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의 홀로 걷는 밤 -3-

댓글: 12 / 조회: 915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1-26, 2014 23:42에 작성됨.



* 심각한 설정 붕괴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아이돌이 망가지는 방향 뿐이 아니라 설정을 잘못아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새까맣게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거리에 미미한 빛이 돌아온다.
동쪽에 어스릇히 기울어가는 그믐달이 뜬 탓일까 아니면 새벽이 밝아오는 탓일까.
아마 여름철이었으면 슬슬 보이진 않더라도 지평선 부근에 해가 걸려있을 시간에, 87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의 아침은 시작된다.
단조롭게 기준음보다 두 옥타브 위의 B음을 삐빅거리는 자명종 소리에 침대 속에서 뒤척인다.
그러기를 3,4분 쯤 지나면 천천히 엎드린채로 몸을 일으킨다.
기어가는 듯한 자세로 어기적어기적 침대에서 나와 자명종을 끄고, 침대 밖이 쓸데없이 춥다며 한탄하면서 속옷을 챙겨서 욕실로 향한다.
프로듀서의 목욕시간은 보통의 남성들보다 배 이상 길기에 보통은 밥을 눌러놓고 목욕을 하러 간다.
그러나 아무래도 어젯밤 늦게까지 담당 아이돌들을 위한 자료를 보고 있던 것이 화가 됐는지 프로듀서는 밥을 누르는 것은 망각한 듯 싶다.
목욕을 하고 나와서 어기적어기적 간단한 반찬부터 꺼내던 그는 결국 밥통이 비었음을 발견하고 혀를 찬다.
이럴거면 김 봉지를 뜯는게 아니었다.
잠시동안 고민을 하던 프로듀서는 우선 옷을 입기로 결심하였다.
역 앞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적당히 먹을 생각을 하고 정장을 갖춰입는다.

그런데 막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을 때 쯤, 프로듀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의 담당 아이돌 중 한 명인 마유에게서 온 메일이다.

From : 마유
Title : 도시락이라도 싸드릴까요?
안녕히 주무셨나요? 프로듀서♬
아침 겸 오늘 먹을 도시락을 만드는데 너무 많이 만든 것 같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아침이나 점심으로 제가 만든 도시락을 드시지 않겠어요?
당신만을 바라보는 마유가♡


마음속으로 잠깐 고민한다.
-최근 자신이 먹었던 식단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어제는 심야 레코딩이 있어 아침은 김밥 한줄로 때웠고 점심은 당시 스케쥴이 있던 시마무라양과 같이 차속에서 초코칩 쿠키와 우유로 해결.
저녁은 바로 친분이 생긴 디렉터와 함께 이자까야에서 사케와 함께 기억도 안나는 구이 종류.
-오늘 먹게 될 식단을 예상해보기로 한다.
점심은 모로보시양과 먹기로 하였으니 높은 확률로 단 위주의 식단이 될 것이고 저녁은 하필 후타바양과 오가타양이 각각 1시간 텀을 두고 앨범 녹음과 방송 출현이 예정되어있으니 높은 확률로 굶거나 시간에 맞지 않게 먹게 될 것이다.
이 쯤되면 프로듀서에겐 마유의 제안이 너무도 매력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길게 고민하지 못하고 답장으로
'마침 오늘 아침을 쫄딱 굶을 판이었는데... 준다면 고마울 듯 싶어' 라고 보낸다.
아이돌에게 도시락을 받아먹는 프로듀서라고 하면 굉장히 글러먹은 느낌은 들지만 이미 메일은 전송 완료 상태이다.
부디 마유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로 보낸지 10초도 안되서 '네♬ 그나저나 프로듀서는 어떠한 반찬을 좋아하시나요? 요청이 있다면 싸갈게요?' 라는 답장이 날아왔다.
...... 이럴 것 같더라니. 너의 것과 같은걸로 좋다고 적당히 보내놓고 집을 나선다.


