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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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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8, 2018 17:02에 작성됨.

치하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 - 상 - 과 이어집니다


"앗, 치하야 씨! 안녕하세요!"

"어서와 치하야."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무소에 출근한 내게, 먼저 있었던 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응."


언제나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마 다음에 또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또 인사해주겠지. 안녕하세요. 어서와. 좋은 아침. 이런 식으로 말이야. 다들 좋은 사람들이네. 나와는 다르게.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일단은 같은 사무소에 소속되어있고, 괜히 충돌하거나했다간 서로가 불편해질테니까. 그러니까 싫은 걸 꾹 참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참 능숙한 웃음들인 걸. 그게 언제까지 통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보이는 호의를 기어코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버리면서 잰걸음으로 슥 지나쳤다. 그리고는 항상 하던 대로 짐을 풀고, 소파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넣어둔 MP3 플레이어를 꺼내 돌돌 말린 이어폰을 풀어 끝부분을 잭에 꽃아 연결하고, 둥그런 부분 한 쌍을 마저 귀에 밀어넣었다.


저 사람들이 정말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내가 생각한 것처럼 될 게 분명했다. 거절받기만 하는 호의라는 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고 지속된다면, 하나둘씩 마음을 접어버리겠지.


그러면 된 거야. 그 편이 서로에게 좋아. 저들은 괜히 날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나도 괜히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다같이 활동해야하는 때라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같이해야겠지만, 그 정도는 일이라는 느낌으로 어떻게든 견딜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쓸데없는 것에 정신을 쏟을 여유 같은 건 없어. 음악이나 듣자. 나는 마지막으로 음원 재생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치하야 언니는 언제나 칼바람 쌩쌩이라니깐."

"근데말야.....오늘은 좀 더 그런 느낌이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때. 그 잠깐의 사이를 비집고 말소리가 몇 개 들려와,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그런 느낌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평소대로일 뿐인데. 저도 모르게 그 쪽으로 향하게 되려는 시선을, 대신 벽에 걸린 시계로 돌렸다. 저런 것에 일일히 신경 쓰기보다는 앞으로 주어진 일정을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았기에.


그렇게 해서 확인한 시간은, 아직 레슨실로 향하기에는 좀 이른 때. 그렇긴 해도, 먼저 자주 연습을 하러간다는 핑계로 일찍 자리를 뜨는 게 좋을까. 이러고 있으면 서로에게 불편할 뿐이니까.


그렇게 판단한 나는 결국 모양새만 내버린 이어폰을 양 귀에서 빼고는 플레이어와 함께 정리해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들이 알아채는 것보다도 먼저 놓아둔 짐을 챙기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덜컥!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려오는 문소리에, 나는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은 눈치였다.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사무소에, 일시에 찾아온 정적. 그 뒤 끼이익하고 질질 발을 끌면서 걸어들어오는 것만 같은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작게 열린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 하아....."

"늦었잖아, 하루카~"

"에헤헷, 미안미안. 어제는 조금 늦잠을 자버려서....."


여기까지 좀 뛰어오기라도 한 걸까. 조금 뻗쳐있는 갈색 단발머리에 특유의 리본 한 쌍도 덩달아 흐트러져있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인상을 가졌다는 것은 변함없는 소녀. 그 소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두들. 소녀, 하루카는 그런 모두를 거절하는 일 없이 받아주고 특유의 환한 미소로 응해준다.


나와는 다르게.


"그래도 늦지는 않았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뭐어 그렇네."

"푸하, 다행이다.....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정말 큰일나는 줄 알았다니까."

"니히힛, 다음부터는 조심하는 게 좋겠지만 말이지."

"그러고보니 하루카 쨩은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안되는 구나."

"그렇다니까아.....5분만 늦게 나와도 차는 금방 가버리고, 그러면 또 기다리는 시간에.....역시, 이참에 엄마한테 자취하게 해달라고 졸라야겠어."

"이 녀석,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혼자 산다고 해서 편한 줄 안다면 큰 코 다친다고."

"맞아맞아. 하루카라면 분명 깨워줄 사람도 없어서 대지각할 걸?"

"아, 아하하.....그럴 까나~?"


짐을 챙기던 도중이었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하루카를 주시했다. 모두에게 둘러싸인 채, 뒷통수를 긁적이면서 헤헤 웃고 있는 하루카.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마음이 놓인다. 제 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내 안에 자리잡는다. 그래, 맞아. 하루카가 있어야할 곳은 저 곳이야.


내 곁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니 평탄해졌다고 생각한 마음 한 쪽이 조금 들썩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맞는 말일텐데. 어째서일까.....흐트러진 마음이, 신경질적으로 가방끈을 잡아당기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원래라면 소리 없이 빠져나갔어야할 것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앗, 치하야 쨩!"


모른 척 지나갔으면 하는 상대가 기어코 이 쪽을 알아봐준다. 시선을 마주하고, 이름을 불러준다. 모두의 곁에 있으면서도. 굳이, 나를. 어째서? 영문을 몰랐지만, 그래도 하루카를 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 아, 안녕!"

