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당신이 바라던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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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6, 2013 02:15에 작성됨.

그 날을 잊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는 결국 그 날의 추억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허우적댈 뿐이었다.


「이게… 뭐야……」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구해주러 나타났던 사람은 결국 자신을 대신해 사라지고 말았다.


「안돼, 안돼, 그만…!」


그리고 남는 건, 어둠도 빛도 되지 못한 잔인하리만치 고요한 세상.


「──! 일어──」

「으아아!」

「……또, 그 꿈이야?」


침대의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서린다.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기분이 더럽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구나. 그 날을.


「아, 응…」

「병원, 갈래?」

「이걸 갖고 무슨 병원이야.」

「아님 의사 선생님이라도…」

「무슨 의사야! 너 지금 내가 다 죽어간다고 동정하는거야?!」


자신의 무능함에 짜증이 난 나머지, 자기를 걱정해주는 여자의 말에 무심코 짜증을 내고 만다.
그 날의 악몽에 사로잡힌 날이면, 집 밖조차 나가는 것이 꺼려졌다.
아니, 실제로 자신은 그 사고가 이후로, 한동안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오르는 그 사고의 현장. 
무너진 공중전화 박스. 우그러진 차의 본네트.
그리고 길에 흥건하게 남은 핏자욱.

지금 자신의 옆에서 미안하다며 울고 있는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그 악몽같은 환영에 사로잡혀 한 달도 못 되어 쇠약사했을 것이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요즘들어 점점 감정을 붙잡을 수 없다. 모든 것에 예민해지고, 더더욱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그녀의 우는 모습에,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실감했다.
갑작스레 머리가 식었다.


「저기, 내가…」

「미안해요…」


아아, 나는 얼마나 글러먹은 녀석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녀의 인생이 왜 내게 저당잡혀있는 것인가.
그 밝았던 그녀가 왜 내 옆에서 이렇게 울어야만 하는 건가.


「…이오리.」

「…미안하니까 죽는단 이야기는 하지 마… 제발…」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눈에 손을 가져갔다.
조심스레 눈물을 훔치자 조금씩 어깨를 떨며 울음을 그쳤다.


「이오리.」

「왜?」

「……아냐.」


그녀는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 내가 죽어버릴 지 알 수 없었기에. 처음엔 정말 이러한 이유였다.


────────


그 사고가 있고서 얼마 지나서, 인 걸로 추정한다.
집의 문이 열리고, 갑작스레 그녀가 집으로 들어왔던 건.


「뭐 하는 거야?」

「………」

「대답을 해!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입이 없어!? 장례식에는 왜 안 온 거야!?」

「…………」

「제발, 뭔가 말 좀 하란 말야! 너, 다들 걱정하는 거 몰라?!」

「…………」


한동안 화를 내던 그녀는, 갑자기 내 앞에 털썩 주저앉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있다면, 부디 용서해 달라며.
그리고는 내게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울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말을 꺼낼만한 아무런 기력도 없었다.
힘겹게 입을 열어,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멋대로 자신의 입술의 달싹임을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용서해 줄 거야…?」


그 당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니, 지금,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대로 자신을 말라 죽도록 내버려두고 돌아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그래, 차라리 그랬더라면, 그녀의 마음 속에 이유없는 죄책감은 남았겠지만, 그녀의 앞길을 이런 식으로 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 자신이 내뱉었던 말은 『곁에 있어줘』.
이 아무 생각도 없이 했던 말에, 그녀는 크게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정말 그걸로 돼? 그럼, 알았어. 내가,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 아이돌이고 뭐고 전부 관두고, 있어줄테니까…」


왜 나는, 그 때의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을까.


────────

그 날 이후로, 미나세 이오리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녀의 아이돌 유닛 시절 프로듀서이자 직장 동료였던 리츠코가 몇 번 왔지만, 아무 말도 않고는 돌아가곤 했다.
아니, 단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으읏」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손으로 쓸었다.
그녀는 내 옆에 누워, 작게 몸을 떨었다.
기분 탓일까. 조금 거칠게 느껴졌다.


「미안」

「뭐가?」

「피부, 많이 거칠어졌네.」

「그래?」

「응.」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집이 작은 덕에,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 껴안을 수 있었다.


「저기, P」

「응?」

「정말 괜찮아?」

「응」

「정말, 나 없어도 쓰러지거나 하지 않을 거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피이, 이 바보가」


살짝 토라진 그녀의 옆구리를 살짝 간질이자, 그녀가 몸을 살짝 비틀었다.


