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가나하에게 들릴 울림(響)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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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8, 2013 10:16에 작성됨.

19세기. 사쓰마 번에 종속되어 있던 류큐 왕국은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당시, 일제에 대항하던 류큐 왕국의 유력자 가문이 있었다. 당시 그 가문의 당주는 류큐가 일제에 합병되던 해 류큐 왕국의 수도 나하(那覇)에서 독립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처형된다. 가문의 생존자들은 처형당한 당주를 기리는 의미에서 가문 명을 가나하(我那覇)로 바꾸었다. 당주의 독립 운동 직전 가족들에게 남긴 말이 '나(我)는 나하(那覇)에서 일어선다.'였기 때문이었다. 나하(那覇)에 다시금 독립국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성이었다. 

그 다음 가나하 가문의 운명은 통곡의 연속이었다. 일제의 악의적인 토지 제도 변경으로 가나하 가문은 토지를 모두 잃고 알거지로 전락했다. 2차 대전 직전까지 일제에 살해당한 당주만 셋이었다. 그 중 가나하 가문의 4대 당주는 3.1운동 당시 조선에 살면서 자신들과 처지가 비슷한 조선인들을 돕다가 일제의 고문을 못 이겨 사망했다. 가나하 가문의 5대 당주는 일본 본국에서 살다가 관동 대지진 당시 폭도들에 의해 일본어에 오키나와 방언이 섞여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가나하 가문의 6대 당주는 중일 전쟁 당시 대만에 살면서 국민당군과 접선하여 일제에 대항하려다가 발각되어 사망했다.

20세기 중반, 일제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은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지만 오키나와는 독립하지 못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70년대 가나하 가문의 8번째 당주는 독립 강경파에 속해있었다. 결국 일본에 오키나와가 반환되었을 때, 가나하 가문의 8대 당주는 동지들과 함께 시위를 전개하나 체포되었다.

가나하 가문의 9번째 당주, 가나하 히비키의 아버지 또한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초조했다. 150 여년 전부터 실시한 일본의 동화 정책 및 교육으로 오키나와의 아들딸들은 자신이 일본인이라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독립파의 거두로 우뚝 서 있던 그는 1990년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가나하 히비키는 아버지 없이 편모 슬하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사망했다고 듣고 자라왔다. 하지만 철이 들 때 쯤, 어머니는 히비키의 오빠와 히비키를 불러서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두 남매의 선택은 판이했다. 오빠는 가나하 가문의 10대 당주가 되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뿔뿔이 흩어진 가나하 가문을 규합하기로 결심한다. 반면 히비키는 이대로 조용히 살기를 원한다. 두 남매는 격하게 싸웠으며, 그 싸움은 히비키의 가출로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가나하 가문의 이야기이다.

가나하 히비키의 오빠는 자신이 걸을 길이 통곡으로 가득찰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걷기로 각오했다. 가나하 히비키는 톱 아이돌이 되어 자신이 온 세상이 환호성으로 가득차게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가출했다.

가출한 그녀의 앞날에 어떤 울림(響)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선조들처럼 통곡으로 가득찬 울림(響)이 기다리고 있을지.
선조들과는 달리 환호성으로 가득찬 울림(響)이 기다리고 있을지.

근 150년 동안 이어져 온 통곡을 히비키는 끊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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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일본에게 왕따당하는 가나하 가문

SP에서 히비키는 오빠와 대판 싸우고 톱 아이돌이 되겠다며 가출했죠?

그걸 좀 각색해봤습니다.

근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히비키가 친일파로 보인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심리 묘사를 너무 부실하게 했네요
 
하지만 현실은 귀여운 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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