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미키이오]어느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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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3, 2012 23:22에 작성됨.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다. 지금 입은 옷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다 못해 후끈거릴 정도였건만, 오늘은 어째 같은 복장인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이다.

 “……정말, 언제 나오는 거야.”

 무심코 불평을 담은 혼잣말이 새어나온다. 정말이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녀석이다. 특별히 내가 기다려 주는 건데도 이렇게 나올 생각을 않다니,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신도를 불러서 차를 타곤 혼자 유유히 가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렇게 했을 터이다. 하지만 어째서, 왜 이렇게 그 바보 같은 녀석을 기다리게 되는 걸까.

 “──마빡쨩!”

 그렇게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정말이지, 사람을 기다리게 해 놓고도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짓다니, 기가 막혀선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이 이오리님을 지금까지 기다리게 하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미안해 마빡쨩, 잠시 프로듀서 말 좀 듣느라고 늦어 버린 거야!”

 헤실헤실 웃으며 그런 말을 하다니, 이번에야말로 한소리 해야겠다──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고개를 돌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보같이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언제나 할 말 조차 제대로 꺼내질 못하게 되어 버린다.

 “흥, 됐어. 시간이 아까우니까, 얼른 가기나 하자.”
 “응─인거야!”

 뒤도 안보고 돌아서자, 또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으며 내 옆에 찰싹 붙어선 함께 걷기 시작한다. 뻔뻔한 데에도 정도가 있지,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히려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화내도 미소로만 일관하고, 나만 보면 좋다고 끌어안기만 한다. ……정말이지, 싫은 녀석이다. 그런데, 왜 나는─….

 "마빡쨩, 오늘 데이트는 어디로 갈 거야?”
 “너, 넛! 이런 데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데이트 데이트 거리지 말라고 전에도 말했었잖아!”

 어째서 나는, 이런 녀석과 사귀게 된 걸까.

 “응? 마빡쨩은 데이트 하는 게 싫은 거야?”
 “그! 그건……윽, 어쨌든 생각 좀 해보라고, 길거리에서 이렇게 떠들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우리 신분을 제대로 자각하고 있으라고!”
 “마빡쨩의 연인이란 걸 기억하고 있으란 거야?”
 “마빡이라고 부르지 맛!”

 사람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으면서 연인이라니, 정말 바보 같다. 이번에도 내가 화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붙으려는 꼴을 보니,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여기서 더 열을 내봤자 지치는 건 나뿐이겠지──하는 결론을 낸 나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마빡쨩, 추워?”

 말없이 걷고 있던 우리 둘 중, 먼저 그 정적을 깨버린 건 다름 아닌 그 녀석이었다.

 “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건 너나 신경 쓰지 그래……엣취!”

 원망스럽게도 재채기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다. 하필이면 이때, 그것도 이 상황에서 나와 버리다니……스스로도 볼이 화끈거리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추위 따윈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 하지만 그녀석의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채버렸다.

 “마빡쨩, 추워?”
 “……안 추워.”
 “떠는 거 다 보이는걸. 이렇게 하면, 안 추울 거야.”

 그렇게 말하곤 그 녀석은, 말도 없이 갑작스레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백허그. 빠져나갈 틈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어떻게든지 그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해 봤지만, 그 녀석은 날 풀어주기는커녕 손아귀 힘을 더 세게 줘선 나를 조이는 것이었다.

 “너……길거리에서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야! 어, 얼른 이 손 놓아!”
 “응? 마빡쨩 춥잖아. 미키는 따뜻하니까, 마빡쨩도 따뜻해 질 거야.”
 “이런 짓 할 시간 있음 그 마빡쨩, 마빡쨩 하는 것부터 좀 그만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이젠 저항할 힘마저 빠져버린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녀석은 내 귓가에 대놓고 툴툴거리는 소리를 늘어놓고선 나를 풀어주는 듯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다시 조여 오는 녀석의 손.

 “그럼, 마빡쨩도 미키를 ‘미키’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는 거야.”
 “……뭐?”

 녀석의 바보 같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대체 무슨 얼빠진 소릴 하는 거야 넌! 하고 한 번 쏘아주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상하게도 녀석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선,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 녀석의 기세에 눌려 버릴 정도였다.

 “마빡쨩이 미키를 ‘미키─’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면, 미키가 놓아줄게. 또 마빡쨩을 더 이상 마빡쨩이라고 안 부를게.”
 “……이름 같은 거, 어떻게 부르란 거야.”
 “응? 마빡쨩,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아냐!”

 혼잣말까지 마음대로 못 하게 하다니, 정말 너무한 녀석이다. 그런 내 반응에 다시 평소같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와 버리는 그 녀석.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러긴 싫지만……이 녀석에게 벗어나려면, 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 그게……으……미키?”
 “어라? 미키, 잘 못 들은 거야. 한 번 더 말해 줘!”
 “……윽. 미키?”
 “응? 뭐라고오? 미키, 제대로 못 들은 거야!”
 “으윽, 미, 미키!”

 그제야 녀석은 헤죽거리며 나를 풀어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로 마음에 안 든다. 매번 내게 장난이나 치고, 제대로 진지하게 말 한 적은 정말로,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럼, 마빡……아니, 그럼 뭐라고 불리고 싶은 거야?”
 “……뭐?”

 그 녀석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이오리……라고 부르는 건 역시 너무 평범한 거지? 그럼……당신이나, 여보? 그것도 아니면──”

 입술이 닿기 일보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그 녀석은 나를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허니, 라던가?”
 “으, 키이이이이잇! 너, 너엇──!”

 화를 내며 그 녀석, 아니 미키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아핫, 하고 웃으며 나를 피해 멀리 도망가 버린다. 내게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혀를 내미는 미키. 내 얼굴은 어느새 화끈거리다 못해, 이제는 불타올라 버릴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핫. 허니, 부끄러운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니깐 너!”
 “‘너’라니? 미키라고 불러주기로 하지 않았어?”
 “으……으으, 미키 너!”

 너무나 바보 같고, 가끔씩은 얄밉고, 또 심술궂은 그 녀석, 아니 호시이 미키. 내가 어째서 그녀에게 먼저 고백했던 건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건……앞으로도 계속, 그 정 붙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미키를 좋아할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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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리퀘인지 추천인지 비슷한걸 받아서 쓴 글.
어려워요 어려워...이오리의 분위기를 잘 살리질 못하겠네요 ㅠㅠ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10:50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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