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헷, 치하야에게 키스해버렸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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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1, 2013 01:23에 작성됨.

 “미안하지만 당분간 나 대신 리츠코가 치하야를 프로듀싱 해줄 거야. 인수인계는 끝났으니까 이번 달 동안은 일 관련 된 건 리츠코에게 전화해줘.”

 “…….”

 치하야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히비키처럼 소리를 높여 따지지 않을 거라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소리 높이지 않더라도 이후에 나올 말들을 상상하면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알겠어요.”

 잠깐의 침묵 후에 대답하는 치하야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있었다. 딱딱하고 차가웠다.

 “미안해. 치하야.”

 일단 사과를 했다. 누가 뭐래도 잘못한 건 나니까. 일 관련 되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치하야에게 연정을 품은 것도 그렇고.

 “잘못한 건 알고 계신가보네요.”

 치하야는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

 히비키의 분노가 불이라면 치하야는 얼음이다. 차가운 분노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방금 전 웃던 분위기가 거짓말 같다. 심장이 얼어붙어 깨질 것 같았다. 방금 전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소리에 행복에 젖었던 가슴이 고통으로 가득 찬다. 

 “도대체 이런 중요한 일을 오밤중에 전화로 전하는 게 어디 있어요? 사전에 상의도 없었고 말이에요.”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프로듀……

 약간씩 격해지던 치하야의 목소리가 끊겼다.

 뭐지? 연결이 끊겼나?

 “치하야?”

 폰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연결이 끊긴 건 아닌 것 같다.

 “죄송해요. 너무 무례하게 반응했어요.”

 사과를 받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누가 보더라도 치하야가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냐, 치하야가 잘못 한 건 없어. 이런 중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예기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내가 잘 못 한 거지.”

 “프로듀서가 잘못이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되서 프로듀서에게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되죠. 죄송해요.”

 나이는 나보다 어린데 나보다 어른스러웠다.

 부끄러워졌다.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치하야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바쁘신 거죠?”

 “……응.”

 “아까 전 화보촬영 때 프로듀서 대신에 리츠코 씨가 계신걸 보고 저도 대충 짐작했어요.”

 “…….”

 ‘치하야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리츠코에게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라도 말이다.

 다시 한 번 한숨소리가 들렸다. 

 “이번 달까지만 인가요?”

 “응.”

 “내일부터요?”

 “응.”

 “알겠어요. 그래도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미리 상의 해주세요. 프로듀서가 바쁜 걸 알면서도 섭섭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유념할게.”

 그리고 잠깐의 휴지기.

 나는 치하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말을 먼저 꺼낼 수 있을 리 없다. 

 “프로듀서?”

 “응?”

 “저기…….”

 치하야가 머뭇거리는 것을 폰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긴장했다.

 혹시 아까 전 키스한 것을 알고 있는 건가? 그것에 대해서 말을 꺼내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일방적인 통보로 인한 화가 아직 덜 풀려서 거기에 대해서 매도하려고 그러는 건가?

 이런 저런 불길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말을 고른 치하야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 응. 고마워. 너도 잘 자.”

 “…….”

 “…….”

 “먼저 끊으세요.”

 “으, 응.”

 나는 전화를 끊었다.

 힘든 일을 별 고난 없이 끝낸 후련함과 치하야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마지막에 치하야가 얼버무린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까지.

 뭐, 그래도 전체적인 감정의 벡터는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평을 내리겠다.

 이걸로 고비는 다 넘겼다. 이제 다음 달까지 일과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에 집중하도록 하자.

 나는 행주를 들어 아까 전 흘린 맥주를 닦았다.

 그런데 뭔가 잊은 것 같은데?

 “……아.”

 맥주를 다 닦고 나는 다시 폰을 들었다.

 전화로 할까? 아냐.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나는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다가 지우고.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문자 메시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깜빡하고 말 안했는데. 사과의 의미로 치하야의 소원을 들을 수 있게 해 줘. 이걸로 완전한 사과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내가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줄 수 있게.’

 사과 받는 것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보다 더 나은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눈을 딱 감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답장은 곧장 날아오지 않았다. 치하야가 휴대폰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혹여 어떤 답장이 올지 불안해하며, 그리고 치하야가 어설픈 손짓으로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상상하여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치하야의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치하야의 답장을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1시.

 나는 그제야 하릴 없이 답장을 기다리는 일을 포기했다. 내일도, 아니 자정을 넘겼으니 오늘이지. 오늘도 출근해야한다. 이 이상 취침시간을 줄였다가는 일에 지장이 생긴다. 직장인에게는 휴식도 의무다. 그리고 치하야도 이미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 이 이상 기다리는 것도 무의미 할 것이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확인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발신자는 치하야다.

 ‘예, 알겠어요.’

 새벽 2시에 날아온 문자였다.
 
 


 “다녀왔습니다.”

 영업과 협약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코토리 씨는 쉬는 날이고, 리츠코는 류구의 이벤트 회장으로 갔다. 사장님은 뭐……어딘가에 잘 계시겠지. 아이돌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전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테고.

 사무실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조금 외롭다고 생각해버렸다. 외로운 마음에 망연히 사무실을 둘러본다. 그 많은 소파와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다. 반면에 책상위에는 처리해야할 서류가 가득하다. 그리고 옛날에는 빈 칸 밖에 없던 아이돌들의 스케쥴판이 지금은 모두 꽉차있다.

 나는 스케쥴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이름 위에 눈이 고정되어버렸다.

 치하야 ‘음반 녹음 13:00~17:00’

 치하야와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2주가 지났다. 나의 예상대로 그 2주 동안 치하야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치하야와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더라도 주위는 치하야가 가득했다. 아니 나의 감각은 치하야를 찾아냈다. 길거리를 가면서 치하야의 음악을 찾아내었고, 무심코 지나칠 작은 지하철 광고에서도 치하야를 찾아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은 격하게 두근거렸고 나는 그 격동을 죽이기 위해 언제나 끊임없이 두 가지 사실을 되뇌었다.

 아이돌과 프로듀서.

 미성년자와 성인. 

 직업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허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되뇌이는 현실이라는 역풍에 나의 감정은 조금씩 조금씩 깎여나갔다. 치하야를 향한 마음이 깎여나가면 깎여나갈수록 그만큼의 고통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자포자기……라고 말해도, 세뇌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날이 치하야를 향한 마음이 작아지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격류처럼 내 몸을 흐르던 감정은 실개천만큼이나 약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두려웠으나 나는 나 자신을 다잡았다.

 나를 위해서.

 치하야를 위해서.

 치하야의 꿈을 향하는 길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이 소녀의 미래의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내가 사랑‘하는’, 아니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위해서.

 “…….”

 마음의 파편이 떨어진다. 파편이 가슴을 찌르나 조금 먹먹할 뿐 옛날만큼의 고통은 없다. 

 한숨에 가슴을 가득채운 막막함을 실어 내쉰다.

 뒤늦게 어지러움과 피곤함이 엄습한다.

 쉬자. 

 지금의 어지러움과 피로는 최근의 격무 때문이다. 결코 다른 이유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그래, 그럴 것이다.

 다행히 다음 일정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조금 눈을 붙일 수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자.

 정장 상의를 내 의자에 걸쳐놓고 휴대폰의 알람을 45분 뒤로 맞춘다. 

 아직 낮이었기에 좀 더 편안하게 잠들기 위해 손수건을 접어 눈 위에 올린다.

 그리고 소파에 누웠다.

 세 번 호흡하기도 전에 나는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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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에 갱신.

질질 끄는 건 그만두고 얼른 끝내버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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