──────


「근데 말야, P」


갑자기, 그녀가 말을 걸었다.
내가 한 피부가 거칠었다는 말에 조금 상처를 받은 걸까, 욕실에 들어가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온몸에서 그녀가 자주 쓰는 오렌지향 입욕제 냄새가 난다. 진하게.


「잠깐, 말 듣고 있긴 해?」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어느새 눈 앞까지 와 있던 건가, 그녀의 얼굴이 내 눈 앞에 들이밀어졌다. 
그녀의 향기가 더 진해진다.
잠시, 그녀의 향기 때문에 의식을 놓을 뻔했다.


「응, 미안. 생각 좀 했어」

「무슨 생각?」

「너」

「ㄴ, 너 말야, 도대체 왜 자꾸 그런 식으로 사람 놀리는거야?」


안 놀려. 진짜야.


「흐, 흥. 그럼 다행이지만. 니히힛」

「그 웃음소리, 오랜만에 듣네」

「그런가? 나 네 옆에 계속 있었잖아」


그녀가 내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그녀가 왠지 모르게 토끼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우면, 죽어버리지만, 그렇다고 외롭다고 말하지조차 못하는, 부끄럼쟁이 토끼.


「스무살이 됐다고 그 좋아하던 인형도 어느샌가 두고 다니고」

「그, 그게 뭐, 껴안고 잘 게 있는걸」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녀가 상당히 솔직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털털해졌다고 해야 하나?


「말은 왜 건 거야?」

「말?」

「방금 날 불렀잖아」

「아, 그거… 글쎄. 잊어버렸어. 에헷」


────────


그녀가 같이 있는 시간은 일이 없는 날엔 24시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이 아닐지라도, 그녀에게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즘엔, 간간이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한 식단이나 명품 패션 등을 파는 곳을 소개하고는 한다.

그녀의 이미지에, 아니, 그녀 자신에게 잘 맞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20년간 살아왔던 방식대로만 하면 되는 방송이니까.


『그러니까 이 토트백은 이 브레이스릿이나…』


TV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집에서 -언제부턴가 난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그녀가 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보이는 모습하고는 꽤나 달라보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미나세 그룹의 영애니까.


『이 방송은, 미나세 물산의 제공으로 보내드립니다.』


현재 미나세 그룹의 총수는 그녀의 오라버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사업 수완 및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더 나은 자신의 아들에게 빠르게 그룹을 장악할 수 있도록 빠르게 기업을 넘겨줬다 한다.
그녀의 말로는, 이미 실적도 상당히 거두고 있는 터라, 그가 미나세 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이가 압도적인 소수였다 한다.


「그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이렇게 바쁜 걸음을 하실 필요까진 없으셨을 텐데…」

「아뇨, 뭘요. 제 동생을 보러 오는 겸사 온 거니까요」

「이오리라면 지금 촬영이 있다고…」

「아, 알고 있습니다. 오는 길에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녀가 아이돌을 지망했던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자기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 인간인지 자신의 가족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첫째로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오빠에게.


「이오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왜 하필이면 제 옆에 있겠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녀석이 선택한 게 이거라면, 응원해 주어야겠지요」

「……」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예전에 말하던, 심술궂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그녀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그랬을 뿐이리라. 
그녀가 갑작스레 나와 살겠다고 통보했던 그 날 이후로, 그녀를 배려해서 모든 뒷수습을 해 준 것도 이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갈 생각은 혹시 있습니까?」

「생각이야 있죠. 그치만, 이오리가 납득할 지…」

「……그 아이는 손 벌리는 걸 정말 싫어하니 말이죠」

「그러게요」


───────


「다녀왔어~ P, 잘 있었지?」

「안녕하세요~!」

「어서 와. 야요이도 왔구나」

「프로듀서, 몸 괜찮으세요?」


촬영이 끝나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로(촬영이 6시에 끝났다는데도 집에 7시에 도착했으니) 이오리가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는 765 프로덕션 당시부터 그녀와 친했던 타카츠키 야요이가 왔다.


「잘 있었지?」

「그럼요!」


그녀는 요즘엔 예능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한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65프로덕션에서 가장 작았던 그녀였는데, 어느덧 성인이 된 그녀는 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오늘은 뭐 해드릴까요?」

「야요이! 누가 보면 네가 P 아내같잖아!」

「우우─ 그건 이오리가 아니구?」

「에휴…」


두 사람의 언제나 반복되는 실랑이.
이 실랑이는 그녀들 간의 즐거운 의사소통이니, 뭐라고 할 생각도 마음도 들지 않는다.


