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에헷, 치하야에게 키스해버렸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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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5, 2013 01:52에 작성됨.


 퇴근하고, 샤워를 끝냈을 때에만 하더라도 10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계의 시침이 11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지금까지의 근 1시간여의 시간. 나는 그 시간동안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게임이나 넷서핑같은 것을 한 것은 아니다.

 “하아.”

 키사라기 치하야.

 폰의 화면에는 내가 담당하는 아이돌의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지금 통화 버튼만 누르면 치하야에게 전화가 간다.

 치하야가 전화를 받으면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내일부터 당분간 리츠코가 담당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유를 묻는다면 미리 준비했던 변명거리를 들려준다. 그래도 안 되면 달래준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치하야를 볼 면목이, 그리고 치하야와 대화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근 1시간동안 침대에 누워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약 나의 또래가 미성년자에게 키스를 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분명 진심으로 경멸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미성년자가 잠을 잘 때에? 경멸의 정도가 심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프로듀서가 담당아이돌에게? 업계종사자로서 경찰에게 신고를 한 다음 이렇게 말하겠지. ‘죽어.’

 그런데 그게 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부림쳤다. 

 알고는 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하야를 대할 정도로 나는 용감하지 않다.

 그래서 내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리츠코에게 담당을 해달라고 부탁한 거다. 그런데 지금 당분간 리츠코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조차도 치하야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무슨 한심한.

 폰의 시계가 11시라는 것을 알려준다.

 마음을 다잡자. 이 상태로 시간만 끌어봤자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이보다 늦으면 전화자체를 못하게 된다.

 응. 그러니까 11시 10분에 전화하자.


 

 11시 15분.

 마음속으로 정해둔 마지노선을 한 번 더 연장하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연결음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치하야가 받으면 먼저 인사를 한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그리고 내일부터 리츠코가 나대신 당분간 프로듀싱을 한다고 전한다.

 여덟 번, 아홉 번, 열 번……

 혹시나 왜 그렇게 됐냐고 물으면 내가 최근에 바빠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열한 번, 열두 번, 열세 번……

 왜 하필 자신이냐고 묻는다면 리츠코에게 쓰려고 했던 변명을 이번에도 써먹자.

 열네 번, 열다섯 번, 열여섯 번……

 그래 완벽하다.

 열일곱 번…… 사서함으로 연결된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하하하.

 “…….”

 뭘 안도하고 있는거냐. 짜식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는 건 나라고.

 아니, 치하야랑 통화하려고 하니. 전화를 안 받잖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치하야랑 통화하는 건 내일로 미룰까? 괜히 전화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해서 폐를 끼칠 수 없잖아. 

 그래, 그러자. 하하하하.

 “…….”

 다음에 특기가 뭐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자문자담, 혼자놀기라고 하자.

 “아, 몰라. 안 되는 걸 어쩌라고 그냥 한잔 걸치고 잠이나 자자.”

 침대에 폰을 대충 던져놓고 방 한편에 있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그리고 캔을 땄을 때.



 파랑새

 혹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더라도



 
 “히익!”

 갑작스럽게 들려온 치하야의 목소리에 들고 있던 맥주를 떨어뜨렸다.

 떨어뜨린 맥주가 땅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저 하늘로 나는 날아올라

 미래를 믿으면서 


 
 아니다. 치하야의 목소리는 맞지만 치하야 본인이 아닌 벨소리다. 

 그러나 안도할 수 없었다.



 당신을 잊지 않아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나는 각 아이돌의 대표곡을 각자의 벨소리로 지정해놓았다.

 이 노래는 치하야의 파랑새.

 즉 지금 치하야에게 전화가 왔다는 뜻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빛나는 바다에서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맥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후다닥 침대로 달려갔다.

 키사라기 치하야.

 폰의 액정에는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붙잡아 세우는

 팔을 뿌리치고
 


 십호흡을 한다.

 결코 당황하면 안된다.



 가야할 곳은 

 어딘가에 있어



 인사한다, 리츠코가 대신 프로듀싱하는 것을 전한다. 이유를 말한다. 달랜다.

 그래. 그렇게 제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당황할 이유가 없다. 간단하거다.
 


 당신의 품 안의 새장에서는

 달콤한 시간만이 흐르지


 
 마지막으로 십호흡을 한다.



 하지만 붉은 열매를

 지금 찾으러 가네 


 
 나는 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프로듀서입니다.”

 “여보세요? 치하야에요, 프로듀서.”

 폰 너머로 치하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쓰니 친근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것 같으니 말을 바꾸겠다.

 나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사랑한다.

 남자로서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여자를 사랑한다.

 “치하야에요, 프로듀서.”

 이 단 한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커다랗게 다가오는지 치하야는 모를 것이다.

 치하야에게 입 맞추고 하루 종일 죽여 놓았던 감정이 이 한마디로 다시 살아난다.

 “방금 전에 전화하셨는데 못 받아서 죄송해요.” 

 지금 치하야는 어떤 모습으로 전화를 받고 있을까?

 “휴대폰을 두고 잠시 편의점에 갔다 와서요.”

 치하야와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내 안은 치하야로 가득 찬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이 난다.

 지금 당장 이 감정을 치하야에게 전하고 싶다.

 “치하야가 잘못 한 건 없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한 내가 잘못이지.”

 그러나 이 감정을 전할 수 있을 리 없다. 치하야와 나는 아이돌과 프로듀서니까.

 “편의점에 가면서 별일은 없었지?”

 “편의점 직원이랑 손님이 절 보고 놀란 것 외에는 없어요.”

 “그 사람들도 적잖이 놀랐겠네. 밤에 갑자기 톱아이돌이 나타난거니까. 그래도 이렇게 늦은 밤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자제해줘. 톱아이돌이기 이전에 여자아이잖아.”

 “후후, 톱아이돌이기 이전에 여자아이라. 그러네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치하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 역시도 소리내어 웃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기만 해도 행복하단 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그래서 무슨 일로 전화하신거에요?”

 그러나 계속해서 행복에 젖어있을 수는 없다. 아니 행복에 젖어있어서는 안 된다.

 용건을 물어오는 치하야의 그 한마디가 나를 일깨웠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를 위해서, 치하야를 위해서 이 말은 꼭 전해야한다.

 “사전에 아무런 대화도 없이 이쪽에서 막무가내로 정해서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급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일방적으로 통보하게 됐어.”

 아까 전 히비키와의 대화를 통해 나도 느낀 게 있다. 이렇게 미리 말해두면 상대도 충격을 덜 받을 거다.

 “무슨 일인데요?”

 나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치하야가 따질 때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당분간 나 대신 리츠코가 치하야를 프로듀싱 해줄 거야. 인수인계는 끝났으니까 이번 달 동안은 일 관련 된 건 리츠코에게 전화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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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치하야 등☆장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1:08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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