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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와 목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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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9, 2017 11:13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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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기 치하야: 노래가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노래만 잘 부르는 건 아닌 아이돌]

 

일이 끝나고 합숙소에 돌아오니 신발 하나가 샤워실의 현관에 놓여 있었다. 단순히 신발 하나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샤워실에 들어갔을 테지만, 그 신발이 명백히 키사라기 치하야의 물건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한 번도 샤워실에서 그 신발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합숙소의 같은 방을 쓰지만 매번 나보다 일찍 일어나 버리고 매번 나보다 늦게 방에 들어오니 연습할 때 말고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사람이 키사라기 치하야였다. 그래서 나는 그저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샤워실인데도 이상하게 주저하고 있었다. 왠지 엄청나게 큰 민폐일 것 같고 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저 들어가면 되겠지. 신발을 벗고 탈의실에 접어들었다. 탈의실의 한 바구니에는 파란색 트레이닝복이 가지런히 개어져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탈의실 너머의 욕탕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거겠지.

 

옷을 개어서 치하야의 옆 바구니에 넣은 다음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이어 김으로 가득 찬 욕탕이 나타났다. 아즈사 씨는 여기 오는 게 하루의 마무리를 하는 느낌이라 좋아한다고 했나. 넓은 온탕과 멋들어진 샤워시설은 합숙소의 많은 장점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역시나 온탕에는, 푸른빛이 도는 긴 머리를 위로 틀어묶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에헴."

"?!"

 

그러자 치하야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덩달아 나까지 놀라버렸다.

 

"왜, 왜 그래?

"아니, 그, 보통 이 시간에 아마미 씨가 오시진 않으니까요."

"아하하, 그런가. 오늘은 유례 없이 레슨이 일찍 끝나서..."

"그렇군요."

 

그리고 할 말이 떨어진 둘 사이엔 침묵이 감돌았다. 아니. 아니지. 아마미 하루카, 모두와 사이좋아지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옆에 앉아도 돼?"

"네. 얼마든지요 아마미 씨."

"하루카라고 부르라니깐."

 

조심스럽게 치하야의 옆자리에 앉았다. 온탕의 온도는 오늘따라 뭔가 좀 낮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별 일이네."

"네?"

"치하야 쨩이 씻는 걸 보다니 말야."

"몸을 깨끗이 하는 건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거니까요."

"아하하, 타카네 씨 같은 말을 하네. 사실 치하야 쨩이 씻는 걸 본 적이 없거든."

"그런가요. 저는 저의 생활 패턴을 밟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구나... 치하야 쨩은 성실하네."

"아마미 씨... 아니, 하루카도, 조금은 성실했으면 좋겠지만요."

"아하하..."

 

잠깐만.

 

"에에에에에에?!"

"왜 그러시죠 하루카?"

"아니, 아니아니, 치하야 쨩이... 이름을..."

"그, 예전부터 부탁하셨는데, 언제쯤 이름을 불러야 하나 모르겠어서..."

"난 준비되어 있었다구!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었어 치하야 쨩!"

"그, 그렇군요..."

 

샤워실 안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한동안 가득 찼다.

 

"...저는 슬슬 씻어 볼까 하는데요."

"아 그래? 그럼 같이 씻자!"

"...같이요?"

"응. 등 쪽에 씻기 불편하지 않아?"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치하야는 머리띠를 풀어서 손목에 찼다. 비단결 같은 머리가 그림같이 흘러내렸다.

 

"언제나 궁금한데 치하야 쨩은 머리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딱히 관리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냥 비누를 쓸 뿐이라..."

"에에? 그럼 머리 뻣뻣해지잖아."

"물론 그 뒤에 린스도 하죠."

"그럼 샴푸도 같이 쓰라구!"

 

나란히 서서 수도꼭지를 돌렸다. 온탕보다 조금은 따뜻한 물이 치하야와 나에게 쏟아졌다. 비누거품을 낸 다음 스펀지로 구석구석 문질렀다. 옆을 힐끗 보니 치하야도 몸에 거품을 문지르는 중이었다.

 

"치하야 쨩은 머리 나중에 감는 쪽이구나. 나도 그런데."

"...한 번에 헹궈내는 편이 편하니까요."

"그렇구나. 등 밀어줄게. 등 대 봐."

"......네."

 

그리고 치하야는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넘기곤 말없이 등을 내 쪽으로 대었다. 뼈가 앙상한 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스펀지가 치하야의 등에 닿았다.

 

"......"

 

아무래도 등이 민감하다더니 하는 설정은 치하야한테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스펀지를 등에 문질렀다. 별로 넓지 않은 등이라 얼마 가지 않아 전부 비누거품을 칠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 쪽도 해 줄래?"

"...네."

