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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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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9, 2018 04:42에 작성됨.

내리는 비에 큰 의미는 두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의미를 두게 된다면 현재 자신의 정신 상태가 크게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니까. 딱히 강한 척을 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아마 자신은 그렇게 하는 걸로서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살짝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피부에 달라 붙어서는 축축한 느낌을 그대로 전하는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하도 뛴 탓에 거칠게 올라오는 숨과 고통을 넘어 얼얼한 느낌조차 받고 있는 발은 그런 가벼운 생각조차도 지우고 있었다. 너무 뛴 탓일까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는 느낌도 들었다. 머리 또한 어질어질했다. 정체는 현기증이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동시에 기침이 나왔다. 꽤나 격렬한 기침이었다. 동시에 눈물도 조금씩 모습을 보이며 빗물과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이 아팠지만, 눈가가 조금씩 따가워지고 있었지만 어쩐지 기침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현기증 또한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무릎 사이로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현기증이 잘 가시질 않는다. 물론 아까 전에 비하면 낫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들다. 억지로 입을 다물고서 기침을 참아 보지만 결국 입술 틈새로 비집고 나와서는 그대로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한 줄기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마음 속에 쑤셔 넣었던 부정적인 말도 함께 흘렀다. 역시 너는 너무나도 글러먹었구나. 나는 그 말에 답했다. 응, 알고 있어.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시야가 밝게 돌아오면서 현기증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기침도 어느새 하지 않게 되었다. 몸이 조금 편해져, 고개를 들고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하늘이었다. 뿌옇게 노란 불빛이 보이지만 아마 눈물 맺힌 눈으로 보인 가로등이겠지. 하지만 늦은 시간은 아닌데도 그 외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깊은 골목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몸에 힘을 넣어 일어섰다. 힘이 덜 들어갔는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한 손으로 잡고서 완전히 몸을 일으키니 추위가 한꺼번에 몰아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랬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자신은 내일 감기에 걸리겠지. 그런 멍청한 생각을 중얼거리면서 목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직 기침의 흔적이 남아 있는 탓에 조금 아프다. 감기에 갈라진 목소리까지 당첨인 것 같다. 씁쓸하게 목에서 손을 떼고서 그대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나는 정말로 모두에게 폐만 끼치는구나. 그리고 또 한 방울, 눈물이 손바닥에 닿았다.


머리카락도 젖고, 옷도 젖고,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과 지갑도 겉면이 젖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있었다. 한심했다.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뭉개면서 그대로 울었다. 속으로 한심한 자신을 수도 없이 책망하면서.


“강해질 수 없어요…”


어쩐지 그런 말이 툭 나왔다. 누구에게 향한 말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알 바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는 프로듀서에게일까? 아니면 동경하고 있는 시죠 씨? 아니면 같은 목표를 가지고서 같은 곳에 있는 동료들? 아니면…


누구보다도 날 한심하게 여기고서 결단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 나에게?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니 뺨이 뭔가에 두들겨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두 손을 내리고서 눈을 뜨니 비가 아까보다 더 거세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서 비틀비틀하며 가게인 듯한 건물 쪽으로 걸었다. 벽에 몸을 기대니 비가 몸에 거의 닿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고개를 올리니 천막이 작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하얀 숨을 무겁게 내렸다.


“추워…”


스멀스멀, 견디지 못하고서 말이 흘러 나왔다. 떨리는 몸을 스스로 껴안고서 다시 주저앉았다. 체온을 비에게 뺏기고 있는 탓일까 몸을 움츠려도 되려 더 추워지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발 끝이 어쩐지 얼얼해서 젖은 신발 속에서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핸드폰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향했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에 핸드폰은 쓸 수 없다는 처참한 사실을 깨닫고 만다. 어쩐지 자괴감이 더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이상으로 또 올라올 것이 있는 것인가. 스스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그런 곳에서 있으면 감기 걸릴 거라구?”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목소리의 주인을 봤다. 한 손에는 밝은 색의 큰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에는 뭔가가 들어간 봉지 두 개를 들고서, 어깨에는 눈에 익은 햄스터를 올린 그 사람은 같은 동료인 히비키였다.


뭔가를 말해야 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대로 목구멍이 답답하게 막혀버린다. 동시에 슬슬 가라앉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 아픔이 떠올랐다. 눈가가 열기를 띄우는 것을 보면 울고 있는 거겠지. 또 우는구나, 너는. 아니 나는.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히비키를 봤다. 히비키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시원하게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한가하면 짐 좀 들어주면 안 될까?”




