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3개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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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8, 2013 00:21에 작성됨.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을 팔았다.

아르마니 정장, 피아제 시계, 피에르 가르댕의 넥타이, 모두 이젠 내게 필요 없는 것이다.

가방속에 간단한 옷 약간과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를 집어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몇년간 살아왔던, 이제는 모든 가구가 사라진 살풍경한 광경.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


덜컹, 덜컹.


흔들거리는 기차속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어딘가 허무해 보이는 남자.

이른 아침, 그리고 평일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내 앞자리는 커녕 주변에조차 사람의 기척이 적다.

조용히 지나가는 기차 안,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싶어 손에 쥐고있던 기차의 티켓을 주름을 풀어보았다.

기차의 티켓에는 파란색의 커다란 글씨로 ' 도쿄 ' 라고 써놓아져 있었다.

정거장에서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기차로 표를 끊은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창 밖을 보며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


때는 대략 오후 1시 가량, 도쿄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해도 기차역은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조금 걸어가 기차역 곳곳에 널부러진 도쿄 관광 안내서 를 집어들었다.

지브리 박물관,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가부키쵸, 등 많은 볼거리 들이 존재합니다! 라고 적힌 안내서를 가방의 앞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역을 나갔다.

자다 일어난 눈에 햇빛이 직격, 눈을 찌푸리며 걸어갔다.

과연, 도쿄라는 것일까 평일이라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없을 시각이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때 마침 좋은 장소에 공원이 있었기에, 앉아서 햇빛을 쬐었다.

자신이 시한부라는 중요한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평화로움에, 잠시 눈을 감았다.

아니, 감을려 했었다.


" 왕! "


개짖는 소리와 함께 바지의 옷자락이 살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목에 걸린 줄로 보아, 산책 중 도망간 것으로 보이는 요크셔테리어종의 개 한마리가 내 바지를 물어뜯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도 상당히 귀여웠기에 그대로 놔둘까도 싶었지만, 두벌밖에 없는 바지를 망치게 할 수는 없는 관계로 개를 집어들었다.


" 어디에서 왔니? "


" 왕! "


개를 안아올리며 묻자,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외쳤다.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개가 버려진 개가 아닌 이상은, 곧 주인이 데리러 오리라.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 하나코! 어디있니? "


벤치에서 살짝 멀리, 공원의 입구쪽에서 어떤 소녀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외쳤다.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지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소리 자체는 문제없이 이곳까지 들렸다.


" 네가 하나코니? "


품 안의 요크셔에게 물었다.

녀석은 혀를 내밀며 입구쪽을 쳐다보더니, 곧 내 품에서 뛰어올라 소녀의 쪽으로 달려갔다.


" 하나코! "


아무래도 저 개가 하나코라는 개가 맞는건지, 소녀는 개를 안아올리며 외쳤다.


" 어디까지 간거야, 걱정했잖아!


" 끄응... "


주인이 화난 것을 알아보는지 하나코는 꼬리를 말며 고개를 숙였다.

상황파악이 가능한 영리한 개다.

소녀는 하나코가 이곳에서 달려온 것을 본건지 내쪽으로 다가왔다.


" 저기, 당신이 하나코를 데리고 있으셨던건가요? 고맙습니다. "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냐, 폐는 아니었어. "


그리고 고개를 든 소녀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낮이 익은 얼굴이다.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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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평온한 분위기로 글을 써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글이 슬픈 글이라 생각하지만, 그 예상은 맞습니다. 하지만 과정은 슬프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저번편들을 쓰며 들은 노래는 빅뱅의 하루하루, Doughtry의 Supernatural. 이번편은 Maroon5의 Gloomy sunday입니다. 곡의 분위기는 아주 살짝 반영되었네요.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1:08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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