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의 홀로 걷는 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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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3, 2013 01:36에 작성됨.


* 심각한 설정 붕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아이돌이 망가지는 방향 뿐이 아니라 설정을 잘못알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 마유의 홀로 걷는 밤 -1- 에서 이어집니다.

창 밖에는 무척이나 삭막한 광경이 펼쳐져있다.
아름다운 야경은 고사하고 지금 이 창문으로 보이는 광경은 오로지 금이 간 벽 뿐.
그나마 평소라면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은 별들과 아름다운 달이라도 보였을련지 모르지만
오늘따라 별빛 한점 안보이는 하늘은 이 삭막함을 더욱 배가시켜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창문을 경계로 창 밖의 풍경과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분위기를 가진 거실에 그녀, 사쿠마 마유는 서 있었다.

거실의 풍경은, 단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마치 팬션에 온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거실 한 켠에 놓인 플로어 스탠드에서는 방안을 은은히 비추는 불빛이 나오고 있었다.
거실 한켠에는 붉은 색의 소파가 자리해 있었으며 그 위에는 작은 에어컨까지 위치해있다.
이미 계절이 늦가을을 지나서 초겨울에 접어든지라 작동을 멈춘지 한참은 되었겠지만 마치 어제까지도 썼던 것 처럼 깔끔한 상태를 자랑했다.
그 맞은 편에 있는 것은 좌우로 길쭉한 서랍장과 유리문의 위아래로 긴 서랍장.
좌우로 긴 서랍장 위에는 갖가지 꽃들과 도무지 집 주인 본인의 취향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물받은게 명백한 다양한 인형들과 장식용 소도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얀색 작은 곰인형에 토끼귀 모양의 머리띠, 여러 담당 아이돌의 사진이 담긴 액자들까지.
그 모든 것이 나름대로 고심을 한 끝에 서로 어우러지게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저택의 주인에게 여유가 있었으면 그 위에는 TV가 위치했을 것 같지만 애초에 이 집은 87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 그 혼자서 사는 집이기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호화로운 살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래. 잊을 뻔 했지만 이 집은 프로듀서 혼자서 사는 집이다.
제 아무리 아기자기한 팬션과도 같은 이미지를 거실이 구현하고 있다지만 이 집은 프로듀서 혼자서 사는 집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집에는 사쿠마 마유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매사에 열심인 아이돌이 자리해 있었다.

「........아쉽네요. 마유로써는 이 집에 누구누구가 왔다갔는지를 모두 판별하는건 아직 무리에요. 정말. 프로듀서는 마유만을 들이면 괜찮은 것을 후훗.」
정정한다. 거실에는 최대한 열심히 숨을 들이키며, 집 안에서 나는 '프로듀서'와 '사쿠마 마유'에서 근원하지 않은 냄새를 판별해내고 있는, 눈동자가 탁해져있는 여고생이 있었다.
「하지만, 안돼요. 프로듀서의 집에 마유가 아닌 흔적 따위 남기는 일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녀는 이내 어디에서 찾아냈는지 모를 걸레를 들고 왔다.
거실 겸 주방에 딸려있는 싱크대로 가서 소리나지 않게 매우 작게 물을 틀고는 최대한 싱크대 바닥에 붙혀서 물을 짜내고는 방 구석에 있는 밀대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방의 모서리 부분부터 시작하여 걸레질을 시작했다.
걸레질에 힘은 담겨있지만 결코 구석에 텅- 하고 부딪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모서리도, 소파 아래도 걸레가 닿는 범위에서는 꼼꼼히 청소하지만 그렇다고 느린 속도는 아니다.
아마 이 광경을 아무것도 모르는 제 3자가 보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늦은 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청소하는 아내의 모습이었으리라.
차이라면, 사쿠마 마유와 프로듀서는 연인이 아닌 단순한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라는 점 정도, 였을까?


한 15분에 거쳐서 거실을 걸레로 밀고 다닌 그녀는 이윽고 걸레를 떼어내어 화장실로 가져갔다.
「♪~」
걸레에는 일반적인 자취집을 청소했을 때와는 다르게 별로 많은 먼지가 묻어나오지 않은 채였다.
다만 그 걸레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었다.
명도가 높은 갈색의 웨이브진 머리카락- 이건 사무원인 센카와 치히로씨의 머리카락이다.
약간은 차분한 빛깔의 갈색 생머리 - 이건 프로듀서의 다른 담당 아이돌인 토도카 아이리씨의 머리카락이다.
은빛의 말린 상태의 긴 머리카락 - 이건 그의 다른 담당 아이돌 칸자키 란코양의 머리카락.
연두색의 실가락 - 이건 확신은 못하지만, 아마 그의 집에 오고 갔던 아이돌들을 고려해보면, 담당 아이돌인 모로보시 키라리양의 옷에서 삐져나온 실가락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이 분가루는 아마도 마찬가지로 담당 아이돌인 아베 나나씨의 것이겠지.
물론 그 중에는 프로듀서 본인의 머리카락도 있었지만 비율로 따지면 압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흔적이 훨씬 많다.
그것도, 여성의 흔적만이 두드러지게 남아있다.

