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아이돌을 임신시키지 못해서야 뭐가 프로듀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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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0, 2013 16:21에 작성됨.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멍하니 평화를 즐기고 있는 중,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흔들의자에 걸터앉은채 고개를 숙여서 내려다보니, 다름아닌 내 딸내미 하나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딸내미들을 볼 때에는 때때로 나도 참 분말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녀석은 열다섯의 자매중에 일곱번째니까 말이야.
결혼할 때, 기왕 결혼할 거라면 축구팀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덕담을 실현해버리고 말았었지.
아니, 계속 딸내미만 태어나다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


"하이사-이!"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섯째가 활기차게 인사를 건내왔다.
착! 하고 손을 뻗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다.
흠, 오키나와 사투리라니, 왠지 조금 그립네.
아마도 사랑해라는 뜻의 오키나와 사투리가, 크라운 산도였지 아마? 뭐, 아니면 말고.


"응후후! 아~빵! 사실은 카나산도라는 것 정도는 ○○도 알고있다GUNG!"
"○○도 알고있다GUNG!!

언제부터 있었는지, 내 뒤에서 뿅 튀어나와서 외치는 또다른 딸내미.
각각 열 네번째와 열 세번째 딸내미다. 이 둘은 자세히 보더라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꼭 빼닮았는데, 일란성 쌍둥이기 때문이니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다.

사실은 나만은 열 네번째 쪽이 명백하게 목소리가 부드럽고, 입모양이 얌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에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부모의 위대함이니 뭐니 주변 녀석들에게 놀림받는 일이 자주 있지만, 나로서는 왜 구분하지 못하는지가 의문이다.


응? 왜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서 귀찮게 몇 번째인지만 알려주냐고? 하, 바보냐. 지금 알면 재미없기 때문이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다들 전직 아이돌이었던 엄마를 꼭 빼닮아서, 외모가 지나치게 출중하다는 것 정도?

어느정도 성숙한 녀석들은 길거리에서 헌팅을 당하는 점을 본다면, 딱히 내가 부모라 콩깍지가 씌인 것은 아닌 모양이고.
덕분에 시덥잖은 날파리를 털어내느라 고생이 끊이지를 않아서 번거롭기 그지없다.
그래도, 귀찮음을 참아가며 키워낸 내 딸을 얻으려면, 늙어서 힘없는 아버지를 쓰러트릴 근성정도는 보여야하지 않겠냐? 아앙?

"다름이 아니오라 귀하, 또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옵소서."

기이하게도 딸내미중에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는 녀석은 두 사람밖에 없구나.
그 두명조차도 처음에는 오빠라고 부르던 것을, 주변에서 기이한 것을 보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 때문에 억지로 고쳐버린 것이고.
참고로 이 녀석은 넷째. 그나저나, 너는 옛날 이야기같은 것을 들을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 귀하는 짖굳사옵니다."
 
게다가, 단체로 몰려와서 그런 용건이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었잖아. 누군가가 길을 잃고서 시카고 쯤에서 발견됐다던가.
아니면 72가 72가 아니게 되어버렸다던가.
…아니, 이건 조금 아니었다.

"큿."

최근 발육상황이 고민인듯한 다섯째가 꽤나 적절한 반응을 보여줘서, 그만 풋하고 웃어버렸다.
어린아이는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귀찮으니까 말이야.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부모로서 불성실하다고 눈쌀을 찌푸리겠지만, 무언가를 싫어하기에 충분한 이유아니냐?
뭐… 말했던 것처럼 예전에 싫어했었던 것 뿐이지 이제는 가끔씩은 상대해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고들 하잖아.

내가 아니라 내 부인을 닮아서 다행이지. 내새끼고 뭐고, 만약 나를 닮았기라도 했더라면 친자식이고 뭐고, 아주 국물도 없었을게야.
근데 왜 너는 우울해보이게시리 혼자서 구석에 쳐박혀 있는거냐?

"…노래 이외에는 흥미 없으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큿큿거리면서 열심히 반응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노래인건가? 참신하기는 하네.

