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타카로 이색연화접 ~ Red and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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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3, 2013 22:51에 작성됨.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의 이야기야. 한 여덟 살 정도?
그때 나는 물론 오키나와에 있었고, 엄마랑 오빠랑 같이 살고 있었지. 
그 이야기라는 건 바로 그 시절에 있었던 일, 이색(二色)의 신비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라구.



“오빠 따윈 몰라! 흥이다! 메롱이라구! 이 바보 멍텅구리야!”

그 시절엔 다 싸우면서 크는 법이니까, 지금은 얼굴을 안 본지 오래돼서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땐 하루가 멀다 하고 오빠랑 싸우기 일쑤였지. 그땐 나도 오빠도 너무 어렸으니까.
그 날 역시 오빠랑 별일도 아닌 걸로 싸우고 난 후에 집밖으로 뛰쳐나왔어. 

애들이 다 그렇잖아? 무작정 뛰쳐나와 막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왜 뛰고 있는지, 어디를 달려가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라구. 물론 그때의 나도 그랬지.
퍼뜩 정신을 차렸더니 어딘지도 모르는 곳,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 거야. 이대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엄마를 못 만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어.

그리고 내 생각엔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아.
막 눈물 때문에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에 웬 신기한 여자아이가 하나 들어온 거지. 신기하다…. 으음…. 우갸-! 역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구! 
어, 어쨌든 신기한 여자아이였어.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 동네의 그 누구도 그 여자아이 같은 은발, 아니, 그땐 꼭 백발로 보였으니까. 하얀 머리카락을 하고 있지 않았거든. 아, 할머니들 빼고.
어렸을 때도 발이 넓은 게 자랑이었지만, 그런 여자아이는 적어도 우리 동네에선 한 번도 본적이 없었어.

흰 머리에 붉은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 키는 분하게도 나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기억해. 그 여자아이는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완전 넋을 잃고는 춤을 추고 있었어. 나는 또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왜냐하면 그 모습이 어렸던 나도 확실하게 인식할 만큼 아름다웠으니까. 아름답다라는 말을 그제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얼마나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비가 한 방울씩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는 내가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왔던 길을 어떻게든 되짚어보자고 생각하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나는 무언가 허전하다는 걸 느꼈어. 
그 여자아이가 사라져버렸던 거야.

그 짧은 시간에 대체 어디 간 걸까라고 생각할 무렵,

“실례함미다만.”

“우갸-!”

“무례하군뇨,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놀라다니.”

방금 전의 그 여자아이가 어느새 내 코앞까지 와 있었어. 그건 누구든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구.

“너, 너너너너너 뭐야!”

꼭 옛날 사람이나 입는 것 같은 붉고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

“뭐냐니까!”

“그것보다 실례함미다만 부타카고 싶은 것이 있샤온데.”

얼굴이 인형같이 이쁜데다가 말투도 꼭 옛날사람 같아서 꼭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발음이 이상하지 뭐야, 잘 보니 앞니가 하나 빠져있더라구.

“어딜 그러케 보쉬는 검니까.”

“…이빨.”

“엣? 아, 엇흠. 이건 성장의 상징이람미다. 이제 곧 새로운 이빨이 생길 거라고 어머님께서 말쓤하셨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인가? 당연한 거잖아?

“그,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일이야?”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그 여자아이를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못 보던 녀석이 이상한 춤을 추더니 소리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꼭 귀신 같잖아?

꼬르륵…

“배가 몹쉬 고파서 그러는데 먹을 거슬….”

전혀 무섭지 않아졌어.
귀신은 배고프다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진 않겠지. 그건 여섯 살 때의 나도 알고 있었다구.

“미, 미안…. 지금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런….”

여자아이의 표정은 어제 1시간 동안 댄스 레슨을 한 다음 물통을 집어 들었는데 물통이 비어있었을 때 마코토의 표정이랑 비슷해졌어.

“어, 응…. 그럼 같이 찾아보자!”

“무어슬…. 말쓰미신지.”

“먹을 거!”

그 애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풀어졌고, 무엇보다도 표정이 너무 절박했기에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애를 도와주고 싶어졌던 거야.
어릴 때야 워낙 사내애같이 놀았었으니까 먹을 것 구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구. 바로 그 애의 손목을 잡고 근처에 있는 산으로 뛰어갔어. 
마침 운 좋게도 산딸기가 많이 자라있는 곳이 있어서 말이야, 산딸기를 가득 따다 줬지.