그가 막 마유를 담당했을 때는, 마유에게서 오는 메일은 말 그대로 용건만 담긴 딱딱한 메일이었다.
'안 오시나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같이 문장부호 하나 없이,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철저하게 지켜진 채로 날아온 메일이 왠지 모르게 무섭기까지 했었던 것은 꽤 안타까운 추억이다.
하지만 요새 마유가 보내오는 메일은 나름대로 감정표현에 능숙해진 양상을 띄고 있었다.
시간 순서에 따라서 모아서 보면 천천히 문장부호도 생기고, 애교섞인 멘트들도 늘어가는게 보인다.
그녀에게서 >.< 이모티콘이 들어간 메일을 받았을 때는 내심 뛸듯히 기뻐했었다.
(곧바로 '죄송합니다. 너무 들떴나봐요'라는 메일을 받았었다)
마치 그것은 '사쿠마 마유'라고 하는 아이돌의 성장을 보는 것 같아 아버지와 같은 흐믓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잠은 부족했지만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난 그는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삐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빅!!!!!

...앗차 방법장치 설치했던거 잊고 있었다.
이걸 어쩌면 좋담.



그로부터 꽤 거리가 있는 어느 도시의 아파트
인접한 아파트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걸린채 그믐달이 저물어갈 때, 876 프로덕션의 떠오르는 아이돌, 사쿠마 마유의 아침 역시 시작되었다.
집에 들어온 뒤로 2시간도 채 못 잤기에 눈에는 졸린 기운이 가득하지만 프로듀서도 이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로써는 이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책상 위의 이어폰을 집어 귀속에 쑤셔 넣는다.
이어폰 속에서는 굉장히 먼 곳에서 들리는 듯이 기준음보다 두 옥타브 위의 B음이 들리고 있었다.
머지않아서 단조로운 B 음은 멈추고 무엇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와 다르지 않는 소리에 도로 잠들려던 마유의 정신은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번뜩하고 깨버렸다.
서둘러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재빨리 방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빠르구나. 꼭두새벽이니 뛰어다니지 마렴.』
부엌에서는 마유의 아버지께서 담배를 문 채로 계란후라이를 하고 계신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집안상을 생각한다면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마유의 어머니는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근무하는 분이다.
안 그래도 잠이 많은 마유의 어머니는 백화점 자체의 오픈 시간이 늦다보니 자연히 기상이 늦어지게 된다.
반대로 마유의 아버지는 비록 조금 연차가 쌓였다지만 샐러리맨.
규칙에 엄격한만큼 평사원들보다 이른 출근을 하시다보니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참고로 계란 요리 중에 담배를 '물었다', 뿐이지 불을 붙이지 않는 것은 대충 6개월에 거친 마유의 잔소리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평이한 어조로 마유가 대답한다.
아침인사를 고개를 끄덕 하는 것으로 받은 아버지는 곧 계란을 서니-사이드-업으로 완성해서 접시로 옮긴다.
『담배 한대 피우고 오마』
짧게, 아침을 같이 할테니 기다리라고 돌려서 언급하고는 곧 주방을 나가 집 밖으로 향한다.
주방을 나간걸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냉장고를 급히 확인한다.
완성된 반찬류는 멸치볶음, 새송이브로콜리볶음, 콩자반, 소고기장조림, 김부각, 스팸전(햄에 부침가루를 둘러 부친 것), 고구마맛탕.
어디를 둘러봐도 생선류가 멸치볶음밖에 보이지 않는다.
혀를 쯧, 하고 찬 그녀는 이내 완성되지 않은 반찬류로 고개를 돌린다.
미역국은 끓이기에는 시간이 모자라고 미소장국을 끓이기에는 팽이버섯도 호박도 없다.
그다지 크지 않은 냉장고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녀가 원하는 재료는 눈에 띄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탕, 하고 닫고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있는 냄비 속을 들여다본다.
아쉽게도 간장게장이다.
역시 그녀가 원하는 재료에서는 아웃.
순간적으로 칙칙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고는 생각에 잠긴다.

