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X 765] 은하소녀전설. 1장. 우주력 1305년 1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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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7, 2014 19:38에 작성됨.


우주력 1305년 1월 7일. 07:00 A.M.
공화국 향성(香星) 데모크라테스. 공화국 수도 발스타츠.


사바나의 덤불마냥 삐죽삐죽하게 솟아오른 금발을 긁적거리며 미키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음식이라고는 푸석푸석한 빵과 다 상한 식재료 몇 가지.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지 일주일이 된 우유뿐이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빵과 우유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아후-"

하품을 하며 우유와 함께 우적우적 씹는 빵은 별다른 저항감 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고, 먹으면서도 그다지 상했다는 감을 느끼지 못했다. 

간밤에 악몽을 꿔서 그런지, 몸이 평소보다 몇 배는 무거웠다.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다. 아프고, 아프고, 아프고, 아픈데---- 비명은 지를 수 없고, 목은 타들어 가고, 매정한 태양은 전신을 따갑게 찔러댄다. 말 그대로 희미한 영상들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이라는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겨우 식사를 마친 미키는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얼마 전에 나무코 성계에서 있었던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방송하고 있었다. 그다지 관심을 느끼지 못하고 미키는 채널을 돌렸다.

"아. 마빡짱이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미나세 이오리-이른바 마빡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가 발스타츠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렸으니, 아마 나이가 스물 둘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고 미키는 생각했다. 물론 남자들을 비롯한 고연령층이 지난 긴 세월의 전쟁 동안 대부분 죽어나갔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어린 나이에 공화국 의회 의장에 취임한 것이다. 물론 지금 이오리가 말하는 내용은 한참 졸린 그녀의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TV를 보다 시계로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인가 시침이 여덟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아. 그러고보니 조례회의가 있다고 했었는데-"

몰려드는 잠을 물리치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일부러 입밖으로 내며 몸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미키는 누가 뭐래도 잠이 일보다 소중한 여성이었다. 평생 잠만 자고 일을 하지 않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니- 아, 그래도 가끔 반짝이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각설하고, 그런 성격의 미키가 갑자기 안 하던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를 하려고 하니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아후-"

십분 동안 비몽사몽하며 사투 끝에 옷을 갈아입으려고 겨우 장롱 앞에 섰으나, 그 옆에 있는 침대 앞에 털썩 무릎 꿇고 앉은 채 침대맡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미 한계였다. 엄마. 나 노력했어. 그러니까 자도 돼지?

-따르르르르르르릉!

침대 바로 옆에 있던 탁자 위의 자명종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미키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맞추어 놓은 알람이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일까. 잠에 들 뻔한 순간에 바로 머리맡에서 울리도록 설정해놓은 알람 때문에 미키는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리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타카기 아저씨 별 일 아니면 정말 화낼거야..."

게으름뱅이에 잠자는 것이 특기인 미키를 아침일찍 불러내다니. 별일 아니면 정말로 사직서를 낼 각오까지 하며 미키는 잠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나섰고, 그 순간, 미키의 제복 어깨 위에 달린 세 개의 별이 반짝 하고 빛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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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우주군 총사령부 회의실.

공화국 우주군 제 6함대 사령관 후타미 아미는 원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원탁을 둘러 배치된 15개의 의자. 하지만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은 7명밖에 되지 않는다.

전부 반년 전에 있었던 961회랑 전투 때문이다.
4함대부터 11함대까지 총 8개함대에 동원된 인력만 800만에 달하는, 어떻게 보면 공화국이 동원할 수 있었던 총력전이나 다름없었던 이 전투에서 공화국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 전투에서 자그마치 삼백만명이나 되는 장병들의 시체조차 건질 수 없었고, 포로가 된 장병이 오십만에,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함선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당시 5함대, 8함대, 10함대는 기함을 잃고 재편조차 불가능했다.

"하아-"

아미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즈란 로벨트 전 집권 여당 의장의 제시로 출병했던 이 전쟁은 총사령부에 정치밖에 모르는 로벨트파 장성들이 앉아 있는 시점부터 벌써 잘못되어 있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국방통수본부장이 되리라고 큰소리 떵떵치던 샤를 메타슈비츠 전(前) 총사령관은 전파방해로 잠입한 하기와라 유키호 백작의 제국 8함대가 측면을 파고드는 순간에 말을 잃었다. 그 직후, 마치 땅굴을 파내는 것 마냥 아군 진형을 삽시간에 무너뜨리던 그 순간에 말도 안된다며 비명을 지르다 P 작전참모부장에 의해 강제로 의무실로 이송되었다.

