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프로에서 가장 큰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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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8, 2013 22:02에 작성됨.

어느 날 오후. P는 오전 스케쥴을 끝마치고 막간의 휴식시간을 765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무실 문을 연 순간 765 프로덕션의 사장의 친구이자 기자인 요시자와 씨와 마주쳤다. 왠지 미안해보이는 눈치였다.
들어가보니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 양이 다과가 있는 소파 옆 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과가 아니었다. 26장이나 되는 CD들도 탁자에 있었던 것이다. 사무원 코토리 양의 얼굴에는 알게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다.

"오토나시 양? 오늘 인터뷰가 있었나요?"

"네. 요시자와 씨가 잡지 기사 때문에 인터뷰할 일이 있었거든요. 이 드라마들 때문에요."

코토리 양은 CD를 보며 말했다. CD들에는 숫자와 알파벳이 적혀있었다. 숫자는 1부터 26까지 적혀있었으며, 알파벳으로 XENOGLOSSIA라 적혀있었다.

"아까 요시자와 씨도 그렇고 이 드라마가 뭐길래 그러는 거죠?"

"하아..."

사무원 코토리 양은 명랑한 인상과는 다르게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공기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가 들어있었다.

"프로듀서.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우리 765 프로에서 가장 어두운 흑역사에요. 만약 다른 아이돌들에게 환기시킬 경우 그 즉시 최악의 컨디션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요."
"네... 오토나시 양."

사무원 코토리 양은 평소보다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프로듀서. 당신이 오기 전의 765 프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 것 없었나요?"

"음...글쎄요. 그나마 이상한 것이라면 리츠코 양이 프로듀스하고 있고 사장님은 프로듀스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것 정도겠네요."

P는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아서 여지껏 입밖에 내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와 관련있나보네요."

"......예리하시네요. 이 드라마 촬영을 계기로 해서 사장님은 프로듀스에 대한 자신감을 모두 잃고 리츠코 양에게 모든 프로듀스를 맡겨버렸어요."

이쯤에서 코토리 양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P가 오기 약 5달 전, 그러니까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이 데뷔한 지 1개월도 되지 않은 때.
765 프로덕션의 사장 타카기 준지로는 지인들과 거액의 자금을 들여 드라마 하나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XENOGLOSSIA였다. 케이블 채널에서 월화수목금으로 5주 동안 방영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시골에서 상경한 아이돌 지망생 아마미 하루카가 착오로 인하여 로봇을 조종하게 되고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이었다. 무진합체 키사라기에 앞서 기획된 이 메카물 드라마는 무명 아이돌들을 일약 스타덤으로 올릴 작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야 이렇게 조망할 수 있었지만 준비가 너무 부족했어요."

창 밖 너머를 잠시 보더니 사무원 코토리 양은 다시 말을 이었다. 창 밖을 보던 눈은 놀랍도록 공허했다.

"게다가 그 드라마 후시녹음(주 : 촬영한 뒤 화면을 보면서 녹음하기)이었어요. 녹음은 우리 아이돌이 아닌 성우들이 담당했고요."

"뭐라고요? 그거 뭔가 이상한데요?"

P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사무원 코토리 양이 말한 내용을 더 들은 P는 더 큰 놀라움을 느껴야만 했다.

그 드라마는 무명 아이돌을 빠르게 유명세를 띄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1달만에 모든 일정이 완료되었다. 그 과정에서 철야는 일상적이었던데다 촬영지가 다양한 탓에 오키나와에서 촬영한 뒤 곧바로 훗카이도로 촬영하러 가야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한 시나리오는 아이돌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수석 정비사 역을 맡았던 배우가 아파서 나올 수 없게 되자 그 자리에는 아키즈키 리츠코가 투입되어야했다. 미우라 아즈사는 원숙한 현장 사령관 역할을 소화해내야 했다. 후타미 아미나 후타미 마미는 그나마 아이돌로 출연했지만 비중이 없었다. 이들과 주인공인 아마미 하루카가 그나마 정상적인 배역이었다.

타카츠키 야요이는 하루카와 동갑에 인형옷 입고 다니는 아이돌로 설정되었다. 철야에 전국을 넘나드는 여행에 더하여 매우 높은 굽의 신발을 신어야 해서 야요이는 촬영이 끝날 때마다 발의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하기와라 유키호는 기면증에 자는 중에는 흉폭해지는 동료로 설정되었다. NG가 많이 나서 삽으로 촬영장에 구멍을 만들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키쿠치 마코토와 미나세 이오리는 아마미 하루카의 동료 파일럿 역할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이오리는 흑발로 설정되어 가발을 쓰고 연기해야 했으며, 마코토도 단발로 잘라야 했다.

하 지만 제일 고생한 것은 키사라기 치햐야였다. 그녀는 시나리오 상으로는 아즈사와 쌍둥이격인 배역이었다. 따라서 키도 더 커보여야 했고 가슴 크기도 똑같아 보여야 했다. 촬영 강행군으로 지친 상태에서 여러 분장은 치하야를 매우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안 그래도 노래 일직선이었던 치하야는 더욱 노래에만 관심갖고 연기나 쇼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어요."

"그랬군요. 그래서..."

P는 회상했다. 무진합체 키사라기를 촬영할 당시, 치하야를 설득하기 위해 P는 치하야가 녹음만 담당하면 된다는 것을 수백번이나 강조해야 했다.

"이 몸 등장! 어 그 CD들은 뭐야?"

사무원 코토리 양의 말과 P의 회상을 끊은 것은 후타미 마미였다. P의 다음 일정은 마미의 스케쥴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마 미는 탁자위에 놓인 CD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CD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표정 변화는 마치 화학반응처럼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CD에 적힌 XENOGLOSSIA를 읽은 마미는 어린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시퍼런 그늘이 졌고, 축 늘어진 마미는 터벅터벅 냉장고로 걸어갔다. 마미의 모습을 본 사무원 코토리 양은 P에게 말했다.

"보셨죠? 이 드라마는 765 프로에 있어 이 정도로 강력한 흑역사에요.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국 드라마는 처참하게 실패했고 자금은 회수하지 못했어요. 이 결과 때문에 사장님은 프로듀싱에 자신감을 잃고 아이돌 업무에 개입하기를 꺼려하시게 되었죠. 여기까지가 이 드라마와 관련된 흑역사의 전말이에요."

덧1

한편, 사무실에 있었던 히비키와 타카네, 미키는

"나는 그 드라마에 나오지도 못했다고."

"히비키. 우리는 그 당시에 여기 없었잖아요."

"아후. 이제 주먹밥은 더 못 먹겠는거야. ZZZ"

덧2

"잠깐만요. 오토나시 양. 그럼 왜 961 프로의 쿠로이 사장은 이 드라마로 트집잡지 않은거죠?"

문득 궁금해진 P는 사무원 코토리 양에게 질문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찍었으니 연기도 어색했겠고 후시녹음때문에 연기력도 의심받았을테니  좋은 트집거리였을텐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쿠로이 사장도 한 때 동료였던 사장님에 대한 마지막 선을 넘지 않은 걸 거에요. 그도 양심상 차마 이 드라마로 공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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