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P: 아, 미안. 오늘 그녀하고 데이트거든, 영화는 다음에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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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0, 2013 01:38에 작성됨.

  아마미 하루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휴일을 만끽할 준비를 했다. 그 동안 사실상 765프로의 리더 역할을 하느라 슬슬 지쳐가던 참이었다. 물론 동료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너무나 좋아하는 하루카였지만, 계속 혹사당하다보니 체력적로나 정신적으로나 슬슬 한계라고 자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새로 들어온 프로듀서가 어디선가 물어온 벨소리 작업이 아니었으면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765프로의 아이돌들은 대부분이 갓 연예계에 데뷔를 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일거리를 단독으로 받아서 할 레벨의 아이돌은 없었다. 그나마 하루카만이 D랭크라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가끔 찾아주는 정도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명이나 되는 아이돌을 담당하는 프로듀서는 리츠코 혼자였다. 

  그런 상황에 타카기 사장이 어디선가 데려온 것이 프로듀서였다. 원래는 어디선가 경비원으로 일하던 모양이었는데, 어느 빌딩이었는지 물어보면 기밀이라고 대답을 회피했다. 경비를 했다는 것마저도 밝히면 안 된다니, 그런 곳이 있을까.

  “하지만……. 그렇네. 분명 군사시설일거야.”  

  언젠가 영화에서 본 건물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상한걸.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경비원이라면 분명 근육이 많고 날렵한 아저씨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프로듀서는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마코마코링~ 프로듀서 말야, 저래보여도 무술의 달인이라거나 하는 걸까?” 

  “으음……. 이상한걸. 나도 유단자지만 그에게서는 무술인의 기세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분명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그 흔적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흥! 저런 게 그런 실력자일 리가 없잖아! 저건 분명히 집에 틀어박혀서 부모님 돈이나 축내고 있었을 게 틀림없어!”

  “하, 하하……. 이오리, 말이 심한걸.”

    ……사무소의 다른 아이들과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프로듀서가 처음 얼굴을 비친 다음 날의 일이었겠지. 이오리는 프로듀서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지만 벨소리 업무를 따낸 이후로 아이돌 동료들이 프로듀서를 보는 시선도 확실히 달라졌다. 그 이오리조차도 일에 대해서는 프로듀서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형편이니까. 야요이는 이번 달에는 프로듀서 덕분에 숙주나물 축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고. 뭐야, 이 아이. 천사야…….

  “핫? 으아, 또 딴 생각을…….”

  하루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무튼 765프로덕션에 갑작스레 나타난 프로듀서라는 남자는 정체불명이다.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음……. 프로듀서 씨, 역시 오프니까 아직 자는 걸까. 모처럼 같이 보려고 준비했는데…….”


  「큿……. 메일이야.」
   하루카는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엔.

  보낸이 : Producer
  제목 : 아~ 미안
  내용 : 오늘 그녀하고 데이트거든, 영화는 다음에 보도록 하자?  

   “이……. 이게 뭐야…….”


  하루카는 눈을 의심했다.

  “프로듀서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럴 리가…….”
  ‘내가 봤던 것은 뭐지?’


  그것은 그저께 저녁의 일이었다.
  근 한달만의 보컬 레슨을 마치고 사무소에 놔둔 짐을 찾으러 돌아간 하루카는, 사무원인 오토나시 코토리씨의 컴퓨터에 앉아 있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모니터에는 어떤 쇼핑몰이 띄워져 있었는데, 하루카도 몇 번인가 물건을 산 적이 있었던 곳이다. 프로듀서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곳이라서 하루카는 눈을 크게 떴다.

  아직 프로듀서는 하루카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프로듀서는 화면에서 어떤 상품을 선택해서 결제버튼을 눌렀다.

  “꺗?!”

  돈가라갓샹!
  프로듀서가 사려는 물건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하루카는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하루카의 존재를 눈치챈 프로듀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하루카!? 간 게 아니었나! 아, 아니지. 괜찮아?”
  “으, 아파요……. 발목은 괜찮은 것 같지만요.”

  프로듀서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 하루카. 기척이라도 좀 내는 게 어때?”  “네에……. 그런데, 프로듀서. 지금 그건…….”
  “어?! 봤나! 아, 이건 말이지…….”

   프로듀서는 곧 생일을 맞는 조카가 있어서 생일선물을 주문하던 참이라고 대답했다. 하루카는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보낸이 : Producer
  제목 : 아~ 미안
  내용 : 오늘 그녀하고 데이트거든, 영화는 다음에 보도록 하자?  

  “이상한걸……. 그때 프로듀서가 사려고 했던 건 분명히…….”

  요즘 유행하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렇지만, 진한 성인 취향 작품으로 결코 어린애들에게 선물할 만한 건 아니었다. 프로듀서는 자신이 그 작품을 모르리라 생각해서 조카 핑계를 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라고 믿었는데.

  “우우……. 프로듀서가 리얼충이었다니……. 나, 충격인걸.”
  DVD도 준비했는데……. 분명 취향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경비원이란 것도 분명 자택경비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카는 우울해졌다.   

  ‘분명 프로듀서도 나랑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아…….’

  “미안, K쨩……. 오늘은 나랑 놀자…?”

  추욱 늘어진 하루카는 타이틀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타이틀은 프로듀서가 사려던 작품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바로 오늘 발매되는 것이었다. 하루카는 지인을 통해 선행발매로 구입해서 어제 저녁에 받은 참이었다. 프로듀서가 틀림없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라니. 삼차원의 여성에게 욕정하는 존재였다니……. 

  ‘사무소의 동료 아이돌들을 보고도 그런 마음을 품는 건 아니겠지!? 더……. 더러워…….’

  그런 하루카의 손에 들린 DVD는, 같은 시각 프로듀서가 플레이어에 세트한 것과 정확히 같은 작품이었다.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2:3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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