밝혀진 병명은 전환성 히스테리에 의한 신경성 맹목.
어리광쟁이로 자라 자아가 이상증대한 유아들에게 보이는 증상이라고 한다.

한참 지옥같은 철퇴전을 하던 도중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잃고 말았다. 차라리 소아성애자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성 도착증은 군사적 판단 능력과 관계가 없으니까. 하지만, 소아성 히스테리? 유아들에게나 보이는 자아 이상증상?

열살배기 어린아이를 총사령관이라고 둔 시점에서 이미 우리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전(前) 총참모장이던 멜라디 젠트라다는 진형이 무너지면서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은 나머지 모든 책임과 권한을 P 작전참모에게 이전하고서는 도망치듯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탓으로 죽어가는 장병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도망치는 총참모장이나, 유아성 히스테리를 부리는 총사령관... 과자를 사달라고 징징대는 총사령관과 그 입에 과자를 넣어줄 줄만 알던 무책임한 총참모장.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군부와 자유당 집권여당은 시민들의 들끓는 비난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자유당은 이어진 총선에서 대패해 보유 의석수가 반토막났고, 50년만에 생긴 권력의 공백을 야당인 자유사회당이 장악했다. 미나세 이오리 전 자유사회당 대표가 의회 의장으로 취임했고 말이다. 물론 마즈란 로벨트 전 의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야당이 된 자유당의 당대표는 미우라 아즈사가 자리잡았다.

군부도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
총사령관과 총참모장은 당연히 해직되었고, 그 자리에 타카기 준지로 전 3함대 사령관이 새로 임명, 총참모장은 아직 공석으로 남았다. 비어있는 3함대 사령관 자리는 전 3함대 부사령관인 이그니스 나이트로 중장이 맡기로 했다. 
일단 5함대, 8함대, 10함대의 편성도 급한대로 마칠 수는 있었다. 새로 건조된 함선들과 이전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패잔병들, 그리고 아직 어리기 그지없는 신병들로 말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실전 함대가 되려면 최소한 1년은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훈련을 위해서는 새로운 함대 사령관이 필요했고, 이번 회의가 열린 이유는 그것을 임명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여기 모인 제군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조용히 원탁에 앉아있는 사령관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타카기 총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961회랑에서 젠트라다 전 총참모장을 대신해 각 함대의 총지휘를 담당했던 P다. 오늘부로 합동참모본부 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아미가 응응, 하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서 전 함대의 진형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던 것을 오로지 수완만으로 회복시켜 철퇴를 성공시킨 인물. 대단하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총참모장이 되어준다면, 최소한 저번처럼 허무하게 함대를 잃을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아미는 생각했다.

"오늘부로 총참모장을 맡게 된 P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하는거야, 거기 있는 사람. 아후-"
"잘 부탁행, 오빵~"
"아미도 잘 부탁행~"

근처에 있는 몇 명인가의 사령관들- 특히 하품까지 하는 미키의 무례한 인사가 눈에 띄었지만 딱히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P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타카기 총사령관은 음음- 하면서 후덕한 아저씨 미소만을 짓고 있고 말이다.

이래도 될까... 우리 우주군....
잠깐 회의적인 생각이 아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능력만큼은 모두 인증된 사람들이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회전이 끝나고 패전의 책임을 지고 계급장을 반납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아! 미키도! 미키도 이제 그만하고 싶었던거야!"

씁쓸하게 미소짓는 P의 말에 미키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사람의 퇴직은 정부나 군부의 입장에서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 P는 이번 961회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가, 미키의 경우에는 961회랑의 제국 요새 타루키를 무혈로 점령한 천재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미키는 이번 961회랑에서 후퇴하던 아군을 추적하던 적 13함대 기함인 클레이모어를 소수의 함정으로 반조각낸 함대장이었다. 유능한 군인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이 시점에 그들의 퇴직을 군부는 넋 놓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리라. 

거기에 정부는 또 어떠한가. 패전의 아픔이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고통으로 남지 않도록 이들이 열광할 수 있는 영웅을 의도적으로 조명해야할 필요가 있었고, 그 대상이 P와 미키가 된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들은 정부로서는 놓아줄 수 없는 '조작된 영웅'이었다.

"미키미키! 그런 말은 참아달라궁!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구 구랭!"
"에- 미키는 들어도 상관없는거야. 애초에 더 남아있고 싶지 않은걸."

그럴만도 해-라고 아미는 생각했다. 
미키는 이번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몇 번이고 회군을 요청했다. 회군 요청이 거부되자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진형을 십수번씩 요청했고 말이다. 당시 작전부서의 참모장이었던 P도 그 의견을 수렴했지만, 총참모장의 선에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그 결과 삼백만의 공화국 국민들이 죽어버리는 최악의 회전이 일어난 것이다.

