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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리(雨ニモマケズ 風ニモマケズ この道を進んで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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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1, 2018 00:56에 작성됨.

꽃이 진 자리에 따가운 햇살이 스며들어

탐스럽게 영근 녹색의 배가 익어가는, 

이 고장의 8월은 축제의 계절

 

거리마다 흥겨운 음두(音頭) 가락에

물결치는 색색의 종이 우산(和傘)의 파도

 

거대한 모래 언덕을 넘어 피어 오르는 적란운을 따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海風)에 펼쳐진 돛처럼 부푸는 마음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는 바다가 보이는 방 안

시라기쿠 호타루는 유카타(浴衣)를 곱게 차려입은 채로    

거을을 들여다본다.

 

온 마을을 달구는 축제의 열기가  한창

여기 저기서 불꽃으로 피어나는 밤거리로 나서기 전,

몇달 전 갓 스무살이 된 풋풋한 소녀는두근 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서

 

화장이 땀에 번지지는 않았는지

오비(帶)가 너무 꽉 조이지는 않는지 

카미카자리(髪飾り/비녀)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유카타 안의 속옷이 너무 비치지는 않는지 등을 세심하게  다시 살펴본다.

 

'그 사람'과 함께  고향에 오게 된 것은 무척 오랜만이어서

호타루는 사소한 것에도 왠지 모르게 초조해진다.

 

파도 소리에 실려, 한낮에 부모님 곁에서 함께 정담을 나누었던

'그 사람'의 예의 바르고 차분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지금부터 앞으로 본사와의 모든 계약의 결정권을

호타루에게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우리 딸을...잘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시라기쿠씨의 재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속사와의 차기 계약의 결정권자와 관련한 서류가 오간다.

여태껏 미성년자인자라 서면 계약들은 일괄 부모님의 동의를 거쳐 이루어졌지만,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프로듀서와의 관계는 온전히 호타루가 스스로 모든 것을 정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거울 앞에 선 소녀는 문득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야.'

 

시계를 살펴본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결심한 듯 신발 상자에 고이 보관해둔 조리(草履)를 들고 방을 나선다. 

 

"프로듀서씨....저...혹시 다음 주 연차 때   제 고향(鳥取/돗토리)의 축제에...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매년 온 마을 분들이 힘을 합쳐 준비하는 행사인데,

부모님께서....올해는 프로듀서씨도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며칠 전, 시라기쿠 호타루는 일생 일대의 용기를 내어보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 전한 말에

 

"호오....돗토리 마츠리가 8월이었구나.

잠시만....그때는....어디보자...스케줄도....좀 조정하면 괜찮을 거 같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힘 좀 써보면 이번주 안으로는 대강 마무리 될테니.....좋아.

 

마침 하반기 계약 시 결정권자 변경 건과 관련해서 시라기쿠씨네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조만간 주코쿠(中国)로 가보려던 참이었는데,

그럼 사양말고.....시라기쿠씨에게 안내를 부탁해볼까?"

 

각종 '(가제)3분기  행사 계획서'들의 틈에서

나름 '쿨 비즈'한 스타일의 복장을 차려입고 부채를 부치는

'그 사람'은 마침 반가운 소리라는 듯이 활짝 웃었지.

 

손바람에 풍경처럼 흩날리는 에어콘에 붙은 '수리중(修理中)' 포스트잇을 보니

7월 말, 마천루의 수해(樹海) 도쿄는 예년보다 더 후텁지근하게 느껴진다. 

 

프로듀서씨의 방을 나서며

승낙에 대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밀려드는 기대감에

소녀의 새하얀 목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

 

행운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때면 으레 그렇듯이

호타루는 무의식적으로 기도했다.

'신님,  부디 저의 운명이 이번 일만큼은 방해하지 못하게, 도와주세요.'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튿날,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TV를 지켜보던 호타루는 태풍 예보를 마주하고 말았다.

창밖에 가득한 짙은 구름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든다.

 

"아아........어쩌면 좋지.....어쩌면........"

 

'...네, 다음은 날씨입니다. 현재 남지나해(南支那海/남중국해) 상에서 발생한

제 17호 태풍이 현재 강한 바람과 비를 동반한 채로 혼슈(本州)쪽으로  북상 중인 가운데....

