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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가 하나, 떨어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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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6, 2017 15:19에 작성됨.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폭력적인 묘사가 좀 존재합니다. 주의해주세요.

 

어느날부터인가, 톱니바퀴가 빠져버렸다. 작은 톱니바퀴가.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뒤틀려버렸다. 그 톱니바퀴는 작았지만, 무척이나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ㅡ당신이라는 사람은!
ㅡ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야!

 

언제부터였을까. 이 집이 이렇게나 날카롭고 폭력적인 소리로 가득차버린 게. 며칠 전? 몇 달 전? 몇 년 전? 모르겠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이랬으니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고 만걸까?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버릇처럼 헤드셋을 쓴 나는 역시 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디오셋의 재생버튼을 누르고는, 침대의 가장 구석에 웅크려 앉아 등을 벽에 기대었다. 이따금 벽을 타고 오는 공기의 진동이 불쾌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서, 방금 떠올렸던 것에 다시 주의를 기울였다.

 

어째서 이렇게 되고 만 걸까.....

 

굳이 그 이유를 떠올릴 필요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그 쪽으로 의식을 돌려보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장과 벽을 타고 퍼져오는 이 소리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듣고 있는 음악 cd의 볼륨을 높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멍하니 눈을 감고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잿빛 폐허를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어둡고 깊은 늪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 학교, 집. 가끔은 그 사이에 공원이 추가되거나 하지만, 그래도 거의 같은 곳을 로테이션 할 뿐. 하는 행동도 기상, 통학, 수업, 트레이닝, 취침. 이정도뿐일까.

 

정말이지, 좋은 일이라고 할만한 건 하나도 없다니. 스스로도 그만 헛웃음이 나와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저 아래, 끊이질 않는 노성에게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라면. 나는 한숨을 쉬면서 지난 날을 쭉 돌이켜보았다. 그런지 얼마나 지났을까.

 

ㅡ누나, 노래 불러줘!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아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노래를 해달라고 졸랐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었다. 아니, 언제나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립다고 하면 그리운, 그런 목소리. 맞아, 그 애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그 애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실은 납득- 이라고 할 게 아니라, 당연한 이유라고 해야하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 애는 내 동생이었고, 여전히 말다툼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자식이었을 테니까.

 

잃어버렸다.

 

없어져버렸다.

 

더는 만날 수 없다.

 

죽었다.

 

어느 누구도 나쁘지 않은데도.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었다. 슬프고, 괴롭고, 화가 나서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만 서로에게 폭언을 해버리고 손을 올리고 하는 것들이 조금은 이해는 간다. 그게 나를, 모두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그와 동시에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버린다.

 

그 애가 없어져버린 것만으로도, 이 세계는 이렇게나 망가져버리는 걸까. 딱 없어져버린 만큼이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게. 그만큼 그 애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무척이나 소중한 존재, 였다.....?

 

아니야.

 

소중하긴 했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야. 만약 정말로 그런 존재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애가 죽은 즉시 어떻게든 그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는 게 사라진 세상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다. 아득바득 서로를 탓하고 욕하며 살아있다.

 

죽는 게 무서워서 살아있는 거라면, 하다못해 그 애가 볼 때 부끄럽지는 않게 살아야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누가 잘못했느니를 가지고 싸운다. 나라고 해서, 떳떳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소동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

 

어쩌면 우리 가족이라는 건, 처음부터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래성 같은 것에 불과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갑자기-

 

ㅡ망할 여편네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만 똑바로 정신차리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ㅡ제발 그만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언제까지 나만을 탓할 거야!? 나도 괴롭단 말이야!
ㅡ닥쳐!

 

돌연 고함소리와 함께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네. 아버지, 뭔가 또 집어던진 걸까. 나중에 치우는 게 힘들겠는데.....풋, 뭐야, 나. 어머니가 다칠 걱정보다도 먼저 그런 걸 생각해버린 자신이 우스워져, 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이상해, 나.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지만 나도 참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스스로도 일그러져버렸다는 걸, 아주 잘 알겠어. 후훗, 이상해, 이상하다니까. 그 애가 없어져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었다는게.

 

솔직히, 모르겠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 걸. 정말로 그 애는 죽은 걸까. 어쩌면 살아있는 게 아닐까. 장례식 같은 건 다 가짜였는지도 몰라. 왜냐면 그 때 나, 눈물 같은 게 하나도 나지 않았는 걸. 멍하고, 멍해서. 모든 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러니까 그 애는, 내 동생은 어디선가 버젓이 살아있을지도. 그치만 돌아오지 않는 걸지도 몰라. 우리가 이렇게 사는 꼴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뭐야, 정말. 바보 같아. 전혀 이치에 맞질 않잖아. 너도 망가져버렸구나. 응, 그런가봐. 진작부터 그랬나봐. 나는 미친 사람과도 같이 킥킥 웃음을 흘리며,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아무렇게나 집어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오디오셋의 정지버튼을 거칠게 누르고는, 한참 전부터 틀고 있었던 클래식 음악cd를 빼서 도로 케이스에 집어넣어버렸다.

 

저렇게 와장창,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이상, 어떻게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나는 차라리, 벽에다 귀를 대었다. 기분 나쁜 소리의 진동이,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내 안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ㅡ그만해! 신고할거야!
ㅡ어디 마음대로 해봐! 그런다고 해서 니가 한 짓이 지워질 것 같아!?
ㅡ당신! 제발 그만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치하야, 치하야만이라도 이젠 제대로.....

 

이제와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나는 그만 크게 웃어버릴 뻔한 걸, 겨우 참고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이미 떨어져나가버린 톱니바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뒤틀려버린 관계는, 이젠 돌이킬 수 없어. 모두 틀렸어. 잘못되었어. 당신들도, 나도. 이제와서 이 망가진 세계를 고치려고 해봤자 의미없어. 아니, 아니지. 애초에 당신들은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조금이라도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고 싶으니까, 그러는 척 할 뿐이야.

 

나를 내세워서,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라는 걸 뽐내고 싶을 뿐이라고!

 

틀렸어!?

 

휘몰아치는 생각과 함께, 열이 확 올라왔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두 사람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그 마음을 억제했다. 가뜩이나 여기저기 깨지고 소리치고 난장판이 일어나고 있는데, 거기에 끼어들어봤자 의미없는 기력낭비에 뷸과할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저 둘이 무슨 짓을 하든, 이쪽에게는 이쪽만의 일과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것이 비록, 아무 빛도 나질 않는 망가진 톱니바퀴와 같은 일상이라 하더라도.

 

저렇게 시끄러워서야 잠은 절대로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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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치하야 커뮤에서 치하야가 자기 가족에 대해 톱니바퀴가 빠져버려 어긋나버렸다, 라고 빗댄 것에서 착안해 간만에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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