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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토막글 아홉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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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0, 2018 15:50에 작성됨.

1) 유성처럼 다가와

 

 멀리서 전학 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내게 눈길을 주었으나,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씩 다가올 것이다. 예쁘게 생겼다며 서두를 떼고, 말이 안 통하는 것을 알면 떠나가겠지. 조금 외롭지만, 원망할 생각은 없다. 세상 어디를 가도 나는 이방인이었으니까. 그들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우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왔다. 별 좋아해? 내가 읽던 책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당황한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해요. 그 아이가 활짝 웃었다. 나도 정말 좋아해! 우리 닮았네? 마치 유성처럼 다가와 내 곁에서 반짝였다.

 

 

2) 앞서나간다는 것

 

 혼자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 함께한 동료들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불안을 잊기 위해 더 빨리 달렸다. 달리고 있을 땐 앞만 보면 되니까. 이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나아갔다. 남들은 나를 쿨하다고 했지만, 단지 멈추기 싫었을 뿐이다. 멈춰 섰을 때 나밖에 없는 것이, 외면해온 것들과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힘이 들고 숨이 찼다. 떨면서 뒤를 돌아본 순간, 달려오는 동료를 발견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따라 잡겠다고, 지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기다려 달라고. 기다릴게. 나는 다시 달려 나갔다. 앞서나간다는 건 뒤에 있는 누군가를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 밤새 전화를 붙잡고

 

 너무 웃은 나머지 오늘도 얼굴이 아팠다. 혼자 있을 땐 잘 웃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볼을 아리게 했다. 어떤 괴로운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한다는 건 아이돌의 가장 힘든 점이었다. 거울을 보고 있으니 미소와 함께 내가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 때였다. 괜찮아? 잘 안 됐다며. 오늘 오디션에 대한 이야기였다. 괜찮다고 답하자 기운찬 응원이 돌아왔다. 걱정 하지 마! 분명 다음에는 붙을 거야! 또 볼이 아려왔다. 이 아이도 오늘 다른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나를 걱정한다. 자기보다 나를 위로한다. 그것이 너무 기뻐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못해줘서 오늘 밤은 웃을 수가 없었다.

 

 

4) 항상 웃는 여자

 

 가끔, 요새는 자주 그녀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때마다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 녀가 싫은 건 아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남들이 싫은 것이다. 닮았다고 해봤자 머리 모양이 조금 비슷한 정도인데. 그녀와 나는 눈매도 성격도 행동도 여러모로 다르다. 나는 꽤나 진중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반대로 그녀는 열정적이다. 가끔 소란스러울 정도로 활발하고, 잘 웃는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익명 뒤에 숨은 불특정 다수의 폭력에 그녀는 괴로워했다. 당황스러웠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5) 함께 할 수 없어서

 

회사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여전히 친근한 태도에 나는 도리어 어색해졌다. 그 후로 그 친구를 피해 다닌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같이 아이돌을 시작하기 전부터 우린 알고 지낸 사이니까. 그냥 내 자신이 초라해서 그렇다. 시작은 같았는데 너무 멀어졌으니까. 출근길에도 못 만난 지 오래 됐다. 어쩌면 나를 잊었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했는데 너무 반갑게 대해주어 당황했다. 그래서 더 스스로가 초라했다. 사실 알고 있다. 친구가 힘들다는 것을. 높은 곳에 있는 만큼 더 물어 뜯긴다는 것을.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곁에 있어주지 못 하는 내가 그저 미울 뿐이다.

 

 

6) 선율의 아름다움

 

 레슨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왜 여기서 우냐 물으니 방음이 잘 돼서라고 한다. 현명한 생각이지만 너무 많이 울은 건 아닌가 싶다. 예쁜 얼굴 다 망가지잖아.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 시선이 너무 무서워요, 다들 응원하는 척 하며 나를 욕하고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로선 공감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는 따뜻한 말 같은 건 못해, 대신 원하는 곡이 있으면 얘기해.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는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해질녘 빛이 새어드는 시간, 우리는 선율에 잠겨들었다.

 

 

7)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아이가 나를 동경하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내가 그 아이의 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서다. 회사의 결정이라지만 그래서는 안 됐는데, 거절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양심에 눌려 애꿎은 그 아이를, 원망 한 번 않는 그 아이를 거북하게 만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응원하는 팬이자 목표로 삼아준 후배니까. 동생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그래서 힘든 일을 겪은 걸 알고는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대기실에서 떨고 있던 그 아이를 무대 뒤로 데려갔다. 모두가 널 좋아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하나는 알아둬.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사이리움의 바다를 보여줬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어.

 

 

8) 편의점 앞에서

 

 술이 다 떨어져 사러 나갔다가 직장 동료와 마주쳤다. 한 손에 병맥주 가득한 봉투를 든 채로. 몰랐는데 집이 근처였나 보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도망쳤다. 부끄러웠다. 아이돌이 술이라니. 심지어 그런 설정을 하고 있으면서. 이젠 다 끝난 거야, 경멸당하겠지. 그런데 회사에 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회사도, 프로듀서, 그 아이도 평소처럼 지나갔다. 며칠 후에 또 편의점 앞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왜 말 안 했나요? 쭈뼛이 물었다. 실망하지 않으셨나요? 그 아이가 답했다. 모두의 꿈과 희망을 망칠 수는 없잖아. 우린 각각 음료수와 맥주를 샀다. 프라이드치킨으로 건배를 나눴다.

 

 

9) 퇴근길

 

 그 친구와는 자주 같이 퇴근했다. 집 가는 방향도 같고 말도 잘 통해서 1시간 정도는 금방 갔다. 휴일에는 따로 만나서 쇼핑도 하고 놀았는데, 요새는 못 만난 지 오래 됐다. 잠시 활동을 쉬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알기에 걱정이 됐다. 집에 찾아가볼까 싶었지만 괜한 참견일 것 같았다. 한 달 쯤 후 퇴근길에서 다시 만났다. 표정이 좋아 보여 안심이 됐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냐고 묻자 걱정해준 것 다 들었다고 한다. 속으로만 그랬지 해준 것도 없는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놓치지 않고 그 친구가 놀려댔다.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친구의 웃는 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았다.

 

 

 

 

 

 

 

 

 

 

미오로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써보았습니다.

원래 열 두 개 정도 쓰려했는데 별로인 것 세 개를 지웠습니다. 숫자가 좀 애매해졌네요.

 

아홉 개 이야기에 각각 미오와 다른 아이돌 하나 씩이 나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미오에 대한 시선을 다뤄보았습니다.

몇 가지는 나중에 분향을 좀 늘려서 써보고 싶기도 하네요.

 

각 이야기의 화자가 누구인지 맞춰보시는 것도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모든 정답을 맞추시는 분께는 따로 해드릴 건 없고, 원하시는 단편 소설 하나 써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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