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에헷, 치하야에게 키스해버렸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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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4, 2013 19:35에 작성됨.



 코토리 씨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간에 사무실에 올 사람은 한 명 밖에 안 남았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했어, 리츠코.”

 “수고하셨습니다, 리츠코 씨.”

 리츠코가 들어오자 코토리 씨는 소파에서 일어나 급탕실로 들어갔다. 나 때와 마찬가지로 코코아를 타려는 거겠지.

 “수고하셨습니다. 코토리 씨, 프로듀서 씨.”

 리츠코는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방금 전까지 코토리 씨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아, 정말 피곤하네요.”

 “인기 있다는 증거잖아.”

 코토리 씨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내뱉는다. 리츠코는 쓰게 웃었다.

 “그러네요. 인기가 없어서 일이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하겠죠. 우리들도 1년 전만하더라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었죠.”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네, 그때가”

 일이 없어서 12명이나 되는 아이돌이 언제나 사무실에서 왁자지껄 놀던 때. 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들이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이끌어왔다. 라이벌로서 서로를 자극하고, 친구로서 서로를 지탱해줬다. 재능도 있었다. 성공을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 쓸쓸하기도 하네요. 자, 리츠코, 코코아.”

 급탕실에서 나온 코토리 씨가 우리의 말을 이어받으며 리츠코에게 코코아를 건냈다.

 “감사합니다.”

 코토리 씨는 소파 등받이에 두 팔을 얹었다.

 “옛날에는 모두 모여서 재미있게 잘 지냈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사무실에 들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곧장 현장으로 가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곧장 다른 현장으로,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레슨을 받으러 가고……그래서 조금이지만 지금보다 덜 인기 있어도 좋겠다 라고 가끔은 생각해요.”

 “큰일 날 소리네요.”

 “역시 큰일 날 소리겠죠.”

 코토리 씨는 후후 웃었다.

 사실 아이돌들의 성공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면서. 내가 지난번에 다쳤을 때에 했던 단체 콘서트가 성공하자 코토리 씨가 눈물을 흘리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코토리 씨의 마음도 이해한다. 아이돌도 아니고 나이차가 있기는 하지만 코토리 씨도 아이돌들의 친한 친구다. 일이 없던 옛날에는 코토리 씨가 아이돌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었다. 그러던 친구들의 얼굴을 바빠서 못 본다면 기쁘면서도 쓸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저는 이만 퇴근할게요. 너무 오랫동안 일하지는 마세요. 몸 상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오토나시 씨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리고 오늘 고마웠습니다.”

 “고마워요. 아, 그리고 아까 한 약속 잊지마세요. 기대할 테니까요.”

 약속? ……아, 술 사주겠다고 한 약속.

 “기대하세요. 안주가 싸고 맛있는 집을 소개시켜드릴테니까요.”

 “기대할게요.”

 마지막으로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눈웃음을 남기고 코토리 씨는 퇴근했다.

 요즘 남자들이 많아서 결혼 못해서 난리라고 하는데. 어째서 예쁘고, 성격도 좋은 코토리 씨가 어째서 지금까지 결혼을 못한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뭐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으신 건데요?”

 코코아를 홀짝이며 리츠코가 물었다.

 “응, 아, 뭐, 의논하고 싶다고 하기보다는……부탁이라고 해야 할까.”

 리츠코는 만화라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을 표정을 지었다.

 “뭔데요? 수락하는 건 내용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들어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말해보세요.”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말하는 건 쉽지 않다고. 그래도 결국엔 말하긴 해야겠지만.

 난 합장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리츠코가 최근에 바쁜건 알고 있는데……미안하지만 아이돌 두 명 정도만 맡아줄 수 있을까? 이번 달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만.”

 “아까 갑작스럽게 치하야의 촬영을 대신 봐달라고 부탁하셨을 때에 대충 예상은 했는데……
그렇게 바쁘신건가요?”

 치하야의 이름이 나와서 잠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진정한다. 나만 입 다물고, 나만 진정하면 윤리적인 것 외에는 문제 될 게 없다. 나는 한숨을 빙자한 심호흡을 했다.

 “바쁘지. 인기 아이돌 9명이니까. 더군다나 이번 달은 내가 너무 폭주해서 일을 너무 많이 받아버렸고…….”

 거짓말이다. 바쁜 건 사실이지만 내가 조금 무리하면 충분히 소화를 할 수 있는 양이다. 아무리 일거리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내 능력은 잘 파악하고 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나의 속셈도 모르고 리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 2명 정도는 괜찮겠네요. 물론 스케쥴이 겹치는 게 있으면 전 류구 쪽을 우선시할거에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둘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 리츠코는 성실하니까.

 “고마워, 리츠코.”

 난 웃었다.

 난 쓰레기다.

 “그래서 누구를 맡으면 되는 건데요?

 “히비키랑.”

 다음 말을 내뱉기 전에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지금 상태로 온전히 그 말을 내뱉을 거라는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다.

 단지 말만하면 되는 거다. 동요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수 백, 수 천 번을 했던 말이다. 주저하지마라. 오히려 주저하며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정신차리자. 여기까지 와서 양심 있는 척해도 소용없다. 단지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나는 강제로 가슴 속에서 그 말을 짜냈다.

 “치하야.”
 


