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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린의 일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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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6, 2014 03:08에 작성됨.

 

 2. 시부야 린의 일반론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고 단정 짓고 있었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초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 없어 흘낏 쳐다보고 가는 시선 하나하나도 모두 다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입고 있는 옷도 불안을 만들어내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프로듀서가 된 이후로 영업 같은 이유도 있어서 항상 양복을 입고 있었고 가끔 휴일이 생겨도 집에서 쉬는 편이었기 때문에 보통의 사복을 입어본 게 얼마만인지도 잘 모르겠다. 덕분에 집에 있는 옷 중에 가장 괜찮고 익숙한 옷을 골라 입었는데 이상하지는 않을지 너무 촌스러운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살짝 늦게 나올 걸 그랬나…”

 약속시간은 정오.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11시 57분이었다. 항상 약속시간 10분 전에는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는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기도 했고 괜히 상대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더 일찍 나오다 보니 기다린 지가 30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 여자아이는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린 다는 점은 이미 톡톡히 배웠기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해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어서 와줬으면 한다.

 “프로듀서.”

 “우왓!”

 고개를 반쯤 숙인 채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를 부르자 깜짝 놀라서 순간 의자에서 뛰어오를 뻔 했다.

 “놀랐잖아! 왜 갑자기 뒤에서 오는 거야.”

 “프로듀서가 이상한 자세로 멍하니 있기에 놀래켜주려고 했지.”

 뒤를 돌아보니 역시 린이었다. 다른 사람일 리가 없다. 목소리를 잊어버릴 리도 없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시간에 나를 프로듀서라고 부를 사람이라면 린 밖에 없지.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었으면 정말로 놀라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온 거야.”

 배려심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다. 사람 기다리는 일에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후후, 솔직하지 못하긴.”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기다렸다고 생색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의 사복, 처음 보네.”

 “으, 응? 그, 그런가?”

 하필이면 민감한 부분을 찔러들어 오다니. 설마 정말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패션센스는 일반 사회로부터 배척당할 정도의 유감스러운 수준이 되어버린 건가….

 “왜, 뭔가 이상해?”

 조심스레 물어보자 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색다르다 싶어서. 프로듀서는 항상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 왔으니까. 이렇게 사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아는 오빠처럼 보이네.”

 다행히도 아직 격리 수준은 아닌가. 정말로 괜찮았다면 린의 성격에 괜찮다고 말을 했으려나? 그나저나 아는 오빠라는 미묘한 거리감이 신경 쓰인다. 그 전에 잠시 머뭇거린 것도 그렇고.

 “아는 오빠? 아는 사람들 중에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나중에 대학교라도 간다면 아는 선배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서.”

 으음, 미묘하군.

 “흐음. 린은 오늘도 멋지구나. 어른스럽고 말이야.”

 평소에는 무대 의상이나 교복을 입고 있지만 가끔은 린의 사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보통의 여자아이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채도가 낮아 약간은 어두운 하늘색 셔츠에 회색 베스트, 그리고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거기에 라인이 잘 드러나는 검은색 바지와 굽이 약간 있는 구두에 벨트로 마무리.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는 보이시한 구성이었지만 린이 입으니 쿨한 분위기하고 정말 잘 어울렸다.

 “고, 고마워.”

 평소의 린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린도 옷 때문에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오랑 카렌이 골라 준 건데… 이상하지 않아?”

 “정말로 잘 어울리는데.”

 사복을 입고 있는 린의 모습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건 확실한 시너지 효과다.

 “나오랑 카렌도 참… 원래는 프릴이 잔뜩 달려있는 옷을 골라 줘서 곤란했는데 차라리 그러면 완전히 반대로 이렇게 해보라고 해서.”

 프릴이 잔뜩 달린 옷을 입고 있는 린이라.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다.

 “무대 의상도 비슷하잖아? 괜찮지 않아?”

 “그런 걸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라는 거야?”

 하긴 확실히 그렇다. 드레스 같은 걸 입고서 돌아다니면 중증의 중2병 환자나 아니면 정신이 살짝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겠지.

 “그것도 그렇네.”

 “정말이지, 기회가 왔다고 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옷들을 가져오고 말이야.”

 나중에 나오와 카렌에게 이야기해서 무슨 옷인지 알아보자. 이런 바깥이 아니라면 린도 입어주겠지.

