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호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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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0, 2014 22:01에 작성됨.

“하기와라 씨, 준비 되셨죠?”

 

“아, 네. 준비 됐어요.”

 

스태프의 신호를 받은 저는 다시 한 번 목을 풀어보았습니다. 기분은 끝도 없이 우중충한데도 컨디션을 쓸 데 없이 좋아서, 아무래도 좋은 곡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이러면 너무 제 능력을 과신하는 걸까요. 저는 아무 것도 아닌 못난 아이일 뿐인데.

제가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겠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그럼 스타트하겠습니다!”

 

“아, 네, 네엣!”

 

지금은 노래하는데 집중해야겠네요.

아니, 하고 싶은데…. 

해야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떨리고 있는 가슴 속

언제부터 우리는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그래요, 저는 프로듀서가 저를 이 빛나는 무대 위로 올려주셨을 때부터 프로듀서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내심 프로듀서도 저를 좋아해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프로듀서는 제가 아무리 부정적인 말을 내뱉고 포기하고 싶어 할 때도 묵묵히, 상냥하게 저를 보살펴주셨으니까요. 저 같은 아이를 버리지 않고 계속 이끌어주셨으니까요.

 

바로 보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지금까지 저도 놀랄 만큼 일이 많았던 차에 오랜만에 맞이하는 오프일이라 약간 텐션이 올라있었습니다.

남들이 알아볼 수 없게 변장을 하고 혼자서 산책을 하던 중에, 조금 용기를 내어 번화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흔히 이야기하던 아이쇼핑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제 아이쇼핑이라고 해봤자 고급 찻잔이 전부지만요. 

 

지금도 후회가 되네요.

제가 왜 그때 번화가로 나갈 마음을 먹었는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지막에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눈물로 대신할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백화점에 들어가 찻잔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를 찾던 와중에, 저는 보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프로듀서를.

그것만으로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날 아침 차를 마셨는데 찻줄기가 서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그랬구나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프로듀서를 놀래주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와중에,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에게만 집중되어있던 시야가 차츰 넓어지면서,

 

보고 말았습니다.

프로듀서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한 여성분이라는 걸.

그 여성분은 저 같은 땅딸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믿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던 프로듀서의 얼굴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저는…

 

정신을 차려보니 비가 내리고 있는 길을 우산 하나 쓰지 않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변장을 위해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는 어느새 날아가 버렸는지 그다지 길지 않은 머리칼이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방금 지나간 애, 설마 아이돌 하기와라 유키호?’ ‘뭐지? 무슨 드라마 촬영?’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습니다.

그저 단 1초라도 빨리 제가 본 광경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어

그날 그렸던 꿈은 지금 빗속에서 사라져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슬픈 일이 있어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다음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날 모든 일이 끝나고 프로듀서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래도 급박해져버린 탓일까요. 

급해질 필요 따윈 없었는데, 이미 모두 끝나버린 일인데.

왜 그때까지 미련이 남아있었던 걸까요.

 

“그래, 무슨 일이니?”

 

“저…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여느 때와 같은 상냥한 미소로 저를 바라봅니다. 

바라만 봐도 따뜻했던 그 미소가, 지금의 저에겐 마치 비수와도 같습니다.

 

“프로듀서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를? 그야 물론 나의 훌륭한 아이돌이지.”

 

“그것…뿐인가요?”

 

“응? 음… 또 뭐가 있어야 할까….”

 

제가 여기서 그 말을 꺼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프로듀서가 그 여성분을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후회를 하며, 

 

“저는… 프로듀서를 좋아해요.”

 

“응? 하하… 고마워, 나도 유키호를 좋아해.”

 

“아니, 그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 그…”

 

‘저는 프로듀서를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도.

저는 정말 구제불능에 못난 아이네요.

 

프로듀서는 제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농담이지…?”

 

라고 말합니다.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요. 차라리 이때 ‘네, 농담이었어요. 놀라셨죠?’라고 말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아니요, 제 진심이에요.”

 

“진심? 정말로?”

 

“네.”

 

프로듀서는 저와 눈을 마주칩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발조차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유키호….”

 

“뭐라고 하실지 알아요. 프로듀서는 프로듀서시고 저는 아이돌이에요.”

 

“그것 말고도….”

 

“네, 알아요. 어제 백화점에 두 분이 같이 계셨던 것도.”

 

“…그러니. 그런데 왜 지금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거니.”

 

“저도… 모르겠어요.”

 

프로듀서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 침묵이 너무나도 무섭고, 죄송하고, 슬퍼서,

저 역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유키호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말밖에 해줄 수 없구나.”

 

그럴 리가 없다고. 

저에게 있어서 프로듀서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거리의 쇼윈도에 혼자 멈춰 서서

앞머리를 고치는 척 하면서 살짝 눈물을 닦았어

 

 

그로부터 이틀 후,

프로듀서는 저의 프로듀스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 요청도, 사장님의 명령도 아닌 프로듀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행동이 너무 부담이 돼서 그러시는 거겠죠.

아아, 저는 어쩜 이렇게 못난 아이일까요. 그때의 저는 왜 저의 마음을 드러내버린 걸까요. 저만 가만히 있었으면… 제가 그 말이 농담이었다고 했었다면… 프로듀서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역시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고, 프로듀서에 대한 감정은 love가 아닌 like일 뿐이었다고 말했더라면….

 

하지만 그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도 저는 프로듀서에게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구제불능이니까요.

 

그렇게, 저와 프로듀서의 꿈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잊을 수 있는 날까지 혼자 살아볼게

같은 꿈을 꾸던 두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좋아하게 되어 다행이야 

쓸쓸함을 만나도

추억은 하나하나 살아있으니까

 

 

스스로, 제 자신의 발로 일어나 다시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 바로 어제부터입니다.

계속 주저앉아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제가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프로듀서를 배신하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일어나기로 했답니다.

 

네, 그래요. 아직 그 미련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차차 잊을 수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모두 잊어버렸을 때에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네, 분명히.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어

그날 그렸던 꿈은 지금 빗속에서 사라져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슬픈 일이 있어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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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스로 유키호의 모든 커버곡 중에 부동에 원톱이라고 치는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야'를 소재로 써봤습니다.

그런데 역시 1시간으로 뭔가 스토리텔링을 하기는 어렵군요.

어쨌든 아이마스 아이돌 중에 가장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이 어울리는 아이돌은 역시 유키호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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