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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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7, 2014 14:32에 작성됨.

“프로듀서 씨! 얼굴이 또……!”

프로덕션의 문을 열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친 유키호는 경악하듯 놀라더니, 구급상자를 들고 나에게 달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다. 지금 내 얼굴은 수많은 멍과 붓기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역시 오늘도, 인가요!”

“응. 오늘도, 야. 계단에서 넘어지는 건 이쯤 되니 조금 익숙한 걸.”

“우우…… 역시 제 불운이 분명 프로듀서 씨에게 옮겨간 거에요! 저는 프로듀서 씨를 만나기 전에도 매일 개에게 쫓겨다니거나, 눈이 내리는 날엔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잠옷 차림으로 나갔다가 감기 걸리거나, 조심스레 누군가에게 말을 해도 ‘유키호 뭔 말 했어?’를 몇 백 번은 들었는지!”

“하하하…… 불운이랑은 관계없는 것 같지만 말이지…….”

불운…… 과연 그럴까.

「불운한 새끼」

언젠가의 기억이 나를 잠시 나를 두통에 휩싸이게 한다.
그런 나를 눈치채지 못한 듯 유키호는 말을 이어나간다.

“상관 있어요! 프로듀서 씨를 만난 이후로 굉장히 저는 얼마나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아, 아? 방금 전 뭔 말을 한 거죠!”

스스로 한 말의 의미를 눈치채고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여 얼굴을 붉히는 유키호.

“그래도 이젠 도망은 가지 않는 구나.”

문득 생각나서 작게 중얼거려 본다.

“네? 아, 그러게요. 하하……, 이것도 프로듀서 씨 덕분이겠죠.”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 보았다.
성장은 커녕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는 지금 내 앞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고 이제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무서움을 느껴도 도망가지 않게 됐다.

“…… 그런데 내가 도망갈 수야 있나.”

“네?”

“아, 아니야.”

유키호는 익숙해진 손짓으로 솜과 약을 이리저리 휘둘러 내 얼굴을 치료해주고 있었다.
처음엔 발라야 할 약을 착각해서 바로 나을 부분이 오히려 더 심하게 덧나는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나 자주 다치고 오면 역시 유키호도 익숙해졌을 것이다.
상처가 솜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따끔함 사이에서 웃음을 거두고 유키호를 바라본다.
겁은 많지만, 유키호는 언제나 상냥한 아이였다. 아니, 지금도 상냥한 아이고, 언제까지라도 상냥한 아이일 것이다. 내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절망해도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이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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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프로덕션에서 꽤나 멀다. 그렇다고 교통수단을 살 자본적 여유도 없고 누구처럼 지하철 몇 번을 갈아타야 오는 압도적인 거리도 아니기에 걷지만.
문제가 있다면 사람의 인적이 없는 조용한 거리를 걷는 일이 많다는 것.
그리고 소란이 벌어져도 알아차리기 힘든, 벽으로 둘러싸진 주택가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해가 정수리 위를 따스하게 감싸는데도, 뻥 뚫린 도로를 걷고 있는데도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뒷통수에 강한 타격이 느껴지며 의식이 흐려진다.
희미한 시야와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 사이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두 명의 남자다.

“저 새끼입니다.”

부하로 보이는 한 녀석이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녀석은 익숙했다. 몇 번 더 만난 적이 있으니까.

“이런 흐물흐물한 새끼가 아가씨를 건드렸다고? 잘못된 거 아니냐?”

나를 후려친 도구로 보이는, 시라사야를 든 한 남자가 대답했다.

“딱 봐도 이딴 깔끔한 치장으로 아가씨를 유혹한 게 당연해보이지 않습니까. 저번에 제가 직접 본 것도 있으니 확실합니다.”

각목의 남자는 내게 다가와 쑤그리고 앉아 시라사야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말한다.

“야. 깨어있냐.”

대답할 힘도 남아있지 않으나 머리를 툭툭 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신음이 나온다.

“보니까 저번에 저기 애가 아가씨를 그만 건드리라 했는데 무시했다며. 주둥이를 무시하면 당연히 다음엔 매가 날라오는 거 몰랐…… 냐!”

말소리가 점점 흉악해지던 시라사야의 남자는 말을 끝내자마자 나의 복부를 시라사야로 내려친다.

“우욱!”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이 나는 먼지 사이로 뒹굴 뿐이었다.
하지만 타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배를 움켜쥐고 입에서 피를 토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를 내려친다.

“요즘 큰형님이 아가씨가 더럽혀지고 있다고 난리시다. 큰형님 의외의 남자만 봐도 기절하시던 아가씨가 왜 더럽혀졌는지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냐? 엉? 대답해봐!”

“형님. 이러다 걸리면 귀찮아집니다. 슬슬 뜹시다.”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부하가 말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에게 날려오던 타격이 멈춘다.

“후…… 별 병신같은 게……”

무기를 부하에게 넘기고 자신의 옷을 털기 시작하는 남자.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

“더렵혀지고 있는 게 아냐!”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따가운 목구멍 사이로 나는 소리쳤다.

