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야「허풍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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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2, 2013 00:00에 작성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초에 잠들 수 없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새벽 공기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는데, 집안의 갑갑한 공기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먼지 가득한 공기가 내 폐를 옥죄여온다. 항상 새벽만 되면 이렇게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한 채, 내 기분은 모르겠다는 듯이 붉게 물든 새 아침을 가져오는 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 것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었다. 새벽이라는 귀중한 휴식시간을 불면증이라는 깡패에게 내주고, 밤새 뒤척이며 고민한 흔적은 너무나 간단하게 다크서클이란 흔적을 남기고 만다.
 ‘치하야의 노래는 참 좋아!’
 ‘다음 앨범도 기대할게요!’
 유명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중압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누군가에게 기대받는다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는 것은 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걸까. 목덜미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다 깬 잠을 쫒아내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본다. 입꼬리가 어색하게 당겨지고, 당겨진 볼을 따라 표정까지도 어색해진다. 다시 입꼬리를 내리자, 형편없이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밤잠을 설치며 계속해서 짓고 있었을 표정이 이렇다니. 그녀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돌로 보이지 않는 얼굴이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의 일들. 라이브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모두에게 고마워했던 날들. 다음에 이어졌던 공연과 연말 라이브. 그 이후로 나 자신도 많이 유해지고 어두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잠과 함께 찾아오는 허탈감만은 어쩔 수 없겠지. 유우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내가 피하지 않고 직시한다고 해도, 깊게 파인 상처자국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잠이 오지 않는 것은 그 일과는 크게 상관없기도 하고.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이 슬픔을 잊을 수 있겠지...’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었던 밤도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잠자는 공주’의 가사는 마치 내가 쓴 가사처럼 내 가슴에 닿는다. 푸른 빛 너머로 눈물은 날려 보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해가 뜨는 걸 기다리는 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우리 사무소의 동료들은 다들 너무나 대단하다. 춤도 노래도 외모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 중에서도 특별한, 너무나 반짝이는 사람들뿐이다. 모두의 장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 하루 종일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실이 너무나 좋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열등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그런 열등감을 이기려는 조바심 가득한 나의 모습은 항상 거울 속에만 있다. 당연히 그녀들 앞에서는 그럴 수 없겠지. 막연한 미래를 어둡게 가리는 그림자는 내 삶 전체에 여전히 드리워진 채였다. 어색한 웃음 띤 가면을 억지로 이 악물고 써 가며 날 숨기던 예전을 떠올리면 심장이 조여 온다. 모두의 덕으로 그 가면을 간신히 벗었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엔 기대라는 새로운 가면이 내게 다가온다.
 ‘다른 모두보다 내가 특출나게 나은 게 있을까?’
 ‘노래만으로 정점에 오를 수 있을까?’
 ‘다음 앨범이 사람들의 기대치를 채워줄 수 있을까?’
 무수한 고민과 번뇌들은 여전히 어깨를 부술 듯이 짓누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갖는 기대치가 무게감이 되어 달려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 나는 다른 사람보다 중력을 더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라는 짐과 열등감이라는 킬러는 내 목을 꺾어버릴 듯이 덤벼들고 있다.
 ‘더 이상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10년 전의 꿈과 지금의 꿈이 똑같다. 나는 10년 동안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물고 제비처럼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불면증도 10년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왔다. 오직 노래만이 나를 재워주었다. 그야말로 자장가. 나지막히 스며드는 속삭임 같은 노래들. 십중의 팔구는 그저 조용히 잠들겠지만, 나머지 1은 잠들지 못하였지. 집 한켠에 쌓여있는 수많은 클래식 CD들. 그리고 요즘 들어 조금씩 내가 가진 CD의 일부를 채워나가고 있는 하루카의 앨범. 모두의 앨범. 그리고 모두가 추천해준다고 가져왔던 앨범들. 마지막으로 「약속」의 데모CD.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모든 음악들이, 내 자장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잘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고맙지만. 마치 세뇌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께름칙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항상 조바심과 싸우는 나를 해가 떠 있는 동안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밤이 되어 원래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내가 돌아오고 나면 쓴 비린내를 삼키며 웃게 된다. 물론 좋아서 웃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승자는...’
 석연찮은, 개운치 못한 판정. 내가 잘났단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퍼포먼스가 우리보다 특출나게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의 능력이 그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큰 점수 차이. 차라리 비등비등한 승부 끝에 정정당당한 패배를 했다면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참는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리고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오면 거울 앞에서 그 쓰디쓴 뒷맛을 조심스레 곱씹는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는 그 뒷맛이 입안에서 맴돌고, 나는 그 뒷맛을 지워내기 위해 양치질을 하듯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나를, 나의 동료들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아픔이다.

 밤이 길다. 여전히 머리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할 뿐이다. 잠이 들기는 글렀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생각을 하고, 떠오르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맡긴 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 사실인가요.’
 적어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10년이나 최고의 가수를 꿈꾸며 달려왔지만 아직도 꿈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모두의, 그리고 유우의 앞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마주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힘겹게 참아왔지만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이 바닥’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해도 그만 두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 비정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힘이 닿는 곳까지 악착같이 나아가야만 한다. 나는 가수로써, 아이돌로써. 그야말로 우성으로써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응원을 받아 힘을 얻는 내가 있었다. 머릿속에 팬들의 응원이 다시금 떠오르고, 지금까지의 고민이 마치 눈 녹듯 사라져간다. 조금 기분파 같은 느낌도 들긴 하지만 이런 것은 나쁘지만도 않은 일이다. 그 팬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그걸 통해 더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악수회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는 대신 아무 것도 적혀 있지도, 그려져 있지도 않은 CD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녀는 내가 엉겁결에 CD를 손에 들자 활짝 미소를 짓고는 내게 말했다.
 ‘언니처럼 되고 싶어서 저도 노래를 불렀어요! 집에서 한 거지만 제 꿈의 첫 발걸음이에요! 언니가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에선 차마 내색하지 못했지만, 사무소에서 눈물이 터진 나를 모두가 안아주었었지. 다들 부러움의 눈초리로 CD를 바라보기에, 사무소에서 조심스레 CD를 재생하기도 했다. 그녀의 노래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좋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에,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라이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기분이 들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내 노래가 누군가를 바꿨다는 건데,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이 일을 그만둘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 되어 있었다. 낮의 나는 그저 허풍쟁이의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허풍쟁이의 허풍을 믿고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고마운 것이다.

 어느새 해가 떴다. 오늘도 조바심과 싸우며 지겨운 일상을 보내야 하겠지만, 마주보던 날들과 울고 웃던 밤.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허풍쟁이가 되어 노래를 부르러 간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가 가사로 만들어 노래로 불러주었던 「약속」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 누군가가 듣고 싶을 말을 노래하기 위해서, 오늘도 자신감 넘치는 척 허풍을 치며 나아갈 것이다. 나라는 나침반을 보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허풍쟁이로 살아가야지. 
 오늘따라 태양이 밝다. 좋은 징조다. 허풍쟁이의 새 아침이 밝았다.



72절... 기념으로 짧게 부랴부랴 써봤습니다.
모티브와 내용 일부는 Pinodyne의 노래 중 '허풍쟁이'와 'Re:허풍쟁이', 그리고 '고마워서' 에서 따 왔습니다. 가사에서 비슷하게 따 온 서술도 좀 많이 있네요. 댓글에 유튜브 링크를 해 둘 생각이니 한번쯤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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