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그 남자

댓글: 36 / 조회: 829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0-26, 2013 14:18에 작성됨.

"결혼 합시다."

어느 날 P는 뜨끔 없이 상대에게 그리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 오토나시 코토리는 멍하게 P를 쳐다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었다. 낙엽 지는 모습이 보기 좋아 동네에 있는 작은 동산에 편한 복장으로 올라가던 길이다.
그럴 때 우연히 P를 만나 같이 산책을 하는데 P가 진지하게 그리 말한 것이다.

"네?"

코토리가 되묻자 P는 낙엽을 줍고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방금 했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그는 코토리를 보지 않았다.
하늘의 흐름이 잔잔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손만 펼치면 바람에 날려 그대로 그 푸름 속으로 잠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보지 않는 P의 뒤의 하늘을 보며 코토리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 P가 했던 말은 바람에 잘못 들은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코토리의 머리에 낙엽을 살짝 얹어 장난을 치는 P는 웃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네요. 사무실 분위기도 있어 참았지만, 역시 참는 건 드만둘래요."

그리고 손가락을 낙엽에서 떼어내자 코토리의 머리에 얹어 있던 마른 낙엽은 간단히 바람에 날아갔다.

"너무나 사랑해요. 그러니 우리 결혼해요."

그 몇 단계나 건너 띈 고백에 코토리는 부끄러워한다거나 기뻐한다거나 하는 마음보다도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너무 성급한 고백 아니에요? 보통은 여기서 연인이 된다거나 하는……."

그 순간 P는 코토리의 어깨를 잡고 웃으며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P의 얼굴이 자신보다 높아 저절로 올려다보는 자세가 된 코토리에게 P는 천천히 얼굴을 가져갔다.
그 행동에 코토리는 몸이 굳었음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밀쳐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쩐지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입술 사이를 지나가고, 그 뒤는 말랑하면서도 가을 바람에 낙엽처럼 매마른 따스한 입술이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숨결이 따듯하다.
손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꿈지락 거리며 차렷 자세와 같은 뻣뻣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둘의 키스는 아주 짧은, 인사와 같은 키스였다.
얼굴을 떼어내자 P가 능글맞게 웃었다.

"확신하고 있으니깐요. 코토리씨도 절 사랑한다고요. 제가 틀린거라면, 천천히 다가온 절 밀쳐내거나, 키스 후에 제 뺨을 때리셨겠죠."

코토리는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상대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짧은, 푸름의 단발이 바람에 술렁인다.
얼굴은 갑작스런 열에 들뜨어 살짝 붉으스름하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부드러운 분홍빛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다.
자신의 입술과 다르게 립글로즈를 바른 건지 윤기가 나며 축축한 그녀의 입술.
그 입술에 닿았던 순간을 순간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고 욕심 많은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결혼하는 걸로 하죠."

멋대로인 그의 말에 코토리는 그제야 뒤늦게 반응했다.

"그,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워요!"
"좋잖아요. 코토리씨랑 알고 지낸지가 얼만데요. 연인기간 같은 건 오히려 시간이 아깝다고요. 코토리씨가 저에 대해 잘 알듯, 저도 코토리씨를 잘 안다고요. 실제로, 오늘도 코토리씨가 이 쪽을 지나갈 거란 걸 알고 기다렸는 걸요?"
"하, 하지-"

코토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P의 입술이 덥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깨가 아니라 허리를 상냥하게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 듯 안아 깊은 키스를 하였다.
따스한 숨결이 입과 입사이를 오간다.
그 숨결을 따라 그의 혀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다.
자신의 혀도 그에 반응하 듯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 움직임은 혀를 밀어내려는 것인지, 아님 반기려는 것인지는 반응하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쩐지 힘이 빠져 그의 어깨를 잡고 몸을 지탱해 맡긴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풀여 뒤로 물러가다가 나무에 기대게 된다.
나무가 살짝 흔들리며 낙엽 몇 개가 바람을 타듯 둥실 가라앉아 온다.
낙엽 하나가 코토리의 머리에 앉았고, 그것을 P가 웃으며 집었다.
어느 사이엔가 키스는 끝나고서 멍한 표정으로 나무에 기댄 코토리를 그는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매말랐던 그의 입술은 그녀의 축축했던 입술에 깊게 닿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젖어있었다.

"프로듀서를 하면서 배운 건 심사숙고 후에 이어진 과감한 결단이지요. 어차피 이루어질 일에 이렇고저렇고 듣고 싶지 않다고요."

그러면서 그는 낙엽을 놓아주며 코토리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니 결혼하는 겁니다. 당신과 저, 둘이서 말이죠."

고백도 없는 뭔가 엉망인 프러포즈. 하지만 코토리는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무언가 올라옴을 느끼며 서서히 웃고 말았다.

"하아, 너무 거칠고 엉망이잖아요."
"죄송해요."
"정말. 덕분에 다리에 힘이 없잖아요."
"그럼,"
"꺄악!"

P는 코토리에게 가까이가 그녀의 무릎 뒤와 가는 허리를 바쳐앉아들었다.
코토리는 살짝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을 급히 껴안았다.
그 단순한 동작으로 훌륭한 공주님 안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거친 사람이 된 건가요?"

볼을 부풀리며 코토리가 묻자 P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 동안 신중히 검토한다고 너무 참고 있었거든요. 그 반동인가 봅니다."

코토리는 그런 그에게 안겨 그 얼굴을 노려보다가 이내 그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도 좀 상냥해지시라고요."
"알았습니다. 그럼, 코토리씨 집에서는 상냥하게 하죠."
"하아, 알아들으셨음 됐…… 네?"
"결혼하기로 했으니 피임은 하지 않아도 되겠죠? 결혼식은 최대한 빨리 잡을테니 말이죠."
"잠깐만요, 프로듀서!?"
"프로듀서가 아니라 P입니다! 그럼 갑시다!"
"모두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코토리가 절규하며 귀엽게 버둥거렸지만 P는 크게 웃으며 개의치 않고 당당히 그녀를 안아 집을 향해 갔다.
그들이 지나간 뒤를 시원한 바람에 날려 낙엽이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런, 시원한 듯 시리지만 어딘가 따스한 날의 이야기였다.  
----------------------------------------------------

이렇게 감정과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프로듀서도 좋아요~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