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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운수 좋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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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7, 2018 15:02에 작성됨.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운수 좋은 날(현진건, 1924)의 패러디임을 먼저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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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 날이야말로 프로듀서 노릇을 하는 이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음반매장 사장을 만나 사인회 개최를 약속받기도 했고, 방송국 근처를 어정어정하며 돌아다니던 PD를 만나 라디오 게스트 자리를 하나 따냈다. 첫 번에 삼만 엔, 둘째 번에 오만 엔, 아침 댓바람에 건지기에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프로듀서는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컬컬한 목에 맥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무명인 아이돌에게 일거리도 갖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담당돌은 일없어서 놀고먹은지가 벌써 달포가 넘었다. 레슨조차도 거르기 일쑤였으니 구태여 시키려면 못시킬 바는 아니었으나 구슬리기 위해 주는 사탕마저도 프로듀서는 아까워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프로듀서가 일자리를 구하다가 저녁때 연습실을 찾아도 반듯이 누워가지고 일어나기는 커녕 누운채로 인사를 건네는 꼴이었다. 그 때 프로듀서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뭐하는 거야, 인지도를 쌓기전에 일단 실력부터 올려놔야지! 실력을 올리는 길은 연습뿐이라고!"
"안즈는 아이돌 같은건 귀찮아서 안할거니까. 것보다 사탕 없어? 사탕?"


같은 무심한 대답 뿐이었다. 프로듀서의 눈가가 뜨끈뜨끈해졌다. 하지만 인제는 일거리를 갖다줄 수 있다. 안즈를 잘나가는 다른 아이돌 못지 않은 무대에 세울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에 프로듀서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뒤에서 “어이 프로듀서!”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방송국 PD인 줄 프로듀서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PD는 다짜고짜로,


 “내일 토토키라 학원 게스트 촬영 가능한가."


라고 물었다. 아마도 내일 TV쇼 출연 게스트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빵꾸가 난걸 알게 되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 프로듀서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라.


"토토키라 학원 게스트 말씀입니까."


하고 프로듀서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많은 일정에 스케쥴 처리하기가 귀찮았던 것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안즈의 전언이 생각나 마음이 켕기었다.


"오늘은 나가지 말고 안즈랑 놀자. 안즈는 일거리도 없어서 오늘부로 사무소 때려칠거니까."
“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너가 사무소 때려치면 나는 뭘 먹고 사냐.”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안즈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진짜 때려친대도 그래, 올때 메론 사탕이라도 사온다면 고민 좀 해보고.”

 

했던 소리가 프로듀서의 귀에 맴돌았다.


“그래서 촬영할거요?”
하고 PD는 초조한 듯이 말했다.


"십오만엔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프로듀서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일회 촬영에 십오만엔은 너무 과한데."
"아닙니다. 비록 한 번 출연이긴 하지만 방송으로는 2주가 나가고 만약에 나가서 인기가 좋으면 고정 게스트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빙글빙글 웃는 프로듀서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스케쥴 비워두세요."


 계약을 성사시키고 나선 프로듀서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다른 PD 오기를 기다리면 또 TV쇼나 라디오의 게스트 섭외가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을 더 방송국 앞을 서성이며 영업을 하다 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다. 때마침 길가에 그가 알고지내는 덕후샵 사장을 보았다.


“ 여보게 프로듀서쿤, 자네 일하다오는 모양일세그려. 표정 보니 돈 많이 번 것 같으니 덕력 채우고 가게.”


덕후샵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쌓여있는 각종 라노베와 만화책, 신상딱지 붙은 피규어,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덕력 쏟아지는 음악들까지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굿즈들을 모조리 구매해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일단 시마무라 우즈키의 음반 두 장과 사사키 치에의 피규어를 하나 구매하였다. 배고팠던 덕심은 굿즈 뽕을 보더니 더욱더욱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블루레이 2권과 만화책 1세트를 구매해버렸다. 오랜만에 맛본 굿즈 뽕에 취해 프로듀서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사장은 의아한듯이 프로듀서를 보며


"여보게 또 산다니, 벌써 자네가 쓴 돈이 팔만엔일세."
"아따  덕후한테 팔만엔이 돈인가요. 오늘 내가 돈을 막벌었다구요.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는데. 괜찮구만요. 괜찮아요."
"어, 이 사람 맛이 갔군. 그만 사게. 내가 오늘은 사은품도 잘 얹어줄테니 이제 가게."

 

기어이 십만엔을 다 채워서 음반과 블루레이를 더 담고 나왔다.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밤이 다되었다. 프로듀서는 사무소에 다다랐다. 사무소라 해도 물론 허름한 건물의 이층을 세들어 지내는 곳이다. 만일 프로듀서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이 다리가 떨렸으리라. 연습실에서 당연히 들릴법한 음악 소리도 들을 수 없다. 혹은 프로듀서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안즈,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어?"


라고 말했다. 이 외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정말 프로듀서가 오기전에 안즈가 사무소를 때려친게 아닐까. 이미 센카와씨는 퇴근한 것 같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하여간 프로듀서는 연습실 문을 왈칵 열었다. 항상 안즈가 누워있던 연습실 가운데에는 안즈가 종종 껴안고 자던 분홍색 토끼 인형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안즈~ 안즈~ 일거리 구해왔어. 일거리 잔뜩 구해왔어. 어딨어?"
빈 연습실에 프로듀서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안즈, 정말 때려치기라도 한거야?,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때려쳤나 버이."


프로듀서의 말끝에는 목이 메였다.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아무 말 못하는 인형의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프로듀서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인형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울부짖었다.


"너 일하는 줄 알고 선입금 받은 돈으로 굿즈 왕창 샀는데 때려치면 어떡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먹고싶다던 메론 사탕도 박스채로 샀는데.... 먹지도 못하고....."
" 아 진짜? 메론 사탕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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