***


“이야, 본인, 정말로 놀랐다구”

“미안해, 히비키”


두 봉지 중 비교적 가벼운 것을 건내 받고서(나는 물론 무거운 쪽을 들려고 했지만 한사코 사양 당했다.) 히비키가 씌워준 우산에 기대면서 히비키의 등 뒤에서 걷고 있으니 히비키가 고개를 돌리고서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놀랐다고 히비키는 말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비에 쫄딱 맞아서는 죽어가는 사람마냥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그야 자신이라도 놀랄 것이다. 그렇게에 나는 사과를 했다. 히비키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지만.


“아, 그러고 보니까 유키호, 내일은 일이 없던가?”

“응, 휴일이야. …강제로 받은 휴일이지만”


난 쓴웃음을 지었다. 히비키의 얼굴은 말을 잘못했다고 자각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히 히비키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내가 이러는 것도, 내일 일이 없는 것도 모두 내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하지만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히비키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고민을 하는 듯, 목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그럼 유키호, 오늘은 본인의 집에서 자고 가라!”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잠시 이해가 따라가지 못하고서 나는 멍하니 발걸음을 멈췄다. 그 탓에 우산이 나를 빠져나가, 비를 몇 방울 맞기는 했지만 놀라서 허둥지둥 내게 와 다시 우산을 씌워주는 히비키 덕분에 그렇게 젖지는 않았다. 아니 이미 넘칠 정도로 젖기는 했지만.


히비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문득 한 마리의 개를 떠올렸다. 히비키가 키우는 세인트 버나드 종인 개. 이름은 ‘이누미’. 자그마한 개조차 덜덜 떨면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데 그 덩치가 큰 이누미와 같은 공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숨을 삼키고 있으니 히비키는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입을 열었다.


“유키호의 개 공포증을 낫게 하기 위해! …라는 뜻으로 말하고 싶지만, 실은 이누미는 지금 병원에 있어”

“이누미가 병원에?”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히비키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히비키가 키우는 동물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히비키 본인에게 수도 없이 들었기에 이누미가 병원에 있다는 말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어쩌다가 병원에 있게 된 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으니 히비키가 다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요즘 방송에 본인하고 같이 엄청 나오기도 했으니까. 피로랑 스트레스의 영향이 몸에도 갔다는 모양이야”


이누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히비키는 비닐 봉지를 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내용물이 흔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섞여서 빗속에 묻혔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입을 열 뿐이었다.


“이누미,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네…”

“응, 본인도 동감이라구…”

“그러니까! 유키호, 본인의 집에 하룻밤 묵어라!”

“응, 알았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시원하게 긍정의 답이 나왔다. 히비키는 내 대답에 기뻐하면서 내 팔을 잡고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 때문에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 넘기며 나는 얼떨떨한 채 그 속도에 맞춰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희미하게 히비키의 “유키호는 헤비카… 뱀은 괜찮다고 했었지?” 라는 말이 들린 듯한, 그런 느낌이 귓가에 살포시 앉고 있었다.






“도착! 얘들아! 유키호가 놀러 와줬다구!”


문을 열고 들어가고서 가장 처음 들린 히비키의 말에 가장이 없는 사이에 집을 보던 수많은 동물들이 일제히 우르르 문을 향해 달려 나왔다. 이야기는 들었고, 방송에서도 특정 몇 마리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이건 또 생소하고도 드문 광경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아, 유키호. 짐은 본인에게 줘. 그리고 빨리 옷 벗고서 씻고 오고! 그러다가 감기 걸린다?”


움츠러든 몸을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신발과 젖은 양말을 벗고서 집 안에 발을 내딛은 나는 히비키의 말에 따랐다.


하지만 히비키… 나, 감기는 이미 걸리지 않았나 싶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고서, 씻고서, 나와서 히비키가 준비해준 옷을 입고 나오니 히비키는 부엌에서 봉지에 있던 물건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슬쩍 보기만 해도 다양한 종류의 사료로 보이는 물건들, 다양한 통조림, 여주, 그 외에도 꽤 있어서 봉투 두 개에 저것들이 잘도 들어갔구나 싶다.


그렇게 탁자 위의 물건들을 진지하게 보고 있던 히비키는 고개를 들고서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유키호, 잘 어울린다구!”


