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매거진

  3. 자유

  4. 게임

  5. 그림

  6. 미디어

  7. 이벤트

  8. 성우



사기사와 후미후미 上

댓글: 0 / 조회: 666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5-04, 2018 13:47에 작성됨.

사기사와 후미후미, 상편





오래된 서점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냄새가난다. 내가 평소에 특별히 후각이 예민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흔히 말하는 책의 냄새인 종이 냄새 뿐만이 아니라, 서점이 존재한 역사, 역사만큼 조금 해진 건물, 그와 같이 늙어간 책장, 그리고 주인 개인의 취향이 함께 녹아들어 그런 향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래된 서점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책을 꺼내어 표지와 첫문장을 살피긴 하지만, 주 목적은 그 냄새와 분위기에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한번 마음에든 서점에 자주 들리기 시작하면 이 탐방은 주인에게 조금 미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는 것은 하나도 없는 이상한 단골 손님이 되는 것이다. 어느 한 번은 맘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가 “오늘도 왔네,” 하고 인사를 건넸다가, 책에 대한 이야기 따위를 꺼내지 못해 어색해진 적이 있다. 책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데다 산 책조차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 이후로 서점 탐방을 할 땐 읽지도 않을 책을 간간히 사게 되었다. 물론 전부 제각각의 내용이다. 어떨 때는 과학, 어떨 때는 경제, 그리고 기타 등등. 논픽션도 고른다. 그 주인 할아버지는 단순히 내가 책의 재미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셨는지 갈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곤 하셨다. 이사를 간 뒤로 할아버지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방 안에 쌓여있는, 한 페이지도 못 넘긴 새 책들을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사를 온 곳은 꽤나 도쿄에서도 꽤나 도심지라 아주 오래된 서점은 드물다. 물론 없지는 않다. 구글맵에도 표시되지 않는 작고 낡은 서점을 찾은 적도 있다. 그 땐 난생 처음 학교를 빼먹었을 때의 배 이상의 희열을 느꼈다. 다만 아주 작고 멀어서 자주 찾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서점 탐방이 조금 시시해졌을 때쯤, 나는 그 할아버지의 서점만큼이나 마음에 쏙 드는 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번갈아 카운터를 보는 것 같은 이 서점은, 과거의 정취가 듬뿍 느껴지는 장식들과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책장들로 가득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방 하나에 조그만 열린 문으로 연결되는 자그마한 방이 있는데, 꼭 비밀의 방 같은 느낌이라 통로를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도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만약 독서를 즐겼다면 아주 좋아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두번의 방문만에 정갈한 나무바닥과 서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이후로도 엄청나게 들락거렸다. 방학 중은 무척 바빠 가지 못했지만 바쁜 나날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 서점으로 뛰어들어갔다. 딸랑, 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고 기억 속 그대로의 냄새가 코끝에 간질거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오늘은 어떤 책이든 책을 사자고 마음을 먹고, 나는 탐방을 시작했다.


우선 신간 코너를 지나 중고 문고만을 모아둔 책장 앞에 선다. 조금 더 짙은 종이의 향기를 감상하고, 책 몇개를 훑어본다. 아, 이걸로 정했다. 표지가 괜찮은 소설 하나를 집어들고 다시 걸었다. 산책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이곳 저곳을 쏘다니다가, 나의 비밀의 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단순한 연결 통로 치고 조금 길다 싶은 연결 통로다. 그런데, 이렇게 길었었나…? 방문하지 않은지가 꽤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바닥이 좀 더 진한 색 같기도, 벽의 꽃이 다른 색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냄새도 조금 다르다. 계절에 냄새를 붙이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꼭 가을 같은 냄새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걸어갈 때의 단풍 냄새. 조금 쓸쓸한 밤, 바람의 냄새. 이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걸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뒤에 얼굴을 찌푸린 사람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연결 통로가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힘들겠지. 얼른 사과를 하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사과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창피해서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한건 뒤를 돌아봤을 때였다. 그 사람은 연결 통로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책장 앞에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럼 아까 그 표정은 뭐였을까, 모르겠다.


어찌됐건 나의 비밀의 방을 혼자 즐길 수 있는 건 다행이었다. 나는 잔뜩 들떠서 통로를 지나고, 비밀의 방 안에 들어왔다. 좋은 냄새가 나서 공기를 크게 한숨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후우- 하아…” 그런데 아무도 없어야할 방에 사람이있었는지 인기척이 느껴졌다. 길을 막고 서있던데다가,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큰 호흡을 하다니… 여러모로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했구나. 헛기침을 한번 해서 미안함을 표현하고, 최대한 얌전한 태도로 책을 구경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작은 방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도 아닐텐데. 인기척을 느낀건 착각이었나보다.


혹시, 다른 비밀의 방이 있나…? 저번에는 찾을 수 없었는데?


그 생각까지 미친 나는 벽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로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던 나무 바닥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림자도 있었다. 고개를 들자, 검은 머리카락만 가득…


“저기-“


“히익-! 귀, 귀신!”


“저, 저기… 그게… 아니라…요….”


“네?”


아, 눈동자… 눈동자가 보였다. 푸른 색의 눈동자가.


다행이다, 귀신이 아니었구나…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하자. 이걸로 오늘의 부끄러운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구나. “그런데, 왜 저를…?”


“아….”


여자는 쭈뼛쭈뼛하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네…”

“오래된 책방의, 요정… 이에요.”

“네?”


이 여자, 제정신인가?


“………책방을 진정으로 즐기는 이에게, 나타나는, 요정….”


순간 움찔했다. 책을 진정으로 즐기는 이가 아니라, 책방을 즐기는 이라니… 보통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 책…… 가져가시면 안 돼요.”

“아….”


왜죠, 라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역시 말도 안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이 여자가 책방의 요정이라고 믿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자에게선 오래된 서점의 냄새가 났다. 아까 맡았던 진한 가을의 냄새는 이 여자에게서 풍기는 향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서 이런 냄새를 맡아본 적은 없다. 서점의 주인들도 각자의 냄새가 있었다.


게다가, 여자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완전히 가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고, 또 피부는 핏줄이 보일만큼 하얀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혼혈같지는 않았다. 그저 비현실적이었다. 입고 있는 옷마저 먼지가 쌓인 것 같이 오래되어보이는 옷이었다. 목소리로 추측하건대 대학생쯤 되어보이는데, 이런 숄에 저런 감의 옷이라니…. 오래된 책방의 요정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점점 머리가 이상해져가는 것 같다.


어느새 나는 그 이상한 생각에 납득을 하고 있었다.


---

아 이게 한번에 올렸더니 짤리네요.... 생각보다 길었던 모양입니다;

[글] 사기사와 후미후미 下로 이어집니다!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