 

 다행스럽게도 리츠코는 왜 이 둘을 골랐는지 묻지는 않았다.

 혹여나 리츠코가 왜 둘을 골랐는지 이유를 물어볼 때를 대비해서 미리 변명거리를 준비해뒀으나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헛고생을 한 것에 대해서 허무감이 들기보다는 그 변명거리를 쓰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 고비가 더 남아있었다.

 두 아이돌에게 당분간은 리츠코가 프로듀싱 한다는 것을 전달해야한다. 도의상으로나 업무상으로나 이것은 내가 직접해야한다. 결국에는 치하야와 전화로나마 접촉하게 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는 분명하게 떠오르지만 그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이 간다. 

 그러나 그건 그때 생각하도록 하고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전화연결음이 5번 정도 반복되다가 연결된다.

 “하이사이~! 가나하 히비키입니다.”

 “아, 히비키, 나야 프로듀서.”

 “프로듀서?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너한테 전해줄 게 있어서 말이야.”

 “남자가 으슥한 시간에 여자에게 전화라니. 혹시!?”

 “네네, 프로듀서가 이 시간에 담당 아이돌에게 전화한 거면 뻔 하죠.”

 “우갸! 재미없어! 적당히 어울려 달라고!”

 미안, 지금 상태로 거기에 맞춰서 농담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어.

 물론 말로 전하지는 않는다. 그냥 웃어줬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응, 당분간은 리츠코가 내 대신 프로듀싱 해줄 거야. 인수인계는 끝났으니까 이번 달 동안은 날 찾을 일이 있으면 리츠코한테 전화해줘.”

 “……응?”

 “그러니까, 당분간은 리츠코가 나 대신 프로듀……”

 “우갸아아아아아아아앗!”

 휴대폰 너머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귀가 지릿지릿하다.

 “왜!? 왜 프로듀서 대신 리츠코가 하는 건데?”

 담당프로듀서가 바뀌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도 반응이 과하다. 그렇게 리츠코가 프로듀싱 해주는 게 싫은 건가. 조금 빡빡하게 조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리츠코도 훌륭한 프로듀서인데. 혹시 최근에 리츠코랑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리츠코는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미안. 혹시 리츠코랑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그건 아니지만……그래도 왜 프로듀서 대신에 리츠코가 하는 건데?”

 “미안. 내가 이번 달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서 내가 일을 전부 소화하기 힘들 것 같아서 리츠코 한테 부탁했어.”

 “그래도! 왜 하필 본인인데! 본인 요즘 하는 프로그램도 본궤도에 올랐고, 출현하고 있는 드라마도 잘 나가고 있잖아! 라이브도 있고 말이야!”

 ……아까 리츠코에게 하려고 한 변명을 지금 써야겠다.

 “프로그램이랑 드라마 둘 다 히비키의 자리가 확고하게 잡혔잖아. 그래서 이제는 내가 가야 할 일도 거의 없고. 라이브 같은 경우도 이미 협의를 다 해놓은 상태잖아.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리츠코라면 충분히 처리 할 수 있을 테고.”

 “우우…….”

 안 보이지만 히비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죄책감이 마구 솟아오른다.

 “본인에게 손 갈게 별로 없다면 그냥 프로듀서가 계속해도 되잖아.”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리츠코에게 부탁을 했을 때, 치하야만 부탁했다가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히비키는 내 진짜 속셈을 은폐하기 위해서 치하야와 함께 선택 한 거다. 

 ……나 진짜 갈 때까지 갔구나. 겉으로는 아이돌들을 위해서 행동하는 척하면서 이럴 때에는 아이돌을 이용하다니 말이다. 나라는 인간은 이런 인간이었구나.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잖아.”

 “우우…….”

 “정말 미안해. 네 의견은 안 물어보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게 돼서. 그래도 다른 아이돌들은 요즘 한창 협의를 하는 게 많아서…….”

 “……알겠어.”

 히비키가 수락하자 죄책감을 품은 와중에도 안도하는 것을 보니 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 인가보다.

 왕창 풀이 죽은 목소리로 히비키가 말했다.

 “프로듀서가 바쁜 건 본인도 알고 있어. 본인이 억지를 부리면 프로듀서가 곤란할 테니까.”

 죄책감이 가중된다. 히비키는 날 위해주는데 나라는 인간은 그런 히비키를 이용한다.

 “고마워, 히비키. 이걸로 보상이 될 거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시간이 되면 소원하나 들어줄게.”

 “……진짜?”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어떤 거라도 들어주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너무 무리한 소원은 빌지 말아줘?”

 장난스럽게 마지막을 덧붙인다.

 “흥이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할 생각도 못하게 엄청 벗겨먹어버릴거야!”

 다행스럽게도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을 히비키도 받아주었다.

 히비키가 단순해서 그렇다고? 나랑 다투자. 히비키는 천사일뿐이다.

 그 후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눈 후 히비키와의 통화를 끝냈다.

 다행히 히비키와는 큰 문제없이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고비가 남아있었다.

 치하야와 통화를 해야 한다.

 치하야의 성격을 생각하면 히비키 만큼이나 소란스러울 거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지.

 “…….”

 일단은 치하야에게는 퇴근하고나서 전화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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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드디어 치하야 등☆장.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4:17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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