엄지까지 척 들고서 칭찬하는 히비키에게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표한다. 나는 히비키에게 다가가면서 짐에 대해서 물었다. 원래는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따뜻한 물 탓에 몸이 따뜻해지면서 마음에 수증기가 차오른 듯싶었다. 스스로로도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가족들의 밥하고 본인의 밥인데, 내일은 뭘 해서 줄까, 뭘 해서 먹을까~ 싶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탁자 위에 있는 것들 중 하나를 쓰다듬었다. 통조림이었지만 표지를 보면 파인애플일까. 그런 나를 보던 히비키는 한 손을 의자 등받이에 올리고서 진지하게 물었다.


“유키호는 어째서 그렇게 비에 쫄딱 맞고 있었어?”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동시에 목 안 쪽이 또 따끔거렸다.






“아까 전에 강제로 휴일을 받았다고 했었지?”

“응…”

“그거랑 관련된 이야기야”


히비키에게 서서 말하는 건 불편하지 않냐는 말과 함께 거실로 안내 되어 소파에 앉은 나는 문득 눈에 띈 펭귄이 그려진 쿠션을 껴안고서 그대로 고개를 묻은 채 입을 열었다. 그 옆에 앉아서 몸을 돌려 나를 보는 히비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쿠션을 껴안은 손에 힘을 넣고서 말을 계속했다.


“실수를 했어. 정확하게 어떤 실수를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 탓에 감독님이 굳었어. 그리고 프로듀서는 감독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셨어. 감독님께는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만 말씀하시고서는 날 전혀 보지 않으셨어.”


나는 차오르는 자괴감 탓에 막히는 목을 억지로 열고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니까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 아마 들어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나왔더니 가슴이 답답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까…, 응…”

“즉 자괴감이 쌓이고 쌓여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응…”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고해성사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반성문을 써서 선생님께 제출하는 느낌이던가. 어느 쪽이든 편한 마음은 결코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할 수 있는 것도, 시원한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별 차이는 없지 않나 싶지만.


“그러다가 히비키와 만나고, 집에 묵게 되면서, 혼자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했어. 감독님이 그때 하셨던 말씀을”

“무슨 말을 했었는데?”

“ ‘네가 인정 받고 싶은 사람은 대체 누구냐’. “


히비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한다. 그야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조금씩 생각나더라고. 난 프로듀서랑 아버지, 그리고 동료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는 걸”


무겁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려 앉고 있었다. 히비키는 기지개를 펴다가 멈춰진 그런 어색한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굳이 건드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비에 맞으면서,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했어”

“? 뭘?”


내 말에 응해주는 히비키를 보며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상냥하구나, 히비키는.


“나는 내게 인정 받고 싶었던 거야.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서 결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나에게”

“유키호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유키호…?”

“응, 글러먹은 하기와라 유키호를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하기와라 유키호”


쿠션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서 한 손으로 쿠션을 쓰다듬었다. 세탁한지 얼마 안 된 걸까. 촉감이 기분 좋았다. 실제 펭귄도 쓰다듬으면 부드러울까. 그런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 금방 치워버리기는 했지만.


히비키를 보니 어딘가 골똘하게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다가 흔들고. 계속 지켜보고 싶어질 정도로 격렬한 변화였다. 물론 그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히비키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말을 건냈으니까.


“그렇다면 유키호가 그렇게 자신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건지 알 것 같다구. 하지만 말이야”


뭔가 알 것 같다, 히비키는 그렇게 운을 떼면서 눈을 감고서 천천히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인다. 그 시간에 조용한 거실 너머, 어떤 방에서 무언가가 뒤척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게 어떤 동물인지 생각하는 사이에 히비키의 입술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의식을 다시 옮기고 있었다.


히비키는 나를 빤히 보면서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 감독이 화를 냈던 건 그때 유키호가 그렇게 부정적인 말로 자신을 감싸면서 기껏 세운 목표를 흐지부지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고, 굳이 유키호에게 내일 안 와도 된다고 말했던 건, 자신이 인정시키고 싶은 존재가 누구인지 고민하고서, 확실하게 파악하라는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같은 느낌? 그래도 말이지, 본인은…”


히비키가 허리를 펴고서 나를 올곧은 눈으로 본다. 눈동자가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보석을 보는 느낌을 내고 있었다. 어쩐지… 눈부시다. 나는 숨을 삼키고서 쿠션을 무릎에 앉히며 다음에 올 히비키의 말을 기다렸다. 말은 어쩐지 생각보다 늦게 나왔지만.


“유키호는 누군가, 아니 모두와 함께 있으면서 영향을 받고서 성장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도 든다구. 누구에게 인정 받고 싶은지 알았으니까 목표도 세울 수 있을 거 아냐?”


