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학원 패러렐] 졸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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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7, 2013 22:30에 작성됨.

 3학년은 그 아래의 학생들보다 조금 더 일찍 등교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아마 졸업식 당일날은 못 만날 거라는 메일을 보냈던 것이 기억에 있었다. 그리고, 답장으로 ‘알았어’라는 의뭉스런 단문을 돌려받은 것도 역시 기억에 있었다.

“과연.”

꽃다발을 든 채로 엉거주춤. 볼썽사나운 자세지만, 기묘하게도 그것을 취하고 있는 자가 가나하 히비키라는 점에 납득이 가고 만다. 고개를 갸웃하고 눈썹을 모으는 걸 보면 나의 감상이 의외라는 것일까. 제 딴에는 오지 않는 척 시치미를 떼다가 깜짝 졸업 축하랍시고 강당에 나타나면 나를 놀래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 터인데.

참으로 히비키다운 착각이지 않은가. 그러한 의미심장한 메일이라면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타카네라면, ‘기이한!’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것인가요?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던 것을……, 일부러 놀란 척 연기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히비키의 얼굴이 늘어졌다.

“그래. 그래. 알았다구. 난 모를 줄 알았지.”

졸업 앨범과 졸업장을 히비키가 챙겨온 종이 가방에 넣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교정의 눈은 거의 다 녹아서, 이제 모래 운동장 트랙과 구령대 위에만 조금 남아 있었다. 약간 아쉬운 일이다. 손대지 않았다면 아직 다 녹지는 않았을 것을, 그것, 그것을 뿌려서,

“산화칼슘이라구, 타카네. 정말 이상한 데서 약하다니까...”

“당신은 오늘 절 축하하러 오신 것이 아니었던가요, 히비키?”

거야,

거야, 그렇게만 말하고, 히비키는 무거울 가방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양 구령대 철봉을 휙 타고 올라가 앉아 헤실헤실 웃었다. 멋쩍은 기분까지 빼앗아버리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우리가 만난 여름에도, 히비키는 그랬었다. 얼굴의 뜨거움이 사그라졌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 구령대의 계단을 올라가 너른 모래 바닥을 바라봤다.

“있잖아, 타카네. 3년 동안 즐거웠으니까, 떠나는 기분도 즐겁기만 한 건 아닌 거지? 테니스하고 학교생활하고, 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기분이 희미하게 전해져 와, 웃음이 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라고 해서 그 다음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말은... 그리고, 히비키는 저와 3년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구령대 맞은편에는 철망 골조에 초록색 방수포를 둘러친 낡은 테니스장이 있었다. 체육활동에 대해 큰 열의를 보이지 않는 공립 고등학교의 시설물임을 감안하면, 오래된 것을 제외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쾌적한 상태였다. 많은 시간을 그 장소에서 보냈다. 아마도, 반의 교실이 아니라면 재학 중 가장 많은 기억을 만든 곳이었다.

학생이었던 지난 3년을, 나는 학교 테니스부의 대표 선수로 임했다. 첫 선발 때의 코치는 테니스에 심취한 3학년의 체육 교사였으면서, 자기 반의 학생보다도 나를 마음에 들어한 탓에 상급생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듣기도 했다. 다만 실력도 성과도 남달랐던 것은 분명하기에, 1학년 때부터 대표로 지명된 것에 의문을 품는 무리 앞에서도 불쾌한 마음은 품지 않았다. 그게 나빴다면 나빴을까?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 같은 학년 운동부 학생들 전체가 그 무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에는 작은 멍울이 졌다. 많은 소문이 났고, 테니스는 들먹이는 것조차 조소를 불러오는 단어가 되었다. 부원들은 나에게 더 이상 인사를 하지 않았다. 체육관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문학 선생이 부를 맡고 난 후, 원래의 코치가 반을 찾아와 유감을 표했을 때는 송구스러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부를 떠나기엔 적기라는 마음에 홀가분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탈퇴부를 접수할 부장에게 조롱을 들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부활동을 정리하던 2학년 여름, 그 때 히비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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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짧네요--; 이후에 손을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언젠가 올라올 예정이에요! 


+ 치아키는 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7:14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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