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像 하루카

댓글: 16 / 조회: 1825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8-27, 2014 15:22에 작성됨.

일점 흔들림 없이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 S랭크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는 생각했다. 사무소에 쌓인 말도 안 되는 숫자의 팬심 가득한 선물상자, 일전의 10만명 규모의 돔을 한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의 공연, 게다가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온라인 팬클럽의 회원 수가 1억을 돌파, 그 정도 인원을 감내할 서버컴퓨터를 빌릴 수 있을 리 없으므로 이전부터 따로 운영되고 있었던 서버센터의 증설. 전무후무한 대 아이돌이 되었음에도 그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선물상자. 그것의 출처는 하나같이 중국, 중국, 중국. 가뭄에 콩 나듯이 한국이나 대만에서 온 것도 있었지만 하루에 확인하는 분량 중 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온 것이었다.
10만명 규모의 돔 라이브. 상하이에서. 그 이전에는 광저우에서 비슷한 규모의 라이브를 했었다. 하나같이 중국에서였다.
팬클럽의 기본 언어는 표준중국어. 이외에 지원하는 언어는 광둥어 등을 위시한 5개 정도의 중국어 방언. 일본어? 그런 거 몰라요, 였지만 최근의 라이브에서 잠깐 언급했더니 설정에서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자기자신의 팬클럽에 회원가입이라니, 하루카씨는 약삭빠르구나, 라던가 실례되는 소리를 치하야한테 들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요는 하루카의 팬 거의 모두가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뭐야, 몰라, 어째서 그런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열심히 외쳤지만 의문이 풀릴 일은 없었다. 데뷔하고나서 3개월 동안 무명의 F랭크, 어떻게든 근성으로 오디션에 승리해서 E랭크. 뜬금없이 그녀의 E랭크 오디션 도전 영상이 바이두 포럼 등지에 올라와서 중국에서 대유행. 그리고 2달만에 A랭크, 2주일만에 S랭크.
그 동안 일본에서의 팬만으로 측정한 랭크는 여전히 E랭크.

으째서고!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았다. 오늘은 무려 중국의 주석과 만찬을 가지는 날인 것이다. 중국 정부에서 빌려준 전용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날아가는 길에 하는 생각으로는 아웃이지 않을까 싶지만 그녀는 중국 주석과의 만찬보다는 도쿄 돔, 그것은 무리더라도 2만이나 3만정도 수용할 수 있는 일본에서의 공연을 더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텅텅, 아무튼 그녀의 일본인 팬은 500여명 남짓한 것이다.

불합리하다, 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중국 전용기를 타고 날아갈 정도인데 일본에서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뭐랄까, 저번에 흔치 않게 일본에서 할 수 있었던 3류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너무 평범해서 잊고 있었다나? 팬이 1억에 10만명 규모의 라이브가 10분도 안 되어 만석이 되는 아이돌따윈 일본에서 평범해빠진 것이기라도 하다는 말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괴한 것이다.

전용기 내의 하루카씨? 인형을 보면서 현실도피를 시작했다. 물을 부으면 증식한다는 설정이였던가, 아무생각없이 컵의 물을 부었다. 놀랍게도 인형은 실제로 2개로 나뉘어졌다. 승무원이 설명하기를 중국의 바이오 기술의 결정체라던가 뭔가. 하루카 씨는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아요.

공항에서 수속, 최근 부쩍 능숙해진 중국어로 훌륭한 매너를 지닌 캐리와 이야기하며 주석궁으로 가는 리무진에 탑승했다. 운전수도 동행인(캐리)도 하나같이 완벽한 신사나 다름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드러난 표정과는 다르게 불편했다. 흘끗 프로듀서를 보자 그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중국에 오느라 다른 아이돌들을 신경써주지 못할 때가 늘어난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인기있는 아이돌이라면 765프로 내부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어째선지 오사카 지역을 완벽하게 잡고있는 후타미 마미라던가 홋카이도의 여신 취급을 받는 가나하 히비키라던가. 전혀 연관이 없는 마미는 그렇다쳐도, 히비키는 어째서 출신지인 오키나와에서는 그저그런 아이돌 중 하나로 취급받는 주제에 홋카이도에서는 도청 앞에 동상같은 게 세워지는 거야? 게다가 치하야는.. 생각하지 말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중난하이에 도착했다. 하루카는 무려 주석이 마중나와 있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싹 날아가버렸다. 어떻게 해야 되지, 긴장한 표정으로 걸어가다 성대하게 넘어져버렸다.