 “자, 그럼 어디로 갈까? 오늘은 린이 가고 싶은 데로 가기로 했으니까.”

 오늘의 예정은 이미 사전에 린이 짜두기로 했다. 이런 걸로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의 경우는 절대 아니다. 린이 오늘은 먼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으니까.

 “그래. 우선 뭘 먹을까… 프로듀서, 아직 밥 안 먹었지?”

 “응. 안 먹었어.”

 약속시간이 점심때라면 당연히 먼저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게 수순이겠지. 먼저 집에서 먹고 온다던가 하는 초보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다.

 “그럼 가자. 여기서 얼마 안 걸리니까.”

 굳이 어디인지 무엇을 먹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건 가게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움으로 하자. 그러는 편이 린도 더 즐거울 테니까.

 

-

 

 “저기, 린.”

 “응?”

 “…이걸로 밥이 될까?”

 린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카페였다. 정확히 말하면 케이크 카페. 단순히 차나 커피를 파는 것 이외에도 수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가게였다. 케이크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점심 대신에 케이크와 커피라니 조금 미묘한 느낌이었다.

 “프로듀서.”

 “응?”

 “여자아이는 단 거라면 뭐든지 괜찮아.”

 이해할 수 있을 듯 없을 듯한 말이었다. 현상으로써의 사실로는 이미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리였다. 마치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걸로 밥이 되겠냐며 호통을 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다지 싫은 건 아니니까. 들어가자.”

 린이 데리고 와준 곳인데 여기까지 와서 흥을 깨는 것도 좋지 않다. 가끔이라면 점심을 케이크로 먹어도 괜찮겠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났다. 가게 안은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전체적으로 약간은 밝은 갈색빛이었고 조그마한 장식품이나 책장과 책들, 그리고 점심시간임에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있었다. 요즘은 정말로 점심으로 케이크를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온 건가.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있는 종업원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뭔가 묘한 느낌인 게 종업원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카나코?”

 “프로듀서?!”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종업원은 같은 사무소의 아이돌인 미무라 카나코였다.

 “카나코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로 오자고 한 건 린이었지만 놀라는 모습을 보니 린도 전혀 몰랐던 사실인 것 같았다.

 “린도 같이 있네? 여기서 취미를 살려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거든.”

 카나코의 취미는 과자 만들기였다. 단순한 과자뿐 아니라 케이크 정도도 손쉽게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거야? 레슨은?”

 아이돌의 사생활까지 간섭할 이유도 권한도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걱정이 되어서 일단은 카나코에게 물어봤다.

 “레슨도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남는 시간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럼 다행이네. 카나코가 만드는 케이크라, 기대되는 걸.”

 “헤헤, 기대해주세요! 프로듀서니까 제가 특별히 카나코 스페셜로 금방 만들어서 가져다 드릴게요!”

 그렇게 주문이라기도 뭐한 카나코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와 린은 안쪽에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내오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든다고 했으니 제법 시간이 걸릴 터였다.

 “…좋았어?”

 갑자기 찌릿 했다. 싸늘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와 찌를 듯한 눈빛이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으, 응?”

 “카나코가 직접 케이크도 만들어 주니까 좋지 않아?”

 이거 위험하다. 물론 좋기야 좋았지만 여기서 좋았다고 얘기했다간…

 “물론 린이랑 같이 이런 데 와서 점심도 같이 먹고 하니까 좋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럼 린도 카나코한테 과자 만드는 거 배워보면 어때? 내가 도와줄 테니까!”

 때때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하얀 거짓말이나 말을 돌리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모든 대화를 진실하고 올곧게 했다가는 분명 모든 게 파탄 날 테니까.

 “말이나 못하면 모르겠어.”

 린도 기분이 조금은 풀린 것인지 목소리도 제법 누그러졌다. 이 이야기는 더 꺼내서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점심 먹고서는 어디로 갈 거야? 따로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어?”

 “비밀.”

 린은 단칼에 잘라냈다. 경험 상 이럴 때는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 어쩔 수 없네….”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한 연기는 아니다. 실제로도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별로 드러낼 필요가 없는 걸 조금 과장시켜서 보여줄 뿐이다.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의외로 크게 작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확실하게 다가오지 않으니 말이다.