“하기와라는……, 아니, 유키호는 극복하고 있어! 확실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이지만, 무서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그건 더럽혀지는 게 아니야! 극복하고 있단 거다!”

피토를 삼키면서 끝난 내 연설의 후의 침묵은 그 자체가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가선 안 된다.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날이 얼마나 찾아오든, 어떻게 찾아오든 나를 걱정할 그 아이를 위해 나도 그 아이를 걱정해줄 것이다. 이유? 이유는 모른다. 몰라도 구할 것이다. 내 삶의, 어쩌면 죽어서도 지키고 싶어할 내 목표가 됐으니까.
옷을 정리하던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구겨진 얼굴을 서서히 정리하고, 조용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상태로 부하에게 준 시라사야를 다시 가져간다.

“응. ……끝까지 해보겠단 거네. 새끼가!”

몇십 번의 발길질과 타격 이후 남은 건 내 부러진 안경과 약간의 피가 묻은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너덜해진 나였다.

「하여간 너도 참 불운한 새끼다. 그냥 짜져서 살면 될텐데…….」

그들이 떠나기 직전 했던 얘기가 내 머리를 울린다.
스스로 머리를 바닥에 쥐어박아 생각을 없앤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나마 숨의 빠르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생가했을 때 왼손을 올려 시간을 본다.

“지금…… 가야…… 해……”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쉽게 일어나서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듯이 걸어나서는 나.
그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 아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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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그 후에도 잊을만 하면 나는 그들의 화풀이감이 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유키호의 앞에서 ‘넘어졌다’고 변명하고, 그런 매일매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정신을 차리면 나를 뚫어지듯이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유키호가 있었다.
멍하니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코와 코를 맞대고 바라보고 있는 유키호가.

“……아? 아?!”

눈 앞에 펼쳐진 갑작스런 광경에 놀라서 소리지는 나.

“에?!?”

내 소리를 듣고, 상황을 눈치채고 놀라는 유키호.

“어아아아아아?!?!”

그리고 놀라는 우리.

“아, 저, 그, 프로듀서 씨, 그냥 약을 다 발랐다고 말 할려고 한그우으저기너무놀래키시면제가무서운데그런거자제해주시면어떨지생각하는것같기도하고아닌느낌이기도하고…….”

“아, 응, 그러게. 놀래켜서 미안.”

내 얼굴을 새삼스레 만져본다. 애정이 담긴 듯 곧바르게 발려져 있는 밴드가 인상깊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방황하는 유키호를 본다.
만나지 않았다면.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지냈다면.
과연 우리는 좀 더 행복했을까.
유키호가 처음 프로덕션에 찾아 왔을 때, 그녀는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다.
단지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바닥을 쳐다봐, ‘이 성격을 고치러 왔어요’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말을 하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던 유키호를, 내가 잡았었다.
자신있게 외쳤던 내 대답도 기억한다.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줄게!”

왜 그런 말이 뜬금없이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유키호의 모습에서 나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단지 수줍음의 탓에 방에 쳐박혀 아이돌들을 보며 ‘저런 영광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논 어떤 프로덕션.
그곳에 처음 다다랐을 때, 나도 역시 에꿎은 머리카락을 긁어대며 바닥을 바라보고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같은 말을 하고, 마지막에 혀가 꼬여버려서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갔다가 합격 문자를 보고 들어온 과거가 있었다.

“그걸 말할 때의 프로듀서 씨는 ‘저보다 겁쟁이인 사람도 있구나’ 같은 표정이었어요.”

“뭐, 그때야…… 어? 나 혹시 입 밖에 내 버린 거야?”

“들어버렸네요. 후후.”

악의는 없더라도 유키호한테 놀림받을 정도로 부끄러운 짓을 하다니, 최악이다.

“그래도 지금은 프로듀서 씨나 저나 ‘극복’ 했잖아요.”

유키호의 수줍은 미소를 본다. 분명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모를텐데 이해하는 것처럼.
어쩌면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닐까. 나처럼, 그렇게 바보처럼.
이 웃음을…… 이 웃음을 내가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끝난 게 아닐까.
그들의 말대로 난 더 이상 그녀를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하나가, 하나의 일이 더 남았다고 생각한다.

“네?”

“불운한 게 아니야.”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라 하는 유키호의 어깨를 잡고 말한다.

“유키호, 나는 너를 만난게 무엇보다 행운이라고 생각해. 불운이라던가, 더럽혔다던가가 아니야. 너를 만남으로써 너를 극복시켰지만, 나도…… 극복했으니까. 앞으로도 극복할 게 몇 개, 몇십 개, 몇백 개가 남아있을 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어깨를 잡은, 내 부들부들 떠는 손을 그녀는 천천히 풀어서 자신의 손에 맞대었다.
떨림은 어느새 그쳤다.

“알고 있어요. 언제라도 함께.”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녀의 웃음을 만들었다면, 지켜야 한다.
내 손을, 그녀의 손을 강하게 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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