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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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30, 2013 19:02에 작성됨.

어느 사이엔가 이런 나이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10대의 시절이 지났다.
계속 젊지 않을까 생각했던 20대의 시절도 앞으로 2년 정도면 끝난다.
멀게만 느껴지던 30대의 기간이 다가온다.
그 사이에 애인을 사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곧장 헤어졌다.
아이돌 때 한 번, 20대 때 한 번.
아이돌일 때는 일에 바빠 서로 마음이 멀어져 헤어지고, 
20대 때는 평범하게 연애를 하다가 서로 맞지 않아 헤어졌다.
그러다가 사무원 일에 집중하며 사무실의 아이돌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다보니 연애를 잊게 된다.
찬 밥을 먹을 때가 많다.
카레를 해놓으면 그것이 떨어질 때까지 늘 카레만을 먹는다.
찬 밥에 따듯한 카레를 같이 먹고,
찬 카레를 맥주 안주로 마시기도 했다.
반찬은 늘 한 가지.
두 가지 이상은 꺼내기가 귀찮았다.
결혼을 닥달하는 부모님의 전화도 어느 사이엔가 뜸해졌다.
친구들은 결혼하거나 결혼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은 애인이 없는 나를 보고 결혼하라고 말한다. 
아이돌까지 했던 나의 외모만을 보고 그녀들은 내가 언제든 연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솔직히 나이가 있지만 내 외모는 여전히 남자들을 혹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연인이 되는 것까지는 될 수 있어도 끝까지 같이 할 수는 없다.
특히 최근에는 내 아이돌 때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는 후배들이자 소중한 가족이 765사무소의 아이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망상도 아이돌들에 의해 일어날 때가 많다.
그러면 외롭다라는 것을 잊게 된다.



집에서 다시 찬 밥을 먹는다.
그러다가 밥 솥에 밥이 떨어지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것으로 난 골고로 먹는다고 주위에 거짓말을 한다.
가끔 씻고서 따듯한 샤워기물에 몸을 적시다가 울기도 한다.
따스함을 잊어간다는 것이 슬프고, 거기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 무서웠다.
요즘은 가끔 불을 끄지 않고 잘 때가 있다. 불 꺼진 방안이 외롭고 씁쓸하고 어쩐지 무서울 때가 있다.
일부러 사무일을 일찍 끝낼 수 있는 데도 다른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야근을 자처해서 간다.
리츠코와 P씨의 업무도 내 쪽으로 끌어와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자신들을 위해 내가 무리한다며 고마워 하면서 걱정한다.
업무의 양이 많은 것은 두 사람도 마찬가지이면서.......
집에 가기 싫다.
아무도 반겨 주는 이가 없는, 난방을 틀어도 어쩐지 시린 방안으로 돌아가기가 겁났다.
애완동물을 기를 까도 했지만 히비키처럼 여러마리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 애완동물도 내가 일하는 동안은 혼자 있어야 한다.
히비키를 보면 애완동물도 가족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씁쓸한 외톨이는 나 혼자로 족하다.
어느 사이엔가 그런 친구들과의 연락도 뜸해진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형식적으로 하고 있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 중 직접 통화해 본 번호는 손에 꼽을 정도다.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씁쓸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것은 틀리다.
모두 씁쓸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이 능력 없는 어른이 씁쓸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능력이 있고 좀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진작 내 공간은 따스함으로 가득 찼을 지도 모른다.
울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 눈물부터 나와 그런 생각도 해보지 못한다.