「♬~」
하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이 마유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아무리 여성의 머리카락이 길이나 관리 상의 문제 때문에 남성에 비해 떨어지기 쉽다지만 이건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분명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분명 걸레를 빨기 전에 그녀는 멈칫 하였고
또 동시에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눈동자가 점점 탁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이 집에 내방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듀서가 집에 없을 때에 내방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그녀의 프로듀서는 너무나도 상냥한 인물이어서 설마 찾아온 아이돌이나 사무원을 혼자서 바람맞히고 있을 위인이 못된다.
그런 와중에 여성진의 흔적이 압도적으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대부분은 그녀들 혼자서 왔다 갔다는 이야기.
-그 사실만이 간신히 마유가 폭주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체로는 이 인물들이 왔다 간 이유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대부분은 프로듀서가 잊은, 바로 다음 촬영에 써야할 서류나 도구들을 가지러 대신 가준 것이다.
애초에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아이돌만 열 여섯, 거기에 신인 프로듀서들을 교육하는 것도 그이다 보니 이틀에 한번 꼴로는 빼먹는 것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면 프로듀서는 으레 다음 촬영이 있는 아이돌을 차로 싣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불법 주정차 딱지를 떼지 않기 위해서 아이돌에게 서류를 가져오게 시키고는 자신은 자동차를 지키곤 하는 것이다.

물론 마유 입장에서 그녀가 사랑해마지 않는 프로듀서의 집에 여성이 드나드는 사태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프로듀서의 속옷을 훔치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방 안 곳곳에 자신의 체취를 묻히고 다니는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 프로듀서가 썼던 컵에 입술을 데어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마유조차도 용기가 없어 차마 시도하지 못한 더욱 대담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
만약, 거기에 샘을 내서 프로듀서의 열쇠를 가로채 그의 집으로 들어선다면-
그것도 프로듀서 본인에게 직접 열쇠를 받는 그런 상황이라면-
마유는 필시 뇌의 퓨즈가 나가버릴 것임을 아는 것이다.

마유 스스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자각은 있다.
제아무리 프로듀서의 집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다, 프로듀서를 보살피기 위해서다 라고 핑계는 대지만 이것이 불법 가택 침입인건 그녀 역시 명백히 인지하고 있다.
들어올 때마다 이 곳이 그녀와 프로듀서의 사랑의 보금자리다- 는 망상을 하면서 들어오고는 있지만 망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냉정함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행동이 아무리 그래도 도를 넘지 않도록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프로듀서로부터 집 열쇠를 받는다,
과연 그 때도 자신은 지금처럼 참을 수 있을까?

물을 틀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끄고 소리가 새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레를 짠다.
만약 내일 아침에 운없이 그가 이 걸레를 사용한다면 이 일을 들켜버리려나?
들킨다면 마유의 한결같은 사랑을 알아줄련지도 모른다.
아니, 냉정해져라. 필시 경멸받고 끝날 것이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창가에 걸레를 둔다.
여기라면 아마도 아침에 결로현상으로 생긴 물을 걸레가 먹었다고 생각해주겠지- 라는 짧은 감상을 가지고 걸레를 널어둔다.

「괜...찮아요. 프로듀서 씨? 마유는 그렇게 질투심이 강한 아이가 아니라구요?」
한참을 탁해진 눈으로 빛 한점 없는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윽고 스스로를 설득하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으응.... 프로듀서 집에 다른 여성이 드나드는 정도로 전 동요하지 않아요?
그 때 처럼 돼지같은 년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재워준 것도 아니고,
무리하게 상담을 받아주신 것도 아닌걸요.
겨우 이 정도 일로는, 마유는 질투하지 않아요.」
거실 바닥을 둘러본다.
플로어 스탠드의 미등으로 보기에도 바닥은 먼지한톨 없이 매끈매끈해 보인다.
-이래서야 저번처럼 락스 청소를 해버릴 명분도 없다.
-아니 명분이 아니지, 이건 모두 프로듀서 씨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거짓말. 그 직후에 프로듀서가 락스 냄새에 알게 모르게 지쳐버려서 그 날 하루종일 지쳐보였던 건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락스를 너무 많이 썻던 것이겠지 아마도. 그 점은 분명히 반성하고 있다.

「하아.... 프로듀서 씨도 야속하시네요.
저만을 바라봐 주시면 좋을텐데......
마유, 프로듀서가 포기한 모든 여자들을 합한 것만큼 열심히 해줄 수 있는데.......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참을 마음 속에서 갈등하던 소녀의 눈에서 눈물을 한방울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것을 닦아내고 고개를 도리질쳤다.
「이래서는 안되. 이래서야 프로듀서에게 미움받고 말아.」
마유는 텅 빈 눈동자로 그녀의 사랑이 잠든, 잠긴 방문을 응시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도로 프로듀서의 방으로 들이닥쳐서 껴안고 싶다.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질 않는다.
무엇을 위해서 그녀가 여기에 왔는지를 기억해야한다.

「그럼 잘 자요, 프로듀서? 마유는 이만 가볼게요?」
약간은 메인 목소리로, 프로듀서의 집을 나선다.
나서면서 들어올때 어렵게 벽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껐던 입구의 도둑 감지용 센서를 원상복귀 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왔다간 것을 프로듀서는 모르겠지-
애매한 감정을 뒤로 한 채, 마유는 별도 달도 떠있지 않은, 소리 없는 마을의 어둠으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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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다음 편이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그래도 전 편에 비해서는 심리묘사에 치중해서 더 훈훈 달달해진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다음편에서는 보다 훈훈하고 달달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퇴고를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쓰면서 생각한 것은
마유가 프로듀서를 좋아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생뚱맞게 나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어떠신가요? 거슬릴 정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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