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막대한 유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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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9, 2013 23:41에 작성됨.

 타카츠키 야요이는 원래 타카츠키가의 자식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하나뿐인 친척이었던 이모네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카츠키 가에게도 야요이에게도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미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이모네 가족에게는 야요이까지 맡아서 키울 경제적인 여력은 없었다. 야요이는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으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야요이의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과 생명보험 지급금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야요이는 아직 한참 어렸다. 한 명의 어린애를 어른으로 성장시키기까지 부모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도 다했이었다. 그나마 없었더라면 이모와 이모부는 야요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건 고아원보다는 혈연이 있는 친척집이 낫지 않은가.


 처음에는 양친을 하루아침에 잃은 야요이를 불쌍히 여겨 잘 대해주던 그들도 가계가 휘청일 정도가 되자 난감해했다. 부모님의 유산은 말 그대로 필요 최저한의 돈이었다. 자기 친자식들도 돌봐야 하는 이모네 형편 때문에 그나마도 조금씩 갉아먹혀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탓하거나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야요이의 양부모, 이모와 이모부는 야요이에게 자신들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자기 자식들과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했고 실수로라도 야요이가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야요이는 친부모를 기억하고 있었다. 야요이는 스스로 눈칫밥을 먹으며 지냈고,  한창 자랄 나이에 맘껏 먹지 못한 탓인지 야요이는 동급생들보다 키가 작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야요이는 항상 밝게 웃고, 동생들을 잘 챙기는 야무진 아이였다. 동생들은 자기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처럼 고생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몰랐으니까. 어찌보면 야요이는 연기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동생들은 야요이가 친누나가 아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야요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은 느끼긴 했다. 그러나 그저 맏언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노래는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야요이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거리였다. 악보도 없이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를 기억했다가 따라 부를 뿐이었지만 동생들은 좋아라 했다. 야요이의 노래를 들은 아기는 금새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곤 했다.


 야요이는 집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려서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래 미성년자인, 그것도 초등학생인 야요이에게 일을 시키면 안되겠지만 타카츠키 집안이 어려움을 아는 단골 상인들이 배려해준 것이었다. 매일 신문배달을 하면서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는 말씀드릴 수 없어서 대부분의 돈은 저금통에 들어갔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스포츠신문을 배달하던 중이었다. 담 너머로 신문을 넣으려던 야요이는 우연히 신문을 땅에 떨어뜨렸고, 펼쳐진 지면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되었다.



765프로덕션. 아이돌 모집. 오디션으로 선발

성과제. 최저임금 보장. 가창력 댄스실력 우대. 초심자 환영

식사비 및 교통비 일체  지급.



 아이돌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노래하는 건 좋아한다. 거기에 식비나 교통비 같은 비용을 제공해준다고 하니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사무소도 전차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았다. 야요이는 오디션에 지원했다.


 “웃우! 타카츠키 야요이입니다! 노래가 좋아서 지원했습니다!”


 넥타이와 양복을 입은 남성 앞에서, TV에서 봤던 CF송을 노래했다.


 이틀 후 집으로 걸려온 전화. 야요이는 합격했다. 자신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야요이는 기뻤다. 부모님은 아직 어린 야요이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당장 여섯 남매의 식비도 아슬아슬한 형편에 야요이를 막지는 못했다.


 사무소로 출근한 야요이는 첫날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연예 사무소라고 들었는데 아이돌이라고는 야요이밖에 없었고, 그 외의 직원이라고는 넥타이를 매고 있던 그 양복의 사내 뿐이었다.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였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처럼 보였는데, 나이를 들어보니 아버지보다 열 살이나 젊었다.


 “보다시피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예전엔 상당히 잘 나가는 사무소였지. 사무원도 있었고, 톱 아이돌도 몇 명인가 배출했고. 빛나야 할 때 빛날 줄 아는 아이들이었어...”


 그렇게 말하는 프로듀서는 뭔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프, 프로듀서 씨...”


 “음?”


 “분명, 지금은 텅 비었지만...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에요! 프로듀서가 기억하는 765프로... 처럼.”


 프로듀서는 씁쓸한 표정으로 잠시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요이는 어째선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프, 프로듀서 씨! 손을 주세요!”

 “응?”


 “하, 하이 터치!”


 짝! 야요이의 작은 손에 주름진 손바닥을 맞부딪친 남자는 잠깐 아연하고 있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을 필요는 없지. 20년 전에 프로듀서로 데뷔했을 때도 지금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상태였고, 이 정도는 관록에 따른 핸디캡이지. 암!”


 웃으며 말하는 프로듀서는 10년은 젊어 보였다.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6 23:58:30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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