방안이 춥다. 보일러를 틀어도 방안은 여전히 춥다.
원룸이 너무나 넓다. 가구들이 가득 차고 일부러 이것저것 꾸며보지만 너무나 넓다.
휴가를 받기가 싫다. 휴가를 받아도 함께 할 이들이 없어 슬프다.
일부러 일에만 몰두한다. 
야근을 더욱 자주하며, 일부러 더 일찍 출근한다.
그것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다.
결국 난 쓰러지고 말았다.
무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쳐가는 마음이 결국 무너져 쓰러진 것이다.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쓰러진 것도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가 그리 된 것이라 그냥 집에서 쉬면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 전화를 하자 프로듀서씨가 걱정을 하면서 오늘 하루 폭 쉴 수 있게 해주셨다.
고마웠지만, 너무나 씁쓸한다.
혼자 있는 방안에서 홀로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마음이 다시 꺾일 것 같다.
TV를 튼다. 아이돌들이 밝게 웃고 있다.
나와 함께 하는 아이돌. 저 아이돌들은 계속 밝았으면 싶었다.
약을 먹어서인지 잠이 오고,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눈을 뜬 것은 저녁 때였다.
부엌에 누군가 있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죄송해요. 문이 열려있어서 멋대로 들어왔네요."

거기에 있는 사람은 프로듀서였다.

".....괜찮아요."

난 평소와 같이 웃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프로듀서는 걱정스럽게 날 쳐다보다가 이내 웃으신다.

"아프셔도 문 단속은 제대로 하셔야죠. 코토리씨 같은 미인이시라면 더더욱 말이죠."
"네, 조심할게요."
"아, 저녁은 간단히 죽을 만들었는데 드실 수 있겠어요? 맛은 보장 못하지만요."
"후후, 프로듀서가 해주신 죽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요."

텅텅 빈 원 룸이 소리로 가득찬다.
무언가 따스한 기운으로 나를 감싸준다.
이불로도 따듯해지지 못한 내 무언가가 데워져 간다.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외투를 걸치고 식탁에 앉자 뜨거운 죽이 내 앞에 놓였다.
난 후후 불면서 죽을 식힌 후 숟가락으로 푼 죽을 한 입 먹어본다.
천천히,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먹어본다.
이 집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해준 따스한 밥을 금방 삼키고 싶지 않았다.
따듯하다.
맛있다는 감상보다도 따듯한 누군가 해준 음식이 너무나 기뻤다.
그 순간 주륵하고 한 방울 눈물이 흐른다.

"괜찮으세요?"

나를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괜, 괜찮......"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꼭 수독꼭지가 고장난 것처럼 조절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흘러내린다.
들고 있던 수저도 내려놓고 파자마의 소매로 닦아내지만, 그래도 계속 흘러내린다.
그 순간, 프로듀서가 나의 얼굴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아준다.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은 제가 곁에 있잖아요."

그 따듯함에 어쩐지 진정이 된다.
난 그의 품에 안겨 나도 모르게 고장난 눈물처럼 마음을 쏟아낸다.

"외로운 거 싫어요."
"네, 그건 저도 싫어요."
"씁쓸한 집 안에 혼자 돌아오기 싫어요."
"이해해요."
"찬 밥을 먹는 것도 싫어요."
"따스한 밥이 좋죠."
"한 가지 밥찬만으로 먹는 것도 싫어요."
"그건 질리죠."
"혼자말을 하는 것도 싫어요."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깐요."
"따듯한 샤워기 물을 맞으며 우는 것도 싫어요."
"그런 따듯함에 기대지 마세요."
"더 이상, 계속 혼자 자는 것도 싫어요. 너무, 너무 무서워요."
"괜찮아요, 아무런 일도 없을 테니깐."

그는 상냥하게 나의 어린애 같은 투정을 모두 받아주었다.
머리를 안아주고 상냥하게 어린 아이처럼 어루만져 준다.
겨우 눈물을 그치고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싱긋 웃어주었다.

"진정 되었어요?"
"........네. 죄송해요. 추한 꼴을 보여서."
"괜찮아요. 그럼 울어서 더 배고프실테니 마저 드세요. 마침 적당히 식었을 테고."

