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달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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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7, 2014 18:49에 작성됨.

달을 구경한다는 것은 이미 퀴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행위이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든가, 그냥 느긋하게 본다든가 하는 사람은 이제 없는 시대이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찬사나 옹호 또한 옛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달을 보기 시작한 것은. 특히, 동그랗게 가득 찬 만월을 보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그러기 시작한 날과 그  동기가 떠오른다. 내가 달을 보는 행위를 한 것은 약 1년 전부터였고, 내가 달을 보는 행위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은…….

  계단을 걸어올라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스스로가 우스워서 피식, 웃어버리게 되었다. 여러가지 감정이 조금씩 섞이는 걸 느꼈다. 이 복잡함 속에서, 나는 이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는 걸음도 같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내 생각과 감정과 느낌도 가라앉았다. 달을 보기 전에는 생각을 가라앉히는 편이 좋답니다, 누군가의 말이 잠시 귓가에 스쳤다. 덕분에 다시 내 안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려고 했지만, 간신히 지나보낼 수 있었다. 아아, 그렇지 달을 보기 전에는 조용해지는 게 좋지. 나는 닿을 리 없는 답변을 하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오늘이라면, 좋은 만월이 보이겠지.

 

  그리고 만월을 보는 그녀도 있었다.

 

  이런 일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말을 잃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도대체 어떡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현실은 상상과 달리,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옆에 걸어가 섰다.

  “오래간만입니다, 귀하.”

  “아아, 그러게 타카네.”

  나와 타카네는 자연스럽게 같이 서서, 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좋은 달이구나.”

  “네, 오늘 달은 특별하군요.”

  특별해? 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질문들은 나오질 않았고, 허공을 맴도는 말은 달데 닿는 일 없이 내 안에서 끝날 뿐이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정적. 어색하고, 어색하기에 끔찍한 정적.

  “…요즘은 어때.”

  정적이 너무 끔찍하기에 끄낸 내 답변도 끔찍했다. 어때? 그녀가 어떤지 언제나 체크하고 파악하고 있으면서, 묻는 질문이라는 건 이런 것인가.

  “정말로 충실한 나날이옵니다. 귀하는 어떠신지요?”

  “나야 뭐…”

  “후훗, 귀하답습니다.”

  “응? 무슨 말이야”

  “귀하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 물으면 서툴러했었죠. 그걸 아는 제가 질문을 실수한 듯 하옵니다. 새로 담당하시는 아이들은 어떤지요?”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나는 그렇게 보였었나, 타카네는 나를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나, 등등의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면서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아하하, 순조로워. 치하야는 노래만 너무 신경쓰는게 탈이지만 그래도 천천히 마음을 열어주고 있고, 아즈사씨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데,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손짓까지 간간히 섞어가고 있는데, 어째서 내가 하는 말이 이렇게 멀리 들리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감추는 것 같고, 흔들리는 손끝은 저려오는 것일까. 그리고 너는, 왜 이런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이렇게 열심히, 그런 눈으로 들어주는 것일까.

  “후훗, 그건 정말 큰 일이었군요.”

  “그러게 말이지, 저번엔 거기다 치하야가…….”

  “…? 왜 그러시는지요? 갑자기 말을…”

  “…미안, 갑자기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지네.”

  힘겹게 내 마음이 내 말과 섞여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말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스스로의 감정은 추스러지지 않고, 제정신이 아닌 듯한 머리만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지치신건지요?”

  “…아아, 그렇네. 지쳤나, 보다. 나도 참, 톱 아이돌 앞에서 무슨 투정일까 하하핫.”

  “투정이랄 것도 없사옵니다.”

  “…타카네는 여전히 상냥하구나.”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요?”

  “아니야, 그냥, 좀, 지쳤나 보다, 랄까?”

  “보다, 라뇨.”

  “아하하하… 모르겠네. 2달 전만 해도 의욕에 가득 차 있었는데 말이야. 열심히 해야지, 이번엔 잘 해 봐야지… 그런데 갑자기 힘들어지는군.”

  “의욕이 없어지셨는지요…?”

  “…응, 왠지 그렇네.”

  “…….”

  “…….”

  “…….”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기분이야, 하하핫.”

  “중요한 걸…?”

  “응, 사실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었어. 학생일 때 옆 방에서 지냈던 친구였는데, 너무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만나자고 하더군. 그래서 미안, 요즘 너무 바빠서 힘들겠어! 라고 했더니 말이야…….”

  “예.”

  “…으음, 그 친구야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충실하게 지내고 있나 보네? 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말에, 순간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

  “충실, 이라.”

  “저기 타카네, 나는 충실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우문을 던져버렸다. 스스로가 충실한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은 그 스스로의 몫이다. 거기다, 그런 질문을, 나는 내가 전에 내가 담당하고 내가 키워내었던 아이에게 하고 있다. 언제나 뒤를 봐 준 그 아이에게 내 등을 떠미는 듯한 질문을 던져버렸다.

  “…귀하.”

  “아아, 잠깐 이 질문은 무효무효, 나도 취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말을 하지, 패스패스! 달이 너무 밝아서 그런가…”

  “사람은 누구나 지치는 법이랍니다. 그리고, 누구나 고민하는 법이랍니다.”

  “…….”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 고민을 감당해 줄 수도 없습니다만, 귀하가 그러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집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귀하 여…”

  “여…?”

  “실언을,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미안하군, 내가 이상한 얘기를 꺼낸 모양이야.”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인사하고 나갈 시간이다. 나는 퇴장할 시간이다. 달의 무대는 달의 공주에게 맡겨야 한다.

  “쉬는 데 방해한 거 같네, 먼저 내려갈게. 톱 아이돌이 된 뒤로는 쉬는 시간도 적었을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맥없는 인사나 하면서 손을 흔들고 나가려는 나에게, 타카네가 말하기 시작했다.

  “귀하가 바라는 꿈과 목표를, 저는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건, 밝은 태양과 같은 것이겠지요. 밝고 뜨거운 태양같이. 밝고 뜨거운 만큼 힘들 때도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 때는 종종 쉬러 오십시오.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귀하를 기다릴 것입니다.”

  “…타카네.”

  “그리고 이런 저라도, 귀하의 얘기를 듣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두려워서, 내가 겁나서 도망친 아이에게서, 이런 위로를 듣는 나는, 내가 너무나, 말도 안 되게 끔찍하게, 한심해져서, 더더욱 한심해진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서, 그냥 그대로 문을 열고 건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는 나에게, 타카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귀하의 미래는 아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귀하가 키운 저는 톱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이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귀하의 과거를, 없던 것처럼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대의 과거는 이렇게나 훌륭하게 있답니다…….”

  나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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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느낌나서 쓴 글입니다. 봐주신 분들께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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