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P : 미키는 영영 빛나는거하곤 거리가 멀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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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6, 2013 04:04에 작성됨.

"후아..." 하루카는 살짝 붉어진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섰다. 프로듀서와 같이 볼 생각이었던 애니메이션은 결국 혼자서 보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그만 멈추지 못하고 쌓아뒀던 작품들을 죄다 꺼내보고 말았던 것이다. 덕분에 잠잘 시간을 놓쳐서 잠이 부족했다. 일에는 영향이 가지 않게 하기로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깨버린 탓에 기분은 썩 개운치가 않다.

'눈이 이래서는 촬영도 못할텐데...'
그래도 사무소까지 전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제법 되어서 다행이었다. 하루 카는 눈을 깜빡여 눈물으로 안구를 덮고 눈을 감았다. 사무소 근처까지 눈을 쉬면서 가면 이 정도 충혈은 사라질거라고 생각하면서.

뭐, 눈은 봐줄만한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눈감고 있다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넘어지긴 했지만...

"프로듀서 씨, 정말로 애인 있는 걸까..."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하고 입속으로 중얼대 본다.

 프로듀서하고는 이제야 만난지 겨우 두어 달이긴 하지만, 그 동안 보아온 바로는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은 부류는 아니라고 판단했었고 묘하게 사무소의 애들에게 절절 매는 것을 보니 여자에겐 약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비슷한 취향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코토리나 후타미 자매도 만화는 자주 보지만 하루카와는 취향이 아주 약간 달랐고 쉬는 날이 차이가 커서 제대로 상영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자신과 같은 취향이리라 짐작한 하루카가 마침 휴일이 겹친 김에 먼저 손을 내밀어 본 것이었다.


오늘 스케쥴은 시작부터 끝까지 미키와 세트였다. 오디션에 대비한 레슨  후에 행사장, 점심식사 이후 다시 행사에 레슨이라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다. 사무소의 활동에 거의 참가하던 하루카에겐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미키에겐 드문 일이었다.

 '저기, 프로듀서. 미키는 모두의 앞에서 반짝 반짝하고 싶은 거야!' 라는 평소의 말 버릇이 무색하게도 미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하아, 오늘은 괜찮을지 모르겠네.'
미키의 문제점은 귀찮은 것은 싫어하고 아예 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연습같은 건 하기 싫다고 칭얼대는 미키와 그걸 설득하려는 프로듀서들 사이의 기싸움은 이미 방송국에서도 유명한 구경거리였다. E 랭크 아이돌 중에서는 방송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가 아닐까. 그렇지만 안좋은 이미지로 작용해서 랭크는 그대로 오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키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프로듀서들도 있을 정도였다.

다른 아이돌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바로 해고당하겠지만, 그런 기행에도 불구하고 미키가 여전히 아이돌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재능 때문이다. 아직 중학교 3학년생인데도 눈에 띄게 뛰어난 신체조건도 있지만 미키의 진가는 바로 도래와 춤에 있었다. 언제나 연습은 뒷전이고 자려고만 하는 미키인데 막상 연습을 시켜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누구보다도 빠르게 습득하는 실력에는 하루카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대에만 서면 불가사의한 친화력으로 팬을 아군으로 만드니, 프로듀서나 사장이 보기에도 포기하기에는 그 재능이 아까운 원석이었다.

    "웅- 프로듀서- 미키는 반짝 반짝할 수 있으니까 이런 레슨같은거 필요없는거야- 앗? 아핫☆ 하루카 안녕인거야! 그. 러. 니. 까 미키는 말야 ...."
  프로듀서 씨는 눈으로 인사하고는 미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머잖아 미키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이런 패턴에 말려들어서 미키에게 이긴 사람은 이제까지 없었다. 오직 리츠코만이 문답무용으로 쫓아낼 수 있을 뿐, 남자란 동물은 미키에겐 이길 수 없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싶단 말이구나. 미키는?"
"응응, 그런 거야!"

이번에도 프로듀서는 미키와 하루카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내가 보기엔 미키는 영영 빛나는거하곤 거리가 멀겠는데?"
"뭐, 뭐야 미키 화나는 거야!"

"확실히 미키는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지만 그 뿐이야. 알고 있어?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은 사실은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큰 거야. 눈에 잘 띄지 않는 별이라도 알고 보면 우리 태양보다 큰 별이고  자기 자신을 연료로 불타오르고 있는거야..  그렇게 큰 별들조차도 저 밤하늘에서 다른 별들보다 밝게 빛날 수 있는 건 일부 뿐이야. 지구가 제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우주공간에서 보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돌덩이일 뿐이라고. 타고난 것에 의존해봐야 별처럼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도 빛날 수는 없어. 지금의 미키라면 빛나봐야 고작해야 반딧불이 정도겠지. "

미키는 프로듀서의 갑작스런 독설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었던 미키는 힘없이 돌아섰다.

"알겠는거야... 미키도 연습 열심히 할테니깐..."

그리고 하루카는 다른 이유로 충격을 받았다. 프로듀서가 달변가다 하더라도 저런 대사를 즉석에서 지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하루카는 이 대사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어제 본 그거야, 틀림없어 ! 프로듀서도 어제 나랑 같은 애니메이션을 본거야! 하지만 여자친구랑 데이트해 나간거 아니었나?'

 그리고 곧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맞아, 여자친구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거야! 지난번의 DVD 도 사실은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 했던게 아닐까? 하지만 프로듀서가 만날 정도면 나이는 나보단 좀더 있을텐데... 어떤 사람일까?'

"으아아아아앗!?"
있었다.

프로듀서랑 비슷한 나이에 애니를 즐기고 꽤나 매니악한 장르까지 선행 발매로 구입해서 갖출만한 사람이.

'틀림없어, 프로듀서 씨는 코토리 씨랑 사귀고 있는 거야!'

그렇게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마는 하루카였다.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1:08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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