앞으로 수 일 동안 주코쿠(中国), 관서 및 관동 일대에 날이 흐리거나  비가 찾아 올 것으로.... '     

 

모처럼의 여름 축제가 엉망이 될 위기다.

야외 촬영을 나설때마다 우산을 가지고 나서면 날이 개고,

우산을 잊고 나서면 폭우가 쏟아지던 나날들......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 중인 걸까.

 

덕분에 준비한 촬영이 며칠씩 연기되거나 일정이 틀어지는 등

크고 작은 불편들에 스태프들 전부가 발이 묶인 일도 허다했었지...

 

"......비를 맞는 건 나혼자면 족해. 프로듀서씨에겐...

 괜한 말로 폐를 끼쳐 죄송하다 말씀드려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구름의 흐름이 일기도 상에 나타난다.

TV 영상이 비쳐진 호타루의 눈동자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붉어진 두 눈도 모자라 어느새 코를 훌쩍이게 된다.  

 

"이것도....나의 불행 때문일까....."

 

"실례합니다. 시라기쿠씨? 시라기쿠씨 여기 있나요?"

 

"아...네? 네엣!" 

 

'그 사람'의 목소리에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돌아본 그곳엔

실에 꿰인 새하얀 헝겊들을 한아름 들고 있는 프로듀서가 있다.

 

"저....저기 프로듀서씨...그건...."

"짜잔! 직접 만든 테루테루보즈(照る照る坊主/맑음이 인형)라고!"

"아..그런데 어째서 그렇게나 많이..."

"응, 그게...일기 예보가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말이지.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가 없어서...." 

 

붉어진 눈가를 연신 비비며 눈물 자국을 지우려는 호타루를 보고

피식 웃음 짓던 '그 사람'은 먹구름 낀 창 앞에

줄줄이 꿰인 테루테루보즈들을 걸었다.

 

하얗고 동글 동글한 인형들이

마침내 고쳐진 에어컨의 미풍에 하늘하늘 춤춘다.

 

"아.....귀여워."

 

"담당 아이돌이 신경써서 준비한 여름 축제인데, 태풍 따위에 방해받을 수 없지.

  주제 넘게 날뛰는 풍신(風神)과 뇌신(雷神)은 모두 이 녀석들이 쫓아줄거야."

 

"저.....이 아이들....그렇게나 강해요?"

"그럼, 이만큼 만들었으니까. 작지만 강력하지!"

 

과장된 몸짓으로 자랑스런 표정을 짓는 통에 호타루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창문에 줄줄이 곶감처럼 늘어뜨린 테루테루보즈들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지만 호타루가 우울해하거나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프로듀서는 늘 그런식으로 다독여주었다.

 

'당신의  그런 점이...정말....'

 

"아, 그런데 뭔가 부족한게....응! 시라기쿠씨.

혹시 괜찮다면 이 녀석들 얼굴 같이 그려줄 수 있을까?"

 

"네? 제가요? 저...전 그림은 그다지 자신이..."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이 녀석들 얼굴은 대충 그릴 수록 효험이 있건든.

나도 자화상은 헤노헤노모헤지(へのへのもへじ)수준이니까! 분명 효험이 있을거야"

 

"그...그치만 제가 그렸다가 오히려....비가 와버리면...!"

 

"그럼 그만큼 시라기쿠씨가 그림 실력이 좋다는 거야!'

 

프로듀서가 벌써 펜을 들어 얼굴을 슥슥 그리는 모습에

잠시 망설이던 호타루도 펜을 들고 다가섰다.

 

맑음을 바라는 염원이 정성스레 그려진 인형이 늘어갈 수록

흐린 하늘 저편으로 머나먼 바다를 건너 찾아온

무심한 비구름들이 빌딩들을 굽어보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주렁 주렁 목을 매단 인형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일기예보가 그다지 믿을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기세 좋던 태풍은 혼슈에 상륙조차 해보지 못하고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소멸해버렸다.

