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백합/유키마코]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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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5, 2012 21:01에 작성됨.

"우응……."

 무언가가 느껴진다. 멍한 머릿속이 차근차근 정리되어가는 동안, 함께 활성화되는 감각. 눈을 떠 보려고 했지만, 눈부신 빛에 나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자리에서 일어날까 생각 해 봤지만, 아직까지 몸은 피곤하다는 신호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누워 있어도 되는거겠지, 하며 나는 느껴지는 부드러운 무언가─이불로 파고들었다. 내리쬐는 햇살과, 포근한 이불, 거기에 고소한 냄새까지. 이런 상황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풀어 져 버릴것이다, 라 생각하며 다시 잠드려던 순간, 알 수 없는 의문이 전해져 왔다.

 "누구……? 아─으음."

 얼마 전에 독립하여 혼자 살게 되었고, 어제 다른 음식이라곤 만들어 둔 적도 없는데, 이런 냄새가 나는 이유는 뭘까. 하고 고개를 들곤 엉망진창인 머릿속을 정리해 가며 그 이유를 떠올려 보려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곤 다시 이불속에 푹 파뭍혀 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게 느껴진다. 그래, 어젠 분명…….

 "마코토쨩, 일어났어?"
 "으응, 일어났─어……."

 완전히 잠겨버린 목소리로 답하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뭍힌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피곤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자는 것 정돈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그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내 볼에 닿았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손으로 밀쳐내 버리며 몸을 일으키는 나, 차갑고도 축축하게 젖어있는 그 물건 때문에, 어느새 멍하던 머릿속은 순식간에 차분하게 정리되어 버렸다. 아직도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떠서 앞을 바라보자,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손에 들고 있는 유키호의 모습이 보였다.

 "으으, 조금만, 조금만 더 자면 안 될까, 유키호……?"
 "안 돼, 벌써 아침도 다 준비됐는걸. 쉬는 날이라고 너무 늦게까지 자는것도 안 좋고. 그리고……."

 그리고? 의문을 담아 유키호의 얼굴을 바라보자, 얼굴을 붉히며 나의 시선을 피한다. 우물쭈물 거리며 내 질문을 피하려 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유키호, 그에 나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유키호를 바라봤다. 어느새 얼굴 전체가 붉게 변한 유키호는, 입 안에서 몇 번 어느 단어를 우물거리더니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그……그 상태로 계속 있으면, 그, 가,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유키호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웃, 거리고는 자리에 앉은 그대로 두리번거렸다. 무슨 얘길 하는걸까, 하고 생각하며 몸쪽을 바라보자……그제서야, 유키호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급히 이불을 입까지 끌어올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나는 쭈뼛쭈뼛 유키호쪽을 바라봤다.

 "으, 응. 고마뭐……옷 입고, 밥먹으러 갈게."
 "응. 식기전에 얼른 와."

 그 말과 함께 유키호는 다시 주방 쪽으로 사라져버린다. 유키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나는, 고개를 내저어 정신을 맑게 한 뒤 어느새 유키호가 놔두고 간 차가운 물을 한 컵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맡에는 옷가지들이 벗어놓은 그대로,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어제일들을 떠올렸다.



 "응, 딱 맞네."

 입 안에 퍼지는 국의 맛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작은 냄비의 뚜껑을 닫았다. 이제 곧 마토토쨩이 오겠지?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어줬음 좋겠는데……. 이 날을 위해, 며칠전부터 요리 연습을 해 왔었다. 주변 사람들도 다들 맛있다고 칭찬해줬지만……그래도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기에, 걱정은 가시질 않는다. 안 돼, 안 돼. 요리를 하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루카쨩이 그랬으니, 다른 생각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자. 예를 들면…….

 "으, 으우……."

 문득 스쳐지나간 어젯밤의 일들에 대한 기억, 나는 또다시 볼을 붉히고 있었다. 물론 마코토쨩이랑, 그, 연인관계긴 하지만, 그래도……. 고개를 양 옆으로 가로저으며, 화끈거리는 얼굴을 양 손을 대 식히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어느새, 한 사람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특정 시간대의 모습만이. 애써 지워보려 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 모습에 다급히 냉장고를 열어 얼굴의 열을 식혔다.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요리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외치고 있었다. 냉장고를 살짝 닫고는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뒀다. 아침밥 준비는 이걸로 끝, 슬슬 옷은 다 입었으려나? 아니면 한번 더 가 보는편이 좋으려나……아니, 그치만 옷 갈아입는 중이었다면 곤란할테니, 그런데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으면 아침이 식어버릴텐데……. 그러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을 무렵, 달칵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 그, 마, 마코토쨩 좋은 아침!"
 "응? 아, 유키호도, 좋은 아침."

 조금 전까지 했었던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급히 인사를 했지만, 누가 들어도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그에도 불구하고 반갑게 답해주는 마코토쨩. 어제와는 다른 평상복 차림으로, 마코토쨩은 의자에 앉았다.