"....."


조금 더듬거리는 인삿말과 함께, 하루카의 다소 어설픈 웃음이 내 쪽을 향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모두에게 보이는 것과 같이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웃음이었다. 마치,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하지만, 그 점이 도리어 무서워졌다.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싫지만, 대하기 껄끄럽지만. 그래도 동료니까, 챙겨주지 않으면. 모두하고는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적을 만들면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누구에게도 원망받는 일 없이 좋게 좋게 가고 싶으니까.


분명,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닐까하고.


"치하야 쨩?"


계속해서 부르는 소리에도 나는 끝까지 말을 내지 않았다. 대신 의구심이라는 나이프를 손에 들어, 힘껏 휘둘렀다.


"있지. 그러고 있으면 방해되니까, 비켜주지 않겠어?"


한없이 비틀리고, 삐죽삐죽한 칼날이 잘 꾸며낸 듯한 웃음을 거칠게 잡아뜯어버리고는, 그 안에 들어있던 무방비한 마음을 푹 찔렀다.


"에.....?"


순간 하루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도, 곧 조금 물기어린 눈을 이 쪽에게 향했다. 이상하게도 거기서는 원망 같은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야. 예측과는 한참 벗어난 결과에 나는 신경질이 났다. 분명 나왔어야할 결과를 하루카가 끝까지 감추고, 튀어나오지 않도록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만둬. 더 이상 그런 억지 같은 걸 부리지 말아줘. 의미없는 일이야.


너만 괴로워질 뿐이라고!


"못 들었니? 비켜달라니까."

"치하야 쨩, 그, 저기....."

"시덥잖은 이야기에 쓸 시간은 없어. 저리 가."


이미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는 상처를, 몇 번이고 들쑤셨다. 하루카가 끝까지 내보였던 호의를 보라는 듯이 난도질하고 잘게 조각조각 해체해버렸다. 아예 말을 멈춰버린 하루카. 뭐라뭐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를 대신하겠다는 듯 웅웅하고 주변을 울렸다.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분명 이런 나를 비난하는 것들일 게 틀림없었다. 됐어. 어디 마음대로 해보는 게 어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익숙한 걸. 이런 건. 나는 되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챙겨온 가방을 둘러매었다. 예상대로의 흐름이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뭐, 뭐야, 너. 말이 심하잖아!"


주변에 깔린 뭉툭한 소리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툭 튀어나와 내 귀를 아프게 때렸다. 나는 느릿한 동작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보다는 조금 키가 작은, 입만 조용히 다물고 있었다면 곱상하게 보였을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아, 미나세 씨네. 한참 늦은 박자로 기억을 떠올린 나는 이 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대하기 쉬웠다. 역시, 내게는 이런 것이 어울려.


"무슨 불만이라도?"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어제만 하더라도 이렇지는 않았잖아. 하루카가 불쌍하지도 않아!?"

"글쎄, 미나세 씨가 참견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너어, 진짜!"

"그만해!"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았던 미나세 씨를, 리츠코가 가로막았다. 쓸데없는 짓을. 싸움을 걸어온다면, 충분히 받아줄 의향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박살낼 수 있었다고. 검게 변질되어버린 마음 한 구석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싸워봤자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는 어디까지 남들을 상처입혀야 만족할 셈이니?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위선이 생겨나 악한 마음을 제지하려 들었다. 이제와서 착한 척 하는 거야? 애처로울 정도네. 그런다고 해서 비난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리고 그 위에는 그 위선을 비웃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


복잡해. 머리 아파. 괴로워.


평정 같은 건 진작부터 잃어버리고 만 마음 안에서는, 온갖 생각이 폭주에 폭주를 거듭한다. 어떻게 된 거야. 리츠코가 미나세 씨를 계속 제지하며 소리없이 입모양만으로 내게 물어왔지만 거기에 답할 이유도 필요도 여유도 무엇도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이봐, 치하야. 진정해. 하루카하고 무슨 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이러면....."

"맞아. 좀 더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자고.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멀리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던 소리들이 저마다의 형태를 갖추고, 나를 자극해왔다. 시끄러워. 나는 그 짧은 한 마디만을 겨우 내뱉고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전부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건, 싫어. 싫으니까.....그만해. 나는 그 소리들에게서 고개를 홱 돌렸다.


"치하야 쨩!"


그리고는 이 쪽을 향해 뻗어오는, 조금 떨려오는 손마저 거칠게 쳐냈다. 아마, 아즈사 씨, 였을까. 알 게 뭐야. 지금은 싫어. 다 싫어. 오지마. 말 걸지마. 내 앞에서 사라져. 아니, 내가 사라지겠어. 그 편이 더 간단한 것 같으니까! 나는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이들을 거칠게 밀어버리고는 사무소를 뛰쳐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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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는 애니마스 이전, 아직 프로듀서가 오기 전이라는 느낌으로?(세세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초반 치쨩의 불안불안하고 히스테리컬한 느낌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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