 

아까부터 물방울 소리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지 등을 닦을 뿐인데. 치하야의 스펀지가 아무런 예고 없이 등에 닿았지만 나 또한 등이 그다지 민감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고마워."

 

그리고 나도 왜인지 말하기 전에 침묵을 섞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전 머리를 감겠습니다."

"으, 응..."

 

그리고 치하야는 샴푸를 두 번 짰다.

 

"에? 샴푸 잘 쓰네?"

"...하루카가 샴푸 써보라고 해서요."

"어, 응. 고마워..."

 

치하야는 샴푸를 어색하게 머리에 문지르더니 이윽고 거품을 내어 머리를 살살 주물렀다. 이어 치하야는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찾지 못했다. 치하야의 손은 하염없이 수도꼭지 근처의 벽만 더듬더듬 헤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촉각에만 의지해서 수도꼭지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욕탕에 들어올 적부터 지금까지 느꼈던 어색한 기분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눈을 떠 치하야 쨩!"

"아... 안 돼요!"

"왜?" "무... 무섭잖아요!"

 

치하야는... 꽤나 귀여운 사람이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언제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던 것도 그렇고, 뭔가 더듬더듬 수도꼭지를 찾고 있는 것도 그렇고, 치하야는 생각보다 귀여운 점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날 때도, 머뭇머뭇거리는 모습이 조금 보기 귀여웠을지도!

 

나는 손을 뻗어서 수도꼭지를 돌려 주었다. 하지만 머리에 물을 맞으면서도 치하야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있는 힘껏 참았다.

 

치하야는 그 뒤에는 눈을 감고도 수도꼭지를 잘 찾아서 잠그었다. 그리곤 한동안 거기에 서 있었다.

 

"...치하야 쨩?"

"...감사합니다."

"어, 응."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버렸네요."

"괜찮아! 나도 어렸을 땐 그랬는걸!"

"어렸을 때잖아요.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엄청 귀여워!"

"네?"

 

내가 말을 하고서도 입을 꾹 막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본심이 나와서 어쩌자는 거야.

 

"아니, 그, 뭔가, 갭이 있다고나 할까..."

"...그런가요."

"응! 뭔가 나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

 

치하야의 얼굴이 점점 발개지고 있었다.

 

"...말하지 말까?"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에헤헤, 그럼 치하야 쨩이랑 단둘이만 가진 비밀인 거네?"

 

그러자 안 그래도 붉은 치하야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치하야는 도망치듯이 샤워실을 나갔다.

 

"치하야 쨩?"

 

거기서 쫓아가기까지 하면 심하게 놀리는 거 같아서, 난 그대로 머리를 감고 난 뒤에 샤워실에서 나왔다. 탈의실에는 새 트레이닝복을 입은 치하야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미안. 너무 놀린 거 같네."

 

치하야는 드라이기를 껐다.

 

"아뇨. 저도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귀여웠다니깐!"

"그, 그런가요..."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귀여웠다.

 

"으음... 어쩔까나. 하루카 씨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긴 하지만..."

"...저를 협박하시는 건가요?"

"에에? 아니아니. 아냐. 그냥 장난이야 장난."

"......" "...미안. 화 났어?"

"아뇨. 역시 그런 건, 저한테 어울리지도 않고 앞으로 지워나가야 할 거라고 생각해서요...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에? 아냐. 이런 모습도 난 좋은걸?"

"하지만 아이돌로서는 어떨지..."

"아이돌은 아이돌이니까. 오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된다구?"

"...그런가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만이라도 귀여운 모습 보여줘도 된달까나?"

"애초에 무슨 연유로 그... 귀여운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거야, 치하야 쨩은 언제나 뭔가..."

"뭔가?"

 

생각해 보니까 이 이상 말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언제나 사무적인 대화만 나누고, 제대로 친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뭔가 차갑고 딱딱해 보였는걸. 그래서 언제나 말 걸기가 힘들었달까나..."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됐어! 이렇게 귀여운 모습도 봐 버렸고 말 걸 거리는 잔뜩인걸?"

"그렇...군요."

"응응! 치하야 쨩 귀여워!"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한 발짝 더 내딛었을까나?

 

 

 

아. 한 가지가 남았어.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 놓아도 돼. 나이 한 살 많은 게 뭐 어때서."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응. 알았어."

 

으윽! 이건 심장에 좀 위험할지도! 바로 껴안고 싶어져!

 

"야호! 그럼 치하야 쨩이랑 앞으로도 친구네?"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응! 앞으로도 잘 부탁해 치하야 쨩!"

"...잘 부탁해 하루카."

 

그리고 치하야는 살짝 미소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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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치하야는 무언가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머리를 감았다는... 그런 설정을 들었어서 그런 설정이 지금까지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을 플래마스 기반으로 끄적여 보았습니다 하루치하 왓호이에요 좋아요 우헿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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