 "우와, 유키호, 이거 전부 네가 만든거야? 대단하……."
 "응?"

 갑자기 마코토쨩의 말이 끊겼다. 무슨 일인걸까, 하고 마코토쨩을 바라보며 갸웃거리니, 조금 전까지 멈춰있던것만 같던 마코토쨩이 흠칫 하고 놀라며 다급히 손을 휘휘 내젓는다. 얼굴에서는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대체 왜 그러는걸까, 하며 계속해서 마코토쨩을 바라보자, 마코토쨩은 볼을 긁적이며 헤헤, 하고 쑥스럽게 웃어보인다.

 "아니, 그, 뭐랄까……앞치마 입고 있는 유키호가 귀여워서……."
 "아. 후후, 마코토쨩, 고마워. 마코토쨩이 입고 있는 그 옷도 귀여워."
 "저, 정말? 기쁜걸……헤헤."

 고양이같은 입으로,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마코토쨩, 그 모습에 어느새 나도 함께 웃고 있었다. 잠시간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우리들은,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란 가벼운 말을 끝내곤, 나는 반찬을 입 안에 넣는 마코토쨩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맛있어……엄청 맛있어 유키호!"
 "저, 정말?"
 "응! 정말 맛있어! 유키호, 대단하다!"
 "아니 뭐, 그, 칭찬받을만한 수준은 아닌데……."
 "무슨 소리야, 엄청나게 맛있다구!"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코토쨩의 칭찬에, 나는 그저 웃으며 쑥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우리 둘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채 잠시간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가, 유키호가 설거지를 한다고 일어났기에 나 또한 가볍게 침대를 청소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참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대로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니, 느긋하게 침대 시트를 벗겨내었다. 끄응, 하며 내 몸집보다 몇 배나 거대한 그 물건을 들고가선 세탁기 옆에 던져놓아 버렸다. 이거, 꽤 힘들겠네─라며 혼자 감상을 내뱉던 도중, 어느새 설거지를 끝낸 유키호가 나를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마코토쨩?"
 "응? 왜 그래 유키호."
 "그……그거 세탁은 내가 할게."
 "아니아니, 걱정 마, 우리집 물건인데, 내가 해야지."
 "그치만 그……나 때문이기도 하니까 내가……."
 "손님한테 이런걸 시키는 사람이 어디있어, 역시 내가……."
 "손님이 아니라……같이 산다고 하면?"

 뭐? 하는 나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유키호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숨결이 닿는 거리, 말을 할때마다 전해져오는 그 온기와 간질간질한 느낌에 나는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점점 달아오르는 얼굴, 터져버릴것만 같은 심장, 완전히 굳어버린 채 유키호의 행동만을 기다리던 나.

 "마코토쨩, 같이……살래?"

 그 말에, 나는 숨쉬는 것을 멈췄다.

 "후후, 마코토쨩도 참."

 웃음소릴 내며 내게서 떨어지는 유키호,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갑자기 이러는건 심장에 나쁘단 말야. ……그렇다고 싫단건 아니지만 말야.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유키호의 말을, 천천히 되새겨본다. 같이 산다, 라니. 물론 나도 이제 독립했고, 유키호도 부모님의 허락만 받아내면 충분이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그치만 그건 한마디로…….

 "동거……잖아, 그거."
 "응? 마코토쨩, 싫어?"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뭐랄까."

 그건 마치……까지 말한 나는, 어느새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반응에 내 주위에서 기웃거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려는 유키호. 그에 나는 계속해서 유키호의 시선을 피하며, 조금 전까지 했던 생각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의도는, 산산조각 나 버렸다.

 "부부같아서?"
 "윽."

 유키호의 질문에 나는 그런 바보같은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 버렸다. 부끄러움에 고개는 저절로 숙여지고, 얼굴은 화끈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뜨거울 정도였다. 나의 그 반응에 웃음을 흘리는 유키호.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며 쭈뼛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유키호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마코토쨩, 그거 싫어?"
 "아니, 그, 그런건 아니지만……그."
 "괜찮잖아? 어제……그, 그런 일까지 했으니까."
 "그, 그건……."
 "마코토쨩, 귀여웠어."
 "……정말?"
 "응, 정말로."

 마치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계속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유키호의 얼굴을 나는 천천히 올려다봤다.

 "……정말로, 같이 살래?"
 "마코토쨩이 좋다면, 얼마든지."

 조용히, 서로만을 응시하는 우리들. 언제까지나 이어질것 같던 이 상황은, 눈을 가볍게 감으며 가볍게 숨을 내뱉은 유키호가 내게서 떨어지며 끝나버렸다. 멍하니 유키호만을 바라보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보며, 유키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한번 더, 하지 않을래?"

 유키호의 질문에,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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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쓴 백합 하나 투척!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11:12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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