돗토리의 자택에 도착한 이후로도 단지 몇 차례의 소나기만 지나갔을 뿐,

축제 당일은 여느때와 같이 맑고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형형 색색의 축제의 거리를 지나

불밝힌 바다의 집(海の家)들을 지나 백사장을 걷는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잠긴다. 노을이 짙어간다.

여름 한낮의 열기를 간직한 사구에도 그늘이 진다.

해풍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더위를 잠시 잊어본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은 프로듀서와 호타루는

어제 보았던 화려한 축제의 광경을 떠올린다.

 

"굉장한 군무(群舞)였어. 정말이지 깜짝 놀랐는걸.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서 연출한 무대도 감동적이었고.

초대해준 시라기쿠씨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

 

"즐겨주셨다니...감사해요. 프로듀서씨...

 그런데 낮에 보셨던 그 우산춤(傘踊り)은 원래...

 비를 부르는 의식이랍니다."

 

"엣, 뭐야 그럼...정말로 비가 왔다면 오히려 축제가 효험이 있었던거네."

 

"듣고보니....그렇네요. 그럴줄 알고 혹시나 해서 그때 저도 우산을 가져갔었는데....어라?"

 

호타루는 문득 자신이 '우산을 가져오면 반드시 날씨가 맑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어리둥절해졌다. 불행이.....오히려 행운이 되었어?

 

"응? 왜 그래?"

 

"아...아뇨. 그게...좀 예상 밖이라...."

 

"분명 시라기쿠씨의 염원이....닿은거겠지. 아마."

 

"그....그런걸까요?"

 

"그럼, 테루테루보즈를 그만큼이나 만들었는데....제 아무리 태풍이라도 배길 수 없지."

 

(안그래도 많았지만) 호타루와 프로듀서가 매단 테루테루보즈들을 본 동료 아이돌들이

재미삼아 너도 나도 걸어두는 바람에  사무실 창문마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엄청난 양의 테루테루보즈들을 생각하니 호타루는 과연하고 납득했다. 

 

"......분명히 치히로씨가 '장식하는 것도 좋지만, 나중에 정리도 반드시 하셔야해요오-'라고 말씀하셨었죠."

 

"아, 아하하하.... 까먹고 있었네...돌아가면 반드시 정리하도록하자."

 

"후후.....네, 그래요. 프로듀서."

 

후끈한 한여름의 열기가 해가 저물어도 몸과 마음을 덥힌다.

부모님의 믿음과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아

앞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직접 결정하게 된 오늘.

 

호타루의 결심은 남다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저도 모르게 발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을 박명(薄明) 속에 감추고

호타루는 살며시 프로듀서에게 기대어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터질것 같지만 애써 침착하게 눈을 감는다.

 

"....."

 

코발트빛으로 완전히 해가 삼켜진 수평선을 응시하는 프로듀서는

그런 호타루에게 말 없이 어깨를 내주었다. 

 

파도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에워싸고

여름밤의 열기에 실려 달콤한 향기가 피어난다.

부드럽게 실린 체중에 얇은 유카타 사이로 더운 체온이 느껴진다.

 

언제까지고 계속될것 같은 이 순간은 

프로듀서의 "꼬르륵" 하는 배곯는 소리와 끝이 났다.

 

"아.....아차, 그러고보니 저희 아직 저녁 식사 안 먹었네요."

 

"아...아하하....그...그렇네. 이것 참. 그럼...모처럼 주코쿠(中国)에 왔으니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라도 먹으러 갈까?"

 

"아! 그거라면...제가 맛있는 집, 알고있어요. 분명 프로듀서씨도 마음에 드실거에요."

 

"호오, 역시....주코쿠(中国)에 가면 주코쿠을 따라야겠지." 

 

해변의 야시장이 불을 밝힌 길을 따라

그 어떤 불운이나 불행도....함께 바꿔 나갈 수 있는 두 손을 서로 맞잡고서

두 사람은 이제 막 시작된 축제의 밤 속으로 빠져들었다.

 

* 이 글은 졸자가 자유판에 게시한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리

   (雨ニモマケズ 風ニモマケズ この道を進んでいく)'의 텍스트 본입니다.

* 원본은 공식 이미지 합성을 게시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자유판에 쓰게되었습니다.

* 원본 링크 :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6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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