────────


「웃우─! 콩나물 축제에요─!」

「아, 이거 오랜만이네~ 니히힛」


야요이는 765프로덕션에 들어왔을 때 살던 집을 얼마 전 처분했다고 한다.
더 이상 그 집에 있기엔 안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경호원을 항시 붙여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금 좋은 집으로 가족 모두 이사하기로 했다 한다.


「이거 정말 오랜만이다. 야요이 요리 실력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겠는데」

「우으─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요리할 기회가 없었는걸요─」

「사시스세소에서 매일 하잖아, 요리」

「그치만 그건 스태프 분들이 도와주시는걸」

「뭐 어때, "장수의 여왕님"」

「우우─ 그렇게 부르지 마아─!」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야요이는 방송가에서 '장수의 여왕'이라 불린다고 한다.
아무리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도 3년을 넘기기 힘든 요즘 방송가에서, 그녀가 출연하고 있는 '사시스세소' (따로 정규방송으로 편성되었다)가 7년 가까이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예시.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며 웃는 그녀와 야요이의 모습에, 무심코 웃었으면서도, 왠지 마음 속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


「그럼 안녕히 계세요─!」

「잘 가 야요이.」

「또 와.」


다음날 아침, 야요이를 집으로 보냈다.
그녀가 스테이지 위에서 항상 하던, 일명 '걸윙'인사.
몸집이 조금 커진 그녀가 해도, 예전 그 느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있잖아, P」

「응? 왜?」

「다시 프로듀서가 될 생각 없어?」

「………글쎄」

「……아직……이야?」

「……미안」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보다가, 한번 픽 웃고는 입을 맞췄다.


────────


「P」

「왜?」

「으응, 아무 것도 아냐」

「왜 그러는데?」

「………」

「무슨 일 있어?」


침대에 누워 등을 보이며 누워있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어느샌가 그녀를 끌어안는 게 버릇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을 땐, 내가 그렇게도 약한 인간이었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빠, 왔었어?」

「……어제」

「뭐래?」

「……널 잘 부탁한대」

「거짓말」

「진짜야」

「오빠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걸」

「……」

「……진짜?」

「응」


그녀는 스물이 넘어서도 약간 아이같은 구석이 있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잘 흥분한다든가, 입맛은 아직도 달달한 걸 좋아한다든가, 무가당 오렌지 100% 주스는 여전히 우리 집 냉장고에 세 병씩 들어있다든가.


「헤에…… 꽤 하잖아, 오빠도」

「……그래서 말인데」

「응? 왜 그래?」

「오늘 다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만 헤어져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최대한 담담하게, 그녀에게 이별의 말을 고했다.


「뭐라고? 잘못 들은 거 같아서」

「헤어지자고」

「에…?」

「더 이상은 내가 너 앞에서 웃을 수가 없을 거 같아」

「어, 어째서? 내가 뭔가 잘못한 거야?」

「아니. 이오리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

「그럼 왜…!」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 
점점 눈물이 고여가는 그녀의 얼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같은 놈이 죽어가는 걸 옆에서 보면서 가슴아파할 필요 없어」

「그건 내가 정해! 네가 하라고 해서 있는 게 아니란 말야! 이 멍청아!」

「옆에 있어달라고 한 건 나였잖……」

「그게 뭐가 어째서! 나, 난… 너랑 계속 있고 싶단 말야…!」


울면서 내게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내 얼굴에,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그대로 힘없이, 내 뺨에 머무른 그 양 손바닥을, 난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품에 안을 뿐.


────────


의지박약.
자기 자신에게 내리게 된 평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던 자신의 마음이, 그녀의 눈물 섞인 얼굴에 단번에 무너졌다.

자기 자신에게 느껴지는 약간의 혐오감.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좋다고 해 주는, 자신의 품 위에서 울다 지쳐 잠든 그녀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이것은 자기위안일까.

그래, 이건 자기위안일 것이다.
자신의 용기 없음을, 그래도 그녀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억지로 덮어버리는 자기위안이자 자기기만.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비참해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 발…」


그녀를 잃은 날. 
자신이 끔찍한 정신병에 시달리게 된 그 날.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구요─ 프로듀서. 빨리 오세요!』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
자기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그녀는, 정말 그녀의 이름과도 같이 아무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승을 떠나버린 푸른 새처럼.