돈가라걋샹~

다행스럽게도 주석은 웃어넘겼다. 뒤를 보니 수십개, 아니 백 개는 넘을 것 같은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려대고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여버리자 손에 들어온 것은 주석의 손이었다. 오성홍기마냥 붉은 얼굴로 악수를 하자 주석은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 음흉함이라던가 변태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지만 십몇억 인구의 수장이라는 자가 놀이동산에 온 어린애같은 표정을 짓는 건 어떨까,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한 뒤 하루카는 중난하이에 들어갔다.

과연 지구상에서 이보다 강한 나라는 기껏해야 미국 정도밖에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저는 화려하면서 정갈했다. 만찬석에 앉아 요리를 보았다. 몇몇은 익숙하지만 몇몇은 보기 힘든 것도 많았다. 그 중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탕 같은 요리를 건드려보았다. 동석한 고관 중 한 명, 아마 상무위원이라 했던가? 그에 따르면 하루카가 건드린 요리는 불도장이라는 것으로 왠지 엄청나게 진귀한 것인 듯했다. 고명하신 상무위원님 왈, 일본 총리가 와도 안 내줄 요리라나? 그런 소리를 듣고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 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고깃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눈에서 땀이 날 정도로 맛있었지만 조금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하루카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주석이 프로듀서한테 다음 번에는 톈안먼 광장을 빌려주겠다느니 만약 귀화를 생각한다면 하루카 가족과 프로듀서까지 극진하게 대우하겠다느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조금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카의 팬클럽 회원 숫자. 국적별로 대략 중국 1억 5천만, 대만 2백만, 한국 3백만. 그리고 일본 150명. 어떻게 되먹은 거야, 라고 항의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팬클럽에 가입하지 않은 숫자를 따져도 일본의 팬은 기껏해야 500여명, 거기에 비해 중국은 5억은 넘을지도 모른다. 인구비를 따져도 중국이 일본의 10배 정도 인구가 많으므로 1억 5천만 대 1500, 무려 만 배나 차이나는 것이다.

으째서고! 하루카는 다시 한 번 하루카 팬의 불합리함에 몸서리쳤다. 주석이 뭐라 말하고 있었다. 에, 질문? 무슨 내용인지 못 들었는데.. 일단 긍정해주기로 하자!

그리고 프로듀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석이 말을 이었다.

"설마 정말로 그렇게 한다고 할 줄은 몰랐네, 하루카 양.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루카 양의 귀화와 공산당 입당을 환영하네."

...엣?!


뭐라고?! 귀화?! 공산당 입당?!!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우레와 같은 함성, 박수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자 주석이 말했다.

"15억 중국인들의 환성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하루카 양. 자네는 이제부터 어엿한 중국 공산당원이네."

넘어가지 않는 만찬을 뒤로 하고 관저 밖으로 나오자 몇 명인지도 모를 수의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달려왔다. 주석이 호통치지 않았으면 깔려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한테 감사한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며칠을 보내자 어느덧 가족들은 베이징 근교의 대저택으로 이사와있었고 일본 국적은 어느새 말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왠지 공산당원이 되고 난 뒤 하루카는 정치교육을 받게 되었다. 장쑤 성 성장을 거쳐 2년만에 하루카는 중국 국가주석이 되었다. 동시에 중앙 총서기직을 겸직한 상테에서 반년, 마침내 전임 주석이 하루카의 정치교육이 끝났다 판단, 공석으로 유지되고 있던 실권직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에 하루카를 임명함으로 인해 하루카는 세계 2대 강국 중 하나의 수장이 되게 되었다.

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중국 국가주석과 총서기직의 연임 제한이 사라지고 하루카는 3회, 4회, 계속 중국의 수장이 되어있었다. 강력한 지도자, 하루카의 영도 아래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중심이 되어갔다. 하루슈타인 연맹이라는 이상야릇한 이름을 가진 새로운 국제기구가 기존의 유엔을 대체해갔다. 21세기가 저물어갈 때쯤 하루슈타인 연맹, 줄여서 할맹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오직 세 국가, 벨기에와 스위스, 그리고 일본이었다. 치하야가 통치하는 벨기에, 영세 중립인 스위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할맹에 가입하지 않은 일본.. 중국의 뛰어난 바이오 기술에 의해 불로불사를 얻은 하루카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모든 게 귀찮아져서 생각을 그만두기 직전 하루카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결국 41번째 천년기에 다르기까지 일본..이었던 지역에서 그녀의 팬은 천 명을 넘겼던 적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녀의 팬이 전체 인구의 83%를 차지하기도 했었지만 유독 구 일본 지역에서만큼은 지금도 그녀의 팬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으째서고.

 

 

----------

 다 쓰고 나니 하루카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이라 슬픕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