뜨거웠던 죽은 알맞게 따듯해져 있었다. 난 그가 해준 요리를 마저 먹고서 그의 부축 받고 세면실로 향한다.
자고 일어나 바로 죽을 먹어 입안의 냄새가 지독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는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었다.
이빨을 닦고서 세면을 한다.
몸에 힘이 없어 샤워를 하지 못했다.
그러고 다시 비틀 거리며 그에게 몸을 기대어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제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시겠어요?"

평소에는 보이지 않을 약한 모습으로 그에게 어리광을 부려본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더니 현관을 확인한다면서 방의 불을 끄고 나간다.
순간 어두워진 방안이 무서웠다.
하지만 들려오는 그의 인기척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눈을 감자 그가 방안에 들어왔다.
침대가 흔들린다.
그가 내 등 뒤에 같이 눕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연히 내 배를 감싸안는다.
평소라면 부끄러워했을 텐데 어쩐지 따듯함을 느끼며 안심할 수 있었다.

"저도 혼자가 싫어요."

그가 나에게 속삭인다.

"혼자 밥 먹기 싫고, 혼자 집에 가기 싫어요. 혼자 자는 것도 싫구요. 그리고,"

그는 내 배를 감싼 손에 힘을 주어 더욱 자신에게로 당긴다.

"앞으로 혼자 울고 있을 당신을 그냥 두기 싫어요."

난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내배를 감싸 안은 그의 손을 잡았다.
따듯하다. 이불에 감싸인 것보다도 이 쪽이 더 따듯했다.

".....고마워요."

난 겨우 그렇게 감사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떼어내 몸을 돌려 그에게 안긴다.
그를 올려자보자 그가 키스를 해온다.
감기가 옮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내 몸을 흝으면서 외로움에 차가워졌던 내 몸을 따듯하게 뎁혀준다.
난 그에게 말한다.

"너무 추웠어요. 오늘 밤은, 절 따듯하게 해주시겠어요?"
"그러죠. 저도 그랬으니깐요."

그의 손이 내 몸을 흝다가 내 잠옷을 서서히 벗겨갔다.
내 입술에 그의 따듯한 입술이 감싸듯 덮어간다.



다음 날 아침에는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품에서 깨어났다.
아팠던 몸이 거짓말인 것처럼 가벼웠다.
서로 이불 안은 속옷 하나 입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듯한 아침이었다.
난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다가 웃는다.
그리고 잠 든 그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더 이상 혼자인 시간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는 원룸을 정리해 성급하지만 그와 동거를 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같이 잠들 때면 난 지금도 그를 꼬옥 껴안고 잠든다.
그러면 그는 날 밀어내지 않고 따듯하게 안아준다.
이제는 더 이상 씁쓸하거나 차갑지 않다.
너무나 따듯하고 푸근해 이대로 계속 잠들고 싶다.
사랑하는 지금은 매일이 너무나 즐겁다. 

더 이상 찬 밥을 먹지 않는다. 그가 같이 식사를 하니깐.
더 이상 반찬을 한가지로만 먹지 않는다.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니깐.
더 이상 샤워기의 따듯함에 울지 않는다. 더 따듯한 그의 품이 있으니깐.
더 이상 홀로 집에 오지 않는다. 같이 사는 그가 동행하니깐.
더 이상 어두운 밤이 외롭고 무섭지 않다. 내 옆에는 늘 그가 같이 자니깐.
더 이상은 무리해 야근을 하지 않는다. 같이 퇴근할 소중한 사람이 있으니깐.
더 이상 집에서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내 말에 대답해주는 그가 있으니깐.
더 이상 추운 밤을 슬프게 맞이하지 않는다. 따듯하게 날 안고 자주는 그가 있으니깐.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다.
내 세상이 가득차 있다. 
유치한 말로 사랑이 가득찼다고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 옆에 그가 있어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사랑해요, 코토리씨."
"저도요, P씨."

따듯하게 서로를 안고 키스를 하는 일상이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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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씁쓸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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