말이 끝났다. 의문형으로 끝난 덕분에 나는 멍한 정신을 깨울 수 밖에 없었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히비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히비키는 진지한 얼굴을 풀면서 말했다.


“유키호는 혼자보다는 모두랑 함께 있는 쪽이 어울리기도 하고 말이야. 아, 물론 본인은 완벽하니까 혼자여도 상관은 없지만!”


콧대를 세우면서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 부근을 두들기는 히비키가 어쩐지 우스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 탓에 히비키가 볼울 빵빵하게 부풀리면서 내게 투덜거렸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사과를 하면서 히비키를 달래지만 어쩌면 달래진 건 내 쪽일지도 몰랐다. 어쩐지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시원해졌으니까.


히비키의 드디어 웃었다는 말이 들렸다. 어쩐지 알 수 없는 미안함이 생겨서 사과를 하지만 히비키는 웃는 모습이 훨씬 좋으니까 상관 없다는 말을 돌려줬다. 서로 웃고 있으니 히비키가 뭔가 떠올린 듯 소리를 올리면서 그대로 말을 했다.


“참고로 본인이 했던 말은 프로듀서가 했던 말이기도 한다구?”

“프로듀서?”

“뭐, 본인은 지나가다가 프로듀서랑 리츠코가 대화하는 걸 조금 들었을 뿐이지만 프로듀서가 그렇게 말했어. 전반이지만. 아, 본인의 의견은 후반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부분부터야~”

“프로듀서가…”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건 프로듀서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 히비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서 본 지금 떠올리니 그 모습은 내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믿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건방진 생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나, 이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폐를 끼치기만 하네… 감독님에게도, 프로듀서에게도, 히비키에게도…”

“폐라니 그런 섭섭한 말은 말라구. 모두 유키호를 믿고 있으니까”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그 직후에 히비키에게서 반격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씻고 나오고서 시간이 꽤 지나, 몸도 많이 식었을 것인데 몸이 뜨거웠다. 아마 얼굴도 엄청 빨갛게 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무릎 위에 뒀던 쿠션을 들고서 그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근처에서 히비키의 웃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나 밑도 끝도 없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쿠션에 얼굴을 더 깊게 파묻었다. 그런 내 등을 시원하게 두들기면서 히비키가 괜찮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정신이 아니라 히비키가 두들기고 있는 내 등 쪽이 어쩐지 아파오고 있어서 나는 허리를 들고 말았다. 강하게 든 탓일까, 고인 눈물이 공중에 담겼다가 그대로 뚝 떨어져 깨지는 것이 문득 보이고 있었다.


아프다고 울먹이면서 내가 말하고, 히비키가 웃으면서 사과를 하는 사이에 조용히 헤비카가 오고 있었다. 헤비카는 밤에 잘 자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을 히비키에게 전달하고 있으니, 헤비카가 내 다리를 감싸고서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혀를 날름거리면서 동그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헤비카가 어쩐지 귀여운 탓에 정신을 차리니 나는 헤비카를 내 팔로 옮기고 있었다. 그 탓에 작은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아, 귀여워.


“그럼 유키호는 헤비카랑 같이 자는 거지?”

응… 응…?”

“헤비카, 유키호랑 같이 푹 자는 거다? 알았지?”


손가락 두 개를 펴 헤비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을 건내는 히비키와 그런 히비키의 말에 대답을 하듯이 작고 느긋하게 소리를 내는 헤비카를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히비키도… 같이… 자지 않을래…?”

“으음~ 뭐 상관은 없지만…”


내 제안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히비키가 가볍게 소리를 내면서 고민을 하다가(아니 어쩌면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의외로 가볍게 승낙을 한다. 이건… 예상을 못했는데… 아니, 어쩌면 히비키라면 오케이라고 말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잘 모를 확신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 빨리 들어가서 자자. 유키호도 혼나고, 비 쫄딱 맞고 해서 피곤하잖아? 자, 자, 본인의 방으로 가자! 본인도 좀 피곤하다구!”


히비키의 두 손에 등이 밀리면서 나는 히비키의 방으로 간다. 팔에 감긴 헤비카의 체온(분명 내 체온이겠지만)과 등에 느껴지는 히비키의 자그마한 온기에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어쩐지 가끔씩 목에서 느껴지던 따끔함도 사라진 듯한 기분이다. 그런 나는 히비키를 보면서 순순히 히비키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일어났을 때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그런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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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고프다...

졸려서 상식 까먹었기에 일부 수정. 졸리다... 커피 괜히 마셨음. 전혀 못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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