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에헷, 치하야에게 키스해버렸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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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9, 2013 21:11에 작성됨.


 담배를 피었다면 대략 두개피를 피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결정을 내렸다.

 한심하고, 비겁하고, 더럽지만 없었던 일로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지금 정황을 보니 내가 치하야에게 입을 맞춘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다. 나만 입 다물고 무시하면 그 사실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치하야가 스캔들에 휩싸일 염려도 없고, 치하야가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무런 피해가 오지 않는다.

 정말로 쓰레기가 할 만한 발상이지만 이 이상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냉정해지자. 나만 모른척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만 득을 봤다. 그렇게 생각하자. 양심의 가책 따위는 잊어버리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않게 하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좋아.”

 더 이상의 고민은 없다.

 나는 촬영장소를 향했다.

 사전에 조사했기에 눈에 익은 풍경을 사이를 걷다보면 조금씩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약간 방향이 어긋나 있었기에 수정한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면 드디어 촬영 장소에 도착.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방금 전에 했던 결심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걸어가자 끝없는 길을
 노래하자 하늘을 넘어서
 마음이 전해지도록
 앞을 바라보겠다고 약속하자

 
 치하야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진사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이겠지. 아니 단지 시늉만 해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치하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눈물을 닦고서
 걸어가자 결심한 길을
 노래하며 
 이 기도가 울려퍼지도록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는 듯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온몸에서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사진은 치하야의 목소리를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치하야의 행복에 찬 모습을, 그 아름다운 모습은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맹세해 꿈을 이루겠다고
 너와 동료들에게
 약속할게
 LaLaLa……



 이 소녀에게 입을 맞춘 걸 잊으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된다고?

 그게 가능할리 없다.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미성년자와 성인,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를 잊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러운데.

 보고만 있어도 사무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데.

 지금 당장 달려가 껴안고 싶다.

 그 입에 다시 입을 맞추고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

 머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감정은 지금 당장 그러라고 종용한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누가 볼세라 얼른 한손으로 얼굴을 주물러 식힌다.

 안 된다.

 이 이상 여기 있다가는 버티질 못하게 된다.

 여기를 떠나자.

 당분간은 이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치하야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자.

 그러자.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치하야를 위해서라도.

 휴대폰은 차에 있겠지. 내가 다시 차에 돌아올 것을 생각해서 두고 왔겠지. 혹시라도 치하야가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다. 지금 이 상태로 치하야와 마주쳤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해버릴 것 같다.

 부디 차에 있기를.

 불안함을 가득 안고 허둥지둥 차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휴대폰은 차에 있었다.

 고이 개어진 외투 위에.

 “……나, 정말, 중증이구나.”

 이 외투를 치하야가 덮고 잤다는 것을 상상하니 심장이 뛴다. 그리고 잠에서 깬 치하야가 그 가느다란 손가락을 놀려 외투를 개었을 것을 생각하니 다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중학생도 아니고, 이런 것에 얼굴을 붉히다니.

 기분 나쁜데다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금은 자괴감으로 몸부림칠 때가 아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몇 번의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연결된다.

 “아, 리츠코? 지금 시간 되지? 응. 된다고?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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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소녀는 무적입니다.

사랑하는 아저씨는 기분 나쁩니다.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5:0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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