“이건….”

“왜? 산딸기 처음 먹어봐?”

“이건…. 기묘한 마시군요.”

“왜, 왜…? 맛없어?”

내 불안한 목소리에 그 애는 빠진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어.

“맛이씁니다. 그대의 호이에 감사를.”

“호이?”

“호으이.”

“뭔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겠지! 아하핫!”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느저꾼요. 제 이름은 시쇼 탸카네라 함미다.”

“탸카네?”

“아뇨, 탸카네.”

“탸카네.”

“탸카네!”

“제대로 말했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빠진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서 그런 발음을 한 거겠지만, 그땐 꼭 이상한 애인 줄 알았다구.

“어쨌든, 내 이름은 히비키, 가나하 히비키라구!”

“만나셔 반갑슴미다. 그리고 감사함미다, 히비키.”

“흐흥,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후훗, 히비키는 친절하시군요.”

“그래, 이제 배고픈 건 괜찮아진 거야?”

“네, 덕부네.”

괜찮아질 수밖에 없었겠지, 산딸기를 그렇게나 먹었는데. 내가 아는 남자애들도 그렇게까지는 못 먹던데 말야.
그렇게 그 애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니, 이제 내 문제가 다시 생각나더라구. 여기서 어떻게 집에 돌아가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고미니라도 이쓰심니까.”

“아, 아니….”

“이쓰시죠?”

그 애의 눈은 단호했어, 마치 엄마가 날 혼낼 때처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술술 말해버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다고.
그랬더니 그 애는 상냥하게 웃었어.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요.”

“응? 넌 상관없잖아.”

“충부니 상관있담니다. 히비키는 저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세미니까요.”

나는 계속 거절했는데 고집이 대단하더라구. 그래서 결국 둘이서 함께 길을 찾았어.
…어떻게 됐냐구? 그야 물론 찾았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거겠지.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나에게 그 애는 그저 살며시 웃을 뿐이었어. 그게 진짜 아름다워서 난 그저 멍하니 그 애가 웃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어린애인데도, 귀엽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웃음이었어.

그 날 이후로 그 애랑은 자주 만나게 되었지. 그 애랑 나는 척 보기에도 성격이 전혀 달랐는데 신기하게 마음이 잘 맞았어. 그 애랑 있으면 가족들이랑 같이 있는 것처럼 편안해서 정말 좋았지. 그 애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춤은 대체 뭐야? 왜 추는 거야?”

“언젠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할까요.”

아, 그땐 이미 이빨이 다 자랐을 때였거든.

“높은 곳?”

“네, 제가 향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한 분야의 정점.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분야가 대체 뭔데?”

“히비키, 아이도올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이도올?”

“네,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 아이도올의 정점입니다.”

“타카네….”

“네, 히비키.”

“정점이라는 게 뭐야?”

“…당신에게는 꽤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애가 가르쳐준 아이돌이란 건 꽤나 굉장했던 것 같아, 그거 하나를 가지고 오키나와를 뛰쳐나온 걸 보면 말이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냐구? 글쎄….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그거면 되지 않아?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도 타카네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지. 물론 난 그 요상한 붉은 기모노 비슷한 옷은 입지 않았지만.

…어째서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냐구? 이걸로 끝이야, 그 애와의 이야기는. 그 다음해에 그 애가 홀연히 사라져버렸거든. 하지만 난 계속 아이돌을 향한 꿈을 키워왔고, 결국 가출해서 도쿄까지 와서 이 사무소에 캐스팅됐다, 뭐 그런 이야기라구.
그 애? 나도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 애도 분명 나처럼 어딘가 아이돌사무소에서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여기 들어온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는데, 그 애는 나와 비슷한 정도로 대단하니 아마 데뷔를 앞두고 있지 않을까?

응? 뭐야, 오늘 우리 사무소에 새로운 아이돌이 온다고? 이 바보 프로듀서! 그런 건 나에게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거 아냐! 빨리 가자, 빨리!
근데 프로듀서는 새로 온다는 애 누군지 봤어? …아직 못본 건가, 그럼 이 내가 더 빨리!

안녕-! 나, 가나하 히비키라구! 만나서 반갑….

타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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