 걸 적을까 했는데 너무 복잡하고 시제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니 패스
"안녕, 타치바나."
"안녕하세요."
어딘가 쌀쌀맞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을 꺼리는 태도같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하러 갔어?"
"네."
역시.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 친해질 겸 말이라도 붙여 볼까.
"타치바나, 오늘 시간 있어?"
+1~3 타치바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1. "...시간이라면 있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2. "아뇨."
요즘 노래방에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지만, 타치바나와 간 적은 없으니까.
"노래방이요?"
"죄송하지만 저는 빼고 가 주세요."
거절당했다.
"연습도 되고 좋잖아?"
"연습은 놀면서 하는 게 아닌데요?"
타치바나가 어린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분명 나는 잘못한 게 없을 텐데, 어쩐지 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무래도 데려가기가 쉽지 않겠어.
"노는 것이라기보다는 즐겁게 레슨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애초에 레슨과 노래방은 다르잖아요."
가기 싫어서 내 말에 반박하고 있는 걸까, 그저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돼서 반박하고 있는 걸까.
어찌 됐건 저 쪽에 있는 아스카와 니나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지만, 둘이서 노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조금 삐쳤다.
+1~3 (콤마, 낮은 값)어떻게 설득하는 게 좋을까.
(고개를 돌리며 혼신의 눈물 한방울)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한 방울 흘린다.
과연 내 눈물이 타치바나에게 보였을까.
그나저나 나 연기에 재능 있는 거 아냐?
"따, 딱히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데요."
반응에서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들으니 약간 슬프다.
"난 그저 타치바나의 즐거운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건 사실이다.
타치바나는 통 웃지를 않으니까.
아이돌 활동은 즐겁게 해야 하는 것일 텐데, 타치바나의 모습을 보면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으니까.
아니면, 즐겁지만 내색하지 않을 뿐일까.
...생각해보니 나도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3 타치바나의 대답은?
"아직 저도 미숙하니까 풀어질 수는..."
타치바나는 정말 어린아이가 맞는 걸까.
사실 24세라거나 그런 게 아닐까.
너무 어른스럽잖아.
"그렇, 구나..."
솔직히,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
타치바나와 함께 이야기나 나눠 볼까.
"읏샤."
타치바나의 옆자리에 앉자, 타치바나가 나를 바라본다.
"노래방에 가시려는 것이 아니셨나요."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야기나 하자 싶어서."
"...에토 씨는 지금쯤 레슨으로 바쁘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아픈 곳을 찔려버렸다.
"휴식도 필요하니까. 니나와 약속한 것도 있었고."
"하긴, 레슨을 할 때는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죠."
"...휴식과 놀이는 다르지만."
나의 변명에 타치바나가 납득과 불신이 섞인 투로 대꾸한 뒤, 연이어 중얼거렸다.
나보다 어린 아이와 대화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다.
이제 이야기를 이어나가볼까.
"그럼 타치바나는 쉴 때 뭘 해?"
"저요? 저는 책을 읽거나..."
자꾸 들러붙는다며 귀찮아하면 어쩌지, 라고 생각했지만 타치바나는 의외로 자신이 어떻게 휴식시간을 보내는지 순순히 알려주었다.
다행히도 귀찮다거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네.
아니면 빨리 떨어뜨리고 싶어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본받으라는 걸까?
+2 아무튼,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까.
+3 타치바나는 어던 말을 할까.
아이디어... 고갈...
다만 제발 타치바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나는 상황에 휩쓸려 즐거울 틈도 없는데 말이지.
"힘들지만, 즐겁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후미카 언니같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즐거우니까요."
"다만, 다른 사람들이 제발 타치바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예쁜 이름인데, 어째서 이런 컴플렉스를 가지게 된 걸까.
살짝 안쓰럽다.
"프레데리카 씨라던가,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꾸만 이름으로 부른다고요! 남이 싫어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재밌다고 계속!"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것 같다.
나라도 성으로 불러줘야겠어.
일단 번뜩, 하고 떠오른 궁금증 하나를 해결하자.