프로듀서가 근 일주일간 섭취한 식단은 지극히 짠맛과 단맛으로 편중되어 있다.
절반 이상 패스트푸드와 밀가루 식품, 편의점 식단으로 구성되어있고
그나마 집에서 먹는 얼마 안되는 식단도 간장의 소모량과 반찬의 조성으로 볼 때 나트륨 섭취가 지나치게 많다.
어린애도 아니고 야채류 섭취는 지나치게 부족해서 비타민과 섬유소 결핍이 일어날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프로듀서의 특성상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짠 식단과 단 식단 위주로 구성될 것이 뻔하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프로듀서가 오늘 아침을 집에서 먹지 못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았다.
어제밤에 가봤을 때에도 밥은 되어있지 않았고 아침 중에 밥솥이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건 더 없는 기회이다.
최근 식단에서 거의 등장하지 못하다시피 한 어류를 공급해야한다.
간은 최대한 삼삼하게 해야하니 고등어와 같은 종류는 아웃이다.
가장 이상적인건 병어구이. 하지만 어 잡것처먹은건지 병어가 없다.
아니, 이러면 안되지. 부모님에게 잡것이라니. 효심이 적은 여성도 마이너스 요소다.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마땅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못해도 프로듀서를 위해 반찬 3종에 국을 같이 대접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건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들 뿐이다.
가장 무난한게 준비된 멸치육수를 이용한 감자가 들어간 미소장국에 새송이볶음과 멸치볶음으로 구성된 단출한 식단이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약간 무기력해지지만 그래도 최소한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식품보단 낫다.
재빨리 프로듀서에게 보낼 메일을 예약한다.
된장을 풀어 미소장국을 올려놓고 보기 좋게 두가지 뿐인 반찬을 싼다.
어찌봐도 너무 초라해서 다시 기운이 없어진다.
하다못해... 정말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더 준비해주고 싶었는데.......

....다른 생각을 하다보니 검지를 약간 데어버렸다.
마유, 정말 바보.

다행히도 프로듀서는 메일이 도착한지 97초만에 마유의 애처도시락을 받겠다고 답장했다.
덕분에 프로듀서의 동선을 미리 예측해서 가야하는 최악의 사태는 우선 면했다.
그 경우, 지금 당장 출발해야하는 것은 물론, 그럼에도 도시락을 전달하는데 성공할 확률이 30% 수준이다.
프로듀서가 아침밥을 안지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흥분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거절했었더라면 꽤 비참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결과가 좋으면 됐다.
아침을 아버지와 같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프로듀서 덕분이라는 거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를 프로듀서의 배려를 홀로 느끼며 황홀해하던 중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손에 들린 것은, 팽이버섯과 애호박.

어째서인지 미소장국의 냄새를 맡으시곤 한숨을 푹 내쉬셨다.
팽이버섯과 애호박을 주고는 같이 끓이라고 하셨다.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팽이버섯가 프로듀서에게 드리기에는 질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뭐, 병어를 없애버린건 묵인해드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아침을 다 먹고 나서 다시 냉장고를 열었을 때야 아버지께서 오징어채도 사오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 왜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걸까. 오징어채무침도 괜찮은 반찬인데.
지금은 멸치볶음에 겹쳐서 준비하기 그렇지만.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을 나서서 우선 사무실로 향한다.
집에서 사무실은 무척이나 가까워서 프로듀서와는 달리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역시,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아무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아마 곧 프로듀서가 올거라고 생각하지만 프로듀서를 보기 위해서 학교에 지각을 해서야 의미가 없다.
정확히는 지각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필 오늘 마유는 주번이었다.
프로듀서는 자신과 운명의 빨간 실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은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는 생일도 잘 못 외우는 프로듀서가 담당 아이돌이 주번임을 기억할 리는 없다)
프로듀서는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끝내지 않는 사람을 무척이나 귀찮아한다.
물론 직업이 직업인지라 아이돌이 그런 행동을 하려들면 어떻게든 달래서 보내지만
그럴 때마다 미묘하게 표정이 뒤틀리는 것을 그녀가 못알아챌 리 없다.
하는 수 없이 프로듀서의 의자에 얼굴을 묻고 잠시 기운을 보충한다.
못내 가기 아쉽지만 결국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학교로 돌린다.



----------------------------------------------------------------------------------------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분명히 지난화에 이번 화가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어째 쓰다보니 글이 엄청 길어지네요;

괜히 프로듀서 시점을 같이 싣었나 고민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느낌을 살리기가 좀 많이 애매해서 그냥 질렀습니다.


아마도 정말로 다음화로 본편은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사실 에필로그 격으로 한 화를 더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쓰다보니 지치네요

나름대로는 복선을 몇개 깔아오면서 진행했는데 눈치 채신분이 있으려나요?

있다면 맥거핀을 만드는 것은 싫기에 쓰긴 해야할 것 같지만요...

아무래도 초보 글쟁이다보니 다른 맥거핀이 대거 발견되거나
정작 복선이라고 깐게 다른 방향으로 유도 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만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