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에헷, 치하야에게 키스해버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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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4, 2013 00:13에 작성됨.

 오늘은 치하야의 사진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찍는 사진은 발매를 앞둔 앨범의 부록 사진집에 들어갈 것이다. 아이돌 개인 앨범에 부록으로 사진집을 넣는다니. 옛날에 개인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에도 텅텅 비어가는 금고에 벌벌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

 라디오 방송을 끝낸 치하야를 차에 태우고 촬영장소로 데리고 갈 때, 치하야에게 여기에 대해 말하니 치하야는 웃어주었다. 맑고,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회사사정이 나아진 것 이상으로 치하야도 많이 변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아이돌로서의 격이 올라갔다.’ 단순히 그런 말이 아니다. 치하야라는 인간이 성장했다. 상처를 끌어안고 과거에 묶인 채로 노래하던 소녀. 치하야는 노래만이 삶의 의미라 생각하고 다른 것은 무관심하게 대하던 소녀였다. 765프로의 동료들에게조차 미묘하게 거리를 두고, 노래를 하지 못한다면 아이돌을 할 이유가 없다고 태도에서 내비쳐보였었다.

 치하야의 나이와 그녀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 눈앞에서 죽었다. 그 때문에 가족관계는 파탄이 났다. 그 누구도 버틸 수 없을 그런 환경. 그러했기에 치하야는 노래에 그토록 집착을 했을 것이다. 죽은 동생을 잊지 않기 위해. 무너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자신과 노래를 부르기 힘든 현실과의 괴리를 버티기 위해.

 그러나 치하야는 극복해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할 수 있게 되었다. 동료들과의 벽을 허물었고, 노래 외의 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을 추모하는 듯이 노래를 불렀던 그녀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프로듀서로서 그녀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어느 날 내 안에 새로운 감정이 싹튼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과거를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전신전령을 다해 쫓는 이 소녀를 동경하게 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촬영 장소에 도착하니 촬영 담당자가 달려와 즉시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촬영준비 중에 기자제가 파손돼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1시간만, 딱 1시간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대신할 것을 가지러 갔으니 1시간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담당자는 비굴할 만큼 머리를 조아렸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필수로 익히게 되는 태도다. 이 정도로 비굴한 태도를 취하면 화를 내는 입장에서도 화를 낼 수 없게 된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 번, 만 번 사죄드려도 부족할 겁니다! 이해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부 저희들의 잘못입니다! 단지 바라건 데 1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딱 1시간만!”

 이대로 뒀다가는 1시간 내내 사과할 것 같다. 나는 두 손을 펼쳐보여 거기까지만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쪽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건 그 정도로 하셔도 충분합니다. 지금 책임소재를 따져도 상황이 나아지는 게 없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걸 따져봤자 서로 기분만 나빠질 뿐이지 않습니까. 1시간 이라고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더는 안 바랍니다. 아니, 그 이상 바라면 도둑놈이지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1시간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준비가 다 되면 저에게 전화주십시오.”

 한 두 번 보고 다시는 안 볼 사이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적당히 빚을 만들어 두면 훗날 여러모로 편리해질 것이다.

 감사하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담당자에게서부터 내 옆에 서 있는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는데, 치하야?”

 치하야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옛날의 그녀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죠. 적당히 차에서 쉬죠. 저도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치하야는 차에 먼저 가 있어, 나는 마실 것을 사가지고 갈 테니까. 마시는 건 언제나처럼 차면되지?”

 “아, 저도 같이 갈께요.”

 “아냐, 넌 쉬고 있어. 아이돌이 휴식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일이니까. 치하야는 내 일을 망칠 셈이야?”

 “……그러면 부탁하겠습니다.”

 치하야를 차로 돌려보내고 주위를 둘러본다.

 등 뒤는 산을 끼고 앞으로는 시내가 흐른다. 숲은 울창하여 방금 전까지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숨을 들이마시면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맑은 공기가 내 안을 가득 채운다. 햇살조차도 따갑지도 약하지도 않고 적당히 따스하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살랑이는 정도로만 불어 춥지도 않다. 들리는 것은 새가 우는 소리와 바람에 풀과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뿐.