────────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그 날의 환영은 나약한 인간 혼자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파도와도 같았다.
아니, 파도라기보다는 해일에 가까웠다.

그 해일을 일으키는 지진은, 거의 항상 눈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사람들의 눈.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보게 되면, 어째선지 모르는 공포감이 온 몸을 덮쳤다.

그녀의 눈을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 나니 사람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던 자신의 옛 버릇이 그리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눈을 마주쳤다간 그녀가 떠올랐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그녀의 마지막 모습.
온갖 의료장치를 온 몸에 연결한 채로, 그러면서도 힘겹게 웃으면서,

『P씨, 늦잖아요… 기다렸다구요…』

라고 자신에게 말했던 그 모습.

그 말과 함께 온 몸의 힘이 풀리며 소리없이 손을 내려놓았던, 아니, 그녀의 지친 날개를 쉬었던 그 때의 모습.
그 평온하면서도, 안심했다는 듯한 표정.

그 평온한 미소가, 나 자신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영혼의 주박이 되었다.


────────


「괜찮아? P? 정신차려 봐…」

「아, 으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그런 날이 올 때면, 그녀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걸어버린 족쇄.

『곁에 있어 달라』고 무심코 해 버린 말.
어느 여신에게 전화를 걸어버린 남자가 했던 말과도 같은, 자신이 더 크게 나가야만 할 그녀에게 걸어버린 족쇄.

곱게 자라난 그녀가 나같은 병신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이유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제발, 부탁이야 P…, 진정해…」


그녀가 내게 해 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입장에선 울면서 내게 매달려 나를 진정시키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삶의 구원이었다.

내 삶에 빛을 되찾게 해 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반짝이는 그녀는, 내가 보기엔 너무 눈부셨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붙잡는 일밖에 없었다.


「괜찮아, P…?」

「하아, 하아… 응, 좀… 괜찮아졌어… 미안해…」

「아냐, 미안하긴 뭘…」


그녀의 작은 품에 얼굴을 묻고, 너무나 한심한 내 자신에게의 자괴감을 곱씹으려고 했지만, 어느샌가 그런 나같은 놈을 좋다고 곁에 있어주려고 하는 그녀가 너무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다.


────────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 살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계절이 한 바퀴 돈 만큼.


「저기, P」

「…왜?」

「창 밖에, 눈이 오네」

「그래?」


머그잔에 핫초코를 가득 담아서, 그녀가 내 옆으로 왔다.
말없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도,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괜찮아?」

「……아직 가슴 한켠이 아려」

「………그래?」

「눈, 정말 예쁘다. 안 그래?」

「진짜… 예쁘다」


눈이 내린다. 
모든 걸 덮듯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
부디 이 눈이, 내가 만든 그녀의 주박마저 덮어주기를. 그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녀를 잊는 일은, 아무리 눈이 내린들, 아무리 시간이 지난들 불가능할 것이다.


「저기, 왜 그렇게 빤히 보는데? 내가 너무 예뻐서 그래?」

「응」

「뭐, 뭐뭐, 뭐야! 거기선 태클을 걸란 말야! 이 바보!」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그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그녀가 내게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 만남에 감사하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와 함께 있도록 하자. 


「그러고보니 말야, 이오리」

「왜?」

「코토리 씨 무덤, 어디 있는지 알아?」

「에…? 거긴 왜…?」

「인사해야지. 1년이나 인사를 못 했는걸.」

「알고는 있어… 친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어서, 도쿄에서 좀 멀지만…」

「그럼, 여행이나 갈까? 아예 한 달 정도」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

「글쎄. 왠지 모르게 너랑 있으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 이, 바, 바바바, 바보! 그런 말 막 하지 말란 말야!」

「사랑해」

「바, 바보……」


그녀가, 울면서 품에 안겼다.
그래, 이게 분명, 당신이 바라는 영원이었겠죠.

창 밖에, 메추라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 작가 후기.

우와, 역자 후기만 쓰다 작가 후기라니, 신선한데요.

필력도 없고 그냥 막 내킨대로 쓴 글 따라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끝마무리가 너무 엉망같다는 느낌이…

어휴, 도대체 어떻게 글들을 쓰시는 건지 몰라. 존경스럽습니다.em36.gif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9:1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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