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붉은 실을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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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4 23:39에 작성됨.

 

 

 

마유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걸 아세요, 프로듀서 씨?”


어느 날 마유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운명의 붉은 실이라··· 역시 마유도 요즘 여자아이라는 걸까.

 


P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續玄怪錄)’에 등장하는 ‘월하
노인(月下老人)’ 이야기에서 시작된 거? 언젠가 맺어질 남녀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믿음으로, 월하노인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어
그가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반드시
맺어진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신이지. 월하노인의 홍실 전설이
일본에 유입되고 나서는 실이 새끼손가락에 매어지는 것으로 바뀌었고 말이야.

 

마유 “우후후··· 역시 프로듀서 씨. 뭐든지 다 알고 계시는군요?”

 

P “뭐든지 다 아는 건 아니야. 아는 것만.”

 

마유 “그럼 혹시 이것도 아시나요?”

 

P “뭐가?”

 

마유 “보름달이 뜨는 심야 자정. 젊은 남녀 둘이 거울 앞에 서서 손을 마주
잡고 있으면 새끼손가락에 매어있는 붉은 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요.”

 

 


그건 처음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자정?
그런 오싹한 시간에 운명의 상대를 확인해야만 하는 걸까?

 


마유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겠어요, 프로듀서?”

 

P “마유는··· 약삭빠르구나.”

 


내가 살짝 퉁명하게 대꾸했지만 마유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

 

 

마유 “이런 늦은 시간에 뵙자고 해서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

 

P “···단 둘이 있을 때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아.”

 

마유 “우후후~ 그렇지 않아도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어요, 코코로(こころ) 씨.”

 

P “역시 안 되겠다. 그냥 평소대로 불러줘.”

 

마유 “전 프로듀서의 이름을 좋아하는 걸요.”

 

P “어감이 여자애 같단 말이야.”

 

마유 “알겠어요. 마유는 프로듀서 씨가 싫어하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현재 시각은 정오가 되기 5분 전.
마유와 나는 전등도 켜지 않은, 오로지 달빛만으로 채워져 있는 사무소에
단 둘이 있었다.
아까 낮에 마유가 들려준 이야기.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매어져 있는 붉은 실을 확인하는 방법.

 

솔직히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애초에 흥미가 없었다면 이런 늦은 밤에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았다.

 


마유 “아, 이제 곧 자정이에요~!!”

 

P “그렇구나···.”

 


마유 “어서요, 어서~,”

 


나 참 혼자 신나가지고.
사무소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서서, 나와 마유는 서로 손을 마주잡았다.
운명의 상대를 확인하는 중대 이벤트치고는 너무 쉬운 과정이었지만 어쨌든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기다리던 자정이 다가왔다.

 

 


마유 “붉은 실··· 이에요.”

 

P “붉은 실이다.”

 


정말로 붉은 실이 보였다.
타이밍 좋게 사무소 안으로 쏟아진 달빛이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손가락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새끼손가락에 매어져 있는 붉은 실.
단 한 명의 운명의 상대에게 이어져있는 심홍의 인연.

 

그리고 마유와 나의 붉은 실은,
이어져있지 않았다.

 


마유 “어, 어째서···.”

 

P “······.”

 


내 새끼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과 마유의 새끼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여기에서는 볼 수가 없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자신들의 운명의 상대를 향해 이어져있을 것이다.

 


마유 “이럴 수는 없어요. 분명··· 분명 마유와 프로듀서는 운명의 인연이에요.
그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요?! 제 두근거림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이
따뜻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대체 뭐라는 말인가요?!!”

 

P “마유··· 이걸로 확실해진 거야.”

 

마유 “듣고 싶지 않아요. 붉은 실이라니. 그런 건 그냥 미신이야. 그런 게
없어도 마유와 프로듀서 씨는 늘 사랑의 인연으로 매어져 있어요. 그렇죠?
그런 거죠?”

 

P “아니야. 나와 마유는 서로 이어져있지 않아. 그게 운명인 거야.”

 

마유 “프로듀서!!! 싫어요!! 마유를 버리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프로듀서를
사랑하고 있는데!!! 제발··· 제발요, 제발···.”

 


이런이런.
사람 말은 제발 끝까지 들어줬으면 하는데.

 


P “다시 말하지만··· 나와 마유는 이어져있지 않아.”

 

마유 “프로듀서!!!”

 

P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애초에 운명의 붉은 실이니 뭐니··· 애초에
운명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콰직!!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오른손목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무엇을 내리쳤냐고?

 

당연히 식칼이지.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다. 손목을 자르는데 칼 말고 또 뭐가 필요한데?

 

어쨌든 오른손은 아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나는 잘려나간 오른손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마유 “프로듀서···? 그건 프로듀서 씨의 오른손이잖아요···!!!”

 

P “그리고 붉은 실이 매어져있던 손이기도 해. 나에게는 더 이상 붉은 실이
없어. 그 어떤 운명에도 얽매어있지 않아.”

 

마유 “운명··· 운명··· 운명··· 우후후··· 우후, 우후후후···!!! 그런 거에요. 그런
거네요. 정말 단순한 사실이었어요.”

 

P “정말이지··· 난 머리가 나빠서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니까.”

 

마유 “이런 운명을 따를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자르면 그만인 걸요!!!”

 

 


콰직!!
마유는 내가 건네준 식칼을 받아들자마자 오른손목에 내리찍었다.
몇 번 내리친 나와는 달리 마유는 단 한 방에 깨끗하게 오른손이 절단되었다.

 

이렇게 나와 마유는 오른손을 잘라버렸다.

 

나와 마유에게 매어져 있던 붉은 실은 더 이상 없다.
우리 둘에게는 어떤 정해진 운명의 상대도 없다.
아니, 이제 운명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잘라버렸으니까.

 


P “이거 좀 위험하지 않을까? 운명을 잘라버리다니···.”

 

마유 “우후후··· 상관없어요.”

 


마유는 내 목 뒤로 양팔을 두르면서 말했다.

 


마유 “프로듀서 씨와 이어지지 않은 운명 따위··· 필요 없으니까요.”

 

P “그래··· 정말 그렇구나.”

 

마유 “프로듀서 씨··· 죄송하지만··· 키스해주실래요? 괜찮죠?”

 

P “괜찮겠지. 마침 만월이고··· 나름 낭만적이구나.”

 

 


운명을 확인하는 밤이 아닌,
운명을 잘라내는 밤이 되었지만··· 뭐 아무래도 좋겠지.

 

그렇게 대충대충 마무리를 지으며 나는 마유와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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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님이 훈훈달달만 쓰시니... 이제 네잎님은 훈훈달달의 사도입니다.

 

거기에 얀분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 건 당연한 순리.

 

부족하지만... 저라도 다시 움직여야겠죠?

 

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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