"음- 미키군. 여기 P군이 총참모장이 된 이상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걸세. 그러니 퇴직만은 참아주지 않겠나. P군도 마찬가지일세. 지금 공화국에는 자네가 반드시 필요하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민주주의는 제국의 군홧발에 짓밟히겠죠. 그 아마미 하루카 황제의 손에 의해서..."

그 이름이 P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불세출의 카리스마. 제국을 아우르는 천재. 희대의 전략가이자 정략가. 22대 은하제국 황제 아마미 하루카. 일견 평범하고 개성 없는 그 외모에 방심하다가 짓밟힌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고, 마음먹고 행동하는 순간 발현되는 카리스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담겨 있다고 한다. .

"저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공화국이 아무리 천민 자본주의에 물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영혼인 민주주의만큼은, 그리고 그에 따른 민주적 제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사직을 포기하고 총참모장의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헤에-"

미키가 뭔가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눈으로 P를 쳐다보았다. 권력의 단맛에 물들어 있던 전 총참모장과는 전혀 다른 어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P의 말이 사실일지는 더 지켜보아야 겠지만, 미키가 바라보기에 최소한 P의 눈동자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응! 재밌어보이는거야, 거기 있는 사람."
"...사석에서는 어떤식으로 말씀하시든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만, 공석에서는 자제해주시죠, 호시이 4함대 사령관."
"알았는거야, 거기 있는 총참모장씨."
"..."

아미는 P의 이마에 곤란하다는 듯 자그마한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아미가 뭐라도 지원사격을 해 주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옆에 앉아있던 1함대 사령관인 쿠라모토 대장이 미키에게 손짓했다.

"호시이 중장.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산만합니다."
"...응. 알았는거야."

쿠라모토 대장에게 묘하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미키를 본 아미는 언젠가 들었던 소문을 기억해낸다. 쿠라모토 대장과 미키는 사관학교 동기라는데. 뭔가 있는건가? 조사해볼까? 거기에 새로온 P 오빵도 있으니, 정보부를 움직여볼까?

"응훗후♡"
"아미 대원.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아미가 옆을 바라보자 마미가 마찬가지로 응훗후♡-한 얼굴로 아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미 대원. 그런 것 같군. 한동안 심심할 일은 없겠어!"
"힘내자구, 아미 대원!"
"음- 힘내는 건 좋지만, 모두 이곳을 주목해주시죠."

박수를 치며 주의를 모으는 P. 그 뒤의 스크린으로 몇 명인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자 하나. 여자 둘. 다들 젊은 나이대였다.

"이 남자는 코토미네 키레 준장. 새로이 편성된 5함대 사령관 후보입니다. 여자 중 단발의 쪽은 8함대 사령관 후보 미사카 미코토 소장. 장발의 쪽은 10함대 사령관 후보 밀라 맥스웰 소장입니다. 자세한 경력은 여러분의 스크린으로 띄우겠습니다."

아미의 눈앞에 반투명한 스크린이 나타나더니 세 사람의 경력이 나열되었다. 셋 모두 961회랑 전투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765회랑을 경유로 한 제국의 13차 토벌군 방어전에 분함대 사령관으로 참여한 경력도 있는 상당한 엑스퍼트였다.

"만약 여러분의 동의를 얻어 이들이 사령관으로 내정되는 경우 이들에게 1계급 승진이 확정됩니다."

크게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회의는 멈추지 않고 술술술 거쳐내려갔고, 이들의 사령관 내정도 확정되었다.

"오늘의 회의는 이만 끝마치겠습니다. 오늘 저녁 7시에 주둔 사령관 연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빠지지 말고 참석바랍니다."
"알겠는거야~ 아후. 지금은 졸리니까 빨리 집에 가야지."
"거기 P 오빵~ 오빵은 잠시 우리랑 같이 이야기하자구."
"응응! 오빵은 잠깐 기다려달라궁!"
"응? 잠깐, 후타미 중장..들? 잠깐 기다려줘! 나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거야!"
"우린 성도 같고 계급도 같으니까 헷갈리징! 그러니까 아미 마미면 된다구! "
"알았으니까 잠...!"

아미와 마미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는 P의 모습을 보며 타카기 총사령관이 허허 웃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다르구만."
"그런 말만 하지 마시고 좀 말리는게 어떻습니까, 사령- 아니, 총사령관 각하."
"허허. 이그니스 군. 저렇게 우의를 다지는 게 나중에 도움이 된다네."

타카기의 말에 이그니스 3함대 사령관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녀의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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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은 조금 루즈하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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