"아후, 허니가 책임감없이 여기저기 깃발을 꽂고다녀서 고생했던걸 상상하면, ○○는 오싹오싹해서 귀찮아도 듣고싶어지는거야! 아핫♪"

폭, 하고 배에 얼굴을 묻은채, 반쯤 졸면서 뺨을 비비적거리며 건방진 소리를 해대는 녀석이… 아, 귀찮아. 그냥 이녀석이 중학생이라는 것만 말해줄테니까 몇번째인지는 알아서 때려맞추라고.
하하하하! 이 녀석,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건방질까!
확, 꿀밤이라도 쥐어박아 버릴까보다. 아니, 아니지. 눈물이라도 글썽거리며 허니, 허니 거리면서 달라붙기라도 한다면, 그림이 조금 이상해지니까.

중학생이 달라붙어봤자 귀엽고 흐뭇할 뿐 상관없지 않냐고?  바보구만. 이 녀석은 성조숙증이 아닌가 의심해서 병원에 데려가봤을 정도로 빵!쭉!빵! 이라고.
그런 녀석이 바깥에서 허니거리며 달라붙을 때마다, 참한 아내까지 있으면서 귀여운 영계와 불륜을 저지르는 개자식으로 의심받는 상황에는 익숙하기까지 하다.

내 딸이라는 것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서 3류 잡지에서 특종이랍시고 발표했을 때에는, 정말로… 장난아니게 고생했었다.
아빠 속옷이랑 내 속옷을 같이 빨지 말라고 했잖아!! 같은 투정을 들어보는 것이 자그마한 소망일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아니, 정작 실현되면 평범하게 할복자살을 해버릴 자신이 있지만서도.


"프로듀서 씨! 수라장이에요, 수라장! "

하하하하! 이 녀석!!
자꾸만 까부는 녀석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머리를 쓰다듬는 척 아이언 크로를 시도했다.
열다섯이나 있으니까 아무렇게나 대충 손을 휘두르면, 적당하게 누군가가 잡혀주지 않겠어?

얌전히 있었던 녀석들은 무슨 죄인가 싶겠지만, 연대책임이다. 구체적으로는, 옆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보고있는 쪽도 열받는다.

하지만 살기라도 느낀건지, 아니면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게 싫은건지, 약삭빠르게 모두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빗나가니까 오기가 생겨서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기이한-"

…다시 한번.

"야~리!"

다시금 헛손질이었다.
아니, 이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가라테를 했었으니까, 다 늙은 아저씨의 공격조차 피하지 못해서야 곤란하지.

"봐이!"

봐주는 것은 이정도로 해줄까.

"아라아라~"

어라? 너 운명의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니히힛!"

다시 한번 손을 휘두르려다가, 이제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고.
물론,

훼이크다!! 이 딸들아!!

 

"웃-우!!"

하지만 제일 순순히 잡혀줄 것 같았던 막내조차 , 내 공격을 마치 걸윙도어처럼 양 팔을 하늘로 치켜올리며 고개를 숙이는 인사로 피해버리고 말았다.
큭, 막내를 인질로 잡는다면 다 잡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니, 그건 아버지라기보다 인간으로서 최악이니까요? 프로듀서 공.


이런 식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개성이 통통튀는 딸자식들이라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뭐, 너희도 운이 좋다면 누가 고쳐주거나 하겠지. 옛날에 아이돌을 해먹던 녀석들처럼 그 개성을 재주껏 승화시킬 수도 있겠고.
나같은 경우에는 작은 하마같은 부인한테 잡혀살다 보니까 자제하게 되더라고.

…뭐, 고생해서 키운 녀석들을 시집이라도 보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조금 쓸쓸해지기는 하겠지만.


"흥, 그런 소리를 하는게 아니야."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까-하고."
"프로듀서는 은근히 외로움이 많은 성격이니까요! 내(ぼく)가 지켜주지 않으면."
"자신도 언제까지나 프로듀서를 떠나거나 하지는 않는다구!!"
"프로듀서의 처녀는 어머니에게도 넘겨줄 수 없으니까요!"
"아라~ 운명의 사람은, 언니나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어요?"
"모두 함께인거에요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 가족이니까!"""""""""""""""

아오, 단결하지마. 이 딸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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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찔끔찔끔 써오던거 술먹은김에 올려봐요.
오후 4시에 무슨 술인가 싶겠지만 미쿡쪽은 12시니까요em28.gif
사나이라면 임신엔딩이 목표인게 당연하지 않나? 싶은 발상으로 쓰기시작한 괴작입니다(…) 
아직 용량도 부족하고,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서 옆편으로 프롤로그 조금만 올려봅니다만…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2:3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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