"고생이 많겠네. 그런데, 프로듀서도 너를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2 타치바나의 대답은 어떨까.
요즘 계속 짧게, 늦게 쓰네요. 죄송합니다.
어라?
프로듀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타치바나의 뺨에 미묘한 홍조가 감돌기 시작한다.
내 프로듀서는 어린 아이까지 홀리는 죄 많은 남자인 것 같다.
"타치바나는 프로듀서를 좋아하나 보네?"
"저에게 프로듀서는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 또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이름을 허락한 거야?"
"네."
프로듀서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나를 살짝 꺼리는 듯 하던 타치바나의 태도가 조금씩 풀어져갔다.
프로듀서는 대체 어떻게 이 아이의 마음을 녹여내어 타치바나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친밀함의 증표로 사용하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경계를 풀어나가게 만든 것일까.
궁금증이 낳은 궁금증에 휩싸여간다.
이런 상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물어보자.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친해졌는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어?"
"별다른 감정은 없었어요. 저와 프로듀서는 그저 아이돌과 프로듀서라는 공적인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접점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일과 관련해서는 믿음직해 보여서 첫인상은 좋았던 것 같네요."
확실히, 그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과 안경이 엘리트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하지.
"그런데 어떻게 이름을 허락하게 된 거야?"
"그건..."
"예전에 제가 어떤 일을 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어요."
"실수?"
꼼꼼해 보여서 실수할 것 같지 않은 타치바나가 실수라니.
"그 일에 대한 연구와 예습은 미리 끝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실수할 일은 없었어야 했지만 감독의 변덕 때문에 일의 내용이 약간 바뀌었고, 그 때는 경험도 얼마 없었던지라 갑자기 바뀐 일의 내용에 당황해서 실수를 하고 말았죠."
"그래서?"
"예상하셨겠지만, 프로듀서가 제 실수를 메꿔주셨어요. 그 때 제가 해결할 수 없던 일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봤던 때부터 신뢰하게 되었던 것 같네요."
타치바나의 말대로, 이미 예상했던 이야기다.
조금 뻔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
"아무튼, 저희는 다른 아이돌들도 겪을 만한 일들을 겪어왔어요. 제가 실수를 하고 프로듀서가 뒤처리를 하게 되거나 서로 간의 의견 차로 싸우는, 그런 일들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친해지고 서로를 믿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거야?"
"...네."
"타치바나는 프로듀서를 얼마나 좋아해?"
"그거야 당연히..."
무어라 답하려던 타치바나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잡담이 길었네요."
그리고 싸늘한 태도로 말을 잘라냈다.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풀어져가던 태도는, 어딜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3 이제 무엇을, 혹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뭔가 전개가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기억하는 타치바나 양은 이것보다 쿨했는데 말이죠.
캐릭터 붕괴인가... 다시 써야 하나...
타치바나와의 이야기가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약간 어색해진 나와 타치바나의 사이에 아스카가 끼어들어 나를 친구 사이의 대화라는 분위기 속으로 초대해, 어색한 기류로부터 단절시켰다.
"슬슬, 네가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그곳, 너의 둥지이자 요람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같은데."
"정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느새, 시간이 나를 따라잡은 모양이다.
아스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오늘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말없이 다가온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은, 같이 가지 않겠어?"
그런 나에게, 아스카가 먼저 같이 돌아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온다.
평소에는 일이나 레슨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고, 시간이 나도 서로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가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오늘 이런 제안을 해 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내 아쉬움을 알아차려서일까, 단순한 변덕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그럴까?"
뭐, 이유야 어찌됐건 상관없나.
아스카와 조금 더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스카와 함께 걷는, 노을이 깔린 익숙한 귀갓길.
혼자 걷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다. 그래서 그 길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은 아깝다.
하지만 둘이서 걷는 이 길이 나에게 선사하는 시간은, 너무나 귀중하고 또 소중하다. 이상하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 또한 아까워진다.
+3 전혀 같을 수 없는, 소중함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아쉬움의 마법 속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그저 이 시간을 즐기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이 시간을 추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행동한다면, 어떤 행동을?
앵커가 좀 기네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다음 사람으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