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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위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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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8, 2019 13:13에 작성됨.

오전 여덟 시 반의 지하철.
나는 한 번도 타지 못했던 시간대의 지하철이지만, 출근하기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다.
그 수많은 사람의 가운데에서, 역 안에서 홀로 멍하니 앉아 사람들을 쳐다보는 나.
저 사람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워하는 사람들과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들이 뒤섞여있겠지.
그래, 미치루의 말을 빌리면 어떤 반죽이 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뒤섞여 존재할 거다.
자신이 어떤 빵이 될지 알 수 없이, 그저 제빵사의 손으로 반죽이 되어 오븐에 넣어질 운명의 사람들.


나는 여덟 시 반에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출근을 아예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그것보다 훨씬 일찍 지하철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야 프로덕션에 나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밀려있는 사무를 하려면 그 방법 말고는 답이 없었으니까.
보통은 새벽 여섯 시,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새벽 일찍 오는 첫차를 이용해 프로덕션으로 향했다.
그 시간대에는 이렇게 붐비지도 않고, 이렇게 정신없이 몰려드는 사람의 흐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오직 피로에 찌든 사람 몇 명과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한 사람 몇 명이 있을 뿐.
그중에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보통은 전자였다고 생각한다.
술은 잘 먹지도 않고, 그런 사치를 부리기엔 나의 몸이 버틸 수가 없기도 했으니까.
그저 평범한 밀가루일 뿐인 나에겐,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은 사치였으니까.


프로덕션으로 출근하면, 어떻게 되어있는 회사인지 나보다도 먼저 출근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무원 씨가 있다.
저 미소는 피곤하지도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이 회사는 어떻게 되어 먹은 회사인지 내 책상 아래에서 자는 아이돌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언제 출근해서 여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레슨실로 가면, 부지런하게도 아침 일찍부터 나와 연습하고 있는 아이돌들이 있다.
그녀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리고 아침 빵과 함께 들어오는 아이돌 한 명을 기다리며 사무를 한다.
그녀를 기다리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녀가 내 담당 아이돌이고, 언제나 아침을 거르는 나를 위해서 빵이 수북이 담긴 봉투에서 몇 조각의 요깃거리를 주었기 때문이겠지.


「안녕하세요, 치히로 씨! 그리고 프로듀서 씨도 좋은 아침이예요!」


그녀가 나타나는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진 않다.

다만 그녀가 나타날 때는 항상 후각을 자극하는 빵들이 가득 품에 담겨있었다.
빵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먹으면 살찌지 않을까.
언젠가 둘만 있을 때 그렇게 물어보니, 그녀는 태양과도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선선하게 답했다.


「아하하, 저는 살찌지 않는 체질이라서요-!」


살찌지 않는 체질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조금 부럽다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지금 나는 옆구리나 복부 쪽에 지방이 쌓여서 몸이 무거워졌는걸.
뭐, 이건 내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내 쪽에서 잘못한 것이지만 말이야.


「아, 프로듀서 씨는 오늘 아침도 거르셨겠네요! 자, 그런 프로듀서 씨를 위해서 빵을 좀 나누어드릴게요! 조금 많이 사버렸거든요!」


그리고 아침의 그녀가 건네는 따뜻한 빵 덩이들.
메론빵, 커스타드, 그리고 잘 모르는 빵들.
그래도 그녀가 내미는 빵들은 모두 맛있으니까 이름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프로듀서 씨, 미치루 쨩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정도는 하셔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미치루에게 받은 빵을 먹고 있는 나에게 옆에서 살짝 핀잔을 주는 치히로 씨.
그야 그렇겠지, 다 큰 어른이 이제 막 아이돌이 된 아이에게 빵을 아무렇지 않게 얻어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핀잔은 그녀 나름의 농담 같은 거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사무를 시작한다.
가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빵을 먹는 미치루를 보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가끔의 휴식은 필요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의 미치루는 엄청 귀여우니까 말이야.


오전 사무를 마치면 늘 미치루와 함께 점심으로 먹을 것을 찾으러 근처의 대형마트로 향했다.
좋은 가게에서 고급 요리를 먹을 수는 없으니, 그게 안 된다면 대형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빵으로도 미치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으니까.
눈을 반짝이며 마트 안을 돌아다니던 미치루의 작은 품 안에는 어느새 엄청난 양의 빵이 구겨지듯이 넣어져 있어서, 언제나 나는 눈물을 머금고 큰 지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추억이지.
지금은 이렇게 지하철역의 벤치에서 우두커니 앉아, 미치루에 대한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미치루는, 업계 용어로 하면 잘 팔리지 않는 아이돌이었다.
양지의 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지의 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의 잘 팔리지 않는 아이돌.

음지의 일이 들어와도 내 선에서 막아내기는 했지만, 가끔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런 일도 잡았어야 했느냐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치루의 미소를 보고 있자면, 이 아이에게 그런 일은 줄 수가 없었다.
이런 아이에게 그런 일을 맡긴다는 건 어른이 할 일이 아니야.


「오늘도 일이 없네요....」


빵을 우물거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미치루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나니까 그다지 좋은 말은 해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 이렇게 혼자 앉아서 멍하니 지하철역이나 보고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사람의 밀물이 빠져나간 역은 조금 한산해졌다.
밀물이 다 빠져나간 공간은 이렇게도 넓고 차갑다.
따스한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곳에, 나는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걸까.


미치루의 인기가 없어서였을까, 나에겐 회사원이라면 늘 맞이하는 정리해고 사유서가 날아들었다.
어째서 나에게 그 사유서가 발급된 걸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나가 막차를 타는 일을 반복했었는데, 어째서였을까.
미치루가 잘 팔리지 않는 아이돌이어서였을까, 그 때 그녀에게 그 일을 시켜주었다면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위잉위잉.


어디선가에서 날아들어온 날파리 하나가 내 코앞에 앉아 간질인다.
내 입가 어딘가에 묻어있을지도 모르는 빵 냄새에 이끌려 온 것일까.
조금 심심했던 나는 그 똥파리를 치울 생각도, 보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둔다.
뭘 그리 잘못했는지 나에게 싹싹 빌다가 떠나가는 똥파리.


텅 빈역에는 나 홀로 앉아 멍하니 역 안을 쳐다보고 있다.
지금 저 지하철을 타면 프로덕션으로 가 미치루를 만날 수 있을까.
입고 있는 양복은 프로듀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산 것.
오늘 집으로 들어갈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이제 막 오전 열 시가 되어버린 지하철역 안에서, 나는 홀로 앉아 돌아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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