 “…알았어. 사실은 프로듀서네 집에 가려고 했는데.”

 “……뭐?”

 진짜 큰일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 오늘은 안 돼. 다른 데 가면 안 될까?”

 “어디든지 괜찮다고 약속한 건 프로듀서잖아? 설마 나와의 약속을 어길 셈이야?”

 린이 세게 나오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매몰차게 거부할 수도 없고. 그런데 진짜 이건 안 된다고! 정리도 전혀 안 되어있고 곤란한 것들도 있고… 이대로 아무런 대책이 없이 린이 집에 오면 정말로 모든 게 끝장이다.

 “그, 그럼 케이크 먹고 나서 조금 이따 올래? 나는 준비를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집에 가는 데 준비가 뭐가 필요해?”

 린의 눈빛은 이미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린을 꺾기는 정말로 힘들었다.

 “이래저래 린한테도 별로 좋지 않은 광경이니까.”

 “아냐. 나는 프로듀서의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어.”

 말하는 것만 놓고 보면 마치 부처의 현신인 마냥 자비로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괜찮지가 않아!”

 “어라, 뭔가 숨기는 거라도 있는 거야?”

 린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숨겨놓은 여자라던가…?”

 “전혀 없어!!”

 내가 당황해서 강하게 부정하자 린은 작게 풉하고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럼 언제 가면 될까?”

 “…응?”

 “생각해보니 입장을 바꿔보니까 이해가 가. 나라고 해도 갑자기 집에 누군가가 온다고 하면 허둥대면서 놀랄 테니까.”

 다행히도 이번에는 린이 순순히 양보를 해주었다. 정말로 다행이다. 소문이 돌아서 이상한 이미지가 붙는 건 곤란했으니까.

 그나저나 허둥대는 린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굉장히 귀여웠다. 작은 보복 겸 해서 다음에는 린의 집에 기습 방문을 해볼까.

 “고마워. 그러면 오후 3시 정도에 어때?”

 “그래. 그럼 나도 준비해서 그때 갈게.”

 “준비?”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을 할 생각인 걸까. 별 일은 아니겠지만…

 “과자나 케이크는 무리지만 저녁을 해줄까 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장 봐서 갈게.”

 “저녁…이라고?”

 이 얼마나 참한 아이인건지! 집에 찾아와서 밥을 해준다니 상상만 해도 헤벌쭉 하고 표정이 풀어질 것 같다. 물론 실제로 표정이 풀어져버리면 속마음을 들키니까 어디까지나 평정을 유지해야했다.

 “주문하신 카나코 스페셜 나왔습니다!”

 그 때 카나코가 케이크와 커피를 가져왔다. 화이트 초콜릿과 다크 초콜릿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케이크였다. 딱 봐도 보통의 작품이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주문을 한 적은 없는데.”

 린이 장난스레 말하자 카나코는 커다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특별히 서비스야! 자신작이기도 하고!”

 카나코가 보증한 것이니 맛도 굉장할 것이라는건 의심할 필요도 없겠지. 린이 먼저 한 입을 먹었고 금새 표정이 밝게 변했다.

 “정말 맛있네. 고마워, 카나코. 신세를 지게 되었네.”

 “아냐아냐,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 프로듀서도 어서 드셔보세요.”

 카나코의 권유에 포크로 케이크를 살짝 잘라서 먹었다.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카나코, 그냥 아이돌 말고 파티시에를 해도 되겠는데?”

 “에헤헤, 그래도 아이돌이 더 즐거운 걸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린과 나의 칭찬에 부끄러운지 카나코는 멋쩍게 웃고선 도망가버렸다.

 역시 휴일에는 집에서 혼자 쉬는 것도 좋지만 여자친구와 함께 카페같은 데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을 수도 있고 훨씬 나은 것 같다. 앞으로의 휴일도 기대가 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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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평범평범. 중간에 흠칫흠칫하는 부분도 어디까지나 매우 정상적인 여자의 질투일 뿐인걸요.

 쓰게 된 계기는... 이런 꿈을 꿨습니다. 정말로요. 그 때였다면 계속 잠들어있어도 좋았을 텐데...!

[이 게시물은 BlueT님에 의해 2014-09-28 02:40:02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3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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