 방금 전만 하더라도 일정이 어긋난 것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마음이 바뀐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화되어서 그런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1시간을 쉬어야한다면 도시보다는 이런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효율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데  최근 치하야가 조금 힘겨워 하는 기색을 보였으니 이런 식으로 쉬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서 자판기를 본 것 같은데 어디있는거지?


 
 결국 자판기를 못 찾아, 촬영 팀에게서 음료를 뜯어내 차로 돌아간다. 차는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으슥한 장소에 주차해두었다. 일단은 아이돌이 타고 있는 차이기에 팬이나 파파라치에게 들키면 곤란하니까.

 도로도 인도도 아닌 곳을 걸어 차에 도착.

 “치하야, 차 가져왔어.”

 대답은 없었다.

 “치하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 안을 들여다본다.

 “…….”

 치하야는 자고 있었다.

 차문을 살짝 열어두고, 조수석의 좌석을 최대한 뒤로 눕히고, 햇살을 받으며, 새근새근 조용히 숨을 쉬며, 두 팔은 가지런히 배 위에 올려놓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비록 드레스가 아닌 세미정장에, 꽃 침대가 아닌 낡은 차의 시트였지만 그런 것이 지금 이 광경의 아름다움을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잠자는 공주. 수 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아름다움을 가진 채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눈을 때지 못하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하하, 정신 차리자. 부끄럽구먼. 하하, 다 큰 성인남성이 잠자는 공주라는 묘사를 해버리다니 말이다. 치하야가 자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 아니잖아. 확실히 치하야는 예쁘긴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잖아. 하하, 뭘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음, 치하야 많이 피곤했나 보네. 벌써 잠이 든 걸 보니. 생각해보니 최근에 치하야의 일정이 빡빡하긴 했지. 하하, 이거 참 프로듀서 실격이네. 일이 들어온다고 아이돌의 컨디션은 생각도 않고 마구잡이로 받아버리다니 말이야. 하하, 반성하자, 반성. 그나저나 치하야 기특하네. 그렇게 힘든 일정인데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다 소화해내다니 말이야. 하하, 다음에 새로 일을 받아올 때는 조금 널널하게, 치하야가 좋아할 만한 일로 채워야겠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을 때가 아니지. 

 날이 많이 풀렸다고 하더라도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그늘에서 가만히 있으면 싸늘함이 몸에 스며드는 날씨. 이런 날씨에 잠이 들었다가는 자칫하면 감기에 걸려버린다. 가희(歌姬)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치하야에게는 치명적이다.

 모포가 없으니 내 겉옷이라도 덮어줘야지.

 들고 온 음료를 치하야의 옆에 두고 외투를 벗었다. 외투를 치하야에게 덮어주기 전에 코를 박아 냄새를 맡아본다.

 킁킁.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빤지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예민한 소녀에게 아저씨 냄새가 물씬 풍기는……아직은 아저씨 아냐!

 ……다행스럽게도 별 냄새는 나지 않는다. 매일 페X리즈를 뿌린 보람이 있다.

 외투의 끝을 잡고 위아래로 강하게 휘둘러 먼지나 혹여나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냄새를 털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치하야에게 덮어준다.

 외투의 위치를 조정하다가 치하야와 얼굴과 가까워졌다.

 확실히…….

 치하야는 예쁘다.

 몸은 말랐지만 얼굴은 젖살이 남아있어 소녀 특유의 둥글둥글한 귀여움이 잘 살아있다. 피부는 메이크업이 되어있는 것을 감안해도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다. 코는 오똑하고, 속눈썹은 길다. 지금은 눈을 감고 있어 모르지만 눈을 떴을 때의 치하야의 눈도 아름답다. 크고 동그랗다. 눈동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이가 있다.

 아이돌이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입술을 향하게 되면 말이 바뀐다.

 립밤을 발라 살짝 붉으면서도 윤기가 나는 입술 사이로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보인다. 그리고 그 좁은 틈으로 미약한 숨결이 새어나온다.

 습기 차고 따뜻한 숨결이 얼굴에 닿는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느새 치하야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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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요놈!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5:52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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