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ted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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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3, 2014 23:01에 작성됨.

넓디넓은 그곳을, 눈이 흩뿌려진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왠지 이 길의 끝에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냥 감이지만…. 그럴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에 대한 감은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8,90퍼센트는 들어맞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그저 무작정 걸었다.

 

“하- 춥네.”

 

이런 추위에 귀마개는커녕 모자나 목도리도 없으니 당연하겠지.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코끝이 시리고 귀가 아파져 온다.

 

“빨리 나와 주면 좋으련만.”

 

아무도 들어줄리 없는 말을 계속해서 꺼낸다. 이건 내 자신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다. 솔직히 말해서 기대는 별로 하고 있지 않지만, 아니, 기대를 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걷기로 했다. 산책하는 셈 치지 뭐, 오늘은 오프이기도 하고.

아, 그랬지. 오프라는 단어,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 없어진 단어지.

 

 

바람이 차가워서 마음이 떨려와

뺨에 닿는 비가 하얀 눈으로 변해가…

 

 

나도 모르게 그때의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하아…. 그러네, 노랫말 그대로 그땐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이 길을 둘이 함께 걷는다는 것, 그거 말이야.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건 누구의 책임도….

그래,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생각을 멈추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든, 아무 것도 없어도 좋으니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의무가 되어 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이것 봐, 눈이라구! 눈!’

 

‘네, 지금 내리는 것이 눈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답니다.’

 

‘그게 아니라! 나, 오키나와 출신이라 눈 내리는 건 거의 못 봤다구.’

 

‘그렇습니까.’

 

‘타카네! 첫눈이야, 첫눈!’

 

‘후훗, 그 말버릇은 꼭 아마미 하루카 같군요.’

 

 

길의 끝을 향할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가슴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발걸음은 빨라져만 갔다. 

 

 

‘이번 신곡은 너희 둘이 부르는 걸로 결정됐다.’

 

‘에? 정말이야?’

 

‘그래, 계절에 맞는 따뜻한 곡이 될 거야.’

 

‘진실로 기대되지 않을 수 없군요. 후훗, 당신과 듀엣이라니 기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라구!’

 

‘자, 그럼 두 사람 모두 일단 악보부터 받아. 곡의 제목은 말이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기에

시간만 흘러갈 뿐이지만

다시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아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그저 내 귓가에만 울려 퍼지는 나의 목소리. 허탈하기도, 다행이기도 해서 약간 혼란스러웠다.

길의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같이 레슨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구!’

 

‘그것은 제가 할 말이랍니다, 당신이 제 동료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에, 으…. 이거 좀 부끄러운데.’

 

‘후훗….’

 

 

길의 끝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도 옛 추억들로 가득 차있었다.

왜일까, 왜 잊지 못할까,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약속했으면서.

같이, 정상에 서자고 했잖아.

 

 

언제부턴가 잊히지 않는 생각을

얼어붙은 것 같이 소중히 끌어안아

같은 하늘을 보며 꿈을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너무 사랑스러워

 

 

언제까지나 함께일 거라고 생각했다. 

떠난다고 했을 때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나 사이라면.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시점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결국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로의 기분이라면 어디에 있더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이 모두 알고 있는데

그래도 평온한 그 장소를 찾고 싶어

언제나 곁에 있고 싶으니까

 

 

“돌아오는 거지…?”

 

한 번 더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를 내어본다. 내 목소리,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나에게는 큰 키, 그 눈, 그 콧날, 그 입술, 그 머리카락, 그 목소리….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오늘도 아니라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이제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 너무 춥기도 하고.

 

 

‘히비키.’

 

‘응?’

 

‘밤이 지나면 아침이 밝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 노래가사처럼, 겨울 또한 지나갑니다. 신록의 계절이 곧 저희를 찾아오겠지요.’

 

‘봄도 좋지만 난 여름이 좋다구.’

 

‘그런가요.’

 

‘타카네는 어때? 무슨 계절을 좋아해?’

 

‘히비키가 여름을 좋아한다면, 저 역시 여름이 좋겠군요.’

 

‘뭐, 뭐야 그게….’

 

‘후훗.’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기에

시간만 흘러갈 뿐이지만

다시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그녀와 내가 불렀던 그 곡의 가사를 다시 한 번 입에 담아본다.

이제 곧 봄인가…. 가사에 나오는 신록의 계절이 조금씩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지금은 외로움에 사무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따뜻한 날이 오겠지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하며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어

 

 

“행복한 날을 꿈꾸며…로군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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